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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목 : 존재에 깃든 환원과 비환원 그리고 과학과 철학의 관계    
  글쓴이 : 미선 날 짜 : 13-03-14 14:33 조회(38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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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자는 그 자체가 원자보다 작은 입자로 구성되어 있고, 이 입자들은 고에너지 물리학에서 연구한다. 이것은 열역학이 고에너지 물리학으로 환원될 수 있다는 의미일까? 여기서 생각을 좀 더 깊이 해보자. 화학은 원자와 분자 사이에 일어나는 반응, 즉 화학 결합이 형성되고 깨지는 것을 연구한다. 전자는 양자물리학의 방정식에 입각하여 이러한 결합을 형성한다. 따라서 화학은 물리학으로 환원할 수 있다. 반면 생물학은 화학물질로 이루어진 생명체들을 연구한다. 심리학은 인간의 생각을 연구하는데, 생각은 생물학적 기관인 두뇌에서 일어난다. 사회학은 사회를 연구하고, 사회는 인간들로 이루어져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일종의 연속적인 환원 단계를 거쳐 사회학이 물리학으로 환원될 수 있다고 주장할 수 있다. 하지만 말도 안되는 이 주장에는 몇 가지 문제점이 있다. 환원에 성공하기 위해서는 두 이론이나 과학 분야의 모든 용어들 사이에 명백하고도 정확한 대응관계가 조성되어야 한다. 만일 이 조건이 충족되지 않으면(사실 총족되는 경우가 드물다), 이 두 과학 분야는 그 체계와 용어와 구조 측면에서 독립적이며 서로가 필연적으로 환원될 수 없다. 실용적 측면에서도 덧붙이자면, 대개 ‘환원하는’ 과학이 ‘환원된’ 과학이 얻는 모든 결과를 예측할 수는 없다(그나마 환원주의가 그럴듯하다고 여겨지는 화학과 물리학 사이에서도 정확한 예측은 불가능하다).
- Gregory N. Derry, <그렇다면 과학이란 무엇인가> 중에서
 
 

모든 사건적 존재는 진화하는 존재다. 이때 물리적 수준→생물학적 수준→인간학적 수준으로 나아갈수록 비환원적인 정신성의 역할이 커진다. 그러나 기본적으로 물리적 수준의 존재에서조차도 비환원적 사태가 있을만큼 환원과 비환원이라는 두 가지 요인은 항상 내정되어 있다고 봐야 한다. 쉽게 말해 <환원>과 <창발>은 기본적으로 모든 수준에 일어날 수 있다는 얘기다(참고로 물리적 수준에서의 창발 현상에 대해선 노벨물리학상 수상자이기도 한 로버트 러플린의 <새로운 우주-다시 쓰는 물리학> 저작에 보다 상세하게 나온다. 그는 물리학의 환원주의에 대해 반대하며 이를 다시 써야 한다고 볼 만큼 <창발성의 물리학>을 언급하고 있다. 앞서 <그렇다면 과학이란 무엇인가>책에서도 언급되었듯이 어느 정도는 이미 과학자들 사이에서도 인정하고 있듯이 물리학과 화학 수준에서도 정확한 예측이란 건 불가능하다고 얘기된다).

다만 물리적 수준에서는 압도적인 물질성으로 인해 비환원적 요소들은 거의 무시되어도 좋을 뿐이며, 실제로 물리적 수준으로 내려갈수록 환원주의 입장은 훨씬 많은 성과를 거두고 있기 때문에 과학에선 매우 유효한 신념일 수 있다. 즉, 물리적 수준으로 내려갈수록 물질성 자체가 일종의 그 물질이 갖는 의미로까지 치부되어질 수 있다는 얘기다. 실은 인간의 관점에서 보기에 그렇게 간주하더라도 하등 무방할 것이다.

물리적인 바위 자체의 의미 유무에 대해선 아무도 관심하지 않는다. 단지 그 바위가 인간의 인식 안으로 들어올 때 비로소 그 이름과 의미를 획득한다는 사실은 결국 사물의 의미 체계가 인간 수준에 맞춰져 있음을 잘 예증해준다고 하겠다. 인간인 이상 그럴 수 밖에 없기에, 여기에는 어느 누구도 예외일 수 없는 인간의 필연적 한계이자 동시에 인간만의 독보적인 특징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지구상에서 유일하게 인간만이 철학을 한다는 사실도 그 특별함을 예증시킨다. 간단한 산술과 학습도 하는 침팬지가 인간처럼 “나는 누구인가”라는 물음으로 자기 존재의 의미를 집요하게 탐구하진 않는다. 고도의 추상적 사고 작용에 속하는, 존재의 의미를 묻는다는 건 존재의 목적을 묻는 것이다. 그것이 곧 철학이다. 만일 인공 지능이 가능하다면 그 같은 철학적 물음을 스스로 부여하느냐로 간단히 식별해 볼 수도 있을 것이다.

