Ⅷ. 팝과 록의 이분법과 록의 본질에 관한 고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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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들어가며 앞의 '록과 클래식'에 관한 글이 그냥 가볍게 읽고 넘어갈 수 있는 글이었다면, 본장의 글은 이와 반대로 아주 심각하고도 깊이 생각해봐야 할 무거운 글이라 할 수 있겠다. 이것은 지금까지의 록담론을 아주 포괄적으로 진지하게 검토함과 동시에 지금 이 시대의 거대한 자본주의적 시스템에서 록음악도 결코 자유로울 수 없다라는 인식에 공감하는 바이기에 이에 대해서 우리가 냉소적으로 고찰할 필요가 있어서이다. 아마도 록담론에 있어서 이 주제만큼 첨예한 논쟁을 야기하는 부분도 없으리라 생각한다.
2. 록음악은 사기다(!?) 언젠가 섹스 피스톨즈의
멤버였던 자니 로튼은 "록음악은 사기다"라고 말한 적이 있었다.
당시에는 이것이 치기어린 말투로 들렸을 지는 몰라도, 이들의 극단적인
부정은 먼저 우리는 지금 이 시간에도 무수히 생산되는 여러 대중음악들을 생각해보자. 과연 자본주의 체제에서 상품화되어있지 않는 것은 무엇인가? 비상업적인 것과 상업적인 것의 구별이 어떻게 가능한가? 재미와 여가를 위한 쾌락으로써의 록과 저항과 예술성을 담보한 록이 뚜렷하게 구분되고 있는가? 당연히 아니다. 즉 문제의 심각성은 바로 여기에 있다. 그 옛날 저항성을 담보했다는 예술로써의 록도 이제는 메인스트림으로써의 팝화되어있다는 피할 수 없는 현실 인식에서 우리가 마냥 록을 무모하게 우상화할 수만은 없는 노릇이라는 점이다. 혹자는 끝까지 '록음악만이 진정한 이 시대의 음악'이라고 발악하면서 우길런지 몰라도 그러한 언급들은 지금 시대에서는 한낱 공허한 얘기에 지나지 않는다. 아-아! 그렇다면 남은 것은 우리에게 록에 대한 독한 회의밖에 없는 것인가? 정녕 록에 미친 우리들은 록음악에 속아 살아온 것인가?
3. 나의 논지와 평론가 신현준 내가 이 글을 통해 펴고자 하는 논지는 바로 "결코 그럴 수는 없다"라는 것에 관한 것이다. 물론 이것은 양비론적인 시각을 의도하고자 하는 것도 아니고 하나의 일관된 시각에서 문제를 짚어보고자 하는 것뿐이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나의 논지는 이렇다. 나는 록 자체를 예술로 보지는 않는다. 그러나 팝과 록의 이분법이 무너졌다고 해서 팝과 록을 또한 같이 보지도 않는다. 그같은 록에 대한 부정과 해체적 전략과 담론들은 무의미함의 소모전일 뿐이라는 것이다. 물론 그러한 담론이 현실의 비극적 가능성들을 간과하지 않는 장점은 있을지 모르겠지만, 대안없는 비판들이 우리에게 주는 것은 지독한 허무주의밖에 없다는 점에서 무의미하다. 그렇기에 나 자신은 '록이 아직도 우리에게 신화로써 살아있는 그 무엇'임을 결코 포기할 수 없었던 것이다. 물론 여기서의 그 무엇이란 바로 록의 진정성과도 연관된다고 할 수 있겠다. 록의 피폐함을 설명하고 이해하기 위해서라도 가능하면 독자들은 신현준의 <지금 록의 신화는 가능한가>라는 글을 읽어볼 것을 부탁드린다.2) 신현준의 이 글은 제목에서도 보여지듯이 그 자신은 기존의 록담론에 도전적이고도 조금은 냉소적인 입장을 취하고 있다. 전반적인 글의 분위기는 방향성을 찾지 못하여 독한 회의를 갈구하는 구도자의 모습처럼 느껴진다. "Help Me!"라고 외친 일 년 뒤의 그의 글은 포스트구조주의자들에게서 자신의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나는 신현준이라는 음악평론가의 글을 무척 좋아하는 사람 중의 한 명이다. 왜냐하면 그의 글은 록음악을 마냥 우상화하지 않고 진지하고도 심각하게 받아들일 줄 아는 시야를 갖고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 자신이 사이먼 프리스를 록담론의 형님으로 모시고 있듯이,3) 나또한 그를 국내에서는 그나마 최고의 음악평론가라고 생각하고 있다. 그런데 그는 자신의
글에서 자기를 '록매니아에서 가요평론가로 전락하는 자'라고 묘사하며,
그 이유를 록이 피폐해진 현실에서 더 이상 록의 신화가 가능할 수 없다는
인식에 바탕을 두고 있다.
