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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목 : 기존 기독교의 붕괴와 새로운 기독교의 도래 (3)    
  글쓴이 : 정강길 날 짜 : 07-08-06 04:54 조회(3060)
   트랙백 주소 : http://freeview.org/bbs/tb.php/b001/123 




기존 기독교의 붕괴와 새로운 기독교의 도래 (3)   
[신학특집] 미래의 기독교와 한국교회의 미래, 어디로 나아갈 것인가?
 

7. 한국교회의 현실과 미래 : 이제는 <새로운 기독교 운동>을 해야할 때
 
현재의 한국 기독교는 제1세계 서구인들에게서 기독교를 전수받은 수혜자이면서 동시에 이제는 제3세계를 비롯한 세계 각지에 선교사를 파송하는 선교대국으로까지 평가받기도 한다. 하지만 내가 보기에 앞서의 새로운 패러다임으로의 전환을 감행하지 않는다면 한국의 기독교는 분명하게 도태될 것이라고 본다.
 
아직까진 한국교회 현장에선 미약하더라도 서서히 그 중요성이 부각되고 있는 점들은, 과학과 종교 간의 관계 및 이웃종교 간의 관계, 그리고 강자와 약자(부자와 빈자, 남성과 여성, 인간과 자연환경 등등) 간의 관계 문제가 거부할 수 없는 현상으로서 자꾸만 기존 기독교에 대해 도전과 자극을 주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러한 문제들이 기존의 전통 기독교의 교리의 틀로 볼 땐 부정하고 싶음에도 불구하고 자꾸만 이런 문제들이 부각되면서 기존 기독교에 균열을 내고 그 틈새를 비집고 들어오게 되는 이유는, 이 같은 갈등 문제들이 이제는 지구촌 삶을 사는 우리네 삶 속에서 점점 더 확장된 피부로서 체험되고 있기 때문이다.
 
1) 보수 기독 진영
 
내가 볼 때 한국의 보수 근본주의 신앙인들은 이제 그 수용 세대들이 성장하는 젊은 세대보다는 보다 노년화된 계층으로 점점 고립되어 갈 것으로 본다. 현재의 젊은 세대들을 보면 알겠지만 이미 두드러지게 다양한 정보 섭취력에서부터 크나큰 차이를 보이고 있다. 세계 안의 다양한 정보들에 대한 섭취가 왕성할 경우, 당연히 성장적 갈등과 새로운 수용의 폭이 그만큼 확률적으로도 높아질 수 밖에 없잖은가.
 
만일 보수 근본주의 신앙을 지니고 있는 젊은 기독교인이라면 앞으로는 오히려 중도적 복음주의 신앙에 더 매력을 느낄는 지도 모르겠다. 왜냐하면 중도적 복음주의 진영은 다소 보수 근본주의 입장을 극복하는 것처럼 여겨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소위 말하는 복음주의 진영은  애매모호한 중도라는 절충주의적 입장일 뿐이지 결코 일관된 철저성에는 이르지 못하고 있는 한계가 있다. 특히 성서의 역사비평이나 전통 기독교 교리의 문제들은 이들에겐 여전히 제대로 말못할 치명적인 지점들이다(복음주의 진영에 대한 자세한 이해에 대해선 http://freeview.org/bbs/tb.php/d003/1 참조),
 
생각컨대, 그나마 앞으로도 끈질기게 버틸 수 있는 보수 기독 진영의 교회를 들라고 한다면, 전통 교리적 자세를 굳건히 유지하되 교회 안으로 교인을 끌어 모으려는 전략의 하나로서 지역사회 운동도 함께 겸하는 경우를 들 수 있겠다. 요즘 중대형교회도 마케팅 전략의 하나로서 지역사회의 주민을 위한 편의시설이나 복지센터를 겸하면서 교회운용을 하는 곳도 많이 생겨나고 있다.
 
