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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목 : 자랑스러운 한신, 새로운 시대의 진보로 다시 태어나기를..    
  글쓴이 : 미선이 날 짜 : 10-04-19 00:31 조회(953)
   트랙백 주소 : http://freeview.org/bbs/tb.php/b001/491 




(*진보 언론 매체인 [민중의 소리]로부터 갑작스레 부탁받은 원고인데, 일단 이곳에 먼저 올려놓는 바이다.)
 
 
 

자랑스러운 한신, 새로운 시대의 진보로 다시 태어나기를..
 
- 설립자 장공의 정신으로 한신의 진보성에 대한 새로운 좌표 설정이 필요하다!
 
  
 
 
 
1. 시작하며..

나는 한신대학교를 졸업한 것에 대해 매우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사람들 중의 하나다. 원래 매우 보수적인 기독교인이었던 내가 한신대 신학과를 들어갈 수 있었던 것은 한국 신학계의 자랑스런 진보신학이라고 할 수 있는 <민중신학>Minjung Theology을 접하고 나서였다. 당시 한신대학교는 민중신학의 본산이요 젖줄로 알려졌던 곳으로서 나의 자율적 의지로서 선택한 최초의 학교라고 할 수 있겠다. 민중신학은 한신 신학의 사상적 진보성을 대변해주는 여러 성과들 중의 하나다. 이러한 한신대만의 진보성(줄여서 ‘한신성’이라고 표기함)은 비단 기독교 영역에만 해당되지 않는다. 9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한신성>이라고 하면 우리 사회의 일반적인 진보 운동권 진영에도 잘 알려져 있을만큼 그 네임밸류를 인정받기도 했었다.

하지만 현재의 한신은 어떠한가? 이러한 과거의 영광을 되살려 오늘의 한신은 새로운 미래를 여는 진보 세력으로서의 주역이 될 수 있을 것인가? 한신의 진보성은 과연 다시 새롭게 거듭날 수 있는 것인가?

2. 한신대학교의 진보성 태동과 장공 김재준 목사
 
지금까지 한국 기독교 역사 전체를 통틀어 나 자신이 가장 존경하는 신앙의 선배를 꼽으라면 딱 두 사람이 있는데, 두 분 모두 자랑스럽게도 한신의 선배들이다. 그들이 바로 장공 김재준 목사와 늦봄 문익환 목사다. 김재준 목사는 문익환 목사의 스승이기도 하다.

알다시피 김재준 목사는 한신대학교의 태동과도 관련이 있는데, 김재준 목사가 1940년에 출범한 조선신학교가 원래 한신대학교의 뿌리였으며, 나중에 한국신학대학(1951년)으로 명칭되다가 종합대학으로의 변화(1980년)를 꾀하면서 오늘날의 정식 명칭인 한신대학교(1992년)로 불려지게 된 것이다. 이처럼 한신대학교는 원래 기독교 학교로서 출범된 것이었다. 이때 김재준 목사가 한국 기독교 및 우리 사회에 갖는 의미를 다시금 되새겨 볼 필요가 있다고 여겨진다. 나는 장공의 삶과 정신이야말로 결국은 한신대학교를 설립한 그 기초 이념의 토대가 된다고 본다.

장공 김재준 목사가 우리 시대에 갖는 소중한 의미는 누가 뭐래도 <학문의 자유>와 <역사 참여>의 정신일 것이다. 이는 한신대학교가 지금까지 걸어왔던 과거의 주요 발자취와도 맞닿아 있다. 한신대학교는 지금까지도 엄연히 한국기독교장로회 총회의 관할을 받는 대학교인데, 바로 그 한국기독교장로회를 태동시킨 선각자가 다름 아닌 김재준 목사다. 그는 1953년 보수적인 대한예수교장로회 기독교 진영과 갈등을 빚으면서 결국 한국기독교장로회를 이끌고 나왔었다. 당시 그가 주장한 ‘학문의 자유’로서의 성서비평의 도입은 지금도 여전히 교계엔 신선한 충격으로 여겨질 만큼 놀라운 행적으로 남아 있다. 오늘날 한국 기독교의 현실이 아직도 반세기 전에 김재준 목사가 주창한 그 정도의 기독교조차 못되어 있다는 점에서 볼 때 그가 얼마나 앞서 나간 선각자였는지를 알 수 있게 해주는 대목이기도 하다.