4. 지금 록의 신화는 가능한가? 신현준의 「지금 록의 신화는 가능한가」라는 글은 다른 게 아니다. 90년대 얼터너티브 록의 대두로 부흥된 록 르네상스를 두고 록의 본질을 '저항의 예술'로 보는 록 담론에 대해 메타비평의 형식으로 반론을 제기한 것이다. 그는 여기서 주로 사이먼 프리스가 얘기한 개념들에 의존하고 있다. 사이먼 프리스 등 영국의 연구자들의 주장에 의하면, 음악의 진정한 의미란 사전적으로 존재하지 않으며, 복잡한 사회적 컨텍스트 하에서 사후적으로 생산될 뿐이라고 한다.4) 이 말은 곧 무엇을 뜻하는가? 즉 록이 위대할 수 있었던 것도 따지고 보면 그 시대의 사회적 상황의 산물이 라는 것이다. 록이 비상업적이니 저항의 예술이니 하는 특별한 지위들은 모두가 진정성이라는 이데올로기에 사로잡혔기 때문에 나온 인식이라는 얘기다. 특히 70년대의 펑크의 등장과 80년대의 포스트모던의 현상은 록의 진정성을 더욱 부정하고 있다. 신현준은 90년대에 휘몰아친 얼터너티브의 태풍도 알고보면 하드코어 펑크가 메이저 음반사에 의해 재차 포획된 결과에 지나지 않는 게 아닌가하고 의문을 제기한다.5) 그렇다면 록은 정녕 죽은 것인가?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그의 글은 '록은 죽었다'라고 보는 시각도 록은 저항의 예술이라는 주장과 같은 것이라고 하며, 죽은 것은 록이 아니라 록에 대한 특정한 역사적 개념이라고 말한다.6) 이 말은 앞서 얘기한 사이먼 프리스의 주장과 모순되게 느껴지며 그 자신도 록의 진정성을 아직 포기하지는 않은 것으로 보여진다. 즉 한마디로 그의 글은 대안없는 방황의 기로에 서 있는 셈이다. 그가 일 년 뒤에 쓴 글은 한층 더 나아간다. 이제는 아픈 맘에도 불구하고 팝과 록의 이분법을 상대화하기로 맘먹었다는 비장한 결심을 한 것이다. 하긴 1970년대 초까지의 록의 역사만 하더라도 팝과 록의 구분은 절대적인 것으로 보였고 음악적 취향의 차이는 계급적 차이를 반영하는 것으로 보였기에 록에 대한 그 자신의 신념들을 결코 버리기가 쉽진 않았으리라 짐작은 간다. 그는 말하길, 록을 들으면 들을수록 이제는 팝과 록의 이분법은 남성 우월주의 소산이며, 록은 이미 남근 숭상, 인종차별(백인 중심주의), 상업주의화 된 음악에 불과하다는 확신만 더해간다고 한다.7) 그러면서 들뢰즈와 가타리같은 포스트구조주의자들의 사유와 사운드의 정치를 연계시키는 작업을 구상하고 있다고 밝혔다.8) 이것은 바로 그의 철학적 인식이 포스트주의에 기저하고 있음을 예증한다고 하겠다. 그리고서는 <국지적 진지함>local seriousness을 가져야한다는 애매모호한 얘기로 글을 맺는다.9)
