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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목 : 새기운(새로운 기독교 운동연대) 식구들과 함께한 갈매나무 말씀 나누기 (10.08.29)    
  글쓴이 : 미선이 날 짜 : 10-09-06 22:39 조회(7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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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기운(새로운 기독교 운동연대) 식구들과 함께한  갈매나무 말씀 나누기 (10.08.29)
 
 
정리 - 황재학 선생님 (갈매나무 공동체)
 

28일 오후 5시에 서대전역에 도착해서 차를 주차하고 역 구내로 들어갔다. 언제나 떠나고 오는 사람들로 붐비는 역 구내에는 배낭을 맨 외국인들도 많이 눈에 띠었다. 강현석을 만나 정강길 선생님 도착 여부를 알기 위해 전화를 했더니 이미 도착해 대합실에 있다고 해서 함께 찾아보았다. 한 쪽 구석을 보니 모자를 쓰고 책을 읽고 있던 선생님을 만나 반갑게 인사를 나누고 이어 서울에서 내려온 새기운 식구들과 순천에서 오신 고종대님의 가족, 전주에서 자가용을 몰고 오신 전영철 목사님과 함께 계룡산 자락에 있는 서울 식당으로 자리를 옮겼다.
 
서로 인사를 나누고 주문한 버섯전골로 저녁 식사를 하면서 새기운의 방향성과 필요성에 관해 격의 없는 대화를 나누며 막걸리 잔을 기울였다. 간간히 내리는 빗소리를 안주 삼아 계룡산의 어둠이 깊어졌다. 9시 30분경 아쉬운 자리를 정리하고 순천에서 올라오신 고종대님 가족은 잠자리를 찾아 찜질방으로 가시고 정강길 선생님을 비롯한 새기운 식구들은 잠자리를 마련하기 위해서 계룡시로 넘어와 숙소를 정했다.
 
숙소는 깨끗하고 비용도 생각보다 저렴했다. 여장을 풀고 강현석님과 함께 인근 마트에 가서 약간의 맥주와 안주거리를 사가지고 숙소로 돌아왔다. 강현석님은 차편 때문에 함께 자리를 하지 못하고 먼저 일어났다. 새기운 식구들과 함께 맥주를 마시며 새기운에 참여하게 된 동기와 배경을 들었다. 각 부문에서 나름대로 치열하게 살아온 사람들과 함께 있다는 그 사실 만으로도 힘이 솟았다. 자신의 자리에서 하느님 나라를 이루려는 열정이 오늘을 있게 했다. 아쉽지만 내일 모임을 위해 1시 30분경 자리를 정리하고 편히 쉬라는 인사를 남기고 집에 돌아왔다.
 
다음 날 아침 7시 40분경에 일어나 새기운 식구들이 머무는 숙소에 가서 아침밥을 먹을 수 있는 식당을 알려주고 다시 집에 돌아와 오늘 점심 때 먹을 오징어 초무침을 만들어 놓고 아침밥을 먹은 후 10시경에 숙소에 가서 새기운 식구들을 태우고 모임 장소인 변동에 있는 어린이 달팽이 도서관에 10시 45분경에 도착했다. 조금 뒤에 갈매나무 식구인 윤석원, 강현석, 허은신님이 오시고 이어 순천에서 올라오신 고종대님 가족과 이정석, 이문희님이 모임에 참석했다.
 
처음 보는 자리라 서로 인사를 나누며 커피를 마시고 이문희님의 사회로 예배를 시작했다. 먼저 갈매나무 모임에서 자주 부르는 당신은 땅의 사람으로 시작되는 노래를 부르고 갈매나무 대표인 윤석원님의 인사말을 듣고 돌아가면서 간단한 자기소개(윤석원, 하숙희, 허은신, 김인자, 신옥희, 고종대, 김수복, 전영철, 최덕효, 조일범, 정강길, 이정석, 강현석, 황재학, 이문희)를 했다. 나이, 사는 곳, 하는 일이 다 달라도 이 땅에서 역사적 예수를 살아내려는 진심을 느낄 수 있었다.
 
