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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목 : 자신의 생각과 충돌하는 새로움을 접하게 된다면..    
  글쓴이 : 정강길 날 짜 : 09-06-10 08:43 조회(1162)
   트랙백 주소 : http://freeview.org/bbs/tb.php/b001/360 




 
 자신의 생각과 충돌하는 새로움을 접하게 된다면..
 

"학설들 간의 충돌은 재난이 아닌 기회다" - 백두
 

불편스러운 새로움과 그에 대한 반응

내가 좋아하는 노이즈가든의 기타리스트 윤병주는 언젠가 다음과 같이 말한 적이 있다.
'나는 나를 불편하게 만드는 소리들을 더 좋아한다" 고..
마찬가지로 우리들은 나 자신을 불편스럽게 만드는 것들에 대해 오히려 더 좋아해보려 한 적 있는가?
 
물론 불편스럽지만 그다지 빈틈이 보이지 않는 정당한 근거를 갖고 있는 것들 말이다.
그리하여 나의 견해를 접고 내가 상대방의 견해를 받아들인다면
일시적으로는 나의 패배일 것 같지만 그것은
나의 긴 일생에서 놓고 보면 나의 성장에 놓여 있는 것이다.

한국사회는 토론문화가 아직 성숙되어 있지 못한 편이다.
대체로 많은 사람들은 토론을 할 줄 모른다. 정작 이것은 대한민국의
학문적 수업 때도 느끼는 분위기다. 그저 교수가 하는 얘기들을 얌전히 듣고 있거나
혹자는 자기 의견을 많이 말하는 것을 토론이라고 착각하는 사람들도 꽤 있다.
 
물론 인간은 기본적으로 이성적 존재가 아닌 감정적 존재라서
성숙한 토론문화를 형성하기에는 매우 힘들다.
특히 상대방의 생각이 자신의 생각과 충돌할 경우
이를 이성적으로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보통은 감정적으로 느껴서 대응해버린다.
즉, 나의 신념과 충돌하는 상대방의 사상이 자기 자신에게는 매우 불편스럽고 화가 나는 것이다.
 
백두의 언급처럼, 우리의 현재 순간들은
미래로 열려 있는 새로움들을 늘상 기대하고 있지만
한편으로는 과거의 익숙한 것들과 결별하지 못하는 역설에 직면해 있다.

사람들이 <새로움>novelty에 대해서 갖는 보편적 반응은 다음과 같다.
만일 그 새로움이 평소 자신의 생각과 충돌할 경우에는
이를 매우 불편스럽게 여기거나 곧잘 거부한다는 사실이다.
반면에 그 새로움이 평소 자신의 생각에서 충분히 받아들일 수 있는
그러한 종류의 새로움일 경우 오히려 이를 매우 반갑게 여기기도 한다.

이때 정작 문제가 되는 지점은 전자의 경우다.
평소 나의 생각과 충돌하고 있는 많은 지점들에 대해
나는 정말로 합리적 근거를 가지고서 반대를 하고 있는 것인가? 아니면
그저 감정적 반응으로서 반대를 하고 있는 것인가? 라고 자기 자신을 충분히 점검하지 않으면 안된다.

내가 그러한 사상을 받아들일 수 없다고 할 경우
그렇다면 그것이 정말로 타당한 지에 대한 충분한 근거를 물을 수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고서 자신과 다른 새로운 사상이라고 해서 거부한다면
그것은 분명히 이성적 대응이 아닌 감정적 대응에 지나지 않을 뿐이다.

직관의 두 얼굴 그리고 합리성

그런데 이런 경우 또한 있다.
만일 상대방의 견해와 나의 견해가 충돌할 경우
상대방의 입장에 대해 충분한 근거를 갖고서 반론을 펴고 싶은데
딱히 뭐라 분명한 반론을 하기에는 힘들고 그저 막연하게
"저건 아니야" "저건 틀린 얘기일꺼야" 라고 막연한 느낌에만 의지할 때가 있을 것이다.

이른바 <직관>intuition에 의지해서만 새로움을 거부하는 경우이다.
그런데 이러한 직관은 두 가지 얼굴은 지니고 있음을 알아야 한다.
이에 대한 연구로는 <직관의 두 얼굴>라는 책에도 잘 나와 있지만,
직관은 대단히 감정적 반응이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합리성과 양립 가능한 통찰적 반응이기도 하다.

문제는 자신의 현재 직관이 감정적 반응인지, 통찰적 반응인지 딱히 구분할 수 없다는 사실이다.
물론 대부분은 자신의 느낌 혹은 직관은 감정적 반응이 아닌 통찰적 반응이라 여길 것이다.
하지만 경험상으로 보면 직관은 감정적 반응에 해당하는 것들이 훨씬 더 많다.

