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합검색
아이디    비밀번호
   자동로그인     
  현재 총 48명 접속중입니다. (회원 0 명 / 손님 48 명)     최신게시글    성경검색   
화이트헤드
철학
사회과학
자연과학
켄 윌버(Ken Wilber)
불교와 심리학
학술번역


  방문객 접속현황
오늘 291
어제 245
최대 10,145
전체 2,843,774



    제 목 : 뽓타빠다 경 (Potthapāda Sutta. D9)    
  글쓴이 : 미선 날 짜 : 20-06-23 19:03 조회(22)
   트랙백 주소 : http://freeview.org/bbs/tb.php/e005/166 





뽓타빠다 경 (Potthapāda Sutta. D9)

 

1.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한 때에 세존께서는 사왓티의 제따 숲에 있는 아나타삔디카 승원에 머물고 계셨다. 그 무렵 뽓타빠다 유행승은 삼백명 정도의 많은 유행승의 대중과 함께 띤두까 나무로 에워싸여 있고 하나의 강당을 가진 말리까 숲에 있는 강연장에 머물고 있었다. 

 

2. 세존께서는 오전에 옷차림을 바르게 하시고 발우와 가사를 지니시고 탁발을 위해서 사왓티로 들어가셨다. 그때 세존께 이런 생각이 드셨다. 

'지금 탁발을 위해서 사왓티로 들어가는 것은 너무 시간이 이르다. 나는 이제 하나의 강당만 있는 말리까 숲으로 뽓타빠다 유행승을 만나러 가는 것이 좋겠다.' 그래서 세존께서는 띤두까 나무 근처에 있으며 하나의 강당만 가진 말리까 숲에 있는 강당으로 가셨다.

 

3. 뽓타빠다 유행승은 많은 유행승의 대중과 함께 앉아 있었는데 그들은 시끄럽고 큰 목소리로 여러 가지 하챦은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즉 왕에 대한 이야기, 도둑에 대한 이야기, 대신들에 대한 이야기, 군대에 대한 이야기, 두려움에 대한 이야기, 전쟁에 대한 이야기, 음식에 대한 이야기, 음료에 대한 이야기, 의복에 대한 이야기, 침상에 대한 이야기, 화환에 대한 이야기, 향료에 대한 이야기, 친척에 대한 이야기, 탈 것에 대한 이야기, 마을에 대한 이야기, 도읍에 대한 이야기, 도시에 대한 이야기, 지방에 대한 이야기, 여자에 대한 이야기, 영웅에 대한 이야기, 도로에 대한 이야기, 우물에 대한 이야기, 전에 죽은 자에 대한 이야기, 잡다한 이야기, 세계에 대한 이야기, 바다에 대한 이야기, 이렇다거나 이렇지 않다는 이야기들이었다.

 

4. 뽓타빠다 유행승은 세존이 오시는 것을 멀리서 보고 자신의 대중을 조용히 하도록 하였다.  

"존자들은 소리를 죽이시오, 존자들은 소리를 내지 마시오. 사문 고따마께서 오고 계십니다. 저 존자께서는 조용함을 좋아하고, 조용함으로 머물고, 조용함을 칭송합니다. 이제 우리 회중이 조용함을 알면 그분은 우리에게 다가오실 것이라 생각합니다." 

이와 같이 말하자 그 유행승들은 침묵하였다.

 

 5. 세존께서는 뽓타빠다 유행승에게로 다가 가셨다. 뽓타빠다 유행승은 세존께서 오시는 것을 보았다. 보고서는 세존께 이와 같이 말씀드렸다. 

"어서 오십시오, 세존이시여, 저희는 세존을 환영합니다. 세존께서는 오랜만에 여기에 오실 기회를 만드셨습니다. 이리로 와서 앉으십시오.

세존이시여, 이것이 마련된 자리입니다." 

세존께서는 마련된 자리에 앉으셨다. 뽓타빠다 유행승도 역시 다른 낮은 자리를 잡아서 한 곁에 앉았다.  

한 곁에 앉은 뽓타빠다 유행승에게 세존께서는 이와 같이 말씀하셨다. 

"뽓타빠다여, 그대들은 무슨 이야기를 하기 위해 지금 여기에 모였는가? 그리고 그대들이 중단한 이야기는 무엇인가?"  

 

6. 이와 같이 말씀하시자 뽓타빠다 유행승은 세존께 이와 같이 말씀드렸다. 

"세존이시여, 저희들이 한 이야기는 그냥 두십시오. 그 이야기는 세존께서 나중에 들으셔도 됩니다. 그런데 세존이시여, 근래에 며칠간 여러 외도 사문·바라문들이 토론 장소에 모여서 함께 자리를 했는데 그때 '존자들이여, 어떻게 해서 인식의 소멸은 있게 됩니까?'라고 인식의 소멸에 대한 이야기가 생겼습니다. 거기서 어떤 자들은 '존자들이여, 원인도 조건도 없이 인간의 인식은 일어나기도 하고 소멸하기도 합니다. 일어날 때에는 인식하는 자가 되고, 소멸할 때에는 인식 없는 자가 됩니다.'라고 말하였습니다. 어떤 자들은 이렇게 인식의 소멸을 천명하였습니다. 

 

그것을 두고 다른 자는 '존자들이여, 내가 보기에 그것은 그렇지 않을 겁니다. 인식이야 말로 인간의 자아입니다. 그것은 다가오기도 하고 물러가기도 합니다. 다가올 때에는 인식하는 자가 되고, 물러갈 때는 인식 없는 자가 됩니다.'라고 말하였습니다. 어떤 자들은 이렇게 인식의 소멸을 천명하였습니다.

 

그것을 두고 다른 자는 '존자들이여, 내가 보기에 그것은 그렇지 않을 겁니다. 큰 신통과 큰 위력을 가진 사문·바라문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사람의 인식을 집어 넣기도 하고 빼내기도 합니다. 집어 넣을 때에는 인식하는 자가 되고, 빼낼 때에는 인식없는 자가 됩니다.'라고 말하였습니다.  

어떤 자들은 이렇게 인식의 소멸을 천명하였습니다.

 

그것을 두고 다른 자는 '존자들이여, 내가 보기에 그것은 그렇지 않을 겁니다. 큰 신통과 큰 위력을 가진 신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사람의 인식을 집어넣기도 하고 빼내기도 합니다. 집어 넣을 때에는 인식하는 자가 되고, 빼낼 때에는 인식없는 자가 됩니다.'라고 말하였습니다. 어떤 자들은

이렇게 인식의 소멸을 천명하였습니다.

 

세존이시여, 그때 제게는 세존께 대한 기억이 일어났습니다. 

'오, 참으로 세존이 계시는구나. 참으로 선서(善逝)께서 계시는구나. 그분이야말로 이러한 법들에 아주 능통한 분이시다.'라고.

세존께서는 인식의 소멸에 대해서 능숙하시고 그 본성을 잘 아시는 분입니다. 

세존이시여, 참으로 어떻게 해서 인식은 소멸합니까?

    

7. "뽓타빠다여, 여기서 '원인도 조건도 없이 인간의 인식은 일어나기도 하고 소멸하기도 합니다.'라고 말하는 사문·바라문은 처음부터 틀렸다.

그것은 무슨 이유 때문인가? 

뽓타빠다여, 원인과 더불어, 조건과 더불어 인간의 인식은 일어나기도 하고 소멸하기도 하기 때문이다. 어떤 인식은 닦음과 익힘에 의해서 일어나고, 어떤 인식은 닦음과 익힘에 의해서 사라진다. 

뽓타빠다여, 그러면 닦음과 익힘이란 무엇인가?

세존께서는 이와 같이 말씀하셨다. 

"뽓타빠다여, 여기 여래가 이 세상에 출현한다. 그는 

아라한(應供)이며,

바르게 깨달은 분(正等覺, 正遍智)이며,

명지(明智)와 실천이 구족하신 분이시며(明行足)이며,

피안으로 잘 가신 분(善逝)이며,

세간을 잘 알고 계신 분(世間解)이며,

가장 높은 분(無上士)이며,

사람을 잘 길들이는 분(調御丈夫)이며,

하늘과 인간의 스승(天人師)이며,

깨달은 분(佛.Buddha.붓다)이며,

세상의 존귀하신 분(世尊.세존)이다.

그는 이 세간의 모든 중생들, 즉 마라들, 범천들, 축생들, 사문들, 바라문들, 천신및 인간들에게, 스스로 철저히 알았고, 겪어 알아, 갖추신 것을

널리 알리고 계시다. 

그는 시작도 훌륭하고 중간도 훌륭하고 끝도 훌륭하고, 의미와 표현이 일치하는 법을 설하며, 완전히 원만하고 청정한 거룩한 삶을 드러낸다.

 

이런 법을 장자나 장자의 아들이나 다른 가문에서 태어난 자가 듣는다. 그는 이 법을 듣고서 여래에게 믿음을 가진다. 그는 이런 믿음을 구족하여 이렇게 숙고한다.'재가의 삶이란 막혀있고 때가 낀 길이지만 출가의 삶은 열린 허공과 같다. 재가에 살면서 완전무결하고 청정무구한 잘 닦여진

자개껍질과 같은 청정범행을 실천하기란 쉽지 않다. 그러니 나는 이제 머리와 수염을 깎고 물들인 옷을 입고 집을 떠나 출가하리라.'라고. 그는 나중에 재산이 적건 많건 간에 모두 다 버리고, 일가친척도 적건 많건 간에 다 떠나서, 머리와 수염을 깎고, 물들인 옷을 입고 집에서 짒없는

곳으로 출가한다. 

그는 이와 같이 출가하여 계목의 단속으로 단속하면서 머문다. 바른 행실과 행동의 영역을 갖추고, 작은 허물에 대해서도 잘못됨을 보며, 학습계목들을 받아지녀 닦고 익힌다. 선한 몸의 업과 말의 업을 잘 갖추고, 생계를 청정히 하고, 계를 구족하고, 감각의 근들의 문을 보호하고, 마음챙김과 알아차림(正念正知)을 잘 갖추고, (얻은 필수품으로) 만족한다. 

 

8. "뽓타빠다여, 그러면 비구는 어떻게 계를 구족하는가? 

[짧은 길이의 계: 모두 26가지로 계를 지님] 

1) 여기 비구는 생명을 죽이는 행위를 버리고 생명을 죽이는 행위를 멀리 떠난다. 몽둥이를 내려놓고 칼을 내려놓는다. 겸손하고, 친절하며, 자비로운 자가 되어 일체의 생명의 이익을 위하여 연민하며 머문다. 그의 계에는 이런 것이 있다. 

2) 그는 주지않는 것을 가지는 행위를 버리고 주지 않는 것을 가지는 행위를 멀리 떠난다. 준 것만울 받고 준 것만을 받으려고 하며 스스로 훔치지 않아 청정하게 머문다. 그의 계에는 이런 것이 있다. 

3) 그는 금욕적이지 못한 삶을 버리고 청정범행을 닦는다. 독신자가 되어 성행위의 저속함을 멀리 떠난다. 그의 계에는 이런 것이 있다.

4) 그는 거짓을 말하는 행위를 버리고 거짓을 말하는 행위를 멀리 떠난다. 그는 진실을 말하며, 믿을만 하고, 신뢰할 수 있고, 기대할 수 있고,

세상을 속이지 않는다. 그의 계에는 이런 것이 있다. 

5) 그는 이간하는 말을 하는 행위를 버리고 이간하는 말을 하는 행위를 멀리 떠난다. 여기서 듣고서 이들을 이간하려고 저기서 말하지 않는다.

저기서 듣고서 저들을 이간하려고 여기서 말하지 않는다. 사람들의 화합을 좋아하고, 화합을 기뻐하고, 화합을 즐겨하며, 이간된 사람들을 화합하게 하는 말을 하여 스스로 굳건하고 화합하여 머문다. 그의 계에는 이런 것이 있다. 

6) 그는 거친 말(욕설)을 하는 행위를 버리고 거친 말을 하는 행위를 멀리 떠난다. 그는 거친 말을 하지 않아 사람들의 마음에 상처를 주지 않고,

사랑스럽고, 가슴에 와 닿고, 예의 바르고, 들어서 즐거운 말을 한다. 사람들이 좋아하고, 사람들이 마음에 드는 그런 말을 하며, 스스로 굳건하고

유순하게 머문다. 그의 계에는 이런 것이 있다. 

7) 그는 꾸며대는 말을 하는 행위를 버리고 꾸며대는 말을 하는 행위를 멀리 떠난다. 꾸며대는 말을 하지 않고, 유익한 것을 말하고, 법을 말하고, 율을 말하고, 시기에 맞는 말을 한다. 담아둘 만한 이유가 있고, 의미가 분명하며, 이익을 줄 수 있는 말을 바른 시기를 알아 그 시기에 맞게

말한다. 그의 계에는 이런 것이 있다. 

8) [1] 그는 씨앗류와 초목류를 손상시키는 것을 멀리 떠난다.

   [2] 그는 하루에 한 끼만 먹는 자이다. 그는 밤에 먹는 것을 그만두고 때 아닌 때 먹는 것을 멀리 떠난다.

   [3] 그는 춤,노래,음악,연극을 관람하는 것을 멀리 떠난다.

   [4] 그는 화환을 두르고 향수를 바르고 화장품으로 꾸미는 것을 멀리 떠난다.

   [5] 그는 높고 큰 침상을 멀리 떠난다.

   [6] 그는 금과 은을 받는 것을 멀리 떠난다.

   [7] 그는 요리하지 않은 날곡식을 받는 것을 멀리 떠난다.

   [8] 그는 생고기 받는 것을 멀리 떠난다.

   [9] 그는 여인이나 어린 소녀를 받는 것을 멀리 떠난다.

 [10] 그는 하인과 하녀를 받는 것을 멀리 떠난다.

 [11] 그는 염소와 양을 받는 것을 멀리 떠난다.

 [12] 그는 닭과 돼지를 받는 것을 멀리 떠난다.

 [13] 그는 코끼리,소,말,암말을 받는 것을 멀리 떠난다.

 [14] 그는 농토나 토지를 받는 것을 멀리 떠난다.

 [15] 그는 남의 심부름꾼이나 전령으로 가는 것을 멀리 떠난다.

 [16] 그는 사고파는 것을 멀리 떠난다.

 [17] 그는 저울을 속이고 돈을 속이고 치수를 속이는 것을 멀리 떠난다.

 [18] 그는 악용하고 속이고 횡령하고 사기하는 것을 멀리 떠난다.

 [19] 그는 상해,살상,포박,약탈,노략질,폭력을 멀리 떠난다. 그의 계에는 이런 것이 있다. 

 

[중간 길이의 계: 모두 10가지로 잘못된 행위를 하는 것을 멀리함] 

1) 어떤 사문이나 어떤 바라문 존자들은 (재가자들이) 믿음으로 주어진 음식으로 살면서, 예를 들면, 뿌리로 번식하는 것, 줄기로 번식하는 것,

마디로 번식하는 것, 싹으로 번식하는 것, 다섯번째로 종자로 번식을 하는 씨앗과 초목을 손상시키는 행위를 하면서 머문다. 그는 이러한 씨앗류와 초목을 손상시키는 행위로부터 멀리 떠난다. 그의 계에는 이런 것이 있다.

2) 어떤 사문이나 바라문 존자들은 (재가자들이) 믿음으로 주어진 음식으로 살면서, 예를 들면, 음식을 축적하고, 마실 것을 축적히고, 옷을 축적히고, 탈 것을 축적하고, 침구와 좌구를 축적하고, 향을 축적하고, 재산을 축적하는 등의 축적하는 것을 즐기는 행위를 하면서 머문다. 그는 축적하는 것을 즐기는 이런 행위로부터 멀리 떠난다. 그의 계에는 이런 것이 있다. 

