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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목 : 안티기독교, 어떻게 볼 것인가 (2)    
  글쓴이 : 정강길 날 짜 : 07-02-19 23:16 조회(3618)
   트랙백 주소 : http://freeview.org/bbs/tb.php/b001/64 




 
[2007-02-19 23:14:26] 

 
<안티 기독교, 어떻게 볼 것인가> 그 후..
 
정강길 기자 (http://freeview.org)
 
 
<안티 기독교, 어떻게 볼 것인가>라는 글
 
얼마 전 필자는 <안티 기독교 어떻게 볼 것인가>라는 글을 올린 바 있다.
그 글을 대략 정리하자면 다음과 같다.
 
1) 안티기독교의 발생은 기존의 보수 기독교에 대한 폐해에서 비롯했었다. 2) 따라서 보수 기독교의 폐해들을 끄집어내는 데 있어서는 어떤 경우엔 탁월한 점도 없잖아 있다. 당연히 건강한 기독교라면 그러한 점도 충분히 짚어가야 할 것이다. 3) 하지만 안티기독교는 기존의 보수 기독교와 마찬가지로 폭력적 성향을 가진다. 4) 안티기독교의 한계는 기독교박멸주의를 도그마로 가진다는 점에 있다.

5) 대체로 안티기독교의 비판들은 보수 기독교에 대해 한정되며, 진보기독교는 비껴간다. 단지 진보가 비판되는 것은 기독교를 계속적으로 고착화하고 있다는 점에서 진보측을 더 얄미운 존재로서 비판되기도 한다. 6)안티기독교의 대표 그룹인 반기련(반기독교시민운동연합)은 현재 시점상에선 시민단체운동이 아닌 동호회 정도이다.

7) 안티기독교는 기존의 보수 기독교와 <적대적 공생관계>에 놓여 있다. 8) 안티기독교는 기존의 보수 기독교의 폐해가 낳은 또 다른 괴물이고, 감정의 배설이 많이 난무하는 면도 없잖아 있지만, 건강한 기독교라면 안티기독교의 이러한 점까지도 충분히 인지하면서 나아감이 필요하다고 본다.
 
애초 글의 골자들을 정리하자면 이상과 같고 물론 직접 원문과 대조해봐도 좋겠다.
 
본인이 안티 기독교에 대해 글을 쓰게 된 이유
 
지금까지 주로 보수 근본주의 기독교와 싸워 온 나 자신이 그 글을 쓰게 된 것은 안티기독교 현상을 통해 전체 기독교 방향의 맥락을 보려한 점이 있었고, 또한 안티기독교가 보수 기독교의 폐해로 인해 주로 발생했다지만, (이를 충분히 인지함에도 불구하고) 안티기독교 역시 복수대응식으로 반응한 폭력적인 면도 없잖아 있기 때문에 적어도 한 번 정도는 이를 분명하게 짚고 넘어가기 위해서였다.
 
참고로 내 주변을 포함하여 대부분의 진보기독교인들은 안티기독교에 대해 그다지 별관심이 없다. 그저 심드렁할 뿐이다. 안티기독교인들에게는 조금 자존심 상할 얘기일 수 있겠지만 말이다. 하지만 여기에는 그 이유가 있다. 안티기독교인들이 기독교를 비판하는 화살들은 거의 대부분이 보수 기독교쪽을 향해 있는 내용들이기 때문이다. 아마도 내가 안티기독교에 대한 글을 올리는 거에 대해서도 그런 쓸데없는 수고는 왜 하냐고 말할 지도 모를 일이다.
 
그런데 필자가 크리티앙에 글을 올린 이후, 흥미롭게도 안티기독교측으로부터 몇 가지 반응들이 있었다. 나의 글이 그들을 조금 시끄럽게 했는가 싶다. 그런데 그 반응들이 조금 황당한 얘기들도 나오기도 해서, 적어도 그에 대한 정리를 조금 확실하게 해둘 필요가 있다고 여겨져 이 글을 쓰게 된 바이다.
 
