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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목 : 기존 기독교의 붕괴와 새로운 기독교의 도래 (1)    
  글쓴이 : 정강길 날 짜 : 07-07-30 23:49 조회(3000)
   트랙백 주소 : http://freeview.org/bbs/tb.php/b001/121 




 (* 이미 전문은 이번 월간 『기독교사상』 8월호에도 실려 있습니다.)
 
 
 
기존 기독교의 붕괴와 새로운 기독교의 도래 (1) 
[신학특집] 미래의 기독교와 한국교회의 미래, 어디로 나아갈 것인가?
 
 
 
"나는 기독교의 신학이 인류의 커다란 재앙 중의 하나라고 생각한다. 기회가 찾아왔던 종교개혁도 결국은 역사상 가장 큰 실패 중의 하나가 되었다. 그것은 교회를 관용과 우아한 것으로까지 만들어주었던 심미적인 호소를 완전히 포기하고 결국은 야만적인 신학을 보존케 했던 것이다."
- A. N. Whitehead
 
 

1. 들어가며
 
생명은 더불어 진화한다. 그러한 생명 진화의 경로는 매순간마다 열려 있기에 거기에는 언제나 상향으로 가는 길과 퇴행으로 가는 선택지가 함께 마련되어 있다. 인류의 역사는 상향과 퇴행의 길들을 그때그때마다 선택하면서 여러 다양한 생명들의 흥망성쇠를 지난하게 잘 보여주고 있는 장구한 파노라마다.
 
하지만 언뜻 장대하게 느껴지는 인류의 역사도 무려 200억년 정도 되는 우리 시대의 우주의 역사에 비하면 턱없이 짧은 시간에 속한다. 단지 인류의 역사는 생명 진화에 있어 정신의 고양이라는 새로운 양태로서의 역사를 보여주고 있기에 그 특별함을 지닌다. 그것은 흔히 말하는 <사상thought의 역사>이기도 하다. 그러한 사상 가운데서도 인류의 생활양식에 가장 깊은 뿌리를 내리고 있는 으뜸을 얘기한다면 그것은 바로 종교(宗敎)일 것이다. 종교는 말뜻 그대로 <가장 으뜸의 가르침>이다.
 
역사적으로 볼 때 종교라고 해서 마냥 좋았던 것은 아니었다. 종교는 좋을 수도 있고 나쁠 수도 있다. 단지 여기서 말하고자 하는 바는, 종교야말로 우리네 삶에 있어 가장 지대한 영향력을 끼쳐왔었다는 사실이며, 그렇기 때문에 자신의 삶을 온전히 들여다보고 제대로 성찰하기 위해서라도 자신이 신념으로 걸고 있는 종교를 분명하게 되짚어볼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역사상 수많은 종교가 있었고 수많은 종교가 흥망성쇠를 거듭해왔다. 그 가운데 고등한 종교라고 불리는 것은 지금까지도 살아남아 있고 어떤 것은 소멸되어버린 종교도 있다. 물론 소멸의 경우 다른 것으로의 전이 혹은 동화나 흡수로 볼 것인가의 문제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어떻든 간에 더 이상 흥하지 못하고 점점 퇴락의 길에 들어선 종교도 분명하게 있다는 사실이며, 이는 하나의 종교 안에 있는 여러 종파들 간에서도 마찬가지의 진행현상을 보여주고 있다는 점만큼은 부인할 수 없다.
 
하지만 종교란 것은 워낙 인간의 삶 속에 뿌리 깊게 남아있는 것이기 때문에 비록 퇴행과정에 있는 종교일 경우라도 그 퇴행의 진행이 매우 더디거나 느릴 수도 있겠다.