3) 어떤 사문이나 바라문 존자들은 재가자들이 믿음으로 주어진 음식으로 살면서, 예를 들면, 춤, 노래, 연주, 연극, 낭송, 박수치며 하는 공연, 

마술 공연, 북치며 하는 공연, 예술품 전람회, 쇠공놀이, 죽봉놀이, 곡예, 코끼리 싸움, 말싸움, 황소싸움, 물소싸움, 염소싸움, 숫양싸움, 닭싸움,

봉술, 주먹싸움, 레슬링, 모의전투, 군대의 행진, 군대의 집합, 군대의 열병등의 갖가지 구경거리를 보고 즐기거나 행하는데 빠져서 머문다. 그는 갖가지 구경거리를 보고 즐기거나 행하는데 빠지서 머무는 이런 행위로부터 멀리 떠난다. 그의 계에는 이런 것이 있다. 

4) 어떤 사문이나 바라문 존지들은 재가자들이 믿음으로 주어진 음식으로 살면서, 예를 들면, 8목 체스장기, 10목 체스장기, 허공에 판이 있는

것을 가정하고 하는 체스장기, 돌차기 놀이, 쌓기 놀이, 주사위 놀이, 자치기, 손에 물감을 묻혀 그림을 그리는 놀이, 풀피리 불기, 장난감 쟁기질 놀이, 재주 넘기, 잎으로 만든 팔랑개비 돌리기, 장난감 저울놀이, 장난감 수레놀이, 장난감 활쏘기, 등뒤에 쓴 글자 맞히기 놀이, 불구자 흉내내기,

도박등의 갖가지 놀이나 도박을 하고 즐기는데 빠져서 머문다. 그는 갖가지 놀이나 도박을 하고 즐기는데 빠져서 머무는 이런 행위로부터 멀리떠난다. 그의 계에는 이런 것이 있다. 

5) 어떤 사문이나 바라문 존지들은 재가자들이 믿음으로 주어진 음식으로 살면서, 예를 들면, 큰 침상, 쇼파, 긴 털이 달린 깔개, 여러가지 색의

모직 이불(덮개), 울긋불긋한 천 조각을 덧댄 이불, 흰색 양털 이불, 꽃들을 수놓은 모직 이불, 솜으로 채운 침대요, 동물을 수놓은 모직 침대보,

한쪽이나 양쪽에 술을 가진 모직 이불, 보석을 박은 이불, 비단 이불, 무도장의 양탄자, 코끼리 등덮개, 수레 깔게, 사슴가죽 깔게, 영양가죽 깔게, 차양있는 양탄자, 붉은 베게와 붉은 발 한 받침이 있는 긴 의자등의 높고 호사스런 침구와 좌구를 사용하면서 머문다. 그는 높고 호사스러운

침구와 좌구를 사용하는 행위로부터 멀리 떠난다. 그의 계에는 이런 것이 있다. 

6) 어떤 사문이나 바라문 존지들은 재가자들이 믿음으로 주어진 음식으로 살면서, 예를 들면, 몸에 향가루 바르기, 기름으로 안마하기, 향수로 목욕하기, 사지를 안마하기, 거울 보기, 속눈썹 검게 칠하기, 화환과 향과 화장품으로 치장하기, 얼굴에 분칠하기, 화장 팔찌 차기, 머리띠 두르기,

장식용 지팡이를 짚고, 긴 칼을 차고, 일산을 쓰고, 수놓은 신발을 신고, 터번이나 관모를 쓰고, 야크꼬리로 만든 총채 잡고, 긴 술로 장식된 흰옷을 입는 등의 몸을 꾸미고, 치장하고, 장식하는 일을 즐기고 몰두하는데 빠져서 머문다. 그는 이러한 몸을 꾸미고, 치장하고, 장식하는 일을 즐기고 몰두하는 행위로부터 멀리 떠난다. 그의 계에는 이런 것이 있다. 

7) 어떤 사문이나 바라문 존지들은 재가자들이 믿음으로 주어진 음식으로 살면서, 예를 들면, 왕에 대한 이야기, 도둑에 대한 이야기, 대신들에 대한 이야기, 군대에 대한 이야기, 두려움에 대한 이야기, 전쟁에 대한 이야기, 음식에 대한 이야기, 음료에 대한 이야기, 의복에 대한 이야기, 침상에 대한 이야기, 화환에 대한 이야기, 향료에 대한 이야기, 친척에 대한 이야기, 탈 것에 대한 이야기, 마을에 대한 이야기, 도읍에 대한 이야기, 도시에 대한 이야기, 지방에 대한 이야기, 여자에 대한 이야기, 영웅에 대한 이야기, 도로에 대한 이야기, 우물에 대한 이야기, 전에 죽은 자에 대한 이야기, 잡다한 이야기, 세계에 대한 이야기, 바다에 대한 이야기, 이렇다거나 이렇지 않다는 이야기등의 하챦은 이야기를 하면서 머문다.

그는 이러한 하챦은 이야기들을 멀리 떠난다. 그의 계에는 이런 것이 있다. 

8) 어떤 사문이나 바라문 존지들은 재가자들이 믿음으로 주어진 음식으로 살면서, 예를 들면, '그대는 이 법과 율을 제대로 모른다. 나야말로 이 법과 율을 제대로 안다.''어찌 그대가 이 법과 율을 제대로 알겠는가?' '그대는 삿된 법을 닦는 자이고, 나는 바른 법을 닦는 자이다.''내말은 일관되지만 그대는 일관되지 않는다.''그대는 먼저 설해야 할 것을 뒤에 설했고, 뒤에 설해야 할 것을 먼저 설했다.''그대가 오랫동안 주장해온던 것은 한 마디로 논파되었다''나는 그대의 (교설의) 허점을 지적했다. 그대는 패했다. 비난으로부터 도망가라. 혹은 만약 할 수 있다면 지금 설명해 보라.'라는 등의 불필요한 논쟁에 몰두하면서 머문다. 그는 이러한 불필요한 논쟁을 멀리 떠난다. 그의 계에는 이런 것이 있다. 

9) 어떤 사문이나 바라문 존지들은 재가자들이 믿음으로 주어진 음식으로 살면서, 예를 들면, 왕, 대신, 왕족, 바라문, 장자, 젊은이들이 '여기에 가시오, 저기에 가시오, 이것을 저기로 가지고 가시오, 저것을 여기로 가지고 오시오.'라는 등의 심부름이나 전령을 하면서 머문다. 그는 이러한 전령이나 심부름꾼 노릇을 멀리 떠난다. 그의 계에는 이런 것이 있다. 

10) 어떤 사문이나 바라문 존지들은 재가자들이 믿음으로 주어진 음식으로 살면서, 기만하고, 불평하고, 암시를 주고, 비방하고, 이득으로 이득을 추구한다. 그는 이러한 기만과 불평을 멀리 떠난다. 그의 계에는 이런 것이 있다. 

 

[긴 길이의 계: 모두 7가지로 삿된 생계를 멀리함] 

1) 어떤 사문이나 바라문 존지들은 재가자들이 믿음으로 주어진 음식으로 살면서, 예를 들면, 몸의 툭징으로 예언하기, 벼락이나 하늘의 조짐에 따라 점치기, 해몽, 관상, 쥐가 파먹은 옷의 구멍에 따라서 점치기, 불의 헌공, 주걱으로 헌공함, 왕겨 헌공, 쌀 헌공, 버터 헌공, 기름 헌공, 입으로 하는 헌공, 피의 헌공, 손금보기, 집터 보기, 대지 보기, 묘지의 귀신 물리치기, 망령 물리치기, 흙집에 사는 자의 주술, 뱀 부리는 기술, 독극물 제조술, 전갈 부리는 기술, 쥐 부리는 기술, 새 부리는 기술, 까마귀 부리는 기술, 수명 예언하기, 화살에 대항하는 주문, 동물들의 울음을 아는 주문등의 하천한 지식과 기술을 통한 삿된 생계수단으로 머문다. 그는 이러한 하천한 지식과 기술을 통한 삿된 생계수단을 멀리 떠난다. 그의 계에는 이런 것이 있다. 

2) 어떤 사문이나 바라문 존지들은 재가자들이 믿음으로 주어진 음식으로 살면서, 예를 들면, 보석의 특징, 옷감의 특징, 귀걸이의 특징, 지팡이의 특징, 칼의 특징, 긴 칼의 특징, 화살의 특징, 활의 특징, 다른 무기의 특징, 여자의 특징, 남자의 특징, 소년의 특징, 소녀의 특징, 남녀 노비의 특징, 코끼리의 특징, 말의 특징, 물소의 특징, 황소의 특징, 암소의 특징, 염소의 특징, 양의 특징, 닭의 특징, 사슴의 특징, 큰 도마뱀의 특징, 거북이의 특징등을 이용하여 갖가지 방법으로 점을 치는 하천한 지식을 통한 삿된 생계수단으로 머문다. 그는 이러한 하천한 지식을 통한 삿된 생계수단을 멀리 떠난다. 그의 계에는 이런 것이 있다. 

3) 어떤 사문이나 바라문 존지들은 재가자들이 믿음으로 주어진 음식으로 살면서, 예를 들면, '왕들의 진격이 있을 것이다. 왕들의 퇴각이 있을 것이다. 우리 쪽 왕들의 공격이 있을 것이고, 저쪽 왕들의 후퇴가 있을 것이다. 저쪽 왕들의 공격이 있을 터이고, 우리쪽 왕들의 후퇴가 있을 것이다. 우리 쪽 왕들이 승리할 것이고, 저쪽 왕들이 패배할 것이다. 저쪽 왕들이 승리할 것이고, 우리 쪽 왕들이 패배할 것이다. 이와 같이 이편이 승리할 것이고 저편이 승리할 것이다.'라는 등의 하천한 지식을 통한 삿된 생계수단으로 머문다. 그는 이러한 하천한 지식을 통한 삿된 생계수단을 멀리 떠난다. 그의 계에는 이런 것이 있다. 

4) 어떤 사문이나 바라문 존지들은 재가자들이 믿음으로 주어진 음식으로 살면서, 예를 들면, '월식이 있을 것이다. 일식이 있을 것이다. 행성의 합삭이 있을 것이다. 해와 달이 올바른 항로로 운행할 것이다. 혹은 잘못된 항로로 운행할 것이다. 유성이 떨어질 것이다. 짙은 노을이 낄 것이다. 지진이 일어날 것이다. 천둥이 칠 것이다. 해와 달과 별들이 뜨거나 지거나 흐리거나 깨끗할 것이다. 월식은 이러한 결과를 가져올 것이다. 일식은 저러한 결과를 가져올 것이다. 별이 가려지는 일은 다시 저러한 일을 가져올 것이다. 해와 달이 올바른 항로로 운행함은 이러한 결과를 가져올 것이고 잘못된 항로로 운행함은 또 다른 결과를 가져올 것이다. 별들이 올바른 항로로 운행함은 이러한 결과를 가져올 것이고 잘못된 항로로 운행함은 또 다른 결과를 가져올 것이다. 유성이 떨어짐은 이러한 결과를 가져올 것이고, 짙은 노을은 저러한 결과를 가져올 것이고, 천둥은 또 다른 결과를 가져올 것이다. 해와 달과 별의 뜨고 지고 흐리고 깨끗함도 각각 여러가지 결과를 가져올 것이다'라는 등의 하천한 지식을 통한 삿된 생계수단으로 머문다. 그는 이러한 하천한 지식을 통한 삿된 생계수단을 멀리 떠난다. 그의 계에는 이런 것이 있다.

5) 어떤 사문이나 바라문 존지들은 재가자들이 믿음으로 주어진 음식으로 살면서, 예를 들면, '비가 내릴 것이다, 가뭄이 들 것이다, 퐁년이 들 것이다, 흉년이 들 것이다. 민심이 안정될 것이다, 민심이 흉흉할 것이다, 질병이 들 것이다, 건강하게 될 것이다,' 라거나 계산법, 암산법, 셈법, 시작(詩作)법, 처세술등의 하천한 지식을 통한 삿된 생계수단으로 머문다. 그는 이러한 하천한 지식을 통한 삿된 생계수단을 멀리 떠난다. 그의 계에는 이런 것이 있다.

6) 어떤 사문이나 바라문 존지들은 재가자들이 믿음으로 주어진 음식으로 살면서, 예를 들면, 결혼할 때에 신부 집에 들어가는 날 또는 떠나는 날을 택일하고, 약혼이나 이혼의 길일을 택해 주고, 돈을 모으거나 지출하는 날을 택해 주고, 불행이나 행운울 가져오게 하는 주문을 외우고 발육부진인 태아의 원기를 회복하도록 주문을 외우고, 말더듬이나 벙어리가 되도록 주문을 외우고, 손에 풍이 들도록 주문을 외우고, 귀머거리가 되도록 주문울 외우고, 거울에(신울 모셔와서) 물어보는 점을 치고, 소녀의 몸에(신을 모셔와서) 물어보는 점을 치고, 하녀의 몸에(신을 모셔외서) 물어보는 점을 치고, 태양을 숭배하고, 대범천을 숭배하고, 입에서 불을 내뿜고, 행운의 여신을 부르는 등의 하천한 지식을 통한 삿된 생계수단으로

머문다. 이다. 그는 이러한 하천한 지식을 통한 삿된 생계수단을 멀리 떠난다. 그의 계에는 이런 것이 있다.

7) 어떤 사문이나 바라문 존지들은 재가자들이 믿음으로 주어진 음식으로 살면서, 예를 들면, 신의 축복을 비는 의식, 귀신을 부르는 의식, 흙집에 들어가서 주문을 외우는 의식, 정력을 왕성하게 하는 의식, 성불구자가 되게 하는 의식, 집지을 땅을 마련하는 의식, 집 지을 땅을 신성하게 하는 의식을 거행한다. 의식을 위해 입을 씻고 목욕재계하고 불에 제사를 지낸다. 구토의식과 정화의식, 아래를 깨끗이 하는 의식, 위를 깨끗이 하는 의식, 귀약과 안약과 코약과 연고와 연고제거제를 주고, 안과의사, 외과의사, 소아과의사 일을 하고, 뿌리 약을 처방하고, 약용식물을 처방하는 등의 하천한 지식을 통한 삿된 생계수단으로 머문다. 그는 이러한 하천한 지식을 통한 삿된 생계수단을 멀리 떠난다. 그의 계에는 이런 것이 있다.

 

뽓타빠다여, 이와 같이 계를 구족한 비구는 계로써 잘 단속하기 때문에 어느 곳에서도 잘못됨을 보지 못한다. 

뽓타빠다여, 예를 들면 관정(灌頂)한 끄샤뜨리야 왕은 적을 정복하였기 때문에 어느 곳에서도 잘못됨을 보지 못하는 것과 같다. 

뽓타빠다여, 그와 마찬가지로 계를 구족한 비구는 계로서 잘 단속하기 때문에 어는 곳에서도 잘못됨을 보지 못한다. 그는 이러한 성스러운 계의 조목(戒蘊)을 구족하여 안으로 비난받지 않는 행복을 경험한다.  

뽓타빠다여, 이와 같이 비구는 계를 구족한다."

  

9. "뽓타빠다여, 그러면 어떻게 비구는 감각의 근을 잘 지키는가?  

뽓타빠다여, 여기 비구는 눈으로 형상을 보면서 그 표상(相)을 붙잡지 않으며, 또 뒤따르는 (세세한) 느낌(受)을 붙잡지도 않는다.  만약 그의 눈의 근(眼根)이 보호되어 있지 않으면 마음에 들거나 마음에 들지 않은(간탐과 고뇌) 삿되고 선하지 않은 형색들의 공격을 받을 것이다. 따라서 그는 눈의 근을 제어하기 위해, 길들이기 위해, 고요하게 하기 위해 익히며 닦는다.   

