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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목 : [축약본] 새로운 철학 장르를 개척하고 교육 제도를 혁신하고자 합니다.    
  글쓴이 : 소오강호 날 짜 : 14-06-30 00:15 조회(3294)
   트랙백 주소 : http://freeview.org/bbs/tb.php/f001/3793 


한 송이 꽃에 우주가 담긴 원리를 현대 철학으로 풀어내기.

(아트만, 일심, 세계신을 전제하지 않고 법계연기를 논리적으로 전개하기)

해체철학, 심층종교, 치유심리학의 융합.

종교적 전제를 완전히 버리고

객관적 사실과 인지 과학에 기반을 둔 명상 철학의 확립

획일화된 파시즘적 대입제도에 반기를 드는 개혁.

"새로운 철학 장르를 개척하고 교육 제도를 혁신하고자 합니다."

全文 : http://blog.naver.com/wholesavior/2200171949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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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全文)은 글이 장황하고 논지가 불명확하다는 의견이 있어

중요한 문장을 간추린 ‘축약본’을 만들었습니다.

전문(全文)에서 단편적인 내용을 뽑고 짧은 문장을 추가했습니다.

(이전에 썼던 글이 장황하다는 문제를 필자도 느끼고 있으나,

괄목할 만한 내용들도 있으니 주제에 관심이 있는 독자께서는

전문(全文) 또한 읽어주시면 좋겠습니다.)

 

<축약본>

 

자기소개, 교육철학, 연구주제의 3파트로 요약했습니다.

(총 10page 이내의 분량)

 

[본인의 철학 탐구 약력 및 비전]


철학 탐구 약력

 

17세 때 화엄 사상 견성 후 10년간 동양 철학과 명상 공부.

 

화엄 사상 견성 : 바다처럼 전체 안에 개체가 개체 안에 전체가 있음을 체험하는 해인삼매를 뜻하며, MBSR의 존 카밧진도 저서에서 이 체험을 언급한 바 있습니다.

(존 카밧진의 마음 챙김 명상, p331)

 

명상 공부 : 거의 모든 근현대 명상가의 사상을 공부하고,

다양한 명상 수행을 겸했습니다.

 

대학에 입학하여 연구하고자 하는 주제

 

초기 불교의 무아사상과 동아시아 불교의 일심-진아-법계연기 간의 갈등을

명확한 철학적 전개로 해소하고자 합니다.

 

문헌 분석에 의하면 초기 불교에서는 일원론적 성격의 ‘일심’,

진아로서의 ‘묘유’를 부정했습니다.

(김정근의 ‘無我와 아트만(atman)에 관한 硏究’ 참조)

 

그러나 대승기신론~선종에 이르러 동아시아 불교 철학은 ‘브라만과 하나 된 아트만’에 해당하는 '일심-진아'를 전제하는 뉘앙스가 생겨났습니다.

(이 문제는 아직까지 철학적으로 풀리지 않았기에 지금도 다수의 초기불교 신봉자들은 대승비불설을 주장하고 있습니다. 수년 전 서울대와 금강대가 공동으로 이 문제를 논한 바 있으나 토론 내용을 공표하지 않았고, 토론 내용을 조사해보니 논지와 결론이 흐지부지한 상태였습니다.)

 

본인은 화엄 사상에 대한 견성 체험을 통해 동아시아 불교에서 주장하는 법계연기가 무엇인지 명확하게 각인하였는데, 법계연기는 충분히 무아 연기 사상에 입각하여 설명할 수 있다고 보고 있으며, 단순히 무아 연기로 설명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서양 철학에 버금가는 치밀한 논리 전개로 법계연기를 설하고자 합니다. 이를 통해 동아시아 불교가 세계무대에서 빛을 발하게 하고, 본인의 철학도 정립하고자 합니다. 저는 치밀한 서술 방식으로도 불교 철학을 전개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들뢰즈에게서 발견했습니다. 들뢰즈는 무아-연기 사상을 현대 철학, 수학, 과학으로 풀어낸 인물로 평가받고 있으며, 국내 들뢰즈 전문가들이 일관되게 주장하는 것은 불교와 들뢰즈의 만남 혹은 비교 작업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불교는 기본적으로 해체 철학이므로(mark epstein-붓다의 심리학, 각묵-금강경역해) 다양한 해체 철학자들의 사상을 공부하면 논리적 전개를 배우는데 큰 도움이 되리라 생각됩니다. 저의 목표는 무아-연기를 넘어 ‘법계연기’까지를 논리적으로 전개하는 것이며, 들뢰즈의 다양체(multiplicity) 이론은 이미 ‘법계연기’에 가까운 설명으로 보이고 있기에 상당히 흥미롭습니다.