뿐만 아니라 이후의 김재준 목사는 한신대학교의 역사에도 남아 있듯이 반독재 투쟁 및 민주화운동과 통일운동에 수많은 족적을 남긴 바 있다. 물론 김재준 목사에게도 초창기 신사참배 문제 논란 같은 흠도 없잖아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 자신이 김재준 목사를 가장 존경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로는 그 이후에 걸어갔던 길이 이를 상쇄할 만큼이나 한국 기독교 역사와 전체 우리 사회에 많은 족적을 남길 만큼의 엄청난 길을 걸어갔었기 때문이다(KBS 인물현대사-“지상에 천국을 꿈꾸다, 김재준편” 방송 참조). 그의 제자였던 걸출한 문익환 목사의 등장과 안병무와 서남동의 민중신학 태동은 한신대학교의 역사와도 함께 남아 있을만큼 김재준 목사의 산파적 역할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것이었다.

내가 여기서 말하고 싶은 것은 애초 장공 김재준 목사를 통해서 한신대학교의 역사를 봤을 때 그는 지금까지도 보수화되어 있는 한국 기독교와는 좀 더 다른 새로운 대안 기독교의 변모를 꾀한 점이 있어 보인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새로운 기독교의 모습은 적어도 이론적으로는 사상의 자유로운 탐구가 보장되고 또한 실천적으로는 역사 참여 및 사회정의 운동으로 이어지는 특징을 갖는다는 것이다. 이는 오늘날 본인이 추구하는 새로운 대안 기독교의 모습과도 정확히 일치하는 정신이다.

3. 한신대학교의 진보성, 길을 잃다..

한신대만의 강렬하고도 독특한 진보성은 박정희 유신독재 시절부터 서서히 빛났었다. 유신독재가 선포된 직후인 1973년에 박정희의 군사독재정권에 항의하기 위해 학교의 교수와 학생 모두 한마음으로 결연하게 삭발식을 치룬 일화는 매우 유명하다. 이후 1975년에는 결국 정권의 탄압으로 휴교령을 받을 만큼 군사독재정권에 맞서는 전통을 일궈냈을 뿐만 아니라 전두환 독재정권이 시작된 80년대 초반에도 아예 신학과 모집이 2년 간 중단되기도 했었다. 또한 한신대의 교수들이 해직당하는 일도 예사였다. 민중신학자였던 안병무, 문동환 교수는 두 번이나 해직을 당했었다. 당시 5공 독재에 맞선 한신대 학생들의 극렬한 투쟁과 86년 한신대 교수들의 시국선언 역시 우리 사회의 진보를 앞당기는데 많은 기여를 한 바 있다. 내가 알기에 7, 80년대 박정희와 전두환의 독재정권 하에서 아마도 한신대학교만큼 교수와 학생이 혼연일치가 되어 독재체제에 대한 항거를 보여준 학교는 매우 드물지 않을까 싶을 정도다.

우리는 여기서 한신대학교 역사의 진보적 자취들이 이들의 기독교 신앙과도 깊은 관련이 있다는 사실을 인지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이들의 기독교 신앙은 오늘날 대다수 한국 기독교인들의 신앙과는 사뭇 달랐었다는 점 역시 분명하게 주목되어야만 할 것이다. 오히려 보수적인 한국 개신교계는 그동안의 한신대학교를 사탄의 소굴로 여길 정도로 거의 이단시하는 분위기였었기에 그 괴리가 어느 정도인지 짐작할 것으로 본다. 독재정권으로부터 모진 고문과 탄압을 받아도 이에 굴하지 않고 항거한 종교 신앙으로서의 진보성이 우리 사회의 진보성으로도 구현된 그 새로운 의미가 바로 한신대학교만의 진보성 곧 <한신성>이었던 것이다.

