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합검색
아이디    비밀번호
   자동로그인     
  현재 총 76명 접속중입니다. (회원 0 명 / 손님 76 명)     최신게시글    성경검색   
화이트헤드
철학
사회과학
자연과학
켄 윌버(Ken Wilber)
불교와 심리학
학술번역


  방문객 접속현황
오늘 256
어제 783
최대 10,145
전체 2,286,652

   [자료]  제 목 : 화이트헤드의 『관념의 모험』(한길사) 책에 소개된 옮긴이 해제글 (오영환)    
  글쓴이 : 미선 날 짜 : 17-07-30 18:15 조회(317)
   트랙백 주소 : http://freeview.org/bbs/tb.php/e006/201 






화이트헤드의 『관념의 모험』소개글

옮긴이 해제 - 오영환


1. 『관념의 모험』에 대하여

이 책은 앨프레드 노스 화이트헤드(Alfred North Whitehead, 1861~1947)의 Adventures of Ideas (Cambridge:At the University Press, 1933 판)를 원본으로 하여 완역한 것이다.

이 책에는 20세기 가장 탁월한 지성 가운데 한 사람으로 꼽히는 철학자 화이트헤드의, 가슴을 설레게 하는 대담한 지적 모험이 담겨 있다. 저자는 심오한 관념(ideas)이 인간성을 향상시켜왔다는 관점에서 인류 문명의 역사를 해석한다. 그의 문체는 아름답고 표현은 명쾌하다.

화이트헤드는 활기차고 혁명적인 관념의 변천이 인간 사회의 현실적인 기본 조건들을 변화시킨다는 것을 극명하게 지적한다. 그는 한 예로서, 일찍이 노예제도가 고대인들에게는 문명의 불가피한 전제조건으로 생각되었지만, 이제 현대인들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점을 들고 있다. 4부로 구성된 이 책에서 화이트헤드는 어떻게 관념들이 사회, 종교, 철학, 그리고 마지막으로 완성을 갈망하는 인간 정신에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가를 설명해준다.

넓은 시야와 대담한 표현으로 서술되어 있는 『관념의 모험』은 인간의 미래에 관심을 갖는 현대인에게 매우 중요한 책이 될 것으로 본다.



2. 화이트헤드와 러셀

화이트헤드의 여러 저서 중에서 『과학과 근대세계』(Science and the Modern World, 오영환 옮김, 서광사, 1989)는 그 자신의 철학을 설명한 것 중에서 가장 유력한 것이지만 『과정과 실재―-유기체적 세계관의 구상』(Process and Reality, An Essay in Cosmology, 오영환 옮김, 민음사, 1991)도 전문적인 이유에서 필수 불가결한 작품이다. 이 두 권의 저작에다가 1933년에 처음으로 출판된 대작 『관념의 모험』(Adventures of Ideas)을 추가하면 이른바 그의 형이상학 3부작을 구성하게 된다.

저자가 머리말에서 밝히고 있듯이, “이 3부작은 사물의 본성을 이해하는 방식을 기술하려는 시도인 동시에 인간 경험의 유위전변(有爲轉變)을 개관함으로써, 어떻게 이와 같은 해석방식이 예시되는지를 지적해보려는 시도이다. 이 책들은 하나하나 개별적으로 읽어도 무방하지만 각기 생략되었거나 압축된 표현을 상호 보완해주고 있다.”

『관념의 모험』에는 화이트헤드의 문명론, 사회?역사 철학이 포함되어 있고, 과학론, 미학, 그리고 그의 형이상학이 유기적으로 통합되어 있어서 화이트헤드 사상의 진면목을 가장 잘 드러낸 저작으로 평가되기도 하거니와 화이트헤드도 생전에 자신의 저서 중에서 가장 만족스럽게 여겼던 것으로 전해진다.

이렇듯 이 책에서 화이트헤드는 매우 광범위한 영역에 걸쳐 있는 인간의 경험을 논하고 있어서 플라톤의 『국가편』이 그러하듯이, 이 저작 전체를 일관하고 있는 주제를 특정화하기가 결코 쉽지 않다. 다만 그 많은 논제 중에서 주된 것을 집약해본다면, 서구 문명에는 인류에 관한 그리고 우주에 관한 보편관념의 역사가 있어왔고 미래에도 있을 수 있는 역사에 관한 이야기가 담겨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과정과 실재』의 주요사상을 새롭게 진술함으로써 『관념의 모험』에서의 매우 인상적인 결론, 즉 문명생활의 본질적인 특질로서의 진리, 아름다움, 예술, 모험, 평화(영혼의 평화)에 관한 간결하면서도 심오한 분석을 거쳐 얻어낸 결론에 하나의 초석을 닦아놓았다. 이것은 인간 삶의 궁극적 이상과 가치에 관한 화이트헤드의 견해를 이해하는 데에 그의 여러 저서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화이트헤드 생애의 마지막 저작은 『사고의 양태』(Modes of Thought, 1938, 오영환, 문창옥 옮김, 『열린 사고와 철학』, 고려원, 1992)이다. 이 저작에서 그는 전문적인 언어를 피하면서 “일상생활의 장에서 자연스럽게 나타나는 궁극적 관념들을 자유롭게 검토”하고 있다. 이 『사고의 양태』의 대부분은 고별사를 연상케 하는 아름다운 필치로 채색되어 있다.