하지만 이들의 경우도 잠깐은 반짝할 수 있을 진 몰라도 그것은 앞서의 '무조건 믿어라'의 내용에 따른 기독교 분류표에서 ①번 진영과 ②번 진영을 왔다갔다 하는 것이라 결국은 정치ㆍ사회참여의 중도적 복음주의 진영이 안고 있던 딜레마처럼 그 불가피한 모순과 난점들을 피해가진 못할 것으로 본다. 어떻든 기존 기독교가 안고 있던 전통교리의 틀이 더 이상 통하지 않게 되는 지구적 삶의 현실을 결국은 맞닥뜨릴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 우리 사회 이슈들에 대한 보수와 진보의 충돌은 이미 기독교 자체의 어긋남에서부터 비롯
 
2) 진보 기독 진영
 
현재의 한국교회 진보 기독 진영은 7, 80년대 진보 기독 운동의 관성으로 인해 아직까진 새로운 기독교 운동보다는 여전히 기독교 종파 밖의 사회운동 범주가 많다. 언뜻 사회운동을 위해 기독교를 선택했다고도 볼 수 있을 정도다. 한때 80년대 민중신학적 신앙의 경우는 기독운동이란 것이 아예 사회적 실천운동으로 환원되기도 했을 정도다.
 
지금까지도 한국에서 드러나고 있는 진보 기독교인에 대해 일반적 이해나 그 이미지는 다소 좌파적 색깔의 사회운동 혹은 통일운동, 민중운동, 환경운동, 여성운동 등등 이러한 사회활동을 펼치는 기독교인으로서 인식될 때가 많다. 하지만 일반 사회 운동의 경우는 90년대 이후로 점점 더 다양한 분야에서 활발하게 활동하는 NGO단체들이 많이 생겨나면서 어떤 경우엔 에큐메니칼 기독 단체의 사회운동보다 더욱 전문성을 띠고 있는 시민단체들도 많이 있는 실정이다.
 
물론 나 자신은 그러한 차원의 진보 기독교인들의 활동에 대해 굳이 반대하진 않고 오히려 이를 지지하는 입장이다. 단지 이미 90년대 이후의 다양한 시민사회 운동들은 이제 그 역할을 많이들 대신해주고 있는 실정이기도 하다는 점에서 21세기 사회에서 보다 구심점을 모아야 할 지점은 오히려 기독교 자체의 문제라고 여겨진다. 교회는 NGO의 일을 내포할 순 있겠지만 그 역은 아니잖은가.
 
내가 볼 때, 작금의 진정한 진보적 기독 운동은 오히려 기존 기독교 자체를 새롭게 변모시키는 운동이 보다 절실하다고 여겨진다. 사실 곰곰이 생각해보라. 지금까지 국가보안법, 사형제도, FTA문제, 사학법 등등 여러 정치사회 현안에서도 보면, 오히려 기독교가 기독교를 걸고 넘어졌던 형국 아닌가. 군사독재정권을 위해 찬양하고 기도했던 기독교가 있는가 하면 이를 위해 저항해왔던 기독교가 있어 왔다.
 
예전에 문익환 목사의 방북사건을 빨갱이질로 가장 매도했던 진영 역시 보수 기독교 진영이었다(아이러니한 것은 진보 기독 진영과 친화적인 복음주의 진영의 젊은 세대들에게선 현재 문익환 목사를 매우 존경하는 분으로 추앙되기도 한다는 사실이다. 하지만 복음주의 한계에 걸맞게 문익환 목사의 래디컬한 기독 신앙은 별로 자세하게 고찰되지 않은 채로 추앙될 뿐이다). 
 
또한 6월항쟁을 이끌었던 박형규 목사 역시 설파한대로, 그때 당시 1% 기독교만이 민주화 운동과 통일 운동에 참여를 했었고, 오히려 나머지 기독교는 그 1%의 기독교 진영을 매도하는 보수 기독교 진영이었다고도 얘기한 바 있다. 참고로 감리교 진영의 경우도 이 같은 두 기독교 간의 흐름의 충돌이 많았다. 예전의 고 변선환 홍정수 교수를 추방한 종교재판 사건이나 최근의 김준우 교수 사태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다시 말해서, 나는 이미 기독교 자체부터가 서로 어긋난 입장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러한 기독교가 사회적으로 표출하는 입장 역시 서로 충돌하고 어긋날 수 밖에 없다고 보고 있다. 그렇다면 이제 중점적으로 더욱 가열차게 가해야 할 메스는 일반 사회운동의 범주보다는 바로 기존 기독교 그 자신에게 더욱 집중적으로 가해야 할 것이다. 내가 보는 현재의 기존의 진보 기독교인들은 이러한 마인드가 매우 부족하다고 여겨진다. 그렇기에 나는 현재의 진보 기독 진영에 대해 좀더 바램을 갖는다면, 이제는 제발 기독교 자체에 대한 변혁에 좀더 관심을 더 가져달라고 말하고 싶다.
 
