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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목 : 묵자, 우리들과 너무나 가까이 있었던 동양의 예수    
  글쓴이 : 정강길 날 짜 : 09-02-02 02:36 조회(1672)
   트랙백 주소 : http://freeview.org/bbs/tb.php/b001/286 




묵자, 우리들이 몰랐었고 우리들과 너무나 가까이 있었던 동양의 예수
 
세기연 1월 포럼, 묵점 기세춘 선생이 들려준 묵자와 예수이야기
 
 

세기연 월례 포럼, 대전에서 개최하다!

2009년도 세계와기독교변혁연구소(이하 세기연)의 1월 포럼을 대전에서 열었다. 올해부터는 세기연 포럼을 서울에서만 계속 할 것이 아니라 분기별로 각 지역을 찾아가고자 한 것인데, 이번에 대전에서 처음으로 열게 된 것이다. 대전 지역은 지난 2008년 한 해 동안 ‘새로운 기독교 신학 강좌’(10주)와 ‘화이트헤드 철학 강좌’(10주)를 개최하면서 대전 지역에 계신 분들과 교류를 맺게 되었는데, 그러한 가운데 대전에서도 모임이 다소 활성화된 것이다.

이번 대전 지역 1월 포럼에는 노숙인 자활을 돕는 알멋공동체에 계시는 하재호 목사와 무궁화 교회(담임 김경구 목사)가 함께 많은 도움을 주셔서 세기연 포럼이 열리게 되었다. 강사는 묵점 기세춘 선생님을 모셨는데, 아주 오래전에 고 문익환 목사님과 함께 <예수와 묵자>라는 책을 내셨던 분으로 기독교 진보 진영에서도 나름대로 기억되고 있는 분이다.
 
게다가 묵점 기세춘 선생님의 동양고전에 대한 해석은 매우 민중해방적인 면을 담고 있어서 동양사상계에서도 남다른 측면이 있는데, 얼마 전에도 노자의 『도덕경』을 민중해방의 관점에서 매우 두꺼운 큰 책으로 펴내셔서 주목을 받으신 바 있다. 듣자 하니 묵점 기세춘 선생님은 오래전 퇴계 이황과 사단칠정 논쟁을 벌였던 고봉 기대승 학자의 후손이라고도 한다. 현재 연세가 있으신데도 술과 담배를 즐겨하실만큼 젊은 사람 못지않게 건강하신 것 같았다.
 
 
 

이번 세기연 1월 포럼은 3-40여 명 정도 참석하셨는데, 다들 묵점 기세춘 선생님이 들려주는 묵자 이야기에 흠뻑 취한 시간이었다고 해야 할 것이다. 마치 동양의 예수님을 가까이서 접하는 느낌이랄까..

묵자와 예수는 쌍둥이처럼 닮았다!

오래전에 나 자신이 묵자를 처음 접한 것도 바로 그 <예수와 묵자>라는 책을 통해서다. 당시 이를 읽고서 너무나 놀랬던 점은 묵자의 삶과 사상이 우리가 믿는 예수님이 설파한 사랑과 어찌 그토록 흡사할 수가 있었던 것인지 정말 믿기지 않을 정도였다. 고(故) 문익환 목사님의 말을 빌리자면 “묵자와 예수는 쌍둥이처럼 닮았다”라고 평가할 정도였으니...

(*혹시 이 지점에서 예수의 보혈은 묵자의 피와 다르니 어쩌니 하면서 교리적 예수를 주장하시는 분들에게는 좀더 많은 설명들이 필요하겠지만 여기서는 지면상 접어두고자 한다.)

시대적으로 보면 묵자가 예수 시대보다는 대략 500여 년 정도 앞서 있다. 묵자는 본명은 묵적(墨翟)으로서 묵자도 예수님처럼 하나님을 믿었다. 그것도 묵자가 믿은 하나님은 인격신이었다. 그의 어록 묵자를 보면 무려 3백여 차례나 하나님에 대해서 말하고 있다. 또한 묵자는 철저한 반전운동가로서 평화사상가였고, 그 자신의 삶부터가 청빈했었고 노동을 중요시했으며, 철저히 밑바닥 계층과 함께 평등과 사랑을 설파했던 사상가였다. 게다가 묵자의 직업도 목수였고 천민 출신이라고 한다.

현재 전해 내려오는 묵자의 글(원래는 71편인데 중간에서 소실되어 현재는 53편만 있음)을 읽어보면 놀랍게도 우리가 성경을 읽는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키는 구절들이 아주 많다. 몇 가지만 읊어보자면 다음과 같다.

"하나님의 뜻을 밝혀 순종하고 받들어 온 세상에 시행하면
나라가 다스려져 어지럽지 않고
만민이 걱정 없이 편안하게 살 수 있는 세상이 된다."

