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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목 : 초자연주의는 반합리적이지만, 신비주의는 오히려 철저히 합리적이다.    
  글쓴이 : 정강길 날 짜 : 08-05-24 02:09 조회(7827)
   트랙백 주소 : http://freeview.org/bbs/tb.php/e005/31 




 
오늘 불교 강좌인 '사마타 수행의 이론과 실제' 시간에 짐작은 하고 있었지만
직접적으로 매우 놀라운 얘길 들었다.
사마타 수행에서 제4선정에 돌입할 경우 호홉마저도 중지된다고 하였다.
즉, 아예 숨을 쉬지 않고 있는 상태인 호홉 중지 상태가 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최고의 단계에 들어가면 생명력과 열만 있는 호홉 중지 상태가 되는데
그것은 거의 뇌사나 죽은 시체와 다를 바 없는 정도로
무려 그렇게 해서 7일 간을 산 사람도 있다고 하였다. 그리고 이것은 열반 체험에 가깝다고 하였다.
정말 믿거나 말거나 가 아닐까 싶다. 하지만 나는 이것은 도무지 관념으로밖에 여겨지지 않는다.
 
그래서 혹시 그 호홉 중지의 선정 상태를 공공의 영역에서
과학적 혹은 객관적으로 검증한 적은 있는가 라고 질문을 던지니까
그런 적은 없다고 하셨는데, 그러면서도 그렇게 체험했다고 말하는 사람들은
동아시아 불교 승려들 가운데 매우 많다고 하였다.
그리고 진리에 대한 체험은 결국 주관적 체험이라는 설명도 덧붙였다.
 
만일 그렇다면 결국 우리에게는 진리를 객관적으로 판가름 할 수 있는 그 무엇도 존재할 수 없게 된다.
즉, 누군가가 계룡산에서 도를 닦고 공중 부양 체험을 했다고 떠들고 있거나
기적의 염력을 써서 병치료를 했다는 사람이나 UFO를 타고 저 우주 끝에 다녀왔다는 사람이나
그러한 저마다의 주관적 체험들도 결국은 진리로서 받아들일 수 밖에 없게 된다.
 
나 자신도 유체이탈 같은 입신의 경험이 있지만,
나는 그것이 나 자신에게만 경험되었을 따름이지
이를 공개화할 경우 오히려 위험하다고 보기엔 누구한테 이를 얘기하지 않는다.
공개화한다는 건 공적인 영역으로 들어간다는 것이며,
그것은 그저 자신의 주관적 체험에 근거할 따름이기에 결국은 상대주의로 떨어지는 것밖에 안된다.
 
무엇보다 합리적 근거를 자신의 경험에서 찾는 것은 오히려 타자에겐 폭력이 될 수도 있다.
왜냐하면 자신의 체험이 타자에게 강요되고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체험했다는데 어쩔거야" 이런 식이 되는 것이다.
 
만일 자신의 체험이 옳다고 한다면 우리 안에는 저마다 다양한 혹은 그와 반대의 체험을 가진
상대방의 체험 역시 옳을 수 있다는 점도 충분히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인데
오로지 자기 체험만 확신하고 인정해버린다면 그것만큼 폭력적인 게 어디있겠는가.
이것이 바로 상대주의 진리관이 겪는 모순과 횡포에 해당한다.
 
호홉 중지의 상태란 사실상 우리가 겪는 일반적 체험과는 불일치 되는 경험들이다.
이천 년을 넘게 이어져 온 불교적 체험이라고 하지만
사례로 따지면 전세계에는 그 반대의 경험자들이 훨씬 더 많게 일반화되어 있다.
 
이는 기독교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개신교인들 가운데 누군가가 성령 충만의 경험을 겪었다고 치자.
그것은 그 자신에게는 확고한 체험일 수 있다.
 
하지만 그것이 공공의 영역에서 표현되어질 경우
당연히 그것은 검증의 과정을 거칠 수 밖에 없다.
보다 엄밀하고 객관적인 검증의 과정을 특별히 두려워할 이유도 없다.
 
과학이 한계가 있을 지언정 그렇다고 과학 자체를 무시하는 것 역시 중세적 발상일 수밖에 없다.
과학은 단지 최선일 뿐이다.
바로 그런 점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