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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목 : ⑤ 교리적 예수에서 <역사적 예수>로 (2)    
  글쓴이 : 정강길 날 짜 : 06-06-14 10:39 조회(5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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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환기의 한국 기독교, 바뀌어야 산다! (13)
⑤ 교리적 예수에서 <역사적 예수>로 (2)
 

정강길 minjung21@paran.com



 
1. 21세기 기독교와 한국 기독교의 위기
2. 21세기 기독교 변혁을 위한 12가지 패러다임 대전환
   ※ 관념적 이원론에서 <현실적 관계론>으로
   ① '무조건 믿어라'의 기독교에서 <깨달음의 기독교>로
   ② 이웃종교에 배타적인 기독교에서 <열린 기독교>로
   ③ 가부장적 기독교에서 <모성애적 기독교>로
   ④ 초월신론에서 <범재신론>으로
   ⑤ 교리적 예수에서 <역사적 예수>로
   ⑥ 문자적 성서해석에서 <사건적 성서해석>으로
   ⑦ 숭배하는 예배에서 <닮으려는 예배>로
   ⑧ 서구식 목회문화가 아닌 <한국식 목회문화>로
   ⑨ 수직적 구조의 교회에서 <수평적 구조의 교회>로
   ⑩ 죄의식의 종교에서 <이웃과 함께 성찰하는 종교>로
   ⑪ 영혼구원의 강조에서 <총체적인 인간구원의 강조>로
   ⑫ 저 세상이 아닌 <이 땅에서의 하나님 나라 운동>으로
3. 오늘날의 선교 대상은 기독교 그 자신부터
4. 나오며


역사적 예수 연구에 대한 세 번째 물음, 제3탐구 시대

20세기 후반부터 북미권을 중심으로 일어난 역사적 예수의 제3탐구는 그때까지의 역사적 예수 탐구보다 매우 다른 점을 띠고 있었다. 1981년에 '성서문학회'(Society of Biblical Literature)의 하부조직인 '역사적 예수 분과'가 발전되었고, 다른 하나는 1985년에 로버트 펑크(R. Funk)를 중심으로 한 '예수 세미나'(The Jesus Seminar)가 조직되었는데, 시작된 그 회원수가 125명이나 되었다. 이로 인해 가히 '역사적 예수 연구의 르네상스'라고 할 정도로 활발하게 연구되었던 것이다.

   
▲ 제3탐구의 예수 세미나에서 재구성한 '역사적 예수'의 모습은 묵시적인 하나님 나라의 도래보다는 하나님 나라의 현재성을 강조하였다. ⓒ뉴스앤조이 자료사진

제3탐구는 그때까지의 역사적 예수 연구와는 그 발생 맥락과 연구 목표나 쟁점이 달랐는데, 이전까지는 주로 텍스트에 대한 역사비평이나 신앙공동체의 성격을 통해 예수의 말씀이나 행태에 관한 인격적 부분에 관심을 기울였다면, 제3탐구는 예수 시대의 사회학적 배경들을 보다 입체적으로 고려할 뿐만 아니라 여러 탐구 방법들을 동원하면서 역사적 예수가 연구되었다. 게다가 이전까지는 유대교가 통일된 단 하나의 형태만을 가지고 있는 줄 알았지만, 제3탐구에서는 쿰란문서, 나그함마디문서, 유대 묵시문학과 구약외경 등등 이를 통한 다양한 유대 사회의 맥락에서 역사적 예수에 대한 탐구가 이루어진 것이다.

예수 세미나 학자들 가운데서도 활발한 연구 성과를 보여주고 있는 존 도미닉 크로산(J. D. Crossan)은 1) 교차문화적이며 통시적인 사회인류학, 2) 그리스-로마의 역사학, 3) 예수 전승에 대한 문헌학적 연구를 함께 중복시키는 학제간 연구를 총동원하여 역사적 예수에 대한 탐구들을 진척시켰다. 그럼으로써 어떠한 교리적 전제 없이 정직하게 역사적 예수를 이해해보려고 시도하였던 것이다.

크로산에 따르면 예수는 종말론적 하나님나라 운동보다는 전통적 권위와 관습에 도전하는 '전복적 지혜 교사'로서, 비유와 경구들을 통해 하나님 나라라는 대안적 지혜를 가르쳤다고 보고 있다. 이러한 모습은 그 당시의 견유학파(Cynicism)의 지혜자 모습에 가까웠다. 견유학파의 사람들은 주로 헬라화된 도시 지역을 중심으로 활동했던 자들이었는데, 나사렛 예수는 주로 농촌 지역에 해당하는 갈릴리 지방을 중심으로 활동했다. 그는 당시 유대 사회의 가난하고 소외된 민중들에게 '브로커(중개자) 없는 하나님나라'(unbrokered Kingdom of God)를 설파했고, 무상의 치유와 평등주의적 식탁공동체 운동을 펼쳤다는 것이다.

로버트 펑크는 우상파괴자 예수가 오히려 성상(icon)이 되었다고 말하면서, 기존 기독교의 도그마들을 과감히 탈피하고, '새로운 시대를 위한 예수'를 주창한다. 그는 우리의 신앙이 베드로나 바울의 신앙에 근거해선 안된다고 보았고, 역사적 예수의 삶에 두어야 한다고 보고 있다. 그럼으로써 그는 이 시대가 제도화된 종교보다는 오히려 사회 전체를 상향적으로 끌어올리는 세속적 현자를 필요로 한다고 못박는다. 그는 제3탐구 진영의 '예수 세미나'를 주도했던 학자로서, <예수에게 솔직히>(Honest to Jesus: Jesus for a New Millennium)라는 그의 책은 언뜻 도발적으로도 보이지만 결코 가볍게 볼 수 없는, 매우 추천할 만한 역사적 예수 연구서라고 하겠다.

