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의 글에서 종교가 보수적인 성향을 띨 수밖에 없다는 글을 끄적거린 적이 있다. 요컨대, 보르되(Bourdieu)가 분류한 세 가지 형태의 자본에 근거하여, 우리나라의 종교 지도자들은 사회자본(교인, 신도)과 문화자본(경전, 교리), 경제자본(헌금, 연보)이라는 세 가지 자본을 동시에 움켜쥐고 있고, 따라서 자본을 보유한 이들의 성격상 이 종교 지도자들을 ‘보수적’이라고 명명할 수 있다는 논지였다.

최근 두 가지 이슈가 눈에 띈다. 하나는 ㅅ교회 ㅈ목사의 성추행과 교회의 조치에 관한 내용이고 또 하나는 봉은사 안에서 교회 청년들이 독단적인 예배를 감행했던, 소위 ‘땅밟기’라는 파문을 벌인 일이다. 이들 사건에 대해 우리는 각 사건마다 안과 밖의 두 가지 관점을 동시에 살펴봐야 할 것이다. 

소망교회 앞에서 이명박 대통령의 지지도가 80%를 넘었다고 한다. 만약 ㅅ교회 앞에서 ㅈ목사의 지지도를 조사한다면 얼마나 될까? 일례로 ㅈ목사의 설교를 더 이상 들을 수 없게 되자 수 천명의 청년들이 ㅅ교회를 나왔다는 소식이다. 이들이 ㅈ목사의 성추행 소식에 실망하여 교회를 더 다니지 않는다기보다는 ㅈ목사의 설교를 들을 수 없게 돼서 나왔다고 보는 게 더 합리적인 추론인 것 같다. 다시 말하면 ㅅ교회 입장에서는 ㅈ목사가 아무리 나쁜 짓을 했다 할지라도, 그것이 치명적인 죄가 아닌 이상, 교회 자본(사회자본:교인, 문화자본:설교, 경제자본:헌금)의 중추를 담당하고 있는 이상, 그리고 그것을 대체할 수 있는 다른 사람을 찾지 못한 이상, 내부적인 시각에서는 ㅈ목사를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는 것이다. 교회는 사회/경제자본의 논리상, 교인들은 문화자본의 논리상, ㅈ목사의 복권을 희망할 것이다. 그렇다면 교회 밖의 입장은 어떨까? 당연히 조금의 잘못이 있는 목사라면 더 이상 교회 지도자 자격이 없으며 물러나야 한다는 여론이 지배적일 것이다. ㅈ목사의 그 자리는 아무리 세속적인 시각을 붙여대도 ‘성직’이라는 고고한 위치임에는 변함이 없으며 세속에서 기대할 수 없는 윤리적인 덕목을 전제하고 있기 때문이다. 

‘땅밟기’ 이슈는 그 자체만 보는 것보다는 극단적인 행동을 하는 기독교인들의 유형을 분석하는 것이 더 도움이 될 것이다. 90년대 초반에는 거리의 설교자, 즉 노방전도를 하는 사람들이 꽤 많았다. 지금이랑 다르게 당시 거리의 설교자들은 주변의 호응이 썩 나쁘지 않았다. 유창하고 나름 공감이 가는 말씀을 전하면 주변에서 ‘아멘’ 소리가 에코처럼 울렸고 심지어 비기독교인들조차도 그들의 거리 설교를 아주 부정적으로 바라보지는 않았다. 90년만 하더라도 휴거분위기가 지배적이라 거리의 설교자들이 순교를 앞둔 다소 혐오스런 설교를 했지만 사람들은 진지하게 듣는 편이었고 대놓고 설교에 대해 핀잔을 주는 사람도 없었다. 90년대 중반이 들면서 분위기는 급반전 되었다. 거리의 설교자들은 비기독교인들은 물론 기독교인들에게조차도 혐오의 대상이 되었고, 이런 멸시의 분위기가 자신들의 선교의 고통을 대변한다고 착각하면서 노방전도는 차차 게토화되었다. 즉 대부분의 교회는 이러한 노방전도를 대놓고 혐오하진 않았지만 권장하지도 않았고, 혐오스런 노방전도를 표방하는 교회는 점차 무시의 대상이 되었다. 

하지만 우리나라 기독교인들 모두가 그들을 버린 것은 아니다. 교회연합신문은 매년 1만 명 정도의 목사후보생이 정규 및 군소신학교를 졸업하여 목사안수를 받고 있으며 지금까지 안수를 받은 목사 숫자만 해도 12만 명이 넘을 것이라고 예측했다. 전국의 6만 여 개의 교회 수를 감안해도, 또한 전국 교인 수 1천만 정도를 감안해도(83명에 목사 하나) 지나치게 많은 숫자임을 알 수 있다. 이들 중 계속 교회에 남는 사람은 절반의 절반도 되지 않음을 쉽게 짐작할 수 있다. 그렇다면 이들 중 누가 ‘성공’하여 목사라는 타이틀을 간직하고 누가 ‘실패’하여 실업자로 전락할 것인가? 우리나라 90%의 교회는 그 교단에 상관없이 예전 평양에서 부흥했던 미국 북장로교의 영향을 너무 강력하게 받아서 세계 기독교의 분포도를 봐도 지나치게 보수적 성향이 강하다는 것은 알만한 사람들은 아는 사실이다. (가령 감리교 교리는 예정설을 인정하지 않지만 대부분의 감리교 목사들은 예정설을 신봉한다.) 그렇다면 보수성향이 남아 있는 교인들에게 가장 극단적으로 빠르게 어필하는 방법은 무엇인가? 그것은 소위 말하는 ‘복음주의’라는 가면을 쓴 ‘근본주의’를 추구하는 것이다. 노방전도도, 땅밟기도 기독교인들 다수의 의지라기보다는 이러한 맥락에서 근본주의자들의 조급함에서 자행되었다고 보아야 한다.

