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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목 : 신자유주의에 대하여 서로 다른 두 입장의 기독교    
  글쓴이 : 정강길 날 짜 : 09-02-05 06:57 조회(1826)
   트랙백 주소 : http://freeview.org/bbs/tb.php/b001/290 




 
 
신자유주의에 대하여 서로 다른 두 입장의 기독교
 
 
 
들어가며

<신자유주의>Neoliberalism란, 이미 알다시피 케인즈주의와 사회주의 정책들을 비판하는 가운데 근대의 고전적 자유주의를 현대적으로 부활시켜 국가의 시장 개입을 비판하고 자생적인 시장의 기능과 자유의 가치를 중요시하는 현대의 경제 자유주의 사조를 말한다. 특히 1970년대 이후 세계적인 불황을 가져왔던 장기적인 스태그플레이션으로 인해 케인즈 이론에 대한 한계가 지적되면서 신자유주의는 "강력한 힘의 국가"를 표방했던 미국의 레이거노믹스와 영국의 대처리즘을 통해 핵심적인 경제 이념으로 대두되었고 이후 오늘날까지도 신봉되는 <세계화>Globalization라는 물결과 함께 하고 있는 지배적인 주류 경제 정책 이념이다.

바로 이러한 신자유주의에 대하여 기독교인으로서는 어떠한 입장을 지녀야 할 것인가? 신자유주의가 자유의 가치를 가장 중요시한다는 점에서 기독교 역시 신자유주의를 지지해야 할 것인가? 아니면 신자유주의의 폐해와 한계를 인지하고서 반대해야 할 것인가? 실제로 오늘날 기독교 안에서조차도 신자유주의에 대해서 크게 두 가지 상반된 입장으로 갈라진다고 보는데, 이때 그 자신이 기독교를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따라서 신자유주의에 대한 입장도 크게 달라진다는 점이 있다. 기독교인으로서 이것은 성서와 예수를 어떻게 보느냐의 시각과도 밀접한 관련을 지닌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떤 기독교냐에 따라 신자유주의에 대한 태도 역시 달라진다는 점에 대해서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신자유주의를 찬성하는 기독교 VS 신자유주의를 반대하는 기독교

지난 노무현 정권 당시에 신자유주의 경제 정책에 대한 문제는 특히 한국과 미국 간의 자유무역협정이라는 한미FTA 현안을 둘러싸고 사회적으로도 크게 쟁점을 벌인 바 있다. 이때 언론에도 보도되었듯이 주류 보수 기독교 진영은 한미FTA에 대해서 적극적으로 찬성하는 입장이었다. 특히 서경석, 김진홍 목사로 대표되고 있는 기독교사회책임과 뉴라이트 같은 단체는 여러 집회와 모임을 통해 신자유주의 정책들에 대한 노골적인 지지들을 보여준 바 있다. 반대로 소수이지만 한미FTA기독교공동대책위원회를 비롯한 기독교 진보 진영은 한미FTA에 대해서도 분명한 반대를 표방함으로써 아이러니하게도 기독교 세력끼리 서로 충돌하는 양상을 보여주기도 했었다. 지난 한 해 동안에도 진보 기독교 진영의 한미FTA 반대 집회를 비롯한 신자유주의에 대한 반대와 비판 모임은 매우 많았으며, 그때마다 진보 기독교 진영은 반세계화의 흐름과 같이 할 만큼 강한 반대를 보여주었다.

