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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목 : 도널드 위니캇(Donald Winnicutt)에 대한 자료    
  글쓴이 : 정강길 날 짜 : 08-03-03 11:19 조회(14610)
   트랙백 주소 : http://freeview.org/bbs/tb.php/e005/14 




 
도날드 위니캇은 대상관계이론가들 중의 한 명이다.
대상관계이론은 심리학의 여러 분파 중 하나인 정신역동 분야에선 최신의 이론으로 인기를 얻고 있다.
오늘날 상담학에서도 대상관계이론이 조금씩 많이 쓰여지고 있는 편이다.
하지만 정신역동 진영의 이론들이 으례히 그렇듯이 대체로 가족주의에 한정되는 측면이 있다.
물론 그렇다고 해도 갓난 아기에게 엄마의 역할이란 거의 전부라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위니캇은 말하길, 엄마와 아기가 있는 게 아니라 언제나 엄마와 아기와의 관계가 있을 뿐이라고 말한다.
아래의 글은 본인의 레포트와 함께 위니캇에 대한 자료들이다.
 
 
 
 
 
 

도널드 위니캇(Donald Winnicutt: 1896-1971)


 

Ⅰ. D. W. Winnicott (1896-1971)의 생애

   

   A. 위니캇의 생애

 

Winnicott은 1896년에 영국의 영국 국교를 믿지 않는 전통이 강한 플리머스에서 두 번이나 Plymath 시장을 지낸 상인의 막내아들로 태어났다. 위니캇은 다윈의 생물학과 프로이드의 정신분석학에 영향을 받아 생물학과 의학을 공부하여 소아과 의사로 일하면서 평생 6만여개의 사례를 경험하면서 세심한 관찰과 풍부한 그의 상상력으로 그만의 독특한 이론을 만들어나갔다. 그는 종파에 구애받기 싫어하는 자유분방한 아버지 슬하에서  안정되고 따뜻한 초기 시절을 보냈다. 부친을 닮아서 위니캇은 일찍부터 현실적이고 독립적이었다.  정신 분석가가 되기 전 20대 중반에 그는 소아과 의사로서 일했기 때문에 아기들과 어머니들에 대한 경험은 그의 정신분석학적 문제를 연구는 태도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그는 클라인에게 4년간 지도감독을 받으면서 초기 환상들 불안 원시적인 대상관계에 대한 이론에 대한 해답을 얻었다. 그러나 그는 아동과 부모가 제공하는 환경사이의 상호작용의 맥락에서 자기의 발달과 발달장애를 설명하는 관계구조모델에 기초를 둔 인간경험에 대한 새로운 이론을 확립했다.

 

 위니캇은 정신분석학과 임상 모두에 혁신적인 영향을 미쳤다. 그의 주장들은 1)논리적이라기보다는 추론적이며 놀이적 요소를 자극하는 역설을 포함하고 있고 2) 프로이드의 정신분석학을 자신의 독창적인 시각을 통한 변형으로“ 전통을 파괴한후 재창조의 과정으로 오래되고 낡은 전통에 생명력을 불어 넣었다. 

 

 B. 인간적 특성들

 

위니캇은 세계 1차대전 이전의 분깃점에서 태어나 계몽주의의 영향을 받아 모든 것이 잘된다는 믿음을 소유하였다. 위니캇의 가장 중요한 상의 특징은 삶은 살만한 가치가있다는 단순한 믿음이었다. 삶은 본래부터 어렵고 힘든 것이나 창조적이며 가치 있는 것이라는 신념을 가졌다. 그의 믿음은 모든 인간은 촉진적 환경이 주어지면 본래적으로 신체적 성숙뿐 아니라 정서적 성숙을 향해 그리고 사회에 긍정적으로 공헌하는 방향으로 성장하려는 움직임을 내포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는 인간은 파괴성의 씨앗을 가지고 태어난다는 프로이드의 이론에 반하여 인간의 본능과 충동은 자발성과 창조성의 근원이며 이것을 통해서만 개인의 삶은 살만한 가치가 있는 것이 되고 사회를 위해 생산적인 기여를 할 수 있게 된다고 말했다.

 

  위니캇의 부모는 비국교도로  아들을 스스로 생각할 수 있게 그대로 두었다. 그래서 그는 인위적으로 적용된 도덕성에서 거짓과 순응의 병인을  설명했다. 순응은 성실성의 상실이며 이것은 그 속에 있는 반항의 흔적을 설명해주는 것일 수 도 있다. 그는  자발적으로 행동하는 즐거움을 얻는 아이들에게 매료되었다.  “아무리 어렵고 상처를 입은 과거와 현재를 지닌 아이라도 위니캇 박사가 관련되면 상황이 호전되었다. 이것은 그의 특출한 지성, 직관력, 아이들과 잘 지내는 것에 기인한 것인데 위니캇이 지닌 아이들에 대한 놀라운 힘은 오히려 아이들이 그를 이해했고 그들은 하나가 되었다. 상담실에 들어간지 몇분이 지나면 그 아이와 위니캇 박사 두사람 모두 다른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조차 까맣게 잊어버렸다. 그는 아이들에게 받아들여지며 그들과 의사소통했다.( 심지어 다른 국적의 다른 언어의 소유아동이라도 아동은 전혀 그가 다른 언어의 소유자라는 것을 몰랐다)”고 동료의사가 말했다.

 

  그는 비록 자신의 자녀는 없었지만  탁월하고 실제적이며 풍부한 아이디어를 지닌 사람이었다.

   

 

Ⅱ위니캇의 이론

 

A.이론적 관심

 

 그의 연구의 출발점은  주로 타인과의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면서 동시에 개별화된 존재가 되고자하는 자기( self) 의 험난한 투쟁에서의   분리과정이 무엇인가를 얻고 보존하는 일종의 통합과정을 포함한다는 것이다. 이것이 건강한 자기이다. 통합과 분리를 동시에 성취함에 있어서 1)아동이 어머니의 돌봄안에서 자신을 잃지 않고 스스로를 발견하며 2)모성적 자원들을 유지하면서 자신을 분리시킬수 있을까 3) 사람들이 자심들을 고갈시키지 않으면서 의사소통을 하고  4) 타자에게 함몰되지 않으면서 스스로를 발견하고 5) 타인에게 착취당하지 않으면서 관계를 맺을수 있을까? 6) 고립되지 않은 채로 자신의 인격의 핵을 유지할 수 있을까?

 

이런 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자신의 상상력과 관점에 따라 연구를 재구성했다. 그는 무엇보다도 개인이 아무 지장없이 성숙해 갈 수 있는 조건을 정의하고자하는 목적을 가지고 이론을 구성하는 핵심적 부분이 초기 유아기부터 개인의 발달과 공존하는 환경의 발달에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B. 이론적 모델들

 

  그의 혁신적인 정신분석학 연구는 관계구조모델의 틀 안에서 이루어졌다. 그는 아기란 없으며 단지 아기와 돌봐주는 자 한 쌍이 있을 뿐이라고 했다. 아동의 인격발달이 아동의 내면에서 홀로 일어나는 과정이 아니라 아동과 돌보는 사람의 관계안에서 일어나는 상호적 과정이라고 생각했다. 존재의 중심은 개인 안이 아니라 전체적인 환경안 에 있다고 했다.

 

  자신의 관계구조적 틀로 전통적인 욕동구조이론을 해석하면서 욕동구조이론 다 버리지는 않고 관계이론을 욕동이론과 혼합하려고 하지도 않았다. 욕동은 대상을 추구하며 이 대상의 추구가 좌절되면 그 결과는 치명적이라고 했다. 위니캇은 욕동보다 발달하고자하는 욕구를 더 기본적인 동기로 보았다 그는 프로이드의 욕동이론과 이런 점에서 멀리 떨어져 있으며 욕동이 대상관계를 형성하는데 직접적인 관계가 없다고 보았다. 아동은 어머니와 특별한 관계를 경험함으로 자기를 형성한다. 어머니가 아기의욕동을 마족시켜주었다고 좋은 대상이 아니고 좌절시켰다고 나쁜 대상이 되는 것이 아니다. 따라서 위니캇은 본능개념을 보존하면서 이것이 보다 기본적인 발달욕구룰 방해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Ⅲ. 정서발달이론

 

A. 자기의 개념

  

  위니캇은 많은 부분 프로이드의 id의 성적 흥분과 관련된 개념을 받아들였다. 본능의 만족은 자아의 힘을 키우는데 아주 중요한 요소가 된다고 했다. 해부학 생리학 생물학등과 분리되지 않으면서도 인간의 건강에 대한 온전한 이미를 평가하는 데 있어서 자기의 개념이 필수적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는 생의 아주 초기에 “자기”라는 말을 적용하는 것은 적절치 않으며 인격의 초기 상태를 나타내는데 “ego"의 용어를 사용했고 아이가 다른 사람들이 보고, 느끼고 듣는 것 그리고 자신의 몸의 접촉을 통한 인식을 위하여 지능을 사용하기 시작할 때 "self"라는 말이 적합하며. ”self"는 약하고 파편적인 자아에서 자기 인식으로, 갓난 아기에서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현상이 점점 뚜렷해지려는 유아상태로 옮겨 감으로써 존재하게 된다고 했다. 

 

 중심자기란 타고난 잠재력으로 존재의 연속성을 경험하며 개인의 심리적 실재와 신체의 윤곽을 자기 나름대로의 방식과 속도로 획득해 나가는 것이다. 중심자기, 즉 인격의 핵은 깊은 곳에 따로 준재하며 자기가 획득한 내적 실재를 통해 독특한 개인으로 인식된다. 따라서 “자기”라는 단어는 이러나 모든 현상을 망라할 수 있는 광의적 측면을 포함한다.

 


 B,엄마됨의 자질

 

1. 엄마됨이란? 아이가 애착을 위해 선택하는 사람은 민감성, 반응해 주기 정서적 참여 등과 같은 미묘한 특질에 대한 상호작용하는 성인의 행동에 달려있다. 아이를 기르고 사랑하며 소중히 여기고 돌보는 능력은 기본적으로 성격의 문제이다. 그러므로 엄마됨이 남성에 의해서 수행되지 못할 이유도 없고 생물학적 엄마가 자신의 아이를 잘 돌볼 수 있다는 근거도 없다. 남성의 상대적 소외는 문화적 현상이다. 엄마가 여성일 필요는 없다.

 

* 여성은 자신의 탁월한 “ 여성적 요소의 잠재성” 때문에 가장 좋은 엄마가 될 수 있다. 이것은 원초적인 모성몰두를 발달시키는 과정의 일부이며 “안아 줄 수 ” 있고 자아지원을 제공할 수 있는 능력의 바탕이 된다.

* 친엄마는 자신의 삶의 흐름과 자신의 아이를 연결하므로 그녀는 자신의 특정한 유아와 동일시할 수 있게 된다.

동물이 초기의 엄마됨을 단순한 반사작용과 본능적 반응으로 아주 잘 관리하지만 인간의 특수한 자질은 경험을 축적하고 사용하며 내적 세계와 성격을 풍요롭게 하며 유아에게 독립과 성숙을 향한 여행을 시작하게 하는 인간의 탁월한 능력에 있다.

* 출생경험과 유아시적의 경험을 환상안에서 정교화 시킨다. “ 그녀는 예전에 아기였다. 그리고 아기였던 것을 기억한다. 돌봄을 받았던. 신뢰받았던 것, 보호받았 것을 기억한다.

* 환상에서 살아있는 아기를 창조할 때 유아는 비로서 태어난다.

* 아이를 임신하는 경험은 애착을 갖는다는 점에서 중요하다.

* 임산부 자신의 초기 유아기에 가졌던 충분히 좋은 엄마의 좋은 환경이 내면화되고 이것은 “보유된 내적 자원”을 구성하여 “유아의 동일시가 증가하게 되며” 일차적 모성의 몰두를 가능하게 한다. ( 내면화된 쵝 환경이 빈양한 엄마는 환상속에서 온전하게 살아있는 아이를 만들기 어려워 초기에 아이와 어려움을 겪는다..