뽓타빠다여, 여기 비구는 귀로 소리를 들으면서 그 표상을 붙잡지 않으며, 또 뒤따르는 느낌을 붙잡지도 않는다. 만약 그의 귀의 근(耳根)이 보호되어 있지 않으면 마음에 들거나 마음에 들지 않는 삿되고 선하지 않은 소리들의 공격을 받을 것이다. 따라서 그는 귀의 근을 제어하기 위해서, 길들이기 위해서, 고요하게 하기 위해서 익히고 닦는다.

뿟타빠다여, 여기 비구는 코로 냄새를 맡으면서 그 표상을 붙잡지도 않으며, 또 뒤따르는 느낌을 붙잡지도 않는다. 만약 그의 코의 근(鼻根)이 보호되어 있지 않으면 마음에 들거나 마음에 들지 않는 삿되고 선하지 않은 냄새들의 공격을 받을 것이다. 따라서 그는 코의 근을 제어하기 위해, 길들이기 위해, 고요하게 하기 위해 익히고 닦는다.  

여기 비구는 혀로 맛을 보면서 그 표상을 붙잡지도 않으며, 또 뒤따르는 느낌을 붙잡지도 않는다만약 그의 혀의 근(舌根)이 보호되어 있지 않으면 마음에 들거나 마음에 들지 않는 삿되고 선하지 않은 맛들의 공격을 받을 것이다. 따라서 그는 혀의 근을 제어하기 위해, 길들이기 위해, 고요하게 하기 위해 익히고 닦는다 

뿟타빠다여, 여기 비구는 몸으로 감촉을 느끼면서 그 표상을 붙잡지도 않으며, 또 뒤따르는 느끼을 붙잡지도 않는다. 만약 그의 몸의 근(身根)이 보호되어 있지 않으면 마음에 들거나 마음에 들지 않는 삿되고 선하지 않은 감촉들의 공격을 받을 것이다.따라서 그는 몸의 근을 제어하기 위해, 길들이기 위해, 고요하게 하기 위해 익히고 닦는다  

뿟타빠다여, 여기 비구는 마음으로 법(마음현상)을 지각함에 그 표상을 붙잡지 않으며, 또 뒤따르는 느낌을 붙잡지도 않는다. 만약 그의 마음의 근(意眼))이 보호되어 있지 않으면 마음에 들거나 마음에 들지 않는 삿되고 선하지 않은 법들의 공격을 받을 것이다.따라서 그는 마음의 근을

제어하기 위해, 길들이기 위해, 고요하게 하기 위해 익히고 닦는다.  

그는 이러한 성스러운 근의 단속을 구족하여 안으로 더렵혀지지 않는 행복을 경험한다. 

뽓타빠다여, 이와 같이 비구는 감각의 근을 잘 지킨다."

  

10. "뽓타빠다여, 그러면 어떻게 비구는 마음챙김과 알아차림(正念正知)을 잘 갖추는가? 

뽓타빠다여, 여기 비구는 나아갈 때도 물러갈 때도 자신의 거동을 분명히 알면서(正知) 행한다. 앞을 볼 때도 돌아볼 때도 분명히 알면서 행한다. 구부릴 때도 펼 때도 분명히 알면서 행한다. 가사·발우·의복을 지닐 때도 분명히 알면서 행한다. 먹을 때도 마실 때도 씹을 때도 맛볼 때도 분명히 알면서 행한다. 대소변을 볼 때도 분명히 알면서 행한다. 걸으면서 · 서면서 · 앉으면서 · 잠들면서 · 잠을 깨면서 · 말하면서 · 침묵하면서도 분명히 알면서 행한다. 

뽓타빠다여, 이와 같이 비구는 마음챙김과 알아차림을 잘 갖춘다.

 

11. " 뽓타빠다여, 그러면 어떻게 비구는 얻은 필수품만으로 만족하는가? 

뽓타빠다여, 여기 비구는 몸을 보호하기 위한 옷과 몸을 지탱하기 위한 음식으로 만족한다. 어디를 가더라도 이것을 지키며 살아간다.

뿟타빠다여, 예를 들면, 양 날개를 가진 새는 어디를 날아가더라도 오직 자기의 양 날개만을 짐으로 하여 날아간다.

뿟타빠다여, 그와 마찬가지로 비구는 몸을 보호하기 위한 옷과 몸을 지탱하기 위한 음식으로 만족한다. 어디를 가더라도 이것을 지키며

살아간다. 

뽓타빠다여, 이와 같이 비구는 (얻은 필수품만으로) 만족한다. 

  

12. "뽓타빠다여, 그는 이러한 성스러운 계의 조목을 잘 갖추고, 이러힌 성스러운 감각기능의 단속을 잘 갖추고, 이러한 마음챙김과 알아차림(正念正知)을 잘 갖추어 숲 속이나, 나무 아래나, 비어 있는 외딴 처소를 의지한다. 그는 탁발하여 공양을 마치고 돌아와서 가부죄를 틀고 상체를 똑바로 세우며 전면에 마음챙김을 확립하여 앉는다.  

그는 세상에 대한 탐욕을 제거하여 탐욕을 버린 마음으로 머문다. 탐욕으로부터 마음을 청정하게 한다. 성냄(악의)의 오점을 제거하여 성냄이 없는 마음으로 머문다. 모든 생명의 이익을 위하여 연민하여 성냄의 오점으로부터 마음을 청정하게 한다. 해태와 혼침을 제거하여 해태와 혼침이 없이 머문다. 광명상(光明想)을 가져 마음챙기고 알아차리며 해태와 혼침으로부터 마음을 청정하게 한다. 들뜸과 후회를 제거하여 들뜨지 않고 머문다. 안으로 고요히 가라앉은 마음으로 들뜸과 후회로부터 마음을 청정하게 한다. 의심을 제거하여 의심을 건너서 머문다. 선한 법들에 아무런 의문이 없어서 의심으로부터 마음을 청정하게 한다.

뿟타빠다여, 예를 들면 어떤 사람이 빚을 내어 장사하는 것과 같다. 그 사람은 성공하여 오래된 빚을 갚을 수 있을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부인을 한 명 부양할 수 있는 여분의 재산도 생길 것이다. 그에게 이런 생각이 들 것이다. '나는 전에 빚을 내어 장사를 했다. 그런 나는 장사에 성공하여 이제 오래된 빚을 다 갚았다. 그뿐만 아니라 부인을 한 명 부양할 수 있는 여분의 재산도 생겼다.'라고. 그로 인해 그는 환희롭고 마냥 행복하기만 할 것이다.  
뿟타빠다여, 예를 들면 병에 걸려 아픔과 고통에 시달리는 사람과도 같다. 그 사람은 음식을 먹을 수 없어 그의 몸에 힘이라곤 하나도 없을 것이다. 그런데 며칠 후 그는 병에서 회복될 것이다. 음식을 먹으면서 힘도 다시 생겨날 것이다. 그에게 이런 생각이 들 것이다. '나는 병에 걸려 아픔과 고통에 시달렸다. 음식을 먹을 수 없어 나의 몸에 힘이라고는 하다도 없었다. 그러나 이제 병에서 회복되었다. 음식을 먹을 수 있고, 힘도 다시 생겨났다.'라고. 그로 인해 그는 환희롭고 마냥 행복하기만 할 것이다.  
쁫타빠다여, 예를 들면 어떤 사람이 옥에 갇혔다가 얼마 뒤 옥에서 풀려난 것과도 같다. 그 사람은 이제 안전하고 두려울 것도 없고 또 재산도 줄어들지 않았다. 그에게는 이런 생각이 들 것이다. '나는 전에 옥에 갇혔다. 그런 나는 이제 옥에서 풀려났다. 나는 안전하고 두려울 것도 없고 또 재산도 줄어들지 않았다.'라고. 그로 인해 그는 환희롭고 마냥 행복하기만 할 것이다.
뿟타빠다여, 예를 들면 어떤 사람이 노예가 되어 자기 생각대로 행동하지도 못하고, 남에게 속박되어서 가고 싶은 곳에도 갈 수 없이 지내다가 얼마 뒤 노예의 신분에서 풀려난 것과도 같다. 그 사람은 이제 자유롭게 되어 더 이상 남에게 속박되지 않고, 그가 가고 싶은 대로 갈 수 있는 자유인이 되었다. 그에게 이런 생각이 들 것이다. '나는 전에 노예가 되어 내 생각대로 행동하지도 못하고, 남에게 속박되어서 가고 싶은 곳에도 갈 수 없이 지내다가 이제 노예의 신분에서 풀려났다. 이제 나는 자유롭게 되어서 더 이상 남에게 속박되지 않고, 내가 가고 싶은 대로 갈 수 있는 자유인이 되었다.'라고. 그로 인해 그는 환희롭고 마냥 행복하기만 할 것이다.  
뿟타빠다여, 예를 들면 어떤 부유한 사람이 재물을 가지고 위험이 도사리고 있는 사막을 걷는 것과 같다. 그 사람은 얼마 뒤 그 사막을 다 건너서
위험이 없는 안전한 장소인 마을에 도착을 했고 또 재산도 줄어들지 않았다. 그에게 이런 생각이 들 것이다. '나는 전에 부유하고 재물을 가지고 위험이 도사리고 있는 사막을 걸었다. 이제는 나는 그 사막을 다 건너서 위험이 없는 안전한 마을에 도착을 했고 또 재산도 줄어들지 않아다.
'라고. 그로 인해 그는 환희롭고 마냥 행복하기만 할 것이다. 
뿟타빠다여, 그와 마찬가지로 자신에게서 이들 다섯 가지 장애(五蓋)가 제거되지 못한 것을 관찰할 때 비구는 스스로를 빚진 사람(욕심) , 환자(악의), 옥에 갇힌 사람(해태와 혼침), 노예(들뜸과 후회), 사막을 걷는 사람(의심)로 여긴다. 그러나 자신에게서 이들 다섯 가지 장애가 제거되었음을 관찰할 때, 비구는 스스로를 빚에서 벗어난 사람, 병이 쾌유한 사람, 감옥의 굴레에서 벗어난 사람, 자유인, 그리고 안전한 곳에 도착한 사람으로 여긴다."

 

13. "뽓타빠다여, 그와 마찬가지로 자신에게서 다섯가지 장애가 제거되었음을 관찰할 때 환희가 생겨난다. 환희에서 기쁨(喜)이 생긴다. 기쁨에서 몸이 편안해진다. 몸이 편안함에서 즐거움이(樂)이 생긴다. 즐거움에서 마음이 삼매에 들어간다."  

"뽓타빠다여, 여기 비구는 감각적 쾌락으로부터 멀어지고, 선하지 않는 법(不善法)으로부터 멀어져, 거친 사유(尋)와 미세한 사유를 지닌, 분리됨으로부터 생겨난 기쁨(희열.喜)과 즐거움(행복. 樂)이 있는 초선(初禪)을 성취하여 머문다.   

그러면 이전에 있었던 그의 감각적 쾌락의 인식은 소멸한다. 이때에는 오직 분리됨에서 생겼으며 기쁨과 즐거움이 있는 미묘하고 참된 인식만이 있다. 이때에는 오직 분리됨에서 생겼으며 기쁨과 즐거움이 있는 미묘하고 참된 인식을 가진 자(者)만이 있다. 이와 같이 어떤 인식은 닦음에 의해서 일어나고, 어떤 인식은 닦음에 의해서 사라진다. 이것이 닦음이다." 이와 같이 세존께서는 말씀하셨다. 

"뽓타빠다여, 다시 비구는 거친 사유(尋)과 미세한 사유(伺)가 가라앉아, 안으로 고요해지고, 마음이 한곳에 고정되어, 거친 사유와 미세한 사유가 없는 삼매로부터 생겨난 기쁨과 즐거움이 있는 제2선(二禪)을 성취하여 머무른다. 

그러면 이전에 있었던 분리됨에서 생겼으며 기쁨과 즐거움이 있는 미묘하고 참된 인식은 소멸한다. 이때에는 오직 삼매에서 생긴 기쁨과 즐거움이 있는 미묘하고 참된 인식만이 있다. 이때에는 오직 삼매에서 생긴 기쁨과 즐거움이 있는 미묘하고 참된 인식을 가진 자만이 있다. 이와 같이 어떤 인식은 닦음에 의해서 일어나고, 어떤 인식은 닦음에 의해서 사라진다. 이것이 닦음이다." 이와 같이 세존께서는 말씀하셨다.  

"뽓타빠다여, 다시 비구는 기쁨이 떠나 평정이 머무는, 마음챙김과 알아차림(正念正知)을 지녀, 즐거움을 몸으로 느끼는, 거룩한 이들이 말하는 바, 평정과 마음챙김을 지녀, 즐거움이 머문다고 하는 제3선(三禪)을 성취하여 머문다. 

그러면 이전에 그에게 있었던 삼매에서 생긴 기쁨과 즐거움이 있는 미묘하고 참된 인식은 소멸한다. 이때에는 오직 평정에 기인한 즐거움이 있는 미묘하고 참된 인식만이 있다. 이때에는 오직 평정에 기인한 즐거움이 있는 미묘하고 참된 인식을 가진 자만이 있다. 이와 같이 어떤 인식은 닦음에 의해서 일어나고, 어떤 인식은 닦음에 의해서 사라진다. 이것이 닦음이다." 이와 같이 세존께서는 말씀하셨다. 

"뽓타빠다여, 다시 비구는 즐거움도 끊어지고 괴로움이 끊어져, 이전의 기쁨과 슬픔이 사라진,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평정을 통한 마음챙김의 청정을 지닌 제4선(四禪)을 구족하여 머무른다. 

그러면 이전에 그에게 있었던 평정에 기인한 즐거움이 있는 미묘하고 참된 의식은 소멸한다. 이때에는 오직 괴롭지도 않고 즐겁지도 않은 미묘하고 참된 인식만이 있다. 이때에는 오직 괴롭지도 않고 즐겁지도 않은 미묘하고 참된 인식을 가진 자만이 있다. 이와 같이 어떤 인식은 닦음에 의해서 일어나고, 어떤 인식은 닦음에 의해서 사라진다. 이것이 닦음이다." 이와 같이 세존께서는 말씀하셨다.

"뽓타빠다여, 다시 비구는 일체의 물질적 현상에 대한 지각(인식)을 넘어서고, 장애에 대한 지각을 소멸하고, 잡다한 지각에 마음을 내지 않아 '끝이 없는 허공(무한한 허공)’이라고 하는 일체의 공간에 걸림이 없는 경지인 공무변처(空無邊處)에 들어 머문다.

그러면 이전에 그에게 있었던 물질에 대한 지각은 제거된다. 이때에는 오직 공무변처의 미묘하고 참된 선정만이 있다. 이때에는 오직 공무변처의 미묘하고 참된 지각을 가진 자만이 있다. 이와 같이 어떤 지각은 닦음에 의해서 일어나고, 어떤 지각은 닦음에 의해서 제거된다. 이것이 닦음이다." 이와 같이 세존께서는 말씀하셨다. 

"뽓타빠다여, 다시 비구는 공무변처를 제거할 때(식무변처에 의해 공무변처를 제거한다) '공간에 걸림이 없음에 대한 지각'라고 하면서 식무변처(識無邊處)를 구족하여 머문다. 