추상의 작용은 고등한 생명체에서나 가능하다. ‘사랑’이라는 추상물을 생각해보자. 사랑은 물리적 수준에서는 중력 작용이나 입자물리학의 방정식으로 설명될 수 있겠고, 생물학적 수준에서는 유전자 작용이나 개체 보존 성향으로 설명되기도 하는데, 인간 사회 수준에 이르면 여기서 언급되는 사랑은 이전에 비해 훨씬 그 이상의 많은 경험 사태들을 담고 있다. 그것은 온갖 드라마나 영화 및 대중 예술의 주제가 되기도 할 정도로 복잡다양성의 경험과 깊은 강도의 경험을 담고 있기에 인간의 사랑을 단순한 화학 반응으로만 설명한다고 해서 그것이 사랑의 전부라고 볼 수 없을 지경이다. 이처럼 환원될 수 없는 사태가 진화의 과정에서 점차로 극명하게 드러나는 흐름들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자연과학이 존재 이해에 있어 절반의 설명을 위해 봉사한다면, 철학은 과학이 접근할 수 없는 영역까지 그 궁극상에서 설명하고자 하는 시도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철학은 과학의 영향에서 결코 자유로울 수가 없는데, 그 이유는 철학이 그 자신의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해 근거를 빌어오려면 그때까지의 자연과학이 이룩한 축적된 경험 데이터들에 기반되어야만 하기 때문이다. 낡은 뉴턴 물리학의 성과로 21세기 철학의 근거들을 확보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서구 근대 세계에서 칸트에겐 그것이 가능했을진 몰라도 뉴턴 물리학이 붕괴된 현대에서는 결코 그럴 수 없다.

반면에 자연과학의 위대성은 환원가능한 설명으로 인해 자연이 인간에게 이해가능하다는 사실에 있다. 일찍이 아인슈타인 역시 우주에서 가장 신비로운 현상을 하나 꼽는다면 이 우주가 이해가능하다는 데에 있다고 언급한 바 있다. 우리는 자연을 이해할 수가 있었기에 이제는 자연의 진화 과정까지도 어느 정도 조작할 줄 아는 지경에까지 이르른 것이다. 우리는 자연에 대한 과학적 이해를 통해 일종의 이해로서의 정복감과 성취감에 도취되기도 한다. 이것이 바로 환원주의가 인간에게 가져다주는 도파민이자 중독 증상이기도 하다. 전세계 언론들이 네이처지나 사이언스지에 올라온 논문들에 민감한 이유도 바로 이 점에서다. 우리는 과학이 가져다주는 성취감과 정복감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거의 본질적으로 과학자들은 환원이 주는 매력과 그 중독성을 벗어나기가 매우 힘들다고 생각되는데, 생각해보면 이를 꼭 부정적으로만 볼 필요도 없다는 생각이 든다. 오히려 우리 삶에서 과학이 갖는 자리와 한계를 정확히만 간파한다면 환원주의라는 신념은 매우 유효한 것일 수도 있다. 학문의 역사에서 볼 경우 환원주의는 방편적 신념으로서는 매우 유효하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존재에 대한 절반의 이해였을 따름이다. 물론 절반이라고 해도 엄청난 유효성을 갖는다.

반면에 과학은 존재의 목적이나 의미에 대한 탐색을 하진 않는다. 실은 그럴 수도 없다. 존재의 목적과 의미라는 탐구들은 대부분이 물리적 수준의 존재들에 맞춰져 있는 것이 아니라 인간 존재의 인식 수준에 맞춰져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인간에 대한 이해를 위해선 인간이 진화해 온 역사와 과정을 추적하는 일 역시 빼놓을 수 없으며, 그런 점에서 인간 이해에 자연과학은 절반의 기여를 하고 있는 셈이다. 인간 삶의 목적과 의미를 묻는 철학적 작업에는 그러한 과학적 성과들까지도 고려해야만 한다. 만일 이를 포함하지 않을 경우 자칫 미신적 주술이나 망상적이고 독단적인 사변으로 빠질 수 있기 때문이다.

