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성서관

        - 성서를 어떻게 볼 것인가

 

      차례

       - (1) 보수주의 성서관

       - (2) 진보주의 성서관

       - (3) 성서경전의 역사

 

(1) 보수주의 성서관

 1. 계시성 - 성서는 그 자체로써 하나님의 계시다. 성서는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책이기에 성서는 곧 예수님이시다.(요5:39)

 2. 권위성 - 성서는 하나님의 입으로부터 나온 인격적 말씀이니 이것은 성서가 신적기원(神的紀元)을 갖는 권위이다. 즉 성서의 실제저자는 하나님자신이다.

3. 영감성
     a. 성경기자에 관한 영감
      - 기계적 영감설
      - 유기적 영감설 : 하나님은 인간 기자를 통하여 자신을 계시하고자 할 때에 인간저자의 모든 능력을 최대한 이용하시고 또 그것들에 성령충만함을 입혀서 완벽한 글이 완성되도록 하셨다.

     b. 성서자체에 대한 영감
       -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성경의 인간기자는 모두가 성령의 초자연적 감화를 받아썼기 때문에 모든 글자하나하나에 하나님의 영감이 깃들어있다. (딤후3:16) 완전 축자영감설, 성서무오설  - 성경의 역사는 신화와는 거리가 멀다.  성경은 백퍼센트 사실(벧후1:16)

     c. 영감의 결과
         - 성경의 영원성(요10:34-36)
         - 성경의 신뢰성(시119:160)
         - 성경의 무오성(마5:18)
         - 성경의 권위성(마4:4-10)

 

 

(2) 진보주의 성서관  
    - '성서란 어떤 책인가'의 문제는 성서를 어떻게 볼 것인가?의 문제와 연결된다고 본다. 왜냐하면 성서를 어떻게 볼 것인가에 따라 성서는 역사서가 될 수도 있고, 과학서가 될 수도 있고, 교리서가 될 수도 있다. 즉 성서에 대한 시각에 의해서 평가가 달라지기 때문에 우리 자신들의 성서를 보는 눈이 참으로 중요하다고 본다.

  성서는 하나님의 구원사건에 대한 이스라엘의 고유의 신앙경험을 인간의 언어로 기록한 책이다. 성서는 분명히 그리스도인의 삶의 척도, 표준이며 하나님의 말씀을 담고 있는 그릇과도 같다. 즉 성서는 하나님의 말씀을 인간의 언어(=그릇)로 기록한 책인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가 의심할 수 없는 불변의 진리이지만 인간의 언어는 충분히 오류가 있을 수 있는 부분이다.

  문제는 이 그릇이란 부분도 문자 그 자체적으로 성서화(=우상화)된다는 데에 있다. 우리가 조금만 더 유심히 성서를 살펴본다면 여러가지 이상한 점과 모순들을 발견할 수 있다. 이상한 걸 이상하게 여기지 말라고 한다면 그것은 성서를 올바로 대하는 태도가 아니라고 봐야 하지 않을까..

 

1. 성서에 나타난 오류와 모순 투성이들

a. 모세오경에 관한 의심할만한 점들

 

예컨대, 상반된 두 가지 창조이야기(창1~2:4, 창2:4~ 창조순서가 다르다), 시대착오적인 지명들(창14:14, 단이라는 지명은 아브라함시대에는 물론이고 모세시대에도 없는 지명이며, 야곱의 후손인 단 지파들이 살던 곳이 아주 후대에 불려진 지명임) 등등.. 이외에도 그 사례들을 언급하자면 수두루 빽빽하다..  자세한 성서공부를 하고 싶다면 언능 기독교서점으로 달려가 「구약성서개론」(대한기독교출판사)을 뒤져보고 반론할 것..!  (참고로 그 책은 장신대 / 감신대 / 한신대에서 구약학개론에 공동 채택되고 있는 교재임)

 

신약에서도 예를 하나만 들자면, 예수탄생 연대의 불일치성을 들 수 있다.. 마태복음의 탄생에 따르면 예수는 해롯의 사망 이전에 태어난 걸로 되어 있다.. 하지만 역사적으로 헤롯은 이미 BC 4년경에 죽었다.. 그렇다면 마태복음에 의한 예수탄생은 BC 4년경을 넘을 수 없다.. 그런데 누가복음에 따르면 예수탄생은 인구조사 때 태어난 걸로 씌어있다.. 하지만 그 인구조사는 AD 6년의 일이다.. 즉, 10년이나 차이가 나는 것이다.. 신약성서를 좀더 폭넓게 공부하시길 바란다면 「함께읽는 신약성서」(한국신학연구소)를 권하고 싶다.. 이 책은 여러 교수님들과 목사님들의 공동집필로 엮어저 있다..