그러면 이전에 그에게 있었던 공무변처의 미묘하고 참된 지각은 소멸한다. 이때에는 오직 식무변처의 미묘하고 참된 지각만이 있다. 이때에는 오직 식무변처의 미묘하고 참된 지각을 가진 자만이 있다. 이와 같이 어떤 지각은 닦음에 의해서 일어나고, 어떤 지각은 닦음에 의해서 사라진다. 이것이 닦음이다." 이와 같이 세존께서는 말씀하셨다.  

"뽓타빠다여, 다시 비구는 식무변처를 제거할 때(무소유처에 의해 식무변처를 제거한다) '아무 것도 없다.'라고 하면서 무소유처(無所有處)를 구족하여 머문다. 

그러면 이전에 그에게 있었던 식무변처의 미묘하고 참된 지각(인식)은 소멸한다. 이때에는 오직 무소유처의 미묘하고 참된 인식만이 있다. 이때에는 오직 무소유처의 미묘하고 참된 인식을 가진 자만이 있다. 이와 같이 어떤 인식은 닦음에 의해서 일어나고, 어떤 인식은 닦음에 의해서 사라진다. 이것이 닦음이다." 이와 같이 세존께서는 말씀하셨다.  

"뽓타빠다여, 비구는 (이처럼) 여기서 초선의 경지에서 고유한 인식을 가진 자가 되는데 그때 그는 그 경지로부터 다시 제2선이라는 다른 경지로, 다시 제3선이라는 다른 경지로 이렇게 점차적으로 인식의 구경(究竟)을 체험하게 된다. 이제 그가 인식의 구경에 서있을 때 이런 생각이 든다.

'내가 의도하는 것은 나쁘다. 내가 의도하지 않는 것이 더 좋다. 만일 내가 의도하고 계속적으로 (업을) 형성해 나가면 이런 나의 인식은 소멸하고 다른 거친 인식이 생겨날 것이다. 그러니 참으로 나는 의도하지 않고 계속해서 (업을) 형성하지 않으리라.'라고. 

그는 의도하지 않고 계속해서 (업을) 형성하지 않는다. 그가 의도하지 않고 게속해서 (업을) 형성하지 않기 때문에 그러한 인식은 소멸하고 다른 거친 인식은 일어나지 않는다. 그는 소멸을 체험한다.  

뽓타빠다여, 이와 같이 알아치리는 인식이 차례대로 소멸하는 증득(等至)이 있다."

 

14."뽓타빠다여, 이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그대는 이전에 알아차리는 인식이 차례대로 소멸하는 증득에 대해서 들어본 적이 있는가?"

"그렇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저는 세존이 설하신 것을 이와 같이 잘 알겠습니다.

'뽓타빠다여, 비구는 이처럼 여기서 (각각의 경지에) 고유한 인식을 가진 자가 되는데 그때 그는 어떠한 경지로부터 다시 다른 경지로, 이렇게 점차적으로 인식의 구경을 체험하게 된다. 이제 그가 인식의 구경에 서있을 때에 이런 생각이 든다. 

'내가 의도하는 것은 나쁘다. 내가 의도하지 않는 것이 더 좋다. 만일 내가 의도하고 계속적으로 (업을) 형성해 나가면 이런 나의 인식은 소멸하고 다른 거친 인식이 생겨날 것이다. 그러니 참으로 나는 의도하지 않고 계속해서 (업을) 형성하지 않으리라.'라고. 

그는 의도하지 않고 계속해서 (업을) 형성하지 않는다. 그가 의도하지 않고 게속해서 (업을) 형성하지 않기 때문에 그러한 인식은 소멸하고 다른 거친 인식은 일어나지 않는다. 그는 소멸을 체험한다. 

뽓타빠다여, 이와 같이 알아차리는 인식이 차례대로 소멸하는 증득(等至)이 있다.'라고." 

 

* 인식의 구경

주석서는 무소유처가 바로 인식의 구경(sannagga)이라 설명한다. 왜냐하면 무소유처는 세간적인 것 가운데 증득해야 하는 구경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본 경에서도 무소유처까지 언급되며, 이런 인식인 무소유처를 통해서 비상비비상처와 상수멸도 증득한다고 설명한다,(DA.ii.373) 그리고 비상비비상처는 인식이 있는 것도 아니고 없는 것도 아닌 아주 미세한 경지이므로 인식의 항목에서는 언급할 수 없다. 그래서 비상비비상처는 인식의 소멸을 설하는 본 경의 주제와는 잘 맞지 않는다. 따라서 인식에 관한 한 세존께서는 무소유처를 구경으로 간주하시는 것이다.  

 

15. "세존이시여, 그러면 세존께서는 인식의 구경이 하나라고 천명하십니까?"

"뽓타빠다여, 나는 인식의 구경은 하나라고도 천명하고, 개별적인 인식의 구경들도 천명한다.

"세존이시여, 그러면 어떻게 해서 인식의 구경은 하나라고도 천명하고 개별적인 인식의 구경들도 천명하십니까?"

"뽓타빠다여, 소멸을 체험할 때마다 나는 인식의 구경을 천명한다. 이와 같이 나는 인식의 구경은 하나라고도 천명하고 개별적인 인식의 구경들도 천명한다." 

 

* "유행승은 세존께서 무소유처를 인식의 구경이라고 말씀하시자, 그러면 그것만이 인식의 구경인가 아니면 다른 증득(등지)에서도 인식의 구경이 있는가라고 생각한 뒤 세존께 이렇게 질문을 드리고 세존께서는 해결해주셨다. 여기서 개별적(puthu)이란 '많은(bahu)"이란 뜻이다.(DA.i.374∼375)

여기에 대해서 세존께서는 4선-3처의 각각의 증득(등지)에서 얻어지는 인식도 인식의 구경이라 할 수 있고,

무소유처의 인식 하나 만을 인식의 구경이라 할 수 있다는 의미로 "인식의 구경은 하나라고도 천명하고, 개별적인 인식의 구경도 천명한다.'고 말씀하신다.

  

16. "세존이시여, 그러면 먼저 인식이 생기고 그 다음에 지혜가 생깁니까, 아니면 먼저 지혜가 생기고 인식이 생깁니까, 혹은 인식과 지혜가 전도 후도 없이 (동시에) 생깁니까?"  

"뽓타빠다여, 인식이 먼저 생기고 그 다음에 지혜가 생긴다. 그러나 인식이 생기면 지혜도 반드시 생긴다. 그는 그와 같이 철저히 안다. '참으로 이것에 조건 지워져 나의 지혜는 생긴다.'라고.

"뽓타빠다여, (조건 지워져서 생긴다는) 이런 방식을 통해서 '인식이 먼저 생기고 다음에 지혜가 생긴다. 그러나 인식이 생기면 지혜도 반드시

생긴다.'라고 알아야 한다." 

 

* 인식과 지혜

주석서에서는 다음과 같은 세 가지 경우로 인식과 지혜를 규정한다,(DA.ii.375)

첫째 방법: 인식이란 禪의 인식(janasanna)이고 지혜란 위빳사나의 지혜(vipassananana)이다.

둘째 방법: 인식이란 위빳사나의 인식이고 지혜란 도(道, magga)에 대한 지혜이다.

셋째 방법: 인식이란 도의 인식이고 지혜란 과(果, phala)의 지혜이다.

    

17. "세존이시여, 그러면 인식이 인간의 자아입니까? 아니면 인식과 자아는 서로 다른 것입니까?"

"뽓타빠다여, 그런데 그대는 무엇을 두고 자아라고 이해하고 있는가?"

"세존이시여, 거칠고 물질로 되었고 네 가지 근본물질(四大)로 이루어졌고, 덩어리로 된 음식을 먹고 사는 것을 자아라고 이해합니다."

"뽓타빠다여, 그대가 거칠고 믈질로 되었고 네 가지 근본물질로 이루어졌고, 덩어리로 된 음식을 먹고 사는 것을 자아라고 이해한다 하더라도

참으로 그대에게 인식과 자아는 다를 것이다. 

뽓타빠다여, 그런 방식에 의한다면 인식과 자아는 서로 다를 수 밖에 없나니, 거칠고 믈질로 되었고, 네 가지 근본물질로 이루어졌고, 덩어리로 된 음식을 먹고 사는 자아가 머물러 있는데도 이 사람에게는 그것과 다른 인식이 생기고 그것과는 다른 인식이 소멸하기 때문이다. 

뽓타빠다여, 그러므로 이런 방식으로는 '인식과 자아는 서로 다르게 되고 만다.'라고 알아야 한다,"

  

18. "세존이시여, 저는 마음으로 이루어지고 모든 수족이 다 갖추어지고 감각기능(根)이 결여되지 않은 것을 자아라고 이해합니다."

"뽓타빠다여, 그대가 마음으로 이루어지고 모든 수족이 다 갖추어지고 감각기능(根)이 결여되지 않은 것을 자아라고 이해한다 하더라도 참으로 그대에게 인식과 자아는 서로 다를 것이다. 

뽓타빠다여, 그런 방식에 의한다면 인식과 자아는 서로 다를 수 밖에 없나니, 마음으로 이루어지고 모든 수족이 다 갖추어지고 감각기능(根)이 결여되지 않은 자아가 머물러 있는데도 이 사람에게는 그것과는 다른 인식이 생기고 그것과는 다른 인식이 소멸하기 때문이다. 

뿟타빠다여, 그러므로 이런 방식으로는 '인식과 자아는 서로 다르게 되고 만다.'라고 알아야 한다," 

  

19. "세존이시여, 저는 물질이 아니며(無色) 인식으로 이루어진 것을 자아라고 이해합니다."

"뽓타빠다여, 그대가 물질이 아니며 인식으로 이루어 진 것을 자아라고 이해한다 하더라도 참으로 그대에게 인식과 자아는 서로 다를 것이다. 

뽓타빠다여, 그런 방식에 의한다면 인식과 자아는 서로 다를 수 밖에 없나니, 물질이 아니며 인식으로 이루어진 자아가 머물러 있는데도 이 사람에게는 그것과는 다른 인식이 생기고 그것과는 다른 인식이 소멸하기 때문이다. 

뽓타빠다여, 그러므로 이런 방식으로는 '인식과 자아는 서로 다르게 되고 만다.'라고 알아야 한다,"   

 

* 거칠고 물질로 되었고.. 뽓타빠다는 외도이기 때문에 당연히 외도들이 결코 놓아 버리지 못하는 자아에 대한 질문을 할 수 밖에 없다. 특히 세존께서 4선-3처에서 증득되는 '미묘하고 참된 인식'을 말씀하셨기 때문에 그는 이런 경지야말로 궁극적인 실재인 자아가 아닐까 하고 세존께 질문 드린다. 

인도 사상에서 자아에 대한 관심을 빼 버리면 도대체 무엇이 남을까? 인도 제일의 성전인「바가왓기따」와 여러 우빠니샤드들, 육파철학의 수뜨라들과 그 많은 저술들에서 자아를 빼 버리면 무엇이 남을까? 이런 자아에 대한 관심을 초탈해야 그는 참다운 부처님의 제자요, 불교에서 말하는 출격대장부이다. 

뽓타빠다도 결국은 자아에 대한 관심과 집착을 놓지 못했기 때문에 부처님을 존경했지만 출가제자는 될 수 없었고 성자의 과위(果位)를 증득할 수 없았다. 

* 마음으로 이루어지고.. 여기서 "마음으로 이루어진이란 禪의 마음(jhanamnaso)을 통해서 만들어진 것이다."(DAT.i.488) 이다. 그러므로 이것은 초선부터 제4선까지의 색계선의 경지다. 

* 물질이 아니며 인식으로 이루어진..이것은 무색계의 경지다. 21∼23에서 유행승은 차례대로 욕계, 색계, 무색계의 자아를 가정하고 있다. 여기에 대해서 세존께서는 욕계, 색계, 무색계에서의 인식은 변하기 때문에 인식은 자아가 아니라고 척파하신 것이다. 특히 4선-3처(무색계) 각각의 경지에서 생기는 인식이 아무리 미묘하고 참되다 하더라도 그것은 그 경지에 머물 때에만 해당된다. 그 경지에서 나오면 그런 인식은 사라지고 만다. 그러므로 인식은 아무리 미묘하고 참되다 하더라도 영원불변의 자아는 될 수 없다는 말씀이다.

    

20. "세존이시여, 그렇다면 저는 인식이 인간의 자아인지, 아니면 인식과 자아는 서로 다른 것인지 알 수가 없습니까?"

"뽓타빠다여, 그대와 같이 다른 견해를 가졌고, 다른 가르침을 좋아하고, 다른 길을을 추구하고, 다른 스승을 따르는 자는 참으로 인식이 인간의 자아인지, 아니면 인식과 자아는 서로 다른 것인지 알기 어렵다."  

 

* 각묵스님 주석 (디가니까야 475페이지)

무언가 궁극적인 실재를 상정하는 그런 관념과 관심을 버리지 못하는 한, 결코 부처님의 메시지를 이해할 수 없다는 말씀이다. 이것은 이 시대 우리 불교수행자들도 깊이 새겨볼 말씀이라 생각된다. 우리는 이름만 불교를 하고 있지 어쩌면 대아, 진아, 주인공, 불성, 여래장이라는 존재론적인 실재를 가정하고 그것을 추구하고, 그것을 깨치고, 그것과 하나 되고, 아니면 그것의 은총과 광명으로 살려는 발상을 가지고 있다면 그는 부처님의 제자가 아니라 다른 수행, 다른 스승, 다른 가르침을 불교라는 이름으로 거머쥐고 있는 것이리라. 그런 자는 부처님의 고구정녕하신 메시지를 결코 알 수 없을 것이다. 

 

21. "세존이시여, 만일 저와 같이 다른 견해를 가졌고, 다른 가르침을 받아들였고, 다른 가르침을 좋아하고, 다른 길을 추구하고, 다른 스승을 따르는 자는 참으로 인식이 자아인지, 아니면 인식과 자아는 서로 다른 것인지를 알기 어렵다고 하신다면, 

 

세존이시여, 그러면 '세상은 영원하다는 이것만이 진리이고 다른 것은 진리가 아니다.'라는 이런 견해를 고따마 존자께서는 가지고 계십니까?"

"뽓타빠다여, '세상은 영원하다는 이것만이 진리이고 다른 것은 진리가 아니다.'라는 것을 나는 설명하지 않는다." 

"세존이시여, 그러면 '세상은 영원하지 않다는 이것만이 진리이고 다른 것은 진리가 아니다.'라는 이런 견해를 고따마 존자께서는 가지고 계십니까?"

"뽓타빠다여, '세상은 영원하지 않다는 이것만이 진리이고 다른 것은 진리가 아니다.'라는 것을 나는 설명하지 않는다." 

 

"고따마 존자시여, '세상은 끝이 있다는 이것만이 진리이고 다른 것은 진리가 아니다.'라는 이런 견해를 고따마 존자께서는 가지고 계십니까?"

"뽓타빠다여, '세상은 끝이 있다는 이것만이 진리이고 다른 것은 진리가 아니다.'라는 것을 나는 설명하지 않는다." 

"고따마 존자시여, 그러면 '세상은 끝이 없다는 이것만이 진리이고 다른 것은 진리가 아니다.'라는 이런 견해를 고따마 존자께서는 가지고 계십니까?"

"뽓타빠다여, '세상은 끝이 없다는 이것만이 진리이고 다른 것은 진리가 아니다.'라는 것을 나는 설명하지 않는다."   

 

"고따마 존자시여, '생명과 몸은 같은 것이라는 이것만이 진리이고 다른 것은 진리가 아니다.'라는 이런 견해를 고따마 존자께서는 가지고 계십니까?"

"뽓타빠다여, '생명과 몸은 같은 것이라는 이것만이 진리이고 다른 것은 진리가 아니다.'라는 것을 나는 설명하지 않는다." 