이제는 이 같은 양상의 두 기독교의 흐름을 종합화해서 끝장낼 때가 왔다고 본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지금까지 우리 사회의 지배이데올로기와 친화적이고 보수 반동을 저질러 왔던 그 기독교 자체가 변모되어야 하지 않겠는가 라는 것이다. 기독교만이라도 제대로 된 건강한 기독교가 되어보라. 우리 사회 전체가 업그레이드 되는 효과가 있을 거라고 나는 확신하는 바이다.
 
3) 기독교 바깥의 일반 시민사회 진영
 
현재 한국 보수 기독교의 폐해와 오류를 잘도 비틀며 끄집어내는 진영은 유감스럽게도 안티기독교 진영이다. 물론 게 중에는 몇 가지 억지적 측면들도 있지만 암튼 이들은 기존 기독교가 저질러 놓고 있는 사건 사고들에 매우 민감하게 반응하고 이를 잘 끄집어낸다. 주로 행태비판에 치우쳐져 있으며, 기존 기독교 사상을 비판할 경우에는 거의가 보수 근본주의 신학에 한정되는 얘기들일 뿐이다.
 
이를테면, 우습게도 기존 기독교를 비판한다는 안티기독교인들 가운데는 보수 근본주의자들의 문자적 성서해석에 대해 반론을 할 경우 그 자신 역시 문자적 성서해석으로서 기존 기독교를 공격할 때가 많다는 사실이다. 따라서 성서비평을 이미 확보하고 있는 기독 진영이라면 서로 매한가지로도 보일 수 있을 만큼 깊이 있는 비판을 찾기는 힘들다.
 
이는 보수 기독교가 현재의 기독교 진영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현실로 인해 그 같은 주류 기독교만 기독교로 여기며 눈에 들어오는 제약된 현실도 한 몫 작용한다. 바로 이 같은 연유로 인해 기존 기독교에 대해 실망을 할 경우, 진보 기독교를 찾기보단 오히려 안티기독교인이 되는 경우도 종종 있다. 분명히 말하지만, 안티기독교의 급성장은 기존 기독교의 폐해와 오류에 비례한다는 점을 분명하게 직시해야 할 것이다.
 
또한 최근 부쩍 주의 깊게 보여지는 사회 현상들 가운데 하나는 점점 갈수록 공중파 TV를 포함한 언론매체들도 그동안 신성시 되어 있던 기독교 내부의 비리들을 매우 비판적으로 보도하는 취재들도 심심찮게 보여주곤 한다는 사실이다. 곰곰이 생각해보면 사회 일반에서의 ‘종교비평’이라는 용어도 불과 몇 년 전만에 해도 우리 사회엔 없던 표현이 아닐까 싶다.
 
최근 종교인의 과세문제를 제기하는 ‘종교비판자유실현시민연대’의 경우는, 오히려 기독교 바깥 진영에서 기독교를 포함한 종교비평을 하고 있는 시민단체에 해당한다. 이들은 안티기독교가 기독교 박멸을 내세우는 것과는 달리 건강한 종교와 건강한 시민사회를 표방하는 또다른 흐름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기독교 바깥에 있는 단체라서 그런지 이런 사정들에 대해 보수 기독교를 싫어하는 진보 기독 진영조차도 아직까진 깊은 이해와 별 관심이 없는 편이라 그 교류 역시 여전히 미약한 실정이다. 무엇보다 기독교 바깥의 종교비평시민단체이다보니 개독박멸을 외치는 안티기독교 진영과는 잘 분간하기 힘들어 하는 점도 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이들의 활동들이 뜻밖에도 생각이상으로 오히려 일반 사회 진영에선 매우 환영받거나 주시되고 있다는 점도 우리가 분명하게 주목할 필요가 있다.
 
4) 이제 진정한 선교는 기존 기독교를 선교대상으로 하는, <새롭고 건강한 기독교 변혁 운동>이어야
 
따라서 현재의 한국 기독교 현실에서 나는 다음과 같은 이들은 기독운동의 <선교대상>으로 삼아야지 무슨 에큐메니칼의 대상으로 삼아선 곤란하다는 점을 분명하게 말해두는 바이다.
 