 

저는 이를 위해 대학에서 해체 철학과 포스트모던 철학 및 사상이 등장한 배경과 서양 철학의 주요 흐름을 공부하고자 합니다.

 

동양철학은 전반적으로 서양 철학에 비해 ‘주장’ 위주이며 ‘근거’가 부족합니다.

본인은 ‘종교적 전제’를 거부하고 논리적 전개를 명확히 하는 것을 추구하며

(인지 과학과 불교 철학의 학제적 연구 등)

불교의 도그마에 갇히지 않기 위해 이를 '명상 철학‘이라는 장르로 개척하려 합니다.

이런 시도를 한 인물로 켄 윌버가 있는데,

그의 사상은 방대한 반면 학문적 엄밀함이 허술합니다.

본인은 학문적 엄밀함을 중시하며 보다 국소한 주제를 논하고자 합니다.

 

[교육제도-대입제도에 대한 견해, 여러분들께 추천서를 구하는 이유]

 

"교육은 학습을 통한 개개인의 자아실현을 도와주는데 궁극적인 목표가 있다."

"저마다 타고난 소질과 끼를 끌어내고, 열정을 갖고 적성에 맞는 꿈을 찾아가도록 이끌어 주는 것이 교육의 기본방향이 되야 한다."

"교육이야 말로 행복공동체를 위한 가장 중요한 토대며 미래를 준비하는 국가정책의 으뜸"

"지나친 경쟁과 입시위주로 변질된 우리의 교육을 바꿔야 한다."

-박근혜 대통령 공약

 

“제가 미국에서 공부할 때 많은 미국 교수님들이 한국 학생들에 대해서 이런 말씀들을 하시더라고요. 한국 학생들이 써보니까 정말 똑똑하더랍니다. 어떤 문제든지 주면 미국의 일류대학을 나온 학생들만큼 문제를 잘 풀어온대요. 근데 차이가 어디서 나나면, 이미 해결 방법이 존재하는 문제가 아니라 해결 방법이 존재하지 않는 문제를 내거나, 아무리 비효율적이라도 다른 방법을 생각해본 적이 있냐 거나, 근본적으로 우리가 이 문제를 왜 풀어야 하는가를 물어보면, 미국에서 교육받은 학생들은 오랫동안 고민해봤던 부분들이기 때문에 거기에 대해서 나름대로 의견을 이야기 한데요. 그러나 한국에서 온 학생들은 거기서 완전히 막힌답니다. 한 번도 생각해볼 기회를 가져보지 못 했기 때문에. 근데 우리가 이제 대학 교육이라든지 여러 가지에서 창의력에 대해서 굉장히 많은 관심을 가지고 고취하고자 노력하는데요. 창의력은 어디서 생기느냐. 남들이 이미 만들어 놓은 문제해결법을 익히는데서 나오지 않고요. 거기선 한계가 있고요. 오히려 그런 것들도 한 번 더 의문을 가지고 자기 나름대로 방법을 고민을 해보고, 근본적인 것도, 어리석은 질문일 수도 있지만 한 번 더 질문해보고 고민해보면 거기서 창의력이 생긴데요. 어쩌면 우리나라에서 창의력이 잘 안 생기는 이유는 이런 교육 때문이 아닌가. 그런 생각을 해봅니다.” -안철수

 

"참 좋다!"

-칸트의 유언

 

"멋진 삶을 살았노라 전해주시오."

-비트겐슈타인의 유언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살다간 사람은 죽을 때 후회가 없습니다. 그러나 현 대입시스템은 학생들이 전체주의적 통념의 노예가 되도록, 자신 내면의 열정을 죽이도록, 대기업의 노예가 되도록 강압하고 있습니다.

 

분야를 막론하고, 성공한 사람들은 자신 내면의 열정을 끌어내고, 자신만의 관점으로 세상을 보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현 대입제도는 이를 억압하고 있기에, 교육 제도를 강하게 비판하는 지성인이 많습니다. 저는 내면의 열정과 관점을 따라 스스로 탐구하고 문제의 근본부터 고민해보는 주도적-성찰적-창의적 학습을 해왔습니다. 이 학습의 내공으로  생산적 연구를 할 수 있는 가닥이 잡혔으며, 이를 위해 대입을 원합니다.