"고따마 존자시여, 그러면 '생명과 몸은 다른 것이라는 이것만이 진리이고 다른 것은 진리가 아니다.'라는 이런 견해를 고따마 존자께서는 가지고 계십니까?"

"뽓타빠다여, '생명과 몸은 다른 것이라는 이것만이 진리이고 다른 것은 진리가 아니다.'라는 것을 나는 설명하지 않는다."  

 

"고따마 존자시여, '여래는 죽은 뒤에도 존재한다는 이것만이 진리이고 다른 것은 진리가 아니다.'라는 이런 견해를 고따마 존자께서는 가지고

계십니까?"

"뽓타빠다여, '여래는 죽은 뒤에도 존재한다는 이것만이 진리이고 다른 것은 진리가 아니다.'라는 것을 나는 설명하지 않는다."

 "고따마 존자시여, 그러면 '여래는 죽은 뒤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이것만이 진리이고 다른 것은 진리가 아니다.'라는 이런 견해를 고따마 존자께서는 가지고 계십니까?"

"뽓타빠다여, '여래는 죽은 뒤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이것만이 진리이고 다른 것은 진리가 아니다.'라는 것을 나는 설명하지 않는다."       

"고따마 존자시여, '여래는 죽은 뒤에 존재하기도 하고 존재하지 않기도 한다는 이것만이 진리이고 다른 것은 진리가 아니다.'라는 이런 견해를 고따마 존자께서는 가지고 계십니까?"

"뽓타빠다여, '여래는 죽은 뒤에 존재하기도 하고 존재하지 않기도 한다는 이것만이 진리이고 다른 것은 진리가 아니다.'라는 것을 나는 설명하지 않는다." 

"고따마 존자시여, 그러면 '여래는 죽은 뒤에 존재하는 것도 아니고 존재하지 않는 것도 아니다는 이것만이 진리이고 다른 것은 진리가 아니다.'라는이런 견해를 고따마 존자께서는 가지고 계십니까?"

"뽓타빠다여, '여래는 죽은 뒤에 존재하는 것도 아니고 존재하지 않는 것도 아니다는 이것만이 진리이고 다른 것은 진리가 아니다.'라는 것을 나는 설명하지 않는다." 

 

22. "세존이시여, 그러면 왜 세존께서는 이것을 설명하지 않으십니까?

"뽓타빠다여, 이것은 참으로  

1) 이익을 주지 못하고  

2) (출세간)법에 바탕한 것이 아니며,  

3) 청정범행의 시작에도 미치지 못하고,  

4) 싫어하여 떠남으로 인도하지 못하고, 

5) 탐냄의 떠남으로 인도하지 못하고, 

6) 소멸로 인도하지 못하고, 

7) 고요함으로 인도하지 못하고, 

8) 철저한 앎으로 인도하지 못하고, 

9) 완전한 깨달음으로 인도하지 못하고, 

10) 열반으로 인도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이것을 설명하지 않는다."

 

* 법에 바탕한 것들이 아니며.."법에 바탕한 것이 아니라는 것은 9가지 출세간법(Iokuttara-dhamma)에 의지한 것이 아니라는 뜻이다."(DA.ii.377) 아홉 가지 출세간법은 예류도부터 아라한도까지의 네 가지 도와 예류과로부터 아라한과까지의 네 가지 과와 열반을 뜻한다. 

* 십사무기(十事無記) 자아와 세계에 대한 형이상학적인 천착이 아무 쓸모없음을 설하시는 이러한 10사무기(十事無記)의 정형구는 「짧은 말룽가 경」(M63)과 한역 「중아함」의 「전유경」(箭喩經, 독화살 비유경)을 통해서 우리에게 널리 알려져 있다. 세존의 입각처를 명쾌하게 만천하에 천명하시는 유명한 가르침이다. 본 경 83에서 이러한 형이상학적인 문제는 '하나로 확정되지 않는 법(anekamsika dhamma)'라고 말씀하고 계시며, 다음 사성제와 같은 가르침은 '하나로 확정된 법(ekamsika dhamma)'라고 말씀하고 계신다. 

 

23. "세존이시여, 그러면 세존께서는 무엇을 설명하십니까?"

"뽓타빠다여, '이것은 괴로움이다.'라고 나는 설명한다. 

'이것은 괴로움의 일어남이다.'라고 나는 설명한다, 

'이것은 괴로움의 소멸이다.'라고 나는 설명한다. 

'이것은 괴로움의 소멸에 이르는 길이다.'라고 나는 설명한다."

  

24. "세존이시여, 그러면 왜 세존께서는 이것을 설명하십니까?" 

"뽓타빠다여, 이것은 참으로  

1) 이익을 주고,  

2) 청정범행의 시작이며, 

3) 싫어하여 떠남으로 인도하고, 

4) 탐냄의 떠남으로 인도하고, 

5) 소멸로 인도하고, 

6) 고요함으로 인도하고, 

7) 철저한 앎으로 인도하고, 

8) 완전한 깨달음으로 인도하고, 

9) 열반으로 인도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이것을 설명한다." 

"참으로 그러하옵니다, 세존이시여, 참으로 그러하옵니다, 선서시여. 세존이시여, 이제 세존께서 가실 시간이 되었습니다."  

 

*초기경들에서 해탈 · 열반을 실현하는 표현으로 잘 알려진 것이 염오(nibbida) - 이욕(viraga) - 소멸(nirodha) - 해탈(vimutti) - 해탈지견(vimutti-nanadassana)의 정형구와, 바로 본문의 염오 - 이욕 - 소멸 - 고요(upasama) - 최상의 지혜(abhinna) - 바른 깨달음(sambodha) - 열반(nibbana)의 정형구이다.

 

전자는 "(오온, 12처, 느낌 등에 대해서) 염오하기 때문에 탐욕이 사라진다. 탐욕이 사라짐으로 해탈한다. 해탈하면 해탈했다라는 지혜가 있다. '태어남은 다했다. 청정범행(梵行)은 성취되었다. 할 일을 다 해 마쳤다. 다시는 어떤 존재로도 돌아오지 않을 것이다.'라고 안다."(M74, M109, M147 등)는 정형구로 많이 나타나고, 후자는 본 문단의 정형구인데, 본서 제2권 「마하 고윈다 경」(D19. 61)과 中部 「성구경」(M26) 등에도 나타난다. 

 

25. 그 유행승들은 세존께서 나가신지 오래되지 않아서 뽓타빠다 유행승에게 모든 측면에서 야유와 험한 말을 퍼부었다. 

"뽓타빠다 존자는 이처럼 사문 고따마가 말할 때마다 '참으로 그러하옵니다, 세존이시여, 참으로 그러하옵니다, 선서시여.'라고 맞장구를 쳐댑니다. 그러나 우리는 사문 고따마가 '세상은 영원하다.'라거나 '세상은 영원하지 않다.'라거나 '세상은 유한하다(끝을 지닌다).'라거나 '세상은 유한하지 않다.'라거나 '생명과 몸은 같다.'라거나 '생명과 몸은 다르다.'라거나 '여래는 죽은 뒤에도 존재한다.'라거나 '여래는 죽은 뒤에 존재하지 않는다.'라거나 '여래는 죽은 뒤에 존재하기도 하고 존재하지 않기도 한다.'라거나 '여래는 죽은 뒤에 존재하는 것도 아니고 존재하지 않는 것도 아니다.'라고 하나로 확정된 법을 설하신 것을 결코 보지 못했습니다." 

 

이와 같이 말하자 뽓타빠다 유행승은 그 유행승들에게 이와 같이 말하였다. 

"존자들이여, 나도 사문 고따마께서 '세상은 영원하다.'라거나 '세상은 영원하지 않다.'라거나 '세상은 유한하다.'라거나 '세상은 유한하지 않다.'라거나 '생명과 몸은 같다.'라거나 '생명과 몸은 다르다.'라거나 '여래는 죽은 뒤에도 존재한다.'라거나 '여래는 죽은 뒤에 존재하지 않는다.'라거나 '여래는 죽은 뒤에 존재하기도 하고 존재하지 않기도 한다.'라거나 '여래는 죽은 뒤에 존재하는 것도 아니고 존재하지 않는 것도 아니다.'라고 하나로 확정된 법을 설하신 것을 보지 못했습니다.그렇지만 사문 고따마께서는 사실이고, 옳고, 참되며, (출세간)법에 굳게 서고, (출세간)법에 확고부동한 그런 닦음을 천명하였습니다. 그런데 사실이고, 옳고, 참되며, 법에 굳게 서고, 법에 확고부동한 그러한 닦음을 천명하시는데 어떻게 나와 같은 지자가 사문 고따마의 좋은 말씀을 두고 좋은 말씀이라고 기뻐하지 않겠습니까? 

 

26. 이삼 일이 지난 뒤에 코끼리 조련사의 아들 찟다와 뽓타빠다 유행승이 세존께 다가왔다. 와서는 코끼리 조련사의 아들 찟다는 세존께 경의를 표하고 난 뒤에 한 곁에 앉았다. 뽓타빠다 유행승은 세존과 함께 안부 인사를 나누었다. 두 분이 안부 인사와 우호적인 대화를 나누신 뒤에 한 곁에 앉았다. 

한 곁에 앉아서 뽓타빠다 유행승은 세존께 이와 같이 말씀드렸다.      

"세존이시여, 그때 세존께서 나가신지 오래되지 않아서 그 유행승들은 제게 모든 측면에서 야유와 험한 말을 퍼부었습니다. 

'뽓타빠다 존자는 이처럼 사문 고따마가 말할 때마다 '참으로 그러하옵니다, 세존이시여, 참으로 그러하옵니다, 선서시여.'라고 맞장구를 쳐댑니다. 그러나 우리는 사문 고따마가 '세상은 영원하다.'라거나 '세상은 영원하지 않다.'라거나 '세상은 유한하다.'라거나 '세상은 유한하지 않다.'라거나 '생명과 몸은 같다.'라거나 '생명과 몸은 다르다.'라거나 '여래는 죽은 뒤에도 존재한다.'라거나 '여래는 죽은 뒤에 존재하지 않는다.'라거나 '여래는 죽은 뒤에 존재하기도 하고 존재하지 않기도 한다.'라거나 '여래는 죽은 뒤에 존재하는 것도 아니고 존재하지 않는 것도 아니다.'라고 하나로 확정된 법을 설하신 것을 결코 보지 못했습니다.'라고.  

이와 같이 말하자 저는 그 유행승들에게 이와 같이 말하였습니다. 

"존자들이여, 나도 사문 고따마께서 '세상은 영원하다.'라거나 '세상은 영원하지 않다.'라거나 '세상은 유한하다.'라거나 '세상은 유한하지 않다.'라거나 '생명과 몸은 같다.'라거나 '생명과 몸은 다르다.'라거나 '여래는 죽은 뒤에도 존재한다.'라거나 '여래는 죽은 뒤에 존재하지 않는다.'라거나 '여래는 죽은 뒤에 존재하기도 하고 존재하지 않기도 한다.'라거나 '여래는 죽은 뒤에 존재하는 것도 아니고 존재하지 않는 것도 아니다.'라고 하나로 확정된 법을 설하신 것을 보지 못했습니다.그렇지만 사문 고따마께서는 사실이고, 옳고, 참되며, (출세간)법에 굳게 서고, (출세간)법에 확고부동한 그런 도닦음을 천명하시오. 그런데 사실이고, 옳고, 참되며, 법에 굳게 서고, 법에 확고부동한 그러한 닦음을 천명하시는데 어떻게 나와 같은 지자가 사문 고따마의 좋은 말씀을 두고 좋은 말씀이라고 기뻐하지 않겠습니까?라고."

 

*주석서에 의하면 코끼리 조련사의 아들 찟따(Citta Hatthisariputta)는 사왓티에 사는 코끼리 조련사의 아들이었으며, 전생에 지은 죄 때문에 일곱 번이나 출가와 환속을 거듭하였다고 한다. 그는 전생에 환속하려는 비구에게 재가의 삶을 칭송하면서 환속하라고 권했기 때문에 금생에 일곱 번이나 환속하는 이와 같은 과보를 받았다고 한다. 그는 서로 미세하게 다른 단어들의 뜻에 대해서 능통하였다고 한다. 마지막 일곱 번째 환속은 마하꼿티따(Maha-Kotthita)장로가 아비담마를 설할 때 끼어들어 반론을 제기하였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는 환속하여 이삼 일 후에 뽓타빠다를 찾아갔고, 뽓타빠다는 본경에서처럼 그를 데리고 세존께로 왔다고 한다.(DA.ii.379) 본경에서 보듯이 그는 세존의 설법을 정확하게 이해하고

다시 출가 하였으며 다시는 환속하지 않았고 곧 아라한이 되었다고 한다.(Ibid) 

  

27. "뽓타빠다여, 그 유행승들은 모두 눈이 멀었고 눈이 없구나. 그대만이 그들 가운데 유일하게 눈을 가진 자로구나. 

뽓타빠다여, 나는 (열반의 구현이라는) 궁극의 목적을 가진 법들을 설하고 천명하기도 하고, 궁극의 목적을 가지지 않은 법들을 설하고 천명하기도 한다. 

뽓타빠다여, 그러면 나는 어떤 것이 궁극의 목적을 가지지 못한 법들이라고 천명하는가? 

나는 '세상은 영원하다.'라는 것은 궁극의 목적을 가지지 못한 법이라고 설명하고 천명한다. 

'세상은 영원하지 않다.'라는 것은 궁극의 목적을 가지지 못한 법이라고 설명하고 천명한다. 

'세상은 유한하다(끝을 지닌다).'라는 것은 궁극의 목적을 가지지 못한 법이라고 설명하고 천명한다. 

'세상은 유한하지 않다(끝을 지니지 않는다).'라는 것은 궁극의 목적을 가지지 못한 법이라고 설명하고 천명한다. 

'생명과 몸은 같다.'라는 것은 궁극의 목적을 가지지 못한 법이라고 설명하고 천명한다. 

'생명과 몸은 다르다.'라는 것은 궁극의 목적을 가지지 못한 법이라고 설명하고 천명한다. 

'여래는 죽은 뒤에도 존재한다.'라는 것은 궁극의 목적을 가지지 못한 법이라고 설명하고 천명한다. 

'여래는 죽은 뒤에 존재하지 않는다.'라는 것은 궁극의 목적을 가지지 못한 법이라고 설명하고 천명한다. 

'여래는 죽은 뒤에 존재하기도 하고 존재하지 않기도 한다.'라는 것은 궁극의 목적을 가지지 못한 법이라고 설명하고 천명한다. 

'여래는 죽은 뒤에 존재하는 것도 아니고 존재하지 않는 것도 아니다.'라는 것은 궁극의 목적을 가지지 못한 법이라고 설명하고 천명한다. 

 

뽓타빠다여, 그러면 왜 나는 이러한 것은 궁극의 목적을 가지지 못한 법들이라고 설하고 천명하는가?  이러한 것들은 참으로  

1) 이익을 주지 못하고, 

2) (출세간)법에 바탕한 것이 아니며, 

3) 청정범행의 시작에도 미치지 못하고, 

4) 싫어하여 떠남으로 인도하지 못하고, 

5) 탐냄의 떠남으로 인도하지 못하고, 

6) 소멸로 인도하지 못하고, 

7) 고요함으로 인도하지 못하고, 

8) 철저한 앎으로 인도하지 못하고, 

9) 완전한 깨달음으로 인도하지 못하고, 

10) 열반으로 인도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이러한 법들은 궁극의 목적을 가지지 못하는 법들이라고 설하고 있다.

 

뽓타빠다여, 그러면 나는 어떤 것이 궁극의 목적을 가진 법들이라고 설하고 천명하는가? 