5. 팝과 록이 이분되진 않아도 같을 수는 없다. 이러한 그의 주장에 대해서 나는 쉽게 질문을 던지고 싶다. "똑같이 빌보드 차트 1위에 올랐던 마이클 잭슨의 <Dangerous>와 너바나의 <Nevermind>는 정녕 같은 것인가?" 라고. 물론 나 자신도 팝과 록을 이분법적으로만 보는 것은 반대한다. 록은 이미 하나의 잘 포장된 상품이 되버렸으니까. 그러나 그러한 팝과 록의 이분법이 종언됐다고 친다면 팝만 남았다는 얘기인가? 록은 죽었다고 보는 주장조차도 그 자신은 반대하지 않았던가? 그것도 아니라면 우리가 록을 어디서 발견하고 어떻게 얘기할 수 있다는 얘기인가? 그는 90년대의 얼터너티브 록을 언급하면서 이를 두고 60년대 록이 가졌던 저항정신의 부활로 보는 것은 일면적일 뿐이며 록은 부활하는 것이 아니라 생성하는 것이라고 말한다.10) 물론 록은 끊임없이 생성하고 있다. 그러나 그것은 과거와의 단절이 아닌 <불연속적인 연속성>을 갖고 있기에 부활과 생성이라는 두 가지 측면을 함께 고려해야 하는 것이다. 섹스 피스톨즈의 정신과 단절된 얼터너티브를 얘기한다는 것은 참으로 웃기는 얘기밖에 되지 않는다. 그 자신도 얘기하듯 우리는 계승과 단절의 모호한 시대를 살고 있는 것이다. 지금 시대의 경험과 투쟁 속에서 왜 과거의 것이 획득되어지기도 하는가? 유용성 때문에? 왜 그것이 유용하다고 보는가? 그렇다! 내가 '보편'을 말하는 것인지는 몰라도, 어쨌든 나 자신은 록음악에 시대를 관통하는 리얼리티reality가 있다고 보는 것이다. 펑크의 정신이 메이저에 포획된 것이 얼터너티브라구? 자본주의하에서 모든 문화적 제의와 작품들은 결코 <상품화>라는 운명을 피할 수 없다. 자본주의라는 것이 어차피 인간의 사적 욕심을 전제한 체제 아닌가. 그런 면에서 자본주의야말로 인간의 본능적인 욕구들을 원할하게 배출시키는 제도라고도 할 수 있겠다. 그러한 자본의 시스템은 바로 인간의 욕구들을 보다 효율적으로 생산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메카니즘은 그 자체로 나쁜 게 아니라 그것은 단지 가치중립적일 뿐이다. 자본의 노예가 되는 게 그릇된 것이지, 우리가 경험하는 사회학적 컨텍스트 안에서 자신의 경험과 투쟁들을 극대화시키기 위해 이를 효과적으로 이용할 수도 있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추구해야 할 '<재미>를 통한 <깊이>의 전달'이라는 것이다.
6. 록음악은 남근 이데올로기를 가지고 있다. 물론 록음악이 분명 남근 이데올로기를 숭상하고 백인 중심주의인 측면도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실제로 록가수들은 대부분이 굵고 파워풀하며 강력한 사운드만을 뽑아내기 위해 발악하듯이 몸부림치고 있으니까. 사이먼 프리스가 지적했듯이, 예컨대 레드 제플린은 대표적인 남근 록을 표방하는 스테이지를 연출한다. 그의 얘기를 직접 들어보자. "남근
록cock-rock은 분명하고 거칠며 '가부장적'인 관능성의 표현을 의미한다.