"하나님만이 고귀한 분이며, 지혜로운 분이므로
정의는 오직 하나님으로부터 나온다."

"하나님은 무엇을 바라시고 무엇을 싫어하는가
천하에 의가 있으면 생명이 살고, 의가 없으면 죽음이 있다.
하나님은 의를 바라고 불의를 싫어하시는 분이시다."

"천하가 아무리 귀해도 목숨보다는 귀하지 않다.
목숨보다는 의가 귀하기 때문이다."

"천하가 두루 평등하게 서로 사랑하게 하려면
네 이웃을 내 몸처럼 사랑하라."

"공중에 나는 새들과 들에 뛰노는 짐승들과
물 위를 날고 땅 속에 숨은 벌레들을 보라
저들은 수놈이 밭 갈고 씨 뿌리지 않아도
암놈이 실 잣고 길쌈을 하지 않아도
먹고 입을 것을 모두 하늘이 이미 마련해 주고 있다."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차별이 없는 평등정치는
장님과 귀머거리들이 서로 협동하여 보고 들을 수 있도록 하며,
팔 다리 장애자들도 서로 협동하여 모두가 온전하게 살아가도록 할 것이다."

이러한 묵자의 재발견은 이천 오백 년을 넘는 20세기 들어서다. 원래 춘추전국시대 당시에는 천하에 공자의 유가와 묵자의 묵가가 각각 보수 진영과 진보 진영을 대변할 정도로 양대의 큰 세력을 이루었다고 한다. 원래 묵자는 공자를 처음에는 따랐지만 나중에는 공자의 사상을 벗어나서 보다 새로운 변혁을 지향하는 사상가가 되었다고 한다.

묵자는 철저한 평등사상을 지녔기에 매우 급진적일 수밖에 없었고 적어도 부자와 주군의 위계를 인정하는 공자의 유가 세력들과는 달랐었다. 특히 묵점 기세춘 선생님의 평가에 따르면, 공자와 맹자는 의전(義戰)을 주장했고, 묵자는 반전(反戰)을 주장한 데서 결정적으로 서로 갈린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맹자를 비롯한 유가 세력들은 묵가 사상을 매우 탐탁치 않게 평가를 내리고 있는데, 결국 나중에 천하를 통일한 한나라가 유가 사상을 채택함으로서 묵가 세력들은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되었다고 전해진다. 아마도 통치하는 왕정의 입장에서는 이러한 묵가 사상이야말로 매우 위험스럽고도 불온한 사상으로 취급하지 않을 수 없다고 해야할 것이다. 그러다가 묵자가 재발견되고 그의 가르침이 재평가된 것은 20세기에 이르러서였다.
 
 
 

새로운 기독교 운동으로서 묵자의 어록을 성경에 넣기

일찍이 중국의 손문은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고대에 사랑을 말한 사람으로 묵자를 능가할 사람은 없다. 묵자가 말한 겸애(兼愛)는 예수의 박애(博愛)와 같은 것이다”. 나 역시 묵자를 알면 알수록 내가 믿는 예수와 거의 이질감을 못느낄 정도라고 해야 할 것이다. 예수께서는 평화를 위하여 일하는 사람은 모두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하셨다(마태 5:9). 나는 묵자 역시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생각한다.

묵자가 설파한 대로, “위로는 하나님을 따르며, 땅에서는 네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그의 경천애인(敬天愛人) 사상과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네 마음과 목숨과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며, 네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우리 주님의 계명과 어떤 큰 차이가 있는지를 잘 알지 못한다.

하여 새로운 대안 기독교를 추구하는 세기연은 묵자의 글도 성경에 포함시키고자 하는 바램이 있다. 이를테면 묵자편을 신구약 중간에 넣는 것이 좋을 듯 하다. 물론 죽자 살자 교리적 예수만 알고 있는 보수 기독교인들에게는 많은 반감들이 있을 것이고 또한 저들을 이해시키려면 많은 설명들이 동원되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바야흐로 새로운 기독교 시대를 내다볼 경우 나는 꼭 이러한 작업들도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바이다.

이미 오래전부터 나 자신은 성경 66권만의 경전성을 그 옛날 과거 시점에 못박아놔서 더 이상 창조적인 미래마저 봉쇄시켜 놓는 것에 대해선 분명한 반대를 표한 바 있다(이에 대한 자세한 내용에 대해서는 http://freeview.org/bbs/tb.php/b001/32 참조). 성경 66권이란 것은 결코 절대불변의 신봉할 가치가 아니다. 나는 진정한 경전성은 결코 배타적인 폐쇄성이 아니라고 보고 있다. 그렇기에 문자를 넘어선 하나님의 말씀은 어느 시대나 관통하고 있기에 결코 한정적으로 갇힐 수가 없다고 생각하는 바이다.

