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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목 : 보수-진보 성서관 비교 & 정경 외경 확정 여부    
  글쓴이 : 미선 날 짜 : 17-06-27 02:03 조회(422)
   트랙백 주소 : http://freeview.org/bbs/tb.php/g001/182 





(*보수 기독교 성서관은 이미 많이 알려져 있기 때문에 간단하게만 언급하였고, 주로 진보 기독교 성서관을 정리해놓았습니다. 가능하면 직접 성경을 찾으면서 함께 비교해보시길 바라겠습니다. ) 


(1) 보수 기독교 성서관

 


1. 계시성 - 성서는 그 자체로써 하나님의 계시다. 성서는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책이기에 성서는 곧 예수님이시다.(요5:39)



 2. 권위성 - 성서는 하나님의 입으로부터 나온 인격적 말씀이니 이것은 성서가 신적기원(神的紀元)을 갖는 권위이다. 즉 성서의 실제저자는 하나님자신이다.



3. 영감성


     a. 성경기자에 관한 영감


      - 기계적 영감설 
     - 유기적 영감설 : 하나님은 인간 기자를 통하여 자신을 계시하고자 할 때에 인간저자의 모든 능력을 최대한 이용하시고 또 그것들에 성령충만함을 입혀서 완벽한 글이 완성되도록 하셨다.



     b. 성서자체에 대한 영감
       -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성경의 인간기자는 모두가 성령의 초자연적 감화를 받아썼기 때문에 모든 글자하나하나에 하나님의 영감이 깃들어있다. (딤후3:16)


완전 축자영감설, 성서무오설  - 성경의 역사는 신화와는 거리가 멀다.  성경은 백퍼센트 사실(벧후1:16)




     c. 영감의 결과
         - 성경의 영원성(요10:34-36)
         - 성경의 신뢰성(시119:160)
         - 성경의 무오성(마5:18)
         - 성경의 권위성(마4:4-10)



 

 

(2) 진보 기독교 성서관  
   

 - '성서란 어떤 책인가'의 문제는 성서를 어떻게 볼 것인가?의 문제와 연결된다고 본다. 왜냐하면 성서를 어떻게 볼 것인가에 따라 성서는 역사서가 될 수도 있고, 과학서가 될 수도 있고, 교리서가 될 수도 있다. 즉 성서에 대한 시각에 의해서 평가가 달라지기 때문에 우리 자신들의 성서를 보는 눈이 참으로 중요하다고 본다.


  성서는 하나님의 구원사건에 대한 이스라엘의 고유의 신앙경험을 인간의 언어로 기록한 책이다. 성서는 분명히 그리스도인의 삶의 척도, 표준이며 하나님의 말씀을 담고 있는 그릇과도 같다. 즉 성서는 하나님의 말씀을 인간의 언어(=그릇)로 기록한 책인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은 진리라고 하지만, 적어도 인간의 언어 및 시대적 한계들로 뒤덮혀 있으며 그런 점에서 충분히 오류와 한계점이 있을 수 있는 부분이다.


  문제는 이 그릇이란 부분도 문자 그 자체적으로 성서화(=우상화)된다는 데에 있다. 우리가 조금만 더 유심히 성서를 살펴본다면 여러가지 이상한 점과 모순들을 발견할 수 있다. 이상한 걸 이상하게 여기지 말라고 한다면 그것은 성서를 올바로 대하는 태도가 아니라고 봐야 하지 않을까..

 


1. 성서에 나온 오류와 모순 투성이들


a. 모세오경에 관한 의심할만한 점들

 

예컨대, 상반된 두 가지 창조이야기(창1~2:4, 창2:4~ 창조순서가 다르다),


시대착오적인 지명들(창14:14, 단이라는 지명은 아브라함시대에는 물론이고 모세시대에도 없는 지명이며, 야곱의 후손인 단 지파들이 살던 곳이 아주 후대에 불려진 지명임) 등등.. 


이외에도 그 사례들을 언급하자면 정말 많다.. 