남근 록 공연자들은 공격적이고 자부심에 넘쳐 있고, 솔직히 록매니아들은 대부분이 남성들이며, 록 뮤지션 중에 여성은 거의 없으며, 게다가 여성록 비평가는 아예 없다. 참으로 이것은 록음악이 진보로 나아가는데 있어서 치명적인 약점이 된다. 본래 록의 관능성은 청교도적인 금욕주의로 속박되어 있던 아메리카 청년들의 잠재된 욕구들을 해방시켰다. 이전에 청춘 남녀들은 플라토닉한 로맨스를 했었지만 로큰롤은 솔직함을 거리낌없이 표현하길 바랬던 것이다. 당연히 기성세대는 자신의 딸이 부모가 정한 남자 외에 다른 남자하고 춤을 추거나 관계를 맺는 것을 반대했기에 록음악에도 질색을 표명하는 것으로 나타난다. 그기에 록의 성(性)정치는 그 타겟이 여성이 아니라 바로 가정이었던 것이다. 그러한 록의 관능성이 구조화되는 것을 거부한 것은 바로 펑크였는데, 그것은 섹스와 쾌락에 오래 지속되어온 록의 등식을 중단시켰다.12) 프리스는 언급하길, 적어도 펑크는 록이 성차별주의에 대항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주었다고 말한다.13)
7. 성차별주의에 대항하는 록음악 록이 남근 중심사상을 가질 수 있었던 것은 그 사회가 갖고 있는 컨텍스트의 미성숙함에도 따른 것이지만 나는 이것을 음악적 경향성의 차이에 따른 것이라고 본다. 이것은 깊숙히 보면 폐미니즘의 이론과도 연계되는 것이지만 여기서 그러한 골복잡한 문제까지 다루지는 않겠다. 솔직히 허락된 지면도 부족하고 자칫 논의를 벗어날 위험도 있기 때문이다. 다만 남녀 차별이 남녀 차이에 대한 인식의 왜곡에서 비롯했듯이 그러한 차이를 차이로써 남겨둔다면 록음악이 남근 중심적인 현상을 보이는 것에 대하여 어느 정도 타당한 짐작이 갈 것이라고 생각한다. 즉 록음악은 남성 경향적인 음악일 뿐이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여성들이 소프트한 팝을 좋아하는 이유도 본질적으로 여성성의 적합성에 따른 것이 되겠다.14) 팝은 10대 소녀문화고 록은 20대 청년문화에 속한다는 것도 이제 진부한 얘기가 되버렸지만 통계적으로도 이것은 결코 틀린 얘기는 아닌 것이다. 록음악은 성차별주의에 어떻게 대항할 것인가? 펑크처럼 극단적인 부정을 통해서? 펑크가 성차별주의에 대항한 것이 있다면 성이라는 것도 그럴듯한 하나의 상품임을 적나라하게 까발린 것밖에는 한 일이 없다.15) 이에 대해 내가 진정 바라는 것은 여성의 경험들-소위 말하는 여성성이라고 하는 것들-을 록음악을 통해 더욱더 극대화시키는 작업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여성성이 가부장적 편견들과 부딪힐 때는 그것이 성차별주의로써의 남성에게 가지는 <적대감>의 노골화로 표현될 것이다. 당연히 이 때의 록은 반란의 미학을 가지면서 동시에 여성성을 구원하는 기제가 된다고 본다. 여성 록커라고 해서 꼭 마이크를 터프하게 잡고 목소리를 파워풀하게 내어야만 하는 것인가? 물론 그러한 것도 남성의 전유물들을 공유하는 것이기에 반가운 스타일의 하나이긴 다. 하지만 일단 여자의 정체성을 있는 그대로 더욱 살리면서 나름대로의 반란을 꾀하는 것이 더욱 중요하지 않을까 생각하는 바이다.
