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합검색
아이디    비밀번호
   자동로그인     
  현재 총 107명 접속중입니다. (회원 0 명 / 손님 107 명)     최신게시글    성경검색   
새로운 기독교 운동
월례포럼
기획강좌
연구소 활동


  방문객 접속현황
오늘 237
어제 866
최대 10,145
전체 2,384,672


    제 목 : 성경 읽을 때 <고백의 언어>를 <사실의 언어>로 혼동하는 오류    
  글쓴이 : 정강길 날 짜 : 09-04-05 11:38 조회(1668)
   트랙백 주소 : http://freeview.org/bbs/tb.php/b001/328 




우리는 사랑하는 사람에게 다음과 같이 말한다.
"당신은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이쁘다"고..
그런데 이 말은 객관적이고 과학적인 사실일까?
 
물론 우리들은 그것이 사실로서 정확무오하다고 할 수 있는
객관적 사실이 아니라는 것을 잘 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들은 그러한 표현을
매우 의미있고 중요한 표현으로서
너무나 소중하고도 기쁘게 받아들이고 있다.
 
성경에 있는 글들도 마찬가지다. 우리들은
우리 자신들에게 의미 있는 소중한 대상에게 대하여
우리가 할 수 있는 온갖 화려한 미사 어구들로 고백을 한다. 
그것은 이미 그 자체로 우리의 진정성과 진심이 담긴 노력인 것이다.
 
그런데 우리가 바로 이러한 점들을 간과하고 성경을 읽을 때
그것은 심각한 병폐와 왜곡을 낳게 된다.
왜냐하면 성경에는 바로 고백의 언어가 깃들어 있기 때문이다.
 
심리학자 칼 융은 말하길, 그것이 동화든 신화든
그러한 것들은 정신의 현상학이라고 언급한 바 있다.
다시 말해, 그것이 동화적 표현이든 신화적으로 쓰여 있든 간에
그것은 고대인들의 체험이 반영된 정신의 고백인 것이다.
 
오늘날 전 세계의 수많은 기독교인들은 성경을 대할 때
<고백의 언어>와 <사실의 언어>를 혼동한다.
이 혼동은 21세기 들어서도 대다수의 기독교인들이
지속적으로 겪고 있는 피곤한 반복적 폐해에 해당한다.
 
니케아 신조(또는 ‘사도신경’을 떠올려도 좋다)를
과학적이고 역사적인 사실로서 이해하거나
진화론과 창조론(그 변종인 지적설계도 포함)의 충돌 사건 같은 것들은
그러한 혼동으로 인해 겪는 대표적 사례일 것이다.
 
나는 이 혼란이 단순히 서구 성서학계가
근대 모더니티를 겪으면서 전개된 바 있는
<성서비평학>의 도입으로만 해결된다고 보진 않는다.
 
그것은 어떤 면에서 저 깊은 바닥에 자리하고 있는
세계를 내다보는 이해의 기초부터가 달라지는 패러다임 전환을 겪어야만
온전히 바뀔 수 있다고 보고 있다. 바로 그 궁극적 지평이
존재론(ontology)과 우주론(cosmology)에 해당되는 형이상학의 차원인 것이다.
 
이러한 기초 관점으로서의 해석학적 존재론이 뒤바뀔 때
비로소 성경에 가하는 온갖 비평적 작업의 맥이 보이게 되고
또한 그러한 성서비평에도 불구하고 하나님말씀이 담긴 이 경전이
내 삶에서 너무나 소중한 경전으로서 다가오게 된다.
 
나는 기독교 경전의 특별한 가치를 발견한 것은 그다지 얼마되지 않는다.
돌이켜보면 <성경과 나의 관계> 그 자체는 계속적으로 진화해왔었다.
성경은 정말 깨닫는만큼만 보여주는 매우 독특한 경전이 아닐수 없다.
 
그러한 성경의 스펙트럼은 심지어 사람을 죽이는 악마의 경전에서 
사람을 살리기도 하는 통찰적 진리가 발견되는 심오한 경전에까지 미친다.
만일 당신이 성경을 보는 눈이 이전과 달리 바뀌었다면
당신에게 그 어떤 존재론적 변화가 있었다고 봐도 좋을 것이다.
 
우리 모두에게 성경을 보는 눈에 계속적인 정진이 있기를 바랄 뿐이다..!
 
