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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목 : [토론회 발제문] 보수측 입장에서 보는 안티기독교 - 조성돈(실천신학대학원 교수)    
  글쓴이 : 관리자 날 짜 : 07-11-25 17:57 조회(57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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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사회 속의 기독교회


조성돈 교수 (실천신학대학원대학교)


        오늘날 한국사회 속에서 안티기독교가 성행하고 조직화되어지고 있는 현실에서 목사의 한 사람으로서, 또 신학교에서 신학을 가르치는 한 사람으로서 안타까움을 느낀다. 그것은 우리 개신교회가 이 땅에서 보여지고 있는 것이 문제가 있는 것에 의한 결과라고 생각되어지고 그러한 결과를 초래한 것에 대해서는 우리가 앞장서 반성해야할 바라고 생각한다. 어찌 보면 이 자리에서는 구구한 변명보다는 이 사회에 대해서 사죄를 하고 회개의 모습을 보여야함이 옳겠지만 자리가 자리인지라 감정이 아닌 냉철한 이성으로 이야기 거리를 나누어 보고자 한다.


1. 안티기독교가 제기하는 문제들


1) 교리적 지적들


 ① 성서의 모순

        그들은 성서의 권위를 전혀 인정하지 않으며 성서가 가지고 있는 여러 모순들을 지적하고 있다. 예를 들어서 예수의 탄생설화라든가 주변국들에서 나타나는 설화의 유사성 등이다.


 ② 교리적으로 기독교는 태생적으로 폭력적이다.

        성서에서 그들은 수많은 폭력적 장면들을 발견한다. 그리고 그러한 폭력을 정당화하고 있는 성경구절들을 내어밀며 기독교는 태생적으로 폭력적이라는 말을 한다. 이 폭력성에는 배타성도 함께 포함하고 있다. 선민사상에 의한 다른 민족에 대한 폭력이 내포되어 있다는 것이다.


2) 태도적 지적들


 ① 배타성과 공격성

        한국에서 자리하고 있는 여러 종교들 가운데 유독 개신교만이 다른 종교에 대해서 배타적이라는 것이다. 그들은 다른 종교를 믿는 사람들에게 개종을 강요하고 다른 종교에 대해서 폄하하는 발언을 하기도 한다. 심지어 기독교인들은 다른 종교의 상(像)들을 훼손하기도 한다. 예를 들어 학교에 세워진 단군상 목을 자르는 사건이 있었고 제주도에서는 불상의 목을 자른 사건도 있었다. 거기에 종교적인 이유로 성남 일화 축구단 추방 캠페인을 벌이기도 하고 불상건립 반대운동도 서슴치 않는다. 즉 배타성과 공격성이 맞물려 돌아가는 형태라는 것이다.


 ② 지나친 전도에 대한 지적

        개신교인들은 조용히 신앙생활을 하지 않고 남들에게 개신교를 믿으라고 강요한다. 특히 ‘불신지옥’이라는 섬뜩한 구호를 외치면 전도하는 모습에서 폭력성을 경험한다. 또 노방전도나 지하철에서의 전도행위에 대해서는 심한 반감을 가지고 있다. 그들은 지나친 전도행위로 인해서 자신들이 시간적 손실을 입고, 사생활을 침해 당하며 정신적, 재산적 피해를 입는다고 한다.


 ③ 반사회적이라는 것이다.

        개신교는 그들의 배타적인 집단주의를 형성하기 때문에 사회에 친화적이지 않다는 것이다. 더 나아가서는 자신들의 교회당을 짓기에 급급하지 사회적인 관심을 기울이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지난 과거에는 독재자들의 편을 들어 주며 조찬기도회 등을 통해 정통성을 인정해 주기도 했다.


 ④ 교회 지도자들은 왜 광신자들만 모여 있는가에 대한 질문이다.

        교회의 지도자들이 내리는 결정에 대해서 그들은 이해가 안 되는 부분들이 많이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들의 무리한 행동들이 그들의 이해에 닿지가 않는 것으로 보인다.


 ⑤ 개신교회는 왜 분열이 많은가.

        다른 종교들은 그렇게 심하지 않은데 유독 개신교는 수를 헤아릴 수 없는 교단들과 종파들이 존재하는지 이해가 안 된다는 것이다. 개교회들도 심심찮게 분열을 거듭하여 깨어지고 한 동네에서도 교회들이 전도한다고 서로 경쟁하는 모습이 좋게 보이지 않는 것이다. 특히 새로 입주하는 아파트 단지가 있으면 전쟁터를 방불케하는 그들의 모습에서 비종교적인 것들을 발견하는 것이다.


 ⑥ 교회는 교회건축을 추구하고 헌금을 강요한다.

        어느 안티기독인은 교회에 비치되어 있는 헌금봉투를 다 수거하여 그 수를 헤아려 보았다고 한다. 그랬더니 무려 14종류의 헌금봉투가 있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동네에서 보이는 교회들이 웅장하게 재건축되고 세워지는 모습을 보며 그들은 종교기관에서 기대할 수 없는 것이 아닌가하는 의문을 갖는다.


 ⑦ 교회는 비민주적이다.

        교회는 목사 개인에 의해서 운영되어지고 독재가 성행하는 곳이다. 그래서 거기서는 재정이 불투명하고 비리가 빈발하다는 것이다.


 ⑧ 목사들이 너무 많다.

        신학교들이 너무 많고 목사들이 너무 많이 배출된다. 그러다 보니 여러 추문들이 생기는데 목사들이 여신도들을 추행하거나 겁탈하는 일들이 대표적으로 많이 일어난다.