 

저는 획일화된 파시즘적 대입제도가 아닌,

창의 전형의 씨앗이라 할 수 있는 ‘입학사정관제’로 응시하고자 하며,

이에 필요한 추천서를 구하고 있습니다.

(1.추천서 없이는 응시가 불가합니다.

2.저의 가족만 아니라면 누구든지 작성해주실 수 있습니다.)

 

-추천서를 요청하는 이유 : 제가 고등학생이던 시절에는 입학사정관제가 없었습니다. 완벽히 획일화 된 철혈 공산 입시 제도만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드디어 '문제 푸는 기계'에 질려버린 대학 교수들의 압력으로 ‘입학사정관제’라는 창의 전형의 씨앗이 움트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잔혹하게도 이 제도는 처참한 부조리를 지니고 있었습니다.

 

입학사정관제에 응하려면 ‘추천서’가 필수입니다. 이 ‘추천서 제도’의 기원은 차별입니다. 미국 정부가 유대인이 명문대에 합격하는 비율을 떨어뜨리기 위해 고안한 것이 추천서 제도입니다.(현재의 미국 입시제도에서는 가장 중요하지 않은 마지막 고려사항) 이것이 한국에 수입되자 또다시 비열한 차별적 도구로 전락하고 말았습니다. 고교생이 아닌 경우 추천서를 구하기가 하늘의 별따기지만 고교생은 추천서를 구할 필요도 없습니다. 담임교사가 알아서 잘 작성해줍니다. 추천서를 옵션으로 구비하는 제도라면 아무런 문제가 없겠으나 현행 제도는 추천서가 없으면 다른 것은 살피지도 않고 응시불가입니다. 이는 고교생이 아닌 사람의 응시를 곤란하게 만드는 제도이며, 고교생이라 해도 추천서는 의미가 없습니다. 추천서가 학생을 평가하는데 어떤 의미가 있습니까? 추천서를 엉망으로 제출할 담임교사가 어디 있겠습니까? 추천서를 ‘잘’ 써주지 않을 교사가 어디 있겠습니까? 명목상 추천서는 ‘학생을 오래 지켜본 사람의 조언을 듣고자 함’이겠으나, 실질적으로는 ‘현역 고교생이 아닌 사람을 입학사정관제에 응시하기 힘들게 만들기 위한 거름망’이라는 난센스만을 수행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현역 고교생이 아닌 사람의 접근을 가로막는 대입제도는 ‘20세 전후의 학생들이 대기업 취직을 위한 하나의 자격증으로 대학 간판을 선택하게 만들고 이것에 응하지 않은 사람에게는 대입 기회를 박탈해버리는 직선적인 근대 사회’의 표상입니다. 그토록 평생교육과 다원화 교육을 부르짖지만, 정작 입시 제도는 지극히 근대적인 형식을 띠며 시대의 요구를 만족시키지 못 하고 있습니다. 자기표현 욕구가 강한 주도적-자발적-창의적 학생은 내면의 열정을 거세하고 순종적인 노예가 되어야 좋은 대학에 입학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대학의 순기능을 생각한다면 어느 시대든 ‘참된 학자적 자질’이 있는 사람을 선발하는 것이 대학의 의무입니다. 그렇다면 대학은 고교생만을 선호할 이유가 전혀 없습니다.

 

이런 부조리함에도 제가 입학사정관제 전형의 입시 제도를 고수하는 이유는 인생을 허비하고 싶지 않기 때문입니다. 제가 선택할 수 있는 대입 전형은 추천서-입학사정관제 전형과 수능 전형이 있는데, 내면의 열정이 있는 사람에게 수능이나 내신 전형은 인생을 허비하는 길입니다. 지금 일제강점기로 돌아가서 강제 징용이 시작된다고 한다면, 많은 이들은 그것이 인생을 허비하는 일이라고 생각할 것이고 누군가는 반역을 일으킬 것입니다. 그리고 반역하는 사람은 주류 세력으로부터 탄압을 받을 것입니다. 제가 주장하는 ‘맞춤형 대입 제도’는 공장식 학업 제도에 반발하는 독립 운동이며 머지않은 미래에는 누구나 이 뜻에 공감할 것입니다. 교육계의 세계적인 석학들도 이미 이런 주장을 하고 있습니다. 100년 후에는 누구나 제가 하는 말을 공감할 것이나, 지금도 누군가는 제 말을 이해해 주리라 기대하며 글을 올립니다.