 
Joe (09-04-06 05:07)
 
성서에 대한 <고백의 언어>와 <사실의 언어> 비유는 너무나 적절한 표현입니다. 
정말 숭배하고 사랑하는 사람에게는 진정성과 진심은 담겨있으나 그 표현에 얼마나 많은 <과장>,<왜곡>,<억지주장>,<자가합리> 등이 있기 마련입니다.  또 1,500 년이 넘은  <문화의 차이>,<세대의 차이>,<사상의 차이> 등등도 고려 하여야 합니다. 
다행히 인간의 본성은 1,500 년 전과 지금과 크게 다르지 않기 때문에 성서가 지금도 유효하지요. 
저도 <성경과 나와의 관계> 는 지속적으로 변화하였고 진화해 왔습니다. 
성경은 우리각자가 준비한 <깨달음의 그릇> 만큼 진리를 담아 주는 독특한 경전입니다. 
세상을 보는 나의 눈을 <형이상학의 차원>으로 사고 하게 된 것은(생각하기시작) 제가 세기연을 통해서 깨달은 진리입니다. 
세기연에 감사를 드립니다.

인봉 (09-04-08 08:59)
 
근자에 본 참으로 귀한 사람이다.
정강길/ 세기연 기획실장(http://freeview.org)씨이다. 그 분의 신분이 무엇인지도 모르지만 참으로 담대하고 평강하며 자유할 수 있는, 내가 세례받고 성경을 읽은 후, 비록 글로 만났지만, 내가 만난 제대로 된 기독교 인사중에 최초로 진실한 큰 사람이다.
왜 그런 사람이 한국말 쓰는 사람들 중에는 없는 것일까? 나는 그동안 그것을 사람은 대개 비슷하지만 한국사람 특유의 비겁함으로 생각해 봤다. 그런 한 사람이라도 볼 수 있음에 내가 큰 복을 받은 느낌이다. 오늘(Apr 06, 2009) 두번째 그의 글을 둘러보며 역시 복된 만남을 체험했답니다. 그 귀한 분이 날마다 복된 생활을 하시기를 기도한다.

적어도 생각해볼 때 오늘날 대부분의 한국교회도 아래의 다섯 가지 교리는 '무조건 믿어라' 아닌가요?
1. 성서무오설
2. 그리스도의 동정녀 탄생
3. 그리스도의 대속적 죽음
4. 그리스도의 육체적 부활
5. 그리스도의 재림
http://www.newsnjoy.co.kr/news/articleView.html?idxno=21521 에서 오래된 그의 글의 댓글 논쟁에서 속이 다 시원해서 폄.

어제 묵상록을 쓰다가 정강길씨 글을 보고 몇자 남긴 것입니다.
앞으로도 종종 와서 님과의 만남을 즐길 것입니다. 이렇게 진리 가운데 있는다는 것은 상상만 해도 좋은데 그것이 너무 흔해도 좋은 줄을 모르겠지요? 만나서 좋았습니다.

    
정강길 (09-04-08 09:17)
 
인봉님, 반갑습니다.
제 소개는 http://freeview.org/bbs/tb.php/f006/163 에 나와 있습니다.
저에 대한 평가는 아직 과분한 얘기십니다.
다만 <새롭고 건강한 기독교 운동>에 함께 하시기만 바랄 따름입니다.
아직 작고 부족한 세기연인데 이렇게 관심을 가져주셔서 고맙습니다.

화상 (09-04-14 11:50)
 
스퐁의 성경을 해방시켜라라는 책을 참 의미있게 읽었습니다. 많은 보탬이 있엇습니다.

서로사랑 (09-07-04 13:29)
 