화이트헤드는 다른 자리에서는 『관념의 모험』이나 『과학과 근대세계』를 호감이 가는 것으로 피력하면서도, 종종 이 저서를 마음에 드는 것으로 술회하기도 하였다. 분명한 것은 비전문가나 일반 독자에게 가장 바람직스러운 것으로 추천한다면 『관념의 모험』이나 『사고의 양태』일 것이다. 이 두 권의 저서라면 독자들은 화이트헤드 철학사상의 특질을 어떤 한정된 범위 안에서 비교적 쉽게 이해할 수 있고, 나아가서는 화이트헤드와 공통 기반에 설 수도 있을 것이다.

우리는 이 『관념의 모험』에서 다음과 같은 또 하나의 적극적인 공헌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20세기 초엽에 화이트헤드와 B. 러셀의 합작으로 이루어진 공저 『프린키피아 마테마티카』(수학원리)는 어떤 의미로는 1920년대 후반에 비엔나 학단을 중심으로 일어났던 논리실증주의 운동의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고 볼 수 있는데, 그들은 기호논리학을 철학언어 분석에 응용하면서 형이상학의 무의미성을 주장하기에 이르렀다.

화이트헤드의 공동저자였던 B. 러셀도 논리적 분석을 철학의 중요한 기능으로 인정하였고, 그후에 미국에 이식되어 발전했던 논리실증주의(논리적 경험주의)파와 비록 동일한 것은 아니었으나 이들과 친근한 관점을 견지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화이트헤드가 이들과는 반대 방향으로 성장하여 형이상학 본래의 역할을 강조하는 철학자로 발전하게 된 이유나 근거를 『관념의 모험』에서 분명히 밝히고 있다는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화이트헤드와 러셀의 공저로 된 『프린키피아 마테마티카』가 끼친 철학적 영향은, 종전까지만 해도 주로 러셀의 논리적 원자론과 관계적 사고와의 협동적 방향으로 전개된 데에 있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인간과 자연을 분리시켜서는 생각할 수 없는 환경문제 해결의 모색이라든지, 생물행동의 진화와 인간 생활의 역사를 통일적으로 생각해보려는 시도, 또는 자연과학과 인문과학(혹은 C.P. 스노가 말하는 두 문화)의 통일이라는, 새로운 시대가 제기하는 문제의 해결을 위해서는 러셀과 함께 책을 쓰던 시절부터 독자적인 사고의 길을 찾아서 도달한 화이트헤드의 ‘과정’(process)이라는 기본개념에 입각한 사고형식이 앞으로 커다란 의미를 갖게 되리라고 우리는 확신한다.

화이트헤드의 ‘프로세스’ 개념은 반드시 일의적으로만 사용되는 것이 아니고 여러 현상을 설명하는 데 각기 걸맞은 형태로 사용되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그 기본적인 사고법의 패턴이 아리스토텔레스적 존재론의 전통이 가지고 있는 실체적 사고나 근대과학적 사고법의 기본에 있는 관계적 사고에도 속하지 않는, 공간적?물리적 관계와 진화적인 시간 경과와의 통일적인 사고법을 지향하고 있는 것으로 해석한다. 그러나 이러한 사고양식을 명확히 하고, 더욱 보편적인 방법론이 되게 하기 위해서는 아직도 분명히 밝혀야 할 문제점이 적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화이트헤드의 프로세스적 사고가 오로지 신학적 방법론으로 적용되는 데만 그칠 것이 아니라 인식론, 과학방법론, 물리학, 역사철학 등 여러 철학적 문제의 분야를 다룰 수 있도록 확대되기를 우리는 간절히 바라고 있다. 현대철학의 존재방식에 커다란 영향을 주었던 B. 러셀이 기이하게도 그 철학사상의 경향이 전혀 이질적인 화이트헤드와 함께 ‘한 권의 책을 저술하였다’는 역사적 사실을 단순히 우연적인 역사적 사건으로만 볼 것이 아니라, 사고양식의 필연적인 심벌로서 받아들이는 것과 상통하는 것이라 생각된다.


3. ‘관념의 모험’의 두 가지 의미

『관념의 모험』에는 전문적인 형태로 완성된 것은 아니지만 하나의 일반적인 역사철학이 포함되어 있다. 그가 이 책의 서두에서 강조하고 있는 것은, 지난 세기의 역사학파에서 굳게 믿고 있었던 이른바 ‘순수한 역사’―-즉 어떠한 미적 편견도 없는, 어떠한 형이상학적 원리에도 의존하지 않는 역사―-라는 것은 기껏해야 공상의 산물에 지나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러한 것을 진짜로 믿게 되는 원인은 자기 자신의 한계도 깨닫지 못한 채 자신의 추측만으로 ‘객관적인 사실’이나 ‘순수한 역사’ 같은 것을 믿는 데 있다고 보면서, 화이트헤드는 이러한 정신성을 가리켜 ‘편협 근성’(provinciality)에 깊이 빠져 있는 정신이라고 강하게 비판을 하고 있다.