안티 기독교를 말할 때 왜 반기련 중심인가
 
첫 번째는 안티 기독교의 주류를 반기련으로 보고 쓴 본인의 그 글에 대해, 왜 하필 반기련이 안티 기독교로 대표되느냐 식의 불만이 반기련외의 다른 군소그룹에 속하는 안티기독교인의 글에서 나왔었다.
 
하지만 나 자신이 반기련을 든 것은 (그들 스스로도 인정하듯이) 반기련이 안티기독교계에선 가장 많이 인지되고 가장 많이 활발한 활동을 하는 안티 기독교계의 주류 실세라고 보았기에 거론한 것뿐이다. 그런데도 여전히 불만이 많았는지 반기련에 헤게모니를 빼앗겼다고 보는 것인지 혹자는 반기련을 안티기독교의 대표로 인정할 수 없다는 얘길 해대지만, 내가 보기엔 구체적인 근거가 없는 한 그런 말들은 그저 볼멘소리에 불과할 뿐이다.
 
이때 어떤 안티기독교인은 매우 황당한 근거를 가지고서 논리를 펴는데, 그 집단에 단 한 명만이라도 다른 색깔을 지닌 사람이 있으면, 그 집단을 단일하게 얘기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이런 논리로 따지면 우리는 <순복음교회>에 대해서도 <보수꼴통교회>라고 얘기할 수 없다. 단 한 명이라도 진보기독교인이 다니는 한 말이다. 우리는 <분필>을 <하얀색>이라고 보아서도 안된다. 조금이라도 다른 색깔이 섞여 들어 있는 한 말이다.
 
안티기독교가 왜 <기독교박멸론>이냐
 
두 번째는 안티기독교가 왜 <기독교박멸론>이냐 라는 것이다. 이것은 첫 번째와도 연관되는데, 이들 얘기에 따르면 반기련측은 <기독교박멸론>을 외칠는지는 몰라도 그 외 안티기독교는 결코 기독교박멸주의로 매도될 수 없다고 주장한다. 그저 안티기독교는 <기독교싫다>는 점만 공통으로 할 뿐이지, 그 외에는 다른 차이를 갖는다는 것이다. 여기서 나로선 그 외의 다른 차이가 무엇인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혹시 기독교 반대와 비난을 반말과 욕설로 전하느냐 아니면 점잖게 타이르느냐 정도? 하지만 이것은 그저 전달방식의 차이이지 근본적인 사상적 정체성에 따른 차이가 아니다.
 
나는 이미 <반기독교>라는 그 사유자체가 지닌 폭력성에 대해 얘기하는 거다. 그래서 본인은 저들에게 그렇다면 기독교박멸론 외에는 도대체 기독교에 대해서 어떤 입장이 또 있냐고 물으니까, 궁색하게도 그저 열려있을 뿐이라거나 정리되진 않았지만 형성중이라거나 다양할 뿐이라고만 얘기한다. 그러나 이런 대답은 내게 있어서 여전히 개념정리가 되지 않은 자들의 무뇌아적 발언일 뿐이다. 자기가 뭘 얘길 하고 있는 지조차 철저히 파악 못하고 있는 것이다.
 
분명히 말하지만, <안티기독교>Anti-Christianity라는 자체가 함의하고 있는 뜻은 분명하게도 <반기독교> 혹은 <기독교반대>이다. <기독교반대>는 <기독교>와 뒤섞일 수도 연합될 수도 없다. 기독교반대의 입장에서는 오로지 기독교 자체에 대한 반대인지라 결국은 기독교가 이 땅에서 없어져야만 <기독교반대>도 그 존립근거가 사라지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둘은 필연적으로 <적대적 공생관계>에 놓여 있다. 대화의 여지가 없을 만큼 영원한 앙숙일 뿐이다.
 