나는 이 글을 통해 서구 역사의 주류 종교였던 기존 기독교가 이제는 퇴화기에 들어섰으며, 다가올 미래에서는 이러한 낡은 패러다임의 기존 기독교가 더 이상 통하지 않을 것임을 분명하게 말해두고자 한다. 그럼으로써 현재의 기독교는 미래를 향해 어떠한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으며, 그러한 가운데 한국교회는 어떠한 미래를 그리게 될 것인지에 대해 논하고자 한다(행여 본글에 대해 그 밖의 자세한 얘기들은 본인의 졸저 『미래에서 온 기독교』(서울: 에클레시안, 2007)를 참조 바람).
 
2. 서구 정신사의 뿌리, 플라톤적 이원론
 
한정된 특수성 안에서만 자족하는 종교는 더 이상 발전할 수 없다. 말 그대로 그것은 이미 쪽 난 것이다. 이것은 퇴락하는 종교의 가장 큰 특징이기도 하다.
 
크게 보면 종교가 퇴행성을 보여주는 두 가지 징후들을 이끌어낼 수 있는데, 첫째로는, 종교가 구체적이고도 다양한 우리네 삶의 온갖 부조리들에 대해 더 이상 온전한 설명력을 확보하지 못한 채 그저 불가해한 절대적 영역을 빌미로 해서 사람들에게 해당 종교의 신념을 강요하거나 이를 어물쩍 넘어가려는 점을 들 수 있겠고, 둘째로는 해당 종교가 그때까지 저질러 왔었던 지속적인 오류와 비극 앞에서조차 여전히 온전하게 반성하지 않는 점을 퇴락하는 종교의 주요한 특성으로서 꼽을 수 있겠다.
 
대체로 위대한 종교의 발생은 비범한 현자들의 통찰이 당시의 시대적 상황들과 맞물려 세계 안에 신선한 자극을 불러일으킴으로서 촉발되었다. 하지만 그러한 초창기의 신선한 충격도 그 가르침을 전수하는 과정에서 점차로 조직화ㆍ제도화가 진행되면서 대부분은 초기의 신선한 생명력을 상실한 채 헤게모니를 얻기 위한 교권다툼으로 전락될 때가 많았었고, 결국은 종교집단 역시 기득권자들의 재생산 구조로 완악하게 굳어져갈 때가 많았었다.
 
사실 어떤 면에서 인류의 역사는 진보했다고 말하긴 힘들다. 그저 전개되어 온 것뿐이다. 그러한 가운데 굳이 역사의 진보를 논할 수 있는 지점이 있다면, 바로 세계 안에 위대한 종교적 통찰이 드러났었던 그 발생 사건에 있다고 본다. 하지만 이 위대한 사건들이 지금까지 제대로 해석되어 왔고 계승해왔는가를 생각해보면, 오히려 유감스러운 느낌이 안들 수가 없는 현실이다.
 
지면상 기독교와 밀접한 관련을 갖는 서양의 역사만 일단 논한다고 할 때, 그것은 대체로 플라톤을 비롯한 희랍철학이라는 해석학적 토대에 기반되어 왔었다는 점을 분명하게 말해두고자 한다. 이미 현대의 철학자들도 종종 거론하고 인용하듯이, 서구 유럽의 사상사가 플라톤 철학에 대한 일련의 각주로 이뤄져왔었다는 얘기는 결코 과장이 아닌 것이다.
 
여기에는 기독교도 예외 없이 플라톤 철학의 <관념적 이원론>(여성신학자들은 이 ‘관념적 이원론’을 다른 말로 <위계적 이원론>hierarchical dualism이라고도 표현함)이라는 해석학적 토대 위에서 예수가 해석되어 왔었고, 하나님에 대한 이해가 마련되어 왔었다. 물론 나는 지금, 기독교 사상사 안에서도 희랍의 이원론을 벗어나는 몇 가지 유용한 통찰들과 몇몇 비범한 그리스도교사상가들이 있음을 모르고서 이러한 언급들을 해대는 것이 아니다. 적어도 기독교 역사에 굵게 나타나는 정신사의 주요 흐름들만큼은 이원론이라는 해석학적 토대에서 진행되어 왔었다는 점을 언급하고픈 것이다.
 