자세한 성서공부를 하고 싶다면 언능 기독교서점으로 달려가서

「구약성서개론」(대한기독교출판사)을 직접 읽어보고서 비교 요망..!  (*이글 맨밑에 진보 기독교 성서연구 책들 참조. 이 책들은 오늘날 기존 신학대 예컨대 장신대 / 감신대 / 한신대에서 구약학개론에 공동 채택되고 있는 교재임)

 


신약성서의 경우에도 예를 하나만 들자면, 예수탄생 연대의 불일치성을 들 수 있다..


마태복음의 탄생에 따르면 예수는 해롯의 사망 이전에 태어난 걸로 되어 있다.. 하지만 역사적으로 헤롯은 이미 BC 4년경에 죽었다.. 그렇다면 마태복음에 의한 예수탄생은 BC 4년경을 넘을 수 없다..


그런데 누가복음에 따르면 예수탄생은 인구조사 때 태어난 걸로 씌어있다.. 하지만 그 인구조사는 AD 6년의 일이다.. 즉, 10년이나 차이가 나는 것이다..


신약성서를 좀더 폭넓게 공부하시길 바란다면 「함께읽는 신약성서」(한국신학연구소)를 권하고 싶다.. 이 책은 여러 신학대 교수님들과 목사님들의 공동집필로 엮어저 있다..

 


b. 그 외 분명한 성서의 여러 오류들을 알아보고자 한다면 아래의 글들 참조

 ->  http://freeview.org/bbs/tb.php/b001/27




c. 성경의 명백한 성차별적 구절들

-> http://freeview.org/bbs/tb.php/b001/18

 





 

2. 진보가 보는 보수측의 성서관




  - 성서를 영의 눈 또는 믿음의 눈으로 봐야 한다는 말이 있는데, 성서를 볼 때는 어떤 특수한‘안경’같은 것을 끼고 보면은 안된다. '인간 대 성서의 만남'의 만남에 있어서 그 사이에는 어떤 무엇도 끼여서는 안되며 투명하게 정면으로 마주서야 한다. 그렇게 되면 인간은 이성적 존재이기에 당연히 성서에 대한 의문(나쁘게 말하면 의심)을 갖게 된다.


그런데 흔히들 얘기하는 믿음이라는 것을 가지고 성서를 본다면 아무 이상한 점도 발견할 수가 없다. 왜냐하면 성서를 펴기도 전에 이미 성서에 대한 믿음이 전제되어 있기에 거기에는 아무 의문이나 비평이 있을 수 없다.


그것은 우리가 지금까지 나름대로의 성서에 대한 <전이해>를 가지고 성서를 보게 되는데, 이 전이해는 바로 우리들이 다니던 기존교회의 가르침으로부터 형성된 것으로 소위 <주일학교 신학>Sunday School Theology이라고 한다.


  - 보수 기독교는 성서를 성서로 보는 게 아니라 성서를 교리에 대한 시녀로 본다. 예를 들면 우리가 잘 아는 신앙고백(=사도신경)은 기독교교리의 축약이며 핵심적 결론이다.


<교리>dogma의 핵심은‘예수가 우리 죄를 위하여 십자가에서 피를 흘리시고 죽으셨다가 다시 부활하셨는데, 이것을 믿는 사람은 구원받고 천당 갈 것이요, 믿지 않는 자는 지옥에 갈 것이다’라는 것이다. 여기서 문제는 기독교인들이 성서를 읽기도 전에 이미 기독교 교리(=사도신경)를 은연 중에 전제하고서 성서를 읽는다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그것은 성서를 읽은 것이 아니라 내 머리 속에 있는 기독교 교리에 대한 재확인밖에 되지 않는다. 이것이 바로 성서는 교리의 시녀에 불과하다는 뜻이다.      


 


3. 진보적인 성서관


  성서를 열기도 전에 믿는 것이 아니라 성서에 대한 철저하고도 치열한 검증 뒤에 성서를 받아 들여야 한다. 이것은 인간으로서 충분히 가질 수 있는 의문점을 갖고 거리낌없는 솔직함으로 성서를 볼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성서는 열린 책이다. 거기서 키워낸 믿음이야말로 오히려 더욱 값진 신앙이 아닐까? 