그래서 바로 그러한 편협 근성이나 당파심은 그 당사자의 정신을 폐쇄적인 것으로 질식시키고 타인에게는 부당한 폭력이 되기도 하는 것이지만, 우리는 현실적으로 자기 시대의 구석구석까지 침투해 있는 일반적인 사상적 형식이나 관념을 마치 공기를 마시듯 호흡하고 있기 때문에 “상당한 노력 없이는 이를 깨닫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편협 근성으로부터 점차적으로 탈피하면서 더 넓은 전망을 펼쳐나갈 때 우리는 야만 상태로부터 문명으로의 노정으로 서서히 상승해가게 된다. 화이트헤드가 이러한 전체적 전망을 강조하는 배경에는 인간이나 자연의 모든 사물에는 고립해서 존재하는 것이 없으며, 모든 것은 상호간에 유기적으로 연관되어 있다는 깊은 형이상학적 통찰이 그 밑바닥에 깔려 있다는 것을 알아둘 필요가 있다.

이 책 전반부의 주요 관심사는 인간으로 하여금 문명으로 향해 나아가도록 하는 완만한 추세 속에서 퇴보와 좌절의 가능성마저 없지 않은, 어떤 관념의 역사적 모험을 이야기하려는 데 있다. 다시 말하면, 저자는 여기서 야만 상태로부터 문명으로 향해가는 인류의 완만한 상승운동을 묘사하면서, 그 상승운동의 추진력이 되고 있는 어떤 ‘관념’의 작용을 기술하려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예를 들어, 특정한 능력이나 지위와 상관없이 인간을 ‘인간’으로서 인정한다는 ‘인간의 기본권’의 관념을 들어 말하더라도 이 관념이 어떻게 해서 성립되었으며 인간들 사이에 침투되어갔는가, 그 우여곡절의 역사를 추적하면서 화이트헤드는 “이를 문명 후기단계에서 거둔 하나의 파란만장한 승리로 볼 수 있다”고 말한다.

화이트헤드는 인류의 역사를 맹목적인 충동과 자각된 열망과의 치열한 대립 내지 협력의 역사로 보면서, 후자의 힘이 전자의 힘을 압도하는 상태를 가리켜 ‘문명의 진보’라고 부른다. 화이트헤드는 이러한 역사관에 입각하여 유럽문명의 형성을 특히 동양의 그것과의 교류의 장에서 해명하려고 한다. 그 실마리로서 제1부에서는 인간의 정신?이상?자유 등의 ‘사회학’적 관념이 선정되고, 제2부에서는 우주, 자연의 법칙 등의 ‘우주론’적 관념이 선정되어 있다. 이들은 모두 간단명료한 필치로 기술되어 있지만 그의 역사적 통찰력의 예리함과 넓이를 잘 보여주고 있다. 제3부에서는 주체와 객체, 현상과 실재 등의 ‘철학적’ 관념이 역사적 관점에서 논의되고 있다. 제4부에서는 전술한 바와 같이 진?선?미?예술?모험?평화 등의 ‘문명’의 관념들이 다루어지고 있다.

화이트헤드에 의하면, 문명이란 이러한 관념들의 조화 있는 유기적 관계를 말하는 것이지만 이 유기적 조화는 어디까지나 ‘관념의 모험’에 의해서만 달성된다. 그러므로 이 책을 일관하고 있는 가장 중요한 개념은 ‘모험’이라고 할 수 있다. 화이트헤드에 의하면 “모험이란 새로운 완전성의 탐구”(Adventure is……the search for new perfections. AI p.332)이며, “모험이 없는 문명은 쇠퇴한다”(AI p.360). 화이트헤드는 자신이 ‘유기체 철학’이라고 부른 우주론의 체계에서, 세계를 구성하고 있는 궁극적 단위를 상정하고 이를 ‘현실적 존재’(actual entity)라는 개념으로 파악하는 동시에 이것을 끊임없이 스스로를 초월하는 ‘프로세스’라고 지적했을 때, 이미 거기에는 모험의 작용이 전제되고 있는 것이다. 현실적 존재는 경험의 주체(subject)이지만 주체는 항상 자기초월체(superject)와 하나로 간주된다.

개개의 경험 주체에 작동하는 이러한 모험이 『관념의 모험』에서 확대 해석되어 사회의 문명화과정에 적용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거기에 어떤 고도의 일반성을 갖는 관념들이 인류의 문명화를 촉진하는 데 있어 지대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웅장한 드라마 같은 관념의 모험이 전개되는 것이다. 모험이야말로 문명을 진부함과 지루함과 정통주의로부터 구출해준다. 모험 정신에 찬 문명은 자유롭고, 활기차고, 창조적이다. 모험이 결여된 곳에 문학은 깊이를 잃고, 과학은 지엽말단에 사로잡히고, 예술은 보잘것없는 사소한 구별에 급급하고, 종교는 독단적인 도그마로 타락하고 만다. 화이트헤드는 그의 『대화록』에서 다음과 같이 술회하고 있다.

사상의 생명력(vitality)은 모험에 있다. 이런 생각은 내가 평생을 두고 해온 말이다. 그밖에는 거의 말할 것이 없다. 관념은 오래 지속되지 않는다. 관념에 대하여 무엇인가가 이루어져야 한다. 관념은 끊임없이 새로운 국면에서 고쳐보도록 해야 한다. 어떤 참신한 요소를 때때로 그 속에 끌어들여야 한다. 이를 중지할 때 관념도 정지되고 만다. 인생의 의미는 모험이다(The meaning of life is adventure.) (Lucian Price, Dialogues of Alfred North Whitehead, The New American Library, 1956, pp.205~206).