이를테면 중세사상가들 중에서 현대에선 점점 높은 호감도의 평가를 받고 있는 마이스터 에크하르트의 경우, 그는 분명하게도 기존의 희랍 형이상학과는 다른 세계 해석의 토대에서 비범한 통찰들을 보여주었지만, 적어도 그는, 희랍철학을 기독교 조직신학에 아예 본격적으로 끌어들였던 어거스틴이나 아퀴나스에 비하면 기존 기독교사상사의 주류에는 턱없이 속하지 못할 정도였다.

관념적 이원론이라는 패러다임은 사실상 근대의 데카르트 이원론으로도 이어지면서 데카르트-뉴턴의 근대 세계관에까지 이를 만큼 그것은 서양인들에게 뿌리 깊게 남아 있는 형이상학적 패러다임이다. 세계 정복을 꿈꿨던 그 어떤 전쟁 영웅들조차도 플라톤을 비롯한 희랍사상가들이 일궈낸 정신사의 혁명에 비하면 결코 깊은 것이 못된다.
 
철학은 우리가 세계를 해석해낼 때 가장 기초적인 관점으로서의 해석을 제공한다. 사실상 알고 보면 누구나 자기 나름대로 세계를 보는 이해와 관점이 있을 터인데, 그것이 바로 그 사람에게 해당하는 철학이다. 이 같은 세계해석의 기초 관점을 플라톤적인 희랍철학의 관점이 거의 이천 년 동안 서구인들의 사고에 깊이 관여해왔던 것이다. 물론 플라톤적 이원론이라고 해서 죄다 무시할 순 없고, 단순하게 일반화시킬 수도 없을 테지만 적어도 서구사상사에서 기독교 안에 자리하고 있었던 주류 관점의 해석학적 틀은 <관념적 이원론>이라는 사고 유형의 틀을 가지고 있었다. 서구의 주류 기독교는 이를 매우 충실하게 적용해왔었던 것이다.
 
3. 새로운 정신사의 도래를 맞고 있는 전환시대 : 19세기로부터 지금까지
 
사실상 문명의 거대한 전환은 <형이상학>이라는 세계 해석의 밑바닥 기초 패러다임부터 새롭게 전환되고 마련됨으로써 서서히 진행되어 가는 것이다. 새로운 형이상학에 토대하게 되는 성공적인 패러다임 전환은 매순간마다 검증과 적용의 단계들을 꼼꼼하게 거치면서 그 신뢰도를 확인하기 때문에 어떤 면에서 그것은 수백 년 걸리는 매우 더딘 흐름이기도 하다.
 
나 자신이 지금부터 말하고자 하는 새로운 전환시대는 이미 19세기부터 서서히 기지개를 켜면서 시작되었다고 볼 수 있겠다. 물론 그것은 지금 이 순간에도 미래를 향해 여전히 진행 중에 있는 것이다. 적어도 19세기부터는 기존의 형이상학에 반하는 새로운 유형의 사조들이 세계사 안에 본격적인 출현을 보였던 시기였다.
 
그것은 사회적으로도 많은 파장들을 낳았었는데, 예를 들면 노예제를 극복코자 했던 ‘민주주의’라는 개념에 대한 자각이나 인권사상, 여성의 권리 청원, 정신에 대한 물질의 우위성과 마르크스주의 경제관, 니체의 반기독교 사상, 동서양의 만남과 충돌 등등 이러한 것들은 적어도 기존의 서구 정신사의 주요 흐름과는 소외되어 왔었거나 배치되어 있던 것들이었다.
 
물론 그 기원을 더 정밀하게 따지고자 한다면 보다 위로 소급할 수도 있을 것이다. 특히 르네상스 이후의 지리상의 발견이나 자연과학의 발달도 서구정신사의 변화에 큰 한 몫을 담당했던 흐름일테지만, 적어도 서구사회 안에 그 흐름이 적용되면서 보다 가시적인 면모를 잘 보인 것은 19세기라고 생각된다. 한국에서는 동학 같은 것이 19세기 후반에 발현된, 이전에 없던 새로움이었다.
 