  믿음은 인간의 이성을 파괴시키지 않는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그분 자신에 대해 알기를 원한다면 결코 우리 인간의 이성의 희생을 요구하지는 않으실 것이라고 본다. 왜냐하면 인간이 가진 이성 또한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기 때문이다.


  성서는 하나님께서 인간을 향한 구원(해방)사건을 담고 있다. 성서의 내용이 사실이냐 비사실이냐를 따진다는 것은 참으로 무의미하다. 애초에 성서기자는 그것이 사실이냐 비사실이냐에 신학적 관점을 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인간을 향한 구원의 메세지를 선포하는 데에 중점을 둔 것이다.


물론 그것은 이스라엘의 특수한 역사적 상황의 자리에서 나온 체험적인 신앙고백이다. 즉 성서의 문자 그 자체가 하나님 말씀이 아니라 하나님의 구원사건이 바로 성서가 되는 것이다. 그렇기에 성서는 성서를 담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중요한 점은 후자의 성서가 있었기에 전자의 성서에 권위가 있는 것이다.


  이제 성서를 읽을 때 이성에서 도피하지 않고 솔직하게 그 현실과 정면으로 마주서려면 정도의 차이는 있겠으나 분석, 비판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물론 그 비판은 부정이나 비판을 위한 비판이 아니라 확신어린 이해를 위한 성서비판이다.


성서는 사람이 읽고 이해하도록 씌어진 것이다. 이해없는 신앙은 맹목적이며 맹목적인 신앙은 불신앙이다. 즉, 성서를 잘못 대하는 태도 그 자체가 불신앙이며 죄가 되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성서에 대한 철저한 해부작업 곧 인간의 합리적 이성이라는 메스를 들고서 이리 저리 까보며 솔직하게 대해야 할 필요가 있다. 필자가 볼 때 오히려 하나님이 이를 더 원할 것으로 생각한다.


물론 그러다가 신앙인으로서 방황도 할 수 있을 것이지만 그럼에도 그런 과정이 지난 뒤에야 비로소 진정하고도 크신 하나님의 깊은 뜻을 알 수 있으리라 본다.


이제 우리는 성서 안에 있는 오류와 모순들을 은폐하지 않고 정직하게 우리의 의문들을 들고 질문할 때 그 모순과 오류 뒤에 계신 진정한 하나님의 뜻을 발견할 것이라고 본다. 그것은 성서본문이 왜 그렇게 말하고 있는지에 대한 그 시대적 배경과 사회학적인 의미를 밝히는 연구를 필연적으로 거쳐야만 한다는 것이다.


만약에 지금 내가 믿고 있는 것이 확실한 참 진리라면 아무리 비판해도 아무리 까뒤집어도 참진리가 아니겠는가! 이런 확신을 갖고 성서공부에 임한다면 무엇이 두려우랴.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무조건 믿습니다"라는 기도보다 "솔직히 잘 모르겠습니다"라는 기도가 오히려 하나님께서 더 어여삐 보실 것 같다고 생각한다. 성서는 닫힌 자들의 것이 아닌 열린 자들의 것이기에!

 

▷ 월요신학서당 「신약성서는 오늘 우리에게 이렇게 증언한다」

    안병무 「역사와 해석 」참조







(3) 성서의 정경 확정 역사 

- 지금의 성서는 원본에서 번역된 것이 아니다. 원본은 지금 신,구약 통틀어서 남아있는 것이 하나도 없다.

 

1. 구약성서 정경 과정

구약성서의 원래의 히브리어 이름은 '토라(Torah), 네비임(Nebiim), 케투빔(Kethubim)'이며, 번역하면 「율법, 예언서 그리고 성문서집」이다.

경전화된 연대는 모세오경이 B.C 400년경에, 예언서가 B.C 200년경에, 성문서집이 A.D 100년경(또는 A.D 90년경)의 유대 랍비들의 얌니아 회의에서 최종적으로 정경으로 인준 받았다.

오늘날의 개신교는 이 얌니아 회의를 존중하여 이때 인정받은 39권의 구약성서만을 오늘날까지 정경으로 채택하고 있다.

