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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료]  제 목 : [서평] 1991년에 도올 김용옥이 『과정과 실재』에 대해 썼던 매우 재밌는 서평    
  글쓴이 : 정강길 날 짜 : 06-11-11 20:18 조회(10676)
   트랙백 주소 : http://freeview.org/bbs/tb.php/e006/41 


[ 2003-02-11 02:22: 2 ]
 

이번에 학술행사겸 부산에 내려간 나는 집에 있던 먼지난 자료들을
정리하던 가운데 김용옥이 아주 오래전에,
그러니까 본인이 화이트헤드를 처음 접했던 해인 1991년도에 썼던
'과정과 실재-서평' 자료를 오래된 서류철에서 발견하고선 무척이나 기뻤다..
왜냐하면 그 글은 인터넷에도 찾기 어려워 문득문득 생각날때마다
내심 다시 찾고 싶었던 자료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1991년도 당시에는 이런 서평이 나와 있었는지는 까마득히 몰랐었다..
내 기억상으론 제대후 학교를 다녔던 1996년쯤 당시 룸메이트였던 영준이가
내가 화이트헤드에 관심하는 것을 알고선 내게 줬던 자료로 기억한다..

김용옥의 이 서평이 인상깊었던 이유는 김용옥의 글이 으례히 그렇듯
서평이라고 하기엔 상당히 재밌게 썼기 때문이다..
도대체 소개하는 책에 대해서
그 책을 읽지말고 "책을 고이 모셔놓고 고사지내라"는 그런 서평을 어디 본 적 있는가ㅋㅋ
아무튼 당시 이 서평을 읽고서 한참이나 웃었다..

과정과 실재에 대한 김용옥의 이 서평 글은, 그가
그 전에 이미 썼던 『동양학 어떻게 할것인가』(통나무, 1986),p.71.의
화이트헤드에 대한 평가 글도 떠올리게 한다..
읽어보면 알겠지만 둘 다 재밌게 쓴 글이라 유난히 기억에 많이 남는다..

그렇다.. 김용옥의 강의나 글은 우선은 그렇게 난해하지도 않고 재밌다..
그에게 대중성이 확보되는 측면은 바로 이 지점인 것이다..
김용옥의 문체를 어떤 이는 현학적이라고 얘기하기도 하지만
사실 그는 현학적인 면과 대중적인 측면이 묘하게도 잘 녹아있다..
이것은 내가 볼 때 그만의 특출난 재능으로 봐진다..

(한편으론 여전히 그가 보는 사회비판의식은 그의 계급적 위치가
가져다주는 관점과 한계에서 좀체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고 본다..
근래에 문화일보에서 기자를 하면 뭔가 달라지려니 했지만
아직 그렇게 생각만큼 달라질 기미는 보이질 않기에..
사실 지금 소개하는 이 서평글도 당시 조선일보에 실렸다는 점에선
그의 사회비판의식을 엿보게 한다고 볼 수 있다..)

언젠가 이 서평에 대한 재밌는 에피소드를 오영환 선생님으로부터 직접 들은 바 있다..

당시 김용옥씨가 오영환 선생님께 서평허락을 받고서 신문에 서평을 올린 후
그 다음날 이 책에 대한 문의가 갑자기 쇄도하여 책이 서점에서
그만 바닥나버렸다는 것이다.. 놀랍게도 김용옥이 서평을 쓰기 이전엔
아무도 몰라 가뭄에 콩나듯 나갔던 책이라고 한다..
김용옥이라는 이름의 대중적 영향력을 실감할 수 있는 사례이기도 하다..

생각컨대, 국내에 화이트헤드라는 철학자를 널린 알린-적어도 그 이름만이라도-
널리 유포시킨 일등 공로자를 꼽는다면 나는 단연 김용옥을 꼽을 것 같다..
문창옥 선생님의 강의를 들으려 오는 사람들 가운데서도
김용옥으로 인해 화이트헤드 철학을 소개받고 왔다는 사람이 많았었다..

이제 그가 12년 전에 두서없이 자유롭게 써내려갔던, <과정과 실재-서평>을 감상해보자..
 
.........................................................................
 
