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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목 : 몸은 포물선이다 / 정희진    
  글쓴이 : 미선 날 짜 : 13-04-27 02:34 조회(46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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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은 포물선이다
 

등록 : 2013.04.26 20:15수정 : 2013.04.26 20:16


정희진 여성학 강사

 
[토요판] 정희진의 어떤 메모
 <병을 달래며 살아간다>
 다이쿠바라 야타로 지음
 박 영 옮김. 여강출판사, 1991
 

홍준표 경남지사에게 공공의료는 “좌파 정책”이다. ‘우파 민중’은 안 아픈가? 공공의료는 국가의 기본 역할인데? 그는 아나키스트? 내가 분노하자 주변에서는 “뭘 기대하냐”는 반응이다. 일부 지도층의 이런 발상에 대한 현저한 면역결핍이 내 지병이다.

질병은 삶의 부작용이 아니라 본질이다. 의료는 복지 이슈가 아니다. 쌀 수급을 복지정책이라고 말하는 사람은 없다. “질병은 비정상”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비용 문제로 접근하는 것이다. 홍 지사의 사고는 철학의 문제, 그것도 ‘국정철학’의 오류다. 그는 ‘좌파의 국가관’을 의심하기 전에 자신의 공동체관부터 검증받아야 한다.

질병이 사회적 부담이라는 인식은 일반의 통념이기도 하다. 서양 사상에서 인간은 신의 형상을 본뜬 피조물이다. 신은 전지전능하기 때문에 자신의 작품을 불완전하게 만들 리 없다. 신이 만들었으므로 완전하며 각 기관과 장기가 정확히 작동하고 조화를 이루었을 때 건강한 상태라는 것이다. 건강(health)의 어원은 온전한(whole), 강건한(hale), 신성한(holy) 같은 앵글로 어족에서 유래했다.

게다가 정상의 기준은 건강한 남성이다. 여성과 장애인은 신의 은총을 받지 못한 사람들이다. 병에 걸린 사람은 벌 받은, 재수 없는, 신자유주의 용어로는 낙오자라는 의식은 지금도 팽배하다.

일본 출신의 티베트 의사이자 승려인 다이쿠바라 야타로의 <병을 달래며 살아간다>(원제 明るいチベシト醫學)는 티베트 의학의 인식론과 증상에 따른 실제 치료법을 다루고 있다. 티베트 불교에서는 인간을 신의 구현물로 보지 않는다. 동식물처럼 자연의 일부일 뿐. 불완전해도 상관없다.

티베트 의학에서 “인간의 몸은, 돌을 던지면 돌이 긋는 포물선처럼 원초 생명에서 점점 발전하여 한창때를 누리다가 마침내 기운을 잃고 떨어져 원래의 상태로 되돌아오는 것이다.”(25쪽) 이 책의 내용에 모두 동의하지는 않는다. 특히 지금 의료 서비스가 완전히 계급 문제가 된 한국 사회에서 자연 치유력을 강조하는 티베트 의학의 장점은 탈맥락적일 수 있다.

포물선의 비유조차 절정이 있다는 의미에서 위계적인 면이 있지만, 분명한 것은 포물선은 시작과 끝이 있다는 점이다. 몸의 생애는 곡선이다. 내려갈 때가 있다. 성형 열풍이나 완벽한 몸 이미지는 몸의 과거와 미래를 인정하지 않는 비현실적 행위다.

“지금 뭘 하고 있나요?” <통증의 땅에서> 알퐁스 도테는 말한다. “아프고 있습니다.” 인간의 조건을 어떻게 상정하는가에 따라 역사는 달라진다. 어떤 이들은 생의 대부분을 병상에서 보낸다. 많은 현대인들이 만성 통증에 시달린다. 인간은 아프고 죽게 되어 있다. 그러나 이를 수용하는 사람은 드물다. 출세, 성장, 행복 지상주의 사회에서 이상한 일도 아니다.

나는 지나치게 생명을 찬양하는 사람을 경계한다. 대개 이들은 진정 생명을 존중하기보다는, 질병에 대한 두려움과 죽음에 대한 혐오 때문에 생명이 아니라 건강과 젊음을 찬양한다. 사람보다 ‘생명’을 좋아하는 것이다.

삶은 불공평하다. 죽음도 불공평하다. 다른 점이 있다. 삶의 불공평은 계급, 성별 등 구조적인 이유가 있고 어느 정도 인식의 공유가 가능하다. 아픈 과정, 죽음의 불평등함은 설명할 길이 없다. 인명재천. 죽음에 이르기까지 몸의 고통은 공감이 불가능하다. 죽음에 이르는 길은 홀로 가는 길이다. 가까운 이가 고통으로 살과 뼈, 피가 질서를 잃으며 죽/어/가/는 모습을 경험한 이들은 알 것이다.

세계 최고의 의료 수준과 제도를 자랑하는 쿠바는 1986년 우크라이나의 체르노빌 원자력발전소 사고 때 모든 국가가 기피한 원전 난민을 무료로 치료해주었다. ‘국격’이 있다면 이런 것이다. 원래 진주의료원 같은 기관은 동리(洞里)마다 있어야 한다. 폐업이 아니라 더 만들어야 한다.

키에르케고르처럼 ‘죽음에 이르는 병’을 고뇌할 때가 아니다. 누구나 고통 없는 죽음을 원한다. 공공의료는 개인이 ‘죽음에 이르는 길’에서 겪는 고통에 개입하기 위한 최소한의 장치다. 인간이 사회를 이루고 사는 가장 큰 이유는 이 고통을 함께하기 위해서다.

정희진 여성학 강사
 
http://www.hani.co.kr/arti/opinion/column/584796.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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