* 그러나 한가지 알아야 할 점은,

종교개혁 이전의 약 1500년 간은 개신교가 말하는 외경도 정경으로서 사용했다는 점이다. 그렇기에 오늘날의 카톨릭은 외경이라고 하지 않고 제2정경이라고 하여 구약성서에 포함시키고 있다. 원래의 구약성서는 히브리어와 약간의 아람어로 씌어져 있다.
 

2. 신약성서 정경 과정

초대 그리스도교인들은 이미 구약성서를 정경으로 하고 있었다. 하지만 거기에 또 다른 책들을 지어서 포함시키는 것은 생각하지 않았다. 그것은 초대기독교의 분위기가 예수의 재림을 대망한 종말론적 신앙이 지배적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다가 예수의 재림이 지연되자 예수사건의 목격자들이 예수의 사건을 문서화할 필요성을 느꼈으며 또한 당시에는 바울을 비롯한 초대기독교의 신앙의 글들이 여러 교회에 영향을 끼쳤기에 구약성서에다가 신약성서를 새롭게 정경화했던 것이다.

그러나 처음에는 신약성서의 정경화 작업이 너무나도 많은 책들로 인해 혼란스러웠으나, A.D 367년경의 아타나시우스의 서신에 나온 정경목록을 지지하여 27권의 신약성서를 확정지었다.

그 후 제롬의 라틴어 번역이 이러한 정경목록을 따라서 서방교회에 유포하여 오늘날에 신약성서가 우리 손에 들어 온 것이다. 원래의 신약성서는 '코이네'라는 헬라어로 씌여져 있다.



3. 제2경전 혹은 외경 (위키백과 참조)


  a. 외경이란? 

외경(外經, Apocrypha)은 기독교의 교파에 따라서 조금씩 의미를 달리쓰는 말이다.

먼저 로마 가톨릭교회와 동방 정교회에서는 경전성이 의심이 되어 정경에서 제외된 문헌을 의미하는 개념이며, 논자에 따라서 위경(僞經)과 동일한 뜻으로 옮긴다.

개신교에서는 위경(僞經)을 가리킨다는 점에서 보편적인 의미는 위와 상통하지만, 그 뿐만 아니라 로마 가톨릭교회 등에서 정경으로 보는 제2 경전을 포함하여 일컫는 점에서 관점의 차이가 있다.


  b. 제2경전 혹은 외경의 역사와 종류

이집트에 거주하던 유대인들은 코이네 그리스어로 당시 유대교 경전인 구약 성서를 번역하여 70인역 성서를 편찬했는데, 이때 편찬된 문서중에서 구약 성경의 오경 전통에 충실하지 않고, 히브리어 원본이 없다고 여겨지는 문서들을 바리사이파 랍비들이 히브리어 타나크를 결정하면서 외경(세파림 하 히조님, לחבדיל מספרי החיצונים)으로 구분하였다. 이는 가톨릭/정교회에서 제2경전이라고도 한다.

외경의 구분에서 구약성경은 유대교의 오경에 따른 전승 사상을 유지하고 보존하기 위해 순수한 오경 사상에 따른 경전과 헬라 사상이나 다른 사상이 많이 포함된 경전을 구분하여 구약성경이 정경을 결정했던 바리새파 유대교의 얌니야 회의가 있었고,

신약성경 정경 결정은 카르타고 공의회에서 정경(正經)으로 인정받지는 못했던 히브리서(히브리인들에게 보낸 편지)와 유다서(유다의 편지)에는 외경이 인용된 부분이 있다는 점에서 성서 이외의 경전이 아닌 외경 성서로 보는 견해도 있었다.

공동번역 성서와 가톨릭 성경에는 가톨릭과 정교회와 오리엔트 정교회에선 제2 경전이라고 해석하고 개신교에선 외경이라고 해석하는 책이 7권 실려 있으며, 그 목록은 다음과 같다.

마카베오기 상권
마카베오기 하권
지혜서
집회서
유딧기
바룩서

토빗기
에스더 (에스테르기) 10장 4절~16장
다니엘 3장 24절~90절[2], 13,14장


 c. 제2경전 혹은 외경의 수용여부 - 순서는 경전으로 인정하는 범위가 넓음에서 좁음 순이다.