137억 년이라는 우주 진화 과정에서 인간 현상의 출현은 고작 짧은 시간에 불과하다고 하지만, 이는 양적으로만 보는 단순 평가에 불과하다. 질적인 시간으로 따져볼 경우, 인간 현상의 출현은 인간 이전의 경험 양상들보다 훨씬 더 복잡하고 다양한 그리고 강도가 깊은 경험의 면면들을 담고 있다. 지구상의 그 어떤 존재보다도 인간만큼 복잡다양한 경험을 보여주진 않는다. 그러나 인간은 이미 인간 그 자체 안에 자연의 진화 과정을 담고 있기에 근본적으로는 자연과 인간을 결코 이분화해서도 곤란한 것이다.

결국 자연의 생태를 파괴한다는 건 실은 인간 그 자신을 파괴하는 일이 되는 것이다. 자연과 문화는 본래적으로 이분되어 있지 않다. 다만 인간의 시각과 판단이 협소하거나 서로 강조하는 측면들이 다른 것뿐이다.

이제 흥미로운 사실 하나가 있는데, 그것은 다름 아닌 곧 의식의 문제다. 양자물리학에서 측정 문제가 까다롭듯이, 자연과학은 뇌의 의식 현상 문제를 만나면서 그야말로 벽에 봉착한 기분이 든다고 술회한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의식은 그야말로 저 두 가지 양상의 경계라고 할 만한 특성들을 많이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의식 현상 역시 물질성과 정신성이 이미 하나로 얽혀 있는 창발 사건으로 이해한다. 적어도 자연세계에 이전에 없던 새로움이 출현한 것이기에! 인간 의식의 작용 없이 이 우주를 이해한다는 것 역시 불가능할뿐더러 존재의 의미를 추구하는 것은 더더욱 불가능하다.

나는 자연과학이 앞으로도 이 우주와 생명에 대한 온갖 해명들을 잘 수행할 것으로 본다. 그러나 해명된 만큼 새로운 의문 역시 새롭게 생산될 것이며 이 과정은 끊임없이 어쩌면 영원히 이어질 것으로 본다. 과학이 이룩한 성과에 따라 시대를 관통하는 철학 역시 달라질 수 있다. 역으로 어떤 철학적 입장을 가지느냐에 따라 과학자의 입장도 달라질 수 있다는 점도 간과되어선 안될 것이다. 아인슈타인과 보어의 논쟁에서도 볼 수 있듯이 아인슈타인이 원했던 것은 확률값이 아닌 딱 부러지는 절대값이었다. 실재론자였던 아인슈타인은 사물의 실재성이 측정에 의해서만 확증되는 양자역학에 대해선 이를 받아들이려 하지 않았었고, 죽기까지 거부했었다. 과학자들 역시 암암리에 가정하고 있는 무의식적인 기본 전제들이 있는 것이며, 이것은 과학의 관찰과 실험에도 영향을 끼친다. 관찰의 이론 의존성 역시 그냥 나온 얘기가 아닌 것이다.

따라서 내가 볼 때 과학과 철학은 본질적으로도 존재론적으로도 상호 견제 및 협력 관계여야만 한다. 과학도 철학도 종교도 예술도 결국은 존재라는 총체성(totality)에서 나온다. 그 총체성이란 게 곧 삶이기도 하다. 독단적 철학이나 과학지상주의는 존재의 삶의 어느 한 측면만을 크게 희생시키는 정도가 아니라 결국은 존재의 삶 자체를 피폐하게 만들거나 메마르게 하는 것이다. 삶은 한편으로 적극 설명되어지면서도 또한편으로는 설명되어지지 못하고 빠져나가는 그 무엇이 항상 잔존해 있다. 설명되지 못하는 그 간극이 다시금 현재 진행하는 탐구들을 추동시키기도 한다.

우리는 “침대는 과학이다”라는 광고 문구를 잘 알고 있다.
그럼에도 “침대는 과학 그 이상을 담고 있다”는 점에 대해서도 주목되어야 할 것이다.
삐걱되는 낡은 침대라도 그 어떤 부부에게는 깊은 의미를 주는 소통의 자리가 되기도 하듯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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