마커스 보그(Marcus Borg)는 '부활 이전의 예수'와 '부활 이후의 예수'를 나누어서, 초대교회의 신앙에서 우리가 발견하고 있는 예수는 부활 이후의 예수이며, 역사적 예수에 대한 추구는 부활 이전의 예수를 찾는 것으로 보고 있다. 보그가 보는 역사적 예수는 '유대교 신비가'(그는 이 표현이 '영의 사람'과 서로 바꿔 쓸 수 있다고 말함)로서, 이것이 영의 사람, 치병자, 지혜 교사, 사회적 예언자, 운동가라는 다섯 유형으로(더 줄여서 영적 차원, 지혜의 차원, 사회정치적 차원 이렇게 셋으로도) 나타나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렇지만 대부분의 제3탐구자들과 마찬가지로 종말론적인 예수상은 거부한다. 종말론적인 예수상은 초대교회에서 덧입혀진 것이라고 보는 입장이다. 이러한 보그의 연구 역시 교차문화적 연구로부터 나온 것이다.

버튼 맥(Burton L. Mack)은 예수의 잃어버린 복음서, 즉 예수의 본래 어록이라는 'Q자료'(이는 마태와 누가가 마가복음 외에 참조한 다른 공통자료를 뜻하는데, 이미 이것은 신약학계에선 일반적 정설로 통용되고 있다. 주로 '어록 자료'(Logion-Quelle)인지라 줄여서 Q라고 부른다)의 전승을 분석하면서, 크로산과 유사하게 본래 역사적 예수의 모습은 종말론적 예수상이나 혹은 정치적 혁명가가 될 수 없고 오히려 견유학파의 지혜자에 가깝다고 못박는다. 즉, 예수의 가장 오래된 어록인 Q의 전승 자료들을 연구함으로써 이러한 결론을 내리고 있는 것이다.

리차드 홀슬리(R. Horsley)는 예수 시대의 고대 팔레스틴과 당시 로마 제국에 대한 제반적인 정치사회학적 연구에 대한 집중적 관심과 그로 인한 탁월한 통찰을 보여준 학자다. 그는 그 당시의 다양한 대중운동들을 분석하면서, 예수의 운동이 단순한 종교 운동을 넘어서 당시의 피지배 계층에 있던 자들을 동요시킬 만큼 로마 제국에도 위협적일 정도로 정칟사회 변혁적 성격을 갖는다고 말한다. 분명히 홀슬리의 말대로 예수를 완전히 비정치적으로만 이해할 경우, 예수가 십자가에 처형된 이유를 온전히 해명하기란 어렵다고 할 것이다.

홀슬리는 예수의 하나님나라 운동이 단순히 종교적 차원에만 소급되지 않음을 보여줌으로써 탈정치화된 예수상은 본래의 역사적 예수가 아니라고 보았다. 홀슬리는 국내의 민중신학자들에게서도 매우 호응이 좋았던 학자로서, 2천 년 전의 예수 운동이 고대 팍스-로마에 대한 대항운동을 넘어 오늘날의 팍스-아메리카에 대한 저항운동에도 지극히 유효할 수 있음을 역설하고 있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나라 운동은 2천 년 전 예수 시대에도 그랬고, 오늘날에 지구적으로 편만한 세계 안의 온갖 억압적인 착취 세력들에게도 여전히 위협적이라는 것이다.

역사적 예수 연구에 대한 사회학적 탐구는 북미권이 아닌 독일학자인 게르트 타이센(G. Theiβen)에 의해서도 시도된 바 있다. 그는 사회경제적·사회정치적·사회문화적·사회생태적 요인이라는 4가지 사회적 요인들과의 상호 연관성 속에서 역사적 예수를 탐구하였던 학자로 유명하다. 그에 따르면 예수는 하나님 나라의 도래를 선포한 사회 변혁의 유대 예언자로서 보고 있는데, 북미권과 달리 유럽 진영이라 그런지 종말론자로서의 예수상도 수용하여 같이 녹아 있다. 그 역시 홀슬리(R. Holsey)와 함께 한국의 민중신학자들에게도 매우 인기가 있었던 학자였는데, 독일 신약학자이긴 해도 불트만 계열에 있는 학자는 아니다. 참고로 2005년도 4월경에 한국신약학회의 학술 초청(서울신대에서 열렸음)으로 다녀간 바 있다.

물론 이외에도 여러 학자들이 있겠지만 대략적으로만 간략하게 정리를 해본 것뿐이다. 대체로 제3탐구의 예수 세미나에서 재구성한 역사적 예수의 모습은 다음과 같다. "예수는 세례 요한의 제자로 출발했으나, 그로부터 독립하여 독자적인 길을 걸었고, 묵시적인 하나님 나라의 도래보다는 하나님 나라의 현재성을 강조하였다. 예수는 유대 사회의 소외자들과 형제처럼 지냈으며, 당시 로마제국하의 유대 사회에서 인습에 도전하는 말과 행동을 하였다. 그는 무상으로 병을 치유하며 다녔고 유월절 축제 기간에 예루살렘에 올라가 성전숙청(혹은 정화) 사건으로 체포되어 재판 없이 십자가에 처형되었다." 물론 이에 대해선 부분적으로는 조금씩 다르게 보는 학자들도 있겠지만 대체적인 윤곽으로는 이러하단 얘기다.