 
▲ 안티 기독교에선 기독교에 대한 <혐오감>과 <증오>가 많다. 예수에 대해서도 그 어떤 긍정성을 갖기란 매우 힘들다. 저들이 저렇게 나오는 맥락도, 기독교를 <개독>이라고 즐겨부르는 것도 알고 보면, 논리적으로도 아주 자연스런 귀결인 것이다.
 
분명히 말한다. 적어도 자기 자신을 <반기독교>라고 표방하는 한에 있어선 그들은 기독교 없는 세상을 꿈꾸는 자들일 뿐이다. 내가 보기엔 이것이야말로 <기독교박멸론>이 아니고 뭐겠는가. 만일 자신이 기독교의 건강한 가능성도 인정한다면 <기독교반대>라는 <안티기독교>의 테제에 정면으로 위배된다. 자신을 <안티기독교인>이라고 표방하는 거 자체가 모순인 것이다. 왜냐하면 건강한 그 부분만큼은 기독교반대를 표방할 이유가 전혀 없는 <기독교긍정>의 지점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자신을 <안티기독교>라고 표명하면서 <기독교박멸주의자>가 아니라고 말하는 사람은 자기 안에 있는 내적 모순을 보지 못하거나 개념에 대한 철저한 이해가 부재할 따름이다.
 
안티기독교인의 진보기독교에 대한 이해
 
세 번째는 안티기독교인들의 진보기독교에 대한 이해다. 이미 짐작을 하고 있었지만, 진보기독교에 대한 이해가 얼마나 무지하리만큼 단선적인지 매우 놀랍지 않을 수 없다. 물론 깊이 있게 기독교 세계를 들여다보지 않는 한, 보수 기독교가 대부분을 장악하고 있는 현실이기에 저들이 그렇게 나오는 것도 충분히 짐작할 만하다.
 
이에 대해서 본인이 안티기독교인과 논쟁을 하는 와중에 어떤 분이 댓글로서 안티기독교의 진보 이해를 말끔하게 정리해놓은 글이 있어서 옮겨본다.
 
<토론을 보며 정리한 안티들이 진보기독교를 보는 시각>
1. 진보기독교는 보수기독교보다 더 위험한 넘들이다
2. 진보기독교는 보수기독교를 더 곤고히 해주는 넘들이다
3. 진보기독교도 세력이 커지면 보수기독교처럼 똑같이 된다
4. 진보기독교 세력은 보수기독교 세력에 비하면 조족지혈이다.(언제 주류가 될려나)
5. 진보기독교는 성서 안보고 불경 보나?
6. 진보기독교는 예수 안믿고 석가 믿냐?
7. 진보기독교는 야훼 안믿냐?
8. 보수기독교가 지금 저렇게 날뛰는데 진보기독교는 뭐 하고 있나?
 
등등 이런 생각을 깊이 깔고 토론에 임한다는 것이다. 실제로 안티기독교인은 진보기독교를 기존 기독교를 곤고하게 해주거나 보수 기독교의 그늘로서 이해하기도 한다. 그러나 참으로 이것은 무지의 소치가 아닐 수 없는데, 한편으로는 저들이 그렇게 생각하는 맥락도 이해가능하다. 왜냐하면 <기독교반대>의 입장에선 그 어떤 기독교도 긍정될 수 없기 때문이다. 아닌 말로 안티들이게 기독교는 결코 긍정되어선 안되는 대상인 것이다.
 
만일 <안티기독교>라고 자부하는 이가 기독교에 대한 긍정성도 표명한다면, 그것은 자신의 입장에 반하는 개념 없는 짓이거나 자기 안에 모순의 혼재를 가질 뿐이다. 또한 안티기독교인들이 ‘진보는 예수 안믿고 석가 믿나?’ 하는 식의 발상도 하는 걸 보면, 진보 기독교에서 말하는 종교다원주의 사상에도 몇 가지 분류들이 있다는 것을 아는지도 궁금하다.
 
진보 기독교에 대한 분류
 
보수와 비교화여 진보 기독교에 대한 사상적 분류는 대체로 아래와 같이 분류될 수 있다.
 