 

-저의 교육철학은 <부의 미래>의 엘빈 토플러, TED에서 조회수 1위를 기록한 ‘학교가 창의력을 죽인다.’의 강연자, '켄 로빈슨', 맞춤형 교육과 영성 교육의 발도르프 교육과 크리슈나무르티 교육, 다중지능의 하워드 가드너와 일치합니다.(근거는 全文 참조) 특이점은 저는 ‘대입 제도’를 중점으로 이야기 하고자 한다는 점입니다. 공교육 제도의 전반이 바뀌려면 필연적으로 시간이 오래 걸립니다. 그러나 대입제도는 즉각적으로 개선할 수 있으며 저에게 당면한 문제입니다. 대학이 ‘주도적 인재’를 뽑는 기준을 마련한다면 창의적인 학생들도 마음 놓고 공교육의 폭정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이렇게 되면 공교육은 발 빠른 변화를 감행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순수 철학이 저의 본분임에도 부조리한 대입제도 때문에 <교육 철학>까지 논하게 되었습니다. '개인의 해방'이 모든 주제를 관통합니다. <교육 철학> 파트는 획일화된 강압이 아닌 개인의 자질과 열정이 가리키는 원하는 공부를 할 수 있는 환경을 그린 것입니다. 누군가는 공교육에서 가르치는 모든 과목이 다 피가 되고 살이 되는 것이니 암기해 마땅하다고 주장할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필요와 불필요를 누가 결정합니까? 그것이 무의미한지 아닌지는 개개인의 학생이 결정하는 것입니다. 무의미와 유의미는 타인이 아닌 자신에게 적용되는 기준이기 때문입니다. 누군가에게는 유의미한 학문이 누군가에게는 무의미할 수도 있습니다. 권력자에게 가치 있어 보이는 것을 학생들의 머릿속에 쑤셔 넣으려는 태도는 '죽은 시인의 사회'에 나오는 보수적인 교사들을 연상케 합니다. 저는 개인의 역량을 짓밟고 전체주의적 합리성이라는 깡통 안에 개인을 쑤셔 넣으려는 파시즘적 대입제도에 반기를 듭니다. <명상 철학>파트는 개인에게 내재된 전체 우주와의 관계를 밝혀, 개인의 존엄을 밝히려는 것에 의의가 있습니다. 부디 개인이 자신의 존엄을 깨닫고 자유로워지는 시대, 역량을 마음껏 꽃피울 수 있는 시대가 오길 바랍니다.

 

“우리 사회가 창의적이고 상상력이 풍부한 사회로 진입하려면 저 높은 곳에 자리 잡고 앉아 권력자 행세를 하고 있는 '바람직함'이나 '해야 함' 혹은 '좋음' 대신에 자기가 바라는 내적 충동, 즉 욕망에서 출발해야 합니다. 바람직한 것보다는 바라는 것을 하는 사람으로 채워지고, 해야 하는 것보다는 하고 싶은 것을 하는 사람으로 채워지고, 좋은 일을 하는 사람보다는 좋아하는 일을 하는 사람으로 채워질 때 우리 사회는 건강해집니다. 상상력과 창의성이 샘솟게 됩니다.” -최진석(서강대 철학과 학과장)

 

-현대 사회는 잘 배우는 학생보다는 잘 만드는 학생이 필요한 시대입니다. 좌뇌적인 시험에지나치게 편중해서는 안 됩니다. 우뇌적 시험의 비중을 늘려야 합니다.

 

-단순히 학생이 지닌 비전 보고 학생을 선발한다면 이를 악용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학생의 비전이 얼마나 전문성 있고 원대한가를 살피는 한편, 면접을 통해 학생이 스스로 탐구한 분야에 얼만큼의 학식이 있는지 견줘보는 작업도 필요할 것입니다. 본인의 경우는 근현대명상, 불교철학, 도가철학이 전공에 해당하며 이를 시험 치르기 위해 구술면접을 치르든 서류 시험을 치르든 뭐든 환영합니다.

 

-대학은 ‘창의적인 인재’가 학문을 연구하기에 적합한 공간을 지니고 있습니다. 대학은 ‘좋은 음식’을 가지고 있습니다. 제가 저항하는 것은 창의적인 인재를 거부하는 ‘전체주의적인 대입제도’입니다. 대학이 진정 21세기를 선도할 창의적 인재를 선발하고자 한다면 창의적 인재를 수용할 수 있는 탄력이 필요합니다. 제가 진학하고자 하는 ‘철학과’를 예로 들어보겠습니다. ‘철학과’가 원하는 인재는 어떤 특성을 지닌 사람인가요? 가장 중요한 척도는 능동적이고 반성적인 자세로 스스로 철학할 줄 아는가가 아닐까요? 그렇다면 철학적-반성적 사고와 무관한 ‘학교생활기록부’ 따위가 아니라 ‘진지한 성찰이 담긴 철학 에세이’로 학생을 평가해야 하지 않을까요? 이 에세이 안에는 이미 수능-내신-논술로 평가할 수 있는 비판 능력, 추론 능력 등이 내재되어 있습니다.