 

2.대상제공자로서의 엄마

 

대상제공이란 아이에게 인간관계 뿐 아니라 공유하는 전체 현실세계를 소개해 주는 일을 포함한다.  아주 초기에 엄마가 자신을 대상으로 제공해 주는 것은  아이가 인간 이외의 환경을 어떻게 사용하는가와 관련있다.

 

 모든 관계에서 가장 원초적인 것은 아기가 태어나기 전후 몇주 동안에 일어난다. 위니캇은 이것을 안아주기를 통한 융합상태의 특성을 가지는 관계맺기인데 이 상태에서 아기는 존재의 느낌 혹은 정체성의 느낌을 경험한다. 이 원초적인 시작에서 엄마의 돌봄과 유아창조와 관련하여 대상관계가 나타난다.

 

3. 헌신적인 보통의 엄마

 

 위니캇은 충분히 좋은 엄마들이란 완벽하지 않으며 일상적인 일들을 하는 평범한 사람들이다.  충분히 좋은 엄마는 유아의 전능성에 응해주며 어느 정도 그것을 의미있게 해 주는 어머니이다. 어머니는 이것을 반복한다. 어머니가 유아로 하여금 전능성을 경험할 수 있게 해 줄때 참자기는 유아의 약한 자아에게 힘을 주게 되고 유아는 자신의 삶을 갖기 시작한다. 

 

 어머니의 적응이 충분히 좋을 때 결과적으로 유아는 자신의 전능성과 충돌하지 않는 방식으로 마술적으로 나타나거나 행동하는 외적 실재가 있다고 믿기 시작한다. 이런 믿음을 토대로하여 유아는 점차 전능성을 포기할 수 있다. 이때 참자기가 출현한다.

 

 한걸음 나아가서  충분히 좋은 어머니라는 환경이 제공될 때 아동은 창조적이고 건강한 자기를 형성할 수 잇게 된다. 그는 환경을 통해서 reacting하는 것이 아니라 being 하는 법을 배운다. 이것은 아동이 유아적 의존에서 독립으로 발달할 수 있게 도우며 자신이 전능하다는 생각을 현실적인 지각으로 전환시킨다.  응집성과 생명력이 있는 인격적 자기감을 형성할 수 있게 된다.

 

C.. 의존에서 독립으로의 여정

 

인간의 성숙은 개인적인 성장뿐 아니라 사회화를 의미한다. 성인은 개인적인 자발성을 크게희생하지 않으면서도 사회와 동일시 할 수 있다. 모든 인간은 이 여행을 통해서 마음 속에 확립된 사회적 감각을 가진 독립상태에 도달한다. 개인적이며 환경적인 요소를 동시에 연구하고 논의한다.

 

1.  의존의 세 범주

 

  유아의 실제적인 신체의 무능은 유아의 신체적 정서적 성장의 필수요건인 “촉진적 환경” 또는 “유아와 단일체를 이루는 모성적 돌봄”에 의존해서 꾸준히 발달해나간다. 성숙과정이란 자기와 자아의 발달을 의미한다. 인간의 핵심에 놓여있는 타고난 잠재력은 적절한 환경이 없으면 실현될 수 없다.  아기는 홀로 존재할 수 없으며 본질적으로 관계의 한 부분이다.

 

  위니캇은 “부모- 유아 관계”에 대한 이론에서 절반은 절대적 의존기에서 상대적 의존기를 거쳐 독립에 이르는 유아의 여정에 대해 관심을 가지며 나머지 절반은 엄마가 유아에게 적응하여 유아의 특별하고도 발달해 가는 욕구에 부응하는 엄마의 자질과 그 변화에 관심을 가졌다.

 

1) 절대적 의존 단계: 유아는 모성 돌봄에 대해 전혀 의식하지 못하며 이 시기의 모성 돌봄은 정신병 예방 문제를 결정한다. 유아는 무엇이 잘된 것이고 잘못된 것이지를 통제할 수 없고 다만 그것에 의해 이익을 얻거나 장애를 갖게 되는 자리에 있을 뿐이다

 

1일차적 모성 몰두( 출산전3개월-출산후 몇 개월)

 

위니캇은 아기의 출생전후의 엄마의 특수한 심리적 상태를 일차적 모성몰두라고 했다. 몸의 참여를 통해 self 내부에 형성되어온 과거의 축적된 모든 경험을 사용하면서 몸의 참여에 대한 무의식적인 상상적 구성물을 통해 나타난다.  모성적 몰두는 임신기간에 점차로 발달하여 임신말기에 고도로 민감한 상태가 되며 출산후 몇주 동안 지속된다. 이것은 엄마가 적절하게 엄마의 일을 할 수 있는 특별한 능력을 제공하며 엄마는 아이가 어떻게 느끼는지를 알게 만든다.  초기의 모성적 몰두의 단계에서 기회를 놓친 엄마는 만회하기 힘들게 되고 결국 치료에 의존하여야한다. 반면에 지나친 모성의 몰두는 너무 오랬동안 아기와 동일시되어있으며 몰두에서 올두이전의 상태로 갑자기 옮겨 진다.  즉 아이는 다루기 힘들게 되고 엄마는 갑자기 몰입하여 하나가 된 아이에게서 벗어나고 싶어진다.

 

어머니의 점진적 실패: 다행히 아기가 어머니의 예민한 반응을 필요로 하는 기간을 나주 짧다. 일단 전능하다는 환각을 충분히 경험하고 나면 아동은 자신의 통제 밖에 있는세계의 현실을 배우고 자신이 가지고 있는 힘의 한계를 배워야한다. 이런 현실과 한계의 깨달음은 어머니가 조금씩 유아의 요구에 따라 세계를 제공하는데 실패함으로 배우게 된다. 이때 아동은 자신이 할 수 없는 것과 창조 할 수 없는 것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아이는 자신의 내부에서 발생한 분리되고자하는 욕구에 힘입어 이런 가혹한 현실을 받아들인다. 유아의 수동적인 환각적 원망을 실현해주던 초기의 어머니는 이제 아이가 표현하는 몸짓과 신호를 통해 아이의 실제의 욕구에 반응해 주는 어머니로 변신한다. 이것은 유아가 자신의 자아를 분리발달시키는 과정에서 본질적인 요소이다.

 

②침범: 아동은 전능경험을 방해하는 어떤 것도 침범으로 느낀다. 그는 밖에서 무언가가 그에게 응답하기를 요구하고 반응하기를 강요한다고 느낀다. 고요한 상태는 깨지고 그는 억지로 반응하고 자신의 원망을 포기하게 된다. 그는 자신의 요구가 비현실적이라는 사실을 조숙하게 받아들여야만하며 주어진 것들에게 자신을 맞출 수없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그 결과 인격은 의식에서 분리되어  참자기는 위축되고  환경에 순응하는 자기는 거짓자기로 되어 분열된다.

 

③ 참자기와 거짓자기 의 출현: 침범이 장기간 발생하면 유아의 경험은 파편화되어 타인의 요구에 조급하게 자신을 강제로 맞추며 스스로 형태없는 상태에서 고요함을 경험할 수없게 된다. 왜냐하면 그는 항상 자발적인 욕구와 몸짓을 이해하지 못하고 자신의 몸짓을 잃게 된다..이것이 정신상의 멸절이다.

 

④ 거짓자기와 참자기의 근원 ; 위니캇은 그 발생의 자리를 생의 초기에 아기와 엄마가 갖는 관계 속에서 찾는다. ‘아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다만 엄마와 아기가 존재할 뿐이다. ’  어머니가 자신을 포근히 안아줌으로 자신의 존재의 지속성과 안정감을 누리게 되는데 무성의한 취급을 받는다면 아이는 존재가 깨어지는 듯한 극심한 불안을 느끼고 그 경험의 반복은  아이의 인격구조 속에 환경과 자신에 대한 기본적 신뢰감의 형성을 가로막고 불신을 형성하게 해 준다. ‘안아줌’이 깨어지면 아이는 외적 자극에 대한 반응만이 남게 된다. 아이는 전능 환상속에서 자신이 무엇을 창조해냈다는 환상을 가지지 못하게 되면 자발적 충동이 결핍되어 환상의 능력에 뿌리를 둔 창조적 삶을 포기하고 환경의 요구에 순응함으로 모방과 역할을 흉내내는 삶을 살게 된다. 찌르는 엄마로부터 자신의 생명을 지키고 보호하는 길은 오직 튼튼한 방어체계를 발달시키는 것이고 엄마의 요구에 순응하고 적응하며 원치 않더라도 재롱을 부려주는 역할을 해내는 길뿐이다. 이처럼 환경에 순응해감으로 거짓자기가 발달해 가며 이런 아기는 장차 순응적인 아이가 되고 어른이 되어 세상의 유행과 풍조에 순응하면서 참자기의 자발성과 창조성을 상실한 채 모방과 어떤 역할을 흉내내는 삶을 살게 된다. 그 결과로 그의 인격은 의식에서 분리된 위축된 '참자기'와 순응에 기초한 '거짓자기'로 분열(spilit)된다. '거짓자기'는 '참자기'의 온전성을 은밀하게 보호하고, 환경에 순응함으로써 '참자기'를 숨겨주며, 환경적인 침범을 예상하기 위해 인지적 기능을 사용한다.

 

⑤거짓자기의 긍정적 기능

 사람들 중에는 이 세상의 현실에 적응하는 능력은 매우 발달했으나 자신들이 태어날 대부터 선물로 받았던 자신들의 재능과 개성을 펴고 발달시켜서 창조적인 삶을 영위하는데 실패한 사람이 있다. 참자기는 창조적이며 살아있다는 감정을 준다. 반면에 거짓자기는 헛된 감정과 진짜가 아니라는 감정만을 제공한다. 그러나 아무도 참자기만을 가지고 세상을 살아가지는 않고 그럴 수 도 없다. 거짓자기는 본래 삶의 현실로부터 오는 온갖 위협으로부터 참자기를 보호해주고 지켜주는 긍정적 기능을 가지고 있다.  이 거짓자기의 기능을 통해서 우리는 때로 비록 그것이 내가 진정으로 원치 않는 경우라해도 참고 내게 주어진 역할을 담당하기도 하며 환경적 여건에 순응하는 법을 배우게 된다. 이처럼 참자기의 삶을 위해 봉사하는 보조적 역할로서의 거짓자기는 건강의 조건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 거짓자기가 참자기의 자리를 차지하게 되면 참자기가 건강하게 성숙하지 못하고 미숙하고 연약한 상태에 머물러 있고 이 개어지기 쉬운 참자기 위한 과보호가 거짓자기에 의해서 이루어진다.

 이 거짓 자기는 지적 능력과 한패를 이루기도 한다. 자신의 감정을 차단하고 모든 문제를 머리로만 해결하고자 한다. 그 결과 학문에 대단한 성공을 거두기도 한다. 그러나 문제는 성공을  하면 할 수록 자신을 가짜라는 느낌이 더욱 강해지며 어느 날 갑자기 자신이 쌓아올린 자기 성공을 스스로 폐기함으로 많은 사람을 실망시키기도 한다.

 

⑥좋지 않은 어머니 역할로 인한 정신병리

첫째. 유아가 흥분상태에 있을 때, 어머니가 유아의 환각 창조와 욕구를 실현시켜주지 못한 경우-충분히 좋은 자아보호는 유아로 하여금 존재의 연속성 위에 성격을 형성하게 한다. 이것의 실패는 아동의 정서발달에서 불안을 야기해 존재의 연속성을 파괴한다. 이때 유아는 자신의 존재의 연속성을 방해하는 공포스러운 자기멸절의 경험을 한다. 어머니에게 욕구실현이 되지 않은 아동은 생각할 수 없는  자기 멸절의 불안을 느낀다. 1. 조각나는 느낌. 2. 끝없이 떨어지는 것 같은 느낌 3. 몸과 아무런 관련이 없는 것 같은 느낌 4. 아무런 방향감각이 없는 것같은 느낌 이다. 이것들은 정신병적인 불안의 재료가 되어 분열적 성격의 토대가 되는 자아조직의 왜곡이 일어난다.  유아정신분열증, 또는 자폐증, 잠재적 정신분열증, 거짓방어사용, 분열적 성격이 출현할 수 있다.