보수

진보

진보

진보

‘무조건 믿어라’의 전제 여부

‘무조건 믿어라’의
전제가 있다. (O)

‘무조건 믿어라’의
전제가 있다. (O)

‘무조건 믿어라’의
전제가 없다. (X)

‘무조건 믿어라’의 전제가 없다. (X)

‘무조건 믿어라’의 전제 내용
(이는 범주적 한계를 의미)


성서무오설
예수의 유일회성
동정녀 탄생
예수의 피 대속설
부활 승천 재림
삼위일체 등등
전통 교리들


민중해방 전통 or
생명평화 전통
(진보 기독교인들 가운데는 이것을 당위로서 여기는 사람들이 꽤 있다)


진리는 없다.
온갖 오류들과
권력(힘)만 있다.
(허나 진리가 없다는 명제 자체만큼은 진리로서 통용된다는 점에 모순이 있다)


진리는 있지만
우리에겐 없다.
그 진리는 우리들의 오류와 비극을 통해서만 근접해나갈 수 있을 뿐이다.

나타나는 행태

전통교리는 무조건 믿어야 하며, 성경을 읽어도 여기서 벗어나면 안된다고 말한다.

(전통 교리를 포함, 사도신경, 사영리 등등은 많은 성경공부 교재들의 전제들로 자리함)

민중해방 전통을 가장 중요시하기에, 타자를 위한 사회변혁이 시작부터 강요될 수 있다.

(나 자신은 이것도 당위로 보면 곤란하다고 보는 입장이다.)

진리는 없다고 보기에 회의주의 혹은 상대주의에 곧잘 빠진다.

(후기구조주의와
친화적이기에 가장 냉소적인 집단에 속한다.)

자기해체에까지도 열려 있으면서 끊임없이 새로운 창조적 구성 모색

(진리 탐구 과정 자체에서 얻는 합리주의적 성취를 중요시)

해당 진영

기존의 주류
보수 기독교 대부분

기존 민중신학 혹은
이와 비슷한 성격의 
에큐메니칼 진보 진영

3세대 민중신학
혹은 탈기독교나
탈교회, 탈중심주의를 표방하는 진영

정강길의
새로운 민중신학
혹은
과정신학 진영


 
진보 안에서도 이렇게 사상적으로도 다른 차이를 가지는 구분들이 있건만, 애석하게도 안티기독교인들에게는 이를 볼 줄 아는 눈이 전혀 없어 보인다. 안티기독인들에게 진보란 보수의 살짝 탈바꿈이거나 보수의 그늘에 있는 자들로만 파악될 뿐이다.
 
참고로 여기서 안티측에게도 한 가지 정보를 제공한다면, 3번 진보의 경우는 안티기독교와 흡사한 측면이 있다. 실제로 이들 신학을 <반신학>Anti-Theology이라고 일컫기도 한다. 그리고 진리에 대해 매우 회의적이며 무신론적인 성향을 지닌다. 신 존재가 있는 게 아니라 그저 <신에 관한 담론>이 있을 따름이다. 주로 프랑스철학담론인 포스트구조주의와 결합되어 있으며, <해체> 혹은 <탈중심>을 매우 강조한다.
 
단지 안티기독교가 조금 허접스럽게 보수 기독교에 대응한다면 이들은 기존 기독교에 대해 보다 아카데믹하게 비판하는 자들이라고 할 수 있겠다. 물론 그래도 3번 진영은 2번 진영과도 친화적인 맥락도 있기에 안티기독교와 완전히 같다고 얘기할 순 없다. 그렇더라도 기존 전통에 대한 해체에 있어선 맥을 같이 하는 면도 없잖아 있다는 점에서 얘기한 것뿐이다. 물론 나 자신은 이 진영에 대해서도 매우 비판적이다. 원래 포스트모던의 사유에도 폭력적인 연유가 있다. 이에 대해선 나 자신의 <화이트헤드와 새로운 민중신학>(한국기독교연구소) 제7장 참조.
 
