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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목 : 한국교회에서 도올의 현재적 행보가 갖는 역할    
  글쓴이 : 정강길 날 짜 : 07-05-16 23:29 조회(26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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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수적인 한국교회가 도올을 씹으면 씹을수록 그의 주가는 상승한다.
 
 
도올과 기독교 신학자들 간의 토론회

지난 주 금요일 11일 감신대 중강당에서 도올과 한국의 신학자들이 함께 신학대토론회를 열었다. 역시 도올은 대중 스타인 듯 많은 사람들이 몰려들어 그 인기를 실감케 했다.

이 날 토론회는 한국조직신학회(회장 이정배 교수)가 도올을 초청하였으며, 이정배 교수(감신대)의 사회로 김경재 교수(한신대 명예교수), 김광식 교수(전 연세대교수, 전 협성대 총장), 김준우 교수(감신대), 김은규 교수(성공회대)가 토론의 패널로 함께 하였다.
 
 
 
이날 신학토론의 백미는 토론패널 가운데서 -내가 보기엔 유일하게- 보수적인 신학 입장을 견지한 김광식 교수와 도올 간의 설전이었다. 겉으로는 마냥 점잖고도 화기애애한 듯한 분위기로 얘길 나누긴 했지만, 서로 간에 주고받은 내용들은 아주 골 깊은 논쟁이라고 생각되었다. 반면에 보다 진보적인 입장을 취하고 있던 김경재 교수의 지적이나 김준우 교수의 질문들에 대해선 도올의 반응은 대체를 동의를 한다거나 혹은 배우겠다는 얘길 할 만큼 대비를 보여주었다.

어차피 그날 토론에 대한 자세한 내용들은 이미 언론에도 공개되었을 걸로 보기에 여기서 구체적인 내용들에 대해 거론하진 않겠다. 예상컨대, 이번 도올과의 신학대토론회에 대한 평가도 기독교 안에서조차 상당히 나뉠 것으로 예상되는데, 아마도 보수 기독인일수록 하필 도올을 왜 불렀냐고 불쾌해하지 않을까 싶다. 즉, 내가 지금 여기서 말하고자 하는 바는 한국 기독교계의 반응과 관련한 도올론이다.

도올에 대한 기독교계 안의 엇갈린 대응

사실 도올이 이번에 기독교 성서에 대해 글을 썼지만, 기독교 신학 전반에서 볼 때, 참으로 도올은 신학적으로 새로운 얘길 하였는가? 라고 질문을 던져볼 수 있겠다. 물론 그 자신의 전공인 철학과 관련해서 고찰한 지점들은 보다 괜찮았다고 생각되지만, 대체적으로 내가 보기엔 도올은 그저 솔직하고 건강한 일반인이 상식적 범주에서 기독교 성서에 대해 얼마든지 공부해보고서 고찰할 수 있는 얘기를 신학진영에서 한 것뿐인 걸로 여겨진다.

그런데도 이것이 한국 기독교의 전반적인 낮은 수준의 현실과 만나서 장안의 뜨거운 감자가 되고 있는 것이다. 흥미로운 것은 바로 도올의 기독교 성서이해에 대한 기독교 진영의 반응인데, 이에 대한 대응이 기독교 안에서조차 나뉘고 있다는 점을 우리는 잘 살펴볼 필요가 있다.

크게는 두 진영의 반응으로서, 보수 진영의 반응과 진보 진영의 반응으로 나눌 수 있겠는데, 적어도 진보 진영의 반응이란 이날 토론회 자체가 이를 말해주고 있다고 생각된다. 즉, 이번 이정배 교수의 발언에서도 잘 드러났듯이 “도올은 논의될 주제이지 피해갈 주제가 아니다!” 라는 것이다. 내가 보기에도 진보 기독진영은 도올을 그다지 껄끄럽게 여기진 않는 걸로 보인다. 어떨땐 김경재 교수의 발언에서도 나타나듯 오히려 긍정적인 좋은 평가를 내리기도 한다.

반면에 보수 기독진영은 할 수만 있다면 도올을 피해가고자 하는 흔적들이 역력한데, 만일 도올의 대중적 영향력을 피해가기 힘들 경우엔 그 다음으로 대하는 반응이 주로 폄하와 무시로서 적어도 깊은 수준에서 도올을 이해하고서 평가하는 게 아니라 그저 피상적인 논의 수준에서 내뱉는 경우들이 대부분이다. 이를테면 도올은 우리네 기독교 전통과 맞지 않는다느니 부정한다느니 하는 식으로 도올의 기독교와 성서에 대한 견해들을 일방적으로 비난하고 무시하는 것이다.

대체로 그동안 언론보도를 통해서 보수 기독진영의 반응들이 나왔었지만, 그래도 보수 기독학자와 직접적으로 만나서 공개 논쟁을 펼쳐 보인 사례는 이번이 처음이 아닐까 싶다. 그렇지만 그 내용들은 지금까지 기독교 진영의 보수와 진보 간의 신학논쟁에서도 많이 보았던 것이라 그렇게 새로운 것은 못된다.