 

-전공분야에 대한 내공, 명확하고 원대한 연구 목표까지 지닌 인재를 무시하고 획일화된 깡통 안에 담긴 양산품만을 받겠다는 태도는 형식주의와 관료주의의 절정이 아닐까요? 제가 이 글을 쓰는 취지는 제도를 개선하자는 무거운 주제가 주안점이 아니라, 본인에게 입학사정관제에 응시하기 위한 추천서를 한 장 써달라는 가벼운 문제가 1차적 목적입니다. 교수 같은 직함이 없는 분들은 자신이 써줄 위치가 아니라며 방관하시고 교수님들은 자신은 그런 짓이나 할 시간 없다며 방관합니다. 그래서 저는 추천서 제도 자체에 문제가 있다는 주장을 하는 것이며, 불합리한 제도에 의한 희생으로 이 글을 올립니다.

 

[연구 주제]

 

-인문학 논문의 과반수는 기존 문헌을 비교하거나 분석하는 수준입니다. 그러나 저는 혁신적, 생산적인 논문을 쓸 자세를 갖추고 있습니다. 초기불교의 철저한 무아사상을 훼손하지 않고 법계연기를 현대적으로 전개하고자 하며, 해체철학, 심층종교, 치유심리학, 인지과학을 융합 하여 명상 철학이라는 장르를 개척하겠다는 분명한 주제를 지니고 있습니다.(인지 과학과 명상의 융합 사례로는 오온五蘊에 대한 과학적 분석, 마음 챙김과 신경가소성에 대한 연구 등이 있습니다.)

 

-불교에는 형이상학적 전제가 만연해있으나, 저는 형이상학적 전제가 없는 철학을 추구합니다. 지금부터 이런 관점에서 초기불교와 동아시아 불교를 비판하고자 하며, 비판의 대상은 학계의 정설이 아닌 일반적으로 만연해있는 생각입니다. 초기 불교 경전은 세상과 신체를 염오하라는 어휘들로 염세적 전제를 풍기고 있고, 대승불교는 아트만-기복신앙-힌두교 세계관의 어휘로 형이상학적 전제를 풍기고 있습니다. 이에 대한 반론으로는 초기 불교에서 세상과 신체를 부정한 것은 마음공부에 관심을 가지게 하기 위한 방편이라는 의견, 대승에서 말하는 일심-진아는 공사상을 다르게 표현한 것이라는 의견이 있습니다. 그러나 맥락적-어휘적으로 위에 언급한 생각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하다는 문제가 있고, 실제로 그렇게 가르치는 분들도 많습니다.

 

'일체개고'를 현실 긍정적으로 해석하면, 존재 자체에 고의 성질이 있는 것이 아니라 무상한 현상을 붙잡으려는 마음에 고가 있다고 해석할 수 있지만, 초기 경전에 근거하여 세상 자체가 고통이니 염오해야 한다고 설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ex : "석가모니 부처님도 몸이 살아있는 동안에는 '열반'을 대상으로 하는 '도-과의 정신상태'나 정신이 발생하지 않는 '멸진정 상태'에 있을 때만 <괴로움에서 벗어난 상태>입니다. 그 외의 일상생활을 할 때는 석가모니 부처님도 '인간으로 태어난 업보'인 '느낌'이 발생하기 때문에 '일체개고'가 맞습니다." -고열진) 또한 이 세상은 고통이니, 세상에 태어난 것이 고통이요, 다시는 태어나지 않는 것이 수행의 목적이라는 문헌이 있으며 초기 불교 수행법 중에는 세상을 더럽게 보기, 시체관, 부정관 등이 있습니다. 불자들은 방편으로 한 소리라며, 초기 불교가 염세적이라는 의견을 받아들이지 않지만, 서양 철학자들은 니체, 들뢰즈의 철학과 불교의 가장 큰 차이가 세상을 고통으로 보느냐 긍정으로 보느냐의 차이라고 지적하곤 합니다.(그러나 동아시아 불교는 깨닫고 나면 세상이 부처라고 하므로 이런 지적에 비판할 여지가 많습니다.)

