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구약 이야기

 

                              3. 히브리의 하나님

 

(‘히브리’란 말이 '이스라엘'이라는 말과 어떻게 구분되며, 실제로는 어떤 개념인지, 그리고 히브리의 하나님은 참으로 어떠한 분이신지.. 여기에 대해서 알아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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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887년 이집트 카이로의 남방에 위치한 나일 강변의 도시 아마르나에서 약 400개의 고대 이집트 토판문서가 발견되었다. 이것을 일반적으로 '아마르나' 문서라고 부르는데, 그것은 B.C. 14세기경에 그 당시 이집트에 종속되었던 가나안 지역의 작은 나라들의 왕들이 강대국 이집트 왕에게로 보낸 외교 공문서였다.

 

그런데 이 아마르나 문서에 특별히 우리의 관심을 끄는 부분이 있는데, 그것은 "하비루가 침범하여다"느니, "하비루가 노예들과 합세하여 왕을 암살하였다"느니 하는 말이 나오고, 또 어떤 경우는 "저의 보병대와 하비루들을 데리고 나의 주인 (즉 이집트 왕)께서 명령하시는 곳으로 가겠습니다"라는 <하비루>Habiru하는 명칭이 무려 125회나 빈번히 사용되고 있다는 점이다. 아마르나 문서 발견이후 메소포타미아, 히타이트, 시리아, 페니키아, 가나안, 이집트 등 광대한 지역에서 하비루들에 관한 기록이 수없이 발견되었다. 이집트의 기록은 상형문자로 <아피루>'apiru라고 표기되었고, 그 이외의 지역에서는 <하피루>Hapiru 혹은 <하비루>Habiru라고 표기되었다.

 

먼저 고대 이집트의 기록을 보면, 하비루는 포도원의 일꾼으로 나타나기도 하며, 또는 전쟁포로, 또는 건설사업이나 채석장에 동원된 강제 노동자, 또 어떤 경우는 고대 이집트 사회에 흘러 들어온 이방인 혹은 무법 약탈자 그리고 토벌의 대상이 되는 도적 떼 등 다양한 무리들로 나타나 있다. 그 외에 유프라테스 강변에서 발굴된 마리 문서를 보면 하비루는 용병들 혹은 독자적인 무장집단을 말하고 있으며, 티그리스 강변에서 발견된 누지 문서에 나타난 이들 하비루 노예들의 이름들에서는 다양한 언어적 배경을 보여주고 있다. 여기에서 하비루는 채석장의 석수(石手)로 나타나기도 하며, 식량배급 명단에는 어부, 목공수, 말(馬)과 함께 하비루들이 열거되어 있다.

 

또한 페니키아에서 발굴된 토판 문서에서는 하비루가 군인으로 언급되는데 그 명단을 보면 대부분이 셈족 계통의 언어가 아닌 이름들을 갖고 있다. 이것은 무엇을 말하는가? 즉 하비루는 본래 혈연적, 민족적 개념이 아니라는 얘기다.

 

이상의 것을 추론하면, 하비루는 혈연공동체도 아니고 언어공동체도 아니고 문명공동체도 아니다. 그러면 도대체 하비루는 누구인가? 하비루는 바로 고대 근동 전역에 퍼져 있으면서 어느 안정된 사회질서에 뿌리박지 못하고 권리를 빼앗긴 변두리 계층, 즉 밑바닥 계층을 통칭하는 말이었던 것이다. 이들은 가난 때문에 고용병이 되거나 또는 시민생활의 질서 밖에서 약탈자나 강도떼가 되어 살아가는 경우가 많았다. 즉 구약 당시 고대 근동 지역에 있어서 어느 사회에서나 존재했었던 경제적으로 빈궁하고, 사회적으로 힘없고, 정치적으로 억압받고 사는, 아무런 힘도 갖지 못한 약자들이 바로 《하비루》였던 것이다.

 

▷ 구약에는 <히브리>Hebrew라는 말이 여러 번 나오는데, 일반적으로 우리는 '히브리'라는 말과 '이스라엘'이라는 말을 동의어로 생각하고 있다. 그런데 요나서 1장9절에 나타난 히브리는 이스라엘이라는 말과 동의어로 생각되지만, 사무엘상 14장21절에 보면은 히브리와 이스라엘은 분명히 동일한 대상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본래의 발음은 <이브리>ibri인데 구약에는 이 말이 약 35번 나타나고 있다.