화이트헤드는 이처럼 『관념의 모험』에서 야만 상태로부터 문명화로 나아가는 인류의 역사를 추적해보려는 것이지만, “이 표제가 갖는 또 하나의 의미는 역사상의 모험을 설명해줄 관념(ideas)의 사변적 구도를 구축하려는 저자 자신의 모험이다.” 실제로 화이트헤드는 인류의 역사를 추적하는 데 있어 현대에 만연해 있는 역사관에 대해서, 그리고 그러한 역사관의 배후에 도사리고 있는 전반적인 ‘실증주의’에 대해서 날카로운 비판을 가하고 있다.

‘실증주의’는 원리적으로 말해서, 각 시점에서 밖으로부터 관찰된 자료만을 처리함으로써 일반적 기술방식을 창출하는 데만 학문의 작업을 한정시키려는 것이라고 볼 수 있겠는데, 이러한 방식으로는 자연의 사물 속의 생동하는 움직임을 통찰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역사의 프로세스의 방향조차도 전망하지 못할 것이다. 뿐만 아니라 ‘실증주의’는 엄밀한 의미에서 ‘경험주의’가 될 수 없다.

전자는 우리의 직접적인 느낌이나 정서 같은 것을 학문 세계에서 추방하는 폐쇄적인 것이지만(예컨대 실증주의적 심리학에서, 각 개인의 느낌이나 정서도 피검사자(被檢査者)에 관한 데이터로서 생기를 잃은 채 계산의 대상으로 처리장에 전달되지 않는가?) 본래의 진정한 ‘경험주의’라면 생동하는 인간이 직접 경험하고 있는 풍부하고, 다채롭고 살아 있는 그대로를 살리는 우주론을 시도하지 않으면 안될 것이다. 실제로 화이트헤드는 이러한 우주론을 그의 대표작 『과정과 실재』에서 제시해주지 않았던가.

그래서 화이트헤드는 모든 자연적 존재를 산 채로 정초(定礎)하는 우주론의 구도를 제시한 다음, 이제야 『관념의 모험』에서 생동하는 인류의 동적인 프로세스로서의 역사를 외적인 관찰에 의해서가 아니고 그 내부로부터 추적하려는 것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달리 말하면, 그의 형이상학을 구체적인 인간 경험의 영역에 적용하려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여기에서는 ‘실증주의적 과학’이 그 대상으로부터 추방하고 있는 ‘아름다움’의 관념이라든지 ‘인간 동포’의 관념이 인류를 어떤 방향으로 몰고 가는 이상(理想)으로서 부활한다. 그리고 화이트헤드는 역사의 세계에서 현실적으로 작동하고 있는 힘으로서의 이러한 관념에 주목하면서 ‘역사’의 재인식을 시도하는 동시에 이러한 역사의 프로세스에도 예증(例證)되어 있는 우주 전체의 존재방식을 이와 같은 ‘역사’의 측면에서도 파악하려고 시도했다고 볼 수 있다.

인류 역사의 모험을 설명해줄 관념의 사변적 구도를 ‘모험적’으로 구축 하면서 화이트헤드가 주목하는 역사를 지배하는 두 개의 힘은 전술한 바와 같이, 한편에서는 맹목적인 충동, 즉 무분별한 힘(senseless force)이며 또 한편으로는 자각된 열망, 즉 이상의 자각적 작용자(conscious agency of……ideas, AI p.21)이다. 이러한 두 개의 힘을 그는 야만인과 기독교인과 같은 대비에서 파악한다. 이러한 사고법은 화이트헤드의 형이상학 체계에서 자기초월체적 주체(subject-superject)로서의 현실적 존재가 물리적인 것과 정신적인 것의 통합과정으로서 성립한다는 그의 철학사상과 대응되는 것으로 보인다.

현실적 존재는 한편에서는 물리적인 것에 의해 한정되면서 다른 한편에서는 정신적인 것을 통해서 자기 스스로를 한정함으로써 새로움을 창조해간다. 거기에 자기초월적인 모험이 성립된다. 그렇기 때문에 모험에는 물리적인 것과 정신적인 것의 그 어느 요소도 없어서는 안된다. “큰 변천은 물리적인 성질과 정신적인 성질이라는 양면 세계에 뿌리박힌 힘이 일치함으로써 일어난다. 단순한 물리적 성질은 홍수를 방출하지만 관계(灌漑) 설비의 정비는 지성을 필요로 한다”(AI p.21)고 화이트헤드는 말한다.

무분별한 작용자가 단순히 물리적으로 노출된 힘을 대변하는 것이라면, 이상을 추구하는 자각적 작용자는 정신적인 설득을 대변한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이 두 개의 힘이 종합 통일될 때 노출된 힘에 대한 설득의 승리가 성립될 것이다. 거기에는 관념의 모험이 작용해야 한다. 이처럼 관념의 모험이야말로 인류사에서 노출된 힘에 대한 설득의 승리로 귀착된 사회를 문명화한다는 것, 이것이 곧 화이트헤드의 철학적 견해이다.