그러다가 80년대 말과 90년 이후로 서서히 한신의 자랑스런 진보성은 그 길을 잃어갔다. 독재와 맞섰던 한신대학교의 찬란한 투쟁의 역사가 당시 한국기독교장로회(이하 줄여서 ‘기장’으로 표기)에 불어닥친 보수화 바람과 맞물리면서 서서히 퇴색해갔던 것이다. 기장 교단이 보수화 바람에 휘둘리다보니 한신대학교 역시 그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없었다. 이른바 기장의 교세 확장을 지향하는 목회자들이 한신대학교의 방향성에도 영향을 미쳤던 것이다. 그러면서 한신대학교에 대해 진보성을 버리라든가 한신대의 분명한 정신적 주춧돌인 장공 김재준 목사에 대해서도 교회성장에 있어선 걸림돌이 된다고 보는 흐름들이 있었다. 이는 한신성을 잠식하려는 보수 성향 기독교 목회자들의 역공 같은 것이었다.

또한 당시엔 한신대학교의 학내 문제도 있었다. 가슴 아프게도 한신대학교는 종합화의 길을 올곧게 가질 못하고 신학과 교수들과 일반 학과 교수들 간에 갈등을 일으키기도 했었는데 그 과정에서 그만 훌륭한 진보 성향의 학자들을 놓치기도 했었다. 이를 테면 1987년 벌어진 학내 민주화를 이루지 못하고 한신대학교를 결국 나가야만 했던 정운영 교수와 김수행 교수는 아마도 대표적인 사례일 것이다. 이는 한신대학교의 뼈아픈 반성으로 다가오는 대목이라고 생각된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한신대학교의 진보성이 길을 잃게 된 가장 큰 요인을 핵심적으로 말한다면, 결국은 애초의 장공 김재준이 보여준 첨예할 정도의 자유로운 학문 탐구 정신과 사회적 약자들을 우선시하는 역사 참여 정신이 기장의 보수화 바람과 맞물리면서 서서히 탈각된 점에 있다고 여겨진다. 90년대 이후로 한신대학교는 그 진보성을 점차로 상실해갔으며 오히려 예전의 한신대를 벤치마킹했던 성공회신학대에서 그 진보성이 꽃피는 분위기를 감지할 정도로 마치 옛날의 한신대가 그쪽으로 이행해버린 듯한 느낌마저 들 정도였다. 오늘날 한신대학교의 현실은 여전히 기존 기독교라는 전통의 그늘에서 크게 벗어나 있지 않다. 그것이 기독교 전통이든 정통이든 한신성이든 간에 제일 중요한 덕목은 뭐니뭐니해도 지금까지의 온갖 오류와 비극에 대한 성찰이다. 현재의 우리가 진리라고 확신하고 있는 그 어떤 것들조차도 오류와 비극에 선행할 수는 없다. 그것에 대한 반성이 온전히 이뤄지지 않는다면 결국 같은 잘못을 계속 되풀이 할 수 있는 위험이 있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단순히 한신대학교가 또 다시 과거로의 회귀와 영광을 기념하는 차원에만 머문다면 그 역시 고답적 행보밖에 되지 않을 것이다. 한신대학교가 우리 사회의 진보 역사에 또다시 뭔가를 공헌할 수 있는 새로운 부활로 일어나려면 지금까지의 오류와 실패에 기반한 새로운 진보성으로서의 반성적 기획이 있어야 한다고 본다. 그것은 뭔가? 그것은 바로 한신대만이 할 수 있는 새로운 대안 진보 기독교로서의 기획이다.
 
4. 한신대학교의 진보성, 장공의 정신으로 다시 새롭게 설정하라!
 
한신대만이 할 수 있다는 얘기는 한신대가 여전히 기독교 학교이기 때문에 그러하다. 일단 현재까지도 분명하게 명시되어 있는 한신대학교 학교 법인의 정관 제1조인 학교의 설립목적을 살펴보자. 거기엔 다음과 같이 나와 있다.

“본 학교법인은 기독정신과 대한민국의 교육이념에 의거하여 한국기독교장로회 총회 관할 하에서 한국기독교 교역자와 기독정신에 입각한 국가사회의 지도자를 양성하기 위하여 고등교육 및 중등교육을 실시함을 목적으로 한다.”

