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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목 : 건강한 사회변혁 운동가로서의 상담가를 위해..    
  글쓴이 : 미선이 날 짜 : 10-07-06 21:01 조회(5304)
   트랙백 주소 : http://freeview.org/bbs/tb.php/e005/121 




 

건강한 사회변혁 운동가로서의 상담가를 위해..  
 
 
 
 
상담을 하다보면 심심찮게 보수 근본주의 개신교 신앙인들을 종종 많이 접한다.
그만큼 우리네 삶의 일상들 곳곳에 깊이 뿌리내리고 있는 것이 종교이기도 하다.
이들은 현재의 고통을 신앙의 힘으로 극복하고 있다고 한결같이 고백하기도 한다.
그런 점에서 종교야말로 가장 강력한 마인드 해킹이 가능할 수 있는 지점이 아닐까 싶다.
 
그런데 구조화된 현실 상황의 고통의 문제를 직시하고 이를 극복하려하기보다는
종교의 힘으로 고통을 잊으려는 지점에 몰입되어 있는 아편적 신앙에 빠져 있을 땐 그야말로 난감한 것이다.
종교는 좋을 수도 있지만 해로울 수도 있다. 이는 인류의 역사가 단적으로 예증해주고 있는 바다.
 
그럴 경우 종교에서 곧잘 보여지는 교조적 신앙은 인간의 정당한 욕구의 분출조차
죄의식으로 둔갑되어 억압되는 경우들이 허다하다. 그런 점에서 프로이드가 말한대로
"종교란 유아기적인 신경증 같은 것"이기도 하다. 프로이드가 보기에 의례 같은 종교행위들이
신경증 환자들에게서 보여지는 일종의 강박 행동과도 유사함을 느꼈던 것이다.
물론 모든 종교가 죄다 그렇진않더래도 일정 부분 그러한 점이 있다는 건 사실로 여겨진다.
 
하지만 나 자신이 갑자기 종교 얘길 하자는 것은 아니고, 실은 좀더 다양한 얘길 해보고자 하는 면이 있다.
종교 말고도 사회의 부조리로 인해 억압을 받고 있는 내담자의 경우도 있다.
대표적인 것이 성차별적인 문제일 것이다. 상담자도 그렇지만 내담자들도 여성들이 아주 많은데..
이들 중에는 가족 안에서만 해결될 문제를 넘어서 가부장적인 폭력의 현실을 살아가는 여성들도 꽤 많다.
 
요즘은 사회적으로 분위기가 여성 평등 시대로 나아간다지만
이것이 가족 관계 안에서조차 얼마만큼이나 성평등이 실천되고 있는지는 의문이다.
(혹시 경순 감독의 <쇼킹 패밀리>라는 다큐 영화 좀 구할 수 있는지..)
흔히 무심코 내뱉는 아버지 혹은 남편의 권위적 말투와 언어 습관들 그로부터 비롯되는 문화..
그리고 그러한 가부장적 통제 시스템에 당연한 것으로 길들여진 여성의 스스로의 모습들도
내면화된 신체화된 자기Self를 형성하고 있는 것이다. 그럼으로써 권위적인 가족구조는 여전히 고착화된다.
 
뿐만 아니라 성적 소수자에 속하는 동성애자에 대한 문화적인 편견과 혐오를 드러내는 사람들도 꽤 있다.
앞서 말한 종교적 연유로인해 그러한 일그러짐들이 감정적 혐오를 분출시키기도 한다.
 
우리는 가족주의를 당연하게 받아들일는지 모르나 가족주의가 우리 안의 극복해야 할 식민지일 수도 있다.
사회 경제의 구조악과 관련된 정리 해고로 인해 아무리 개인의 생활이 비참해져도
가족의 정과 사랑으로 모든 위안을 받을 수 있는 가족주의는 부조리한 국가가 고통 분담을 지우기 위해
차별적 체제 자체를 혁신하기보다는 우리 안에 심어놓는 교묘한 이데올로기적 환상이기도 한 것이다.
이득재 교수의 <가족주의는 야만이다> 혹은 야마다 마시히로의 <우리가 알던 가족의 종말>은
사회구조와 가족구조 간의 관계 양상들을 나름대로 분명하게 보여주고 있는 저서들이다.
 