 

이런 점에서 초기 불교의 교리는 하나의 ‘염세적 전제’가 될 소지가 있으며, 이는 현대인들의 사상과 맞지 않습니다. 그래서 서양 불교-현대 불교에서는 초기 불교의 어휘를 보다 현실 긍정적으로 해석합니다.

 

제행무상 : 덧없다 -> 모든 것은 변한다.

제법무아 : 내가 없다 -> 생각, 감정, 느낌이 '나'라는 동일시를 멈춤

일체개고 : 모든 것은 고통이다 -> 삶의 근본적 불만족을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


이는 초기 불교 교리를 왜곡하지 않으면서도 세상을 지나치게 염세적이지 않게, 있는 그대로 보게 해주는 해석입니다. 이런 해석이 서양 불교는 물론, 현대 한국 불교의 주류적 해석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염세관을 극복한다고 해도 초기 불교 자체에 내재한 윤회, 내세, 천국, 지옥 등의 형이상학적, 종교적 세계관은 종교의 울타리 안에서는 부정하기 힘들며, 이런 형이상학적 세계관에 대한 믿음이 바로 종교적 권위, 형이상학적 교설에 대한 맹종입니다. 이것을 탈피한 사례로 서양 불교-현대 불교에서 한발 더 종교적 전제를 버린 MBSR이 있습니다. MBSR은 불교 자체에 내재한 종교적 색체, 형이상학적 권위를 완전히 버렸습니다. 초기 불교와 대승 불교에 공통적으로 내재한 문제는 문헌이나 형이상학적 전제에 의존한다는 것인데, MBSR은 이를 거부하고 경험적 사실을 중시한다는 것에 고유의 가치가 있습니다. 명상이나 수행은 일견 사념을 초월한 경지인 듯 보이나, 종교적 테두리, 문화적 테두리 안에서의 명상을 총체적으로 조사해보면 각 사상의 영향을 지대하게 받은 사념의 결과물에 불과합니다.(근거자료 : http://prezi.com/4isq0znfytnb/12/#_=_) 이에 반해 MBSR은 문화, 종교, 세계관이 명상에 끼치는 영향을 초월했다는 것에 고유한 가치가 있는 것입니다.

 

저는 이런 태도를 매우 긍정적으로 보고 있으며 가장 붓다에 충실한 태도라고 보고 있습니다.(붓다는 종교적 권위와 형이상학적 전제를 부정한 인물) 이제 이러한 합리적 입장과 동아시아 불교의 차이를 살펴보겠습니다.

 

前조계종 종정 성철스님의 진아-물아일체 사상(‘자기를 바로 봅시다’ 법어 등), 現조계종 종정 진제스님의 참나를 깨달으면 내세에 훌륭한 육체를 선택할 수 있다는 주장(http://www.youtube.com/watch?v=ZngCaBzywUk 3:30 부터~), 한마음 선원의 주인공-범아일여 사상을 보고 이것이 아트만적 사상을 전개한 것이 아니냐는 합리적인 비판을 제시하면, ‘내용’이 아트만 사상적임에도 불구하고 이에 대한 철학적 반론은 없고, ‘이름’상 아트만과 공사상은 다르다고 언어 순환적 주장을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또는 베단타 철학을 관념론이나 유아론 수준으로 얕잡아 보는 경우도 있는데, 베단타 철학이 무엇인지 가장 잘 나타내는 것은 마하리쉬, 마하라지 같은 인도 명상가의 말씀입니다. 이 분들의 사상을 보면 동아시아 불교의 고승대덕만큼이나 상(相)을 부정합니다.(neti neti) 베단타에서 말하는 브라만과 하나 된 아트만은 동아시아 불교에서 흔히 말하는 '나'라고 할 것이 없음에도 송장 끌고 다니는 '묘유', 동체대비가 된 주인공을 뜻합니다. 초기 불교는 이 주인공을 부정했으므로 동아시아 불교가 당위성을 위한 타당한 논지를 펼치려거든 이렇게 주장해야 합니다. '초기불교가 진리의 기준이 될 수는 없다.' 현재로서는 이런 변명이, 동아시아 불교가 초기불교의 철저한 무아 사상에 베단타 사상을 결합했다는 객관적 사실을 회피하지 않으면서도 위축되지 않을 수 있는 유일한 변명입니다.(저는 이런 변명 없이도 당위성을 논할 수 있게끔 ‘무아’와 ‘법계연기’간의 관계를 밝히고자 합니다.)