 

그런데 주목할 만한 것은 히브리라는 말이 족장시대부터 출애굽기까지 19회, 그리고 사무엘 상권에 기록된 사울과 다윗 당시에 이스라엘과 블레셋과 대결하는 이야기에서 9회나 발견된다. 이것은 히브리라는 말이 사용된 것은 족장시대부터 다윗 왕정시대까지 거의 국한되고 있다는 사실이며, 다윗 왕정이후에 구약에서는 히브리라는 말이 거의 자취를 감추었음을 말해준다. 즉 다시 말해 구약 성서에서 <히브리>라는 말이 사용된 것은 이스라엘이 안정된 국가를 이루기 이전의 역사에 주로 집중되어 있다는 것이다.

 

그러면 구약성서에서 히브리라는 말이 사용된 용례를 살펴봄으로써 히브리와 하비루의 관계성을 파악해보자.

 

창세기 14장 13절에 아브라함을 <히브리 아브람>이라고 부르고 있는 부분이 있다. 그 당시 아브라함은 어느 한 곳에 정착하지 못하고 떠돌이 생활을 하면서 가나안 사람들에게 자기를 소개할 때 가나안의 <나그네요, 이방인>이라고 말하고 있다.(창23:4) 이것은 하비루의 개념과 부합된다.

 

요셉의 이야기에서 요셉의 신분은 이집트인의 눈으로 볼 때는 <하비루 종>이다. 경호대장 주인의 부인은 '당신이 데려온 <히브리 종>이 나를 희롱코자 하였다'라고 말한다. 여기서 또한 히브리는 고대 근동의 하비루 개념과 일치하고 있다. 그리고 출애굽기 1장에 보면 히브리인들이 이집트의 비돔과 람세스를 건축하는 일에 강제노동자로 투입된다. 이것은 고대 이집트의 기록에서 이집트왕 람세스 2세(B.C. 1290-1223년)때와 람세스 4세 때에 신전건설과 도시건설에 강제로 동원된 이들을 하비루라고 언급하고 있는데 여기서도 히브리와 하비루의 개념은 정확히 일치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사회학적으로 볼 때, 히브리는 틀림없는 하비루를 말하고 있으며, 출애굽한 하비루는 바로 그 당시 고대 근동 전역에 있는 하비루 중의 한 집단이며, 나중에 다른 하비루와 구별하기 위해 이스라엘로 불리어진다. 즉 출애굽한 하비루는 다른 하비루들과 달리 야훼 神신앙이 있었다는 것이다.

 

유일신 사상, 야훼는 바로 기득권자, 지배자의 신(神)이 아니라 억압받는 자, 눌린 자, 약자의 神이었던 것이다. 이 점에서 구약의 히브리의 하나님은 신약에서 가난한 자, 억눌린 자, 병든 자 등 그 당시 사회에서 소외된 사람들과 늘 함께 했었던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이라고 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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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의 하나님이 고대 근동 사회에 억압받고 소외되었던 하비루들을 주의 백성으로 선택하였다는 것은 역사적으로 큰 의미가 있다. 구약에 나타난 하나님은 본래 <하비루/히브리의 하나님>이셨고, 따라서 구약 종교는 하비루들의 신앙으로 출발하였다. 강자들, 즉 지배자의 종교가 아니라 잃었던 권리를 다른 어떤 곳에서도 호소할 수 없었던 약자들의 신앙으로서 이스라엘 역사가 시작된 것이다.

 

출애굽 당시 고대 근동 사회는 종교와 정치가 일치된 제정일치(祭政一致)사회였기에 여러 신들이 존재했다. 몰랙, 크모스, 바알, 푸타, 콘수, 크늠, 몬투 등 이들 신들은 각 나라의 체제권력을 대표하고 있는 신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이들 신들이 강자들의 지배체제를 위해 존재한다면, 야훼는 사회적으로 소외되고, 경제적으로 빈궁하고, 정치적으로 억압받는 밑바닥 계층을 위해 존재하는 神이었다.

 

이제 바야흐로 야훼 神은 당시 이러한 강대국들의 신들과의 한판 전쟁을 준비하시기 시작하셨다. 그런데 이들 신들의 싸움은 어떤 피안의 세계에서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출애굽>이라는 구체적인 역사적 사건과 상황 속에서 일어났음을 우리는 알아야 한다.


