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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목 : 뇌과학에게 인문학을 말하다    
  글쓴이 : 미선 날 짜 : 13-04-23 14:10 조회(4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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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부 뇌과학 연구자들의 잘못된 이해의 발언 중 하나
 
 
 
뇌과학에게 인문학을 말하다
 
 

“아프냐?”
“ 네..”
“나도 아프다!”
 
 
 
사례들
 
1. 우리는 사랑하는 사람이나 가족이 아프면 나도 아픈 것을 경험한다. 어떤 면에서 이 같은 현상은 매우 이채로운 것이기도 하다. 생각해보면, 나와 다른 사람 사이에는 물리적 생리학적 연결이 전혀 없음에도 서로 간에 몸의 생리학적 반응들이 촉진될 정도로 각각의 뇌 속 신경전달물질 생성에도 영향을 끼치는 조건화가 발생하고 있는 것이다.
 
흥미로운 현상은 또 있다. 때로는 서로 사랑한다는 부부 사이에선 사소한 치약 짜는 문제 하나 때문에 점차로 싸움이 커져서 심각한 부부 갈등이 초래되기도 한다는 사실이다. 여기서 우리는 친밀한 관계일수록 <사소성>이 매우 중요해지게 된다는 점도 알 수 있다. 내 옆사람과 사소한 것 하나 때문에 내 몸의 생리학적 신경 반응들이 극도로 예민하게 형성되기도 한다는 사실이다.
 
2. 또한 평소 친한 사람과 잘 지내다가도 서로 간의 정치적 견해와 입장 때문에 시비가 붙거나 심하면 싸움까지 번지기도 한다. 좌파냐 우파냐 그 차이가 서로 간의 자율신경계까지 자극하여 혈압과 맥박의 정도 당분 수치에도 영향을 끼치기도 한다는 것이다. 특히 투표 선거일이 가까워올수록 더욱 그러한 현상을 보이는 면이 있다. 만에 하나 그저 부지런하기만한 개념 없는 지도자가 뽑혔을 경우 집단 전체가 스트레스를 받는 상황에 놓이게 될 것이다(참고로 우리나라는 이 경험을 실제로 많이 했었다).
 
반대로 전혀 일면식도 없는 낯선 사람을 만났음에도 그저 자신과 정치적 입장이 같다는 그 이유 하나만으로 쉽게 낯선 타인과 동질감을 느끼게 되고 반갑고 행복한 느낌을 가질 만큼 뇌 속에서 세로토닌 같은 신경전달물질을 산출시키기도 한다. 정치적으로 보수냐 진보냐 좌퍄냐 우파냐 공화당이냐 민주당이냐 등등 어떻게 이런 것들이 뭐길래 뇌 속 신경전달물질에까지도 영향을 미치는 것인가?

(*결들여 하버드 의대 교수인 제임스 길리건이 쓴 <왜 어떤 정치인은 다른 정치인보다 해로운가>라는 책도 참조바람)
 
3. 미국에서 생활해본 사람이라면, 물론 그렇지 않은 사람이라고 해도 우리는 동양인과 서양인의 경우 세상과 사물을 이해하는 관점이 정말 다른 것을 종종 경험할 때가 있을 것이다. 특히 서양인의 경우 동양인이 자신의 혈연적 집단적 배경을 중요시하는 것에 대해 잘 이해를 하지 못하는 반면에 서양인의 경우는 가족이나 집단보다 오히려 개인 삶의 선택과 견해를 훨씬 더 중요시한다(물론 동서양의 문화적 차이와 충돌은 이 같은 사례 외에도 리처드 니스벳의 <생각의 지도>나 EBS다큐 <동과서>를 보면 너무나도 많은 실제 사례들이 나와 있으니 참조 바람).
 
4. 시한부 종말론을 주장하는 종교 근본주의자가 있는데, 그 어디에도 그의 주장을 입증할만한 사실적 토대들은 거의 없음에도 그는 자신의 이러한 믿음 신앙을 조금도 포기하지 않는다. 그러다가 어느 날 그는 그와 비슷한 신앙을 믿는 여러 다른 사람들과 함께 육신을 버리고 ‘천국의 문’에 들어가기 위해 집단자살을 감행하고 만다. 이는 실제 사례이기도 한데, 이들은 지구가 멸망한다면서 자신을 기다리고 있는 UFO에 올라타기 위해 그랬다고 하는데, 도대체 이들의 뇌는 왜 이 지경까지 되어야만 했던 것인가?
 

위의 사례들에서 아마도 맨 첫 번째만 제외하면 대부분은 인간에게만 해당되는 경우들이다. 동물사회의 경우는 몇몇에서 친밀한 감정 표현을 하기도 하지만, 그래도 인간만큼 풍부하고 다양한 관계의 경험들을 발산하는 종은 아직까지 지구상에서 발견된 사례가 없다. 인간의 생활관계란 그 어떤 관계보다도 풍부하고 다양하며 상당히 델리케이트한 것이다.