진리를 갈구하는 서생으로서 많은 것을 배우고 깨우칩니다. 감사합니다



게시물수 180건 / 코멘트수 490건 RSS
 
번호 제목 글쓴이 조회 날짜
왜 예수인가 (필독 원함!) (13) 미선 2058 11-04
GIO명상 방법 12단계 (몸기독교가 제안하는 수행 방법 중 하나..) (5) 미선 812 01-16
교회에 대한 권력비판? 교리비판? 어느 것이 더 유효할까? (4) 미선 706 12-06
종교운동과 사회운동을 구분 못하는 오류-기존 진보 기독교 비판 (1) (2) 미선이 724 10-14
몸학과 새로운 기독교 운동 그리고 30년 후의 기독교 미선이 741 04-11
기존 진보 기독교인들의 <생명평화> 담론에 반대한다! (업그레이드판) (8) 미선이 843 02-17
성서문자주의 또는 성서무오설 신앙보다 더 뿌리 깊은 고질병은? (9) 미선이 1024 02-02
과정신학에 대한 비판과 민중신학의 신 이해 접맥 미선이 807 01-13
[예수운동 예배 견본] 새로운 기독교의 <예수운동 예배>를 위하여 미선이 1068 11-28
<새로운 기독교>를 소개하는 전체 안내 링크글 (계속 업데이트 예정) 관리자 2729 11-03
내가 지금 믿고 있는 것은 과연 진리인가 정강길 4455 04-27
"어차피 이러한 기독교로 바뀌게 된다!" (모든 분들에게 고함) (17) 정강길 3018 02-18
새로운 기독교를 위한 조직신학적 성경공부 (신론) (2) 관리자 5697 05-28
새롭고 건강한 21세기 그리스도교 공동체를 위한 신앙선언서 (26) 관리자 4887 05-23
180 21세기 종교 진화의 방향, 몰락이냐? 도약이냐? 미선 687 06-16
179 "함께 만들어가는 종교와 진리" (2) 미선 720 06-10
178 기독교에서 얘기하는 병치유 귀신쫓음을 어떻게 볼 것인가? (1) 미선 784 06-10
177 몸에 모시는 하나님 (탈유무신론의 신앙) 미선 664 06-09
176 초자연주의>에서 <자연주의>로 가야 기독교가 산다! 미선 715 06-07
175 과학의 진화론에 대한 기독교의 창조론 입장들 미선 721 05-30
174 신학이 아닌 몸학에 기반하는 <몸학 기독교>로! 미선 645 02-10
173 신의 영어 표기 God ----> Gio 로 바뀌어야 미선 633 02-07
172 약자에 대한 눈뜸 - 잠자와 깬자의 차이 미선 681 12-08
171 <초자연주의>를 인정하면 나타나는 문제들.. 미선 502 11-04
170 [어떤 진리관] 진리(眞理)와 진리(進步)의 차이 그리고 퇴리(退理) 미선 476 07-05
169 시작이 있는 우주인가? 시작도 끝도 없는 우주인가? 미선 503 06-18
168 <종교 위의 종교>에 대해.. 미선 472 05-04
167 초자연주의와 자연과학 그리고 신비주의 구분 미선 495 04-06
166 지적설계론(창조론)자들과 유물론적 과학자들 간의 공통점 미선 460 12-10
165 종교 신앙의 반지성에 대한 단기적 대안 (1) 미선 493 11-24
164 "몰락이냐 도약이냐" 21세기 종교 진화의 방향 (종교학회 발표) 미선 461 09-10
163 '나(I)는 누구인가?'라는 근원적인 물음에 답하려면.. (1) 미선 473 04-13
162 유신론-무신론을 넘어서 <탈신론>으로 미선 626 05-04
161 <초자연주의>를 버려야 기독교가 산다! 미선 590 02-04
160 몸학 기독교 & 몸학 사회주의 추구 미선 497 12-31
159 <자유>에 대한 짧은 생각.. (2) 미선 550 08-24
158 몸학 기독교에선 기독교 신학이 굳이 필요하지 않은 이유 미선 622 03-24
157 인간 무의식의 두 가지 상태와 보다 상향적인 의식 발달을 위하여 미선 571 03-03
156 (1998년 원글) "화이트헤드 철학에서 본 민중신학 비판과 대안적 모색" (2) 미선 501 02-18
155 종교(宗敎, Religion)에 대한 동서양의 어원적 의미와 전후 혼동 오류 미선 497 02-06
154 기존 기독교와 <몸 기독교>의 분명한 차이들 미선 508 01-21
153 GIO명상 방법 12단계 (몸기독교가 제안하는 수행 방법 중 하나..) (5) 미선 812 01-16
152 2013년 계획.. 몸 기독교 (4) 미선 672 01-02