이어 이문희님이 준비해온 로마서 12장 1-8절, 14장 13-23절을 가지고 함께 말씀을 나누는 시간을 가졌다. 이문희님의 여는 말씀으로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한 몸을 이루고 있는 지체라는 사실과 공동체 안에서 서로 남을 심판하지 않아야 된다라는 점을 이야기 하고 본문을 바탕으로 돌아가면서 자신의 생각이나 의견을 나누기로 했습니다. 본문 중 깊게 논의 되었던 문제는 크게 세 가지로 나눌 수 있었습니다.

1. 로마서 12장 3절 ‘여러분은 스스로 마땅히 생각해야 하는 이상으로 생각하지 말고 하느님께서 각 사람에게 나누어 주신 믿음의 분량대로 분수에 맞게 생각하십시오.’ 이 말씀은 예수의 삶의 의미를 제약하려는 뜻이 강할 뿐 아니라 바울의 생각과 다른 생각들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의도를 가지고 있습니다. 예수의 삶은 기존의 지배체제와 이데올로기에 적극적으로 저항하는 삶이였습니다. 다시 말해서 마땅히 생각해야 하는 이상으로 생각한 것입니다. 분수를 넘어선 생각을 한 것입니다. 바울은 이미 자신의 사고방식에 갇혀 버려 진정한 예수의 삶의 의미를 보지 못한 것입니다. 하느님 나라는 마땅히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생각할 때 이루어지는 나라입니다.(황재학)

사회적 조건에 맞춰 살아라. 능력에 맞춰 살아라. 하느님이 정해주신 분량대로 살아라. 다시 말해서 하느님께서 각 사람의 믿음의 분량까지 정해 주신다면 신앙생활을 필요가 없는거죠.이러한 사고방식은 허무주의와 운명론에 빠질 수밖에 없습니다.(?)

2. 예수와 바울은 어떤 관계인가? 본문 12장 2절 ‘여러분은 이 시대의 풍조를 본받지 말고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서 하느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완전하신 뜻이 무엇인지를 분별하도록 하십시오.’ 바울은 이 시대의 풍조를 본받지 말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은 지배체제가 내면화 시킨 것 즉 지배 이데올로기로부터 벗어나라는 뜻인데 과연 오늘날 교회나 기독교인들은 이 말씀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묻지 않을 수 없습니다. (강현석)

여기서 예수와 바울의 관계에 대해 지금까지 연구된 내용을 보면 바울은 역사적 예수를 알지 못했다라고 봅니다. 다시 말해서 바울은 자신의 필요에 따라 ‘예수의 종교’에서 예수에 대한 종교로 예수에 대한 생각을 바꾸어 놓았다고 생각합니다. 바울이 생각한 예수상에 대해 의문을 가져볼 만합니다.(정강길)

바울은 새로운 기독교 관점에서 보면 의문가는 점도 없지 않지만 넓은 의미에서는 가해자가 아니라 피해자라고 생각됩니다. 바울은 자신의 말과 편지가 후대에 남아 졍경에 포함되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을 겁니다. 다만 바울의 뜻을 따르는 공동체 구성원 중 누군가가 당시의 시대적 상황과 공동체의 요구에 따라 바울의 뜻을 새롭게 해석한 것이라 봅니다. 즉 사회 공동체의 공익을 위한 재해석은 필요한 거라고 생각합니다.(고종대)

다양한 바울의 모습이 성서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빌레몬서에 기록된 모습처럼 혁명적인 면이 있는가 하면 세상에 권세에 복종해야 한다는 보수적인 모습도 찾아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바울의 보수적인 가르침이 얼마나 많은 역사적 비극을 유발했는지 알아야 합니다. 어떻게 보면 바울은 예수의 생각과 정반대의 길을 가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만약 예수가 바울 같은 생각을 했다면 정치범으로 십자가에 못 박히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강현석)

바울을 생각할 때 공산주의자에서 재빨리 변신해서 친일주의자가 된 박정희를 떠올리게 합니다. 바울은 초기에 유대교도로서 기독교도들을 핍박하던 인물입니다. 그런 그가 다메섹으로 가는 도중에 예수를 만나 180도로 변화되어 기독교인이 되었을 때 자신의 과거 때문에 오버할 수밖에 없는 정서적인 문제가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따라서 바울의 행적을 의심해 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어떻게 보면 요주의 인물이죠. (최덕효)