안티기독교인들의 단골 레퍼토리 러셀과 러셀이 몰랐던 화이트헤드
 
안티기독교 사이트에 가보면 버트란트 러셀의 <나는 왜 기독교인이 아닌가>가 단골메뉴로 주로 올라와 있다. 그는 무신론자로 알려져 있다. 나 역시 러셀의 내용이 그다지 틀렸다고 보진 않는다. 하지만 그는 당시에 <새로운 유신론>에 대해선 간과하였던 것이다. 러셀의 기독교 비판은 전적으로 '<초월적 유신론>transcendent theism으로서의 기독교'에 대한 것이었지, <자연주의적 유신론>naturalistic theism에 대한 것이 아니었다. 실제로 러셀은 이에 대해선 실제로 잘 모른다고 했었다.
 
재미난 일화 하나를 얘기한다면, 러셀의 스승이자 유명한 <수학원리>를 같이 썼던 화이트헤드가 자연주의적 유신론을 언급했을 때, 무슨 얘길 하는지를 잘 모른다고 할 정도였다. 그 똑똑하다는 러셀이 말이다. 그렇다면 화이트헤드, 일명 백두라고 불리는 놈은 도대체 누구인가? 그에 대해 안티 기독교인들이 자주 인용해마지 않는 도올 김용옥조차도 화이트헤드와 러셀을 비교할 때 다음과 같이 소개한 바 있다. "러셀이 비록 똑똑하다고 해도 백두에 비하면 두서너줄에도 못미친다"는 평가를 한 적이 있을 만큼 말이다.
 
안티들은 백두 사상이 무신론 이후에 나온 새로운 유신론 사상임을 혹시 알고나 있는가? 게다가 이러한 새로운 유신론 사상 외에도 현재까지 진보 기독교의 사상들은 더 많이 더 깊게 나와 있다. 혹시 안티들은 이에 대해 뭐가 있는지조차 제대로 파악이나 하고 있긴 하는가?
 
이미 첫 번째 글에서도 말했지만, 기존의 안티기독교인들이 기독교를 반대할 때 근거로 삼는 것들은 주로 “보수 근본주의 기독교가 가지고 있는 독선적인 배타성 및 ‘무조건 믿어라’고 말하는 강압적인 신앙으로 인한 폐해들, 바이블의 앞뒤 안맞는 내용들, 목사들의 재산 축적과 불륜 행태들, 거대 교회에 대한 비난 등등 이러한 것들이 거의 주류를 이루고 있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나는 안티기독교의 이러한 비판이 아예 틀렸다고만 보질 않는다. 보수 기독교의 폐해에 대해 나 역시 동감하는 바이다. 하지만 이들이 <기독교>라고 표현하고, 기독교에 대한 그 어떤 긍정적 가능서도 배제하는 <안티 기독교>를 표방하는 한에선 분명하게 반대한다. 만일 저들이 <안티 기독교>가 아닌 <안티 보수기독교>라고 바꿔쓰면 몰라도. 이미 저들의 비판에선 보수 기독교 외의 다른 기독교에 대해선 잘 모르면서도 도매급으로 넘어가 있을 따름이며, 진보 기독교의 깊은 이해에 대해선 무방비로 노출되어 있을 뿐이다.
 
본인의 글에 대해 제대로 독해를 못하고 난독증을 보이는 사례
 
그리고 어떤 사람은 내가 쓴 첫 번째 글인 <안티기독교 어떻게 볼 것인가>의 결론 핵심을 '종비련 옹호'로 해석하는 황당한 이도 있었다. 원글을 읽어보면 알겠지만, 나로선 종비련 얘긴 결론 부분에선 아예 쓰지도 않았으며, 그저 본문에서 반기련-시민단체성 언급할 때 잠시 비교된 것외에는 언급도 없다. 그런데도 결론에도 나와 있지 않은 조그만 색깔을 마치 전체 색깔로 매도하며 나의 논지를 호도하고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기 눈엔 그렇게 보인다니 어떻게 할 것인가. 이 사람의 또 다른 난독증은 나의 첫 번째 글에 대해서도 “정강길의 이성이냐 폭력이나의 기준은 기독교에 대한 인정이나 저항이냐에 있다.”라고 자기 멋대로 해석하고 있다. 어떻게 이런 독해가 나오는지 나로선 참으로 한심하지 않을 수 없다.
 