현재 세기연은 예수살기교회를 서울에 두고 있다. 조만간에 세기연의 새로운 대안 기독교의 신학적 이념을 지향하는 열린 교회들과 함께 새로운 대안 기독교 네트워크를 구성하면서 실질적으로 이러한 작업들을 진행해볼 생각이다. 대안교회를 위해선 대안신학 역시 온전히 마련되지 않으면 안된다. 바로 이 지점에서 우리가 묵자편을 선택한 것은 우리가 읽어온 성경의 복음서들과 그다지 차이를 느끼지 못할 만큼 지극히 닮아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적어도 어느 정도 열린 기독교인이라고 한다면, 그리고 예수의 유일회성이 아닌 새로운 그리스도론에 있어 이제는 한 명의 인물론이 아니라 <사건론>으로서의 패러다임 전환을 이룬 기독교인이라면 묵자편을 신구약 중간에 넣는 것을 그다지 반대하진 않으리라고 생각되어진다.

물론 이런 제안 자체가 어떤 점에선 매우 새롭고도 파격적으로 보이기에 정서적으로 낯설어서 반대할 수는 있으리라 본다. 하지만 우리가 차분하고 진지하게 그 타당성을 논의해본다면 충분히 고려할 만하다고 여겨진다.묵자가 말하는 하나님도 동양사상에서 주로 보여지는 비인격적 실재로서의 신(神)이 아니다. 내가 보기엔 묵자는 구약의 예언자 전통과 신약의 예수의 말씀에 대한 동양적 현현이라고까지 생각될 정도다. 못믿겠다면 직접 확인해봐도 좋을 것이다.

혹시 이 지점에서 종교다원주의를 떠올릴는지 모르나 보다 정확히 말씀드리자면 나의 신앙 포지션은 <열린 중심주의> 입장에 있음을 분명하게 말씀드리고자 한다(이에 대해서는 http://freeview.org/bbs/tb.php/d002/36 참조). 또한 묵자와 예수의 차이도 찾아보면 없지는 않다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러한 차이는 구약의 예언자들과 예수의 차이만큼이나 그다지 크다고는 생각지 않는다.

묵자편을 성경에 집어넣음으로서 우리는 이제 기독교에 대해서 예수에 대해서 어떤 새로운 환기를 이룰 수 있는 계기가 된다고 본다. 그 철옹성 같은 성경 66권의 완고한 벽이 무너진다고 생각해보라. 세기연은 새로운 기독교를 위하여 새로운 공의회가 다시 일어나길 바라고 있다. 여기에는 66권이라는 도그마도 경전이라는 신화도 새롭게 쇄신해야 할 대상에서 결코 예외일 수 없다.

새로운 기독교 운동은 <새로운 공의회>의 결성으로 나아가야

역사 속에서 사라진 동양의 묵자를 바야흐로 새로운 기독교가 끌어안음으로서 우리는 성경을 해방시킬 필요가 있고, 중동 지역인 ‘이스라엘 역사’라는 특수 계시에만 몰입된 그 편협한 이해도 극복할 필요가 있다고 하겠다. 그 같은 오류가 오늘날까지도 오히려 한 이웃이었던 팔레스타인의 역사와 생명들까지 말살시키고 다른 종교 문화들에 대해서도 공격적이고 정복적인 배타적 선교 자세로 이끈 것이다.

나는 그러한 <힘의 복음>이 더 이상 정당화되어선 곤란하다고 본다. 기존 기독교는 잘못된 교리가 그 중심에 자리하고 있는 한 <힘의 복음>이 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예수가 설파한 사랑은 권위적인 힘이 아닌 분명하게도 <섬김>과 <나눔>이었다. 묵자 역시 털끝 하나라도 하나님이 짓지 않은 것이 없다고 봤을 만큼 모든 것을 하나님의 것으로 돌리며, 사유제도를 반대한 묵자의 비폭력 저항과 평화 그리고 사랑을 강조하는 그의 사상은 예수의 밥상공동체 정신과 크게 다르진 않다고 본다.

앞으로의 세기연은 예수살기교회를 통해 예수와 묵자가 일궜던 나눔과 섬김의 공동체를 지향할 것이며, 그러한 가운데 신학운동의 일환으로서는 묵자편을 보다 세밀하게 검토하여 기독교 경전의 외연을 좀더 새롭게 넓히고자 한다. 어떤 점에서 묵자편을 성경에 넣자는 나의 제안은 하나의 사례로서 든 것일 수도 있다.

괜찮다면 우리네 전태일의 글을 넣을 수도 있다고 본다. 허나 보다 중요한 점은 적어도 이천 년 동안 성경 66권이 지녀왔던 그 완고한 경전적 배타성만큼은 극복할 필요가 있다고 보기에 드리는 얘기이다. 그런 점에서 세기연은 새로운 기독교를 위한 새로운 공의회가 다시금 있어야 한다고 보는 입장이다. 새로운 기독교 운동은 이제 겨우 <지금 여기>now and here에서부터 시작되고 있음을 기억해주길 바란다.