기독교 안의 이 두 흐름은 현재의 이명박 정권에 이르러서도 마찬가지다. 소망교회의 장로로서 한때 서울시를 하나님께 바치겠다고 기도했던 절실한 보수 기독교인인 현재의 이명박 대통령이 구상하는 경제 정책들, 소위 말하는 MB노믹스는 레이거노믹스와도 어쩜 그리도 비슷한 것인가. MB노믹스의 핵심으로는 정부의 규제 개혁 및 완화, 경제 활성화를 위한 각종 감세정책, 공기업 민영화가 주요 골자인데, 이것은 신자유주의와 세계화를 적극적으로 표방하는 미국의 경제 정책들과도 매우 흡사한 것이었다. 물론 노무현 정부 역시 신자유주의에 대한 반대를 표방한 것은 아니었지만 어느 정도 분배와 복지에도 치중한 면도 없잖아 있었는데, 적어도 보수 기독교인에 속하는 이명박 정권에 이르러서는 그 어느 때보다 훨씬 더 신자유주의 정책들을 추진력 있게 시행한다는 점에서 사뭇 색조가 달라 보일 정도다. 이러한 이명박 정부의 정책들에 대해 진보 기독교 진영은 지금까지조차도 여전히 분명한 반대와 비판을 쏟아내고 있는 실정이다.
 
 

그렇다면 보수 기독교 진영이 신자유주의를 찬성하는 이유는 무엇이며, 진보 기독교 진영이 신자유주의를 반대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보수 기독교 진영은 주로 우리 사회의 보수적 이념들을 곧잘 대변하고 있는데 이것이 경제정책인 면에서는 자유의 가치를 중요시하는 신자유주의 이념과 친화적으로 잘 맞아떨어진 것이라고 생각된다. 특히 한국의 보수 우익 세력으로 성장한 보수 기독교는 반공주의와도 결합되어 자본주의 경제체제에 사회주의적인 경제 정책 요소들을 집어넣는 것을 매우 싫어하잖은가. 물론 신자유주의와 신보수주의는 조금 구별되어야 하겠지만 적어도 경제 측면에서 이 둘은 서로 중첩되고 있다. 그리고 여기에는 한국의 보수 기독교 세력들이 미국과의 혈맹을 강조할 만큼 숭미적인 성향도 보여주고 있다는 점도 한 몫 하고 있다.
 
반면에 진보 기독교 진영이 신자유주의에 반대하는 주요 이유는 신자유주의가 시장만능주의를 따름으로서 결국은 극심한 빈곤과 불평등이라는 양극화 문제를 낳는다는 점이 가장 크다. 진보 기독교 진영으로선 소외된 약자에 대한 관심이 언제나 진보 기독 신앙의 주요 주제이기에 당연히 이 점이 부각되지 않을 수 없다. 그럼으로써 신자유주의야말로 오늘날 현대인들에게 바알이라는 거대한 우상이 되고 있으며 이를 타파하는 것이야말로 기독 신앙의 요체라고 보는 것이다. 이 현대적 바알의 실체가 바로 맘몬주의 또는 시장만능주의라는 것이다. 진보 진영의 기독학자인 장윤재 교수는 신자유주의의 주춧돌을 놓은 경제학자 하이에크(Friedrich A. von Hayek, 1899~1992)의 사상을 분석하면서 시장만능주의와 사회정의에 대한 규범을 상실한 채 자생적 질서를 강조하는 하이에크의 <사회적 진화주의>societal evolutionism는 결코 기독교의 신학적 이념과 맞을 수 없음을 비판한 바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도대체 왜 오늘날 많은 대다수 기독교인들은 신자유주의를 매우 친화적으로 받아들이고 있는가? 우리는 바로 이 점에 대한 고찰도 있어야 할 것이다.

