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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목 : 실천적 행동주의 신앙과 신학운동으로서의 신앙    
  글쓴이 : 정강길 날 짜 : 09-01-27 11:48 조회(1505)
   트랙백 주소 : http://freeview.org/bbs/tb.php/b001/282 




실천적 행동주의 신앙과 신학운동으로서의 신앙
 
신앙에는 크게 두 가지 유형이 있다고 본다. 실천적 행동주의 신앙과 신학운동으로서의 신앙이 바로 그것이다. 물론 현실에 있어선 이 두 가지가 완전히 별개로 분리되어 작동되는 것은 아니며 단지 그 지향성에 있어 정도의 차이를 말하고 있는 것뿐이다. 즉, 좀더 실천적 행동주의 신앙에 경도된 그리스도인들이 있는가 하면, 좀더 신학운동에 경도된 그리스도인들이 있는 것이다.
 
실천적 행동주의 신앙, 한국 기독교에서 흔히 추구되는 신앙 유형

실천적 행동주의 신앙은 사실 단순하고 간단하다. 그저 손발이 부지런해야 할 따름이다. 만일 당신이 실천적 행동주의 신앙을 하기 원한다면, 우리 사회의 힘 없는 약자들과 함께 더불어 살면서 그들의 구원과 해방을 위해 함께 하면 된다. 그 뿐이다! 실천적 행동주의 신앙에서는 이 세상에 대한 복잡한 이해나 혹은 머리 아픈 신학적 얘기를 할 필요가 거의 없다. 물론 아예 완전히 필요 없을 정도는 아니겠지만 적어도 깊이 있는 복잡한 신학적 배움에 대한 필요성보다는 오히려 빵과 사랑의 실천을 더 구하는 것이 더 절실하다고 보는 신앙 유형인 것이다.

실천적 행동주의 신앙은 보수 기독교인들에게서도 흔하게 찾아볼 수 있는 신앙 유형이다. 보수 기독교인에게 있어 실천적 행동주의 신앙은 무조건 믿고, 무조건 기도하고, 무조건 찬양하고 그리고 무조건 전도하면 그뿐이다. 이것을 죽을 때까지 하면 가장 큰 신앙인 것이다. 이 얼마나 단순한가! 물론 단순하지만 이를 죽을 때까지 실행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에서 결코 쉽지 않은 삶이기도 하다. 즉, 실천적 행동주의 신앙이 지닌 신학적 바탕은 매우 단순하지만, 평생을 바칠 손발의 성실성이 그토록 힘들 뿐인 것이다.

기존의 진보 기독교인들 가운데는 실천적 행동주의 신앙인들이 많다. 세기연에서도 함께 하고 있는 대전의 우도님이나 그리고 부산애빈교회의 김홍술 목사님 등등 이러한 분들도 여기에 해당할 것이다. 즉, 우리 사회의 바닥 사람들과 많은 연대를 하고 있는 사회활동가들 민중교회 목사님들은 거의가 이러한 쪽에 속한다. 하지만 보수 기독교인들 가운데도 실천적 행동주의 신앙인들은 많다. 사실 조용기 목사도 단순한 실천적 행동주의 신앙인으로서 성장했었을 따름이다. 무조건 믿고, 무조건 기도하고, 무조건 전도한 것뿐이다. 그러다가 어느새 성장한 것이다.

다시 말해서 기존 진보이든 보수이든 오늘날 한국교회 대부분의 신앙인들은 실천적 행동주의 신앙의 유형을 보여주고 있다. 실천적 행동주의 신앙인들이 가지고 있는 신학적 내용은 그렇게 복잡하고 어려운 신학적 언명들을 담고 있지 않다. 예수의 역사적 삶의 경로를 아주 단순화시켜 이해할 따름이다. 즉, 예수는 가난한 자들과 함께 했던 해방자였고 그들의 벗이었다고 보는 것이 핵심인 것이다. 물론 보수 기독교 진영이라면 예수를 내 죄를 위해서 십자가에서 보혈을 흘리신 대속자로 이해하면서 이를 믿고 세상 끝까지 전하는 것이 핵심이었을 것이다.

 
 
▲ 보수 기독교인들의 실천적 행동주의 신앙
 
 
그렇기에 실천적 행동주의 신앙의 패턴만큼은 기존 진보나 보수에서도 종종 볼 수 있는 유형에 해당한다. 단지 그 신학적 내용에 있어서 차이를 보일 따름이다. 그런데 이러한 차이는 매우 중요하다. 즉, 삶의 방향을 결정하는 신학적 내용이 다르다보니 같은 실천적 행동주의 신앙인임에도 불구하고 서로 다른 방향과 색조가 나오는 것이다. 이로써 우리는 실천적 행동주의 신앙만큼이나 <신학운동으로서의 신앙>도 매우 중요하다는 사실을 인지할 필요가 있겠다.

신학운동으로서의 신앙, 온전한 소통을 위하여 필요한 신앙운동

신학운동으로서의 신앙은 어떤 점에서 전문적인 신학자들이 그 역할을 해야 할 것이지만, 오늘날 한국교회의 현실을 놓고 볼 때 전혀 그렇지 못하고 있는 게 일반적 현실이다. 왜냐하면 대체로 그들은 솔직하지 못하거나 아니면 우둔하기 때문이다. 교단과 교세에 눌려 솔직하고 소신 있게 발언하는 신학자는 거의 드물다고 해야겠다. 예를 들어 사석에선 동정녀 탄생이 역사적 사실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학자들도 실제 공식적인 자리에서는 그렇게 말하지 못한다. 자신의 처자식과 밥줄을 걱정해야 하니까 말이다.