 
 
 
 
[관련 링크] 문자적 성서해석에서 사건적 성서해석으로 (5)
 
 
정관 (09-02-02 05:42)
 
야 대단한 발견! 그렇다면 기선생께서 어디 까지 사상을 수용하고 계시는 지는 알수 없지만, 예수께서 이 세상에 그리스도로 오신것은
2000년전 이었지만, 다윗또는 동양(중국,인도..) 등에서  여러번 오셨다는 것을 얘기 한다면  아직 성급함일까? 너무 오버한 것일까?
아니면 근거 부족일까?

등불지기 (09-02-02 18:06)
 
저역시 새로운 공의회 출현은 희망하는 사안 입니다. 하고 ~ 교리로서가 아니라 새로운 신앙고백서도 나와야겠고요~ 성경을 삽입하는 것은 좀더 시간을 두고 공의회가 결성되면 고민하면서 시도해도 늦지는 않을 것 같구요~

그 묵자에 대해서는 아직 강의도 듣지 못한 주제지만 우리의 사고만큼은 왜 성경66권의 내용에만 국한 하는 한계는 벗어나야 된다고 말하고 싶군요  저 대전 사람인데 ~ 못가보았네요 ~  예수 당시는 시대적으로  인간들의 인식 한계 때문에 예수께서도 하고 싶은 말씀을 다하지 못하고 ~ 바울도 그런 흔적을 보였고 ~ 예수님이 한번 온것은 아니겠지요  다른 문화에서 다른 형태로 왔었지만 누가 알아 보았을까요~ 이제와 우린 해석을 자유롭게 할 수 있으니 그런세대적 덕분에 자유롭게 생각 할 수 있는 것이지요

정관 (09-02-03 07:37)
 
붓다가 여럿이 있을 수 있잖아요. 석가모니 역시 붓다 의식에 도달한 사람,  그리스도도 그리스도 의식에 도달한 사람 으로
힌두교 계통에서는 이렇게 정의 할겁니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과거 70년대에 멜키세덱도 그리스도다 라고 조용기 목사가
얘길 했어요.  그때는 그렇게 얘기하는 목사도 있구나 하고 기억만 하고 있었는데  대단한 통찰력이었죠.
지금은 사람과 그 맛에 빠져버리니까 이런 꼴이 되었겠지만,
사견으로는 편견일수도 있으나 부처와 그리스도를 저는 동일시 하지 않습니다. 그러한 높은 의식에 도달한 분들이기는 하지만
영혼의 본질이라고 할까요. 그 원천이 다릅니다.  그 근처에 가보지도 못했으면서 얘길 하는게 좀 그렇기는 하지만
우리가 그리스도를 진실로 안다는 것은 성령으로 말미암지 않고는  알지 못할겁니다.

고골테스 (09-03-03 04:32)
 
정관 // 붓다, 다윗에게선 예수와 비슷한(하느님 사상) 사상을 볼 수 없잖습니까.
그렇게 치자면 예수, 묵자 둘 뿐일 것입니다.
새벽부터 가벼운 덧글에 기분이 좋지않습니다.
가벼운 덧글에 가벼운 덧덧글이 달릴 수 밖에요.
혹시 be1.co.kr 에서 노시는분 이니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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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1 새로운 기독교의 시간관, 태초와 종말로서의 시간관을 거부한다! (4) 미선이 644 12-01
120 ♣ 새로운 기독교 신학의 인간론 (1) 미선이 788 11-30
119 [예수운동 예배 견본] 새로운 기독교의 <예수운동 예배>를 위하여 미선이 849 11-28
118 숭배하는 예배에서 <닮으려는 예배>로 (1) 미선이 784 11-19
117 거꾸로 흘렀던 감리교 역사, 바로 세우기엔 아직 멀었나 미선이 673 11-10
116 <새로운 기독교>를 소개하는 전체 안내 링크글 (계속 업데이트 예정) 관리자 2200 11-03
115 [논평] 봉은사 땅밟기 추태, 성경 '문자주의' 그 야만의 역사 넘어서야 (1) 관리자 832 10-29
114 기존의 진보 기독교와 새로운 기독교 운동 (1) 미선이 665 10-22
113 1세대 민중신학자 안병무의 미완의 작업과 기존 민중신학의 과제 미선이 646 10-19
112 [새기운 성명] 4대강 사업 관련, 문정현 신부의 정진석 추기경 비판을 지지한다 관리자 620 10-19
111 스퐁, "스티븐 호킹과 유신론/인격신의 죽음" (작은불꽃님 역) 관리자 898 1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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