두 개의 기독교 : 주류 보수 기독교와 소수의 진보 기독교

애초부터 기독교가 자본주의 체제와 친화적이라는 점은 일찍이 막스 베버(Max Weber)가 프로테스탄트 윤리와 자본주의 이념과의 밀접한 상관성을 밝힌 바 있어 그다지 놀라운 사실도 못된다. 그런데 우리는 여기서 더 나아가 그 프로테스탄트를 형성했던 기독교 세력 역시 애초 콘스탄티누스 황제로 인해 더욱 확장해나갔던 주류 정통 기독교 맥락에 속한다는 점을 더욱 분명하게 간파할 필요가 있다. 소위 종교개혁이라고 불리는 사건도 어찌보면 기독교 역사에 있어 새로운 혁명이었던 것처럼 보일테지만 그 같은 사건도 한 마디로 요약한다면 <종교분파> 사건에 지나지 않는다. 왜냐하면 종교개혁을 주도했던 루터나 칼뱅 등등 이들 모두의 신학적 이념들만큼은 여전히 이전의 주류 정통 기독교의 신학적 이념들을 그대로 이어받고 있기 때문이다. 단지 그때 당시의 교황 체제 및 가톨릭이 지나치게 타락했던 점에 대한 일정 부분의 갱신은 있을지언정 이전의 기독교를 대체할 새로운 대안 기독교로서의 신학을 결코 형성하지 못했던 것이다. 오늘날 가톨릭이든 개신교든 간에 니케아 신조 및 칼케돈 신조를 그 핵심 기독교 교리(dogma)로 삼고 있다는 점에서 크게 다르지 않다.

바로 이 지점에서 주류 정통 보수 기독교는 성서와 예수를 해석할 때 그 같은 정통 교리적 시각으로 해석해내고 있지만, 반면에 남미 해방신학이나 한국의 민중신학처럼 주로 제3세계 신학들에 기반하는 진보 기독교 진영은 예수와 성서를 해석할 때 교리적 시각보다는 소외된 생명들에 대한 우선적인 관심과 구원이라는 약자해방 혹은 민중해방의 눈으로서 예수와 성서를 바라본다. 그럼으로써 결국 보수 기독교와는 서로 상반된 포지션을 가지게 된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는 진보 기독교 진영은 그렇다고 쳐도 주류 정통 기독교가 지닌 교리적 신앙이 어째서 오늘날의 신자유주의와 친화적일 수 있느냐는 의문을 가질 수 있다. 왜냐하면 언뜻 보기엔 종교와 경제라는 각각의 개별 분야들이기에 그다지 직접적 관련성이 느껴지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둘에 깔려 있는 철학적 베이스로 깊이 파고들면 서로 닮아 있는 무의식적 함의들을 발견할 수 있다.

이미 신학계에도 알려져 있다시피 주류 정통 기독교가 핵심으로 삼는 교리적 신앙에는 바로 관념적 이원론(혹은 다른 말로 <위계적 이원론>hierarchical dualism라고도 함)이 그 베이스에 가장 궁극적이고도 기초적인 해석학적 렌즈로서 깔려 있는데, 이러한 보수 신앙은 <‘힘의 과잉’에 대한 숭배>를 지향하는 성향을 갖게 한다는 것이다(물론 이것은 비단 보수 기독교 안에만 있는 건 아니며, 보수적인 이슬람교나 다른 종교들에서도 얼마든지 찾아볼 수 있는 요인들이다. 자세한 내용은 본인의 졸저 ‘미래에서 온 기독교’ 참조). 역사적으로 보면 주류 정통 보수 기독교는 은연중에라도 대체로 힘 있는 지배이데올로기와 친화적인 성향을 지녀 왔었는데 이러한 점들은 오늘날까지도 강대국인 미국 정치의 현실을 보면 곧잘 알 수 있는 지점이기도 하다. 이를 테면 부시 정권의 정책들에 보수 기독교 신앙이 큰 영향으로 관여되는 점들은 결코 우연이 아닌 것이다. 미국의 유명한 생태여성신학자 로즈마리 류터(Rosemary Ruether) 역시 <기업적 세계화>Corporate Globalization의 뿌리를 탐사하는 가운데 신자유주의와 기독교 근본주의 간의 밀착성을 간파한 바 있다.