  경전 인정 분류별 

* 오리엔트 정교회 = 유대교의 정경+ 제 2 경전 + 알파 + 베타.
- 오리엔트 정교회는 동방 정교회와 거의 유사한 정경 목록을 사용하지만, 지역교회에 따라서 일부 경전이 추가된다. 여기에는 시리아 정교회, 에티오피아 테와히도 정교회에서 정경으로 인정하는 에스드라기 2권과, 에티오피아 테와히도 정교회에서 인정하는 에녹서와 희년서와 메카비안 1, 2, 3서와 바룩 4서가 있다.

* 동방 정교회 = 유대교의 정경+ 제 2 경전 + 알파.
- 지역교회의 권한이 강한 동방 정교회는, 독립교회나 자치독립교회에 따라서 다른 정경 목록을 사용 중이다. 로마 가톨릭에서 제2 경전으로 취급하는 경전을 인정하지만, 경독서라고 하여 교리 도출을 제한하는 차등성을 둔다. 추가로 에스드라기 1권, 마카베오기 3권, 므낫세의 기도서, 시편의 일부를 정경으로 해석하며 지역교회마다 추가로 인정하는 경우가 있다. (조지아 정교회에는 에스드라기 2권과 마카베오기 4권을 정경으로 본다.)

* 로마 가톨릭교회 = 유대교의 정경+ 제 2 경전.
- 로마 가톨릭에서는 382년 로마 주교회의 및 397년 카르타고 공의회의 결정을 존중하여 정경(제2 경전)으로 취급하고 있다.

* 성공회 = 유대교의 정경+ 제 2 경전
- 대부분의 개신교보다 전향적인 입장을 가진 성공회는 제 2경전을 준정경으로 인정한다.

* 개신교회 = 유대교의 정경만 인정.
- 대부분의 개신교에서는 로마 가톨릭교회가 외경에서만 나타나는 교리인 연옥 교리등을 전면에 내세운 사실로 인해 외경에 제한적인 입장을 취하고 있다. 개신교는 유대교처럼 구약 39권만을 정경으로 인정하고, 신앙생활에서 외경을 굳이 독서할 필요는 없다고 보며, 대체로 성경연구자들이 연구나 심화학습에 사용하는 정도의 참고서적 정도로 취급한다. 개신교 중 일부 보수적인 교단의 경우 위경처럼 연구할 가치도 없는 존재로 여기기도 한다.

* 유대교
- 유대교에서는 예루살렘 파괴 이후 기존의 유대종교 유파들과 묵시적 운동들이 잦아든 기원후 90년 얌니야 회의에서 바리사이파를 중심으로 구약성서로 전승된 문헌 중에 오경의 정신을 따르고 헬레니즘의 영향을 받지 않은 문헌만을 정경으로 규정하였다. 이것이 39권의 구약성서의 정경화이다. 여기에서 제외된 외경들은 히브리어 원본이 없다는 점과 헬라주의를 담고 있음을 들어서 외경으로 구분하였다.


신약의 외경

신약시대의 외경도 있는데, 복음서만 50개가 넘을 정도로 많은 문서들이 신약외경에 속한다.

대부분의 기독교 교파들은 카르타고 공의회에서 정경으로 채택된 4권의 복음서만을 정경으로 인정하고 있다.




* 성서비평이 반영된 신ㆍ구약성경 개론에 대한 참고도서

1. E. 젤린ㆍG. 포러, 김이곤ㆍ문희석ㆍ민영진 옮김, 『구약성서개론』(대한기독교서회)
2. 김정준ㆍ김찬국ㆍ박대선 지음, 『구약성서개론』(대한기독교서회)
3. 김영진 외 지음, 『구약성서개론-한국인을 위한 최신연구』(대한기독교서회)

4. 안병무ㆍ김철손ㆍ박창환 지음, 『신약성서개론』(대한기독교서회)
5. 노만 페린ㆍ데니스 C. 덜링, 박익수 옮김, 『새로운 신약성서개론』(한국신학연구소)
6. 김창락 외 지음, 『신약성서개론-한국인을 위한 최신연구』(대한기독교서회)