8. 사회학적 해석의 한계 조금 논의를 벗어난 점이 없잖아 있어 다시 돌아온다. 대부분이 그렇듯이 나 자신을 비롯한 대다수의 록매니아들은 1960년대에 전설처럼 쌓아놓았던 그 찬란했던 록의 신화를 잊지 못하고 있다. 프리스가 지적한 것처럼, 현재의 록 레코딩은 60년대의 신화를 팔아먹고 사는 산업에 불과할 수도 있겠으나 좀처럼 그 신화를 우리는 포기하기 싫어한다. 신현준 또한 이에 대해 "존재하는 것은 상이한 전략이 교차하는 복잡한 상황 속에서 획득되는 지배적 의미일 뿐"이라고 말한다.16) 사회적·문화적 컨텍스트에서 의미 생산이 이뤄진다고 보는 프리스와 같은 맥락이다. 물론 그 자신도 60년대에 있었던 록의 신화만큼은 인정하고 있다. 그렇다면 '60년대'와 '오늘'은 어느 중간지점에서 건널 수 없는 단절이 이뤄졌다는 얘기인가? 나는 여전히 의문이다. 그것이 사회학적으로 독해가 된다고 하더라도 그러한 시각은 록음악의 진정성을 아예 부정하는 게 되버리기에 록담론 자체가 무의미해지는 결과를 낳게 된다. 사회학적 독해란 필연적으로 물적 토대로서 현실태를 설명해야 되기에 그 본질을 아예 인정하지 않거나 그 본질을 물적 토대의 연계적 사실태로 치환시켜 버리는 맹점이 있다. 포스트마르크스나 포스트구조주의도 해체적 전략을 실증주의적 기반에서 이 세계를 설명하고 있기에 <실재>에 대한 믿음을 아예 부정할 수밖에 없으며 그렇기에 결코 우리에게 유용성있는 전망을 주지 못한다는 점에 포스트주의자들의 한계가 있는 것이다.17) 떼이야르 샤르댕(Teilhard de Chardin)식으로 얘기하면, 그것은 과학이 사물의 바깥만을 살피는 것밖에 되지 않으며 유동의 근원을 설명하지 못하는 것과 같은 이치다. 록음악의 진정성이 사회학적 컨텍스트로만 다 독해가 되는 것일까? 록음악에 대한 의미 생산이 가능했던 것은 록음악이 가지고 있는 본질적 성격, 즉 진정성 때문인가? 아니면 시대적 전략에 따른 유효함 때문인가? 정녕 록의 신화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하는 나 같은 사람은 '진정성'이라는 환상에 사로잡혀 있는 미친놈밖에 되지 않은가?
9. 대중음악이 가지는 양극적 요소 록의 본질을 어디에다 두어야 할 것인가? 록은 하위 계급의 여가문화에서 비롯된 일종의 유희며, 그러한 음악적 유희의 양식들은 그 자신이 처한 계급적 상황으로 인해 동시에 체제에 대한 저항으로 나타났었다. 즉, 억압받는 자의 감정의 분출과 열정이 사회학적 상황과 만나면서 저항성을 띠었던 것이다. 록은 왜 저항을 개방하는 속성을 갖고 있을까? 그것도 틴 팬 앨리Tin Pan Alley가 아닌 왜 하필 록이 그러한가? 나는 이것이야말로 록을 신화로 만든 진정성의 요인이라고 생각한다. 록이 팝에게서 발견할 수 없는 것은 바로 '인간의 상향적 욕구의 <첨예화>'다. 나는 그것을 <열정>passion이라고 부른다. 그것은 인간 본연의 모습을 회복하기 위한 혹은 신적인 것으로 진화하기 위한 극단적인 몸부림이며, 인간의 실존적 영역에서 이뤄지는 하나의 사태에 대한 확장인 것이다. 록이 다른 음악적 장르들과도 쉽게 융화되고 다양한 에너지들을 뿜어낼 수 있었던 것도 이러한 연유에 기인한다고 본다. 록은 모든 소극적인 것들을 극대화시키는 장치다. 바로 여기에 억압적인 정치적·사회학적 컨텍스트가 개입하면 그것은 극명한 투쟁성을 띠는 문화적 기제가 되는 것이다. 반면에 팝은 상향적 욕구의 저등한 형태에 지나지 않는다. 말그대로 거기에는 주류 진입을 위한 기제만이 있을 뿐이다. 본질적으로 팝은 록의 가장 저급한 형태를 의미하고 진정성으로써의 록은 팝의 가장 고등한 형태를 의미한다. 그렇기에 우리에게 있는 것은 물론 팝이 있다 록이 있다가 아닌 단지 대중음악만이 있을 뿐이다. 즉, 팝적인 요소와 록의 진정성은 바로 자본주의 사회에서 하나의 대중음악이 필연적으로 가질 수밖에 없는 양극점에 불과하다. 팝과 록이 구분되진 않아도 그것은 구별되는 것이며, 이는 다양한 상황에 처해있는 청자들의 수준에 맞춰 제각기 포획되고 있는 것이다. 사회학적 컨텍스트가 의미를 생산하기도 하지만 그 의미는 또 사회적 상황을 변화시키기도 한다. 즉 록의 신화는 60년대에만 한정된 것이 아니다. 단지 그것은 60년대에 부단하게 많이 드러났을 뿐이며, 세기말의 오늘은 그것이 없어지거나 말살된 게 아니라 그의 언급한 용어를 빌리자면 국지적으로 다분화되었을