어쨌든 본격적으로 내가 말하고자 하는 요지는 나는 상담가의 역할이
그저 직업적인 일대일 대면관계로서의 상담 치유 역할에만 그쳐선 안된다고 보며,
보다 사회변혁적이고 종교를 건강하게 하는 종교변혁적인 활동가와 운동가의 모습도 필요하다고 본다.
즉, 성, 계급, 인종, 나이 등등 모든 종류의 부조리한 문제와 고통을 낳고 있는 차별들에 대하여
그러한 차별 없는 사회를 일궈내는 것은 상담자가 진행하는 대면적 상담 치유의 확장인 것이다.
 
혹시 <감정 노동>이라는 용어를 들어보셨는지? 이미 알리 러셀 혹쉴드의
『감정 노동』(Managed Heart)을 읽어보셨다면 아실테지만 자본주의 사회는
우리의 감정들까지 곳곳에서 억압함으로써 친절한 미소를 머금게 만든다.
전체 사회의 우울증 빈도와 자살은 이와 무관하지 않다. <평등해야 건강하다>는 리처드 윌킨슨의 저서는
이미 여러 사례와 연구들을 통해 이를 보여주고 있다. 상대적 박탈감의 사회구조가
공동체의 결속들을 훼손하고 서로 간의 불신감을 조장할 뿐만 아니라 폭력을 조장한다는 것이다.
 
차별적인 사회적 환경 때문에 한 사회에서 살아가는 ‘모든 계층’이
폭력과 우울증으로 고통받게 된다는 점을 여러 사회의 사례를 통해 보여 준다.
사회적 불안, 수치심, 우울증, 편견과 폭력의 강도가 더욱 내면화되고 고착화되어진다.
 
따라서 내가 일대일로 만나는 내담자는 사실상 이러한 현실의 삶 전체 상황 속에서
그 자신의 고통을 호소하고 있는 것이기에 단순히 개인의 신체나 가족 관계의 문제에 한정되지 않는다.
실은 훨씬 그 이상의 문제들까지도 깊이 들여다볼 필요가 있는데도 말이다.
 
그런데도 오늘날의 상담 현실은 초기 경험 혹은 어린 시절에 대한 탐색들이 지배적이다.
나는 여기까지는 상담의 현실이니만큼 불필요하다는 입장이 아니기에 오해는 없길 바란다.
즉, 그럴수밖에 없는 불가피한 지점도 있다고 본다. 문제는 상담을 진행하지 않을 때의 상담가의 몸삶 활동이
만약에 차별적 사회환경에 저도 모르게 복무하고 있을 경우 우리의 상담 활동들은
밑빠진 독에 불붓기가 되기 십상이라는 점이다. 그저 한낱 내담자의 고통을 빌미로 해서 돈벌이할 따름이다.
 
신체의 몸은 생활반경이요, 생활반경의 몸은 세계 사회에 해당한다.
그리고 그러한 세계 사회의 몸은 보다 연장된 궁극적인 형이상학적 질서와도 맞닿아 있다
(포스트모던을 주장하는 이들에겐 이 얘긴 다소 논증이 필요하겠지만 여기선 생략함..)
어쨌든 굳이 프로이드안인 라깡을 언급하지 않더라도 우리의 무의식은
이미 구조적인 맥락의 문제들까지도 내포하고 있는 현실에 놓여 있는 것이다.
 
따라서 상담이 진정한 치유의 길로 나가고자 한다면
그리고 우리의 상담이 한낱 자본주의 시대의 돈벌이로 전락되지 않으려고 한다면
전체 사회의 건강함과 발맞춰나가는 상담가의 정치적 사회적 활동들이 필요하다고 본다.
 
나는 상담이 비정치적이라고 생각지 않는다.
상담은 철저히 정치적이며, 실은 정치적일 수밖에 없다.
만일 자신만큼은 순수하게 비정치적이라고 여긴다면
그것은 자기 안의 대타자를 모르는 순진함의 발로이거나 혹은 자본에 복무하는 돈의 노예이거나..
 