사도 바울에 대해 생각해 보면 예수 자체에 대한 열정 보다는 자기 열정, 도취에 빠지지 않았나 또한 예수를 구원의 메시아로만 보지 않았나 하는 점이 걸립니다. (전영철)

예수냐 바울이냐는 예수의 말씀 속에서 걸러져야 합니다. (고종대)
 
3. 로마서 14장 13절 ‘이제부터는 남을 심판하지 마십시오. 형제자매 앞에 장애물이나 걸림돌을 놓지 않겠다고 결심하십시오.’ 공동체 안에서 사람마다 의견이 다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의견이 다르다고 해서 남을 무시하거나 업신여기는 일은 없어야 합니다. 자신의 신앙과 신념만을 고집하여 남에게 상처를 주어서는 안 됩니다. 서로의 차이 때문에 상대방의 마음을 아프게 하는 행동을 조심해야 합니다.(윤석원)

본문은 유대인의 정결법과 관련된 내용으로 율법을 중시하는 야고보 공동체와 믿음을 중시하는 바울 공동체 간의 갈등에서 비롯된 구절입니다. 바울은 공동체 내부에서 일어나는 일들에 대해서 자신의 입장을 명확히 밝힘으로 공동체 내의 갈등을 조기에 차단하고 내부 결속을 다지려는 의도가 담겨 있는 구절입니다.(강현석)
 
문제는 의견이 다를 때 그것을 무조건 덮는 것이 아니라 열린 사고와 마음으로 서로의 의견을 솔직하게 드러내놓고 대화하는 자세입니다. (황재학)

개인의 신념과 공동체의 신념이 맞아 떨어져야 기쁘게 신앙생활을 할 수 있는 거죠. 거기서 고려해야 할 점은 속도나 정서 문제에서 상대방을 배려하는 마음이 중요합니다. 아무리 이성적이고 합리적이고 객관적인 근거를 들어도 정서적으로 함께 하지 않으면 받아들이기 힘든 거죠. 또한 공동체 안에서 구성원들이 함께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가? 공동체 안에서 구성원들이 어떻게 함께 갈 수 있을까? 공동체 안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인가를 고민하는 자세가 있어야 합니다.(정강길)

공동체 안에서 형제끼리 걸려 넘어지지 않아야 합니다. 남의 의견을 존중하는 것부터 사랑이 시작됩니다.(윤석원)

공동체가 쉽지 않다. 사람은 비이성적이다. 공감이 가는 말입니다. 공동체 내에서 의견이 서로 다를 때 자신의 감정과 생각을 절제하는 것도 필요합니다. 또한 먼저 손을 내미는 포용력이 요구됩니다. (이정석)

공동체 안에서 상대방의 감정과 열린 사고를 존중하는 마음가짐이 필요합니다.(정강길)

교회에 나와 예배를 드림으로 위로 받고 평안을 얻고 싶습니다. 그런데 역사적 예수를 알게 되니 왠지 불편한 느낌이 듭니다. 종교가 가지고 있는 개인의 위안와 의로운 삶의 실천이 함께 갔으면 좋겠습니다. 또한 공동체 안에서 서로가 상처받지 않도록 배려하는 마음이 필요합니다. (허은신)

공동체 안에서 남에게 상처 줄 수 있는 말은 조심해야 합니다. 무의식적으로 내뱉은 말이 남에게 상처를 준다면 그런 행위를 하지 않으려는 노력이 있어야 합니다.(김수복)

공동체를 생각할 때 개인차가 심하다 보니 어디까지 함께 해야 하는가 고민 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의견의 다름이 감정적으로 싫음이 되는 상황에서 공동체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함께 할 수 있는 너그러움과 끌어안음이 필요합니다.(신옥희)

일본 만화인 ‘도박 묵시록 카이제’에 보면 인간 존재는 근본적으로 외로운 존재라고 합니다. 진리를 탐구하는 일도 그 자체 숙명적으로 고독한 일입니다. 그럼 공동체는 무엇인가라고 할 때 ‘있는 그 자체’가 위안이 될 때 공동체로의 의미가 있지 않을까요. ‘생각은 다르지만 지금 우리가 함께 살아가고 있다’라는 인식 그 자체가 공동체 아닐까 합니다.(조일범)