  안아주기의 실패의 결과로 발생한 통합되지 않은 상태를 방어하기위해 생각할 수 없는 원초적인 불안을 방어하기 위해 생긴 적극적인 혼돈의 산물을 해체의 혼돈이라고 한다. 이것의 반대는 통합이며 통합이 되면 하나의 단위가 형성된다. ‘나’는 ‘나외의 모든 것은 나가 아니다’→‘나는 --이다, 나는 존재한다. 나는 경험을 모으고 나 자신을 풍성하게 하며 나-아닌것과 내사, 투사적 상호작용한다’→‘나는 누군가에 의해 존재하는 것으로 보여지고 이해된다’, →‘나는 내가 존재로서 인식되고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는 증거를 (거울 속에 비춰진 얼굴로서) 되돌려 받는다.’의 순서로 통합이 진행된다.

  둘째는 유아가 고요한 상태에 있을 때, 어머니가 유아의 형태 없음과 통합되지 않은 상태를 방해하는 것이다. 위니캇에 따르면 어머니가 자신의 역할에 계속해서 실패하면 아이는 자기 안의 진정한 욕망과 의미(참자기)를 분출할 수 없게 되며 조숙하게 외부세계를 파악하게 되고 그곳에 순응하게 된다. 그렇게 해서 참자기와 거짓자기 사이의 근본적인 분열이 발생한다. 어머니가 건강한 자기감을 공고히 하는데 필요한 충분히 좋은 환경을 제공하지 못하면 아이의 심리적 발달은 근본적으로 정지된다. 그는 심리적인 시간 속에 갇히게 되고  성격의 핵심적인 부분 대신에 표피적인 부분들을 발달시키게 된다. 그때 개인의 진정한 핵심은 좀더 자발적이고 진정한 주관적 경험이 허락된 안아주는 환경이 발견될 때까지 발달되지 못한 채, 환경에 순응하는 삶을 살며 지내게 된다.

 

⑦박해의 기대:  최초의 “나는...이다”순간들은 가장 위험한 순간들이다.  왜냐하면 그 때 다른 모든 것들은 “나-아닌”것들로 경험되기 때문이다.  유아는 자기주장이 순간적으로 “나-아닌” 모든 것들로부터의 박해에 노출되었다고 느낀다.  그러한 순간에 그 유아는 안아주는 환경에 안전을 의탁한다.  이 순간에 누군가가 팔로 유아를 감싸고 있다면 유아의 “나는...이다”순간들은 그 모험을 감당하고 견디어질 수 있다.  그렇지 못할 때 이 “나는..이다”의 주체인 참자기는 그 박해의 위협을 견디지 못하고 숨어버리고 만다.  임상적으로 위해서 언급한 해리와 함께 박해에 대한 지속적인 기대가 나타날 수 있다.  그래서 박해 상태는 위니캇에 의해 정상적인 것의 극단으로써 파악된다. 


2) 상대적 의존(6개월-2세)

 

유아의 자아 욕구에 대한 어머니의 민감한 적응은 아주 짧은 기긴 동안만 지속된다. 유아는 곧 발길질에서 짜릿한 흥분을 맛보기 시작하며 자신의 욕구에 적응해 주지 못하고 실패하는 어머니에게 화를 내는 것이 긍정적 힘이 되기 시작한다. 이 시기에 어머니는 유아의 욕구에 상대적으로 독립적이 된다. 이때부터 모성적 사랑 안에서 아이는 공격성을 융합시킨다. 유아는 어머니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스스로 아는 단계에  도달하게 된다. 점차 어머니를 필요로하는 아이의 욕구는 렬해지고 지독해지며 어머니는 아이를 때어 놓는 것이 힘들게 된다. 이때 어머니는 유아에게 안정감을 줄 수 있다

 

①환상과 중간영역

위니캇은 프로이드의 “괘락의 원리”개념이 초기 유아기의 심리적인 과정을 성명하는데 불충분하다는 것을 인식하면서 주관성에서 객관성으로 이동하는 것은 잠재적으로 고통스러운 과정이라는 생각을 인정하고 사용했다. 그러나 성숙은 “나아닌”세계를 수용하며 그 세계와의 관계를 포함한다. 위니캇은 개인이 어떻게 현실의 원리에 대처하는지? 다시 말해서 환상과 실재 사이의 간격을 어떻게 연결하는가를 설명했다.

  엄마는 아기의 탄생직후에 거의 100% 적응해 줌으로 유아로 하여금 엄마의 젖가슴이 자신의 일부라는 화상을 가질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그 젖가슴은 아기의 마술적 통제 아래에 있다. 이것은 흥분이 고조되는 사이의 고요한 시간 동안에 이루어진다. 엄마가 아기에게 충분한 환상을 경험할 기회를 제공하여 아기가 자신의 창조적 능력에 상응하는 외적실재가 있다는 환상을 갖게 된다. 유아는 엄마에 의해 제공된 젖가슴에 의해 사랑의 능력 창조의 능력이 발달하며 젖가슴이라는 하나의 주관적인 현상이 아기 안에서 발달한다. 엄마는 유아가 창조할 준비가 되어있는 바로 거기에 , 그 순간에 실제의 젖가슴을 위치시킴으로 유아와 엄마사이의 상호교환이 이루어진다. 이 상호교환은 환상에 기초한 것이다. 

                                           

 그림에서 환상이  있던 자리에 한 형태가 주어졌는데 그것이 중간대상과 중간현상의 주된 기능이다.

건강한 경우에 중간영역에서 환상과 현실이 만나 하나가 되고 전능이 경험된다. 그러므로 전능환상은 어느 정도 유지되고 유아는 사실적 현실의 모욕에 대처하고 이를 처리할 수 있게 된다. 유아는 환상에 기초하지만 순응과 모방으로 자기를 배반하지 않는 세계에서 살아가는 방식이 중간영역에 존재한다.

 

②중간대상: 중간대상과 중간현상(4-6개월부터 8-12 개월에 드러나기 시작함) 은 개개의 인간존재로 하여금 도전 받지 않는 중립적인 경험영역을 가지고 인생을 출발하게 한다. 위니캇은 인격발달과정에서 ‘중간대상’과 중간현상’은 자신이 전능하다는 환각으로부터 객관적인 현실 인식으로 발달해가는 중간지점에 있다. 유아는 자신이 세계를 창조했다는 전능감으로부터 자신의 능력의 한계를 인정하고 타자들이 독립적 존재임을 객관적으로 지각하는 과정에서  출현한다. 부모는 중간대상이 아기의 환상에 의해 창조된 것임을 인정하면서 동시에그것이 객관적인 현실적 대상임을 인정해야한다. 이 역설을 이해하는 부모는 아이에게 중간영역을 창조할 수 있게 도와주고 중간대상에 대한 아이의 특별한 권리를 인정해 주게 된다. 중간대상은 이렇게 모호하고 역설적인 위치를 가지므로 유아가 주관적 세계의 중심이라는 생각을 보편적으로 전환시키는데 도움을 준다. 중간대상은 성인의 삶에서도 매우 중요하다. 중간경험은 아동의 놀이 능력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 성인의 경우 이 능력은 새롭고 놀라운 방식으로 자신의 환상과 아이디어와 가능성을 즐길 수 있는 능력으로 나타난다.

  중간현상의 발생의 특성은 다음과 같다. 유아는 엄지 솢가락을 빨거나 천조각을 빨며 모직물의 보푸라기를 잡아뜯거나 주워서 어루만지는 행위를 하거나 삼킨다. “맘맘”하는 소리와 응얼거림, 방귀소리, 옹아리하게 외다. 이런 것들을 사용하는 반복적인 행동이 유아가 잠들려고 할  때 결정적으로 중요한 것이되고 불안이나 우울한 형태의 불안의 방아로 사용될 것이다. 유아가 어떤 부드러운 물건을 발견하고 사용하는 것이 바로 중간대상이다. 이것을 엄마가 세탁하면 유아의 경험의 연속성을 깨게 되며 그 대상이 유아에게 가지는 가치와 의미를 파괴시킬 수 있다.

1. 유아는 대상에 대한 권리를 당연한 것으로 여긴다.

2. 유아는 대상에 온몸을 비비기도하지만 잔인한 공격을 퍼붓기도 한다.

3. 대상은 결코 바뀌지 않는다.

4. 대상은 본능적인 사랑과 증오를 표현하는 순수한 공격성에서 살아남아야 한다.

5. 대상은 유아에게 따스함을 주고 움직이며 자체의 결을 가지고 생명력과 현실을 보여주는 그 무엇으로 느껴진다.

6. 대상은 외부에서 온 것이나 유아는 이것이  환각이 아니므로 내면으로부터 온것도 외면으로부터 온것도 아닌 것으로 인식한다.

7.유아는 서서히 그 대상에 대해 흥미를 잃는다. 이는 중간현상이 확산되어 “심리내적 실재”와 “두사람 이상이 공동으로 지각하는 외적 세계”사이에 있는 중간영역 전체로 즉 문화전반의 영역으로 널리 퍼지기 때문이다.

 

③ 종교경험의 자리

   위니캇은 종교경험이 자리잡고 있는 심리적 장소가 어디인가를 제시함으로써 특별히 종교와 정신분석학 사이의 대화를 이해 하는데 공헌했다. Freud 에 의하면 종교는 하나님의 환상으로 압도적인 무력감으로부터 자신을 지키기 위한 방어적 목적에 사용된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위니캇은 공적인 세계와 사적인 세계 사이 그리고 주관적인 것과 객관적인 것 사이의 분리를 연결시키고자했다. 그는 개인의 내면세계와 객관적 환경사이에서 생겨난 산물인 중간영역에서 종교 경험이 일어난다고 했다.  위니캇은 우리에게 이런 중간현상이 놀이 예술 종교, 그리고 창조성과 같은 인간경험의 본질적인 영역이라는 사실을 개닫게 함으로 이 문제에 대한 해답을 제시한다.

   현대사회에서 신을 인격 또는 인격적 대상으로 말하고 있다. 개인과 사회 모두에게 신은 심리적으로 창조된 대상이며( Freud 1909) 발견된 대상이다.(Winnicott) 유신론적인 종교를 위한 심리적 영역은 환상과 놀이가 발생하는 중간영역이며 이 공간은 우리의 심리적 경험과 뭔가 사랑하고 두려워하는 사람들 사이에 존재한다. 종교라는 문화적 공간은 우리 자신이 신을 필요로 하기 전에 이미 우리에게 스며들어와 있는 부모와 사회가 가지고 있는 구조( 믿음, 신화. 종교적인 의식과 예배형식)의 영역이다. 신표상은 일단 한번 형성되면 살아있는 모든 개인의 심리적 잠재력이 된다. 심리학적으로 말하자면 신은 환상적 중간대상이다.

애너 마리아 리주토는 신이 중간대상임을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1. 신은 중간대상-장난감, 담요, 정신적 표상이든지 간에, -이 강력하고 실감나는 환상적 삶을 부여받는 심리적 공간 안에서 아이가 창조한 하나의 특별한 대상표상의 유형이다.

2. 모든 중간대상이 그렇듯이 신은 “밖에 , 안에 그리고 안팎의 경계선에”동시에 위치한다.

3. 신은 특별한 중간대상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곰 인형이나 담요처럼 푹신한 천으로 만들어진 대상이 아니기 때문이다. 신은 표상이라는 재료로 만들어졌으며 그 표상은 일차적 대상표상으로부터 왔다.

3. 신은 중간대상이 일반적으로 따르는 과정을 거치지 않기 때문에 특별한 중간대상이다. 중간현상은 전체문화영역으로 확신되지만 우리는 전성기 동안에 점차 신에게 간심을 집중시킨다.

   전 생애 동안 신은 중간대상으로 남아 있으면서 자기 자신, 다른 사람들, 그리고 삶 자체와의관계에서 유용한 수단으로 사용된다. 이것은 그 신이 신이기 때문이 아니라. 마치 곰 인형처럼 아이가 인생에서 발견한 일차대상으로부터 신적 요소의 절반을 가져왔기 때문이다. 신적 속성의 나머지 절반은 자신의 필요에 따라 신을 창조한 아이의 능력으로부터 온 것이다.