즉, 한신대학교는 어디까지나 기독교 학교를 표방하는 종합대학으로서 설립된 것이다. 그런데 지금까지 한신대학교의 자랑스런 역사들을 보면 기독교 신앙과 약자해방의 사회적 실천이 함께 공존해왔었을 뚜렷하게 엿볼 수 있을 것이다. 고 장준하 열사, 광주민중항쟁의 류동운 열사 그리고 통일운동과 민주화운동의 늦봄 문익환 목사의 삶 등등 이외에도 한신의 출신들은 기독교인이면서 동시에 사회운동을 위해 뛰어든 신앙의 선배들이 아주 많았었다. 또한 민중신학도 잘 들여다보면, 그 기독교적 가치를 사회 일반의 약자해방의 실천 담론과 연계시키고 있는 우리 사회의 대표적인 진보 기독교 진영의 신학에 해당되고 있다. 하지만 현재 이러한 모습들도 예전에 비하면 거의 전무하리만큼 한신대학교의 진보적 색조들은 매우 빛바래져 있는 느낌이 있다. 한신대학교의 신학과는 그저 기장 교단의 교세 확장에 복무하는 신학대로 남아 있는 것 마냥 여전히 한국 기독교계를 선도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며, 한신대학교의 다른 일반 학과 역시 여느 다른 대학들과 마찬가지로 취업 준비로 여전히 목메고 있는 모습들 또한 많이 볼 수 있을 걸로 본다. 

혹자는 한신대학교가 이처럼 예전의 한신성을 잃게 된 근본적인 원인을 바뀌게 된 시대적 분위기의 탓으로 돌리는 사람도 있다. 예전에는 사회적 적대 세력이 뚜렷했지만 적어도 지금은 아니라는 것이다. 나는 이러한 얘기조차도 어느 정도는 일리가 있다고 받아들이지만 보다 근본적인 원인으로는 결국 장공의 삶이 표방했던 그 정신을 한신대학교가 더 이상 발전시키지 못한 데에 있다고 본다. 이는 장공을 단순히 기념하는 것과 이를 비판적으로 발전 계승하는 것은 사실상 좀 더 다른 의미임을 말씀드린다. 내가 볼 때 21세기 한신대학교의 새로운 좌표 설정은 참신한 대안을 바라는 우리 시대의 진보적 기획들과도 새롭게 맞닿아 있어야 한다고 보는데, 바로 여기에 나는 한신대학교를 태동시킨 장공 김재준의 정신이 다시금 새롭게 부활하여 한 몫 할 수 있다고 보는 것이다.

내가 볼 때 장공 김재준이 설립한 기장 교단은 새로운 대안 기독교의 형태로 이어졌어야만 했었다. 그는 성서에 대해서도 합리적인 자유로운 탐구를 주장했는데 이는 지금도 전체 한국교계에선 받아들여지지 않고 있는 부분이다(심지어 기장 교단 안에서의 교회조차도). 게다가 한신대학교의 소중한 신학적 유산이기도 한 한국의 민중신학 역시 기존 기독교의 틀에서 나온 학문이 아니었다. 그렇다면 이것이 가능할 수 있는 새로운 대안 기독교로 이어졌어야 했음에도 기장은 그러질 못했었다. 즉, 군사독재정권에 항거할 수 있었던 힘은 내가 볼 땐 기존 기독교와는 전혀 다른 또 다른 기독교 신앙의 힘이었지만, 이것의 실체가 뭔지를 당시로선 아무도 제대로 몰랐을 정도다. 그저 시대의 아픔에 투신할 뿐이었다. 내가 볼 땐 신앙의 선배들은 이 점에선 위대한 일을 했다고 볼 순 있겠으나 적어도 90년대 이후로는 이를 제대로 구현해내는 새로운 대안 기독교로서의 신학적 작업들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했던 것이다. 그것은 심지어 지금까지조차도 올곧게 고찰되지 못한 상태로서 놓여 있다. 본인은 민중신학을 연구하면서 이것이 한신대학교 진보성의 역사와 기장 교단의 역사와도 정확히 같은 맥락의 행보를 보여주었다는 점에 대해 이미 주목한 바 있다(본인의 졸저 『화이트헤드와 새로운 민중신학』참조).

