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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목 : "나와 아버지는 하나다"에 대한 성경해석 : 그대가 곧 예수이자 하나님이다!!    
  글쓴이 : 정강길 날 짜 : 08-11-22 05:58 조회(21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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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복음 10장 24-33]
24 그 때에 유대 사람들이 예수를 둘러싸고 말하였다. "당신은 언제까지 우리의 마음을 졸이게 하시렵니까? 당신이 그리스도인지 아닌지를, 분명하게 말하여 주십시오."
25 예수께서 그들에게 대답하셨다. "내가 이미 말하였는데도, 너희가 믿지 않는다. 내가 내 아버지의 이름으로 하는 일들이 곧 나를 증거한다.
26 그런데 너희가 믿지 않는 것은, 너희가 내 양이 아니기 때문이다.
27 내 양들은 내 음성을 듣는다. 나는 내 양들을 알고, 내 양들은 나를 따른다.
28 나는 그들에게 영원한 생명을 준다. 그들은 영원토록 멸망하지 않을 것이요, 또 어느 누구도 그들을 내 손에서 빼앗아 가지 못할 것이다.
29  그들을 나에게 주신 내 아버지께서는 만유보다도 위대하시고, 아무도 아버지의 손에서 그들을 빼앗을 수 없다.
30 나와 아버지는 하나다."
31 이 때에 유대 사람들이 다시 돌을 들어서 예수를 치려고 하였다.
32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아버지의 권능을 힘입어서, 선한 일을 많이 하여 너희에게 보여 주었는데, 그 가운데서 어떤 일로 나를 돌로 치려고 하느냐?"
33 유대 사람들이 대답하였다. "우리가 당신을 돌로 치려고 하는 것은, 당신이 선한 일을 하였기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을 모독하였기 때문이오. 당신은 사람이면서, 자기를 하나님이라고 하였소."
34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의 율법에 '내가 너희를 신들이라고 하였다' 하는 말이 기록되어 있지 않으냐?
35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말씀을 받은 사람을 신이라고 하셨다. 또 성경은 폐하지 못한다.
36 그런데 아버지께서 거룩하게 하시어 세상에 보내신 사람이, 자기를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한 말을 가지고, 어찌하여 하나님을 모독한다고 하느냐?
37 내가 내 아버지의 일을 하지 않거든, 나를 믿지 말아라.
38 그러나 내가 그 일을 하거든, 나를 믿지는 않더라도 그 일은 믿어라. 그러면 너희는,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시고, 또 내가 아버지 안에 있다는 것을, 깨달아 알게 될 것이다."
39 그 때에 그들이 다시 예수를 잡으려고 하였으나, 예수께서는 그들의 손을 벗어나서 피하셨다.
 
...........................
 
 
새로운 기독교로 전향한 이후에는 성경을 읽는 재미도 쏠쏠하다. 성경을 보는 관점, 곧 성경을 해석하는 그 해석의 틀 자체가 바뀌니까 이전에 보이지 않던 성경 구절들도 새롭게 각인이 되는 것이다. 위의 성경 본문 말씀도 그 중 하나다.
 
알다시피 요한복음 10장30절의 경우 기존 기독교에서는 유명한 삼위일체의 성경적 근거로서 종종 언급된다. 물론 삼위일체라는 표현 자체는 성경 어디에도 없지만 그래도 삼위일체 교리에 대한 정당성을 확보하고자 하는 보수 기독교인들은 그 삼위일체의 근거로서 이 구절을 계속적으로 울궈먹는 것이다.
 
본문에서도 보듯이 "나와 아버지는 하나다"라고 하니까 유대인들은 즉각적으로 신성모독이라며 예수님을 비난한다. 그런데 가만히 살펴보면 그 유대인들과 예수님은 구약의 히브리 성경을 읽는 해석학적 관점이 전혀 다른 것으로 보인다. 해석의 틀 자체가 서로 달랐기에 "나와 아버지는 하나다"라는 이전에 없던 전혀 다른 새로운 성경 이해가 나온 것이라는 얘기다.

구절들을 살펴보면 예수가 “나와 아버지는 하나이다”라는 주장을 했던 그 성경적 근거는 34-35절에서 보듯이 ‘내가 너희를 신들이라고 하였다’는 그 구약의 성경구절에 대한 해석 차이에서 비롯된 것임을 간파할 수 있다. 이 구절은 시편 82편의 구절을 예수님께서 인용한 것인데, 물론 그 구절에 대한 해석이 곧바로 35절의 뜻으로 나올 수 있는 지에 대해선 솔직히 다소 불분명한 점도 없잖아 있다. 하지만 어쨌든 간에 적어도 그 구절에 대한 예수님 자신의 해석만큼은 결국 하나님의 말씀을 받은 사람은 하나님이 된다고 보고 있다는 얘기다.