① 성서문자주의를 그대로 받아들이고 이를 가르치는 기독교
② “예수천당 불신지옥”을 외치는 전투적이고 배타적인 기독교
③ 여성안수를 반대하고 여성을 비하하는 기독교
④ 이웃의 생명들이 죽어가는 데도 방관하거나 동조하는 기독교
⑤ 전통문화를 경시하고 서구문화를 동경하는 기독교
⑥ 반민주 반평화를 말하는 기독교
⑦ 국가보안법 및 노동악법 같은 불의한 제도에 찬성하는 기독교
⑧ 민중을 억압하는 미제국주의와 신자유주의를 지지하는 기독교
⑨ 잘못된 신비와 영성 및 기적체험을 강조하는 기독교
⑩ 교회를 세습하고 교인수, 교권에만 탐닉하는 기독교
 
물론 이외에도 더 있을 수 있겠지만 대략적으로 말하면 위와 같다. 다시 말씀드리지만, 이들은 오히려 역설적으로 기독교의 선교대상으로서 자리매김 되어야 한다. 기존의 보수 근본주의 기독교가 에반겔리즘(복음주의)이라는 말을 쓰는 것도 실은 온당치 못한 것이다. 이는 많은 사람들을 미혹케 할 뿐이다.
 
늘상 강조하지만, <신자화>와 <복음화>는 마땅히 구별되어야 하며, 사실상의 오늘날 기독교의 선교 지역은 저 먼 나라의 오지가 아니라 놀랍게도 바로 기독교 그 자신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어떻든 적어도 이러한 마인드를 가지고서 새롭게 기독운동 진용을 갖출 수 있어야 한국 기독교가 그나마 세계 열방에 빛과 소금이 되는 생명구원과 해방의 흐름에 동참할 수 있지 않겠는가.
 

▲ 기존 기독교, 바뀌어야 산다.
 
8. 나오며 : <미래에서 온 새로운 기독교>의 도래
 
끝으로 한 가지 예언을 한다면, 빠르면 10년이고, 늦어도 2-30년 안에는 새로운 기독교 운동이 보다 가시적으로 우리 사회에 뚜렷하게 나타날 것이라는 점이다. 이미 이러한 현상은 세계적인 흐름이며 많은 소장학자들도 언급하고 있는 바다.
 
“기독교, 변하지 않으면 죽는다!”며 솔직 당당한 신학자로도 잘 알려진 성공회 신부 존 쉘비 스퐁은 이를 <새로운 기독교>a New Christianity라고도 불렀고, 유명한 신약학자 마커스 보그는 <새로이 등장하는 기독교>a Newly Emerging Christianity라고 했으며, 더러는 <신세계 기독교>a New World Christianity라고도 불렀다. 또한 영국 버밍검 대학의 고돈 린치 교수는 <탈신조적 기독교>a Post-credal Christianity라고 표현하기도 했으며, 기존 기독교의 몰락을 설파한 돈 큐빗 역시 그 대안으로서 <하나님 나라의 종교>Kingdom Religion라는 표현을 쓰고 있다.
 
종교학자 오강남 교수는 현재 기독교의 이러한 근본적 변화의 기운을 벌레가 나비가 되는 것과 같은 일종의 <탈바꿈>metamorphosis이라고 표현할 정도로 근본적인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고 말한다. 우리는 우리 시대의 예언자들이 외치는 "기존 기독교는 변하지 않으면 멸망할 것!"이라는 이같은 예언자적 외침을 귀담아 들을 필요가 있겠다.
 
한 가지 시각을 달리해야 할 점이 하나 있는데, 현재 서구 유럽에선 기존의 보수 기독교가 몰락했다고 해서 이를 발전이 아니라고 생각한다면 오히려 큰 오산이라고 본다. 다시 말해서 서구 유럽에서는 기존의 낡은 기독교가 더 이상 통하지 않을 뿐이지 그네들은 정작 새로운 패러다임을 기다리고 있는 것뿐이다. 그렇기에 기존의 낡은 패러다임이 아닌 새로운 차원의 관점에서 구축된 새로운 기독교는 앞으로의 서구 유럽사회에서도 얼마든지 먹혀들 수 있겠다.
 
나는 여러분들에게 분명하게 말씀드리고자 한다.
 
바야흐로 이제 모든 게 바뀔 시점에 이르렀고 우리는 지금 새로운 거대한 전환기에 있다는 사실을. 이는 단순히 몇 가지 정도만 개혁되어야 한다는 그런 의미가 아니다. 이천 년 기독교 신학 전반이 바뀌어야 하며, 지금까지의 시행착오의 기독교 역사를 처음부터 다시금 새롭게 써내야 한다는 것이다. 이른바 종교와 종교가 더 이상 대립하지 않고 풍요로운 대화를 나누며, 종교와 과학이 조화로운 소통을 이루고, 계층과 계층이 서로의 가진 것들을 나누면서 동시에 이념과 이념이 서로 반목하지 않으며, 자연과 사람이 화해하여 대지의 어머니와 속삭이는 그러한 세상으로 갈 수 있게끔 말이다.
 