7. 노만 K. 갓월드 지음, 김상기 옮김, 『히브리 성서 1, 2』(한국신학연구소)
8. 월요신학서당 편, 『새롭게 열리는 구약성서의 세계』(한국신학연구소)
9. 월요신학서당 편, 『신약성서는 오늘 우리에게 이렇게 증언한다』(한국신학연구소)

10. 성서교재위원회, 『함께 읽는 구약성서』(한국신학연구소)
11. 성서교재위원회, 『함께 읽는 신약성서』(한국신학연구소)
12. 에드가 크렌츠 지음, 김상기 옮김, 『역사적 비평 방법』(한국신학연구소)

( * 1, 2, 4는 감신/장신/한신대 신학교가 공동으로 썼던 교재이기도 하다. 반면에 고신/총신/성결신 등등 보수측 신학대에선 성서비평을 위험한 것으로 보기 때문에 위와 같은 서적들은 배움의 과정 자체에서부터 이미 배제되거나 언급되더라도 매우 피상적으로 논의되는 실정이다. 그만큼 서로가 다른 것이다.

3번의 경우 구약의 최신연구라고 제목을 써 놓았지만 앞의 1번과 비교하면 그렇게 큰 차이가 나진 않는다. 신약개론서로는 특히 5번이 추천할 만하다. 7번은 매우 전문적인 구약성서 연구서 중의 하나로 탁월한 사회학적ㆍ문학적 비평 연구를 보여주고 있다. 8, 9번은 비교적 쉽게 쓰여져서 부담없이 볼 수 있는 진보진영의 얇은 책이며, 10, 11번의 경우는 다소 민중신학적 해석이 가미되어 있는 성서공부 교재이다. 물론 성서비평의 성과도 함께 반영되어 있다.