내게 있어 그 부분에 대해 폭력적이냐 이성적이냐의 구분은 명확하다. 내가 폭력적이라고 얘기하는 것은 <반기독교>라는 테제에는 기독교 자체에 대한 다양한 가능성이 일찍부터 아예 포기되고 철저히 기독교 부정이라는 한 쪽 입장만 지니게 되는 엄연한 폐쇄성이 있기에 하는 얘기인 것이다.
 
일단 기독교 인정/저항이라는 이 사람식의 표현(내가 직접 쓴 표현도 아니지만)으로도 얘길 한다면, 내가 기독교에 대해 다양한 가능성을 인정한다는 것에는, 기독교 인정만 있는 게 아니다. 거기엔 기독교 비판도 있고 저항도 있을 수 있다. 그런데도 어떤 사물에 대해 어느 한 쪽만 고정적으로 못박는 것 그것 자체에 대해서 나는 폭력적이라고 본 것이다. 내가 보는 기독교에는 긍정항/부정항 모두가 있다.
 
여기서 나의 <새로운 기독교>는 다음과 같다. 부정항으로서의 기독교를 해체하여, 긍정항을 가지고서 다시 새롭게 기독교를 수립하겠다는 것이다. <대안 기독교>란 표현은 '또다른 제안으로서의 기독교'를 의미한다. 만에 하나 나 자신이 추구하는 새로운 기독교조차도 <오류>와 <비극>을 보일 경우 얼마든지 해체할 것이다. 그렇지 않는 한에서 솔직한 합리성에 기반하고자 하는 기독교인 것이다. 이런 얘긴 나의 기독교론에서는 이미 물리도록 언급된 바 있다. 물론 안티들이야 잘 들여다보지도 않았겠지만 말이다.
 
어쨌든 기독교의 모든 가능성에 대해 열려 있느냐 아니면 한쪽으로만 닫혀있느냐의 문제야말로 제겐 일단은 이성적/폭력적 가늠의 잣대가 된다는 점을 분명하게 얘길 했었건만, 이 사람은 나의 글을 엉뚱하게도 전혀 다른 식으로 독해해서 왜곡시켜내는 참으로 묘한 기술을 가진 셈이다.
 
나오며 : 안티기독교인들에게
 
지금까지 보면, 나의 글이 안티기독교를 왜곡시켰다느니 안티기독교를 제대로 알아보지도 않고서 썼다느니 해대지만 이들 가운데 어느 하나 제대로 반론된 것이 없다. 어느 하나 제대로 설명해보인 것 없다. 이미 양쪽 진영의 글을 꼼꼼하게 읽어본 사람이라면 알 것으로 본다.
 
물론 지금도 누구든지 제대로 된 반론이 있다면 얼마든지 환영하는 바이다. 대신에 구체적이고도 정합적인 근거를 가지고서 반론하되 분명하게 지적해주기만 바란다. 얼마든지 기다릴테니.. 반면에 아무런 근거도 없이 비난만 해대는 찌질이들의 발언들은 가급적 사양이며 그런 자들에게까지 대꾸할 필요성은 못느끼는 바이다. 논쟁의 핵심은 정당한 근거 싸움에 있다. 어떤 주장을 할때 근거를 가지고서 말하느냐 아니면 근거 없이 말하느냐는 논객의 정도를 결정짓는다. 
 