5. 신-개인화된 표상적 중간대상을 창조하고 발견하는 심리적인 과정은 어떤 특정시기에 끝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태어나면서부터 죽을 때까지 전생애 동안 계속되는 발달과정이라고 위니캇은 말한다.

6. 자기감은 개인의 사적인  신 표상이 지닌 특성에 의해서 영향 받는다.  중간대상표상으로서의 신은 마술을 넘어선 존재이기 때문에 종교의 신으로 사용될 수 있다.

④ 놀이함(Playing)

   수유상황에서 경험하는 눈맞춤은 오로지 인간만이 가진 상징화 능력을 보여주는 첫 번째 지표이다. 신비하고 형언할 수 없는 경험인 눈맞춤을 통해 두 존재는 욕구충족의 경계를 넘어서 서로에게 반응한다. 그 둘은 각각 서로의 눈을 통해서 놀이의 영역으로, 즉 중간영역으로 들어간다.( Winnicott,1971) 이처럼 위니캇은 아이들이 열중하는 놀이를 생명을 주는 만남인 눈맞춤에서 시작되는 중간현상의 확장으로 보았으며, 놀이는 또한 자기와 환경 사이의 잠재적 공간에 속하는 것으로 생각하였다. 아이는 어머니의 얼굴을 바라보면서 젖을 먹는 동안 구강내부의 감각을 느낄 때 그는 촉각과 시각을 하나로 통합함으로 전체를 하나의 상황으로 만들어낸다. 이때 창조적 충동이 생겨나는 쉼의 상태(Winnicott 1971) 라고 불리는 인간관계를 가능하게 한다. 이것이 발생하면 위니캇이 말하는 중간경험을 위한 조건이 갖춰지게 된다. 아이의 발달과정에서 생겨나는 여러 측면들과 동시에 아이와 초기대상 사이에서 놀이가 발생한다.  위니캇은 놀이와 관련해서 창조성을 이야기하고 있는데, 한 어린이나 또는 성인이 창조적이 될 수 있고 그 전체 인격을 사용할 수 있게 되는 것은 놀이에서이며, 개인이 자아를 발견하는 것은 창조적인 존재가 되는 것을 통해서만 가능하다고 하였다. 

 

  ⑤놀이의 실패: 위축, 우울, 그리고 혼의 상실(D. Stephenson Bond)

   위니캇은 사람에게는 발견되지 않은 소외된,  영원히 발견되지 않은 영역이 있다고 했다. 사람의 중심에는 외부와 연락이 끊긴 요소가 있는데 신성한 영역이며 보존해야할 가치가 있는 부분이라고 했다.  그는  “ 의사소통은 세가지 노선을 통해 이루어진다. 침묵하는 의사소통, 노골적이며 직접적이며 즐거운 의사소통, 놀이에서 문화적 경험으로 흘러들어가는 중간영역이 그것이다.” 라고 말했다.

 이처럼 자기에도 세가지 모습이 있다. 1)알지 못하는 미지의 자기가 있다. 이곳에는 핵심, 불꽃 씨앗, 중심, 중앙집 중점이 어딘가에 있다. 이 자기는 신성하다. 그리고 2)노는 자기가 있다. 위니캇의 중간영역인데 이 영역에서 “나”는 욕망, 소원, 재미, 열망, 필요, 좌절, 박탈, 그리고 아픔을 겪는다. 이 공간에서 개인은 놀이할 수 있으며 격렬함을 느낀다. 아이는 자신의 마음과 혼을 보여 주기에 충분히 안전한 장소를 놀이에서 발견한다.

그리고 3)적응된 자기가 있다. 적응된 자기는 개인적인 역사를 가지고 있고 자신을 보호한다. 심리치료는 이 놀이의 공간인 중간영역에서 이루어진다. 노는 자기가 지니는 평범한 두가지 문제가 있는데 그것이 위축과 우울이다.

노는 자기는 파편화되기 쉽다. 아이가 놀이에 열중하게 될 때 부모가 그 놀이를 방해하며 간섭하면 놀이의 마법은 깨지고 아이는 위축된다. 아이는 순응적이 되고 세상이 원하는 것을 재생산해낸다. 순응적인 아이는 자라서 사회적으로 지위를 얻고 가족을 부양할 직업을 찾지만 “ 살아있는 느낌” 이 없고( 위니캇) 괴로움을 겪는다. 이것이 거짓자기이다. 그는 환경에 대한 신뢰감이 없다.

그러나 아이가 놀이에 집중할 때 부모의 조건에 순응하면서 놀이를 하면 부모에 대한 의무감과 책임감을 소유하게 된다. 그는 세상이 원하는 것을 제공하려고 노력하게 된다. 그는 일을 계획하고 조직하고 예측하지만 진정한 환상이 없다. 경직성, 일면성, 과대집중의 경향이 결과적으로 생긴다. 즉 삶의 이유는 상실하고 목적만 성취한 것이다. 그는 놀이의 강렬함을 모르게 된다.

 외부적 에너지가 고갈되면 강요된 내부는 우울을 경험하게 된다. 우울에는 참여가 없다. ‘상징적 영역’은 만들어지지 않고 더 이상 스스로를 진보시킬 수 없게 된다.

  상상력을 방해하는 두 가지-우울과 위축-은 스펙트럼의 양끝이다. 위축은 방어적인 내향적인 형태의 순종이다. 순종은 상징적인 삶을 무섭게 가까이 오지 못하게 한다. 우울은 방어적 외향적인 형태를 통한 순응의 결과이다. 위니캇은 “ 순종은 상상력의 천벌이다.”고 했다.

 위축과 우울 다 혼의 상실이 일어난다. 마치 위축은 한달란트 받은 사람이 주인이 올때 까지 한 달란트를 감춘 것과 같다. 생동감 있는 삶을 살기 위해서는 필요한 위험을 감수해야한다. 우울은 파우스트의 전설과 같이 자신의 영혼을 지구위의 장소를 얻기 위해 팔아버린것과 같다. 문제는 자아의 요구를 초월해 영혼의 요구가 뭔지 아는 것이다.              

 

⑥상대적 의존기의 실패(박탈과 반사회적 경향성) :상대적 의존기에서 환경의 실패는 박탈( 초기의 실패는 절대박탈)과 연관된다. 반사회적 경향성은 박탈과 연결된다. 침대에서 오줌싸기. 거짓말하기. 훔치기. 공격적인 행위. 파괴적인 행위와 충동적 잔인성, 성도착의 임상적 징후가 나타난다.

그 과정은 다음과 같다.

1) 부모가 초기에 자아지원으로 통합이 일어나게 했다.

2) 무엇인가가 이를 방해하여( 동생이 태어난다. 엄마가 아프다, 등등) 자아지원이 철수된다.

3) 아이는 견딜 수 있는 자아의 능력 이상의 스트레스를 받는다. “대상상실과 관련된 원시적 불안과 혼란이 경험되고 극심한 불안이 되살아난다.”

4) 열등한 새로운 유형의 자아방어를 재조직한다. 이것은 성숙의 과정을 가로막는다. 아동은 a) 대상과 접촉을 상실하여 창조적으로 무엇인가를 발견해 낼 수 있는 능력을 상실하고 b) 자신의 충동성과 자발성을 통제하게 디어 공격성과 친숙해지지 못해 심한 불안을 가진다.

  * 이런 과정에서 죄책감이 상실된다. 그는 중립적인 태도를 취하며 말썽을 부리지 않고 순응하나 실상은 무엇을 할 만큼 충분히 힘이 강하지 않기 때문에 순응하고 있는 것이다. 그는 희망이 없고 불운하며 해를 끼치지 않는다.

* 환경적 조건의 개선으로 다시 희망을 가지기 시작하면 아이는 희망안에서 반사회적 행동을 한다. 이때의 반사회적 행동은 두가지이다. a) 사람에게 관심을 끌기 위해 훔치는 것으로 나타난다. b) 안전을 느끼는데 필수적인 긴장을 풀며 쉴수 있는 통합되지 않은 상태로 돌아가고 싶은 욕구에 의해 파괴하는 행동으로 나타난다.

5) 반사회적 소년, 소녀는 죄책감이 없으며 반사회적 행동을 강박적으로 한다.

6)박탈의 순간 이전으로 되돌아가도록 적절한 도움이 필요하다. 좋은 대상과 좋은 사람들을 발견하면 아이는 파괴적인 충동들을 경험하게 된다. a)사랑과 신뢰 속에서 아이의 권리주장을 허용한다.b) 비교적 파괴될 수 없는 자아지원구조를 제공한다.

* 위니캇은 박탈된 아이들의 대다수가 자기 가정에서 회복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아이의 보호자는 “틀 안에서 마음대로 하고 싶은 것을 하도록 허용해야한다”고 한다.

* 반사회적 행동을 저지르는 시기에 도움이 제공되지 않으면 2차적 부산물, 즉 고통이 감소되고 제공되는 도움을 받아들이지 않으며 죄책감이 상실되고 “치료되지 않는 비행”인 상습성이나 정신질환이 출현할 수 있다고 위니캇은 말한다

 

Ⅳ.Freud, Klein, Winnicutt의 이론비교



 

Freud

Klein

Winnicutt

Key Word

본능, 무의식, 방어기제,

편집분열적 자리/시기심/우울적 자리/

충분히 좋은 엄마, 참자아와 거짓자아. 안아주는 환경, 중간대상과 중간영역, 놀이,

인간이해

결정론, 인과론, 성욕설

 

관계지향적, 성장지향적

성숙

ego를 확장하고 강화시킴

 

절대의존에서 독립으로

대상관계

대상으로서의 어머니의 존재를 전혀 모르는 완전한 자기애적인 피조물

 

생후 초기 유아는 어머니에게 절대적으로 의존

공격성

공격적 욕동이 존재함

현실의 요구 때문에 본능적 만족이 좌절될때 발생

공격적 욕동의 존재부정하고 재정의/ 공격성이 분노나 증오를 동반하지 않고 생명력이나 운동성과 같음/ 외부를 추구하는 힘원초적인 사랑충동. 실제적인 좌절의 경험으로 발생

외디푸스적 죄책감

근친상간과 살해본능과 부모의 처벌의 갈등으로 이뤄짐/욕동과 사회적 현실로부터오는 압력의 산물

 

아버지를 사랑하고 싶은 욕망과 증오하고 상처를 입히고 싶다는 충동사이의 갈등

환상

 

무의식적 환상은 욕동에 의한 일차적 내적 현상

환상은 현실보다 일차적이다. 환상은 인간현실을 지향하는 환각을 발달시키는 토대가 됨

환각의 순간에 안정된 정서 획득

죄책감

 

죄의식을 사회적 근원에서 찾음

아동의 보상을 받아줄때 극복하며 관심을 갖는 능력으로 발전함

우울적 자리

 

좋은 젖가슴과 나쁜 젖가슴의 통합과정

안아주는 어머니와 공격의 목표가 되는 어머니가 동일함을 발견할 때 통합의 과정

초기심리학발달과제

 

자발적으로 발생한 욕동에너지를 조절하고 통합하는 것

관계구조모델에서 어머니가 제공하는 다양한 돌봄의 기능을 통합하는 것

대상관계이론

대상은 욕동을 만족시키기 위해 형성됨

타고난 대상이미지와 공격성에 의해 대상관계가 비롯된다. 즉 선천적 원인에서 비롯된다.자기애 안에 타고난 내적 대상관계들이 존재함

양육자가 제공하는 환경에 의해 결정

이론적 모델

욕동구조모델

 

관계구조모델

신경증

본능적인 요소에서 발생하여 환경적인 요소와 상호작용함일상적 불행과 신경증적 고통을 분명히 구별

 

적절한 부모의 돌봄을 받은 안정된 사람이 겪는 보편적 갈등

퇴행

리비도가 고착된 특정의 성감대로 복귀/병리적이고 위험한것

 

한경이 아동을 저버린 지점으로 되돌아감/상실한 관계경험을 되찾고자하는 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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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널드 위니캇(Donald Winnicutt: 1896-1971)
 
 
 
도널드 위니캇은 영국 소아과전문의로서 1930년대에서 1971년까지 저술활동을 하였다. 적어도 대상관계 이론가들의 적합한 범주에는 들만한 것들이었다. 그의 논문과 이론은 상당수가 라디오상담이나 전문적 강으로부터 시작해서 그런지 , 그의 서술양식은 기탄없는 평이한 구어체이다. 비록 대개는 부담 없는 그의 글쓰는 스타일이지만 때때로 부정확하고 혼란스럽기도 하다.
 