신자유주의도 마찬가지로 결국엔 힘의 논리를 따르는 이념에 해당한다. 신자유주의는 가진 자들의 우위성을 정당화하고 힘에 대한 우위성을 정당화하는 측면이 있다. 모든 것을 시장의 자생적 질서에 내맡기고 시장에 공정성의 규칙을 결코 금지시키고 있다는 점에서 신자유주의는 경제 분야에 있어 결국 힘 있는 부자들의 논리요 상위 강자들이 채택하고 있는 경제 이념인 것이다. 물론 힘을 숭배하는 성향은 무의식적이고도 암묵적인 연관성으로서 보수 기독교 안에 잠복되어 있는 흐름이다. 오늘날 한국교회 현실을 보면서도 느끼는 바지만, 보수 기독교와 신자유주의 모두 성장제일주의를 지향한다는 점에서도 서로 닮아 있다. 하지만 이러한 점들은 가난한 자들과 함께 했던 본래의 예수 정신과는 분명한 거리가 있는 것이다.
 
나오며

결국 기독교인으로서는 예수 정신의 기독교에 서 있을 때만이 신자유주의라는 실체도 제대로 간파할 수 있다고 하겠다. 예수 정신의 기독교에서 보면 신자유주의에 대해 반대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간단하다. 신자유주의는 궁극적으로 섬김과 나눔이라는 사랑의 공동체적 질서로 이끄는 것이 아니라 결국은 극소수의 세계 부자들만이 좋아할 힘의 질서를 따른다는 점에 있다. 그럼으로써 신자유주의는 세계 안에 빈곤과 양극화의 문제를 심각하게 발생시키고 있는 것이다.

그동안 세계화의 물결을 통해 적나라하게 드러난 신자유주의의 한계와 폐해는 여러 징후적 사건들을 보여 주었고, 급기야 지난 해 말에 결국 터지게 된 미국발 금융쇼크는 21세기 향후 경제 정책에 대한 새로운 패러다임 전환을 모색하도록 이끌고 있다. 이제는 좀더 본격적으로 양극화 문제와 그동안 IMF와 세계은행을 근간으로 유지되어 온 브레튼우즈 체제 개선 및 헤지 펀드 등의 무제한 확산을 통제할 수 있도록 무분별한 금융자본주의 규제에 대한 필요성이 모색된 것이다. 자유에는 책임도 함께 동반되어야 함이 상식이다. 이 간단한 상식을 신자유주의는 위배하고 있다. 신자유주의는 자유의 가치를 소중히 여기지만 책임에 대해서는 거의 묻지 않고 있는 것이다. 자유로운 기업 활동과 국가 간의 자유무역을 강조하지만 세계화의 물결에 낙오되고 희생되는 세계 안의 가난한 나라들과 약자들에 대해서는 무책임하기 일쑤다.

이러한 지구적 현실에서 예수를 따르는 기독교인이라면 당연히 신자유주의에 대한 저항과 책임 있는 비판들이 함께 따라야 할 것이다. 교회는 더 나은 세상을 위한 책임 있는 역할을 할 필요가 있다. 만일 기독교 세력이 신자유주의를 지지하거나 이를 극복하려는 노력조차 않는다면 그 기독교 안에는 예수가 없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기독교 공동체로서의 교회는 신자유주의에 맞설 수 있는 대안적인 경제 체제를 모색하는 가운데 지역 사회 안에 섬김과 나눔의 공동체들을 꾸려나가면서 점차로 생명살림의 세계적인 대안 네트워크를 형성할 필요가 있다. 애초 예수의 삶은 교리적 신앙이 아니었으며 섬김과 나눔이라는 사랑의 실천이 온누리에 스며들기를 바라는 복음이었기 때문이다. 진정한 복음은 힘에 대한 숭배를 정당화는 논리에 결코 따르지 않으며 오히려 극렬하게 맞설 따름이다.
 