5. 한신대학교의 진보성, 제2의 새로운 기독교 학교로 다시 태어나라!

한신의 진보성은 약자해방의 사회적 실천이 가능한 새로운 대안 기독교로의 변모가 필요하다. 이러한 요소와 기존의 전통 보수의 교리적인 기독교 신앙이 서로 양립 가능할 수 있다고 보는 건 어불성설이다. 그렇기에 이점은 오늘날 기장 교단의 온전한 새로운 변혁적 쇄신과도 맞물려 있다. 현재의 기장은 그나마 사회적 실천으로선 다른 기독교 교단에 비하면 낫다고 볼 수 있을는지 모르나 여전히 시대에 뒤쳐져 있는 점들 또한 여전히 많다. 내가 볼 때 장공 김재준이 우리 사회에 특별한 기독교 무리였던 <한국기독교장로회>를 낳았듯이 이제 한신대학교와 기장은 우리 사회의 창조적인 진보성에 다시 기여할 수 있는 <새롭고 건강한 기독교 무리>를 다시금 새롭게 태동시켜야 할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이 지점에서 현재의 한신대학교의 교수들 특히 신학대 교수들 가운데는 바로 이러한 마인드의 참신한 신학자를 거의 찾아볼 수 없다는 점은 본인으로서도 여전히 안타까운 대목이 아닐 수 없는 실정이다. 거의 교단을 대변하는 교단신학자로 전락된 느낌이랄까. 게다가 이제는 민중신학조차도 제대로 연구 계승하는 신학자들도 극소수를 제외하면 거의 없는 실정이다. 쉽게 말해서 한신대학교는 여전히 장공 김재준 이상의 인물을 낳지 못하고 있는 시스템인 것이다.

그렇다면 이 지점에서 기독교인이 아닌 비기독교인이 볼 때 다소 의문을 가질 수 있다. 꼭 기독교여야만 우리 사회의 진보에 공헌할 수 있고 사회적 실천이 가능할 수 있다는 것인가? 물론 당연히 아니다! 꼭 기독교인이 아니더라도 우리 사회의 진보에 대한 공헌과 사회적 실천은 얼마든지 가능하다고 본다. 하지만 지금까지 한신만의 진보성을 역사적으로 고찰해봤을 땐 기존의 낡은 기독교가 아니면서 동시에 또 다른 새로운 기독교 신앙의 가능성과 맥락이 발견된다는 점에서 바로 여기에 한신대학교만의 진보가 추구하는 그 독특한 정체성과 한신대만의 자리매김이 있다는 애기다.

단지 지금 시점에서 한 가지 우려되는 점은 현재 한신대학교의 경우 그동안에 진행된 방만한 종합화로 인해 이러한 점을 다시 구현할 수 있는지, 혹은 근본적인 좌표 재설정을 할 수 있는지는 다소 의문스럽다는 점에 있다. 하지만 그러한 점을 감안하더라도 한신대학교는 장공의 정신으로 다시 새롭게 태어나는 기독교로서 근본적인 좌표 재설정을 해야만 한다고 본다. 나는 한신대학교가 종합대학이라는 점을 감안하기에 한신에 들어오는 모든 사람들이 꼭 기독교인이 되어야 할 필연적인 이유는 없다고 보지만, 지금까지 한신대학교가 지녀온 한신만의 진보성을 다시금 살리고자 한다면 기존의 낡은 기독교를 대체할 만한 새로운 대안으로서의 새로운 기독교 신앙의 모습들, 약자해방의 실천이 가능할 수 있는 통전적인 기독교 시스템을 우리 사회에 다시금 제시해 줄 필요가 있다고 여겨진다.