일전에도 언급한 바 있지만, 세로토닌은 뇌 속에서 그냥 공짜로 생성되는 것이 아니다( 뇌이데올로기를 아십니까 글 참조). 뇌 속의 작용을 그렇게 만드는 일정한 조건화가 뇌 밖에서부터 일어나고 있다는 점이다. 신경세포 하나의 생성에는 뇌 속 작용 이전에 그 사람의 생활관계 그리고 정치 경제 사회의 구조와 이념들 그리고 종교 문화적 관계들까지도 관여한다는 사실이다. 이 현상은 지구상에서 오직 인간이라는 종족만이 보여주고 있다.

예를 들어, 혹자는 <심리학>을 그저 인간 내면의 심리에 관한 학문으로만 생각하거나 <심리학>도 결국은 자연과학인 <뇌과학> 설명으로 환원될 것으로 보는 이들이 있는데, 이는 정말 무지한 것이거나 혹은 큰 착각에 해당되는 것이기도 하다. 오히려 심리학은 인간의 정서 및 심리를 통해 그 사람이 맺고 있는 가족 및 생활 속의 여러 다양한 관계들의 구조를 살펴서 보다 건강하고 소통적인 생활관계 구조로 이끄는 그러한 차원의 학문에 더 가깝다.

다시 말해, 개인 내면의 심리는 개인 내면의 차원에서 끝나는 게 아니라 오히려 그 개인이 맺고 있는 구조화된 여러 생활 관계 및 사회적 관계들에도 연장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마찬가지로 뇌 속의 사건이 그저 뇌 속만 살펴봐서는 도저히 그 온전한 이해로서의 전모를 파악할 수 없다는 얘기다.

그렇기 때문에 예컨대 인간의 기쁨과 슬픔이라는 감정을 신경세포의 몸부림의 결과물로 보는 일부 뇌과학 연구자의 주장들은 인간에 대한 지극히 협소한 이해에 지나지 않는다. 오히려 하나의 감정 혹은 하나의 신경세포의 발생조차도 그야말로 온우주(Kosmos) 속에 놓인 인간 삶의 모든 총체성들이 다함께 관여되는 가운데 발생된 것으로 봐야 할 것이다. 이때 인문학은 인간이라는 고유 특성에 관여되고 있는 학문이다.

이는 닭이냐 달걀이냐의 논쟁처럼 뇌냐 환경이냐는 식의 이분법적 논쟁도 아니다. 행여 그런 식으로 따지고 들 경우엔 애초 뇌 이전의 우주 원소 사건들에까지도 소급해 들어가야 할 것이다. 세상 모든 만물이 죄다 빅뱅의 산물이라고 해서 빅뱅만 연구하겠다는 것도 정말 웃기는 얘기가 아니고 뭐겠는가.
 
아마도 자유의지를 부정하는 이들 중에서 가장 극단적인 경우를 들라고 한다면, 현재의 우리는 이미 137억 년 전 빅뱅 때의 초기 조건에서부터 결정된 것이기에 지금도 그저 예정된 경로를 선택하고 밟는 것에 불과할 뿐, 진정한 자유의지란 없다는 식의 주장이 차지하지 않을까 싶다.

물론 인간은 자연세계로부터 진화되어 왔다. 그런 점에서 인간은 자연과학적 탐구의 대상이 된다. 하지만 동시에 인간은 자연의 특성만으로는 환원되어지지 않는 인간만의 고유한 특성 역시 함께 보여주고 있다는 점에서 결코 자연과학적으로만 해석되어지진 않는다는 사실이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인문학은 자연과학에 ‘포함되면서도 이를 초월하는’ <포월> 관계에 놓여있다는 사실이다.

인문학을 자연과학에 속하는 <포함> 관계로 보는 이들은 과학을 종교화하려는 몇몇 과학 전공자들의 어리석은 만행일 뿐이다. 인문학은 자연세계 이후의 인간의 관계적 삶에 그 포커스가 맞춰져 있는 학문으로서, 인간의 관계적 삶에 대한 의미 있는 성찰과 지혜로운 삶의 양식을 제공하기 위해 마련된 것이다.

혹자는 인문학의 이론들이 보다 확고한 법칙을 다루는 자연과학보다도 변동이 심하다고 불평하는데, 이런 얘긴 인문학에 대한 이해부터가 결여되어 있음을 말해주는 것에 불과하다. 왜냐하면 인간의 삶을 다루는 인문학은 그야말로 복잡다양하게 변동하는 현대 사회의 다양한 경험 양상들을 포섭해내야 한다는 점이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어떤 면에선 사실상 더 깊고 예리한 성찰 능력들을 요구하는 점이 있다고 여겨진다. 개미 사회의 법칙도 인간 사회의 복잡 다양성만큼 드라마틱하지는 않잖은가!