20세기는 이러한 19세기로부터 계속 이어받은 변혁의 소스들이 더욱 가열차고 보다 복잡한 양상으로 세계 역사 속에서 진행되었다. 서구 문명이 지닌 근대 세계관의 종말을 고해준 세계 대전이 터지더니 명료한 확실성을 찾으려 했던 실증주의가 대두되고 급기야 결국은 실증주의마저 넘어서 모든 것을 의심해보고 회의하려는 포스트모던의 사조가 서구 문명의 20세기 후반을 지배했었다. 물론 니체의 후예들은 21세기인 지금도 여전히 활개를 치고 있다.
 
어쨌든 20세기는 기존의 모든 일자적인 권위에 대한 회의와 해체를 표방했던 반형이상학적 시대였고, 보다 많은 갈등과 충돌들이 경험되던 시대였으며, 다양성의 가치가 더욱 소중한 것임을 알게 했던 시대였다. 그 가운데 20세기 후반으로 갈수록 생태환경 문제와 여성을 포함한 소외자들에 대한 관심들은 더욱 두드러진 문제로서 부각되었다.
 
하지만 20세기의 포스트모던적 세계관은 다양성과 분화의 측면에서 많은 기여가 있었다고 보지만 통합의 측면에서는 전혀 기여를 하지 못했었으며, 오히려 종합화하려는 통합적 사유 자체에 대해 회의적이었을 뿐만아니라 이를 권력에 오염된 이성이 저지르는 사유의 폭력으로서 보았기에 이 같은 폐해와 문제점들도 함께 낳았었다. 20세기의 이 같은 폐해와 문제점들은 현재의 21세기가 나아가야 할 정신사의 새로운 패러다임 형성에 더욱 선명한 좌표들을 제공해주고 있는 성찰의 지점들이다.
 
또한 20세기는 비약적으로 과학에 대한 정신적 세례를 크게 입고 있다. 과학은 사실상 현대인들에게는 <새로운 종교>a New Religion로도 대치될 정도다. 과학의 세례를 받은 현대인들은 더 이상 중세 봉건시대에나 통할 법한 구라에 걸리질 않는다. 물론 현재 21세기에서도 과거의 중세기를 살고 있는 철없는 사람들도 여전히 있겠지만, 적어도 과학은 어느 정도 무지몽매한 미신들을 걸러주는 장치와 역할을 계속적으로 진행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물론 현대과학도 여전히 불완전하겠지만, 그렇다고 이를 배제하거나 무시할 수 있는 영역은 결코 아닌 것이다. 특히 과학기술이라는 테크놀로지의 발달과 다양한 정보의 홍수를 경험하고 있는 21세기는 생활 속에서조차 더욱 과학으로 충만되고 있다.
 
19세기 이래로 점점 부각되고 있는, 가장 변혁적인 정신사의 패러다임 대전환은 기존의 ‘관념적 이원론’이라는 해석학적 관점이 서서히 <현실적 관계론>이라는 정신사의 새로운 해석학적 패러다임으로 점점 대체되어 가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제는 땅의 문제가 먼저 소중해졌고 구체적인 삶의 문제가 더욱 절실하게 와 닿고 있다. 좀더 정확한 방향으로 짚어볼 경우, 20세기에 실험되었던 물질과 경제적 차원의 문제마저도 극복해야 할 뿐만 아니라 삶의 전인적인 관계 차원에서 바라보는 영성의 문제가 대두됨으로써 보다 온전하고 총체적인 해석학적 관점으로 나아가고 있다는 사실이다.
 
즉, 이제는 기독교를 대할 때도 이러한 새로운 관점으로서 기독교를 대하는 자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럼으로써 신에 대한 관점, 예수를 보는 관점, 교회와 인간을 보는 관점, 성서를 보는 관점 등등 모든 것들이 전면적으로 서서히 뒤바뀌어가고 있다는 사실이다.
 
(계속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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