위니캇은 멜라니 클라인의 용어를 때때로 빌어썼지만, 충분히 좋은 어머니, 안아주는 환경, 흘려쓰기등과 같이  그 자신만의 의미로 새로운 표현으로 만들어 사용하였다. 위니캇은 그의 논문과 온정있는 임상일화들을 통해 따뜻한 배려와 사람들과도 잘 어울려 놀줄도 아는 쾌활한 사람임을 알 수 있다.
 
위니캇은 1971년 74세의 나이로 숨졌다. 위니캇은 런던의 패딩턴 그린 소아병원에서 소아과전문의로서 정신분석학자로서 40년을 지냈다. 1930년대 동안에 위니캇은 정신분석을 받았고 그의 고문관으로서의 멜라니 클라인에게 많은 영향을 받았다. 소아과전문의와 정신분석가로서의 바쁜 생애동안 위니캇은 수천의 어머니와 아이들을 돌보았다. 제 2 차 세계대전동안 위니캇은 늘 정신과 환자들 상담에 시간을 할애하느라 런던 대공습 때도 거의 몰랐다고 한다. 위니캇은 외형적 체계는 세우지 않았지만 아동발달영역을 확고히 하는데 전념하였다.
 
위니캇의 혁신적인 것 가운데 하나는 환경과 발달하는 자아사이의 미묘한 균형을 강조한 것이다. 자아발달에 대한 그의 혁신적인 관점은 개념적으로 한 발 앞선 하인즈 코헛의 사상에서 얻은 것이다. 이장에서는 부모의 보호와 발달과정, 정신질환, 치료에 대한 위니캇의 용어와 개념과 이론들을 살펴 볼 것이다.
 
 
* 주요개념 
 
 
환경과 본능

   위니캇은 자아를 형성하는데 있어서 환경을 강조했다. 환경을 말하자면 충분히 좋은 환경이 주어졌을 때 유아의 성숙과정은 더 촉진되어진다는 것이다. 유아는 주어진 환경에 의존하고 그 환경(어머니)은 유아의 변화하는 욕구에 부응한다. 성장함에 따라 유아는 점차적으로 환경과 어머니에게 덜 의존적이게 된다.

   프로이트의 본능과 내적 역동의 개념을 부정하지 않으면서도 시각을 전환해 유아와 환경사이의 상호작용에 초점을 두었다. 이러한 시각은 본능의 발달을 사회적, 상호교류의 속에 포함시켜 놓음으로써 그 결과 위니캇은 오로지 유아의 정서적 발달을 본능보다는 유아와 어머니와의 관계에 의해서라고 이해했다. 상호관계와 환경의 중요성에 집중하는 이러한 위니캇의 관점은 본능적 발달을 강조하는 프로이트의 견해와는 확실히 달랐다. 성장은 성숙으로 향하는데 단지 본능이 아닌 사회에(관계라는 용어로 정의 내려진)기초하는 것이다.
 

도움환경

   환경의 상태가 좋던 나쁘던지 간에 유아의 발달은 이루어진다. 환경의 결정적 요소는 어머니의 돌봄이다.“초기에 어머니자신은 도움을 주는 환경”이라고 위니캇은 말했다. 유아는 만일 도움을 주는 환경에서라면 성숙의 과정에서 성장하는 결과를 얻는다. 도움을 주는 환경을 한마디로 특징지어 말한다면 부응(적응)이다. 위니캇은 유아의 욕궁 대한 환경의 적절한 부응으로 이 용어를 썼다. 유아의 욕구와 성숙의 과정은 중요한 것이고, 부모의 반응은 그것에 부응해야 한다. 그것은 초기에 어머니는 유아를 돌보는데 전적으로 자신을 내맡기고 그리고 나서 차차 덜 반응적으로 되면서 그녀 자신을 분리시키는 것이다.

   다른 말로 하면 도움을 주는 환경이 주어지면 유아는 전능성을 경험한다. 유아는 환상이나 정신적 대상인 중요대상과 관계를 맺기 시작한다. 유아는 어려운 변화를 경험하고 대상을 객관적으로 받아들이도록 관계를 맺는다. 정신적으로 창조하고 대상을 재창조하는 과정을 통해서 좋은 대상은 유아의 욕구에 대해 창의적이어야 한다. 유아가 대상을 중요한 대상에서 객관적으로 받아들여지는 대상으로 변경하는 단계에서는 유아는 점차적으로 환상의 단계에서 벗어난다.
     
                
전능의 환상

  성장의 초기 단계에서, 유아는 현실과 관계를 갖지 못하고, 말하자면 거의 없는 자원으로 세상을 창조해야만 한다. 유아가 이용할 수 있는 한 자원은 환상 또는 환각이다. 배고픔과 같은 본능적인 긴장 때문에, 유아는 어떤 것이 존재하도록 할 수 있다고 믿을 준비가 되어 있다. 그래서 유아는 대상에 대한 환각을 일으킬 수 있고, 대상에 대해 어떤 종류의 마술적 기대를 갖는다. 좋은 어머니는 유아가 그것을 얻을 수 있도록 그녀의 젖가슴과 함께 갈 것이다.
  외적 현실에 대한 유아의 처음 초기 관계의 이 결정적인 시기에, 그것은 마치 두 개의 선(유아의 요구들과 환경의 공급)이 반대편 방향으로부터 생기고 서로 접근하는 것 같다. 이 선들의 겹침과 만남이 상당히 있게 된다면, 유아는 환각의 순간, 경험(유아가 외적 현실에 대해 환각으로 여기거나 또는 소유물로 여길 수 있는 경험)을 갖게 된다. 어머니는 유아가 지배할 수 있도록 허락하고, 모든 것이 잘 된다면 유아의 주관적 대상들은 객관적으로 인식된 젖가슴 위에 얹어질 것이다. 잘 되고 건강하게 되는 것은 어머니가 유아의 충동과 조화되고, 아이의 환각 즉 거기에 있는 무엇(예를 들면, 젖가슴 또는 위로하는 손)이 아이에 의해서 창조된 것이라는 환각을 허락하는 것을 의미한다.
 

충분히 좋은 어머니

  위니캇은 아동에게 인생에서 좋은 출발을 얻기 위해 충분하게 공급해주는 부모의 기능을 묘사하는 충분히 좋은 어머니라는 눈에 띄는 용어를 만들어 냈다. 프로이트가 그랬던 것과는 다소 다른 식으로, 위니캇은 유아나 유아의 요구들에 적응해주는 환경과 부모에 대한 요구를 강조했다. 프로이트는 부모들을 무시하지는 않았지만, 유아의 내적 세계와 본능적 욕구들을 강조하는 경향이 있었다. 충분히 좋은 어머니는 엄마와의 관계 속에서 특별한 발달시기에 아동이 요구하는 것들에 대해 충분하게 공급한다. 어머니는 아동의 변화하는 요구들에 따라 적응하고 변화한다. 그리고 점차로 성장하는 아동의 의존은 감소된다. 어머니에게 요구되는 변화들을 강조하기 위해, 위니캇은 처음에 자신의 부분처럼 보여진, 그녀의 아기의 요구들과 함께 하는 어머니의 몰두에 대해 일차적인 모성적 몰두라는 용어를 주었다. 아동의 성장은 종종 어머니 자신의 독립의 회복과 일치할 것이다. 점차로, 유아가 성장하고 발달하면서, 대인관계의 변화들이 있다. 그녀의 아기가 더 독립적으로 성장하면서 엄마에 대한 요구는 보다 적게 된다.

  유아의 성공적인 적응에 있어, 충분히 좋은 어머니는 유아의 전능감을 만족시키고 촉진한다. 어머니는 성공적이고 반복적으로 유아의 자발적인 몸짓을 만족시키거나(응해주거나) 유아의 감각의 환각을 현실로 만든다. 이것은 유아의 전능감을 촉진시키고, 유아는 마치 마술에 의한 것처럼 나타나는 외적 현실을 믿기 시작하며, 마치 자신의 통제아래 있는 것처럼 행동한다.(왜냐하면 유아의 몸짓과 요구들에 대한 어머니의 성공적인 적응 때문이다.)

  유아는 점차로 실제적으로 이용할 수 있는 것을 그려내는 능력을 발달시키고, 충분히 좋은 어머니는 유아의 자기도취적인 전능감을 양육하는 이런 종류의 경험을 계속해서 공급해야만 한다. 그러면 유아는 전능의 환각을 창조하고 조절하면서 고요하게 즐길 수 있다. 본능적인 만족에 대한 신체적 경험뿐 아니라 감정적인 연합과 자신이 환각을 얻을 수 있는 것에 관한 어떤 것으로 현실에 대해 믿기 시작한다. 최종 단계들은, 이것이 착각의 요소라는 것을 깨닫게 되고 현실과 관계를 확립할 때 유아가 점차적으로 느끼는 환멸과 점차적인 전능감의 해방에 의해 받아들여질 수 있다.
     
                                                         
참자기와 거짓자기

  유아에게 있어서 환경적응의 중요성에 대한 토론에 있어, 위니캇은 환경과 아이들의 상호작용으로부터 발전하는 참 자기와 거짓 자기의 주목에 관해 토의했다. 전능함과 환상으로 가게 하는 과정에 있어서 유아의 자기에 대한 결과는 무엇인가? 유아의 자극(엄마에 의한 만남과 확신)을 통해, 유아는 환경과 내가아닌 세계와 나에 대한 확립을 발견한다. 엄마는 유아가 대상(가슴, 우윳병, 기타 등등)을 발견하게 하고, 협상(타협)하게 할 때, 대상관계는 형성된다. 참 자기는 명확하게 구분된 나와 나아닌 것을 가진다.

  돌보는 엄마는 유아가 이해할 수 없는 세계로부터 말미암는 충격과 갈등으로부터 유아를 또한 보호해야만 한다. 만약 환경이 안전하지 않다면, 유아는 아마도 순응적으로 반응할 것이다. 이 순응은 유아 자신의 자발적이고, 삶을 주는 마음중심으로부터 유아 자신의 고립으로 이끌 수 있다. 충분히 좋은 엄마가 아닐 때, 엄마가 유아의 전능감을 만나고, 충족시켜주지 못할 때, 거짓 자기는 대상관계의 가장 초기 단계에서 발달한다. 유아의 해동이 반복적으로 놓쳐지고, 엄마는 그녀 자신의 행동으로 대처함으로 인해 유아는 순응과 만나지게 된다.

  엄마의 적응이 충분히 좋지 않을 때, 외부대상에 대한 정신집중은 시작되지 않으며, 유아는 고립된 상태를 유지하고, 거짓으로 살아가게 된다. 거짓 자기는 환경적인 요구에 순응적으로 반응하며, 관계에 대해 거짓형태를 세워간다. 거짓 자기는 참 자기를 숨기며, 자발적으로 행동할 수 없다. 오로지 참 자기만이 자발적이 될 수 있고, 진실 혹은 현실을 느낄 수 있다. 거짓자기의 존재는 그 사람을 결국 쓸모 없고, 비현실적이니 느낌을 가져오고, 진실한 관계를 맺을 수 없게 한다.