4. 문명론

한 사회가 진리, 아름다움, 예술, 모험, 평화의 다섯 개념으로 성격지워질 때, 이러한 사회는 문명화되어 있다고 화이트헤드는 말한다. 문명화는 신과 유한한 온갖 현실적 존재(actual entilies)―-그 속에는 당연히 인간도 포함된다―-와의 협동으로 만들어가는, 세계의 자기 형성 작용의 궁극 형태이다. 동시에 그것은 인간이 그 자신의 세계에 놓여 있으면서 한정되고 능한정적(能限定的)으로 스스로를 만들어가는 그때마다 경험 속에서 실현된다. 이는 “인간은 문명화될 수 있고, 사회 전체도 문명화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문명화는 당위 즉 현실, 현실 즉 당위로서 성립된다고 할 수 있다. 당위란 세계의 ‘있어야 할’ 궁극 목적이기 때문이다. 또한 현실이라는 것은 그 자신의 세계에 놓여 있는 인간의 자기창조적인 경험 속에서 실현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문명화가 인간의 경험 속에서 실현된다는 것은 화이트헤드가 말한 바와 같이 사회가 문명화된다는 것과 약간의 의미 차이가 있다.

문명화라는 것은 전술한 바와 같이, 인간이 그리고 사회가 진리, 아름다움, 예술, 모험, 평화의 다섯 개념으로 질서지워지는 경우라고 하였다. 그런데 인간의 경험이 그러한 개념들에 의해서 질서지워진다는 것, 혹은 이를 달리 말한다면 인간의 경험이 그러한 개념들을 자신 속에 체현한다는 것의 의미는 문명이라기보다는 문화라는 말로 표현하는 것이 더 적절할 것으로 보인다. 왜냐하면 그러한 개념들과 관련된 인간 경험은 주로 과학적 지식, 예술활동, 도덕적 행위, 종교적 경험 등과 같은 문화적 활동이 문제가 되기 때문이다. 인간이 놓여 있는 세계와의 관계에서 성립되는 이러한 문화적 활동을 통해서 세계는 당위 즉 현실, 현실 즉 당위의 방식으로 문명화되어가는 것이다.

A. 파르망티에가 지적한 바와 같이 『관념의 모험』에서는 『과정과 실재』에서 도달한 형이상학적 관점이 인간 경험의 영역에 적용되어 있다(Alix Parmentier, La Philosophie de Whitehead et le Probleme de Dieu, p.1). 인간은 세계 안에서 세계에 의해 한정되고 자기 스스로를 한정하는 방식으로 새로움을 창조하면서 그때마다 세계를 창조해간다. 세계에 의해 창조되고, 세계를 창조하는 곳에 인간의 경험이 존재한다. 이때에 인간의 경험이 시작되는 여건으로서의 세계를 실재(reality)라고 부르며, 이러한 실재에 의해 한정되면서 스스로를 한정하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것이 현상이다. 그래서 현상의 실재에 대한 순응을 가리켜 화이트헤드는 ‘진리’라고 말한다.

그러므로 진리란 존재와 인식 간의, 혹은 화이트헤드의 용어법에 따르자면 실재와 현상 간의 일치를 말한다. 진리는 자연적 사물의 지식과 관계된다. 그리고 그러한 지식은 통상적으로 ‘S는 P이다’라는 명제로 표현된다. S로 표기되는 자연적 사물은 자신을 P로 한정한다. 실재 쪽의 이러한 상태와 주관 쪽의 ‘인과적 효과’(causal efficacy)와 ‘현시적 직접태’(presentational immediacy)라는 두 지각 방식의 종합(이는 화이트헤드가 말하는 현상이지만)을 통해서 받아들일 때 그리고 현상과 실재가 일치할 때 거기에 진리가 성립된다는 것이다.

이렇게 볼 때, 자연적 사물에 관한 참된 지식은 인식 주관 쪽에서의 물리적인 것과 정신적인 것을 종합하고자 하는 의지적인 작용을 떠나서는 성립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사유의 근저에 의지가 있기 때문에 지식은 실천과 끊을 수 없게 결부되어 있는 것이다. 그래서 단지 순응하는 것만으로는 과거적인 것의 연속성이나 반복성은 있어도 어떤 새로움의 창조는 없기 때문에 진리만으로는 불충분하다는 것이 화이트헤드의 견해이다.

아름다움은 현상이 실재에 적응하면서 거기에 새로움을 창조해가는 곳에서 성립된다. 새로움의 창조는 목적의 실현을 함의한다. 따라서 아름다움은 현상의 실재에 대한 목적론적 적응이라고 한다. 현상이 실재에 목적론적으로 적응하는 곳에 진리는 아름다움과 결부된다. 거기에 ‘진실한 아름다움’(truthful beauty)이 성립된다. 우리들이 실재, 즉 환경적 세계에 적응하는 것만으로 진실한 아름다움은 탄생되지 않는다. 실재에 적응한다는 것은 달리 말하면 실재에 의해 한정된다는 것이다. 이처럼 한정되면서 스스로를 한정해가는 방식으로 새로움을 창조할 때 비로소 현상이 실재에 목적론적으로 적응하였다고 할 수 있는 것이다.

곤충을 비롯하여 동물은 일반적으로 본능적인 방식으로 생활 환경에 적응하면서 산다고 한다. 실재에 대한 이와 같은 적응은 물리적인 성격을 갖는다. 그러나 동물의 삶이라고 해서 단순히 물리적인 것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지능적인 측면도 없어서는 안된다. 동물도 생활환경에 대하여 목적론적으로 적응하면서 살아간다. 그러나 그 동물의 정신성의 경우는 인간과 비교해서 지극히 미약하다고 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동물에게 지능의 싹이 있다고는 하지만 대체로 본능단계에서 살고 있다는 이유도 여기에 있을 것이다.