나는 '이것은 괴로움이다'라는 것은 궁극의 목적을 가진 법들이라고 설하고 천명한다. 

나는 '이것은 괴로움의 일어남이다'라는 것은 궁극의 목적을 가진 법들이라고 설하고 천명한다. 

나는 '이것은 괴로움의 소멸이다'라는 것은 궁극의 목적을 가진 법들이라고 설하고 천명한다. 

나는 '이것은 괴로움의 소멸에 이르는 길이다'라는 것은 궁극의 목적을 가진 법들 이라고 설하고 

천명한다.  

뽓타빠다여, 그러면 왜 나는 이러한 것은 궁극의 목적을 가진 법들이라고 천명하는가? 

뽓타빠다여, 이러한 것들은 참으로 

1) 이익을 주고, 

2) 청정범행의 시작이며, 

3) 싫어하여 떠남으로 인도하고, 

4) 탐냄의 떠남으로 인도하고, 

5) 소멸로 인도하고, 

6) 고요함으로 인도하고, 

7) 철저한 앎으로 인도하고, 

8) 완전한 깨달음으로 인도하고, 

9) 열반으로 인도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이러한 것은 궁극의 목적을 가진 법들이라고 설하고 천명한다."   

 

28. "뽓타빠다여, 어떤 사문·바라문들은 '자아는 죽고 난 후에 전적으로 즐거움만을 느끼며 병들지 않는다.'라는 이런 주장과 이런 견해를 가졌다. 나는 그들에게 다가가서 이렇게 말한다. 

'그대 존자들이 '자아는 죽고 난 후에 전적으로 즐거움만을 느끼며 병들지 않는다.'라는 이런 주장과 견해를 가졌다는 것이 사실인가?'

이렇게 물어서 그들이 '그렇습니다.'라고 분명하게 대답하면 그들에게 나는 '그런데 그대 존자들은 전적으로 즐거움만 있는 세상을 알고 보면서 머뭅니까?"라고 말한다. 이렇게 물으면 '아닙니다.'라고 그들은 말한다.  

그러면 나는 그들에게 '그러면 그대 존자들은 하루 낮과 하루 밤이나 반나절이라도 전적으로 즐거움만을 느끼는 자아를 인식합니까?'라고 말한다. 이렇게 물으면 '아닙니다.'라고 그들은 말한다. 그러면 나는 그들에게 '그러면 그대 존자들은 '이것이 전적으로 즐거움만 있는 세상을 실현하기 위한 법이며, 이것이 닦음이다.'라고 알기나 합니까?라고 말한다. 이렇게 물으면 '아닙니다.'라고 그들은 말한다.  

그러면 나는 그들에게 '그러면 그대 존자들은 전적으로 즐거움만 있는 세상에 태어나서 '착한 사람들이여, 전적으로 즐거움만 있는 세상을 실현하기 위해서 잘 길을 닦으십시오. 착한 사람들이여, 우리도 이와 같이 길을 닦아 전적으로 즐거움만 있는 세상을 얻었습니다.'라고 말하는 소리를 들은 적이 있습니까?'라고 말한다. 이렇게 물으면 '아닙니다.'라고 그들은 말한다.

 

"뽓타빠다여, 이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참으로 이러하다면 그 사문·바라문들은 부적절한 말을 한 것이 되고 말지 않겠는가?" 

세존이시여, 분명히 그렇습니다. 참으로 그러하다면 그 사문 · 바라문들은 부적절한 말을 한 것이 되고 맙니다."  

"뽓타빠다여, 예를 들면, 어떤 사람이 말한다. '나는 이 나라 안에서 제일가는 미녀를 사랑하고 갈망한다.'라고. 그러면 그에게 말한다. '그대여, 그대는 그 나라에서 제일가는 미녀가 끄샤뜨리아인지 바라문인지 와이샤인지 수드라인지 알기는 하는가?'라고. 이렇게 물으면 그는 '아니오.'라고 대답한다. 그러면 그런 그에게 다시 말한다, '그대여, 그대는 나라에서 제일가는 미녀를 사랑하고 갈망하는데 나라에서 제일가는 그 미녀의 이름이 무엇인지, (키가) 큰지 작은지 중간인지, (피부가) 검은지 흰지 황색인지, 어떤 마을이나 성읍이나 도시에 사는지 아는가?'라고. 이렇게 물으면 그는 다시 '아니오.'라고 대답한다. 그에게 다시 말한다, '그대여, 그대는 알지도 못하고 보지도 못한 (여인)을 사랑하고 갈망하는가?'라고. 이렇게 물으면 그는 '그렇습니다.'라고 대답한다.  

"뽓타빠다여, 이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참으로 이러하다면 그 사람은 부적절한 말을 한 것이 되고 말지 않겠는가?" 

세존이시여, 분명히 그렇습니다. 참으로 그러하다면 그 사람은 부적절한 말을 한 것이 되고 맙니다."

 

29. 뽓타빠다여, 그와 마찬가지로 어떤 사문·바라문들은 '자아는 죽고 난 후에 전적으로 즐거움만을 느끼며 병들지 않는다.'라는 이런 주장과 이런 견해를 가졌다. 나는 그들에게 다가가서 이랗게 말한다. '그대 존자들이 '자아는 죽고 난 후에 전적으로 즐거움만을 느끼며 병들지 않는다.'라는 이런 주장과 견해를 가졌다는 것이 사실인가?' 

이렇게 물어서 그들이 '그렇습니다.'라고 분명하게 대답하면 그들에게 나는 '그런데 그대 존자들은 전적으로 즐거움만 있는 세상을 알고 보면서 머뭅니까?"라고 말한다. 

이렇게 물으면 '아닙니다.'라고 그들은 말한다. 그러면 나는 그들에게 '그러면 그대 존자들은 하루 낮과 하루 밤이나 반나절이라도 전적으로 즐거움만을 느끼는 자아를 인식합니까?'라고 말한다. 이렇게 물으면 '아닙니다.'라고 그들은 말한다. 

그러면 나는 그들에게 '그러면 그대 존자들은 '이것이 전적으로 즐거움만 있는 세상을 실현하기 위한 길이며, 이것이 닦음이다.'라고 알기나 합니까?라고 말한다. 이렇게 물으면 '아닙니다.'라고 그들은 말한다. 

그러면 나는 그들에게 '그러면 그대 존자들은 전적으로 즐거움만 있는 세상에 태어나서 '착한 사람들이여, 전적으로 즐거움만 있는 세상을 실현하기 위해서 잘 길을 닦으십시오. 착한 사람들이여, 우리도 이와 같이 길을 닦아 전적으로 즐거움만 있는 세상을 얻었습니다.'라고 말하는 소리를 들은 적이 있습니까?'라고 말한다, 이렇게 물으면 '아닙니다.'라고 그들은 말한다.  

뽓타빠다여, 이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참으로 이러하다면 그 사문 · 바라문들은 터무니 없는 말을 한 것이 되고 말지 않겠는가?" 

세존이시여, 분명히 그렇습니다.  참으로 그러하다면 그 사문 · 바라문들은 터무니 없는 말을 한 것이 되고 맙니다."  

"뽓타빠다여, 예를 들면 어떤 사람이 누각에 오르기 위하서 큰 사거리에서 사다리를 만드는 것과 같다. 이런 그에게 말한다. '이 사람아, 그대는 누각에 오르기 위해서 사다리를 만들고 있다. 그런데 그대는 그 누각이 동쪽 방향에 있다고 아는가? 아니면 남쪽 방향이나 서쪽 방향이나 북쪽 방향이나 위나 아래나 가운데 있다고 아는가?'라고. 이렇게 물으면 그는 '아니오.'라고 대답할 것이다. 그러면 그에게 다시 말한다. '이 사람아,

그대는 그대가 알지도 못하고 지도 못하는 그런 누각에 오르기 위해서 사다리를 만드는가?.'라고. 이렇게 물으면 '그렇습니다.'라고 대답할

것이다.  

뽓타빠다여, 이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참으로 이러하다면 그 사람은 부적절한 말을 한 것이 되고 말지 않겠는가?"  

세존이시여, 분명히 그렇습니다. 참으로 그러하다면 그 사람은 부적절한 말을 한 것이 되고 맙니다.  

 

30. 뽓타빠다여, 그와 마찬가지로 어떤 사문·바라문들은 '자아는 죽고 난 후에 전적으로 즐거움만을 느끼며 병들지 않는다.'라는 이런 주장과 이런 견해를 가졌다.

나는 그들에게 다가가서 이랗게 말한다. '그대 존자들이 '자아는 죽고 난 후에 전적으로 즐거움만을 느끼며 병들지 않는다.'라는 이런 주장과 견해를 가졌다는 것이 사실인가?' 

이렇게 물어서 그들이 '그렇습니다.'라고 분명하게 대답하면 그들에게 나는 '그런데 그대 존자들은 전적으로 즐거움만 있는 세상을 알고 보면서 머뭅니까?"라고 말한다. 이렇게 물으면 '아닙니다.'라고 그들은 말한다.  

그러면 나는 그들에게 '그러면 그대 존자들은 하루 낮과 하루 밤이나 반나절이라도 전적으로 즐거움만을 느끼는 자아를 인식합니까?'라고 말한다. 이렇게 물으면 '아닙니다.'라고 그들은 말한다. 그러면 나는 그들에게 '그러면 그대 존자들은 '이것이 전적으로 즐거움만 있는 세상을 실현하기 위한 도이며, 이것이 닦음이다.'라고 알기나 합니까?라고 말한다. 이렇게 물으면 '아닙니다.'라고 그들은 말한다.  

그러면 나는 그들에게 '그러면 그대 존자들은 전적으로 즐거움만 있는 세상에 태어나서 '착한 사람들이여, 전적으로 즐거움만 있는 세상을 실현하기 위해서 잘 길(법)을 닦으십시오. 착한 사람들이여, 우리도 이와 같이 길을 닦아 전적으로 즐거움만 있는 세상을 얻었습니다.'라고 말하는 소리를 들은 적이 있습니까?'라고 말한다, 이렇게 물으면 '아닙니다.'라고 그들은 말한다.  

뽓타빠다여, 이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참으로 이러하다면 그 사문·바라문들은 부적절한 말을 한 것이 되고 말지 않겠는가?" 

세존이시여, 분명히 그렇습니다. 참으로 그러하다면 그 사문 · 바라문들은 부적절한 말을 한 것이 되고 맙니다."

 

31. "뽓타빠다여, 나는 세 가지 자아의 획득이 있다고 (말한다). 그것은 

1) 거친 자아의 획득  

2) 마음으로 이루어진 자아의 획득  

3) 물질이 아닌(無色) 자아의 획득이다. 

"뽓타빠다여, 그러면 

1) 무엇이 거친 자아의 획득인가? 거칠고, 물질로 되었고, 네 가지 근본물질(四大)로 이루어졌고, 덩어리로 된 음식을 먹고 사는 것 - 이것이 거친 자아의 획득이다.

2) 무엇이 마음으로 이루어진 자아의 획득인가? 물질을 가졌고, 마음으로 이루어지고, 모든 수족이 다 갖추어지고, 감각기능(根)이 결여되지 않은 것 - 이것이 마음으로 이루어진 자아의 획득이다.

3) 무엇이 물질이 아닌(無色) 자아의 획득인가? 무색이요, 인식으로 이루어진 것- 이것이 무색의 자아의 획득이다."

 

"뽓타빠다여, 나는 거친 자아의 획득을 버리기 위해서 법을 설한다. 

'그대들이 이대로 법을 닦으면 오염된 법들을 버리게 될 것이고, 깨끗한 법들을 증장하게 될 것이며, 지혜의 완성과 충만함을 지금 여기에서 스스로 깨달아 알고 체득하여 성취해 머물 것이다.'라고. 

뽓타빠다여, 그런데 그대에게는 이런 생각이 들지도 모른다. '오염된 법들을 버리게 될 것이고, 깨끗한 법들을 증장하게 될 것이며, 지혜의 완성과 충만함을 지금 여기에서 스스로 깨달아 알고 체득하여 성취해 머물 것이다. 그러나 그런 머묾은 괴로움일 것이다.'라고. 

뽓타빠다여, 그러나 결코 그렇게 여겨서는 안된다. 그대들이 이대로 법을 닦으면 오염된 법들을 버리게 될 것이고, 깨끗한 법들을 증장하게 될 것이며, 지혜의 완성과 충만함을 지금 여기에서 스스로 깨달아 알고 체득하고 성취해 머물 것이다. 그러면 환희가 있을 것이고 희열과 편안함과 마음챙김과 알아차림이 있을 것이다. 그런 머묾이야말로 진정한 행복이다."

 

"뽓타빠다여, 나는 마음으로 이루어진 자아의 획득을 버리기 위해서 법을 설한다. 

'그대들이 이대로 법을 닦으면 오염된 법들을 버리게 될 것이고, 깨끗한 법들을 증장하게 될 것이며, 지혜의 완성과 충만함을 지금 여기에서 스스로 깨달아 알고 체득하고 성취해 머물 것이다.'라고. 

뽓타빠다여, 그런데 그대에게는 이런 생각이 들지도 모른다. '오염된 법들을 버리게 될 것이고, 깨끗한 법들을 증장하게 될 것이며, 지혜의 완성과 충만함을 지금 여기에서 스스로 깨달아 알고 체득하고 성취해 머물 것이다. 그러나 그런 머묾은 괴로움일 것이다.'라고.

뽓타빠다여, 그러나 결코 그렇게 여겨서는 안된다. 그대들이 이대로 법을 닦으면 오염된 법들을 버리게 될 것이고, 깨끗한 법들을 증장하게 될 것이며, 지혜의 완성과 충만함을 지금 여기에서 스스로 깨달아 알고 체득하고 성취해 것이다. 그러면 환희가 있을 것이고 기쁨과 편안함과 마음챙김과 알아차림이 있을 것이다. 그런 머묾이야말로 진정한 행복이다." 

  

"뽓타빠다여, 나는 물질이 아닌 자아의 획득을 버리기 위해서 법을 설한다.   

'그대들이 이대로 법을 닦으면 오염된 법들을 버리게 될 것이고, 깨끗한 법들을 증장하게 될 것이며, 지혜의 완성과 충만함을 지금 여기에서 스스로 깨달아 알고 체득하고 성취해 머물 것이다.'라고.

뽓타빠다여, 그런데 그대에게는 이런 생각이 들지도 모른다. '오염된 법들을 버리게 될 것이고, 깨끗한 법들을 증장하게 될 것이며, 지혜의 완성과 충만함을 지금 여기에서 스스로 깨달아 알고 체득하고 성취해 머물 것이다. 그러나 그런 머묾은 괴로움일 것이다.'라고. 

뽓타빠다여, 그러나 결코 그렇게 여겨서는 안된다. 그대들이 이대로 법을 닦으면 오염된 법들을 버리게 될 것이고, 깨끗한 법들을 증장하게 될 것이며, 지혜의 완성과 충만함을 지금 여기에서 스스로 깨달아 알고 체득하고 성취해 머물 것이다. 그러면 환희가 있을 것이고 희열과 편안함과 마음챙김과 알아차림이 있을 것이다. 그런 머묾이야말로 진정한 행복이다." 

  

32. "뽓타빠다여, 만일 다른 자들이 나에게 묻기를 

'도반이여, 어떤 것이 그 거친 자아의 획득이기에 그대는 그것을 버리게 하기 위하여 법을 설하며, 그대들이 이대로 법을 닦으면 오염된 법들을 버리게 될 것이고, 깨끗한 법들을 증장하게 될 것이며, 지혜의 완성과 충만함을 지금 여기에서 스스로 깨달아 알고 체득하고 성취해 머물 것이라고 합니까?'라고 한다면, 이렇게 묻는 자들에게는 이렇게 설명할 것이다. 