반론의 창구는 이곳 댓글에 달아주면 될 것이다. 괜히 다른 안티사이트들이나 자기만 아는 사이트 안에선 자기 입맛에 맞는 글만 퍼나르진 말고 말이다. 또한 나로서도 내가 일일이 안티들 찾아 댕길 수도 없을 것이다. 뭐 그래도 자기들이 싫다면 할 수 없겠지만.
 
어쨌든 철저히 이성적으로만 맞붙길 바라며, 자기가 쓴 글에 대해서도, 그리고 본인의 비판적 공격에 대해서도 하나하나 차분히 짚어나가서 때로는 솔직하게 자기 오류들마저도 짚을 줄 아는 부디 정직한 논객이 나오길 바라는 바이다. 자기 입장 역시 명백하게 오류에 맞닥뜨릴 경우엔 계속 우겨대지 않고 얼마든지 자기 입장도 철회하거나 수정할 수 있는 용기 있는 논객 말이다. 물론 나 역시도 예외일 순 없다. 당연한 거 아니겠나. 아래의 <논쟁의 기술>을 참조해보길 바란다.
 
덧붙여 바램이 있다면, 만일 진보 기독교 혹은 나 자신이 추구하는 새로운 기독교에 대해 비판할 것이라면 어느 정도 공부를 깊게 한 사람이길 바라는 바이다. 도무지 제대로 알아보지도 않고서 휘갈기는 글들이 너무 한 둘이 아니라서 하는 얘기다.
 