12번은 성서를 비판하는 <역사적 비평 방법>이란 어떤 것이며, 역사적으로 어떻게 전개되어 왔으며, 그것의 방법과 목적, 그리고 이에 대한 신학적 논의들을 보여주는 연구서이다. 이외에도 언급할 서적들은 많지만 일반적인 것만 몇 가지 추려보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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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6 밑으로부터의 세계화/지역화와 그리스도교 교회의 대응 (김영철) 미선이 10166 04-19
55 다원사회 속에서의 기독교 (정진홍) 미선이 6507 04-17
54 영성의 평가와 측정에 대한 연구 자료들 미선이 5616 03-31
53 [자료강추!] 인도철학사 (길희성) 미선이 6429 03-02
52 기업적 세계화의 뿌리와 그 열매: 신식민주의와 지구촌의 황폐화, 세계인의 빈곤화(김정숙) (1) 미선이 6738 02-05
51 [강추!] 부자들의 성녀, 마더 데레사 (채만수) (3) 미선이 13913 04-22
50 존 캅의 그리스도 중심적 다원주의 (유정원) 정강길 7393 05-20
49 진정한 유일신론은 다원론 (김경재, 오강남) 정강길 8758 04-28
48 떼이야르 드 샤르댕의 『인간현상』을 읽고서... 정강길 9810 04-27
47 이안 바버가 보는 과학과 종교 간의 관계 유형 (김흡영) 정강길 9658 07-16
46 세계화 시대, 남미해방신학의 유산 (장윤재) 정강길 7500 01-07
45 신학을 어떻게 할 것인가? (김경재) 관리자 6815 11-12
44 竹齋의 현재적 그리스도론 (김경재) 정강길 6784 05-06
43 경험은 믿을만하며, 완전한 지식을 제공하는가 (황희숙) (1) 미선이 6619 01-07
42 새로운 형태의 기독교, '갈릴리 복음'으로 돌아가야 산다! (김경재 교수) 미선이 6206 01-06
41 혼란의 시대: 종교, 무엇을 할 것인가? (정진홍 교수) (1) 관리자 6800 12-15
40 진리란 무엇이며, 내가 믿는 것이 반드시 진리인가 (한전숙) (1) 미선이 6856 12-01
39 “복음주의, 알고 보면 기득권주의” (1) 미선이 5681 11-28
38 기존 기독교인이 동성애혐오증을 가장 크게 지녔음을 말해주는 조사자료들 미선이 5563 11-28
37 영성에 대한 원불교 교리적 고찰 (백준흠) 미선이 5842 11-21
36 '죄'와 '구원'에 대한 전통신학의 한계와 과정신학적 해석 (김희헌) 관리자 6268 11-02
35 영성과 영성수련에 대한 새로운 이해 (정강길) (3) 관리자 6277 11-02
34 21세기의 종교-새로운 영성을 위하여 (길희성) (1) 미선이 6845 10-15
33 현대 무신론에 대한 신학적 이해 (오영석) 미선이 5779 10-14
32 한국교회사에 나타난 기독교 배타주의 (이숙진) (1) 치노 7223 10-01
31 [기조강연 전문] 한국 기독교의 배타성은 어디서 오나? (길희성) (1) 관리자 6511 10-01
30 [참조] 세기연의 월례포럼 자료들은 '세기연 월례포럼' 게시판에 따로 있습니다. 관리자 5512 07-29
29 SBS'신의 길 인간의 길' <제4부 길위의 인간> 전문가 인터뷰 정리 미선이 8679 07-29
28 프레크 & 갠디, 『예수는 신화다』(국역판 전문) (4) 미선이 8824 07-20
27 다양한 역사적 예수 연구 학자들의 SBS취재 인터뷰 내용 미선이 6858 07-06
26 제국의 폭력에 맞서는 해방을 위한 신학 - 김민웅 마루치 6646 05-21
25 [펌] 탈신조적 그리스도교에 대한 꿈 (1) 고돈 린치 6775 02-27
24 역사적 예수 제3탐구의 딜레마와 그 해결책 (김덕기) 정강길 6761 02-21
23 희랍 동성애의 특성과 사회적 역할 마루치 6374 02-15
22 몰입 (나에 대한 최고의 순간이자 그것 자체가 행복인 순간) 관리자 7237 09-12
21 예수 교회 예배 주보 표지를 장식할 '예수 이후의 예수들' 관리자 7235 08-03
20 하나님 나라 운동의 전초기지, 공동체 운동에 대한 좋은 자료들 관리자 8736 07-02
19 잃어버린 예수 : 예수와 다석(多夕)이 만난 요한복음 (박영호) 관리자 10592 06-27
18 김경재 - 한국교회와 신학의 회고와 책임 정강길 6438 06-06
17 이성정 - 함석헌의 새 종교론에 대한 연구 (강추!) 관리자 8308 01-27
16 행복 보고서 정강길 7347 01-18
15 한국인의 종교와 종교의식 (3) 성직자 및 종교단체에 대한 평가 관리자 6236 01-06
14 한국인의 종교와 종교의식 (2) 한국인의 종교관과 의식구조 관리자 8639 01-06
13 한국인의 종교와 종교의식 (1) 한국인의 종교실태 관리자 8008 01-06
12 우리나라의 3대 종교-불교/개신교/천주교- 분포 지도 (*통계청) 관리자 14225 12-15
11 종교 인구 20년간 어떻게 변했나? (*통계청) 관리자 12325 12-15
10 한국 종교계는 치외법권지역인가? 관리자 8385 11-24
9 보수 기독교인들 특히 C.C.C가 널리 전파하는 <4영리> 자료 관리자 11002 10-27
8 최근 예수 연구의 코페르니쿠스적 변화 김준우 10016 10-21
7 기독교 어떻게 개혁할 것인가?(강추) 돈큐빗 8571 10-07
6 정치적 시각에서 본 붓다의 생애 (잠농 통프라스트) 관리자 8259 10-04
5 숫자로 보는 한국 장로교의 정체 (3) 이드 14765 06-21
4 기독교 사상사를 결정지은 니케아 회의, 그것이 알고 싶다! (강추) 미선이 12375 05-31
3 [펌] 니케아 회의 시대 (313-590) 관리자 15752 05-30
2 [펌] "미국은 神이 지배하는 나라가 됐는가?" (1) 미선이 7465 05-17
1 [유다복음서 전문] 유다는 왜 예수를 배반했을까? 미선이 13422 04-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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