"이제 이스라엘 자손의 부르짖음이 내게 달하고, 애굽 사람이 그들을 괴롭게 하는 학대도 내가 보았으니, 이제 내가 너를 바로에게 보내어 너로 내 백성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게 하리라" (출3 : 9-10)

 

모세는 미디안 땅에서 양을 치고 있다가 떨기나무 불꽃가운데 나타나신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을 만나게 된다. 모세가 만난 신은 추상적이고 사변적인 신이 아니다. 어디까지나 역사적으로 활동하는 신을 만난 것이다. 즉 아브라함, 이삭, 야곱을 인도하고 축복한 바로 그 하나님을 만나서 소명을 받았다. 여기서 하나님의 뜻과 이스라엘의 부르짖음이 유리되어 있지 않으며, 이스라엘의 역사적 상황, 즉 저들을 위해서 모세가 해야 할 소명의식과 하나님의 뜻이 유리되어 있지 많다. 모세는 이스라엘의 부르짖음 속에서 하나님의 부르심을 들었고 하나님의 부르심 속에서 이스라엘의 부르짖음을 들은 셈이다. 그는 역사밖에 있는 하나님 또는 역사 밖에서 역사를 향한 하나님의 뜻을 들은 것이 아니라 바로 역사적 상황 자체에서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다.

 

하나님의 뜻은 홀로 성립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처한 역사적 상황과 그 자신의 결단과 더불어 이루어진다(사실 이 말에 담긴 의미는 신학적으로 뿐만 아니라 철학적으로도 상당히 중요한 언급이다. 한번 곰곰히 씹어보기 바란다).  이러한 경우는 모세 뿐 아니라 아브라함에게서도 볼 수 있다. 하나님은 직접 이스라엘, 그리고 전 세계를 인도하는 것이 아니라 아브라함을 통해서 한다고 했다. 이 하나님이 곧 히브리의 하나님, 우리가 믿는 야훼 하나님이시다.

 

출애굽한 히브리인들의 신앙은 한마디로 오직 야훼 神만이 우리가 섬겨야 할 절대적인 신이라는 <야훼만>mono-yahwism 사상이라 할 수 있다. 여기서 모노 야훼즘이란 다른 종교들과의 경쟁에서 야훼만을 내세우는 그런 종교적인 의미만이 아니라 하나님의 자리에 사람이 대신 앉으려는 인간의 권력욕에 대해서 그것을 거부하는 입장을 나타낸 말이다.

 

고난받는 히브리의 모습 속에 야훼 하나님이 계신다면, 이방신들은 히브리를 억압하려는 지배자들의 체제권력 속에 나타난다. 여기서 이방 신들을 통칭하면 <사탄>이라고 말할 수 있다. 히브리의 하나님이 역사적 상황 속에서 활동하고 계시기에 사탄 또한 막연한 추상적인 세계에 있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역사 속에서 활동하고 있다. 즉 히브리인들은 인간을 억압하는 인간의 권력이 빚어낸 사회구조적 모순도 실존적인 사탄의 정체로 보았던 것이다.

 

이러한 히브리의 모노야훼즘 신앙은 당연히 그 사회 속에서 구체적인 저항운동으로 나타났었다. 그들은 야훼신앙을 통해서 자기에게 주어진 억압의 현실에 체념하지 않고 저항하며 탈출하기 원했기에 마침내 역사적인 출애굽 사건이 일어났던 것이다. 참된 히브리인이라면 모순된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모든 불의한 권력에 저항할 것이다. 히브리의 조상이었던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도 그러했다. 그들은 하나님의 부르심을 따라 주어진 현실에 정착하지 아니한 탈향(脫鄕)의 인간사였다. 또한 모세나 엘리야, 이사야, 아모스 같은 예언자들이 그러했고, 신약시대에 와서는 예언자 운동의 결정을 이루신 예수가 또한 그러했다. 참히브리인은 잘못된 현실의 기존체제에 대해 끊임없이 저항하는 자임을 우리는 기억하자.

 

하나님은 모든 이들의 하나님이기도 하지만 그 우선성에 있어서는 먼저 고난받는 자들과 함께 하시는 분이셨던 것이다. 구약성서에 나타났던 히브리의 하나님은 바로 이 땅의 잘못된 역사를 치유하시는 하나님이셨고 억압받는 자들의 고통과 고난에 늘 함께 하셨던 神이었음을 또한 우리는 명심해야 할 것이다.

 

 

〔 참 고  도 서 〕

▷ 한글개역성서

▷ NCC 신학연구 위원회, 「민중과 한국신학」, 한국신학연구소(참고로 이 책에서는  언어학적인 관계까지 규명하여 히브리와 하비루의 동일성을 밝히고 있다.)
▷ 안병무, 「역사와 해석
, 대한기독교출판사
▷ A.H.J. Gunneweg, 문동환 역, 「이스라엘 역사
, 한국신학연구소

 


 

  

 1. 기독교 신앙을 보는 개괄적 이해 - 이것만큼은 꼭 볼 것!

 2. 성서관 - 성서를 성서답게! 성서를 우상화하지 말자..

 

○ 구약이야기

 3. 히브리의 하나님

 4. 구약의 법정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