뿐인 것이다. 록의 신화는 아직도 삶을 진지하게 받아들이고 상업적인
계산보다 더 가치있는 주제들을 표현하려는
10. 나오며 한가지 오해를 피할 것은, 본인이 이 글에서 밝힌 게 록음악이라는 것 자체가 저절로 신화적 성격이 담보되는 그런 성질의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앞서 말했듯이 그렇게 보는 시각도 록에 대한 맹신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프리스가 잘 지적하듯 록음악은 자본주의 논리가 적나라하게 관철되는 문화 형식도 아니며 그렇다고 진보성이 강제적으로 담지되는 청년 문화도 아닌, 록 자체는 열린 공간이고 의미를 둘러싼 치열한 투쟁의 장일 뿐이다.18) 그러나 록을 자본주의 생산관계를 반영하는 상품화된 꿈으로 치부하는19) 프리스나 신현준과는 다르게, 나는 그러한 담론들이 의미를 생산하기 위한 치열한 투쟁이 가능한 이유를 적절하게 설명하지 못한다고 보며, 록의 역사가 마냥 재미를 위한 투쟁의 역사라고만 규정한다면20) 그것은 록담론 자체에 대한 해체밖에 되지 않는다는 점에서 나는 이들을 반대한다. 이는 록음악에 대한 신념 자체를 방기하는 무책임한 비판밖에 되지 않으며, 팝으로 전락한 록음악이 이제 더 이상 삐댈 곳은 없다는 얘기밖에 안된다. 팝과 록이 이분되지 않는다고 해서 록음악이 중도(中道)로써의 의미를 가진다고 해서 록담론을 해체해야 할 필요성은 없다. 록담론은 지속되어야 한다. 이것은 '지금 록음악은 어디로 가고 있는가?'라는 질문과 연관된다. 현대음악은 나날히 다분화되면서 동시에 그 경계가 점점 불투명해지고 있다. 그러나 록은 팝화된 코드 안에서도 죽은 채로 내재해있는 게 아니다. 그것은 팝 속에서도 새로운 의미를 생산하고 있는 객체적 불멸성을 띠고 있다. 이것이 소위 들뢰즈가 말한 영토화하는 기계의 속성인지는 모르겠다. 때문에 록담론이 팝담론으로 치환될려면 필연적으로 팝에 대한 정의를 다시금 할 수밖에 없으며, 록음악은 끊임없이 다른 음악적 장치들과 융합하면서 동시에 끊임없이 새로움을 창출하는, 즉 오늘에 있어 록은 팝의 작용인의 하나로써도 유유히 살아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록의 특성은 <지구적 전일화>와 <국지적 다분화>가 상호적으로 교차하는 현실상황과 만나면서 다양한 의미들을 쏟아내고 있다. 본래적으로 사회구조악이란 인간의 과잉된 사적 욕심이 제각기 속한 사회학적 권력의 함수관계를 타고서 작동될 때 나타나는 리얼한 허상에 불과하다. 마찬가지로 모든 것을 극대화시키는 록의 속성이 당대의 사회학적 상황과 접하면서 찬란했던 록의 역사적 신화가 이뤄졌던 것이다. 록의 신화는 이제 우리가 개념적으로는 갖고있지만 물리적으로는 아직 여기서 성취되지 않았다.-혹은 어디에선가 진행 중이거나- 이른바 그것은 남아있는 자들의 몫인 것이다. 록의 생성은 이러한 계승과 단절이라는 두 가지 측면이 함께 변증법적으로 지양되면서 부단히 일어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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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에 대한 대표적인 책이 임진모, 「록, 그 폭발하는 젊음의 미학」(창공사, 1996)과 김지영 「이상의 시대 반항의 음악」(문예마당, 1995)이다. 김지영의 책은 60년대의 록 생성기를 다루고 있기는 하지만, 임진모의 책은 신화로서의 록, 즉 록은 비주류, 비상업성, 저항성을 담지하는 문화적 양식이라고 보는 일관된 시각에서 기술하고 있다.