이를 테면 늦봄 문익환 목사의 삶에서도 보듯이 예수를 믿는 신앙인이면서 민중해방의 좌파적 사회활동이 가능할 수 있다는 점은 본인 역시 이를 경험하고 있는 신앙체험자로서 우리 사회에 새로운 대안 기독교 모색으로 좀 더 널리 알려져도 좋을만한 보다 놀라운 사실이 아닐까 싶다. 이때 결코 오해하지 말아야 할 점은, 한신성이란 게 기독교 신앙을 좌파적 사회운동으로 치환시키고자 하는 성격의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좌파적 사회운동으로 치환되는 기독교 신앙이라면 그것은 오히려 맥을 잘못 짚은 것인데 실제로 한신성을 그러한 것으로 오해한 사람들도 있긴 했었다. 하지만 한신의 진보성을 깊이 들여다보면 오히려 그 반대에 가깝다. 비유적으로 쉽게 말한다면, 곧 예수는 맑스를 <지양>한다는 것이며, 적어도 그 역이 아니라는 것이다. 나는 장공과 늦봄의 삶에서 종교 신앙이 더 이상 인민의 아편이 아니라 오히려 인민의 해방에 기여한다는 점에 더욱 주목하고 싶을 따름이다.

6. 한신대학교의 진보성, 그 새로운 부활을 기다리며..

한신대학교는 여전히 진보를 표방하지만, 현재의 한신대학교는 기로에 서 있다. 단순히 과거의 역사와 영광을 기념하는 것에만 그치고, 한신의 신학대가 기장 교단에 복무하는 신학으로 그리고 다른 일반학과들은 취업 준비 같은 실용적 성과들에만 열을 올린다면 한신대학교는 여느 다른 대학과 무슨 차이가 있을까 싶다. 그럴 경우 한신의 진보성은 희망이 없을 것이며, 한 때 우리 사회의 통일운동과 민주화 운동에 크게 기여했던 한신성은 올곧게 계승되지 못하고 완전히 아예 소멸될 것으로 본다.

앞서 말했듯이 현재의 한신대학교는 장공 김재준의 정신으로 새로운 좌표설정을 가져야만 한다. 일단 한신대학교는 기장 교단 내의 보수적인 목회자들이 학문 현장의 자유로운 탐구들을 제어하지 못하게끔 그 고리를 끊어야 하며, 한신대학교는 보다 뛰어난 역량의 연구교수들을 다시금 재배치시킬 필요가 있다고 여겨진다. 대학의 생명력에는 실력 있는 교수진의 배치 역시 핵심인데 솔직히 말해서 본인이 있을 때보다 점점 교수진들이 더욱 뒤떨어진다고 여겨질만큼 그저 교단을 대변하는 데에 충실한 교단신학자로 전락된 느낌이 있다. 한때 교수와 학생들이 혼연일치가 되어 자유로이 학문을 탐구하고 잘못된 사회 부조리와 체제에 대해 항거했던 그때 그 시절의 한신성을 찾아보긴 힘든 실정이다.

앞으로의 한신대학교는 우리 사회에 장공 김재준 이상의 인물을 낳을 수 있도록 끊임없이 연구 투자해야만 할 것이다. 나는 취업 성과에 목을 메는 한신대학교를 바라지 않는다. 또한 무슨 우수대학교 선정에 목을 메는 한신대학교 역시 바라지 않는다. 물론 그 또한 필요할는지 모르나 적어도 한 인물을 배출하더라도 전체 생애를 <현재의 기독교를 넘어서는 새로운 기독교>를 위해 헌신할 제2의 장공이 나와야 한다고 본다. 기장의 출현이 한국 기독교 역사와 사회에 새로운 의미를 가져다주었듯이 그리고 그 안에서 기라성 같은 민중운동, 통일운동의 일꾼들이 나왔듯이 앞으로의 새로운 기독교 운동 역시 그 자체로 이미 새로운 사회운동이 될 수 있음은 말할 나위 없다.