예수 세미나(The Jesus Seminar)의 공동작업과 그 반향

아마도 제3탐구에서 가장 센세이셔널했던 작업은 예수 세미나 학자들이 모여서 복음서에 나타난 예수의 말씀과 행적들에 대한 진정성 표시일 것이다. 2백여 명의 학자들은 네 가지 색깔의 구슬을 가지고 이를 표시하였는데, 붉은색 구슬은 예수의 말/행위임이 확실하다고 여겨지는 경우를 나타내며, 분홍색은 개연성이 아주 높은 경우를, 반면에 회색은 개연성이 낮은 경우를 말하며, 검은색은 거의 개연성이 없다고 보는 경우를 뜻한다. 이렇게 해서 예수의 말과 행위의 진정성을 공동으로 가려내고자 했던 작업인 것이다.

당시 1991년 <타임>지 커버스토리를 장식할 만큼 화젯거리였던 이 공동 작업은 당연히 학계 전체의 이목을 집중시켰을 뿐만 아니라 일반 대중들에게도 역사적 예수 연구의 르네상스를 직접 피부로 느끼게 할 정도로 상당한 영향력을 가져다주었다. 물론 그럼으로써 적지 않은 논란의 소용돌이의 핵이 되기도 했었다. 아마도 지금까지의 역사적 예수 연구사에서 예수 세미나만큼 수많은 매스컴의 이목을 집중시키고 장안에 뜨거운 감자를 일으켰던 경우도 없다고 하겠다.

이 공동연구 작업의 결과물은 1993년 제1권인 <다섯 권의 복음서: 예수 말의 진정성 연구>(The Five Gospels : The Search for the Authentic Words of Jesus, 1993)가 출간되었으며, 1998년 제2권인 <예수의 행적들: 예수 행위의 진정성 연구>(The Acts of Jesus : The Search for the Authentic Deeds of Jesus, 1998)로 나왔다. 이 두 권의 저술들이 개별 학자의 연구 성과물이 아니라 2백여 명이나 되는 역사적 예수 전문가들의 학문적 견해를 결집한 것이라는 점에서 확실히 우리 시대에 주목할 만한 것임은 분명하다고 해야겠다.

이상은 아주 간략히만 정리해 본 것이며, 세부적으로는 보다 깊은 논의가 필요할 것이라고 본다. 이러한 역사적 예수 연구는 지금도 여전히 진행되고 있는 것이라고 하겠다. 그렇다면 이러한 역사적 예수 연구 작업들이 실제적으로 오늘 우리의 그리스도교 신앙에 분명한 대안이 될 수 있는지에 대해서도 분명하게 검토되지 않으면 안될 것이라고 본다.
 
국내 보수 기독교 세력인 '한기총'의 우매한 짓

하지만 그 전에 먼저 짚고 넘어갈 점이 하나 있다. 바로 예수를 신화로 보는 입장에 대해서다. 언젠가 한국에서는 <예수는 신화다>(동아일보사)라는 책이 나왔다가 보수 기독교층의 맹렬한 반대로 -특히 한기총의 결사반대로- 더 이상 나오지 않게 된 적이 있음을 기억할 것이다. 하지만 그 책은 이미 외국에서는 역사적 예수를 연구하는 여러 학파들 중에서 적어도 'Jesus Mysterious'라는 하나의 학파로서는 인정받고 있는 연구물이다.

   
▲ 티모시 프리크, 피터 갠디 지음 / 승영조 옮김 / 동아일보 펴냄. ⓒ뉴스앤조이 신철민

티모시 프레크(Timothy Freke)와 피터 갠디(Peter Gandy)는 각각 (1999, 국내엔 <예수는 신화다>로 번역), (2001)을 통해, 기독교의 '그리스도 신화'의 거의 전부가 고대 지중해 지방의 밀의 종교인 오시리스-디오니소스 신화와 거의 다르지 않다는 사실을 밝힘으로써, 케리그마적인 그리스도 신앙에 매달려왔던 기존 기독교의 전통에 대하여 그 절대성과 진정성마저 완전히 부정해버린 것이다.

그래서인지, 한국에 이 책이 들어왔을 때는 적어도 한국 사람들에게는 대중화되지 않게끔 아예 못보도록 출판 금지시켰다. 혹시 여러분들은 <예수는 신화다>라는 이 책이 국내의 경우 원서에 있던 각주마저 잘린 채로 번역되어 나왔음을 알고 있는가? 그럼에도 얼마나 그 내용들이 두려웠으면 아예 출판 금지까지 이르렀단 말인가. 정말 한심한 처사이지 않을 수 없다.

나는 책의 출판을 금지하도록 압력을 넣었던 보수 기독교 세력들에게 그 책 내용이 그토록 두려웠냐고 묻고 싶다. 한기총이 북한에 대해선 언론 출판 집회 사상의 자유라는 남한의 자유민주주의를 수호해야 한다고 부르짖을 땐 언제고, 뭐가 두렵다고 출판을 금지시키기까지 한단 말인가. 그렇다면 아예 기독교 아닌 것들은 죄다 못보고 못듣게끔 금지시켜버리든가(아마 맘 같아선 정말 그러고 싶어할지도 모르겠지만). 만일 한기총이 이 나라의 정치 권력을 잡았다면, 언론 출판 집회 결사의 자유에 어마어마한 제약을 가할 것 같은 무시무시한 공포마저 느껴진다.

내가 지금 여기서 말하고자 하는 바의 핵심은, 아무리 자신의 입장과 반대가 되는 논리를 펴더라도 아예 입막음으로 하려 하지 말고, 정정당당하게 논리는 논리로 반박하라는 것이다. 생각해보라. 존재의 자율적 결단을 허락해주시고 계신 하나님은 우리에게 '무조건 믿어라'의 식으로 접근하시는 분이 결코 아니잖은가.