혹자는 그러한 신학운동으로서의 신앙이 왜 필요하냐고 묻기도 한다. 신학운동으로서의 신앙이 필요한 이유는 간단하다. 한 마디로 소통 때문이다. 그것이 왜 그러한지를 설명해줄 때 상대방에게 보다 설득적으로 다가갈 수 있는 것이다. 이것은 소위 말하는 신학과 신앙의 개념 차이에도 견줄 수 있다. 신학은 그것이 왜 그러한 지를 설명하는 설명의 언어들로 채워진다면, 신앙은 무엇을 느낀 것인지에 대한 기술적 체험의 언어들로 채워진다고 볼 수 있겠다.

만일 신학운동으로서의 신앙이 없다면, 예수가 왜 그러한 삶을 살다 간 것인지 왜 그러한 말씀을 하셨는지에 대한 설명이 부재하게 되며, 결국은 ‘무조건 믿어라’의 기독교로 전락될 수밖에 없다. 이것은 예수가 지닌 세계관, 신관, 성서관, 인간관, 구원관 등등 이러한 맥락들을 인지하고 설명해 줄 때만이 비로소 납득이 될 수밖에 없는 지점인 것이다.

만일 기존의 진보 기독교 역시 신학운동으로서의 신앙이 경원시될 경우 ‘무조건 믿어라’의 기독교로 전락될 수도 있는 위험이 있다고 하겠다. 이것은 오늘날의 진보 기독교가 성경을 약자해방, 혹은 민중해방으로 이해함으로써 이를 당위적으로 보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민중해방은 당위적인 전제가 아니라 그것 역시 예증되어야 할 지점인 것이다. 만일 그렇지 않을 경우 민중해방은 많은 사람들에게 시작부터 강요되는 그 무엇이 되게 된다. 그럴 경우 민중해방이 제 아무리 옳다고 하더라도 결코 만족스런 동기 부여가 되기에는 힘들 수 있다.

신학운동으로서의 신앙은 앞의 실천적 행동주의 신앙들 간의 온전한 소통을 위해서 필요하다고 해야 할 것이다. 따라서 실천적 행동주의 신앙과 신학운동으로서의 신앙은 서로 간에 유기적인 긴장관계로서의 결합이 있어야만 한다. 신학운동으로서의 신앙은 어떤 면에서 브레인(두뇌)의 역할을 하는 것으로 볼 수 있는 반면에, 실천적 행동주의 신앙은 단순하게 올곧은 실천적 행동강령을 지향하는 것이기에 손발의 역할을 하는 것으로 볼 수 있겠다.

보수 기독교인들도 부지런하고 성실한 것은 매한가지이다. 저들과의 결정적 차이는 신학적 방향에서 애초 다른 것뿐이다. 하지만 신학적 방향만 있고 이를 통한 행동적 실천이 없다면 그 역시 문제라고 볼 가능성이 높다. 그렇기에 우리에겐 제대로 된 신학과 실천 이 두 가지 모두 필요하다고 해야 할 것이다. 그런 점에서 이 시대에는 우리에게 보다 많은 역량들을 요구하는 것이라고 본다.

그리고 실천적 행동주의 신앙이든 신학운동으로서의 신앙이든 둘 다 <구체성>이 있어야 한다. 전자는 구체화된 행동을 원하며, 후자는 구체적인 언명을 원한다. 구체적이지 못하는 신앙은 그 색깔이 모호해지거나 혹은 은연중에라도 왜곡된 굴절을 보일 수 있기에 그다지 바람직하진 않다고 본다. 앞으로 세기연이 추구하는 새로운 기독교 운동이라는 것도 좀더 구체적인 언명으로서 좀더 구체화된 실천을 담보해내는 그러한 기독운동이 되고자 한다.

이천 년 기독교 역사를 새롭게 쓰고자 하는 새로운 대안 기독교 수립 운동은 이제 겨우 시작이라 조금씩 가능한 만큼씩 내딛을 것이며, 한 발짝을 힘겹게 내딛더라도 튼튼하게 내딛고자 한다. 바로 여기에 그동안 세계 안에 흩어져 있던 예수의 심장과 열정을 가진 많은 분들이 함께 동참해주기만을 바라는 바이다.
 
 
 
해방 (09-01-27 20:50)
 
구체적인 언명의 신학 운동과 그를 기반으로 한 구체적인 실천을 행하는 새로운 기독교 운동....
동감입니다.

다만 그 새로운 흐름에 보수와 진보만 있는 것이 아니라 성경적신비주의도 있다는 것을 기억해 주시길....
성경적신비주의의 새로운 흐름에는
구체적인 신학운동 및 실천과 더불어 성경적인 구체적인 신비라는 항목도 포함되어 있답니다.
(여기서 구체적인 신비란 객관적으로 검증 가능한 신비를 말합니다.)
그것은 예수님처럼 서로 사랑하는 존재들로 재창조되는 신비지요.

다양한 새로운 흐름들이 함께 고민하고 의견을 나누며 서로 북돋우는 세기연이 되기를 바랍니다.
정강길님께 귀한 소망과 열정과 능력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정강길 (09-01-28 01:34)
 
네에.. 보수도 있고 진보도 있고, 저희 같은 대안 기독교 세력도 있는 것이고
또한 말씀하신 성경적 신비주의도 있다고 기억하겠습니다.
다만, 세기연도 신비주의를 받아들이지만
신비라는 개념을 사용하는 맥락에 있어서는 님과 조금 다르지 않은가 싶습니다.
좋은 말씀 감사드립니다.

화상 (09-02-07 22:04)
 
신학운동으로서의 신앙에서 참다운 영성을 깨달을 수 있을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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