만일 우리가 이 같은 예수님의 구약 성경의 해석을 받아들일 경우엔 “나와 아버지는 하나다”라는 의미는 매우 새롭게 달라진다. 왜냐하면 예수님의 말씀에 따르면, 하나님과의 일체를 경험하는 하나가 된다는 건 예수님이라는 한 인물'만' 할 수 있는 유일무이한 사건이 아니라 실은 하나님의 말씀을 받은 사람이라면 어느 누구라도 하나님이 될 수 있다는 얘기가 되기 때문이다. 즉, 예수님의 인식 속에는 적어도 자기 자신만이 유일하게 신이 될 수 있다고 보진 않았었다는 얘기다.

물론 우리는 다른 곳에서 예수가 말한 "오직 나 외에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다"(요한14:6)는 구절도 잘 알고 있다. 그런데 이 경우 역시 얼마든지 새로운 성경 해석이 가능하다. 즉, 그렇게 얘기한 그 <나>라는 존재를 우리는 예수라는 한 인물에 맞출 것이 아니라 예수가 했던 일(사역), 예수가 걸었던 길로 포커스를 맞춘다면 오직 나 외에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다는 그 말씀조차도 여지없이 수용 가능한 말씀이라는 것이다.

실제로 위의 본문에서도 예수는 자신에 대한 이해를 요청하는 구절들을 잘 살펴보면, “<나>를 믿지는 않더라도 그 <일>은 믿어라.”(38절)고 말하였는데, 이것은 예수가 ‘나’라는 자아를 보는 인식에는 ‘나’라는 실체적 접근이 아니라 <하는 일>이라는 역동적인 술어적 접근으로서 이해하고 있음을 잘 말해주고 있다. 다시 말해서 ‘존재는 하는 일’이 아니라 실상은 ‘하는 일’이 결국은 그 ‘존재’가 어떤 존재인지를 말해준다는 것이다(25절).

이것은 새로운 기독교(혹은 과정신학도 포함)가 전망하는 예수님에 대한 이해는 ‘중보자’라기보다 아포테오시스(Apotheosis-그리스어로 '신이 되다', '신격화하다'라는 뜻의 apotheoun에서 유래, 신(神)의 위치로 승격됨을 가리키는 말)의 전형을 보여주는 가장 바람직한 사례로서 이해될 수 있다고 하겠다. 즉, 이것은 인간으로서 올바르게 신격화되는 전범을 세운 모델적 접근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예수의 길을 걸어간 사람이라면 누구나 신격화가 될 수 있다. 그럴 경우 누구나 지존자의 아들딸들이 된다는 것이다. 이때 예수는 그 같은 사례에 있어 가장 바람직한 전형을 세운 자로서, 그런 의미에서 <예수는 참 사람이자 참 하나님>이라는 얘기가 되겠다.

그렇다면 예수가 이 땅에 했던 일(사역)은 무엇이었던가. 그것은 분명히 하나님나라 운동이었다. 그 하나님나라 운동은 기존의 낡은 유대교를 뒤엎는 새로운 대안 운동이었으며, 그것은 사랑의 공동체와 함께하는 실천운동이었고 그것은 섬김과 나눔으로 나타났으며 그로 인해 많은 구원과 치유의 역사를 일궈냈었다.

사실상 하나님나라 운동이라는 사건이 곧 예수라는 존재인 것이다. 그렇기에 하나님나라 운동을 하는 사람 누구라도 예수님이 될 수 있다는 얘기며 동시에 하나님이 될 수 있다는 얘기다. 이렇게 얘기하면 그 옛날 유대인들이 예수님에게 신성모독이라고 비난한 것처럼, 오늘날의 기존의 보수 기독교인들 역시 '신성모독'이라고 그렇게 비난할 지도 모를 일이다.
 
그러나 나의 이러한 성경 해석과 예수님 이해는 무슨 사이비 교주들이 말하는 식의 "나는 재림 예수다"느니, "나는 왕이다"라는 식의 그런 천박한 이해가 결코 아님을 분명하게 알기를 바란다. 그런 것들과는 이미 성경 해석의 해석학적 관점부터가 다른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나라 사건을 일으킴으로서 하나님나라 안에서 하나님과 하나가 될 수 있으며, 하나님과 나 사이의 경계는 없어진다. 하나님이 내 안에 내가 하나님 안에 온전히 하나가 될 따름이다. 
 
불교에서는 부처가 따로 있지 않고 "너가 곧 부처"라고도 말한다. 즉, 깨달은 자라면 누구나 부처가 될 수 있다고 말한다. 그 같은 사유의 패턴은 새로운 기독교의 신학적 입장에서 볼 경우에도 마찬가지다. 하나님나라를 깨닫고 하나님나라 일을 하는 누구라도 우리는 예수가 될 수 있는 것이다. 알고보면 "그대가 곧 예수"인 것이다.
 