적어도 우리 사회의 기독교만이라도 제대로 건강해보라. 내가 볼 땐 사회 전체가 업그레이드 될 것이리라. 하지만 현재의 기독교는 이미 우리 사회의 적대 세력으로서 비판되고 있는 실정이다. 사회와 소통되지 않는 그런 기독교라면 차라리 소멸되는 게 더 나을 것이다. 그런데 한신대학교가 지금까지 걸어온 면면들을 꼼꼼히 살펴보면 그러한 낡은 기독교의 길이 아닌 또 다른 새로운 기독교의 길이 가능할 수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는 점에서 우리 사회가 여전히 주목해야할 새로운 의미를 지닌다고 본다. 장공 김재준, 장준하 열사, 류동운 열사, 문익환 목사, 민중신학자 안병무, 허병섭 목사, 김규항 선배 등등 이러한 분들이 지향하는 전혀 또 다른 새로운 대안으로서의 인민해방의 기독교가 가능하다고 볼 경우 이에 대해 진보적 가치를 추구하는 우리 사회가 반대할 이유는 전혀 없으리라고 본다. 한신은 장공 김재준과 같은 어쩌면 그 이상의 그러한 인물을 키워내는 시스템이어야만 한다.

마침 현재의 한신대학교는 작년 하반기부터 새롭게 부임한 채수일 총장이 맡고 있어 다소 기대를 걸어볼 만하다고 생각도 든다. 하지만 여전히 길은 험하고, 벽은 높으며, 넘어야 할 산들이 산적해 있는 실정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한신인이었음을 여전히 앞으로도 자랑스러워할 것이면서 동시에 한신성을 또다시 새롭게 부활시킬 제2의 장공을 하염없이 기다릴 것이다.

정강길 / 연구소 연구실장
 
관리자 (10-04-20 20:30)
 