 

b. 그 외 분명한 성서의 여러 오류들을 알아보고자 한다면 아래의 글들 참조

 ->  http://freeview.org/bbs/tb.php/b001/27

c. 성경의 명백한 성차별적 구절들

-> http://freeview.org/bbs/tb.php/b001/18

 

 

2. 진보가 말하는 보수측의 성서관

  - 성서를 영의 눈 또는 믿음의 눈으로 봐야 한다는 말이 있는데, 성서를 볼 때는 어떤 특수한‘안경’같은 것을 끼고 보면은 안된다. '인간 대 성서의 만남'의 만남에 있어서 그 사이에는 어떤 무엇도 끼여서는 안되며 투명하게 정면으로 마주서야 한다. 그렇게 되면 인간은 이성적 존재이기에 당연히 성서에 대한 의문(나쁘게 말하면 의심)을 갖게 된다. 근데 흔히들 얘기하는 믿음이라는 것을 가지고 성서를 본다면 아무 이상한 점도 발견할 수가 없다. 왜냐하면 성서를 펴기도 전에 이미 성서에 대한 믿음이 전제되어 있기에 거기에는 아무 의문이나 비평이 있을 수 없다. 그것은 우리가 지금까지 나름대로의 성서에 대한 전이해를 가지고 성서를 보게 되는데, 이 전이해는 바로 우리들이 다니던 기존교회의 가르침으로부터 형성된 것으로 소위 <주일학교 신학>Sunday School Theology이라고 한다.

  - 보수주의 기독교는 성서를 성서로 보는 게 아니라 성서를 교리에 대한 시녀로 본다. 예를 들면 우리가 잘 아는 신앙고백(=사도신경)은 기독교교리의 축약이며 핵심적 결론이다. <교리>dogma의 핵심은‘예수가 우리 죄를 위하여 십자가에서 피를 흘리시고 죽으셨다가 다시 부활하셨는데, 이것을 믿는 사람은 구원받고 천당 갈 것이요, 믿지 않는 자는 지옥에 갈 것이다’라는 것이다. 여기서 문제는 기독교인들이 성서를 읽기도 전에 이미 기독교 교리(=사도신경)를 은연 중에 전제하고서 성서를 읽는다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그것은 성서를 읽은 것이 아니라 내 머리 속에 있는 기독교 교리에 대한 재확인밖에 되지 않는다. 이것이 바로 성서는 교리의 시녀에 불과하다는 뜻이다.       

 

 

3. 진보적인 성서관

  성서를 열기도 전에 믿는 것이 아니라 성서에 대한 철저하고도 치열한 검증 뒤에 성서를 받아 들여야 한다. 이것은 인간으로서 충분히 가질 수 있는 의문점을 갖고 거리낌없는 솔직함으로 성서를 볼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성서는 열린 책이다. 거기서 키워낸 믿음이야말로 오히려 더욱 값진 신앙이 아닐까?  

  믿음은 인간의 이성을 파괴시키지 않는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그분 자신에 대해 알기를 원한다면 결코 우리 인간의 이성의 희생을 요구하지는 않으실 것이라고 본다. 왜냐하면 인간이 가진 이성 또한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기 때문이다.

  성서는 하나님께서 인간을 향한 구원(해방)사건을 담고 있다. 성서의 내용이 사실이냐 비사실이냐를 따진다는 것은 참으로 무의미하다. 애초에 성서기자는 그것이 사실이냐 비사실이냐에 신학적 관점을 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인간을 향한 구원의 메세지를 선포하는 데에 중점을 둔 것이다. 물론 그것은 이스라엘의 특수한 역사적 상황의 자리에서 나온 체험적인 신앙고백이다. 즉 성서의 문자 그 자체가 하나님 말씀이 아니라 하나님의 구원사건이 바로 성서가 되는 것이다. 그렇기에 성서는 성서를 담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중요한 점은 후자의 성서가 있었기에 전자의 성서에 권위가 있는 것이다.