다행히도 땅밟기를 자행했던 찬양인도자 학교는 그 소란을 일으킨 학생들의 행동에 대해 봉은사에 공식 사과하였다고 한다. 이 찬양인도자 학교를 비롯하여 수많은 군소교단에서는 교회리더를 자체 신학교를 만들어 배출한다. 1년, 빠르면 한 학기 만에 목사가 될 수 있다. 이들은 짧은 시간에 성직자가 되었기 때문에 그만큼 조급하고 빠른 결과를 원하는 것처럼 보인다. 이들에게 선교는 비기독교인들을 회심(conversion)시켜 기독교인으로 만드는 것이기 때문에 확실한 타겟인 타종교에 대한 편협한 시각을 가질 수밖에 없다. 봉은사에 올라가서 무너지라고 예배를 드리는 행위나, 두타스님의 머리에 안수하는 목사의 독단적 행위는 지하철에서 설교하는 노방전도 이상의 혐오감을 비기독교인은 물론이고 기독교인들에게도 주고 있다는 사실을 간과하는 것 같다. 이들에겐 선교전략을 차근차근 짜며 계획을 세우는 것보다 그 전략자체를 뒤엎는 결과가 자신들의 믿음을 통해 일어날 수 있다고 믿으며, 혹은 그것이 일어나지 않는다 하더라도 결집되는 근본주의자들의 '그들만의 잔치'로도 충분히 만족해하는 것 같다. 자신의 행동으로 인한 기독교 반감지수가 얼마나 다수 기독교인들의 발목을 조이는지는 전혀 이해하지 못한 채 말이다.

아무래도 분위기가 분위기인 만큼 또 한가지 요소를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그것은 질서의 문제이다. 카톨릭은 그 자체의 분열이 생겨도 교황청과 각 추기경의 노력으로 결국 한 목소리로 통합(merge)된다. 성공회도 다양한 목소리를 가지지만 그 뒤에는 교리와 전통, 큰 어른들이 있다. 물론 개혁을 이끄는 입장에서 이렇게 뒤에 있는 것들이 장벽이 될지 버팀목이 될지는 여러 의견이 있을 수 있다. 하지만 ‘개신교’는 이러한 질서가 없다는 것이 장점이면서도 가장 취약한 단점으로 비쳐진다. 질서가 없기 때문에 새로운 취지를 가진 목사들이 끊임없이 새로운 전통을 만들 수 있지만 역시 질서가 없기 때문에 비기독교인의 눈으로 봤을 때는 개신교는 무질서하다. 총회에서 가장 큰 소리를 내는 것은 교인들을 많이 보유한 목사이고 노소의 구분이나 학식, 인격은 무시되기 일쑤이다. 따라서 땅밟기나 ㅈ목사의 스캔들을 조정, 관리하고 비기독교인들에게 양해를 구할 범개신교 기구는 전혀 생각할 수 없다. (몇 번 시도가 있었지만 각 교단들의 배분을 고려하다 결국 흐지부지 된 적이 한 두 번이 아니다.) 결국 개신교는 그 구조적 성격상 가끔씩 나타나는 몇몇 카리스마적인 목사들에 의해 전체 개신교인들의 성격이 규정되고, 그 목사들이 가끔씩 혹은 그 구조적인 제왕적 지위 탓에 다소 필연적으로 나타나는 비윤리적 행위들에 의해 이들 교회 지도자들은 비기독교인들의 타겟이 될 수밖에 없다. 사실 개신교 전체를 보면 작은 일에 불과해야 하는 허점들이 오히려 개신교의 이미지 전체를 형성하는 일들이 허다해지는 것이다. 게다가 최근에 한몫 더한 현 정권의 기독교적 이미지와 무질서한 종교정책을 통해 대한민국 네티즌들 대부분이 안티기독교인이 되는 것을 막을 수는 없는 현실이라는 것을 느낀다.

개인적으로 신학을 시작한지 16년이 되었지만 난 아직도 성직자가 아니며, 앞으로도 여전히 최소 8-10년의 시간을 신학을 하며 보낼 것 같다. 그럼에도 난 아직도 신학이라는 분야가 끝이 없고 통달하기 힘든 학문으로 보인다. 게다가 교회활동은 더더욱 큰 결심을 필요로 한다. 그 부담스런 목사자리를 그렇게 쉽게 될 수 있다고 믿는 사람들을 보면 한심함을 넘어 경외로운 마음까지 든다. 따라서 내 입장에서는 1년, 혹은 한 학기 만에 목사라는 성직을 과감하게 받는 사람은 무척이나 한심할 정도로 존경스러워 보일 수밖에 없다. ‘믿음이 적어서’ 그런가 보다. 난 그저 더더욱 내공을 쌓아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