 

과반수의 한국 스님들은 이러한 합리적 의문을 제시하면, '모래를 찌어 밥을 만들지 말라'라며 철학적 사유, 이성적 사유 자체를 부정합니다. 근본주의 기독교에서 이성적 사유를 거부하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종교적인 불교에서는 어쩔 수 없더라도 불교철학에 있어서만큼은 비이성적 전제를 의심해야 하지 않을까요?(의외로 이런 생각에 반대하시는 교수님도 계시더군요.) 저는 철학과 종교의 큰 차이가 철학은 기본 전제를 맹신하지 않고 끊임없이 의심한다는 점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주석적 탐구는 경론 내용의 탐구 기반을 제공해 주는 장점을 지닌다. 그러나 선행하는 언어와 그에 대한 해석학적 전통의 권위에 과다하게 의존하는 ‘닫힌 해석학’에 머물 위험이 있다. 기존의 해석학적 권위에 수동적으로 의존하는 불교 탐구는 진리 탐구의 정도(正道)도 아닐뿐더러 근원적으로 ‘비불교적’이다. 불교를 ‘불교적’으로 탐구하려면, 전통 언어와 관점을 경청하면서도 지배받지 않는 ‘열린 해석학적 탐구’가 필요하다. 이 요구에 응하려는 방법론적 선택을 ‘철학적 불교학’이라 부를 수 있을 것이다. 무릇 모든 철학적 성찰의 생명력은 ‘일체 통념과 거리 두고 탐구하기’에 있으며, 이는 붓다가 권면하신 진리 탐구의 태도이기도 하다는 점에서 ‘불교적’이다. 불교학의 발전을 위해서는, 그 어떤 해석학적 권위나 전제도 괄호 치고 탐구해 보려는 태도를 축으로 삼는 철학적 방법론이 그 비중을 더욱 확대해 갈 필요가 있다.“ -박태원(울산대 철학과 교수)

(붓다가 인도에서 배격당한 이유는 정통이라고 해서 그것이 꼭 올바를 수는 없다는 합리적 사고방식을 지녔기 때문입니다. 붓다는 모든 권위와 모든 형이상학적 전제를 부정했습니다.)

 

제가 추구하는 철학은 전거나 전제를 ‘권위’로 두지 않고 ‘개인’이 ‘열린 탐구’를 하는 것입니다. 붓다는 자신에 대한 존경심으로 자신의 말을 믿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으며 스스로 자증(自證)하라고 당부했습니다. 저는 이 말씀을 존중하며, 이 말씀을 존중한다면 부정해야할 문헌들도 있다는 논지입니다. 붓다는 아트만에 대한 부정(아트만에는 브라만과 하나된 진아라는 뜻과 덧없는 ego라는 뜻이 모두 있습니다.), 증명할 수 없는 사상에 대한 일관된 부정으로 과학적-객관적 합리성을 추구했습니다. 오늘날 붓다의 말씀이라고 전해지는 문헌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문헌의 주장에 만약 과학적 합리성, 혹은 우리가 직접 경험할 수 있는 현실성이 없다면 그 문헌은 과감히 부정하는 것이 ‘붓다적 태도’이며(이를테면 외도들은 진아라는 형이상학적 관념, 사후세계에 대한 논설을 중시했으나, 붓다는 오온이라는 경험적 용어를 사용하고 경험을 벗어난 사실에는 침묵으로 일관했습니다.) 이것이 제가 추구하는 ‘엄밀한 철학’입니다. ‘무전제에서 시작하는 실증적 수행’, ‘전제 없이 전개하는 논리적 철학’을 추구합니다.

 

-철학적 자세, 과학적 자세로 명상 철학이라는 장르를 개척하고자 합니다. 이런 요구는 갈수록 증가할 것입니다. 이는 과학이 지배하는 세계이기에 중요하기도 하지만, 올바른 수행을 위해서도 중요합니다. 예를 들자면 '왜 호흡을 알아차리라고 하는 것인가?'라는 물음을 깊게 천착해야 빗나가지 않은 명상을 할 수 있습니다. 호흡을 보라는 의미는 매순간 갱신되는 호흡을 알아차리는 과정에서 '나'라고 할 것이 없다는 것을 알아차리는 것, 알아차림 능력을 개발하는 것에 있습니다. 이런 이해가 없으면 자아가 호흡을 하게 되어, 호흡 수행을 한답시고 소주천을 돌린다느니, 기묘한 신체 부위로 호흡을 한다느니 하는 망상증이 발생합니다.