무엇보다 진화는 항상 현재 진행형에 놓여 있다. 호모 에렉투스의 뇌와 호모 사피엔스의 뇌 역시 당연히 다르겠지만, 오늘의 뇌도 어제의 뇌와 또 다르다. 항상 진화 과정에 있기 때문이다. 같은 호모 사피엔스에 속한다고 해도 오래 전 선사시대 인류의 뇌와 현재 21세기 인류의 뇌는 또 다른 것이다. 하지만 실제로 진화하고 있는 것은 뇌 뿐만이 아니라 뇌를 포함해 신체 그리고 생활반경 및 세계사회와 문화 등등 사실상 전체 시스템이 모두 통전적으로 진화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얘긴 나만의 특출난 주장도 전혀 못된다. 이미 자연과학에서도 시스템 동역학(system dynamics)이나 복잡계 생물학을 연구하는 이들이라면 시스템을 구성하는 모든 요소들이 <임계점>critical point을 형성하는 중요 변수로도 작용될 뿐만 아니라 다른 구성 요소들에 대해선 <자기 촉매적 특성>까지도 지니게 될 수 있음을 잘 알 것으로 본다. 어떤 부분을 별개의 독립적으로 나눈다는 것부터가 실은 애초 존재론적으로도 허락되고 있지 않는다는 얘기다. 알고 보면 독립된 존재란 없다. 단지 우리의 의식이 모든 사물에 대해 분석적 구분짓기 작업들을 수행하고 있을 뿐이다.

<뇌 중심주의> 입장은 어떤 면에서 진화생물학의 <유전자 중심주의>를 떠올리게 하는 측면도 있다. 그런데 최근 에드워드 윌슨이 <유전자 중심주의> 입장을 철회하고 <다수준 선택설>(multi-level selection)로 전향한 바 있듯이 그는 존재 형성에 있어 유전자 외에도 훨씬 많은 수준의 요인들이 관여하고 있음을 발견하고 더 이상 유전자 중심주의로만 설명할 수 없다고 판단하기에 이르렀던 것이다. 자연 선택 진화에는 너무나도 다양한 메커니즘들이 참여한다고 본 것이다.
 
게다가 유전자를 알고자 할 경우에도 실은 유전자 너머까지 제대로 알지 않으면 안된다고 판단된 점도 있었다. 이는 인간게놈프로젝트의 실현만으로도 도무지 만족될 수 없었던 이유 중의 하나였기도 했다. 프로테오믹스(단백질체학)나 후성유전학 연구 또한 이러한 점과 전혀 무관하지만은 않다. 결국 생물학적 작용을 일으키게 하는 자극의 원인들은 다양하며 한편으로 뇌를 넘어서 있다는 점을 우리는 결코 간과해서 안될 것이다.

인간 존재의 경우, 자연세계의 요소들 뿐만 아니라 인간의 뇌와 신체 그리고 가족과 직장을 비롯한 생활세계와 그것이 놓여 있는 정치경제 사회 문화와 구조 더 나아가 형이상학적 지평으로서 그때까지의 현실세계에는 없지만 새롭게 출현할 수 있는 미지의 새로운 정보들의 영역 등등 이 모든 것들이 총체적으로 현재적 진화에 관여하는 요소들이라고 본다. 신경학자인 인지행동신경학의 아담 지먼(Adam Zeman) 역시 다음과 같이 말한다.

“어떤 경험이 첫눈에 아무리 단순해보여도, 그것은 언제나 ‘체화되어 있고embodied’, ‘내재되어 있고embedded’, ‘연장되어 있다extended’. 그것은 신체화된embodied 동물이, 문화 속에 심어져 있으면서embedded, 시공간에 연장된extended 주변 환경 및 타인들과 상호작용하면서 하는 활동인 것이다. 뇌는 그 경험의 사슬에서 없어서는 안 될 고리이지만, 경험의 유일한 출처도, 유일한 생산자도 아니다.”

이는 나의 주장도 아니고 이미 신경학자 진영에서도 이렇게 주장하고 있을 정도다. 생각건대, 존재의 정체성을 뇌에 두려는 학자들을 비롯해 뇌 속의 화학 반응들로 모든 설명이 가능하다고 주장하는 뇌지상주의자들은 적어도 자신들의 주장에 대해 보다 엄밀한 이해와 관점에서 다시 한 번 더 분명하게 재검토 할 필요가 있다. 현재의 인간 존재의 몸삶은 이미 언어나 의미가 뇌 속의 뉴런 및 신경전달물질들과도 불가분리적으로 결합되어 있는 그러한 통전적 경험 속에 놓여 있다.

다시 말하지만, 자연과학을 무시하는 인문학도 당연히 문제가 되겠지만, 역으로 인문학적 성찰이 탈각된 자연과학이나 뇌과학에 대한 공부들 역시 그야말로 지구행성 인간에 대한 온전한 이해나 문제 해결에는 결코 다가가지 못할 것으로 나는 확고하게 말할 수 있다. 나 자신이 지금 말한 이 주장의 확고함은 우리의 우주시대에 진화론 법칙이 갖는 확고함 만큼이나 확고하다는 점도 보다 분명하게 첨언해두고자 한다.
 
지극히 당연한 얘기겠지만, 결국 인문학과 자연과학은 서로 상호협력적으로 함께 갈 수 밖에 없다는 사실이다. 그런데 이 지극히 당연한 얘기조차도 거부되거나 혹은 암암리에 부정확한 표현을 사용함으로 인해 정작 모순과 혼란을 여전히 드러내보이는 점이 있기에 하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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