(2009.2. 『말』誌 기고)
 
정강길 / 세계와기독교변혁연구소 연구실장
 
 
 
정관 (09-02-05 10:17)
 
인간 누구나 갖고 있는 치명적인 결함들, 부에 대한 집착,권력,명예....
그리고 그보다 더한 인간이 인간을 지배하려는 속성들, 돈으로, 정서로,지성으로, 영으로 ...
이러한 인간의 허약상을 빤히 알고 있는 어둠의 세력들은 그야말로 적그리스를 준비하는 세력들이죠.
사실 종교집단이야 말로 이러한 속성들을 다 갖고 있습니다.  더러는 이용당하는지 모르면서 더러는 그릇된 신념에 사로잡혀서

그렇다면 이들의 목적은 무엇인가?  그리고 왜 하나님은 이러한 것들을 허여하는 것일까?

오늘 아침 mbc에 보니 충남 태안에서인가 버스 안내양이 등장하였던데. 옛날의 정겨움이 느껴지는 장면들 이었습니다.
버스에 오르내리며 고맙고,반가와 하는 노인네들 모습들....
이러한 모습들을 우리 스스로 포기했던 이유는 돈중심의 의식들이 우리의 아름다움을 앗아갔던 것입니다.

졸부의 탄생을 시기하면서도 불나방처럼 돈에 달겨드는 백성들..
그러나 이제는 한걸음 물러서서 바라보아야 하겠지요..  많은 욕심부리지 말고 서로 나눠주며 살자고.. 돈이 그렇게 중요한 것도 아니라는 사실을..

우도 (09-02-05 12:58)
 
신자유주의는 약자는 어쩔수 없이 도태가 될 수 밖에 없다는 것이 문제인 것입니다.
가진 자 배운 자들
다시 말하면 사회적혜택을 많이 본 사람은 더 많이 쳐먹고
사회적혜택을 받지를 못한 약자들은 죽어라는 것이 신자유주의인 것입니다.
성장, 발전, 풍요를 가장한 거대한 레비아탄이 신자유주의임을 우리는 알아체야 합니다.

화상 (09-02-07 21:54)
 
우리는 알게 모르게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것들이 참 많습니다. 윌가의 금융사태를 보면서 하느님의 일하심을 느꼈는데, 제가 잘못 본 것은 아닌지 모르겠네요. 우리 삶의 자리에서 무의식적으로 행해지는 습관들 중에도 신자유주의의 습성들이 많이 있을 겁니다.

불독 (09-02-11 11:34)
 
자본주의 체제와 환경속에 살아간다는 것은 참으로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합니다.
보통사람들이 성실하게 열심히 노력해서 중산층이 될 수 있으면 좋으련만....
세상은 소수 가진자들의 독점영역이 더 많아지고 없는자들은 갈수록 입지가 약화되고 있으니...
개인적으로 정실장님의 글에 상당부분 공감하며 동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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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9 [예수운동 예배 견본] 새로운 기독교의 <예수운동 예배>를 위하여 미선이 1068 11-28
118 숭배하는 예배에서 <닮으려는 예배>로 (1) 미선이 923 11-19
117 거꾸로 흘렀던 감리교 역사, 바로 세우기엔 아직 멀었나 미선이 811 11-10
116 <새로운 기독교>를 소개하는 전체 안내 링크글 (계속 업데이트 예정) 관리자 2729 11-03
115 [논평] 봉은사 땅밟기 추태, 성경 '문자주의' 그 야만의 역사 넘어서야 (1) 관리자 961 10-29
114 기존의 진보 기독교와 새로운 기독교 운동 (1) 미선이 806 10-22
113 1세대 민중신학자 안병무의 미완의 작업과 기존 민중신학의 과제 미선이 781 10-19
112 [새기운 성명] 4대강 사업 관련, 문정현 신부의 정진석 추기경 비판을 지지한다 관리자 748 10-19
111 스퐁, "스티븐 호킹과 유신론/인격신의 죽음" (작은불꽃님 역) 관리자 1051 1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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