2) 이 글은 「이다」문화무크지·창간호, (서울: 문학과 지성사, 1996), pp.235-247. 그리고 1997년에 나온 「이다」제2호, pp.69-81.에 실려있다(이하 '이다1', '이다2'로 각각 표기). 곁들여 신현준 엮음, 「얼트 문화와 록 음악 1, 2」(한나래)도 적극 추천하는 바이다.
3) 록음악에 관심하는 이들에게 필수적으로 읽어야할 단 한 권의 책을 추천한다면, 나 또한 사이먼 프리스Simon Frith의 너무나도 유명한 저서인 「록음악의 사회학-사운드의 힘」(서울: 한나래, 1995)을 강력하게 추천한다. 록에 대한 신화를 사회학적인 견지에서 여지없이 까발리고 있는 이 책은 록음악을 자의식없이 '컬트화'시켜버린 록매니어들에겐 아마도 커다란 도전적인 혼란스러움을 안겨다 줄 것이다. 이 저서의 독보적 명성은 많은 나라의 대학에서 대중문화에 관한 연구교재로 쓰이고 있는 데서도 잘 알 수 있다.
4) 이다1, p.241.
5) 이다1, p.244.
6) 이다1, p.243.
7) 이다2, p.72.
8) 이다2, p.78.
9) 이다2, pp.79-81.
10) 이다1, pp.243-244.
11) Simon Frith, op. cit., pp.286-288.
12) Ibid, p.308.
13) Ibid, p.309.
14) 아마도 급진적인 폐미니스트가 이 글을 읽는다면 나의 이러한 주장이 보수주의자들의 논변으로 비춰질 수도 있으리라고 본다. 사실 '여자는 남자보다 감성적인 이유가 사회학적인 연유에 근거하는가 아니면 그 본성상 그러한가'하는 문제는 끊임없이 논쟁을 야기하는 문제였었다.-"여자아이들은 왜 총보다 인형을 갖고 놀까?"- 나는 우리 사회의 가부장적인 사회구조를 볼 때 후천적인 면을 인정하면서도, 그러나 이것만으로는 설명이 되지 않는 것은 태초의 지점에서는 남녀의 차이에 기인한 제각각의 경향성이 본질적으로 내재해있었기 때문이 아닌가하고 생각한다. 솔직히 굳이 한 쪽을 택하자면 가사 일은 남자보다 여자가, 공사판의 막노동은 여자보다 남자가 더 적합하지 않은가! 나는 성차별이 남자와 여자라는 인간의 생물학적인 차이와 밀접하게 연관된다고 생각하며, 남녀 평등의 문제는 분명히 인식의 전환에서 출발하고 그러한 가운데서 제각각의 필요한 자리에서 자신에 적합한 삶의 기조들을 성실히 일궈낸다면 문제는 해결되리라고 본다. 이른바 <융통성을 전제한 자기자리 찾기>인 것이다.
15) 섹스 피스톨즈Sex Pistols의 멤버였던 쟈니 로튼Janny Rotten은 섹스란 무엇인가에 대해 그것은 단지 30초간의 질퍽거리는 소음에 지나지 않는다고 말한다. 이처럼 펑크Punk는 성에 대한 환상을 깨 버린다.
16) 이다1, p.244.
17) 우리가 알튀세(L. Althusser)나 미셸 푸코(M. Foucault)에게서 건질 것은 무엇인가? 단적으로 말하면 없다. 분명히 말하지만 나 자신은 오늘날 구조주의자였던 알튀세의 맑스주의 해석이 크게 유용하다고 보는 사람이 아니다. 유용했던 것은 그가 맑스주의를 독해함에 있어서 사용한 그 자신의 <징후적 독해> 전략이었다. 하지만 오늘날 대부분의 사회과학자들도 알튀세 이전의 소박한 귀납주의를 받아들이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고 본다. 또한 우리가 미셀 푸코에게서 발견한 것은 권력에 오염된 지식에 대한 회의밖에 없었다. 남는 것은 현실에 대한 대안없는 불협화음만이 있을 뿐이다. 마찬가지로 자살한 들뢰즈(G. Deleuze)도 객관적 진리에 대한 수직축을 전복시키고 가치에 대한 수평적 세계를 부르짖는, 푸코나 데리다(J. Derrida)와 흡사한 니체의 후예들이라는 점에서 크게 다를 바 없다고 봐야한다. 본인의 거친 독해에 대해 '일개 학부생이 어떻게 감히 위대하신 불란서 철학자님들을 폄하시킬 수 있냐'며 따질런지는 모르나 이들의 거시적인 사유체계가 포스트구조주의적 발상을 넘어서지 못한다는 측면에서 나의 해석은 충분히 타당하다고 생각하는 바이다. 이들이 했던 일이란 근대 세계가 갖고있는 치명적인 약점에 대한 <폭로>였지 <대안>은 아니었던 것이다. 이들에게는 <대안>이라는 것 자체도 획일적 폭력을 담지한 개념에 불과하다.