'도반들이여, 이것이 바로 그 거친 자아의 획득인데 나는 그것을 버리게 하기 위하여 법을 설하며, 그대들이 이대로 법을 닦으면 오염된 법들을 버리게 될 것이고, 깨끗한 법들을 증장하게 될 것이며, 지혜의 완성과 충만함을 지금 여기에서 스스로 깨달아 알고 체득하고 성취해 머물 것입니다.'라고." 

  

"뽓타빠다여, 만일 다른 자들이 나에게 묻기를 

'도반이여, 어떤 것이 그 마음으로 이루어진 자아의 획득이기에 그대는 그것을 버리게 하기 위하여 법을 설하며, 그대들이 이대로 법을 닦으면 오염된 법들을 버리게 될 것이고, 깨끗한 법들을 증장하게 될 것이며, 지혜의 완성과 충만함을 지금 여기에서 스스로 깨달아 알고 체득하고 성취해 머물 것이라고 합니까?'라고 한다면, 이렇게 묻는 자들에게는 이렇게 설명할 것이다.  

'도반들이여, 이것이 바로 그 마음으로 이루어진 자아의 획득인데 나는 그것을 버리게 하기 위하여 법을 설하며, 그대들이 이대로 법을 닦으면 오염된 법들을 버리게 될 것이고, 깨끗한 법들을 증장하게 될 것이며, 지혜의 완성과 충만함을 지금 여기에서 스스로 깨달아 알고 체득하고 성취해 머물 것입니다.'라고."

   

"뽓타빠다여, 만일 다른 자들이 나에게 묻기를 

'도반이여, 어떤 것이 그 물질이 아닌(無色) 자아의 획득이기에 그대는 그것을 버리게 하기 위하여 법을 설하며, 그대들이 이대로 법을 닦으면 오염된 법들을 버리게 될 것이고, 깨끗한 법들을 증장하게 될 것이며, 지혜의 완성과 충만함을 지금 여기에서 스스로 알고 체득하고 성취해 머물 것이라고 합니까?'라고 한다면, 이렇게 묻는 자들에게는 이렇게 설명할 것이다.  

'도반들이여, 이것이 바로 그 물질이 아닌(無色) 자아의 획득인데 나는 그것을 버리게 하기 위하여 법을 설하며, 그대들이 이대로 법을 닦으면 오염된 법들을 버리게 될 것이고, 깨끗한 법들을 증장하게 될 것이며, 지혜의 완성과 충만함을 지금 여기에서 스스로 깨달아 알고 체득하고 성취해 머물 것입니다.'라고.

  

뽓타빠다여, 이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참으로 이러하다면 이것은 아주 정확하고 훌륭한 대답이 아니겠는가?"

"세존이시여, 분명히 그렇습니다. 참으로 그러하다면 그것은 아주 정확하고 훌륭한 대답입니다."  

"뽓타빠다여, 예를 들면 어떤 사람이 누각에 오르기 위하서 큰 사거리에서 사다리를 만드는 것과 같다. 이런 그에게 말한다. '이 사람아, 그대는 누각에 오르기 위해서 사다리를 만들고 있다. 그런데 그대는 그 누각이 동쪽 방향에 있다고 아는가? 아니면 남쪽 방향이나 서쪽 방향이나 북쪽 방향이나 위나 아래나 가운데 있다고 아는가?'라고. 이렇게 묻자 그는 말한다. '도반이여, 저것이 바로 그 누각이요. 나는 저 누각을 아래로부터

올라가기 위해서 사다리를 만드는 것이오.'라고.   

뽓타빠다여, 이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참으로 이러하다면 그 사람은 아주 정확하고 훌륭한 대답을 한 것이 아닌가?"

"세존이시여, 분명히 그렇습니다. 참으로 그러하다면 그 사람은 아주 정확하고 훌륭한 대답을 한 것입니다." 

  

33. "뽓타빠다여, 만일 다른 자들이 나에게 묻기를  

'도반이여, 어떤 것이 그 거친 자아의 획득이기에  그대는 그것을 버리게 하기 위하여 법을 설하며, 그대들이 이대로 법을 닦으면 오염된 법들을 버리게 될 것이고, 깨끗한 법들을 증장하게 될 것이며, 지혜의 완성과 충만함을 지금 여기에서 스스로 깨달아 알고 체득하고 성취해 머물 것이라고 합니까?'라고 한다면, 이렇게 묻는 자들에게는 이렇게 설명할 것이다.  

'도반들이여, 이것이 바로 그 거친 자아의 획득인데 나는 그것을 버리게 하기 위하여 법을 설하며, 그대들이 이대로 법을 닦으면 오염된 법들을 버리게 될 것이고, 깨끗한 법들을 증장하게 될 것이며, 지혜의 완성과 충만함을 지금 여기에서 스스로 깨달아 알고 체득하고 성취해 머물 것이오.'라고.

 

뽓타빠다여, 만일 다른 자들이 나에게 묻기를

'도반이여, 어떤 것이 그 마음으로 이루어진 자아의 획득이기에 그대는 그것을 버리게 하기 위하여 법을 설하며, 그대들이 이대로 법을 닦으면 오염된 법들을 버리게 될 것이고, 깨끗한 법들을 증장하게 될 것이며, 지혜의 완성과 충만함을 지금 여기에서 스스로 깨달아 알고 체득하고 성취해 머물 것이라고 합니까?'라고 한다면, 이렇게 묻는 자들에게는 이렇게 설명할 것이다.  

'도반들이여, 이것이 바로 그 마음으로 이루어진 자아의 획득인데 나는 그것을 버리게 하기 위하여 법을 설하며, 그대들이 이대로 법을 닦으면 오염된 법들을 버리게 될 것이고, 깨끗한 법들을 증장하게 될 것이며, 지혜의 완성과 충만함을 지금 여기에서 스스로 깨달아 알고 체득하고 성취해 머물 것이오.'라고.

  

뽓타빠다여, 만일 다른 자들이 나에게 묻기를

'도반이여, 어떤 것이 그 물질이 아닌(無色) 자아의 획득이기에 그대는 그것을 버리게 하기 위하여 법을 설하며, 그대들이 이대로 법을 닦으면 오염된 법들을 버리게 될 것이고, 깨끗한 법들을 증장하게 될 것이며, 지혜의 완성과 충만함을 지금 여기에서 스스로 깨달아 알고 체득하고 성취해 머물 것이라고 합니까?'라고 한다면, 이렇게 묻는 자들에게는 이렇게 설명할 것이다.  

'도반들이여, 이것이 바로 그 물질이 아닌(無色) 자아의 획득인데 나는 그것을 버리게 하기 위하여 법을 설하며, 그대들이 이대로 법을 닦으면 오염된 법들을 버리게 될 것이고, 깨끗한 법들을 증장하게 될 것이며, 지혜의 완성과 충만함을 지금 여기에서 스스로 깨달아 알고 체득하고 성취해 머물 것입니다.'라고."

 

"뽓타빠다여, 이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참으로 이러하다면 이것은 아주 정확하고 훌륭한 대답이 아니겠는가?"

"세존이시여, 분명히 그렇습니다. 참으로 그러하다면 그것은 아주 정확하고 훌륭한 대답입니다."

      

34. 이와 같이 말씀하시자 코끼리 조련사의 아들 찟따는 세존께 이와 같이 말씀드렸다.

세존이시여, 거친 자아의 획득이 있을 때에는 그에게 마음으로 이루어진 자아의 획득은 거짓된 것이고, 물질이 아닌(無色) 자아의 획득도 것짓된

것이며, 그때에는 오직 거친 자아의 획득만이 진실입니다.  

세존이시여, 마음으로 이루어진 자아의 획득이 있을 때에는 그에게 거친 자아의 획득은 거짓된 것이고 물질이 아닌 자아의 획득도 거짓된 것입니다. 그때에는 오직 마음으로 이루어진 자아의 획득만이 진실입니다.  

세존이시여, 물질이 아닌 자아의 획득이 있을 때에는 그에게 거친 자아의 획득은 거짓된 것이고, 마음으로 이루어진 자아의 획득도 거짓된 것이고, 그때에는 오직 물질이 아닌 자아의 획득만이 진실입니다."   

"찟따여, 거친 자아의 획득이 있을 때에는 마음으로 이루어진 자아의 획득이라는 명칭을 결코 얻을 수가 없고 물질이 아닌(無色) 자아의 획득이라는 명칭도 결코 얻을 수가 없으며 그때에는 오직 거친 자아의 획득이라는 명칭만을 얻게 된다.   

찟따여, 마음으로 이루어진 자아의 획득이 있을 때에는 거친 자아의 획득이라는 명칭은 결코 얻을 수가 없고 물질이 아닌 자아의 획득이라는 명칭도 결코 얻을 수가 없으며 그때에는 오직 마음으로 이루어진 자아의 획득이라는 명칭만을 얻게 된다. 

찟따여, 물질이 아닌 자아의 획득이 있을 때에는 그에게 거친 자아의 획득이라는 명칭은 결코 얻을 수가 없고 마음으로 이루어진 자아의 획득이라는 명칭도 결코 얻을 수가 없으며 그때에는 오직 물질이 아닌 자아의 획득이라는 명칭만을 얻게 된다."

 

35. "찟따여, 그대에게 묻기를 '그대는 과거에 존재했었고 존재하지 않았던 것이 아니지 않는가? 그대는 미래에 존재할 것이고 존재하지 않을 것이 아니지 않는가? 그대는 현재에 존재하고 있고 존재하지 않는 것이 아니지 않는가?'라고 한다 하자. 이렇게 물으면 그대는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세존이시여, 만일 제게 물으시기를 '그대는 과거에 존재했었고 존재하지 않았던 것이 아니지 않는가? 그대는 미래에 존재할 것이고 존재하지 않을 것이 아니지 않는가? 그대는 현재에 존재하고 있고 존재하지 않는 것이 아니지 않는가?'라고 한다면 저는 이와 같이 설명할 것입니다. 

'저는 과거에 존재했었고 존재하지 않았던 것이 아닙니다. 저는 미래에 존재할 것이고 존재하지 않을 것이 아닙니다. 저는 현재에 존재하고 있고 존재하지 않는 것이 아닙니다.'라고. 

세존이시여, 그렇게 물으시면 저는 이와 같이 설명할 것입니다."

  

"찟따여, 만일 그대에게 다시 묻기를, '그대가 과거에 자아를 획득했을 때 그대에게는 그 자아의 획득만이 사실이고 미래도 거짓된 것이고 현재도 거짓된 것이 아닌가? 그대가 미래에 자아를 획득할 때 그대에게는 그 자아의 획득만이 사실이고 과거도 거짓된 것이고 현재도 거짓된 것이 아닌가? 그대가 현재의 자아을 획득할 때 그대에게는 그 자아의 획득만이 사실이고 과거도 거짓된 것이고 미래도 거짓된 것이 아닌가?'라고 한다 하자. 그대는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세존이시여, 만일 제게 물으시기를 '그대가 과거에 자아를 획득했을 때 그대에게는 그 자아의 획득만이 사실이고 미래도 거짓된 것이고 현재도 거짓된 것이 아닌가? 그대가 미래에 자아를 획득할 때 그대에게는 그 자아의 획득만이 사실이고 과거도 거짓된 것이고 현재도 거짓된 것이 아닌가? 그대가 현재의 자아을 획득할 때 그대에게는 그 자아의 획득만이 사실이고 과거도 거짓된 것이고 미래도 거짓된 것이 아니가?'라고 한다면 저는 이와 같이 설명할 것입니다. '제가 과거에 자아를 획득했을 때 제게는 그 자아의 획득만이 사실이고 미래도 거짓된 것이고 현재도 거짓된

것입니다. 제가 미래에 자아를 획득할 때 제게는 그 자아의 획득만이 사실이고 과거도 거짓된 것이고 현재도 거짓된 것입니다. 제가 현재의 자아을 획득할 때 제게는 그 자아의 획득만이 사실이고 과거도 거짓된 것이고 미래도 거짓된 것입니다.'라고. 

세존이시여, 그렇게 물으시면 저는 이와 같이 설명할 것입니다."

 

36."찟다여, 그와 마찬가지로 거친 자아의 획득이 있을 때에는 마음으로 이루어진 자아의 획득이라는 명칭을 결코 얻을 수가 없고 물질이 아닌(無色) 자아의 획득이라는 명칭도 결코 얻을 수가 없으며 그때에는 오직 거친 자아의 획득이라는 명칭만을 얻게 된다.   

찟따여, 마음으로 이루어진 자아의 획득이 있을 때에는 거친 자아의 획득이라는 명칭은 결코 얻을 수가 없고 물질이 아닌 자아의 획득이라는 명칭도 결코 얻을 수가 없으며 그때에는 오직 마음으로 이루어진 자아의 획득이라는 명칭만을 얻게 된다.  

찟따여, 물질이 아닌 자아의 획득이 있을 때에는 그에게 거친 자아의 획득이라는 명칭은 결코 얻을 수가 없고 마음으로 이루어진 자아의 획득이라는 명칭도 결코 얻을 수가 없으며 그때에는 오직 물질이 아닌 자아의 획득이라는 명칭만을 얻게 된다.

찟따여, 예를 들면 소로부터 우유가 있고, 우유로부터 응고가 되고, 응고로부터 생 버터가 되고, 생 버터로부터 정제된 버터가 되고, 정제된 버터로부터 최상의 버터가 되는 것과 같다. 우유가 되어 있을 때에는 응고(응고된 우유)라는 이름을 결코 얻지 못한다. 생버터라는 이름도 결코 얻지 못한다. 정제된 버터라는 이름도 결코 얻지 못한다. 최상의 버터라는 이름도 결코 얻지 못한다.그때에는 오직 우유라는 이름만 얻을 뿐이다. 응고가 되어 있을 때에는 우유라는 이름을 결코 얻지 못한다. 생버터라는 이름도 결코 얻지 못한다. 정제된 버터라는 이름도 결코 얻지 못한다. 최상의 버터라는 이름도 결코 얻지 못한다. 그때에는 오직 응고된 우유라는 이름만 얻을 뿐이다. 생버터가 되어 있을 때에는 우유라는 이름을 결코 얻지 못한다. 응유(응고된 우유)라는 이름도 결코 얻지 못한다. 정제된 버터라는 이름도 결코 얻지 못한다. 최상의 버터라는 이름도 결코 얻지 못한다. 그때에는 오직 생버터라는 이름만 얻을 뿐이다. 정제된 버터가 되어 있을 때에는 우유라는 이름을 결코 얻지 못한다. 응유라는 이름도 결코 얻지 못한다. 생버터라는 이름도 결코 얻지 못한다. 최상의 버터라는 이름도 결코 얻지 못한다. 그때에는 오직 정제된 버터라는 이름만 얻을 뿐이다. 최상의 버터가 되어 있을 때에는 우유라는 이름을 결코 얻지 못한다. 응유라는 이름도 결코 얻지 못한다. 생버터라는 이름도 결코 얻지 못한다. 정제된 버터라는 이름도 결코 얻지 못한다. 그때에는 오직 최상의 버터라는 이름만 얻을 뿐이다.

찟따여, 그와 마찬가지로 거친 자아의 획득이 있을 때에는 마음으로 이루어진 자아의 획득이라는 명칭을 결코 얻을 수가 없고 물질이 아닌(無色) 자아의 획득이라는 명칭도 결코 얻을 수가 없으며 그때에는 오직 거친 자아의 획득이라는 명칭만을 얻게 된다.   