   
▲ 예수를 신화 속 인물로 본 <예수는 신화다>. 보수 기독교층의 강한 반발로 절판되었다. ⓒ뉴스앤조이 자료사진
(참고로 그 책이 국내에 소개될 당시 <예수는 신화다>를 비판한 사람들이 몇몇 있었긴 하지만 내가 보기엔 하나같이 보수 기독교인들의 억지 논리였을 뿐이다. 억지 논리란 다음과 같다. 예수에 대한 교리와 성서가 사실적으로 무오하다고 보는 입장을 이미 선행적으로 전제하고서 들어가는 논리이다. 이것은 결코 동등한 출발이라 할 수 없다. 당연히 여기에 무슨 생산적 꺼리들이 나오겠는가. '무조건 믿어라'의 기독교도들인 것을. 이 같은 당시의 글들은 인터넷 기사에도 고스란히 있으니 직접 찾아봐도 좋겠다. 또한 그 당시 진보진영도 <예수는 신화다>라는 책에 대해 그저 아마추어리즘이라고만 언급했지, 자세한 분석적 비판을 가한 건 아니었다. 나는 개인적으로 국내의 진보진영도 예수 신화 학파를 엄밀하게 비판적으로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보는 입장이다).

하나님으로선 무엇이 두렵다고 입막음을 하고 귀막음을 하도록 하겠는가. 분명한 진리가 있다면 그것은 능히 세상의 모든 것들과 당당하게 겨뤄도 당연히 이길 것 아니겠는가. 그분은 언제나 합리적이고 설득적인 사랑으로 우리를 감화시키는 분이시다. 분명히 말하지만, 진리의 매혹은 권력적 힘으로서가 아닌 합리적 설득의 승리에 있음을 잊지 말자.

프레크와 갠디가 보는 <예수는 신화다>의 입장

예수를 신화로 보는 입장은 주로 그 근거가 고대 근동 지역에 있던 유대교적 영지주의 문헌들에 많이 기울어져 있는데, 예수 탄생 이야기와 예수의 비유들 많은 부분들이 당시의 고대 근동 지역에 있던 문서들의 내용과 비슷하다는 이유로 예수란 인물은 역사적 인물이 아닌 허구적인 인물로 보고 있는 것이다. 물론 이들은 그러한 허구적 인물이 단순한 허구로서만 기능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 나와의 합일이라는 새로운 신앙으로 인도하는 놀라운 차원이라고 말한다.

실제로 우리가 알고 있는 예수의 이야기는 고대 근동 지역에 있던 오시리스-디오니소스 신화들과도 흡사한 점이 많다. 페르시아의 미트라스 신앙도 이와 관련된다. 예컨대, 미트라는 태양신의 아들인데, "세상의 빛"으로 불렸고, 예수와 마찬가지로 "미트라" 성삼위일체의 두 번째, 즉 아들의 존재로서 중개자의 역할을 담당한다. 그의 생일은 12월25일로 경축되었고, 만인의 죄를 대속하기 위하여 죽었다가 3일 만에 부활하였다. 그의 부활은 기독교의 부활절 주기와 일치하며, 12제자를 거느렸다고 전해진다. 이러한 미트라 숭배자들은 천국과 지옥, 마지막 심판, 구원, 부활 등의 교리를 믿었다.

그렇다면 <예수는 신화다> 책에 있는 내용을 잠시 소개해보도록 하겠다.

-오시리스-디오니소스는 육체를 가진 신이며, 구제주이고 '하나님의 아들'이다.
-그의 아버지는 하나님이며, 어머니는 인간 처녀(동정녀)이다.
-그는 12월25일에, 동굴이나 누추한 외양간에서 태어났다.
-그는 신도들에게 세례의식을 통해 다시 태어날 기회를 준다.
-그는 결혼식 잔치에서 물을 술로 바꾸는 기적을 행한다.
-그가 나귀를 타고 입성할 때 사람들은 종려나무 가지를 흔들고 찬송하며, 그를 맞이한다.
-그는 세상의 죄를 대신 짊어지고, 부활절 무렵에 죽는다.
-죽은 지 사흘 만에 부활해서 영광스럽게 하늘로 올라간다.
-신도들은 최후의 날 심판자로 그가 다시 돌아오기를 기다린다.
-그의 죽음과 부활은 그의 몸과 피를 상징하는 빵과 포도주 의식으로 기념된다.

자, 어떤가?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예수 이야기와 거의 똑같지 않은가!

충격적인가? 사실상 현재의 성탄절이나 동정녀 탄생 교리가 본래 기독교가 아닌 이교도에서 나온 것임은 공공연한 얘기들이다. 그리스도교는 결코 저 혼자서 태동된 '순수 종교'라고 할 수 없다. 예컨대 빛과 어둠, 최후의 심판 등등 이러한 사상들도 이미 구약시대 때부터 페르시아 종교의 영향들과 함께 형성되어 왔었다. 또한 예수 시대 당시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사상은 팔레스틴 뿐만 아니라 고대 근동 사회 전역에도 널리 퍼져 있었던 바다.

다시 말하지만, 기본적으로 지구상의 모든 문화들은 크로스오버적이고 하이브리드적이란 사실을 결코 잊어서는 안된다. 이는 문화 이해에 있어서 기본적 명제 중 하나다. 단지 그러면서도 동시에 창조적인 독특성을 끊임없이 확보해나갈 뿐인 것이다. 솔직히 오늘날 종교다원주의를 비판하는 보수 논객들치고 혼합주의라고 비판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인데, 만일 그렇게 따진다면 우리가 믿는 기독교 자체는 순수하다고 보는가? 이미 혼합주의일 수밖에 없잖은가!