18) Simon Frith, op. cit., 뒷표지 글에서 인용.
19) Ibid, p.344.
20) Ibid, p.3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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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를 읽자! 세계를 읽자!
지금의 대중 음악적 현실을 보자면 전혀 간과할 수만은 없는
얘기라고 생각하는 바이다. 실제로 현재의 록씬은 팝과 별다른 경계를
두지 않아 보일만큼 모호하게 되버렸다. 그런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록담론을
논하는 서적들 중에는 엄밀한
차원에서 록은 저항성을 담지한 예술이라는 시각에 가깝게
기술되고 그러한 관점에서 씌어진 책들은 많이 있어왔다.1) 즉,
현재의 록이 팝으로 전락했다고 해도 록신화에 대한 미련과 향수에 젖어있는
이들 또한 많다는 것이리라. 참으로 이것은 심각하고도 신중한 고찰을
요하는 부분이다.
즉, 이것은 바로 팝과 록의 이분법의 종언을
주장하는 것이다. 나는 그의 이러한 시각에 일면 동감하면서도 그의
해체적 전략에는 결코 동조할 수 없다. 왜냐하면 그렇게 되면 우리에게
남는 거라곤 없기 때문이다. 우리는 록에게서 아무런 신념도 기대할
수 없게 된다. 오직 상대주의적인 시각과 고뇌에 찬 회의주의만 있을
뿐이다. 이것은 조금 극단적으로 얘기해서 지금의 록뮤지션이나 록매니어들에게
"너 아무리 록 해봐야 소용없어"하는 얘기밖에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나는 이를 위해 그의 글을 반론하는 형식으로 논지를
전개해 나가고자 한다. 신현준은 일면 록담론에 있어서 어느 정도 진보적인
시각을 가진 논객으로 보기 때문에 그의 글의 권위를 빌어 오히려 반론을
폄으로써 나의 논의의 입지를 확보하고자 하는 것이다(사실
변명을 하자면 어떻게 글을 전개해야 될지가 막막하기 때문인 이유가
더 크다고 봐야되겠지만-) 
그들의 비범한
기교와 통제력으로 청중의 주의를 끊임없이 이끈다. 그들의 몸은 셔츠와
꽉 낀 바지를 벗어 던져서 가슴과 음부의 털이 노출되고, 마이크와 기타들은
남근의 상징이며(혹은 여성의 육체들처럼 애무되기도 하며), 음악은
소리가 크고 그 리듬이 서로 맞지 않고, 흥분과 방출의 기교를 중심으로
구성된다. 가사들은 단어적이고 오만하지만 가사의 의미가 중요하다기보다는
그 가사에 관련되는 날카로운 외침과 비명과 같은 보컬 스타일이 중요하다.
이러한 '하드 록'쇼에서 진행되는 것은 남근의 힘을 자위하며 예찬하는
일이다. 소녀들은 구조적으로 록 경험으로부터 배제되어 있다. 록 경험은
남성적인 관능성의 영역을 '드러내고 말하는 것'이다."11)
뮤지션들과 불만족한 현실을
바꿔보려는 청중들에게 끊임없는 힘을 부여하고 있는 신념으로써 우리에게
살아 있는 것이다. 물론 동시에 록은 유희의 구실도 한다. 60년대에 대한 향수가 궁극적으로 가능한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록의 신화는 언제든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며, 그것은
바로 현재의 마케팅 시장에 록음악을 팔아먹고 록을 사장시키려는 이들과
끊임없이 대립하는 그 무엇으로, 이를 거스르게 하는 가장 뿌리깊은
원초적 이유로 남아있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