물론 그렇다고 해도 나는 그러한 직관이 무조건 틀렸다고는 생각지 않는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역설적으로 직관과 이성을 화해시킬 수 있는 노력을 끊임없이 할 필요가 있다.
 
그것이 바로 자신의 막연한 느낌들에 대해
무엇보다 충분한 근거들을 찾아서 막연한 자신의 생각들을
궁극적으로는 분명한 언어 표현 혹은 글로서 제시해보이는 훈련이다.
이러한 노력과 훈련이 없다면 그는 결코 성숙한 교양인이 되기 힘들 것이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소통을 확보하는 것은 직관이 아닌 <합리성>에 있다.
<합리성>이란 사람에게 있어 유일한 소통의 창구다.
그것은 시행착오를 겪고 있는 인간으로서 어쩔 수 없는 최선의 방책일 뿐이다.

우리가 학교를 다니고 공부를 하며 지성을 얻고자 함은
인류사의 다양한 경험의 축적들을 얻기 위함인데
그럼으로써 나의 주관적 경험들을 세계 안의 다른 많은 사람들에게 소통시키고자 함에 있는 것이다.

지성의 연마란 인류사의 다양한 경험들을 소통 가능하게 내 안으로 축적하는 작업에 다름 아니다.
따라서 우리는 온갖 다양한 새로운 경험들에 대해 항상 깨어 있을 필요가 있다.
나와 충돌하는 그러한 새로움을 접할 때 나의 반응이
과연 감정적 반응인가? 이성적 반응인가? 늘 되물으면서 깨어 있도록 하자.
 
 
[관련글] 토론 논쟁의 기술 http://freeview.org/bbs/tb.php/f001/2
 
 
치노 (09-06-10 11:46)
 
예전에 정실장님이 쓰신 글 중에 '도울 만큼만 공부하라'는 글이 기억납니다. 결국 합리라는 것도 소위 내공이 쌓여야 나오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합리성이라는 것은 생각의 폭이 글이나 말로 표현되는 것인데, 생각을 말로나 글로 표현하려면 공부를 하지 않으면 나오지 않는 법입니다. 사회인이 공부하기 가장 좋은 방법은 독서입니다. 세기연에 소개된 책만 읽어도 깊은 논리력과 사고력이 나오지 않을까요?

Joe (09-06-11 01:59)
 
매우 좋은 내용의 글입니다.
한국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이성적이기 보다 감성적입니다.
자신에(글 등) 대한 타인의 의견을 personal 하게 받아 드리는 경향이 있습니다.
더구나 타인의 의견을 액면 그대로 받지 않고 의역을 하기도 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합리성 보다는 직관에 더 의지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본인은 세기연을 통하여 참 많은 것을 배우고  시야도 넓어져서 항상 세기연에게 감사한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특별히 철학분야에 눈을 뜨게 되었음을 감사드립니다.
요즈음 세기연에서 추천한 Whitehead 의 관념의 모험, 과정과 실제 등을 매우 흥미 있게 읽으면서 좀 더 일찍 이런 책을 읽었으면 하는 아쉬움을 느낌니다. 
그리고 새삼스럽게 성경은 나의 자유 함을 억압하였으며 나를 편협근성으로 몰고 갔다고 느낍니다.
감사를 드립니다.

정강길 (09-06-11 10:30)
 
내공쌓는 일은 자기 자신을 위해서도 좋은 영성수련이라 생각합니다.
물론 인간은 평균적 삶의 생존 확보가 1차적일 것이며,
그러한 가운데 교양을 쌓는 문화 형성 역시 매우 중요한 가치에 속합니다.

세기연에서 추천하는 책들은 제 입장에서는 괜찮은 책들로 추천해본 것이지만
다른 좋은 책들이 있다면 얼마든지 추천해주셔도 좋겠습니다.
암튼 그러면서 끊임없는 자기 훈련을 쌓아나가야 할테죠.

고맙습니다.

치노 (09-06-11 18:03)
 
제가 그동안 열공(?)한 책들 목록을 적어보겠습니다. 사실 소설책들이 논리나 합리성하고는 상관없다고 생각들 하는데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오히려, 다차원적으로 생각을 할 수 있죠. 세기연의 책들이 다소 딱딱한 책들이라, 즐기면서도 내공을 쌓을 수 있는 책좀 권해드릴께요.

1. 토지(박경리)
2. 한강, 아리랑(조정래)
3. 로마인이야기(시오니 나나미)
4. 사람의 아들(이문열)
5. 심청, 오래된 정원(황석영)
6. 레볼우션어리 로드(외국책)
7. 도덕경(노자: 오강남 역)
8. 진정한 보수주의자 맹자
9. 예수는 없다(오강남)
10. 광장(최인호)
11. 카라마조프의 형제들, 죄와벌
등등입니다. 생각나는 대로 뽑아봤는데, 역시 고전이네요 즐독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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