아, 벌써 발빠르게 원고를 부탁받은 [민중의 소리]에 이미 올라와 있네요.
http://www.vop.co.kr/A00000291180.html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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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2 약자에 대한 눈뜸 - 잠자와 깬자의 차이 미선 690 12-08
171 <초자연주의>를 인정하면 나타나는 문제들.. 미선 512 11-04
170 [어떤 진리관] 진리(眞理)와 진리(進步)의 차이 그리고 퇴리(退理) 미선 482 07-05
169 시작이 있는 우주인가? 시작도 끝도 없는 우주인가? 미선 506 06-18
168 <종교 위의 종교>에 대해.. 미선 477 05-04
167 초자연주의와 자연과학 그리고 신비주의 구분 미선 500 04-06
166 지적설계론(창조론)자들과 유물론적 과학자들 간의 공통점 미선 462 12-10
165 종교 신앙의 반지성에 대한 단기적 대안 (1) 미선 499 11-24
164 "몰락이냐 도약이냐" 21세기 종교 진화의 방향 (종교학회 발표) 미선 466 09-10
163 '나(I)는 누구인가?'라는 근원적인 물음에 답하려면.. (1) 미선 475 04-13
162 유신론-무신론을 넘어서 <탈신론>으로 미선 629 05-04
161 <초자연주의>를 버려야 기독교가 산다! 미선 598 02-04
160 몸학 기독교 & 몸학 사회주의 추구 미선 500 12-31
159 <자유>에 대한 짧은 생각.. (2) 미선 556 08-24
158 몸학 기독교에선 기독교 신학이 굳이 필요하지 않은 이유 미선 627 03-24
157 인간 무의식의 두 가지 상태와 보다 상향적인 의식 발달을 위하여 미선 576 03-03
156 (1998년 원글) "화이트헤드 철학에서 본 민중신학 비판과 대안적 모색" (2) 미선 504 02-18
155 종교(宗敎, Religion)에 대한 동서양의 어원적 의미와 전후 혼동 오류 미선 502 02-06
154 기존 기독교와 <몸 기독교>의 분명한 차이들 미선 511 01-21
153 GIO명상 방법 12단계 (몸기독교가 제안하는 수행 방법 중 하나..) (5) 미선 817 01-16
152 2013년 계획.. 몸 기독교 (4) 미선 675 01-02
151 민중신학 40년.. (20년전 안병무 기사를 보며..) 미선 469 12-25
150 진보정치 교육의 사각지대와 민중 역사 주체론에 대한 반성과 재고찰 미선 465 12-22
149 교회에 대한 권력비판? 교리비판? 어느 것이 더 유효할까? (4) 미선 717 12-06
148 왜 예수인가 (필독 원함!) (13) 미선 2071 11-04
147 새로운 기독교의 방향과 몸학의 종교관 (2) 미선 493 10-05
146 새로운 기독교의 방향과 몸학의 종교관 (1) 미선 537 08-17
145 기독교 교리의 문제는 기독교만의 문제가 아니다! (3) 미선 588 06-11
144 초대교회와 바울에 대해... 미선 642 04-28
143 '작은 교회'가 정말 대안인가? 핵심은 교리다! 미선 509 04-22
142 진선미의 기원과 예수사건 (1) 미선이 478 02-24
141 중간 복음주의 신학자 알리스터 맥그리스의 <과학신학> 비판 (13) 미선이 488 12-13
140 끔찍한 <몸의 신학>에 속지 마시길! (유사품 주의) (8) 미선이 570 11-15
139 종교운동과 사회운동을 구분 못하는 오류-기존 진보 기독교 비판 (1) (2) 미선이 729 10-14
138 여전히 예수얼굴에 똥칠하는 개신교 정치세력들 (5) 미선이 537 08-30
137 새로운 기독교 역사의 국내 선구자들 : 유영모, 함석헌, 김재준 미선이 514 06-26
136 조용기 목사의 할 일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미선이 542 05-14
135 몸학과 새로운 기독교 운동 그리고 30년 후의 기독교 미선이 749 04-11
134 <인간의 자유의지>라는 착각과 환상에 관한 문제 (14) 미선이 874 03-04
133 기존 진보 기독교인들의 <생명평화> 담론에 반대한다! (업그레이드판) (8) 미선이 855 02-17
132 기존 진보 기독교계의 ‘생명평화' 담론에 근본적인 의문을 제기한다. 미선이 392 02-10
131 영혼구원의 강조에서 <총체적인 생명구원의 강조>로 (4) 미선이 450 02-05
130 성서문자주의 또는 성서무오설 신앙보다 더 뿌리 깊은 고질병은? (9) 미선이 1033 02-02
129 죄의식의 종교에서 <이웃과 함께 성찰하는 종교>로 미선이 445 02-01
128 수직적 구조의 교회에서 <수평적 구조의 교회>로 (2) 미선이 596 01-21
127 서구식 목회문화가 아닌 <우리식 목회문화>로 미선이 513 01-21
126 과정신학에 대한 비판과 민중신학의 신 이해 접맥 미선이 811 01-13
125 ★ 예언 (1) 미선이 815 12-24
124 ♣ 새로운 기독교 신학의 인간론 (4) 미선이 658 12-19
123 ♣ 새로운 기독교 신학의 인간론 (3) (4) 미선이 747 12-12
122 ♣ 새로운 기독교 신학의 인간론 (2) (10) 미선이 973 12-05
121 새로운 기독교의 시간관, 태초와 종말로서의 시간관을 거부한다! (4) 미선이 795 12-01
120 ♣ 새로운 기독교 신학의 인간론 (1) 미선이 974 11-30
119 [예수운동 예배 견본] 새로운 기독교의 <예수운동 예배>를 위하여 미선이 1075 11-28
118 숭배하는 예배에서 <닮으려는 예배>로 (1) 미선이 928 11-19
117 거꾸로 흘렀던 감리교 역사, 바로 세우기엔 아직 멀었나 미선이 814 11-10
116 <새로운 기독교>를 소개하는 전체 안내 링크글 (계속 업데이트 예정) 관리자 2745 11-03
115 [논평] 봉은사 땅밟기 추태, 성경 '문자주의' 그 야만의 역사 넘어서야 (1) 관리자 965 10-29
114 기존의 진보 기독교와 새로운 기독교 운동 (1) 미선이 810 10-22
113 1세대 민중신학자 안병무의 미완의 작업과 기존 민중신학의 과제 미선이 788 10-19
112 [새기운 성명] 4대강 사업 관련, 문정현 신부의 정진석 추기경 비판을 지지한다 관리자 751 10-19
111 스퐁, "스티븐 호킹과 유신론/인격신의 죽음" (작은불꽃님 역) 관리자 1055 1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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