고대 근동의 여러 신화들과 지혜서 그리고 여러 민담과 비유 말씀들과 관련하여 기독교 성경에도 나타나는 온갖 유사성들은 도대체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분명히 말하지만, 이 우주 안에서 저 혼자만의 '단일한 순수성'을 주장하는 건 놀라운 무지의 소산일 뿐이다. 그러한 자는 우주의 본질과 싸우고 있는 것밖에 안된다. 왜냐하면 모든 우주 존재 자체가 이미 관계적으로 엮여 있는 유기체적 사태에 놓여 있기 때문이다. 자신은 혼합주의가 아니라고 주장할 거라면, 당장 동정녀 탄생설이나 폐기처분해버려라!

혹시라도 허탈한가? 그렇기에 내심 속으로는 위와 같은 얘기들을 믿으려 하지 않거나 마냥 거부하고 싶을 것이다. 하지만 분명히 말해둔다. 우리 앞에 발견된 문헌들을 비롯한 많은 정합적인 데이터들이 있는 한, 적어도 그 앞에서만큼은 우리는 참으로 솔직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비록 국내판에는 없지만 본래 'The Jesus Mysteries' 원서에 있던 각주들을 찾아보면 참조된 수많은 문헌들을 확인해 볼 수 있을 것이다. 개인적으로 나 자신은 그러한 입장들마저 아무 두려움 없이 거침없이 그리고 정직하게 검토되어야 한다고 본다.

그렇다면 나는 예수 신화의 입장인가? 물론 그렇지는 않다!

<예수는 신화다> 입장에 대한 비판

만일 예수 신화 학파의 말대로 예수가 실제 인물이 아니라 존재하지 않았던 비역사적 허구라고 가정해보자. 그럴 경우, 여전히 해명되지 않는 사실 또한 남아 있음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고 하겠다. 여러 가지 이유들이 있을 테지만 일단 여기선 근본적인 것부터 우선 말해두고자 한다.

프레크와 갠디는 당시 고대 근동에 퍼져 있던 '영지주의'(Gnosticism) 문헌들에 경도되면서 그리스도교를 유대교적 영지주의로 몰고 가고 있지만, 성경에는 이와 정반대로 뚜렷하게 당시의 영지주의와 극명하게 대립되는 사상을 채택하고 있는 것이 하나 있다. 그것이 무엇인가? 바로 '성육신'이다. 말씀이 육신이 되었다는 것은 사실상 '신비하고 비밀스런 진리' 자체를 신봉하던 당시의 영지주의자들에게는 매우 이해하기 힘든 것이 아닐 수 없었다. 저들에게는 그 육신이 껍데기에 지나지 않을 뿐이다.

우리가 인정해야할 점은, 영지주의가 당시 초대교회 안에까지 들어와서 극렬하게 영향을 끼쳤던 사조인 것만은 분명하다는 점이다. 이때 그 당시의 영지주의와 초대교회의 예수 신앙을 구분하는 결정적 기준이 무엇이었냐면 바로 "예수가 육으로 이 땅에 왔다는 것을 믿느냐 아니냐"였다(요한1서 4:1~3). 다시 말해서, 영지주의 신앙의 입장에서 볼 경우, 이미 애초부터 예수가 이 땅에 육으로 온 것에 대해선 관심 밖이었다는 사실이다. 자기들한테 중요한 것은 그 신비적 가르침들이었지.

따라서 영지주의자들에게 이미 역사적 육체로서의 그리스도보다는 예수를 신화로 보는 입장이야말로 애초부터 영지주의 신앙과 잘 맞아떨어지고 있음에도 프레크와 갠디에게선 이러한 설명들이 고려되지 않고 있는데, 이들의 주장대로 예수 이야기가 처음부터 실제의 역사와는 전혀 무관한 그런 것일 경우, 초대 그리스도교가 왜 그토록 성육신 사상을 처절하게 정립하려 했는지에 대한 그 역사적 배경을 제대로 설명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설령 이것이 후대에 나왔다고 주장할지는 모르나 영지주의자들이 지지하는 도케티즘(Doketismus, 일반적으로 '가현설'로 알려져 있고, 영지주의 관점에서는 '환상설'로 언급)은 대략 120년경의 바실리데스의 언급에서 처음 발견되고 있는데, 적어도 이는 성육신보다 더 이후에 나온 것에 해당한다. 결국 프레크와 갠디의 주장을 살펴보면, 성육신은 기껏해야 기존의 이교도 로고스 개념과의 차이라고만 얘기할 뿐이지, 실제로 다른 분석된 얘기들은 어디에도 나와 있지 않다. 아마도 이들 주장에 기반할 경우, 그 배경으로 고작 말할 수 있는 건 영지주의를 탄압하려는 고도의 정치적 술수 정도일 것이다.

영지주의가 말하는 "너희 안에 계신 그리스도"(골 1:27)라는 그 내재성 강조의 배경이 프레크와 갠디에게는 당시의 고대 영지주의에 있다고 보지만, 그렇다고 할 경우 초대 기독교가 굳이 예수의 육신 자체마저 긍정할 이유도 없잖은가. 오히려 그것은 역사적 사건과 무관한 진리가 아니라 그 어떤 역사적 체험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볼 때 설득력이 더 높다고 본다. 즉, 프레크와 갠디는 바로 이 점을 간과하고 있으며, 앞서 말했듯이 실제로도 이들 책에선 성육신에 대한 설득력 있는 분석들은 나와 있지 않고, 그것이 무엇인지에 대해선 단지 논란을 거듭했다고만 짤막히 쓰고서 피해갈 뿐이다.