이와는 달리 인간의 행위는 정신성을 떠나서는 생각될 수 없다. 인간은 문자 그대로 생활환경에 목적론적으로 적응하면서 거기에 진실한 아름다움이라는 가치를 만들어내면서 여러 방식으로 표현해간다. 예술가란 이러한 표현능력이 뛰어난 존재이다. 그러나 사람은 누구나 살아가는 동안에 이러한 진실한 아름다움을 자신의 삶 속에서 표현하고 있다. 화이트헤드는 ‘예술’이란 결국 이러한 표현활동에 지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예술에는 ‘자신을 위해’ 아름다움을 향유하려는 경향이 강하게 나타나는 측면이 있다고 볼 수 있다. 우리는 세계와의 관계에서 한정되는 즉시로 능한정적 방식으로 자신을 예술적으로 표현함으로써 자신을 만들어간다. 그래서 그러한 자신의 제작(制作)을 끝냈을 때, 자신을 초월하여, 후속하는 것에게 스스로를 객체화한다. 그것이 곧 ‘모험’이다.

모험이라는 것은 나를 죽여 타자 속에 사는 것이다. 그것은 ‘타자를 위한’이라는 성격을 갖는다. 그리고 타자를 위해 행하는 모험적 행위는 윤리적이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거기에는 윤리적 선의 실현이 있다.

우리들이 이러한 윤리적 선을 실현한다는 것은 화이트헤드의 사상적 맥락에서 보자면 세계의 한 요소로서 독자적인 가치를 세계에 기여, 공헌하는 것이 될 것이다. 그리고 이처럼 세계의 한 요소가 된다는 것은 신의 기억 속에 보존된다는 것이며, 종교적으로 말하면 신에게 섭취되어 구제받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것은 ‘전체를 위한’이라는 성격을 갖는다. 이러한 종교적인 경험을 화이트헤드는 ‘평화’라고 부른다.

이렇게 본다면 화이트헤드에게는 우리의 하나하나의 경험에 과학적 지식, 예술, 윤리, 종교 등과 같은 가치들이 동시에 성립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가 미적?도덕적?종교적 질서에 존재하는 가치의 개념이 인간의 자기 의식의 한 순간에 생겨날 때 그곳에 종교가 성립된다고 보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을 것이다. 그것은 말하자면 인간 존재가 문명화된다는 의미일 것이다.

세계는 인간 존재의 문명화를 매개로 하여 당위 즉 현실, 현실 즉 당위라는 방식으로 스스로를 문명화해간다는 것이 화이트헤드의 견해이다. 이렇게 볼 때, 다섯 가지 개념으로 성격지워지는 문명화된 사회에서는 예술, 도덕, 종교 등에 관한 관념들이 유기적으로 통합되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과정과 실재』에서 모든 경험의 요소들을 해석해낼 수 있는, 일반적 관념들의 정합적?논리적?필연적 체계를 축조하려는 형이상학이 『관념의 모험』에서는 세계에 있으면서 세계를 창조해가는 인간 경험의 여러 영역에 적용되어 구체적 모습으로 전개되어간다.

화이트헤드의 철학으로 인간 존재를 우주 안에서 문제삼는 것이 가능하게 되었다. 우주는 새로움으로 향해 나아가는 창조적 전진의 과정이며, 인간은 우주의 창조적 과정에 참여해야 할 각별한 책임을 지고 있는 존재이다. 동시에 인간은 다른 존재자와 더불어 우주의 한 요소이며, 우주와의 유기적 관계에 의해서만 논의될 수 있는 존재이다.

화이트헤드는 인간을 유기적 과정으로 기술함으로써 종래의 실체적 사고를 부정하고, 인간 중심주의적 세계관으로부터의 해방에도 성공하고 있다. 그렇지만 거기서 제시된 주체 개념은 또한 확고한 자기를 가질 수 없게 된 현대인의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현대의 인간은 신의 추종자도 아니고, 그렇다고 완전한, 자율적인 이성적 존재자도 아니다. 여기서 우리는 존재의 불안정성을 실감한다. 화이트헤드는 신을 우주의 한 요소로 설정함으로써 체계를 완결시키고 있다. 화이트헤드에게 인간에 관한 새로운 이해는 필연적으로 신의 존재방식에 대한 새로운 사색이기도 하였던 것이다.