그리고 이것의 성취는 가능한 세계 안의 모든 고난과 고통의 질곡에 빠져 있는 약자들의 생명들 속으로 들어가 모든 <반합리주의>에 대한 총체적 항거와 투쟁으로써 가져올 수 있다. 특히 기존의 진보 기독교인들이라면 이제는 보수 근본주의 기독교로 인해 그 정신의 영혼이 말살되는 기존 기독교의 교회현장도 부조리한 사회현장 못지않게 심각한 위기로서 볼 수 있어야 할 것이다.
 
그러한 가운데 하나님의 전초기지를 이 세계 안에 구축하면서 저 끔찍한 지구적 자본주의와 제국주의를 넘어서는 새로운 희망의 행성으로서의 이 지구를 살리는 문명의 대전환에 동참할 때, 우리는 비로소 예수의 삶을 제대로 따르는 것이라 할 수 있겠으며 우리 안에 쉼 없이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그 깊고도 오묘한 섭리에 감복할 것이라고 본다. 이것이 바로 내가 영원한 이 우주로부터 태어나서 영원한 우주로 다시 돌아가기까지 내게 맡겨놓으신 하나님의 현재적 부탁인 것이다.
 
이천 년 전의 예수사건은 그때까지의 기존 유대교 안에 없었던 새로움이었고 어떤 면에서 그것은 새로운 유대교 운동이었다. 당시 예수공동체와 바리새인들 간에 전선을 상기해보라. 그 새로운 유대교가 결국은 기독교로 이어졌었다. 이 같은 불연속적 연속성의 성격과 마찬가지로 작금의 21세기는 이천 년 기독교 역사상에도 없었던 거대한 종교변혁으로서의 새로운 기독교 시대를 목전에 앞두고 있는 것이다.
 
바야흐로 한국교회의 슬기로운 다섯 처녀는 누가 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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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1 영혼구원의 강조에서 <총체적인 생명구원의 강조>로 (4) 미선이 450 02-05
130 성서문자주의 또는 성서무오설 신앙보다 더 뿌리 깊은 고질병은? (9) 미선이 1033 02-02
129 죄의식의 종교에서 <이웃과 함께 성찰하는 종교>로 미선이 445 02-01
128 수직적 구조의 교회에서 <수평적 구조의 교회>로 (2) 미선이 596 01-21
127 서구식 목회문화가 아닌 <우리식 목회문화>로 미선이 513 01-21
126 과정신학에 대한 비판과 민중신학의 신 이해 접맥 미선이 811 01-13
125 ★ 예언 (1) 미선이 815 12-24
124 ♣ 새로운 기독교 신학의 인간론 (4) 미선이 658 12-19
123 ♣ 새로운 기독교 신학의 인간론 (3) (4) 미선이 747 12-12
122 ♣ 새로운 기독교 신학의 인간론 (2) (10) 미선이 973 12-05
121 새로운 기독교의 시간관, 태초와 종말로서의 시간관을 거부한다! (4) 미선이 795 12-01
120 ♣ 새로운 기독교 신학의 인간론 (1) 미선이 974 11-30
119 [예수운동 예배 견본] 새로운 기독교의 <예수운동 예배>를 위하여 미선이 1075 11-28
118 숭배하는 예배에서 <닮으려는 예배>로 (1) 미선이 928 11-19
117 거꾸로 흘렀던 감리교 역사, 바로 세우기엔 아직 멀었나 미선이 814 11-10
116 <새로운 기독교>를 소개하는 전체 안내 링크글 (계속 업데이트 예정) 관리자 2745 11-03
115 [논평] 봉은사 땅밟기 추태, 성경 '문자주의' 그 야만의 역사 넘어서야 (1) 관리자 965 10-29
114 기존의 진보 기독교와 새로운 기독교 운동 (1) 미선이 810 10-22
113 1세대 민중신학자 안병무의 미완의 작업과 기존 민중신학의 과제 미선이 788 10-19
112 [새기운 성명] 4대강 사업 관련, 문정현 신부의 정진석 추기경 비판을 지지한다 관리자 751 10-19
111 스퐁, "스티븐 호킹과 유신론/인격신의 죽음" (작은불꽃님 역) 관리자 1055 1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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