그럼 어디 한 번 기대해볼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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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0 [어떤 진리관] 진리(眞理)와 진리(進步)의 차이 그리고 퇴리(退理) 미선 198 07-05
169 시작이 있는 우주인가? 시작도 끝도 없는 우주인가? 미선 221 06-18
168 <종교 위의 종교>에 대해.. 미선 227 05-04
167 초자연주의와 자연과학 그리고 신비주의 구분 미선 224 04-06
166 지적설계론(창조론)자들과 유물론적 과학자들 간의 공통점 미선 208 12-10
165 종교 신앙의 반지성에 대한 단기적 대안 (1) 미선 211 11-24
164 "몰락이냐 도약이냐" 21세기 종교 진화의 방향 (종교학회 발표) 미선 204 09-10
163 '나(I)는 누구인가?'라는 근원적인 물음에 답하려면.. (1) 미선 221 04-13
162 유신론-무신론을 넘어서 <탈신론>으로 미선 366 05-04
161 <초자연주의>를 버려야 기독교가 산다! 미선 309 02-04
160 몸학 기독교 & 몸학 사회주의 추구 미선 246 12-31
159 <자유>에 대한 짧은 생각.. (2) 미선 321 08-24
158 몸학 기독교에선 기독교 신학이 굳이 필요하지 않은 이유 미선 365 03-24
157 인간 무의식의 두 가지 상태와 보다 상향적인 의식 발달을 위하여 미선 288 03-03
156 (1998년 원글) "화이트헤드 철학에서 본 민중신학 비판과 대안적 모색" (2) 미선 248 02-18
155 종교(宗敎, Religion)에 대한 동서양의 어원적 의미와 전후 혼동 오류 미선 243 02-06
154 기존 기독교와 <몸 기독교>의 분명한 차이들 미선 275 01-21
153 GIO명상 방법 12단계 (몸기독교가 제안하는 수행 방법 중 하나..) (5) 미선 412 01-16
152 2013년 계획.. 몸 기독교 (4) 미선 369 01-02
151 민중신학 40년.. (20년전 안병무 기사를 보며..) 미선 213 12-25
150 진보정치 교육의 사각지대와 민중 역사 주체론에 대한 반성과 재고찰 미선 202 12-22
149 교회에 대한 권력비판? 교리비판? 어느 것이 더 유효할까? (4) 미선 341 12-06
148 왜 예수인가 (필독 원함!) (13) 미선 1299 11-04
147 새로운 기독교의 방향과 몸학의 종교관 (2) 미선 239 10-05
146 새로운 기독교의 방향과 몸학의 종교관 (1) 미선 269 08-17
145 기독교 교리의 문제는 기독교만의 문제가 아니다! (3) 미선 322 06-11
144 초대교회와 바울에 대해... 미선 373 04-28
143 '작은 교회'가 정말 대안인가? 핵심은 교리다! 미선 301 04-22
142 진선미의 기원과 예수사건 (1) 미선이 285 02-24
141 중간 복음주의 신학자 알리스터 맥그리스의 <과학신학> 비판 (13) 미선이 310 12-13
140 끔찍한 <몸의 신학>에 속지 마시길! (유사품 주의) (8) 미선이 343 11-15
139 종교운동과 사회운동을 구분 못하는 오류-기존 진보 기독교 비판 (1) (2) 미선이 434 10-14
138 여전히 예수얼굴에 똥칠하는 개신교 정치세력들 (5) 미선이 350 08-30
137 새로운 기독교 역사의 국내 선구자들 : 유영모, 함석헌, 김재준 미선이 325 06-26
136 조용기 목사의 할 일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미선이 342 05-14
135 몸학과 새로운 기독교 운동 그리고 30년 후의 기독교 미선이 424 04-11
134 <인간의 자유의지>라는 착각과 환상에 관한 문제 (14) 미선이 620 03-04
133 기존 진보 기독교인들의 <생명평화> 담론에 반대한다! (업그레이드판) (8) 미선이 493 02-17
132 기존 진보 기독교계의 ‘생명평화' 담론에 근본적인 의문을 제기한다. 미선이 236 02-10
131 영혼구원의 강조에서 <총체적인 생명구원의 강조>로 (4) 미선이 272 02-05
130 성서문자주의 또는 성서무오설 신앙보다 더 뿌리 깊은 고질병은? (9) 미선이 684 02-02
129 죄의식의 종교에서 <이웃과 함께 성찰하는 종교>로 미선이 267 02-01
128 수직적 구조의 교회에서 <수평적 구조의 교회>로 (2) 미선이 351 01-21
127 서구식 목회문화가 아닌 <우리식 목회문화>로 미선이 303 01-21
126 과정신학에 대한 비판과 민중신학의 신 이해 접맥 미선이 485 01-13
125 ★ 예언 (1) 미선이 602 12-24
124 ♣ 새로운 기독교 신학의 인간론 (4) 미선이 438 12-19
123 ♣ 새로운 기독교 신학의 인간론 (3) (4) 미선이 499 12-12
122 ♣ 새로운 기독교 신학의 인간론 (2) (10) 미선이 702 12-05
121 새로운 기독교의 시간관, 태초와 종말로서의 시간관을 거부한다! (4) 미선이 590 12-01
120 ♣ 새로운 기독교 신학의 인간론 (1) 미선이 689 11-30
119 [예수운동 예배 견본] 새로운 기독교의 <예수운동 예배>를 위하여 미선이 722 11-28
118 숭배하는 예배에서 <닮으려는 예배>로 (1) 미선이 705 11-19
117 거꾸로 흘렀던 감리교 역사, 바로 세우기엔 아직 멀었나 미선이 596 11-10
116 <새로운 기독교>를 소개하는 전체 안내 링크글 (계속 업데이트 예정) 관리자 1937 11-03
115 [논평] 봉은사 땅밟기 추태, 성경 '문자주의' 그 야만의 역사 넘어서야 (1) 관리자 761 10-29
114 기존의 진보 기독교와 새로운 기독교 운동 (1) 미선이 605 10-22
113 1세대 민중신학자 안병무의 미완의 작업과 기존 민중신학의 과제 미선이 579 10-19
112 [새기운 성명] 4대강 사업 관련, 문정현 신부의 정진석 추기경 비판을 지지한다 관리자 557 10-19
111 스퐁, "스티븐 호킹과 유신론/인격신의 죽음" (작은불꽃님 역) 관리자 821 1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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