그런데도 이것이 장안의 화제가 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즉, 이번 신학토론회 때도 나타났듯이 도올에 대한 세간의 인기는 이번에 도올이 훌륭한 신학적 글을 써서라기보다-물론 그러한 점도 없잖아 있겠지만- 더 정확하게는 대비적인 효과가 크게 작용한 점도 없잖아 있다고 본다. 
 
다시 말해서 현재의 한국 기독교계가 너무나 보수 근본주의적인 참담한 현실에 처해 있기에 일반적인 상식 수준에서 말하는 것조차 오히려 역설적으로 돋보이게 되고 있는 실정이라는 얘기다. 특별히 이미 사회적 영향력이 있는 인사가 기독교에 대해 그러한 지적을 할 경우 그 반향은 말할 나위 없이 더 클 것으로 본다. 대중이 카타르시스를 느끼는 것도 그만큼 한국기독교가 지극히 덜떨어져 있는 바로 그 부분에서다.

특히 그 지점은 한국교회 전반에 깔린 ‘무조건 믿어야 한다’는 식의 신앙행태와 그리고 성서무오설을 반대하는 성서비평의 수용여부가 가장 큰 갈림길의 포인트라고 생각된다. 이미 후자의 경우는 사실상 보수 기독 진영과 진보 기독 진영의 분수령 같은 지점이기도 하다. 어떤 점에서, 한국교회는 도올 깨기에 앞서 이러한 참담한 문제적 현실부터 해소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도올 역시 한국교회의 건강한 변혁을 위해 일정한 역할을 하는 중

도올은 이미 대중장악력을 확보한 권력가다. 나름대로 인문학 분야를 대중화시킨 것도 그의 능력이기에 충분히 인정해줄 수 있어야 할 것이다. 만일 건강하지 못한 비상식적인 얘길 했다면 대중들이 도올을 좋아할 리도 만무하잖은가. 물론 도올의 글이나 언변을 보면, 자의식이 지나치게 강한 점도 있긴 하지만, 그러한 점들은 도올만의 개성의 문제로서 오히려 일반 독자들의 넓은 아량으로도 충분히 봐줄 수 있는 부분이다.

적어도 기독교인으로서 볼 때, 가장 중요한 관건이자 핵심은 현재의 도올이 한국 기독교의 건강한 흐름에 동참하고 있느냐 하는 점일 게다. 개인적으로 말해서 나는 도올 역시 나름대로 한국 기독교의 건강한 흐름에 일정한 역할을 하고 있다고 생각된다. 물론 그의 신학적 견해에 대해 전부 동의하진 않더라도 한국교회 전반이 보수 근본주의로 채색되어 있는 현실에서 도올은 한국 기독교를 적어도 소통가능한 건강한 상식 수준으로 올려놓고자 노력하고 있다는 얘기다.

얼마 전에 만난 오강남 교수 역시 말하길, 도올은 한국 기독교의 건강한 변화를 위해 어느 정도 잘 하고 있는 중이라는 얘길 한 바 있었는데, 내 생각에도 도올은 한국 기독교의 건강한 변혁을 위하여 나름대로의 역할을 하고 있다고 여겨진다. 하지만 그는 기독교 안의 세부적인 사정들을 깊이 안다고 여겨지진 않는다. 얼마 전 조용기 목사에 대한 평가 역시 한국 기독교 전체의 맥락에서 온전하게 사람을 꿰뚫어 보지 못한 그의 성급한 판단이었지 않나 싶다.

그렇다고 해도 도올은 이번 신학토론회를 통해서도 드러났듯이, 그 역시 <이해를 통한 신앙>을 추구하고 있다. 이것은 명백하게도 도올 역시 <‘무조건 믿어라’의 기독교>가 아니라 <솔직하고 건강한 합리성에 기반한 기독교>를 지향한다는 사실이다. 내가 보기엔 건강한 기독교를 위해 도올의 대중적 영향력도 한국 사회의 상향적 발전을 위해선 필요한 일이라고 여겨진다.

생각건대 앞으로도 보수 기독 진영의 신학자들의 경우엔 도올과 직접적인 공개 논쟁만큼은 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아마도 ‘똥이 무서워서 피하겠는가’라고 생각할지도 모르겠지만, 적어도 보수 진영의 신학자들이 도올과 공개 논쟁을 할 경우 자신들만 손해라고 생각하지 않을까 싶다. 물론 도올 진영에서도 거부할 가능성도 있다. 하지만 도올과 보수 진영의 신학자들이 공개논쟁을 할 경우 내가 보기엔 도올이 손해 볼 가능성은 거의 없다.

이는 그 자신이 얼마 전에 말한 그대로다. 자기가 씹히면 씹힐수록 기독교계에 건강한 담론이 생겨난다는 그의 말 그대로, 결국 ‘무조건 믿어라’의 보수 기독교와 부딪히면 부딪힐수록 그의 상종가는 더욱 올라가지 않을까 싶다. 그러니 앞으로도 계속 힘내시길 바란다.

파이팅, 도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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