종교를 포함하여 이데올로기가 무서운 이유는
내담자만 이데올로기의 희생양으로 삼지 않는다는 점에 있다.
상담자들 역시 철저히 이데올로기의 희생양이 되어 이데올로기적 주체로서 호명되기도 한다.
 
그렇기때문에 나는 온전한 치유로 나가기위해선 기존의 상담 모델을 넘어선
보다 통전적인 새로운 차원의 상담 모델이 필요하다고 여겨진다.
물론 이를 위해선 보다 기초적인 인문학적 탐색들이 필요하겠지만
상담을 할 때도 그렇고 상담 공부를 수행할 때도 그렇고
상담 서적들을 들여다봐도 일말의 한계를 느끼기에 하는 얘기다.
 
그렇다고 내담자에게 곧바로 아편적인 종교 신앙을 그만두라고 할 수도 없을 것이며
정치 학습을 시킬 수도 없는 노릇이다. 자ㅡ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일단 새로운 상담 모델이나 기법 운운하기 이전에 적어도 내담자를 맞이하는 상담가라면
상담가의 삶 전체가 생명살림과 약자해방의 길에 들어서 있을 필요가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모든 종류의 차별을 철폐하기 위해 평화를 심는 활동가의 모습 역시 건강한 상담가의 또 다른 모습일 수 있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상담가가 꼭 운동가가 되어야만 한다는 걸 주장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최소한 정치/경제/종교 문화 등등 건강한 사회변혁으로 향하는 총체적 해방의 흐름에 있어
그 호홉만큼은 상담의 영역도 같이 발맞춰 줄 수 있어야 하지 않냐는 것이다.
여전히 상담가도 인간인지라 저도 모르게 차별적이고 반해방적인 흐름에 동참하는
이데올로기적 과오를 범할 때가 얼마나 많겠는가.. 바로 그렇기 때문에
 
상담가도 결국은 숲을 보면서 나무를 찾아가듯이
전체 사회를 보면서 내가 실행하는 상담의 방향들을 찾아가야 할 것으로 보인다.
 
내담자와 일대일 대면관계에서의 상담가가
비대면적 관계에서의 운동가로 이어질 때 그럴 경우
내 앞에 있는 내담자의 문제를 좀 더 깊이 들여다볼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진정한 영성을 추구하는 경우도 이와 다르지 않다. 영성은 고고하게 저 높은 데 홀로 있지 않다.
영성은 언제나 관계적 현실 한가운데 있다. 그것은 항상 철저히 소란스러운 시장바닥 한가운데 있으며
더욱 세속화된 삶의 일상들 속에서 영속적인 탁월함을 경험하는 그 무엇이다.
영성은 고난과 고통을 총체적으로 담지한 우리네 몸삶의
처절한 밑바닥으로 내려갈수록 더욱 심오한 깊이를 경험하게 해준다.
 
따라서 진정한 하늘은 저 낮은 땅바닥에서부터 언제나 함께 한다..
 
 
 
- 학교게시판에 올린 글.. 
 
 
 
 
미쉘 (10-07-12 14:20)
 
님이 제언하신 생각의 방향이 참 좋습니다. 몸삶의 현장에서 어떻게 원론적인 변혁가이자 상담가 역할을 하느냐는 제 몫의 과제이겠지만요. 저도 느끼는 거지만 밑바닥 영성은 인간들이 눈멀기 쉬운 온갖 허세와 한 점 구름보다 못한 영욕의 속됨을 바로 하늘 처소를 향한 열망으로 옮겨놓기 쉽게 합니다. 하지만 평생 너무도 궁색하게 사는 이들에게 최말단 자본주의의 욕망 구조속에서 무작정 빠져나오게 하기엔 참으로 쉽지 않은 결단이자, 또다른 형이상학적인 십자가를 지우게 되는 꼴이 되기일쑤입다.그리고도 현장에선 늘 원론적인 말만 해야 하는 게 퍽 안타깝기도 합니다.

미선이 (10-07-15 05:42)
 
아, 미쉘님, 방갑습니다. 저도 그러한 고민을 함께 갖고 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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