물론 문헌상으로만 본다면 복음서 안의 예수에 대한 묘사가 오시리스-디오니소스 신화와 같은 것으로 겹쳐지는 것이 있다고 생각된다. 즉, 어느 정도는 '예수 신화화'의 작업이 가미되었다는 얘기다. 그 정도는 충분히 감안해줄 수는 있다고 본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이것이 곧바로 역사적 예수 사건 자체의 비실제성으로 이어진다고 보는 건 정당화될 수 없다는 것이다(이 점은 사실 나 자신이 보고 있는 역사적 예수와도 관련이 있긴 한데, 이에 대한 자세한 언급은 다음번에 얘기할 부분이다). 그 어떤 역사적 체험-그 체험이 어떤 것으로 묘사되든 간에 경험 사건으로서의 역사성-없이는 그 어떤 가르침이나 신비한 진리도 나올 수 없다고 생각된다.

그리고 이들의 탐구 방법도 엄밀하지 못한 감이 있다. 예컨대, 초대 변증가들과 교부들의 증언에 있어서도, 영지주의를 지지했다고 해서 클레멘스나 오리게네스에게는 그 언급의 진정성을 이미 전제하고서 들어가는 듯이 보인다. 그런데 반대로 당시 영지주의에 대해 비판적이었던 이레나이우스나 유세비우스의 언급들은 거의 진정성이 떨어지는 것으로 묘사되어 있다. 일단 기본적으로는 모든 문헌들은 공정하게 취급되면서 나아가야 할 것인데, 예수 미스테리아에 속하는 영지주의 지지자들의 언급들은 그 진정성을 별로 의심받지 않고 있는 것이다.

이외에도 예수가 세례 요한으로부터 세례를 받은 것은 사실상 영지주의자들의 입장에서 본다면 애초부터 복음서에서 빠졌어야 할 부분이다. 예수를 신화로서 그리려고 마음먹었다면 굳이 세례 요한과 관련지어 예수를 그렇게 묘사를 할 이유가 없다고 하겠다. 이는 분명히 예수가 그 어떤 이유에서건 세례 요한 혹은 그 공동체와 관련을 맺고 있음이 공공연한 사실로서도 초대교회 안에도 인지되고 있었기에 아예 완전히 부인할 수는 없었던 것이라고 본다.

이런 경우는 '나사렛'이란 표현도 그러하다. 만일 작가의 입장에서 역사적 인물이 아닌 순수 신화로서의 예수를 말하고 싶었다면 애초부터 당시 유대 땅 메시아로서 권위 있는 출생지인 베들레헴 전승을 끝까지 고집할 필요가 있었을 것이라고 본다. 그러나 첫 번째 복음서인 마가복음을 보면, 베들레헴 전승은 고사하고 아예 출생과 성장이야기 자체가 없으며, 언제나 예수는 나사렛 예수로서 불리고 있다. 베들레헴 전승의 가미는 마가 이후의 것일 뿐이다. 진보 진영에선 이미 공공연한 얘기지만, 역사적 예수를 베들레헴 출생으로 보질 않는다. 이는 마가 이후에 다윗가문의 메시아 전승과 결부시키기 위하여 겹쳐놓은 것일 뿐이다. 그렇다고 해도 복음서는 여전히 예수를 나사렛 예수로서 부르고 있잖은가.

이에 반해 예수를 신화로 보는 프레크와 갠디는 '나사렛 예수'라는 표현이 유대인의 한 종파 사람을 가리키는 말이지 '나사렛 출신'이라는 뜻은 아니라고 보고 있는데, 그 근거로 든 얘기들이 좀 엉뚱하다. 당시엔 그런 이름을 쓴 사람이 많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워낙 많기 때문이라면 오히려 그 역사성의 가치가 더 높은 거지 더 낮거나 아예 역사성이 없다고 말하기는 힘들잖은가. 그리고 그런 이름을 쓴 사람들이 많다는 사실이 곧바로 나사렛 출신이 아니라는 사실로 이어지는 건 프레크와 갠디의 논리적 비약일 따름이다.

당시 영지주의는 공적인 예배나 구약성서를 곧잘 거부한 자들이었다. 이후에 이런 요인들은 마르시온적 반응으로도 나타난다. 그런데 이러한 성향이 일찍부터 기독교에 있었다고 보는 것은 매우 설득력이 떨어진다. 행여 '유대교적 영지주의'의 독특성이라고 치부할지도 모르나 그렇다면 예수를 아예 이러한 요소들과 절연한 메시아로서 그렸을 것이다. 특히 마태복음의 경우를 영지주의 입장에서 볼 때는 매우 탐탁치 않을 책이 될 뿐이다. 적어도 그리스도교가 유대교와의 차별성은 있었어도 완전한 단절로 보기에는 힘들잖은가. 예수도 그랬고 초대 그리스도교 역시 구약성서를 이미 성서로서 받아들이고 있었다.

게다가 영지주의자들의 신앙은 주로 금욕주의 행태로 많이 나타났었는데, 하지만 복음서에 기록된 예수의 모습은 영지주의자들의 그것과는 거리가 멀다. 오히려 '먹고 마시기를 탐하며 죄인과 세리의 친구들'(직접 찾아보면 알겠지만 복음서에는 '먹고 마신다'는 표현이 무수히 많다. 반면에 복음서 외의 신약의 다른 서신들에는 '먹고 마신다'는 표현이 복음서와 달리 대체로 부정적 의미로 쓰인다는 점은 특기할 만한 사항)이라고 묘사할 만큼 금욕주의라고 말하기엔 힘들다는 것이다. 이 또한 유대교적 영지주의의 성격으로 규정하기엔 전혀 설득력이 떨어지는 얘기밖에 안된다.