위의 문제 외에 본문과 관련해서 나눈 말씀입니다.
성경에 대해 의문을 가지기 보다는 습관적으로 해석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편하게 살아라. 분수에 맞게 살아라 등 지금 생각해 보면 그런 해석에 분노하지 못한 것이 억울합니다(김인자)

우리는 기존 체제에 순응하면서 살아왔습니다. 또한 우리 사회는 승자와 패자로 나뉘어져 있을 뿐만 아니라 서열화 되어 있습니다. 예수가 좋은 이유는 이러한 사회 구조를 근본적으로 뒤집어엎었다는 겁니다.(최덕효)

우리가 사용하는 언어 습관 속에서도 은연중 자신과 남을 구분하려는 분리적 사고가 나타납니다. 일상적인 용어로도 쉽게 전달할 수 있는 내용들을 어려운 학술적인 용어를 사용해서 자신의 우월감을 드러내려는 행위가 우리 지식인 사회에 널리 퍼져 있습니다.(최덕효)

하느님이 있다면 왜 어렵고 힘든 사람이 있을까? 불만이 많습니다.(하숙희)

새기운 식구들과 함께 좋은 말씀을 나누니 시간이 빨리 간 것 같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을 통해서 그동안 당연시 되었던 문제들을 새롭게 조명해 보았습니다. 또한 공동체의 의미를 다시 생각해 보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무엇보다도 날로 물신화 되고 파면화 되어 가는 세상 속에서 있음 그 자체가 큰 힘이 된다는 말씀이 마음에 와 닿았습니다.
 
그럼 문익환 목사님의 시에 곡을 붙인 ‘고마운 사랑아’를 부르고 돌아가면서 한 줄 기도를 드린 후에 오늘 예배를 마치기로 하겠습니다.

1시 경에 예배를 마치고 강현석님이 준비해 오신 음식을 맛있게 먹으며 서로의 친교를 나누었습니다. 바쁘고 힘든 상황 속에서도 돼지 불고기를 비롯한 여러 가지 음식을 만들어 오신 강현석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이후 2시 부터는 세기연이 주관하는 독서 포럼이 바트 어만의 저서인 ‘예수 왜곡의 역사’를 가지고 정강길 선생님의 사회와 최덕효님. 전영철님의 발제(새기운 싸이트에 가면 자료가 있을 듯 합니다)에 이어 뜨거운 토론이 있었습니다.
 
2시간 반 정도 진행된 독서포럼이 끝나고 마지막 순서로 새로운 기독교 운동 연대 준비와 관련된 제안서를 검토하고 오늘의 모든 일정을 박수로 끝낸 뒤 막걸리 한 잔으로 숨을 돌리고 6시 경에 새기운 식구들은 전영철님의 자가용으로 구례로 향하고 고종대님 가족도 순천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조일범님은 아쉽게도 포럼이 끝나자마자 장인어른 생신에 참여하기 위해서 서울로 떠났습니다. 오늘 모임에 참여한 모든 이들이 아쉬움을 뒤로 한 채 다음 모임을 기약하며 석별의 정을 나누었습니다. 달팽이 도서관을 나서니 어느덧 선선한 가을이 온 듯 합니다.

추신 : 위의 내용은 돌아가면서 함께 나눈 말씀을 주제별로 나누어 정리한 글입니다. 시간적 순서로 구성하지 않고 주제에 맞는 내용을 글쓴이가 편집하였습니다. 순전히 개인적인 메모와 어줍지 않은 기억력을 바탕으로 정리한 내용임을 아시고 양해해 주시길 바라며 정말 자신의 발언 내용과 의미가 다르다면 댓글을 달아 의사를 표현해 주시면 수정하겠습니다.
 
[출처] 평신도 갈매나무 공동체 까페
 
 
미선이 (10-09-06 22:40)
 
윗글은 평신도 갈매나무 공동체의 황재학 선생님께서 잘 정리해주셨습니다. 이 자리를 빌어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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