 

무아와 비움이라는 수행의 근본 주제도 '주체성을 놓기'라는 명제로 모든 것을 뭉뚱그려 이해하면 수동적 삶을 지향하게 될 수밖에 없습니다. 능동적인 삶, 창조적인 삶을 부정하게 됩니다.(능동적 삶은 필연적으로 세상과 마찰을 빚곤 합니다.) 무아라는 단어는 현상적 의미가 아니며, 무아가 현상적으로 시사하는 바는 '울타리 없는 관계성', ‘선입견과 통념의 파괴’입니다. 선사들이 파격적인 행동을 하고, 선(禪)을 사랑한 이소룡과 잡스가 기존 사회의 틀을 깨는 파격적인 융합과 주체적 삶을 선보인 것은, 기존 사회가 무아와는 거리가 멀었기 때문입니다.

 

-크리스토퍼 거머 교수에 의하면 영성 탐구법에는 내재적 방법과 초월적 방법이 있는데 불교는 전자고 기독교는 후자인 것으로 소개합니다. MBSR과 서양 불교는 불교를 논할 때  초기 불교의 교리와 수행법만을 논하곤 합니다. 만약 동아시아 불교도 고려를 했다면 불교 수행법이 내재적이기만 한 것은 아니라는 것을 알았을 것입니다. 초기 불교의 위빠사나는 현실을 지각하는 것에 기반한 경험적 수행인 반면, 동아시아 불교에는 현실을 떠난 '초월적' 태도가 산재해 있습니다. 예를 들어 정통 조사선을 표방하는 국내 선원 중에는 자력 수행을 완전히 배제하고 언젠가 돈오돈수하리라는 믿음을 지닌 채 사고를 마비시키는 초월적 설법에만 의존하라고 가르치는 단체가 있습니다. '초월적 설법'이란 "뜰 앞의 잣나무가 부처다. 헤아리지 말고 보아라. 할!" 과 같은 설법을 1시간가량 연속적으로 진행한다는 것을 뜻하며, 타력에만 100% 의존하도록 가르칩니다. 이는 타력신앙-초월적 수행의 정점이라 할 수 있습니다.

-심각하게 타락한 영성, 명상 문화의 실태 : http://blog.naver.com/wholesavior/220044783405

 

-'명상 철학'에서 말하는 명상은 이러한 신비주의적인 명상이 아니라, MBSR 같은 과학적 명상, 명상 심리학을 뜻합니다. 현대에 이르러 명상심리학은 존 카밧진, 크리스토퍼 거머, 로널드 시걸 등에 의해 눈부신 발전을 이뤘으나 명상 철학 분야는 아직 비학문적인 분야로 남아있습니다. 명상 심리학은 동양의 오래된 문헌을 분석하거나 계승한 것이 아니라, 동양의 명상에 서양의 심리학을 유기적으로 융합한 것입니다. 명상철학도 이와 같습니다. 저는 기존의 문헌(경전)을 인용하거나 종교적 전제를 두는 것을 거부하고 철저한 이성 논리와 인지 과학으로 명상 철학을 전개할 것입니다. 이는 기존 불교 학자들이 해온 작업과 차별화 됩니다.

 

-명상 철학의 본보기 : "기억으로서의 과거란 언제나 현재경험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는 순간, '뒤쪽'에 있는 경계는 무너진다. 지금 이 순간 이전에는 아무것도 없다는 점이 명백해진다. 마찬가지로, 예견으로서의 미래가 언제나 현재경험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는 순간, '앞쪽'에 있는 경계도 사라져버린다. 앞뒤로 우리를 짓누르는 듯했던 무게 전체가 순식간에 갑자기, 그리고 완전히 사라져 버린다. 그리고 지금 이 순간은 더 이상 가두어진 순간이 아니라 모든 시간을 채울 만큼 확장된다. 그리하여 '스쳐가는 현재'가 '영원한 현재'로 펼쳐진다. 이것을 기독교 신비가들은 눙크 스탄스(nunc stans)라고 부른다. 눙크 플루엔스, 즉 '스쳐가는 현재'가 눙크 스탄스, 즉 '영원한 현재'로 되돌아간다. 현재는 단지 실재의 한 조각이 아니다. 현재 안에 세상의 모든 시간과 모든 공간과 함께 우주가 존재한다." -켄 윌버 <무경계>

(이 대목이 명상 철학을 잘 나타내는 이유는 논리적 비약이 없으면서도 독자에게 즉각적으로 명상 상태를 체험시키기 때문입니다.)

 

소오강호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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