또한 프레크와 갠디는 영지주의와 대비되는 그리스도교를 몽땅 '문자주의'라고 통칭해서 부르면서 흡사 영지주의 대 문자주의의 구도로 몰아가는데, 이들이 사용하는 '문자주의'라는 용어는 내가 아는 문자주의와는 또다른 느낌이라 매우 불분명한 표현으로 여겨진다. 적어도 신약시대 당시의 각각의 특수한 신학적 입장들과 다양한 맥락들이 전혀 고려되지 않고서 이를 뭉뚱그려 영지주의 아닌 기독교를 죄다 '문자주의'로 말할 수 있는지는 여전히 의문스럽다고 하겠다.

더군다나 신약성서기자들의 신학적 언급들은 서로 충돌하고 모순되는 것들도 많다. 예컨대, 말씀이 육신이 되었다고 보는 요한복음서를 보면 그 내용들이 공관서와는 다르게 예수를 그려나갔다. 만일 문자주의의 그리스도교인이었다면, 예수를 아예 완전한 사실로서 보이게끔 하는 데에 그 진술의 목적을 두었겠지만 실은 애초부터 그렇지가 않았다는 점이다.

즉, 복음서가 그 어떤 역사적 사건에 기반한 그 나름대로의 독특한 신앙고백적 진술이라는 점을 염두에 둔다면, 그리스도교는 문자주의도 아니고 영지주의도 아닌 다른 성격의 역사적·변혁적 신앙으로서 시작된다는 점을 프레크와 갠디는 파악치 못했었다는 것이다.

바울과 영지주의

사실상 프레크와 갠디의 주장들은 고대 근동 지역의 오시리스-디오니소스 신화와 문헌들에 지나치게 많이 집중되어 있다. 아마도 이러한 나의 비판에 대해 프레크와 갠디를 지지하는 '예수는 신화다'의 입장에 있는 논객들이라면, 여전히 다음과 같이 언급할지도 모르겠다. 그렇다면 '왜 바울은 역사적 예수에 대해선 침묵했냐'고. 그것이야말로 오히려 더 설명이 되지 않는 것 아니냐며 내게 다시 재반론을 던질 수도 있으리라고 본다.

솔직히 '예수 신화' 학파의 결정적 매력이랄까. 그 설득력은 바로 바울이 왜 역사적 예수에 대해선 침묵하고 있는지에 대한 해명이 가능하다는 점에 있다. 실제로 바울은 그 자신의 저서들에서 예수의 '주기도문'은 고사하고 그 흔한 '나사렛 예수'라는 이름조차 단 한 번도 언급하지 않고 있다. 그래서인지 이들에게 바울은 오히려 존경할만한 영지주의 신앙인으로도 추켜세워지고 있는 실정이다. 그러나 이 점은 나 자신이 보는 역사적 예수에 대한 입장과도 관련되고 또한 그럼으로써 얼마든지 달리 설명이 가능하단 점을 다음번 글에서 얘기할 것이다.

영지주의는 현재의 기존 기독교보다 훨씬 더 이원론적인 신앙 구조를 가졌던 자들이다. 이 같은 가현설적인 신앙은 더욱 우리를 비역사적인 차원으로 초대할 가능성만 높여줄 따름이다. 개인적으로 나는 오늘날에도 역사적 예수를 경시하고 그리스도 신앙으로서의 천상의 예수만을 언급하는-혹은 천상의 예수로 역사를 환원시켜 버리는-, 보수 근본주의 기독교도들이야말로 기독교 안에 스며든 현대판 영지주의자들이 아닌가, 라고 보고 있다. 물론 그 자신들은 전혀 이 점을 인정하진 않겠지만, 그 신앙이 보여주는 행태의 유형적 패턴에서 양자는 동일한 느낌을 받는다는 사실이다. 둘 다 '영적인 것'이라면 무지 좋아하잖은가. 영적인 눈, 영적인 귀, 영적인 힘 등등….

영지주의자들에게는 그 어떤 신조로서의 말씀 혹은 가르침이 더 중요시된다. 그러나 분명히 말하지만, 가장 먼저는 '교리'(dogma)가 아니라 그 어떤 '역사적 사건으로서의 예수'임을 기억하기를 바란다. 게다가 예수 미스테리아에 속하는 영지주의 진영에서는 바울이야말로 거의 교주에 가까운 위치로 평가된다. 예수 신화 입장은 아예 바울을 영지주의자로 언급하고 있다. 역사적으로 볼 때, 이는 어떤 면에서 정치적 이유도 없잖아 있다고 본다. 왜냐하면 바울은 기본적으로 기독교가 유대교적 한계를 벗어나서 당대의 헬라문명권으로 확장하는 것에 신학적 관심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최근에는 가끔 진보진영에 있는 학자들도 고대 영지주의에 경도된 이들이 간혹 보이곤 하는데-주로 범신론적 성향의 동양사상을 강조하는 사람들-, 그러한 주장들은 나로선 영지주의에 대한 오해라고 보며 이를 반대하는 바이다. 물론 영지주의 주장하는 바가 죄다 잘못되었다는 얘기는 결코 아니다. 단지 근본적으로 영지주의 자체가 이미 구멍 뚫린 관념적 세계관에 기초되어 있음을 지적하고픈 것이다.

내가 보기에 기존 기독교 전통에서 참으로 우리가 깊이 이해하고 천착해야 될 가장 탁월한 교리로 단 하나만을 꼽으라고 한다면, 바로 이 '성육신 사상'을 꼽겠다. 이것은 관념적 헬라철학의 전통에서도 벗어나는, 오히려 역사적인 지평에 그 힘줄을 대고 있는 헤브라이즘의 계보에 속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겠다.