"예수가 하나님과 같은 분"이라는 얘기는 자칫 예수를 숭배하고 믿어야 할 대상으로만 생각하기 쉽지만, 실상 예수는 닮아야 할 대상임을 여전히 말해주고 있다는 점을 우리는 결코 잊어선 안된다. 예수는 닮아야 할 대상이자, 걸어가야 할 길이며, 이 땅에서 마땅히 해야 할 일 그 자체인 것이다. 예수는 기존의 낡은 체제에 대하여 그 대안으로서 일으켜야 할 사건이다. 
 
어느 누구라도 예수가 걸어갔던 길을 따름으로서 예수가 될 수 있다.
어느 누구라도 예수가 실천했던 섬김과 나눔의 일을 함으로써 예수가 될 수 있다. 
그럴 경우 그러한 사람은 예수가 하나님이자 동시에 사람이었던 것처럼
마찬가지로 그러한 사람 역시 하나님이자 동시에 사람이 될 수 있다고 하겠다.
 
부디 예수님의 DNA가 이미 그대 안에도 있음을 발견하길 바란다.

..............................
 
 
P.S - 새로운 기독교가 갖는 해석학적 입장은 성서를 볼 때 기존의 예수님을 보는 이해 역시 완전히 달라지게 만든다. 따라서 성경을 어떻게 해석하느냐 라는 그 해석의 관점이 바뀌지 않으면 우리의 예수 이해는 여전히 한 인물에 집착된 배타적 예수상과 인간이 감히 접근할 수 없을만큼 차단된 천상의 신격화된 예수 이해로 부지불식 간에 인도될 수 있다고 하겠다. 어떤 면에서 자신의 해석학적 틀을 점검하는 것은 성경을 읽는 일보다 더욱 중요한 작업이 아닐 수 없다.

현실적 관계론의 관점을 가져라.
그것은 모든 새로운 변화의 시작이다.
 
 
정관 (08-11-22 07:04)
 
간혹 수행자들을 보면 그들의 삶이 정말 드라마틱하게 살아오는 사람들이 있는데, 기독교를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이 "내가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를 통하지 않고는...." 이것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있는것이 신기해서 다시 자세히 물어 보았더니 글쎄 이 사람은 "나"를  "진아"로
해석을 하고 있어요.  그래서 그것도 참 의미가 있겠다 싶어 원본을 찾아보니 예수 자신을 예기 한것이지 대상적 "나"를 의미한것 같지는
않아요. 보다 더 깊이 검토해 보고 싶긴 한데....

 그러나 그것보다는 우리가 "안다"고 하는 것을 "차이를 구분할 수 있다"고 하는 것도 의미가 있을듯 합니다.  즉 예수가 아니어도 온전한
구원의 성취 혹은 해탈이 가능했다면 예수의 존재는 있어서는 안될 불필요한 존재라고 여겨집니다.  적어도 예수가 과거의 해탈론들을
재탕 삼탕하러 온것은 아니다 라는 인식이죠.  그렇다면 그 구분을 어떻게 알수 있냐는 겁니다.

알다시피 우리나라 학계의 신비주의에 대한 인식이 굉장히 뒤져 있습니다. 심지어 백과사전과 같은 켄 윌버도 아직 제가 파악을 많이 못했지만
이집트 신비주의에 대한 인식이 결여되어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그렇다면 예수에 대한 바른 이해를 할 수가 없습니다.

그렇다보니 왜곡되고 억압되어 있는 기독교 전통때문에 신비를 찾아  불교나 힌두교나 도가 사상 같은 곳에 기웃 기웃 합니다. 사실 가톨릭은 불교의
굉장한 영향을 받았습니다...... 

 지금이야 말로 예수에 대한 재조명이 필요한 시점이 아닌가 합니다. 물론 상대방의 훌륭한 전통들을 익히는 것은 많은 유익이 있지만
예수만의 독특한 점이 있는 것입니다.  예수가 perfect하게 이루어 놓은 것이 있는 것이죠. 이제는 이러한 것들을 탐구해야 되는데
보다 젊은 분들이 앞장서야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그런데 정작 신비를 알아가는 사람일수록  세인들로 부터  점차적으로 사라져 버립니다. 사람들 앞에 활동하려 하지도 않고 글도 안씁니다.
현상태로서는 신비자체와 대중과의 대화가 요원한 상태입니다.  학자들의 편견이 지나치며 편견을 벗는다 벗는다 하지만 벗지 못하는것이
주원인이라고 저는 생각하고 있어요. 세속적인 모든것은 정감이든 지성이든 중요하긴 하지만 이것도 "상"이기 때문에 많이 벗어버리는
수행을 해야 할 것으로 보입니다.