 
[서평] A. N. Whitehead, 오영환 역, 『과정과 실재』(민음사, 1991)
 

김용옥
 
 

어려운 문장의 그 어려움에는 두 가지 이유가 있다. 하나는 자기가 쓰고 있는 글이 뭔지를 몰라서 생겨나는 것이요. 하나는 제대로 알아서 생겨나는 어려움이다. 우리나라 학자들의 어려운 글의 상당수가 자기가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를 몰라서 그렇게 된 것이지만, 이러한 시니컬한 정황은 비단 한국학계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다.

서양철학사를 장식하고 있는 난해한 서양철학자들의 대부분이 뭘 모르고, 즉 잘못 놓여진(misplaced) 개념들의 착종(얽힘) 속에 빠져 헤어나지 못하는 자들이다. 동양철학자들의 경우, 그 해독의 어려움은 있으되, 해독된 내용이 어려운 예는 거의 없다. 정말 어려운 문장을 쓰는 자로서 정말 뭘 잘 알고 있다고 판단되는 철학자! 동서고금을 통하여 나는 아직 단 한 사람밖에 알지 못한다. 그 사람이 바로 화이트헤드(1861~1947)이다. 나는 그를 백두선생(白頭先生)이라고 부른다. 아마도 백두산의 정기가 영국 케임브리지의 트리니티에까지 뻗친 모양이다.

인간의 문자역사는 넉넉잡아야 겨우 반만년 남짓한 것이지만, 그 역사를 통틀어 아마도 가장 어려운 책 한 권을 뽑으라면 단연코 『과정과 실재』(1929)가 꼽힐 것이다. 홀로그램의 모든 부분에 전체의 상이 내함되어 있다면, 백두선생의 한 문장 한 문장에도 그 전체 사상이 내함되어 있다. 따라서 그 전체를 파악치 못하면, 그 어느 한 줄도 이해할 수가 없다. 하나 전체의 파악이란 용렬한 범인의 지능으로는 불가능한 것이다. 고로 난해에 난해만 거듭된다. 이 엄청난 난해의 밀림이 드디어 조선말을 빌려 그 모습을 드러냈다. 참으로 경하할만한 일이다.

깡마른 백발노인, 독기어린 노여움으로 인간세를 직시하는 버트란트 러셀이나, 이글이글 타오르는 눈매로 언어의 희롱을 희롱하는 비트겐슈타인이나, 과학의 장난에 양보할 수 없다는 촌놈의 뱃심으로 의식(베부스트자인)을 파고드는 후세를 같은 이름은 우리에게 친숙하지만, 화이트헤드라는 백두선생의 이름은 우리 독자에게 낯설다.

왜냐? 이유는 간단하다. 난해하기 때문이다. 아무도 그를 읽는 자가 없다. 그것은 우리나라에서만 아니라 서양에서도 마찬가지다. 제자를 만날 수 없다. 러셀도 그의 제자지만 끝내 그를 이해치 못했다. 백두선생의 고고한 불운이다.

그렇다고 때려칠 수 있는가? 그럴 수는 없다! 백두선생의 세계는 모든 것이 움직인다. 그의 생각의 모든 대상이 움직이며, 그가 생각하고 있는 생각의 모든 순간이 움직인다. 그의 언어도 움직이며, 그 언어를 둘러싼 세계도 움직인다. 그의 세계는 <움직임>밖에 없다. 따라서 정태적(개념화된) 사고에 젖은 우리의 관념으로는 그를 파악(프리헨드) 할 수 없다. 그의 언어는 통찰이며, 체계가 아니다. 따라서 그의 이해는 영원히 나의 통찰일 뿐이다. 서양철학사의 모든 문제가 나는 일단 『과정과 실재』에서 종결되었다고 감히 선포한다. 그 위에서 우리는 새롭게 오류의 체계가 아닌 <철학> 그 자체를 말해야 한다.

서평이란 원래 책을 읽히게 하기 위한 것이다. 그러나 아무도 '읽기 위해서' 이 책을 살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면 이 책을 왜 사는가? 서재에 신주 모시듯 모셔놓기 위해 이 책을 사라고 나는 권한다. 그리고 고사 지내라! 우리의 후손 가운데 백두와 같이 위대한 난해서를 쓸 수 있는 학자가 나오기를 비는 심정으로. 여섯 해 걸린 오영환 교수(연세대)의 번역은 정확하며 공이 들였다.

(조선일보 1991년 11/17일자)
 
 2003-02-11 02:22: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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