게시물수 100건 / 코멘트수 68건 RSS
 
번호 제목 글쓴이 조회 날짜
화이트헤드 철학에 대한 몇 가지 반응들과 편견에 대하여 미선이 7307 06-22
"화이트헤드 철학만이 최고야!"라는 <백두근본주의>에 대한 고찰 정강길 8527 10-25
문창옥 교수가 들려주는 화이트헤드 이야기 (2) 관리자 22899 06-08
오영환 교수가 들려주는 화이트헤드 이야기 (*좀더 쉬운글임) 관리자 10246 11-08
화이트헤드, 그는 누구인가? 관리자 11614 07-15
화이트헤드 철학 용어 해설집 (화이트헤드 강좌 수강생들은 꼭 다운로드 바람!) 관리자 12147 04-23
100 2017년 한국화이트헤드학회 추계학술대회 미선 74 11-24
99 우주의 138억 년 진화 과정은 곧 선택적 표현의 확장 과정 미선 172 10-21
98 지성과 예술의 창조적 작업이 갖는 3단계 과정 미선 179 10-18
97 영원한 객체에 대한 질문 (8) 돌담 371 09-09
96 인간 본성의 3가지: 본능, 지능, 지혜 미선 446 08-15
95 화이트헤드의 『관념의 모험』(한길사) 책에 소개된 옮긴이 해제글 (오영환) 미선 318 07-30
94 문창옥 선생님의 『화이트헤드과정철학의 이해』에 대한 질문 (3) 돌담 525 06-17
93 <실험 합리주의>에 대한 이해 미선 1273 01-11
92 공허로서의 신 → 적으로서의 신 → 동반자로서의 신 (1) 미선 2150 07-22
91 [발표자료] 지금 여기 인간으로서 ‘살아있음’의 의미 (첨부파일) (4) 미선 2778 06-12
90 화이트헤드의 예술과 교육 이해 미선 3813 05-30
89 화이트헤드학회 춘계학술대회 미선 2223 05-23
88 화이트헤드의 플라톤 철학에 대한 평가 (4) 미선 2758 05-19
87 화이트헤드 철학과 칸트 철학은 서로 반대 도식 미선 2154 04-27
86 새로운 창조는 우주 전체로부터 생기는 것! 미선 1875 03-24
85 셔번의 A Key to Whitehead's Process and Reality 중에서.. 미선 2450 12-22
84 현실적 존재의 합생의 과정과 그 구조 (3) 돌담 2690 12-15
83 PR에서의 시원적 위상(primary phase)에 관하여 (1) 미선 2651 12-08
82 화이트헤드의 신은 모범답안을 가지고 있을까요? (5) 취생몽사 2968 09-20
81 (이성의 기능) 이성의 반대는 피로 -1 (1) 뱅갈고양이 3362 08-02
80 살아 있는 인격과 변환의 범주 (화이트헤드 철학 강좌 노트에서 발췌..) 미선 3148 07-18
79 "니체, 화이트헤드, 로티의 플라톤 넘어서기 비교" (2015 한국화이트헤드학회 학술제) (1) 미선 3585 05-17
78 "철학은 시와 유사하다" 미선 3185 04-28
77 화이트헤드의 과학적 유물론 비판 미선 3710 03-11
76 과학과 철학 미선 3018 03-03
75 부정적 파악, 주체적 통일성의 범주 (7) 돌담 3922 12-19
74 [추계학술제 발표논문] 화이트헤드와 홀로니즘 그리고 몸섭의 이해 (1) 미선 4383 09-28
73 2014년도 한국화이트헤드학회 추계학술대회 (논문 발표) (1) 미선 3945 09-21
72 2014년 한국화이트헤드 학회 봄 춘계 학술제 (1) 미선 5185 05-23
71 화이트헤드 철학 강독 세미나 5월7일(수) 오후7시 시작 (4) 관리자 4078 04-23
70 "자연 법칙 자체도 진화한다!", 질서와 무질서 간의 변주 미선 6017 08-06
69 <물질 원자>에서 <유기체 원자>의 존재로 미선 5096 07-31
68 물질의 꿈 (궁극적 실재는 물질인가? 정신인가? 유기체인가?) (1) 미선 5789 07-11
67 "지식의 체계화는 선박의 방수격실 같은 곳에서 이루어질 수 없다." 미선 4586 07-03
66 화이트헤드가 말하는 철학의 목적과 한계 그러나 안할 수도 없는.. 미선 4743 07-01
65 철학과 과학의 차이 (Metaphysics & Physics) 미선 5900 06-21
64 화이트헤드 철학 기초 입문 강좌 안내 (4) 관리자 4903 04-30
63 "몸학, 화이트헤드 철학의 몸삶 적용 이론" 한국화이트헤드학회 학술대회 (1) 미선 5307 04-30
62 한국화이트헤드학회 추계학술대회 다녀왔습니다. 미선 5756 10-21
61 한국화이트헤드학회 춘계 학술대회 다녀왔습니다. (1) 미선 5324 05-21
60 화이트헤드와 니체 사상 간의 비교 연구 (문창옥) 미선 5910 04-24
59 『관념의 모험』(Adventures of Ideas) “제4부 문명론적 관점에서”, “제17장 아름다움” 번… (1) 윤집궐중 6792 12-26
58 화이트헤드와 들뢰즈 철학의 차이 미선이 8282 09-21
57 도올의 화이트헤드 종교관 평가에 대한 고찰 미선이 6448 09-09
56 화이트헤드 철학에 대한 몇 가지 반응들과 편견에 대하여 미선이 7307 06-22
55 유물론과 진화론은 함께 갈 수 없다! 미선이 7308 06-17
54 한국 화이트헤드 학회 춘계 학술대회 맡은 글 미선이 6671 05-29
53 “화이트헤드와 유럽철학”, 한국화이트헤드학회 제15회 정기학술대회 미선이 6168 10-23
52 GIO사상한 : 화이트헤드와 윌버의 접속과 그리고 포월 정강길 9102 02-21