151 민중신학 40년.. (20년전 안병무 기사를 보며..) 미선 464 12-25
150 진보정치 교육의 사각지대와 민중 역사 주체론에 대한 반성과 재고찰 미선 460 12-22
149 교회에 대한 권력비판? 교리비판? 어느 것이 더 유효할까? (4) 미선 706 12-06
148 왜 예수인가 (필독 원함!) (13) 미선 2058 11-04
147 새로운 기독교의 방향과 몸학의 종교관 (2) 미선 491 10-05
146 새로운 기독교의 방향과 몸학의 종교관 (1) 미선 532 08-17
145 기독교 교리의 문제는 기독교만의 문제가 아니다! (3) 미선 584 06-11
144 초대교회와 바울에 대해... 미선 636 04-28
143 '작은 교회'가 정말 대안인가? 핵심은 교리다! 미선 504 04-22
142 진선미의 기원과 예수사건 (1) 미선이 474 02-24
141 중간 복음주의 신학자 알리스터 맥그리스의 <과학신학> 비판 (13) 미선이 482 12-13
140 끔찍한 <몸의 신학>에 속지 마시길! (유사품 주의) (8) 미선이 567 11-15
139 종교운동과 사회운동을 구분 못하는 오류-기존 진보 기독교 비판 (1) (2) 미선이 724 10-14
138 여전히 예수얼굴에 똥칠하는 개신교 정치세력들 (5) 미선이 529 08-30
137 새로운 기독교 역사의 국내 선구자들 : 유영모, 함석헌, 김재준 미선이 508 06-26
136 조용기 목사의 할 일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미선이 536 05-14
135 몸학과 새로운 기독교 운동 그리고 30년 후의 기독교 미선이 741 04-11
134 <인간의 자유의지>라는 착각과 환상에 관한 문제 (14) 미선이 870 03-04
133 기존 진보 기독교인들의 <생명평화> 담론에 반대한다! (업그레이드판) (8) 미선이 843 02-17
132 기존 진보 기독교계의 ‘생명평화' 담론에 근본적인 의문을 제기한다. 미선이 389 02-10
131 영혼구원의 강조에서 <총체적인 생명구원의 강조>로 (4) 미선이 445 02-05
130 성서문자주의 또는 성서무오설 신앙보다 더 뿌리 깊은 고질병은? (9) 미선이 1024 02-02
129 죄의식의 종교에서 <이웃과 함께 성찰하는 종교>로 미선이 443 02-01
128 수직적 구조의 교회에서 <수평적 구조의 교회>로 (2) 미선이 591 01-21
127 서구식 목회문화가 아닌 <우리식 목회문화>로 미선이 511 01-21
126 과정신학에 대한 비판과 민중신학의 신 이해 접맥 미선이 807 01-13
125 ★ 예언 (1) 미선이 810 12-24
124 ♣ 새로운 기독교 신학의 인간론 (4) 미선이 654 12-19
123 ♣ 새로운 기독교 신학의 인간론 (3) (4) 미선이 742 12-12
122 ♣ 새로운 기독교 신학의 인간론 (2) (10) 미선이 966 12-05
121 새로운 기독교의 시간관, 태초와 종말로서의 시간관을 거부한다! (4) 미선이 791 12-01
120 ♣ 새로운 기독교 신학의 인간론 (1) 미선이 969 11-30
119 [예수운동 예배 견본] 새로운 기독교의 <예수운동 예배>를 위하여 미선이 1068 11-28
118 숭배하는 예배에서 <닮으려는 예배>로 (1) 미선이 923 11-19
117 거꾸로 흘렀던 감리교 역사, 바로 세우기엔 아직 멀었나 미선이 811 11-10
116 <새로운 기독교>를 소개하는 전체 안내 링크글 (계속 업데이트 예정) 관리자 2729 11-03
115 [논평] 봉은사 땅밟기 추태, 성경 '문자주의' 그 야만의 역사 넘어서야 (1) 관리자 961 10-29
114 기존의 진보 기독교와 새로운 기독교 운동 (1) 미선이 806 10-22
113 1세대 민중신학자 안병무의 미완의 작업과 기존 민중신학의 과제 미선이 781 10-19
112 [새기운 성명] 4대강 사업 관련, 문정현 신부의 정진석 추기경 비판을 지지한다 관리자 748 10-19
111 스퐁, "스티븐 호킹과 유신론/인격신의 죽음" (작은불꽃님 역) 관리자 1051 10-11
 1  2  3  



Institute for Transformation of World and Christianit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