Object 대상

  비록 위니캇은 멜라니 클라인으로부터 대상이라는 개념과 용어를 가져왔지만, 그는 그 자신만의 해석과 의미를 부여하는 경향이 있다. 따라서, 그는 클라인의 내적 대상의 개념과 비슷한 것으로 subjectively conceived object(주관적으로 느껴지는 대상)이라는 용어를 사용한다. 이것은 외적 대상 혹은 활동적인 사람인 object objectively perceived(객관적으로 지각된 대상)과 대비한 것이다. 위니캇은 유아가 주관적인 대상과의 관계로부터 objectively perceived object(객관적으로 지각된 대상)과의 관계를 맺는 능력을 단계적으로 확립하기까지 발달해 간다고 믿는다. 충분히 좋은 돌봄 즉, 특별히 안아주기는 유아가 엄마와 융해와 혼동으로부터 분리된 존재, 그리고 대상과 관계 맺을 수 있는 존재로 이동하게끔 허락한다. 대상관계에 의하면, 위니캇은 분리된 전재로서의 외적 대상과의 관계를 의미했는데, 이 외적 대상은 주관적이고 환상적인 개인의 전능한 지배를 벗어난 존재인 것이다. 성숙함에 따라, 개인은 단계적으로 대상과 진실하게 관계를 맺을 수 있게 되고, 현실과 생생한 접촉을 갖게 되며, 현실과 살아있다는 느낌, 세상 속에서도 현실의 느낌, 그리고 세상이 현실이고 실제라는 느낌을 가질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발달의 매우 초기 단계에서, two-body relationship(두몸관계)는 존재한다.
이후의 단계인 외디푸스기 동안의 three-body relationship(세몸관계)는 우세하다.
근원적인 two-body relationship(두몸관계)는 유아가 엄마에 의해 만들어진다.
위니캇은 매우 최초의 단계에서 one-body relationship은 있을 수 없다고 믿는다.
홀로 되기 위한 능력은 매우 복잡한 현상이며, 단지 three-body relationship의 확립이후에 오는 것이다.
홀로 되는 것은 개인의 심리적 현실에서 좋은 대상의 존재에 의존한다.
 
  이 좋은 내적 대상을 묘사함에 있어, 위니캇은 멜라니 클라인의 언어를 사용했다. 좋은 내적 대상은 좋은 내적 가슴 혹은 좋은 내적 관계로 언급할 수 있다. 좋은 내적 대상을 가지는 것과 내적 관계에 대한 확신은 개인이 외적 대상과 자극의 부재 시에도 조차 만족스럽게 쉬는 것을 허락한다. “성숙과 홀로 되는 것의 능력은 다정한 환경 속에서 충분히 좋은 돌봄을 통해 믿음을 세워갈 기회를 가져왔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현실의 전능한 지배(통제)는 현실에 대한 환상을 의미한다. 즉 내적 현실을 다루기 위한 노력의 방법 혹은 내적 현실에서 외적 현실로 달아나기 위한 방법인 것이다. 사실상, 개인은 내적 현실로부터 떠나기 위해 동화되는 전능한 환상을 통해 외적 현실에 도달한다. 위니캇은 여러 가지 예를 주었다. 한 아동은 방어적인 방법으로 외적 부모를 다루는 동안 내적 부모에 대항해 무의식의 가학적 환상을 가질 수 있다. 외향적인 모험가는 내적인 우울로부터 달아나므로 천박한(얕은) 인격이 될 수 있다. 한 왕은 많은 사람의 내적 현실에 있어서, 내재화된 아버지는 죽임을 당하고, 근절되어졌고, 그래서 이 내재화된 사람은 사람들이 존경하고 섬길 수 있는 실제의 ;사람으로 인격화되기 때문에 많은 외향적인 측면을 가질 지도 모른다.     

 
Transitional Object

  대상관계이론에 위니컷의 가장 주목할 만한 공헌 중 하나는 주관적 대상과 참된 실제 대상관계사이의 경험의 intermediate(중간) 영역(지점)인, 중간대상의 관념의 제기였다. 중간대상은 내면적이거나 주관적인 대상도 아니고, 단지 외부적 대상도 아니다. 이것은 첫 번째로 내가 아닌 소유이다. 일반적인 중간 대상은 부드러운 담요-Peanuts피너츠의 만화 캐릭터 라이너스의 든든한 담요를 쉽게 생각나게 하는 것- 또는 기저귀 또는 오래된 천의 조각이다. 중간 현상에 포함되는 것은 유아의 재잘거림, 매너리즘, 또는 외부 진실에 소유물로써 아직 인식되지 못하는 아동의 자신의 몸의 어떤 부분이다. 유아에게 중요한 것은 사물이나 소리가 잠으로 가는 시간에 위안으로서, 불안이나 외로움에 대비하는 보호로써 참으로 중요하게 되는 것이다.

  중간 대상과 중간 현상(광범위한, 중간 대상 보다 더 모든 것을 포함한 용어)은 내적 실재와 외부적 삶 양쪽에 공헌하는 경험의 중간 지역에 속한다. 유아는 전능한 조정(환각)으로부터 육체적인 조작(실재 경향의)에 의한 조정으로 통과한다. 여기서 아동은 중간 상황을 창조하는 부분적으로 주관적이고 부분적으로 실재 경향인 환각을 필요로 한다. 그러므로 담요는 실재, 객관적으로 지각된 것이나 유아의 조정 아래 가슴에서 위로를 얻는 것 같이 만족시킨다. 중간대상은 유아의 신비한 본질에 대한 전능한 통제, 주관적인 대상(유아의 부분으로써 가슴에 환각 같은 ) 아래에 있는 것도 아니고 외부 어머니처럼 자신의 통제 밖에 있지도 않다.
 
 
Developmental Processes and Parental Care

  위니캇은 부모-자녀 상호작용과 아동의 발달상의 과정에 관한 일부분에 대한 중요한 식견을 광범위하게 썼다. 때문에 위니캇은 그의 논문을 어머니와 아동에 초점을 맞추었다. 그는 다른 특정한 관점이나 견지로부터 그 서술을 여기저기 옮기고 고찰했다. 그러나 그의 저서들은 이 다른 견지들을 조심스럽게 서서히 나아가거나, 조리 있는 체계로 통합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는 다수의 상호관계를 가진 과정들을 자세히 보고, 아동의 발달은 어머니와의 관계와 서로 얽혀있다고 강조했다. 그의 최우선의 주제는 아동발달에 대한 주의 환경의 기여(공헌)였고, 그리고 그는 발달은 환경-그것은 부모, 어떤 사람, for Winnicott, 늘 변함없는 어머니  - 과의 아동의 관계에 의한 것이라고 정의를 내렸다.

  위니캇이 극적으로 “there is no such thing as a baby"라고 말했을 때 그는 언제든지 당신은 한 유아를 찾을 것이고, 당신은 돌보는 어머니를 찾을 것이라는 것을 의미했다. 모성적 돌봄 없이는 유아도 없다. 갓난아이는 분리된 개인도 아니고, 돌보는 couple의 필수적인 부분도 아니다. 어린 아이의 발달은 모성적 돌봄과 풀리지 않게 연결되어있다.: ”유아와 모성적 돌봄은 단일체로 함께이다." 그래서 위니캇은 감정적인 성장을 강조했다. 개인의 직관적인(본능적인) 삶의 진행이라기보다는 오히려 의존에서 독립으로의 대인관계의 성장으로써.. “어머니의 기능에 관해서 제외하고는 초기단계에 갓난아이들의 어떠한 묘사라도 가치가 없다”라고 그는 썼다. 사실 위니컷은 뜻밖에 얼마간 발달의 여러 단계에 관해.....그리고 다른 것으로부터 하나의 단계의 분할(division)은 인위적이고 단지 편의의 문제라고 생각했다.(Winnicott, in fact, was somewhat casual about various stages of development and considered that "a division of one phase from another is artificial, and merely a matter of convenience")
  최초의 통합되지 않은 단계에서 조직화된 통합으로 가는 과정인 충분히 좋은 어머니의 환경 안에서 아동은 발달한다. 대상관계에 대한 수용력과 “함께 사는 것”과 함께; 이것은 전체와의 관계로 외부적 대상들이다. 유아는 완전한 의존으로부터 관계 의존을 거쳐 독립으로 여행을 한다. 그리고 이 세 가지 의존의 종류들은 개략적으로 부모적 돌봄의 세 가지 걸쳐지는 단계들과  서로 관련한다. : “안아주는 것”, “엄마와 유아가 함께 하는 것”, 그리고 마침내 “엄마, 유아, 그리고 아빠와 함께 사는 것”

  발달 과정의 위니컷의 논문에 포함되는 것은: 성숙 과정, 부모적 돌봄의 종류, 성술 과정과 부모적 돌봄 사이의 연관, 의존의 종류, 그리고 자아의 발달.
  
                        
성숙 과정 (Maturational Processes)

   성숙과정과 발달단계는 부모의 돌봄과 관련되어 있으며 또한 아동기에 물려받아서 계속적인 발전을 이루게 되는 경향성이다. 이러한 과정들은 통합과 인격화 및 대상과 관계 짓는 것을 포함한다.

   통합이란 개체(개인)의 단위에 대한 증진된 구조화(조직화)를 의미하는데, 왜냐하면 인격이 하나의 완전한 전체로서 시작하지 않기 때문이다. 인격화란 개인의 심리가 몸 안에서 집중하는 방식을 뜻한다. 위니캇에게 있어서 대상과 관련짓는 일은 실제적인 느낌 및 실제적으로 사람과 관계를 맺는 일, 그리고 환경 안에서 실제적인 대상과 관계가 있다; 물론, 이것은, 하나의 내적인 과정으로서의 대상관계의 보편적인 의미와는 다르다.
 

부모의 돌봄의 종류 ( Kinds of Parental Care)

   어린이의 성숙과정은 부모의 돌봄에 의해서 강화된다. 부모의 돌봄의 형태로서 환경은, 안아줌, 만져줌, 대상제공을 공급한다. 안아줌은 부모가 돌보아 주는 가간 또는 단계는 물론 환경 적인 감독을 포함한다. 그러므로, 안아줌은 유아를 육체적으로 안아주는 것뿐만 아니라 “함께 사는 것”(의 단계)이라는 개념이전에 성장을 제공하는 전체 환경을 의미한다.

   안아줌의 기간 동안에는 유아는 어머니와 일체가 되어서 대상물이 자기에게 있어서 외부적인 것이라는 사실을 인식할 능력이 아직은 없다. 점차로 유아는 통합되지 않은 단계로부터 구조화된 통합으로 변화한다. 유아는 자신의 안과 밖, 나와 나 아닌 것을 가지는 하나의 개체, 하나의 인격체, 자기의 독자적인 권리를 가지는 하나의 개인이다. 유아는 주관적으로 인식한  대상과의 관계성으로부터 객관적으로 인식한 대상과의 관계성으로 변화시키며 대상관계의 능력을 더욱 발전시킨다. 이 발전은 유아가 어머니와 하나된 존재로부터 어머니로부터 분리된 존재로 변화되는 것, 그리고 어머니를 자신과 분리된 나 아닌 존재로 관련을 맺는 것으로의 변화와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 이것이 성공적으로 섭취되면 유아는 안아줌의 단계로부터 함께 사는 단계로 이동하게 된다. 함께 삶은 어린이가 하나의 개인으로서 어머니를 하나의 실제적인 외부적 대상물로서 그리고 어린이의 자기로부터 분리된 존재로서 관련시키는 발전의 단계(국면)이다.
 

성숙과정과 부모의 돌봄 사이의 연결

   유아의 성숙과정은 부모가 하는 감독의 종류와 질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 그러므로, 통합은 안아줌과 밀접하게 연결되고, 인격화는 만져줌과 연결된다. 그리고 대상관계는 대상제공과 연결되어 있다.
 
 
통합과 안아줌

   통합은 안아줌의 환경 적 기능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안아줌은 하루종일 계속되는 반복적인 돌봄, 특별히 사랑의 표현인 유아를 육체적으로 안아주는 일을 포함한다. 어떤 어른들은 유아를 어떻게 안아주는지 알지 못하며, 그래서 유아는 불안감을 느끼고, 종종 울어 버린다. 안아줌은 통합을 강화하는데, 이는 유아를 하나의 개체 또는 개체적 자아, 즉 몸을 가지고 살아가는 통전 적 인간으로 만든다. 통합은, 유아의 심리적 단편들을 함께 가져오는데, 이는 심리적 조각들과 해체들의 반대이다. 안아주는 환경의 주요기능은 유아가 자제할 수 없거나 또는 어린이로 하여금 입다물게 만들거나, 자아를 부정 당하는 느낌을 갖게 하는 충돌을 최소화한다. 성공적인 안아줌의 환경은 유아의 실존적이고 존재하는 긍정적인 느낌을 만들어 준다. 간략히 말해서 좋은 어머니의 돌봄은 유아를 한 인격체로서의 존재로 만든다.

