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합검색
아이디    비밀번호
   자동로그인     
  현재 총 36명 접속중입니다. (회원 0 명 / 손님 36 명)     최신게시글    성경검색   
새로운 기독교 운동
월례포럼
기획강좌
연구소 활동


  방문객 접속현황
오늘 306
어제 405
최대 10,145
전체 3,046,127



    제 목 : 미선님에게 드리는 답변    
  글쓴이 : 으리부리 날 짜 : 06-11-29 13:23 조회(6379)
   트랙백 주소 : http://freeview.org/bbs/tb.php/b003/40 
  FILE #1 : 1.hwp (16.0K), Down:18, 2006-11-29 13:23:57


답변입니다.
미선이 (06-11-29 17:07)
 
다른 사항들은 대체로 오해가 풀린 거 같아 단지 계속적으로 문제시하고 계시는 바울에 대해서만 몇 자 댓글로 남깁니다.

예수와 바울에 대한 극단적인 대비는 이미 19세기 자유주의 신학자들의 성향에서 많이 나타난 바 있습니다. 제가 보는 바울에 대한 한계를 말씀드린다면, 이미 책에서도 약간 피력해놨지만 '새 술을 새 부대에' 담지 못하고 '새 술은 헌 부대에'에 담아놨다는 점입니다. 여기서 새 술이란 예수를 말하며 이를 담는 부대는 해석학적 언명들을 얘기한 것입니다. 새롭고 정합적인 해석학적 언명으로서 예수를 담아야 했지만 바울은 그렇지 못했지요.. 당시 바울은 헬라문화권의 언어와 개념들을 썼다는 점에서 분명한 한계가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에는 딜레마가 있습니다. 당시로선 기존의 유대교를 극복하고자 했던 복음을 헬라권에 전하고자 할 때 헬라문화권의 언명으로서 전할 경우, 복음 전파의 용이성과 효율성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제가 보기에 바울의 신학이 완전히 관념적 이원론적으로 빠졌다고는 보질 않습니다만, 일정 정도 예수에 대한 신학적 해석들을 시도했다는 점에서 오늘날까지도 많은 영향을 끼친 게 아닌가 싶습니다. 사실 바울이 아니었다면 오늘날 우리에게 기독교 복음이 들어왔을지 저로선 조금 의문스런 입장에 있습니다. 그만큼 바울이 갖는 위치란 것은 어쩌면 기독교가 안고 가고 있었던 <필연적 리스크>일 수 있다고 보는 거죠..

그리고 여기에는 또한 아이러니도 함께 있습니다. 혹시 <역사적 바울>historical paul이란 표현을 들어보셨는지 모르겠습니다. 그의 신학 자체는 어느 정도가 한계가 있을 진 몰라도 적어도 바울의 삶만큼은 분명한 고난과 고통의 연속이었다는 점입니다. 그는 복음전파를 하다가 자주 감옥에 갇히고도 하면서 많은 고초를 당했던 자였습니다. 물론 언뜻 보기에 그의 신학에는 어느 정도 정치성 사회성이 탈각된 면도 없잖아 있다고 볼 수 있겠지만, 그의 삶은 당시 로마제국 하에서 정치적 사회적 고초들의 연속이었다는 사실은 실로 매우 아이러니한 것입니다..

현재 바울신학에 대해 제가 지지하는 입장은 바울에 대한 민중신학적 해석입니다. 사실 이렇게 해석하는 입장은 매우 드뭅니다. 그만큼 기존 교회에서는 바울신학을 거의 문자적으로 이해할 뿐이지, 당시의 시대적 배경과 여러 정황과 연관해서 보다 철저하게 이해하는 신학자나 목회자들은 거의 없다는 사실입니다..

바울의 <의인론>은 사실 당시 유대교로부터 나오게 된 초기 그리스도교의 태동에 있어서 결정적 역할을 한 진보쪽의 입장을 위해 마련된 이론이었습니다. 바울이 그의 서신에서 의롭다고 할 때의 그 '의'는 실제적으로 법정적 개념에 해당할 수 있는 '정의롭다'고 할 때 '의'라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질 않습니다. 대부분의 기독교인들은 그러한 바울의 '의'를 정치성이 탈각된 종교적 차원의 '의로움'으로서 얘기할 뿐이죠.. 하지만 정작 바울의 의인론의 자리는 공평한 정의를 향한 실제적인 그 투쟁의 한 가운데서 초기 그리스도교 공동체에 끈질기게 붙어있는 유대주의를 넘어서고자 그 신학적 해석을 가한 것이었습니다..

