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인가 대광고 강의석군 사태는 우리 사회에 많은 얘기들을 낳았던 대표적인 사건들 가운데 하나다.  특정 종교를 강요하는 문제, 이것은 아직도 해결되지 않고 있는 기존 기독교의 대표적인 병폐 중 하나라고 할 수 있겠다.

 

이번에 서울 도봉구에 위치한 서울외국어고등학교(교장 김희진)가 전일제 계발활동(CA) 시간에 학생들에게 특정종교 행위를 강요해 물의를 빚은 사실이 밝혀져 파문이 일고 있다.

 

 

 

 

언론에 보도된 바에 따르면, 서울외고는 지난 9월 16일 1·2학년 학생 모두를 강당에 소집해 전일제 계발활동 대신 서울 숭의교회 김동호 목사의 종교집회에 참석토록 했는데, 이 자리에서 김동호 목사는 강당에 모인 학생들을 대상으로 개신교식의 ‘예배’를 강요한데 이어 ‘사탄’, ‘미신’, ‘무교’ 등의 문구가 적힌 송판을 격파하는 퍼포먼스까지 연출했다고 한다. 그러면서 ‘원죄의 결과는 죽음 뿐’이라는 위협적인 섬뜩한 말도 서슴지 않았으며, 김동호 목사를 초청한 서울외고 김희진 교장(숭의교회 집사)은 이날 한 발 더 나아가 학생들에게 “이 강연은 서울외고가 미션스쿨로 나아가는 첫 발걸음이 될 것”이라고 특정 종교편향 행위를 노골화했다는 것이다.

 

물론 이에 대해 학생들은 즉각 반발했고, 특정종교를 선교라는 명목으로 강요하지 않도록 재발방지를 촉구했다. 학생들은 김 교장이 지난 3월 서울외고에 부임한 이후 올 초 기간제 교사 초빙 공고 시 자격요건을 ‘개신교’인으로 한정해 헌법이 보장한 직업선택의 자유를 침해하는 등 종교편향 행위를 노골화하고 있다고 우려했다.

 

 

아마도 한국 기독교는 이러한 행태들을 당분간 계속적으로 보여줄 것 같다. 물론 이에 대한 여러 비판적인 글이 있었기에, 나는 여기서 기독교인이 왜 그래선 안되는지에 대해 가장 중요한 한 가지 근거만 얘기해두고자 한다.

 

모든 기독교인들은 하나님을 믿는다. 그렇다면 기독교인들은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하나님조차도 정말 하지 않는 일을 해선 안될 것이다. 만일 하나님도 안하는 것을 하나님을 믿는다는 기독교인들이 공공연히 저지른다면 그것은 분명한 모순이 아닐 수 없다. 즉, 자신이 믿고 있는 하나님을 욕되게 해선 안되잖은가.

 

그렇다면 하나님도 하시지 않는 그런 일이라는 게 무언가? 사실 아무리 전지전능한 신이라고 하더라도 정말로 하지 않는 혹은 할 수 없는(왜냐하면 현상적으로 볼 땐 그렇게도 충분히 볼 수 있기에) 그런 일이 있다. 그것이 뭔가? 그것은 바로 존재의 자율적 결정들에 대한 강제적 침해다.

 

우리가 믿는 하나님이 아무리 높고 위대하신 하나님이라고 하더라도 존재의 자율적 결정만큼은 결코 강요적으로 터치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하나님은 우리를 로봇이나 태엽 감은 인형으로 지어놓으신 게 결코 아니다. 온전한 자율적 결정의 존재로서 창조하셨잖은가. 설령 현실 존재가 잘못된 결정을 내렸다고 하더라도 하나님은 충분히 이를 감수하고 계신 것이다.

 

 

만일 하나님이 존재의 자율적 결정까지 강요적으로 침해하고 계신 분이라면 그 하나님은 이미 파시즘적인 전제군주자 하나님 밖에 되지 않는다. 사실상 나 자신이 <초자연주의>를 받아들이지 않는 이유도 실은 그것이 하나님을 파시스트로 만드는 것에 해당되기 때문이다. 당신은 하나님을 파시스트로 만들고 싶은가? 그것은 하나님을 그릇되게 혹은 망령되게 하는 짓이잖은가.

 

따지고 보면, 이번에 서울외고에서 일어났던 종교 강요 사건도 김동호 목사나 교장 그 자신들이 ―일부러 그랬든 모르고 그랬든 간에― 실제로는 기독교의 하나님을 지독한 파시스트로 만드는 것밖에 되지 않음을 분명하게 알아야 한다. 하나님 그 자신조차도 하지 않는 일을 선교라는 명목 하에 저지르는 건 인간이 신을 팔아먹는 저급한 행태에 불과하다.

 

기존 기독교인들은 선교에 대한 개념자체가 잘못된 이해의 뿌리에 있다. 복음화는 <교리>dogma의 주입이 아니다. 그런 교리의 주입으로 사람이 참사람으로 되지도 않는다. 만일 진리가 있다면 그것은 강요적으로 접근되는 것이 아니라 강요하지 않아도 이미 우리를 충분히 끌어당기고도 능히 남음이 있음을 못믿는단 말인가?

 

선교는 진리로서 사는 것이다. 삶으로 나타나지 않는 온갖 전도나 선교들은 본질을 잃어버린 셈이다. '예수천당 불신지옥'으로 고래고래 지르는 것이 전도가 아니라, 일상의 삶 속에 뿌리박은 사랑의 실천, 그것이 바로 예수의 도(道)를 전하는 전도요, 선교인 것이다.

 

아마도 기독교배타주의 혹은 기독교제국주의나 정복주의 입장에 있으니 강요는 자연스러운 신앙의 일로서 여겨질테지만, 그러한 입장은 하나님을 욕되게 하는 것밖에 안된다. 기독교인들은 하나님을 믿는 신앙의 이름으로 정작 하나님을 죽이고 있는 짓을 저지르는 건 아닌지 심각하게 참회하고 반성해야만 할 것이다.

 

 

이제는 그 어떤 ‘무조건 믿어라의 교리’로서 먹히는 시대가 아니다. 그러한 순진한 시대는 이미 서서히 지나가고 있다. 아마 모르긴 몰라도 강요적으로 접근되는 전도나 선교방식이라면 앞으로도 더욱 힘들어질 것으로 본다.

 

제3세계처럼 오순절파가 잠시 득세하는 경우를 제외한다면, 이미 세계적으로 기독교는 상당한 쇠퇴의 길에 접어들었다. 유럽은 물론이고 미국이나 캐나다의 경우도 급속도로 기독교 인구가 줄어들고 있는 추세다. 더 이상 기존의 낡은 패러다임으로서 기독교가 먹히는 시대는 지나가고 있는 것이다.

 

참고로 오순절파의 경우도 사실상 그것은 일반 대중의 계급 상승에 대한 욕구와 관련이 있다. 그것은 어쩌면 생존까지는 정당할 수 있겠지만, 그 이상은 오히려 종교를 통해 자신과 가족의 욕심을 채우는 식의 기복종교화 흐름으로 치닫게 만들 위험이 높다고 하겠다.

 

이제 우리는 하나님을 존재의 자율성까지 침해하는 파시스트로 만드는 기독교가 될 것인가? 아니면 우리의 자율성까지 존중해주시는 인내어린 사랑의 화신으로서 주님을 섬길 것인가? 현재 21세기 기독교는 바로 이러한 전환기에 서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