   위니캇은 어머니를 유아에게 거울을 비춰줌으로 부분적으로 유아의 존재를 일깨우는 존재로 본다(이 말은 코헛의 거울 환경을 연상시킨다. 아마도 그는 위니캇의 생각을 가져왔을 것이다). 아기가 자기 어머니의 얼굴을 볼 때에 그는 그 자신을 보는 것이다. 왜냐하면 어머니가 유아를 바라볼 때에 어머니의 모습은 그녀가 유아에게서 보는 그것과 관련되어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어린이를 보고 느끼는 어머니의 기쁨은 어머니의 얼굴에 투영되고, 그리고 유아는 어머니의 얼굴에 나타난 그 기쁨을 보고 유아는 즐겁고 선한 것을 느낀다.) 어머니는 유아 자신의 자기(self)를 유아에게 되돌려 준다. 그것은 마치 유아가 어머니의 얼굴을 바라보면서, 거울을 바라보고 자기 자신을 보는 것과 같다. “ 내가 보여지는 나를 볼 때에 나는 존재한다”. 그러므로, 감정발달의 초기 단계에 있어서는, 사실상 유아로부터 유아가 아직 분리되지 않은 그러한 환경에 의해서 중요한 부분이 수행된다.   
 

Personalization and handling                  
                                      
  이 환경의 제공은 아기의 자아와 신체의 견고한 결합을 촉진하는 일종의 부모의 보살핌이다. 부모가 아기의 몸을 어루만지고 부드럽게 다룰 때 그 아기의 인격은 그 자신의 몸에 기초를 두며, 그것은 아기의 자아의 바탕이 되는 역할을 하는 신체의 자아를 양육한다. 신체를 다루는 것은 안락하고 익숙한 방법으로 자아와 아기의 인격을 신체와, 신체 기능들, 그리고 감각에 연결한다. 위니컷은 자아와 여러 가지 id의 욕동과 만족을 가진 신체를 연결하는 이 과정을 설명하기위해 인격화란 용어를 사용했다. 만약 자아와 신체사이의 굳은 연결이 깨진다면 현실과 동떨어진 낯선 감정이 결과로 일어날 수 있으며 뿐만 아니라 자기로부터 유리되고 자기 자신의 몸에서 멀어진 감정이 일어날 수 있다. 위니컷은 자아와 신체의 결합이 깨지는 것을 언급하기 위해 비인격화란 용어를 사용했는데, 물론 정신의학에 있어 이 용어는 약간의 차이점과 뉘앙스가 좀 다르다.
 
 
Object relating and object presenting

  이러한 형태의 부모의 보살핌은 어떻게 아기가 외부의 현실과 외부의 대상에 관계할 것인가를 조형하도록 엄마가 대상을 제공하는 것을 포함한다. 그 아기는 어떤 필요에서 시작되는 모호한 기대를 발달시킨다. 충분히 좋은 엄마는 아기의 필요에 응하는 대상으로 존재하고  그래서 아기는 정확히 그녀가 제공할 수 있는 것을 필요로 하기 시작한다. 예를 들면 젖이 나오는 엄마는 그녀의 배고픈 아기에게 모유를 먹이고 싶어 한다. 그 엄마는 어떻게 유아가 이 외부대상을 다루어야 하는 지를 (행동양식을 ) 형성시켜줄 필요가 있다. 유아가  그 가슴을 자신이 만든 환상으로서 또는 실제 외부 현실에 속하는 대상으로써 경험케 하는 환상이 있을 필요가 있다.

  실제로 아기 앞에 나타났을 때 젖꼭지를 통하여 아기가 환영을 갖도록 하기 위해서 , 아기가 흥분하고 준비가 되었을 때 엄마의 젖가슴이 가까이 해 줄 필요가 있다. 이런 식으로 아기는 실제로 자기에게 제공될 수 있는 것이 무엇인가를 떠올리는 능력을 발달시키기 시작한다. 엄마는 계속해서 아기에게 이런 형태의 경험을 공급해줄 필요가 있다. 이 과정에서 아기는 대상을 창조하고 자신의 본능적인 만족상황을 수동적으로 받아들이기 보다는 능동적으로 참여하게 된다. 아기 정서의 성장을 위해 약간의 불만족이 여기서는 도움이 된다. 아이가 여전히 엄마와 연합되어 있을 때 본능의 만족은  그 대상을 거의 인식하지 않는다 반면에 불만족은 엄마와 아이사이에 대상을 두게 된다. 그것은 대상과 자아를 분리하게 하는 공격성을 불러일으키는 좌절이다. 좌절은 그 아이에게  나만이 아닌 다른 세계의 경험을 일깨워준다. 예를 들어 만족스러운 수유는 대상에 집중하지 않고  그 대상을 사라지게 한다. 왜냐면 본능의 즐거움과 만족은 좋은 것이고, 그들은 대상을 인식하는 데 아무런 것도 안하며, 그래서 유아는 연합의 상태에 계속 있게 된다.

  위니컷은 유아와 엄마의 관계성에 에고관련성이란 용어를 사용했다. 위니컷이 믿기에 이것은 우호감이 만들어지는 요소이고 또한 전이의 틀이다. 유아의 미성숙한 자아는 그 자아가 엄마로부터 보완 받음으로 균형을 잡는다. 누군가 유아 옆에 있어 전심을 다할 때 유아는 그의 개인적인 삶을(거짓 자기가 아니라) 발견할 수 있고, 현실을 느낄 수 있고, 혼자가 되는 능력을 기를 수 있다. 내부 정신세계에서 좋은 대상의 경험이 점점 증가적으로 확고해짐에 따라, 유아는 혼자가 되는 능력을 갖고, 외부대상이 없어도 만족한다.

독립 

  위니캇이 성장을 설명했던 또 다른 방식은 어머니에 대해 자녀의 의존의 질(성질)에 관한 것이다. 어린 아이의 발전 단계들은 어머니의 돌봄의 종류와 성질에 따라 어쩔 수 없게 간섭을 받는다. 의존의 세 가지 범주는 완전한 의존, 상대적인 의존, 독립으로 향한 상태 등이다.
 
완벽한 의존

  이런 유아의 감성적인 발달의 가장 빠른 단계 동안, 엄마는 용이한 (쉬운) 환경이고, 어머니는 가장 근본적인 어머니의 임무의 상태에 있다. 유아의 인생 처음 몇 주 동안에, 어머니는 그녀 자신과 같은 아기에게 선취되어진다. 아기는 완전히 어머니의 돌봄을 인식조차 않는 상태로 어머니에게 의존한다. 여러 면에서 어머니는 아이와의 가까운 관계로 인해 의존적인 상태에 있다. 그녀는 음식을 제공하고, 목욕물의 온도를 제고, 유아에게 필요한 환경을 모두 공급한다. 어머니는 충돌(다른 공격)으로부터 아이의 현실성(현재)을 보호한다. 완벽한 의존의 기간 동안에, 어머니 (어머니 대체)는 유아의 돌봄에 헌신되어질 필요가 있다. 어머니는 아이의 성장에 적응하면서, 점차로 어머니 자신의 삶을 다시 시작하고 아이의 독립심은 증가된 독립 정신을 향해 자라나간다.

상대적인 의존

  상대적인 의존의 상태에서, 아이들은 엄마에 대한 의존을 의식하기 시작하고 이 인식은 걱정거리를 유발한다. 이것이 어머니가 점차로 그녀 자신으로 돌아가거나 아이 낳기 전의 그녀로써 어머니의 부분에 적응하는 것을 배워가는 단계이다. 초기의 지적인 이해력은 부엌에서 나는 소음이 음식이 곧 나온다는 것을 암시한다는 것을 배가 고픈 아이를 지체시키고 아이에게 알게 한다. 아이는 또한 엄마가 필요하다는 것을 안다.- 아이는 이제 어머니에 대한 의식적인 필요성을 갖고 있다. 이 단계는 거의 6달에서 2년 동안 계속된다. 아이는 점차로 아이를 한 전체의 인간으로 만들고 안고 밖의 몸을 잘 조화하도록 하는 통합을 이루어나간다. 개인의 정신적 현실은 안쪽에 차지한다. 바깥에 있는 나는 나 자신을 의미하지 않는다. 나를 이루어가는 것은 다른 모든 것은 내가 아니다 라는 것을 포함한다. 잡고 있는 환경의 기능은 통합을 자라게 한다. "나는 다른 사람에 의해 보여지고 이해된다"라는 생각이 있고 "내가 인간으로써 이해된다고 내가 필요한 증거 (거울에 비친 얼굴처럼)로 돌아간다."는 생각이 있다. 이것이 "mirroring"(거울보기)의 코허트의 이론의 놀라운 선구자적인 업적이다. 보통의 아이들은 오랜 시간동안 만약 많은 부분이던 전체적인 것이던, 그것이 엄마의 얼굴 안에 있던지 자기 자신의 몸 안에 있던지 신경쓰지 않는다. 점차로 아이는 보통 자신의 통합에서 심리학적으로 여러 조각을 함께 모으는 한 사람을 가진다(?) 위니캇은 정신 분열 (통합되지 않은) 성인 화자가 모든 것이 말하여 진다면 일주일동안 그의 일상생활 모든 것을 말하고 만족을 느낀다고 말했다. 반면에 분석가들은 환자들이 분석가 한 사람에 의해 모든 그의 부분들을 알아질 필요가 있음을 제외하고 어떤 일도 될 필요가 있다고 느끼지 않는다. 뮬론 통합은 분열과 분해의 반대적인 것이다. 분해의 방어는 완벽한 방어 체계를 유지하는 것의 실패로부터 생각할 수 없는 걱정을 어머니 자아의 부재로 인한 혼란을 여러 산물들이 도와주지 않는다는 것이다.
 

독립을 향해

  유아들이 실제 돌봄이 없이 무언가를 하는 수단을 발달시킨다. 아이들은 내면의 구조와 지적인 이해력을 발달시키고, 사회에 더욱 참여되어 간다. 아이들은 사회 생활의 커져가는 사회 관계 (원)안의 개개인의 존재와 함께 진전한 독립심을 키워간다. 이 단계는 어린 아이의 노력을 보여주고 사춘기를 통해서 계속된다.
 
 
자아의 발달

  위니캇이 발달 단계를 연구한 또 다른 방법은 환경에 의해 영향을 받는다고 그가 판단한 자아의 발달에 의해 고려하는 것이다. 그는 때때로 아기의 발달에 관해 언급했고, 때때로 자아의 발달에 관해 언급했다. 위니캇이 사용했듯이, 자아라는 단어는 적절한 환경아래서 자라나는 인간 성격의 부분이 한 사람으로 통합되는 경향이 있다고 그려낸다.

  ID로부터 자아가 온다고 생각한 프로이드와 다르게, 위니캇은 자아 전에 ID가 없다고 말했다. 자아(ego)는 단어 "self" 가 타당성을 얻기 훨씬 전에 학문적인 기회를 제공하고 self (자아)는 ego (자아) 후에 도달한다. 자아가 처음부터 존재해 왔냐는 질문에 위니캇은 시작은 ego 가 시작될 때라고 말했다.
 
 
정신질환

  위니캇은 정신 질환을 여러 관점에서 접근했다. 그는 복잡한 주제를 단순한 용어로 간단히 하는데 어려움이 있음을 강조했다. 그의 초기 글에서 보면 분석에서 있어서는 프로이드와 클라인과 가까웠다. 그러나 점차적으로 아동의 환경적인 결함에 주안점을 두는 그 만의 방향으로 발전시켰다. 아동의 돌봄의 실패 때문에 아동의 자아는 진실되지 못하며 자발적이지도 못하고 통합적이지도 못하게 되고 아동은 다양한 종류의 불안으로 채워지게 된다.
  일반적으로 위니캇은 어떠한 분류라도 환경적인 결함과 왜곡의 질과 정도에 바탕을 두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He saw mental illness in terms of the processes of early infant maturation but in reverse(1963/1965i, p.241) ; 그것은 유아의 적절한 성장에 방해가 되는 환경이다. 그의 최근의 글에서 그는 정신 질환을 세 부류로 나누었다.: 정신 신경증, 중간 질환(반사회적 또는 태만함), 정신병
 
정신신경증

  정신신경증은 오이디푸스 컴플렉스 단계에 있는 사람의 질환을 표현하는 용어이다. 이 단계의 정서적 발달과 힘에 있어서 개개인은 two body 관계보다는 본래의 인성과 three whole people사이의 관계를 경험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 위니캇은 그러한 개개인은 비교적 정상인 것으로 가정했으며 환경이 충분히 좋으면  불안과 갈등을 충분히 대항할 수 있는 성품이 형성된다고  가정했다. 위니캇은 자신의 전분 분야를 정신병분야로 하고 정신신경증의 혼란 부분은 정통 프로이드의 분석의 분야로 간주했다.
 