  이제 성서를 읽을 때 이성에서 도피하지 않고 솔직하게 그 현실과 정면으로 마주서려면 정도의 차이는 있겠으나 분석, 비판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물론 그 비판은 부정이나 비판을 위한 비판이 아니라 확신어린 이해를 위한 성서비판이다. 성서는 사람이 읽고 이해하도록 씌어진 것이다. 이해없는 신앙은 맹목적이며 맹목적인 신앙은 불신앙이다. 즉, 성서를 잘못 대하는 태도 그 자체가 불신앙이며 죄가 되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성서에 대한 철저한 해부작업 곧 인간의 이성이라는 메스를 들고 이리 까보고 저리 까보고-쬐끔 심하게 말한다아∼- 그러다가 신앙인으로서 방황도 할 수 있을 것이고 그런 과정이 지난 뒤에야 비로소 진정하고도 크신 하나님의 깊은 뜻을 알 수 있으리라 본다.

이제 우리는 성서 안에 있는 오류와 모순들을 은폐하지 않고 정직하게 우리의 의문들을 들고 질문할 때 그 모순과 오류 뒤에 계신 진정한 하나님의 뜻을 발견할 것이라고 확신한다. 그것은 성서본문이 왜 그렇게 말하고 있는지에 대한 그 시대적 배경과 사회학적인 의미를 밝히는 연구를 필연적으로 거쳐야만 한다는 것이다. 만약에 지금 내가 믿고 있는 것이 확실한 참 진리라면 아무리 비판해도 아무리 까뒤집어도 참 진리가 아니겠는가! 이런 확신을 갖고 성서공부에 임한다면 무엇이 두려우랴.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무조건 믿습니다"라는 기도보다 "솔직히 잘 모르겠습니다"라는 기도가 오히려 하나님께서 더 어여삐 보실 것 같다고 생각한다. 성서는 닫힌 자들의 것이 아닌 열린 자들의 것이기에!

 

▷ 월요신학서당 「신약성서는 오늘 우리에게 이렇게 증언한다」/  안병무 「역사와 해석 」참조

 

 

 

(3) 성서경전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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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의 성서는 원본에서 번역된 것이 아니다. 원본은 지금 신,구약 통틀어서 남아있는 것이 하나도 없다.

 

1. 구약성서

구약성서의 원래의 히브리어 이름은 '토라(Torah), 네비임(Nebiim), 케투빔(Kethubim)'이며, 번역하면 「율법, 예언서 그리고 성문서집」이다. 경전화된 연대는 모세오경이 B.C 400년경에, 예언서가 B.C 200년경에, 성문서집이 A.D 100년경(또는 A.D 90년경)의 유대 랍비들의 얌니아 회의에서 최종적으로 정경으로 인준 받았다. 개신교는 이 얌니아 회의를 존중하여 이때에 인정받은 39권의 구약성서만을 오늘날까지 정경으로 채택하고 있다.

  그러나 한가지 알아야 할 점은, 종교개혁이전의 약1500년간은 개신교가 말하는 외경도 정경으로서 사용했다는 점이다. 그렇기에 오늘날의 카톨릭은 외경이라고 하지 않고 제2정경이라고 하여 구약성서에 포함시키고 있다. 원래의 구약성서는 히브리어와 약간의 아람어로 씌어져 있다.

 

2. 신약성서

초대 그리스도교인들은 이미 구약성서를 정경으로 하고 있었다. 하지만 거기에 또 다른 책들을 지어서 포함시키는 것은 생각하지 않았다. 그것은 초대기독교의 분위기가 예수의 재림을 대망한 종말론적 신앙이 지배적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다가 예수의 재림이 지연되자 예수사건의 목격자들이 예수의 사건을 문서화할 필요성을 느꼈으며 또한 당시에는 바울을 비롯한 초대기독교의 신앙의 글들이 여러 교회에 영향을 끼쳤기에 구약성서에다가 신약성서를 새롭게 정경화했던 것이다.

그러나 처음에는 신약성서의 정경화 작업이 너무나도 많은 책들로 인해 혼란스러웠으나, A.D 367년경의 아타나시우스의 서신에 나온 정경목록을 지지하여 27권의 신약성서를 확정지었다. 그 후 제롬의 라틴어 번역이 이러한 정경목록을 따라서 서방교회에 유포하여 오늘날에 신약성서가 우리 손에 들어 온 것이다. 원래의 신약성서는 '코이네'라는 헬라어로 씌여져 있다.

 


 

 1. 기독교 신앙을 보는 개괄적 이해 - 이것만큼은 꼭 볼 것!

 2. 성서관 - 성서를 성서답게! 성서를 우상화하지 말자..

 

○ 구약이야기

 3. 히브리의 하나님

 4. 구약의 법정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