즉, 알고보면 바울의 신학도 보편적 해석을 가한 것이긴 해도 실제적으론 상황신학적 측면이 알고보면 더 많다는 점입니다. 국내에선 김창락 교수나 해외의 하버드대 스텐달 교수 같은 사람의 입장이 이쪽에 있는 것으로 압니다.. <새로운 성서해석과 해방의 실천>(한국신학연구소) 후반부를 보시면 나와 있습니다. 그 이후에 새로운 연구성과들이 또 나왔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가능하면 바울신학에 대한 깊은 공부가 있길 바라겠습니다..



게시물수 68건 / 코멘트수 77건 RSS
 
번호 제목 글쓴이 조회 날짜
[베리타스] ‘이천년 기독교, 진보, 그리고 금기’를 말하다 미선이 6871 06-21
68 [2회 독서포럼/요약발제] 바트 어만과 함께「예수 왜곡의 역사」순례하기 노동자 7652 08-31
67 새로운 대안 기독교를 모색하는 대토론회 참관기 (김윤성) (1) 미선이 9386 08-29
66 [제안]「새로운기독교운동연대」준비위원이 되어 주십시오!! (2) 노동자 7666 08-23
65 [제2회 독서포럼]'예수 왜곡의 역사' 8.29 평신도공동체 갈매나무에서 노동자 7026 08-08
64 [토론회 다시보기] 교회 현장에서 모색하는 새로운 기독교 - 한성수 목사 노동자 7416 08-01
63 [제1회 독서포럼] 성경과 폭력 - 성性을 중심으로 본 기독교 근본주의 폐해 (4) 노동자 8355 07-27
62 [한국인권뉴스]주류 보수 기독교 악순환 고리 끊고 새롭고 건강한 기독교로 (1) 노동자 5157 07-17
61 세기연/ 새기운(새로운 기독교를 여는 운동) 1차 온라인 회의 결과입니다. (3) 노동자 5835 07-13
60 행사평가 및 후속활동 논의 모임 보고 (6) 미선이 4531 07-03
59 [국민일보] “기독교 ‘창조냐 진화냐’ 논쟁 말고 과학과 적극 소통해야 고립 면해… 관리자 5004 06-26
58 [베리타스] ‘이천년 기독교, 진보, 그리고 금기’를 말하다 미선이 6871 06-21
57 [크리스찬투데이] 류상태씨, 세기연 대토론회서 기독교 진보 진영 자성 촉구 (4) 관리자 5449 06-21
56 ▒기사: [종교변혁] 진화론 인정, 창조과학 반대 ‘새로운 그리스도인 선언’ 나왔다… (1) 노동자 6647 06-21
55 [한겨레신문]애 보도된 <6월19일 새로운 기독교 대토론회>와 <21세기 새로… 관리자 6065 06-17
54 [한겨레] 도올-김경재-오강남 등 ‘기독교’ 성역 없는 토론 (3) 미선이 8488 05-12
53 [주간한국] 한국 현대사 속 기독교의 재발견 (1) 관리자 5536 08-17
52 세기연 독서모임을 시작합니다 마루치 5041 01-21
51 예수살기교회 홈페이지가 개설되었습니다. 마루치 7301 12-29
50 새로운 대안교회들의 연대를 위하여 (김홍술 목사와 류상태 목사와의 조찬회동) (6) 정강길 8409 12-17
49 대전 갈매나무 공동체와 함께 하는 새로운 기독교의 성경공부와 수행 강좌 (5) 관리자 7661 10-15
48 세기연에서 매주 목요 영화와 독서 모임을 갖습니다 (6) 마루치 6857 08-13
47 세기연 5월 포럼 + 7월 포럼 발제中(동영상) (2) 마루치 5878 08-01
46 세기연 대전<새로운 기독교> 강의 풍경 (3) 마루치 6771 05-04
45 4월 세기연 월례포럼 풍경 - 과정사상과 민중신학 (7) 마루치 6848 04-27
44 세기연 오프 모임 풍경 (3) 마루치 5955 04-01
43 세기연 오프 모임 후기 (세기연 활동 보고) (5) 정강길 8025 03-30
42 세기연은 대운하 반대 운동에 참여합니다. 관리자 5452 02-06