이집트 신비주의로 부터 이어지는 유태신비를 접하다 보면 예수가 그 계승자 임을 알게 됩니다. 기독교가 이것을 빨리 회복해야 합니다.
그러다 보면 요가든 도가든 통합적 인식에 도달하게 되지 않을까 생각을 합니다.

좀 깨어있는 교인들은 문제점을 인식하고 무언가 찾아야 하겠다고 하지만 대안을 아직 발견못한 겁니다. 그러니 대안을 제시하지 못하면서
그들을 비난하기도 그렇고, 서로 서로 힘들더라도 인내하고 부단히 애써야 할것 같아요.

정관 (08-11-23 09:35)
 
말아야지 말아야지 하면서도 공감되는 부분이 있다보니 또 이렇게 얼굴을 내밉니다.
저는 예수를 '조교'라고 자주 얘기합니다. 아주 완벽한 sample 이죠. 조교 따라 하기만 하면 신이되는 겁니다.
그런데 조교의 본래 가르침을 악당들이 왜곡시켜 놓고 선량한 사람들 속이며 돈벌이에 이용해먹고 있으니
이게 문제라는 것이죠...

화상 (08-11-27 18:38)
 
나 외에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다
늘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였는데 이제야 풀리네요.

정관 (08-11-27 21:01)
 
명상하다가 생각이 나서요. 히5:11-14 ..멜기세덱의 반차를 쫓는 데제사장이라 칭함을.... 멜기세덱에 관하여는 우리가 할 말이
많으나 너희가 듣는 것이 둔하므로 설명하기 어려우니라...  장성한 자의 것이니 저희는 지각(awareness)를 사용하여 선악을
분별하는 자니라..   
 요 4:24 하나님은 영이시니 영(루아흐,프뉴마)과 진리로 예배할 지니라.

성서에서 나타난 멜기세댁은 신비한 사람입니다. 예수도 그의 반차를 조 ㅊ고 하나님의 아들과 방불한 자라고 하였으니 말입니다.
히브리서에서는 뭔가 그에 대해서 상당히 얘기할것이 있을듯 한데, 아쉽게도 거기서 그치고 맙니다. 유대인과 첫 조우는
아브라함에서 부터 시작됩니다.

어집트 신비주의와 유태신비주의를 찾아보라고 한 이유는 모세에게로 전해지는 전통이 멜기세댁으로 부터 오기 때문입니다.
또 그것이 신비그룹에 의해서 예수께로 이어집니다.  이것이 참인지 거짓인지는 일단 지각을 사용할 수 밖에 없습니다.

오래전에 하나님의 교회의 한 여신도가 멜기세댁에 관하여 상당한 얘기를 하길래 직접가서 확인해 보았는데 성서를 아주
요상하게 짜맞추어 교리를 만들었는데.. 그런짓도  오래하다 보면 틀렸다는 것을 알게 되겠지만.  인터넷 여기 저기 뒤져보고 고대 종교나
원시 기독교를 찾아 다니다 보면 많은 정보를 얻을수 있을 겁니다.

그리고 그 다음에는 몸으로 뛰면서 그러한 인간들의 행태를 관찰해야 합니다. 그리고 나서 영과 진리로 하나님께 나아가야
합니다. 루아흐에 관한 정의도 상당한 분량이니 기도하면서 준비하다 보면 어떻게 어떻게 연결되리라 생각합니다.
의외로 여기 저기 준비된 분들이 있는것 같아요.  바른 수행법을 만나서 하나님의 참신이 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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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0 ♣ 새로운 기독교 신학의 인간론 (1) 미선이 782 11-30
119 [예수운동 예배 견본] 새로운 기독교의 <예수운동 예배>를 위하여 미선이 849 11-28
118 숭배하는 예배에서 <닮으려는 예배>로 (1) 미선이 781 11-19
117 거꾸로 흘렀던 감리교 역사, 바로 세우기엔 아직 멀었나 미선이 672 11-10
116 <새로운 기독교>를 소개하는 전체 안내 링크글 (계속 업데이트 예정) 관리자 2189 11-03
115 [논평] 봉은사 땅밟기 추태, 성경 '문자주의' 그 야만의 역사 넘어서야 (1) 관리자 831 10-29
114 기존의 진보 기독교와 새로운 기독교 운동 (1) 미선이 663 10-22
113 1세대 민중신학자 안병무의 미완의 작업과 기존 민중신학의 과제 미선이 643 10-19
112 [새기운 성명] 4대강 사업 관련, 문정현 신부의 정진석 추기경 비판을 지지한다 관리자 620 10-19
111 스퐁, "스티븐 호킹과 유신론/인격신의 죽음" (작은불꽃님 역) 관리자 896 1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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