찟따여, 마음으로 이루어진 자아의 획득이 있을 때에는 거친 자아의 획득이라는 명칭은 결코 얻을 수가 없고 물질이 아닌 자아의 획득이라는 명칭도 결코 얻을 수가 없으며 그때에는 오직 마음으로 이루어진 자아의 획득이라는 명칭만을 얻게 된다.  

찟따여, 물질이 아닌 자아의 획득이 있을 때에는 그에게 거친 자아의 획득이라는 명칭은 결코 얻을 수가 없고 마음으로 이루어진 자아의 획득이라는 명칭도 결코 얻을 수가 없으며 그때에는 오직 물질이 아닌 자아의 획득이라는 명칭만을 얻게 된다.  

찟따여, 이런 자아의 획득들은 세상의 일반적인 표현이며, 세상의 언어이며, 세상의 인습적 표현이며, 세상의 개념이다. 여래는 이런 것을 통해서 집착하지 않고 표현할 뿐이다." 

 

37. 이렇게 말씀하시자 뽓타빠다 유행승은 세존께 이렇게 말씀드렸다. 

"경이롭습니다, 세존이시여, 경탄할만 합니다, 세존이시여. 

마치 넘어진 것을 일으켜 세우시듯, 혹은 감추어져 있는 것을 드러내듯이, 아니면 길을 잃고 헤매던 사람에게 길을 가르켜 주시듯, 또는 '눈 있는 자는 형상을 보라.'라고 어둠 속에 등불을 가져오듯, 세존께서는 여러 가지 방법으로 진리(법)을 밝혀셨습니다. 

저는 이제 세존께 귀의하옵고, 

또한 그 가르침(법)에 귀의하옵고,

또한 그 제자들의 모임인 비구 승가에 귀의하옵니다. 

세존께서는 저를, 오늘부터 목숨이 있는 날까지 귀의한 청신사로 받아 주십시오." 

  

38. 그러자 코끼리 조련사의 아들 찟따는 세존께 이와 같이 말씀드렸다. 

"경이롭습니다, 세존이시여, 경탄할만 합니다, 세존이시여. 

마치 넘어진 것을 일으켜 세우시듯, 혹은 감추어져 있는 것을 드러내듯이, 아니면 길을 잃고 헤매던 사람에게 길을 가르켜 주시듯, 또는 '눈 있는 자는 형상을 보라.'라고 어둠 속에 등불을 가져오듯, 세존께서는 여러 가지 방법으로 진리(법)을 밝혀셨습니다. 

저는 이제 세존께 귀의하옵고, 

또한 그 가르침(법)에 귀의하옵고,

또한 그 제자들의 모임인 비구 승가에 귀의하옵니다. 

세존이시여, 저는 세존의 곁에 출가하고자 합니다. 저는 구족계를 받고자 합니다." 

  

39. 코끼리 조련사의 아들 찟따는 세존의 곁으로 출가하였고 구족계를 받았다. 구족계를 받은 지 얼마 되지 않아서 코끼리 조련사의 아들 찟따 존자는 홀로 머물며 방일하지 않고 열심히 정진하며 지냈다. 그는 오래지 않아 좋은 가문의 아들들이 성취하고자 집에서 집없는 곳으로 출가하는 그 위 없는 청정범행의 완성을 지금 여기에서 스스로 깨달아 알고 체득하고 성취해 머물렀다. 

'태어남은 다했다. 청정범행은 성취되었다. 할 일을 다 해 마쳤다. 다시는 어떤 존재로도 돌아오지 않을 것이다.' 라고 알았다.

  

코끼리 조련사의 아들 찟따 존자는 아라한들 중의 한 분이 되었다.

 

 

 뽓타빠다경이 끝났다 .


출처 http://blog.daum.net/gikoship/15780819



「뽓타빠다 경」(Pot*t*hapāda Sutta, D9)

 

인간의 정신 영역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은 인식이라 할 수 있다. 그래서 세존께서는 인간을 설명하시면서 심리현상들[行, 상카라] 가운데서 인식[想, 산냐]을 따로 독립시켜 오온에다 따로 인식의 항목[想蘊]을 넣으셨다. 그러면 도대체 이러한 인식은 어디서부터 비롯된 것인가? 인식이 있다면 인식하는 주체가 반드시 있어야 하는 것 아닌가? 아니면 적어도 영원한 인식이 있어서 그것을 자아라고 불러야 하지 않는가?

 

이런 미묘하면서도 중요한 문제에 대한 부처님의 답변이 바로 본경이다. 본경에서는 이러한 인식과 인식을 하는 자는 도대체 어떻게 해서 존재하는가를 두고 뽓타빠다라는 유행승과 여러 측면에서 다양하고 심도 깊은 대화가 전개된다. 역자는 본서 제1권의 중요한 경 세 가지만을 들라면 주저하지 않고「범망경」(D1)과「사문과경」(D2)과 본경을 들고 싶다.

 

본경에서 부처님께서는 다음과 같은 사실을 밝혀주신다.

① 인식은 수행의 정도에 따라 바뀐다.

② 무소유처가 인식의 구경이다.

③ 인식의 완전한 소멸도 가능하다. 그것을 상수멸이라 한다.

④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인식은 그것이 아무리 미묘하고 섬세하다 하더라도 존재론적 실체인 자아가 아니다.

⑤ 어떤 방식으로 자아를 상정하든 그것은 바뀔 수밖에 없다. 존재란 흐름 자체이기 때문이다. 마치 우유가 응유(curd)로, 생 버터로, 정제된 버터(ghee)로, 최상의 버터[醍醐]로 바뀌어 가는 것과 같다. 자아라는 것은 흐름의 특정한 기간의 특정한 상태를 인습적으로 이름붙인 것일 뿐 고정불변의 실체는 없다.

 

이처럼 본경에서 말하는 인식은 단순히 대상을 무엇이라고 아는 것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본경에서 말하는 인식은 매순간 촐랑대는 그런 종류의 인식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적어도 수행을 통해서 실현되는 삼매의 경지 혹은 경계에서 드러나는 고상한 인식(sukhuma-saññā)을 말하고, 이는 사문들이 삼매 수행을 통해서 실현하고자 하는 일종의 이념이나 이상향 등을 나타내는 술어이다. 그러므로 본경에서 말하는 인식[想, 산냐]은 자아라는 인식[我相], 중생이라는 인식[衆生相], 영혼이라는 인식[壽者相], 개아(個我)라는 인식[人相]으로 대표되는 금강경의 4상(相, 想, 산냐)과 일맥상통한다.

 

본경이 주는 가장 중요한 메시지는 이처럼 ‘존재론적 실체, 즉 자아란 결코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세존의 고구정녕하신 말씀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뽓타빠다는 안타깝게도 계속 존재론적인 실체를 상정하고 그것을 세존께 질문한다.

 

본경은 무언가 궁극적 실재를 상정하는 그런 관념과 관심을 버리지 못하는 한 결코 부처님의 메시지를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을 분명히 하고 있다. 이것은 현재 우리 불교 수행자들도 깊이 새겨볼 말씀이라 생각된다. 우리는 이름만 불교를 하고 있지 어쩌면 대아, 진아, 주인공, 불성, 여래장이라는 존재론적인 실재를 상정하고 그것을 추구하고 그것을 깨치고 그것과 하나 되거나, 아니면 그것의 은총과 광명으로 살려는 발상을 굳게 움켜쥐고 놓지 못하고 있지나 않는가? 참으로 이런 다른 발상을 가지고 있다면 그는 부처님의 제자가 아니라 다른 수행, 다른 스승, 다른 가르침을 불교라는 이름으로 거머쥐고 있는 것이리라. 그런 자는 부처님의 고구정녕한 메시지를 결코 알 수 없을 것이다.

 

뽓타빠다는 세존의 말씀을 공감하고 세존을 존경하였기에 세존의 신도는 되었지만 자아라는 존재론적인 단정에 대한 집착을 완전히 버리지는 못했다. 그래서 세존 문하로 출가하지는 못했다. 이런 점에서 그는 본서 제8경의 나체 수행자 깟사빠와 대조가 된다. 깟사빠는 계․정․혜 삼학의 길이야말로 사문이 닦아야 할 본업이라는 세존의 말씀을 완전히 이해해서, 고행이야말로 사문의 본업이라는 그의 견해를 버리고 세존의 문하로 출가하여 아라한이 되었다.

 

그러나 본경의 후반부에 등장하는 찟따는 자아와 세상에 대한 형이상학적인 관심이 괴로움으로부터 완전히 벗어나는 해탈․열반의 실현과는 아무 상관이 없음을 분명히 파악하고 부처님 문하에 여덟 번째로 출가를 결심한다. 그는 이전에 일곱 번이나 출가와 환속을 거듭했지만, 본경을 통해서 부처님의 이와 같은 심심미묘한 가르침을 정확히 파악하였기에 다시 여덟 번째로 출가를 감행하여 다시는 환속하지 않았고 아라한이 되었다. 존재론적인 가설을 끝까지 버리지 못했던 유행승 뽓타빠다와는 큰 대조를 이룬다.

 

디가니까야 해제-각묵스님






출처 http://blog.daum.net/gikoship/15780814







게시물수 67건 / 코멘트수 78건 RSS
 
번호 제목 글쓴이 조회 날짜
67 디가니까야 해제-각묵스님 미선 24 06-23
66 뽓타빠다 경 (Potthapāda Sutta. D9) 미선 23 06-23
65 개인적으로 <금강경> 내중 중에 대해 동의하지 않는 부분.. 미선 1920 02-14
64 <하구보리 상화중생>(下求菩堤 上化衆生)을 아십니까? 미선 2219 02-03
63 심리학 이야기 (2) - 심리학 진영의 5가지 큰 관점 미선 2051 01-20
62 심리상담 전공자로서 <철학 상담>에 대한 생각 미선 1695 01-04
61 <명상>에 대한 생각.. 미선 2216 10-22
60 <마음>이란 무엇인가? 조금 쉽게 이해해보기! 미선 2507 10-22
59 세상정치에 초연한 어느 불교 깨달음의 한계 미선 2058 09-28
58 유식불교의 한계와 모순 미선 2881 07-08
57 공감 노이로제와 존중 콤플렉스 미선 4973 11-20
56 [감정연구2] 논리적 반론은 못하면서 싫어한다면 이는 감정의 문제 미선 5571 06-08
55 [감정연구1] 감정에 충실하지 말라! (6) 미선 20799 06-06
54 불교 교리의 진화, 무아(無我)에서 <통아>(通我)로 미선 5659 11-23
53 잔소리, 친밀한 관계를 악화시키는 주범이 되기도 미선이 9914 01-28
52 [펌] 삶과 성격 미선이 6274 08-31
51 철학상담과 기존 심리상담 진영 간의 긴장 관계 미선이 7874 07-15
50 <긍정심리학>의 대가 셀리그만 ‘백기’ 들다…왜? 미선이 8379 05-21
49 [펌] 기본불교와 대승불교 / 현응 (1) 미선이 6537 01-02
48 불교에 대한 한 단상 (인간론과 관련하여) 미선이 6436 12-17
47 삐아제의 인간의 인지발달 이론 정리 미선이 7431 11-13
46 <감정 자본주의>, 자본에 포획된 감정 및 각종 심리 치료 산업들 (1) 미선이 8328 07-21
45 건강한 사회변혁 운동가로서의 상담가를 위해.. (2) 미선이 6181 07-06
44 나와 타자와의 관계 유형 5가지 미선이 8511 04-17
43 불교와 화이트헤드 (김상일) 미선이 7920 03-22
42 우리는 일상에서의 <관찰>과 <평가>를 구분할 수 있을까요? 미선이 6646 03-19
41 어느 관념적 자유주의자에 대한 단상 (9) 미선이 7078 03-12
40 [펌] MBTI에 대하여.. (1) 미선이 17271 01-12
39 '관계의 병'(?)을 아시나요? 미선이 5891 10-23
38 보는대로 믿는다고? No! 믿는대로 본다~! 미선이 6831 09-07
37 모범생 아들이 어떻게 범죄 아동이 됐을까 미선이 5897 08-26
36 KBS다큐 <마음> 6부작 - 요약글 미선이 11278 07-11
35 상담은 치유를 향한 과정으로서의 대화 (정강길) 정강길 7140 06-27
34 유식론(唯識論)과 신경과학(神經科學) / 강병조 미선이 10551 06-11
33 불교 자아론의 문제 : 무아(無我)에서 통아(通我)로 정강길 7200 05-31
32 ‘마음의 절대화’ 유감 (각묵스님) (1) 미선이 8271 05-11
31 한국불교, 왜 종교개혁이 필요한가 / 강병조 (1) 미선이 7507 05-10
30 현대적 관점에서 보는 불교 이해 (EBS강좌-조성택) 정강길 6008 04-22
29 비폭력 대화 : 일상적 대면 관계에서의 대화 요령 (4) 정강길 10090 12-02
28 마음챙김이란 무엇인가 : 마음챙김의 임상적 및 일상적 적용을 위한 제언 (김정호) (2) 미선이 16418 11-18
27 감정의 장난(2) - 전두환도 친하면 용서된다 (4) 정강길 6908 11-05
26 감정의 장난(1) - 가슴형 인간의 위험성과 통합성 (31) 정강길 9650 11-04
25 조울증 진단 테스트 (4) 미선이 9735 06-30
24 행복, GIO만족을 성취해나가는 그 과정 자체에서 얻는 만족적 느낌 정강길 7053 06-19
23 관계 패러다임으로서 새롭게 해석하는 불교 교리 정강길 6867 05-25
22 '관념 심리학'과 '경험 심리학' 정강길 7282 05-24
21 초자연주의는 반합리적이지만, 신비주의는 오히려 철저히 합리적이다. (4) 정강길 7456 05-24
20 경계성 성격장애 (Borderline personality disorder) (1) 미선이 26015 04-30
19 위빠싸나 명상의 심리학적 고찰 미선이 10258 04-24
18 마음챙김명상의 소집단 수행에 관한 연구 미선이 9170 04-24
17 명상의 치료와 효과 및 그 열풍에 대한 각종 언론 자료 모음 미선이 12200 04-24
16 명상과 뇌(腦)의 관계 미선이 8605 04-24
15 트랜스퍼스널학의 정의 (조효남) (1) 정강길 9849 04-01
14 게슈탈트 심리학과 정신분열증 환자의 게슈탈트 상담 사례 정강길 18381 03-23
13 통합심리학(Integral Psychology) 제10장 영성 : 단계인가 아닌가 (요약 발제문) 정강길 7844 03-03
12 도널드 위니캇(Donald Winnicutt)에 대한 자료 정강길 18261 03-03
11 당신의 성격은 어떻나요? 재미로 보는 성격검사 심리테스트 (3) 미선이 16724 02-26
10 [펌] 달라이라마 '명상' 강연 논쟁의 허상 (장래혁) 미선이 8140 02-10
9 불교 안에 깃든 위험스런 관념성에 대하여 정강길 8427 12-29
8 인지치료에서 치료관계 응용 정강길 8361 12-11
7 '자아초월 심리학'이란 무엇인가? (김명권) 관리자 15084 12-03
6 알아차림과 팔만대장경 관리자 6662 11-05
5 삶의 환상을 벗는다. 관리자 6813 11-05
4 심리학 상담에서 치유는 어디에서 일어나고 있는가? (2) 정강길 8198 10-31
3 우울증의 원인 (박원명) 관리자 13407 09-14
2 불교계의 해방민중신학에 비견할만한 인도 불교의 지도자 암베드카르를 아시나요? 정강길 7887 08-03
1 붓다운동으로서의 초기불교 시대 (김재영) 정강길 10142 08-03



Institute for Transformation of World and Christianit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