41 안티기독교와의 토론회 열어…기독교 문제에 대체로 공감 속 설전 관리자 8926 11-24
40 극동방송 라디오 생방송 토론 프로그램 출연 정강길 8248 11-16
39 보수와 진보 그리고 안티기독교측과의 토론회 (2) 관리자 8031 11-16
38 [문화일보] 한국 기독교, 대안은 무엇인가 (1) 관리자 9003 08-14
37 [경향신문] 개신교계 “선교방식 문제있다” 자성 관리자 6001 08-14
36 [SBS 8시뉴스]에 나온 세기연-"종교인 기부금 공개하라"…과세 논란 재점화 관리자 7123 07-12
35 생명의 해방 - 제3장 생명의 모델 정강길 5497 07-08
34 (기사) 광주 부활의 언덕으로! 에큐메니칼 연합교회 망월동을 찾다. 관리자 6475 05-22
33 생물학과 철학 그리고 종교사상이 만난 명저 <생명의 해방> 독서모임 합니다~! (3) 관리자 6476 04-07
32 [복음주의와 기독교적 지성] 5장 복음주의와 종교다원주의 Suns 6571 01-18
31 [복음주의와 기독교적 지성] 4장 복음주의와 포스트모더니즘 정강길 5914 01-14
30 [복음주의와 기독교적 지성] 3장 복음주의와 후기자유주의 관리자 6312 01-14
29 [복음주의와 기독교적 지성] 2장 성경의 권위 영재 5835 01-08
28 [복음주의와 기독교적 지성] 1장 예수 그리스도의 유일성 묶인로키 6697 12-19
27 복음주의 진영의 최고 학자와 솔직한 지적 정합성 겨루기 (독서토론) 관리자 6656 12-09
26 성탄절예배와 1225인 선언 건 관리자 5619 12-09
25 미선님에게 드리는 답변 (1) 으리부리 6380 11-29
24 미선이 님께 드리는 답변 으리부리 5708 11-23
23    으리부리 님께 드리는 답변 정강길 5561 11-24
22 금서 4 (1) 으리부리 5968 11-20
21    으리부리님께 드리는 답변 정강길 5542 11-20
20 교회 다시 살리기 5장 (1) atom 5867 11-10
19 제3장 변혁을 위해 일하시는 하나님 관리자 5391 11-09
18 [크리스찬신문] “기독교, 이젠 변하지 않으면 죽습니다” 관리자 6830 11-08
17 이번주 독서모임은 여기에~! 관리자 5530 11-01
16 교회 다시 살리기 2장 발제문 영재 5410 10-27
15 교회 다시 살리기 1장 발제문 (1) Suns 5935 10-23
14 제7장 대학과 그 역할 관리자 5248 09-22
13 6장 수학의 교육 atom 5742 09-21
12 5장. 교육에서 고전의 위치 ONCODOC 5560 09-07
11 제4장 기술교육과 과학 및 문학과의 관계 관리자 5864 09-07
10 3장 자유와 규율의 율동적 요청 Suns 5297 08-31
9 1장 교육의 목적 (1) ONCODOC 6057 08-18
8    The Aims of Education(Alfred North Whitehead) 관리자 9003 08-20
7 제 2장 교육의 리듬 - 발제문 (1) atom 6424 08-18
6 [한겨레] ‘여성차별’ 예수·석가 가르침은 아닐텐데… 관리자 7024 07-27
5 세기연이 여의도순복음교회에 진출(?)하여 모임을 가집니다~!! 관리자 6567 07-24
4 건강한 삶을 위해~!! 관리자 7850 07-26
3 [크리스찬연합신문] 종교계도 성(性)차별 예외없다 관리자 6606 07-21
2 종교계 성차별을 추방하기 위한 범국민서명운동 (취지문) 관리자 6770 07-11
1 세기연 MT 있습니다. (2) 관리자 7079 07-11



Institute for Transformation of World and Christianit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