중간 질환

  중간 질환 또는 정신혼란은 환경적인 데서 기인하는데 처음에는 좋다가 나중에는 나빠지는 것이다. 그것은 아동들이 자아 구성을 발달시키기는 하나 개인이 내적환경을 형성할 수 있기 전에 성장이 멈추고 비독립적이 된다. 이러한 종류의 상실감은 사회병리적이며 태만하고 반사회적인 개개인을 양산한다. 그러한 개인은 사회가 그들에게 빚지고 있다는 태도를 가지고 있다.
 

정신병

  참을 느끼고 세상이 참임을 느끼는 것이다. 성공적 대상관계의 반대는 비현실화이다. 또는 비현실을 느끼거나 사회현실과의 접촉의 실패를 의미한다. 위니캇은 정신병을 초기의 환경의 상실이나 실패의 결과로 생각하기도 했다. 환경제공의 실패는 아동이 통합과 인격화, 대상관계의 과정을 결정적으로 성숙시킬 수 없도록 한다.

  그 환경은 성숙과정을 키워나가는 기능에 있어서 실패했다. 삶의 초기 단계에서 개인의 정신 건강의 근본은 정해져 있다. 환경은 개인을 자라게 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충분히 좋다면 개개인의 성장과정을 돕는다. 이러한 성장을 돕기 위해서 환경을 충분히 좋은 상태에서 성장하는 아동의 변화하는 욕구에 맞추어야하며 어떤 성장 과정은 도와야 한다. 아동의 욕구를 받아들이는데 실패한 환경은 정상적인 성장과정을 방해하는 데로 이끌 수 있다. 정상적인 성장과정이란 통합되고(통합) 신체와의 편안한 조화를 이루고(인격화) 대상과의 관계를 맺을 수 있는 능력을 발달시킬 수  있는 자아의 형성(대상관계)이다.

분열

  분열이란 통합의 반대이다. (with a lesser degree of disintergation being splitting) 신체와 정신의 연결을 깨뜨리는 것은 비인격화 또는 심신의 무질서 상태이다. 성공적인 대상관계는 어머니의 전체를 대상과 연결하는 것을 의미한다. 성공이란 참을 느끼는 것이며 세상에서 세상이 참임을 느끼는 것이다. 성공적인 대상관계의 반대는 비현실화 또는 비현실감을 느끼거나 사회현실과의 접촉의 상실이다.
 
Therapy(치료)

  만약 정신적 병이 거짓 자기의 발달과 무익한 감각으로 인한 초기의 환경적인 실패(environmental failures)와 관련이 된다면, 치료는 이것을 거꾸로 찾아가게 하는 것이다. 치료는 순수하고 건강한 참자기를 만들기 위해 초기의 mothering process를 재생산한다. 치료에 대한 winnicott의 개념은 환경이 성숙된 아이들을 위해 제공해야 한다는 기본적인 이해함을 따랐다. 치료자는(상담자)는 환자가 느끼는 같은 느낌을 알아야 한다. 치료자는 환자의 삶의 주관적 목표(subjective object)를 수용하고, 그것은 환자가 복수심 없이 미워하게 되거나 또는 밖으로 표출되지 않는 사랑하는 대상을 포함할 수도 있다. 치료자는 환자의 비논리나 혼란스러운 얘기들 그리고 조잡한 심술들을 퇴행을 돕기 위하여 다 참아내야 한다. 치료는 통제되는 퇴행의 과정이다. 즉, 치료의 조건 전문적인 setting, 치료자의 인내와 신뢰는 환자에게 있어서 퇴행을 촉진시킨다. 퇴행은 환경이 저버렸던 단계(지점)과 초기의 의지했던 곳으로 조직적인 되돌아가는 것을 의미한다.  그것은 본능적인 생활의 초기 지점으로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의존(dependency)의 재정립을 향한 경향이다. 치료에 있어서 치유는 치료자 자신이 하는 무엇인가가 아니라 의존적인 관계 안에서 환자가 자기 치료를 통해 야기시키는 무엇인가이다. 치료의 목적은 초기의 나르시즘이나 전능감을 성공적으로 경험하게 만듦으로 초기의 감정적인 실패들을 누그러뜨리는 것이다. 치료에 있어서 변화(change)는 치료의 초기 요인이 개개인의 전능감안에서 환자자신의 방법으로 치료의 방법을 찾을 때에야 오는 것이다.

  치료자들은 환자의 퇴행을 촉진시킨다. 그래서 개개인들은 초기 어린 시절의 경험들을 다시 살릴수 있고 발달상의 부족함(developmental deficits)을 수정할 수 있게 된다. 개인들은 치료자에게서 자신감을 느낀다. 왜냐하면 치료자가 올바른 환경을 제공하고, 또 필요한 환경적인 공급(environmental provisions)을 믿을만하고 환자의 방법으로 제공해 주기 때문이다.  과정은 독립성(independency)이 증가될 때 경험되어지는 것이고, 치료자는 개인의 참자기가 참자기를 보호하는 거짓자기를 포함하는 조직적인 방어 없이 제한된 환경적인 실패들을 만나도록 도와준다. 이모든 것들은 충분히 좋은 어머니가 그녀의 아이를 위해 좋은 경험들을 반복시켜야 하는 것처럼 반복되어지고 또 반복되어져야 한다. winnicott은 한 청년기 환자의 유아적인 요구들에 반응하는 방법을 예를 들어 마련해 주었다.  별로 내키지 않는 환자가 winnicott이 다음날인 토요일에 만나줄 수 있는지 전화를 했다. 이것은 바쁘고 저명한 소아과 의사에게 다소 비현실적이며 마술적인(magical)것을 상징했다. 그러나 winnicott은 그 요구를 들어주어야 한다는 것을 알았다. 왜냐하면 성공적인 부모가 유아적 요구를 잘 맞춰줄 수 있는 것처럼 그도 역시 그에게 잘 맞춰주기를 원했기 때문이었다. winnicott은 치료적인 분위기를 만들기 위해 노력했다. 그것은 적어도 치료의 초기 단계에 있어서 그가 원하는 종류의 치료자를 만들려고 한다거나 치료자가 퇴행을 촉진시키기 위해 노력할 수 있는 그러한 분위기이다.
  
The Squiggle Game (흘려쓰기 게임)      
  
  위니캇은 아이들을 진단하고 치료하는 데에 있어서 그림을 그리는 방법을 고안해 내고 그것을 squiggle game(흘려쓰기 게임)이라고 불렀다. 위니캇은 아이와 대화하고 관계를 형성하는 하나의 즐거운 방법으로 이 게임을 사용했다. 환경의 발달과 역할에 대한 위니캇의 이해를 바탕으로 한 이 게임에서, 위니캇과 아이는 펜과 종이를 가지고 함께 앉았다. 위니캇은 눈을 감고 종이에 몇 개의 선과 곡선들을 그렸고 아이로 하여금 그 선들을 토끼나 집 또는 다른 어떤 것으로 바꾸도록 했다. 반대로 아이가 곡선을 그리면 위니캇이 그 선들을 다른 것으로 바꾸어 그렸다. 위니캇은 아이가 그림을 통해 점진적으로 자신의 성격이나 관심을 나타낸다고 하였다.

  위니캇은 아이들이 종종 그의 상담실로 처음 상담하러 오기 전날 밤에 그에 대해 꿈을 꾼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는 이 꿈이 그를 대하는 아이들의 태도를 나타낸다고 이해했다. 그는  아이들에게 실재하는 대상의 역할에 자신을 맞추었다 ; 즉 처음의 두 세 번의 치료 시기 동안에 아이들이 그들의 내적 세계와 연결되기 위하여 필요한 존재가 되어 주었으며 그것은 유아의 무의식적인 몸짓에 대한 엄마의 반응과 매우 흡사한 것이었다. 아이는 자신이 이해 받고 도움 받을 수 있다고 믿었으며 그 결과 위니캇이 아이의 세계로 들어가는 것은 그러한 믿음을 더욱 강하게 해 주었다. 이해 받는다는 느낌은 아이의 정서적 발달을 방해하는 단단한 매듭을 풀어주는 것에 상당한 기여를 했다.
 
 위니캇은 이러한 기법을 사용한 많은 사례 연구를 통해 어린이와 관련된 그의 연구가 재미있고 즐거운 작업이라고 하였다. 어린이 치료에 있어서의 그의 오랜 노력의 결과, 겉으로 보기에는 힘들이지도 않고 직관적인 것 같은 치료의 기술을 표현하기 위해 위니캇은 부드러운 이미지를 사용했다 ; 그것은 치료 과정에서 기법에 충실하기보다 오히려 음악을 연주하고 있는 것과 같았다.
 
Assessment and Critique of Winnicott (위니캇에 대한 평가와 비판)

  위니캇은 초기에 프로이드와 클라인의 이론에서 많은 영향을 받았다. 그러나 그의 후기 저서에서 사람에 대한 연구에 대하여 근원적이고도 중대한 공헌을 했다고 스스로 주장한다. 비록 그의 생각들이 하나의 체계를 구성하지는 못했지만 어린이의 발달에 대해서는 근원적인 통찰력을 제공한다. 위니캇은 엄마와 아이 간의 상호 관계가 어떻게 아이의 발달을 촉진시키거나 방해하는가에 대한 독특한 관점을 제시했다.
 
   위니캇의 생각들을 다른 학자들의 개념과 관련짓는 것은 쉽지 않다. 그 이유는 그의 생각이 발전, 변화되어 갔고 또한 사람들을 놀라게 하거나 또는 그들에게 신선한 충격을 주는 이론을 형식을 갖추지도 않고 제시했기 때문이다. 즉 “뭐가 문제냐”라고 의문을 제기하며 클라인에게는 없어서는 안될 핵심 요소들을 무시하는 것이었다. 해리 건트립은 위니캇이 id 등 프로이드의 용어들을 사용했다고 주장하는데 위니캇은 id(본능)의 힘을 신뢰하지 않았으며 id를 그의 관점에서는 중요하지 않은 오히려 단순한 습관으로 보았다. 위니캇도 정신 병리에 대한 자신의 분류를 위하여 고전적인 프로이드의 개념들을 왜곡했다. 이를테면 고전적인 프로이드의 신경증 개념이 반드시 병리는 아니라고 하였다.
 
  위니캇과 거의 같은 시대에 페어베언이 있는데 그는 영국의 대상관계 학파 중에서 또 한 명의 중요한 일원이었다. 위니캇은 페어베언이 프로이드에 대하여 반대하는 많은 부분에 공감하면서도 프로이드의 이론을 뒤집는 것에 대해서는 강하게 비판했다. 게다가 위니캇은 페어베언의 결점을 찾아내었는데 그것은 심리 분석 이론이 발달해 가는 흐름에 그의 생각들을 통합시키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위니캇은 어떤 기준에서 보더라도 정통 프로이드 학파가 아니었기 때문에 이것은 참으로 묘하다. 그러나 심리 분석의 흐름과 그의 관계는 그에게는 참으로 중요했다.
 
  위니캇은 그가 개발한 어린이 치료 연구와 발달에 관한 그의 근원적인 생각들 - 프로이드의 직관적인 강조를 뛰어넘고 코헛이 말한 건강한 자기애(자아도취)와 자아의 중요성에 대한 견해들을 앞서는 것 - 을 통한 다양한 방법으로 심리분석의 주된 흐름을 확장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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