51 기독교 신학의 내적 딜레마에 대한 과정사상의 응답(김희헌) 정강길 7019 02-21
50 과정철학과 한국사상 (문헌 목록들) 정강길 8695 02-08
49 과정철학과 화엄불교의 세계사유(김진) 미선이 9516 06-13
48 이번 한국화이트헤드학회 학술대회를 다녀와서 (본인의 후기 논평) (4) 정강길 8989 05-20
47 한국화이트헤드학회 2009년도 정기학술대회 (5월16일) (1) 정강길 5931 05-09
46 알프래드 노스 화이트헤드 다시보기 (이세형) (2) 미선이 7605 03-02
45 화이트헤드 형이상학의 난제 해결 모색 (과정과 실재의 잃어버린 제6부) 정강길 7493 11-11
44 백두가 '과학과 근대세계'에서 언급했던, <종교>에 대한 유명한 구절 정강길 7508 03-09
43 화이트헤드, 『사고의 양태』Modes of Thought 오자 교정 목록 (2) 정강길 8026 02-07
42 화이트헤드의 눈에 비친 기존 기독교와 그 신학 정강길 7921 12-27
41 God and the World (A. N. Whitehead's PR, Chapter II of Part V) 관리자 10885 12-27
40 The Function of Reason (A. N. Whitehead) 관리자 14065 12-27
39 현대의 양자물리학과 화이트헤드 철학을 비교논의한 최신서 2권 정강길 8180 11-11
38 〈오류〉Error와 합리주의의 모험 (1) 정강길 7780 11-11
37 〈자연주의적 유물론〉에서 〈자연주의적 유신론〉으로.. (2) 정강길 8772 11-11
36 [기사] “과정사상은 지식의 파편 녹이는 용광로” (존 캅 인터뷰) 관리자 7922 11-11
35 [기사] “병든 현대문명 치유할 대안 제시” 관리자 6928 11-11
34 2004년 5월에 있었던 '제5차 국제 화이트헤드 학술 대회 소개글' 정강길 11086 11-11
33 제8차 한국화이트헤드학회 학술발표자료 관리자 7716 11-11
32 불교와 화이트헤드 철학의 同異點 (장왕식) 관리자 7576 11-11
31 [책] 레클레어의 『화이트헤드 형이상학 이해의 길잡이』(이문출판사) 정강길 7625 11-11
30 [책] 화이트헤드 교육철학에 관한 국내 연구저서 정강길 7884 11-11
29 사변철학의 이상과 화이트헤드 철학 흠집내기 정강길 7252 11-11
28 화이트헤드에 종종 가해지는 비판들과 그 반론 정강길 6726 11-11
27 [서평] 1991년에 도올 김용옥이 『과정과 실재』에 대해 썼던 매우 재밌는 서평 정강길 10677 11-11
26 Thomas E. Hosinski의『화이트헤드 철학 풀어 읽기』(이문출판사) 정강길 7724 11-11
25 [책] 문창옥 『화이트헤드 철학의 모험』 통나무 2002 관리자 7395 11-11
24 베르그송과 화이트헤드 그리고 지성의 오류에 대한 참고 정강길 7821 11-11
23 화이트헤드 철학의 좋은 점은.. 정강길 7338 11-11
22 형이상학과 존재론의 차이에서 본 하이데거와 화이트헤드 정강길 8586 11-11
21 화이트헤드 철학에 대한 명백한 곡해 사례들~!! 정강길 7272 11-10
20 오영환 교수가 들려주는 화이트헤드 이야기 (*좀더 쉬운글임) 관리자 10246 11-08
19 "화이트헤드 철학만이 최고야!"라는 <백두근본주의>에 대한 고찰 정강길 8527 10-25
18 God and Creativity 정강길 6597 10-08
17 과정사상의 신개념에 대한 난제 해결 모색 정강길 7428 10-08
16 화이트헤드 철학의 신조어 번역 문제에 대한 몇 가지 생각 정강길 7705 10-08
15 <이행>transition에 대한 새로운 분석 정강길 7048 10-08
14 strain-locus, presented locus, presented duration 정강길 7494 10-08
13 세기연이 여의도순복음교회에 진출(?)하여 모임을 가집니다~!! 관리자 7791 07-24
12 화이트헤드, 그는 누구인가? 관리자 11614 07-15
11 문창옥 교수가 들려주는 화이트헤드 이야기 (2) 관리자 22899 06-08
10 chair-image & real chair 정강길 10274 06-08
9 aboriginal potentiality 정강길 7240 06-08
8 universals and particulars & description 정강길 7729 06-08
7 화이트헤드의 신조어 번역문제에 관한 짧은 논의 관리자 8770 06-08
6 상상과 양심 그리고 명제적 느낌 정강길 7299 05-06
5 모든 언명은 그 어떤 형이상학을 전제하고 있다.. 정강길 7958 05-01
4 화이트헤드의 자연주의적 무신론 해석 정강길 7644 05-01
3 [펌] 문창옥의 『화이트헤드 과정철학의 이해』에 대한 서평 최종덕 9078 05-01
2 "병든 현대문명 치유할 대안 제시" (1) 정강길 9182 04-23
1 화이트헤드 철학 용어 해설집 (화이트헤드 강좌 수강생들은 꼭 다운로드 바람!) 관리자 12147 04-23



Institute for Transformation of World and Christianit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