또한 나로서는 프레크와 갠디보다는 또다른 예수 신화 학파에 속하는 얼 도허티(Earl Doherty)의 연구에 더 많은 흥미가 있는 바이다. 이 사람은 아직 국내에 소개가 되지는 않았지만, 이 학자의 저서가 소개될 경우, 그 반향은 프레크와 갠디의 글보다 더 클 수 있을 것으로 내다본다. 재미있는 현상은, 국내에서 절판된 프레크와 갠디의 <예수는 신화다>라는 책은 현재 안티기독교인들의 바이블이 될 만큼 서로 돌려보고 있다는 사실이다.

지금도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있는 안티기독교의 실체는 사실상 기존의 보수 근본주의 기독교가 키운 괴물이기도 하다. 나로서는 그렇게 본다. 어쨌든 그 책의 진위 여부를 떠나 적어도 정보의 바다라는 인터넷마저 범람하는 오늘날과 같은 사회에서, 자신의 입장과 맞지 않는다고 정보의 소통을 차단하고 막는 것 자체는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는 격이 될 뿐임을 말씀드리고 싶다. 제발 한기총이여, 무작정 선언적으로만 바보 만들려 하지 말고 정정당당하게 논리적으로 바보 만들어라!

역사적 예수는 대안이 될 수 있는가?

자, 이제부터는 이상의 역사적 예수 연구에 있어서 이것이 진정으로 대안이 될 수 있는지에 대해서 알아보자. 나는 이 점에 대해서 반은 그렇고 반은 그렇지 않다고 보는 입장이다. 혹시 이 같은 나의 답변이 양비론적이고 모호한 것이 아니냐고 반문할지 모르지만, 솔직히 우리의 신앙을 생각해 볼 때 역사적 예수 연구의 당위성과 함께 그 연구 자체의 한계를 동시에 인정 안할 수가 없는 노릇이잖은가. 그런 점에서 보다 정확하게 답변한다면, 우리에게 있는 것은 '역사적 예수를 대안이 되게끔 지향하는 끝없는 연구 과정'이 있을 뿐이라는 얘기다.

역사적 예수가 대안이 될 수 있어야 한다고 보는 이유는, 역사적 예수의 하나님 나라 운동이야말로 우리 기독교의 분명한 신앙의 근거가 되어야 함은 두말할 나위 없기 때문이다. 기독교는 엄연히 역사적 예수의 하나님 나라 운동에 그 역사적 기원을 두고 있다
. 조직화·제도화된 종교의 모습들은 그 이후일 것이다. 어찌되었든 우리 신앙의 근거를 굳이 분명하게 짚는다면 '역사적 예수'로부터지 '바울'로부터일 수는 없다. 물론 둘의 연속성을 인정한다하더라도 말이다.

이후에 바울을 비롯한 복음서 기자들과 초대교회는 이를 신학화하면서 점차로 '예수의 복음'은 '예수에 관한 복음'으로 덧입혀져 갔을 뿐인 것이다. 예수가 이 땅에 오셔서 가르쳤던 하나님 나라라는 개념도 나중에는 죽은 뒤의 내세적 천당 개념과 혼용되어 갔다. '예수에 관한 복음'이 더욱 교리화되어 공식화된 역사적 결정판은 두말할 나위 없이 4세기 경에 니케아 공의회에서 채택된 신조일 것이다.

누군가 말했듯이, 니케아 신조 이후의 기독교 교리사는 니케아 신조의 각주라고 할 만큼 니케아 신조의 교리는 기독교 교리사에 매우 중요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오늘날 우리가 아는 '사도신경'을 잘 들여다보면 거긴 예수의 동정녀 탄생에서 곧바로 죽음이 있지, 삶에 해당하는 역사적 예수의 언급은 쏘옥 빠져 있다. 그런 의미에서도 역사적 예수는 필요할뿐더러 그 연구는 앞으로도 계속 지속되어야 할 것으로 본다.

반면에 나 자신이 역사적 예수가 대안이 되기엔 힘들다고 보는 부분은 역사적 예수 연구 자체의 근본적 한계 때문이다. 이것은 인간 인식의 한계 때문이기도 하다.
왜냐하면 그것은 아무리 역사적 예수에 가깝게 복원하더라도 그것이 곧바로 역사적 예수 자체라고 명시할 수는 없는 노릇이며, 그래서인지 실제로도 지금까지 많은 역사적 예수 연구가들이 제시한 역사적 예수의 모습들 역시 저마다 달랐기 때문이다. 역사적 예수는 결국 연구자의 해석의 산물일 수밖에 없다.

도대체 누가 해석한 역사적 예수가 옳은 것인가? 라이마루스? 슈바이처? 무(無)탐구의 불트만? 보른캄? 크로산? 펑크? 타이센? 보그? 버튼 맥? 아니면 '예수는 신화다'라고 주장하는 프레크와 갠디? 그럴 경우 역사적 예수를 연구하는 방법론에 대한 해석학적 틀마저 저마다 다를 것이라고 본다. 저 사람이 말하는 역사적 예수가 다르고, 이 사람이 말하는 역사적 예수가 다르다.

나는 그런 점에서 역사적 예수를 해석해내는 그 '해석학적 틀'부터 근본적으로 먼저 합의될 필요가 있다고 보는 것이다. 사실 이 부분은 성서해석학의 근본적 문제와도 맞물리는 지점이다.
결국 나는 역사적 예수 연구에 있어 크게 두 가지 원칙이라는 다음과 같은 의미 있는 제안을 해두고 싶다.

(계속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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