2. 간단한 해명과 분석


1) 교리적 부분


        성서는 기독교인들의 믿음과 신앙의 논리에 의해서 이해되어지는 책이다. 그것은 믿음의 대상이며 동시에 그 표상이며 상징이다. 그것은 단순히 도덕책이나 이해를 돕기 위한 교과서가 아니다. 따라서 그것을 현실의 논리로 이해하려 한다면 항상 심각한 모순에 부닥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따라서 성서는 성서로서 존재하게 하고 논의의 대상으로 삼고 싶지는 않다. 이것을 독선이라고 할지 몰라도 종교적 신비라는 부분으로 인정해 주길 바란다.

        그리고 성서의 내용이 태생적으로 폭력적이라는 부분은 일부분 인정하면서 그 한계를 지적하고 싶다. 먼저는 이스라엘이라는 광야의 조그만 민족의 생존법에 의한 현실적 대안이다. 물이 적은 광야에서 전쟁은 씨족이 물을 차지하여 살아남기 위한 생존법이었다. 그리고 인권이라는 것이 발달되어진 현실의 잣대로 수 천 년 전 과거의 전쟁을 재단한다는 것은 전제의 오류이다. 그리고 그러한 전쟁은 광야에 터해 있는 이스라엘의 특수한 상황과 선민의식의 융합에서 나타난 현실인데 문제는 기독교가 중시하는 것은 구약을 지난 신약의 새로운 약속에 있다는 것이다. 즉 구약의 율법이나 가르침들은 예수 그리스도 이후의 시대에서 재해석 되어져야 한다는 것이 성경의 가르침이다.

신약에 이르러서는 그러한 전쟁에 대한 언급이 없다. 타 종교를 믿는 이방민족 가운데서 신앙생활을 했던 바울의 공동체에서는 그러한 지적보다는 신앙인으로서 어떻게 살아야할 것인가에 대한 가르침이 더 많이 나오고 있다. 이러한 연결선을 잃어버리는 성경 읽기는 한계를 가지게 된다. 어쩌면 이것이 앞에서 지적한 신앙과 믿음의 논리이며 그 성경읽기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2) 태도적 부분


        이 부분에 대한 지적은 많은 부분 우리의 반성과 각성을 요구하는 부분들이다. 어쩌면 필자에게 교회적 대표성이 있다면 한국사회에 사죄의 반성을 하고 싶은 심정이다. 특히 반사회적 행동들이나 윤리적인 잘못들이 동반된 것들에 대해서 해명보다는 무조건적인 반성과 사죄를 하고 싶다. 사실 이러한 부분들은 필자와 같이 교회의 개혁을 이야기하는 사람들에게서도 비슷한 어조와 강약으로 언급되고 지적되어 왔던 것들이기에 지적의 아픔과 함께 동감하는 부분들이 적지 않다.

        그러나 조심스럽게 몇 가지에 대해서는 해명하고픈 바가 있다. 한국교회의 문제되는 것들은 대부분 한국교회의 특별한 부분들이다. 필자의 오랜 외국생활에 비추어볼 때 그러한 사건들이나 태도들은 외국의 교회에서 잘 드러나지 않는 것들이다. 그러면 이것은 한국교회 특유의 사건으로 보아야할 것인데 이것은 상당 부분 한국사회의 모습들이 투영되어져 있는 것들이라는 것이다.

교회의 일들이라는 것이 상당부분 교인들의 호응에 의해서 움직이게 되어 있다. 목사가 독재를 하는 것도 같고 종교 특유의 독단으로 움직이는 것 같지만 목사는 교인들의 의견을 직접적이던 간접적이던 그의 목회와 사역에 반영하게 되어 있다. 그렇다면 목사를 그렇게 움직여간 것은 바로 성도들이고 그 성도들은 한국사회의 구성원들이라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한국사회 특유의 감성주의가 성행하고 선동과 과격함이 그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물론 종교기관이라는 교회가 신앙심으로 그러한 고리를 끊어야함이 옳겠지만 개신교는 상당히 열려있는 종교이기에 교인 대중이 그러한 수준에 까지 이르지 못한 것이다. 그러다 보니 그 공동체가 한국사회를 반영하고 그러한 특색들이 한국교회라는 특별한 집단을 만들어 낸 것 같다. 즉 필자의 주장은 교회만이 아니라 그를 포함한 한국사회의 문제를 이야기함이 옳을 것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기독교가 반사회적이라는 주장에 대해서는 좀 강하게 반대의 의견을 주장하고 싶다. 한국에서 활동이 활발한 구호단체들은 대부분 개신교에 뿌리를 두고 있다. 예를 들어 굿네이버스, 월드비전, 국제기아대책기구, 해비타트, 컴패션 등이 대표적인 개신교 정신에 입각한 구호단체들이다. 이러한 단체들이 교회적 배경에서 생겨나고 성장하였지만 이후 사회적으로 잘 동화가 되어 왼손이 하는 일을 오른손이 모르게 진행되어져 한국사회의 대표적인 구호기관이 되어졌다.

현재 이들은 국제적으로 또 북한에 대해서 많은 일들을 감당하고 있다. 굿네이버스의 경우 그들의 홈페이지를 참조해 보면 기독교적 정신에 입각하여 가난하고 소외된 지구촌 이웃들에게 관심을 가지면서 전문적으로 인간 문제를 해결하고자 한다는 단체의 취지를 밝히고 있다. 현재 이들의 연간 수입은 375억원에 달하고 국제적으로도 UN경제사회이사회의 인정으로 NGO 최상위 지위인 포괄적협위지위(General Consultative Status)를 부여받은 국제적 구호단체로 그 위상을 가지고 있다. 현재 국내 뿐만 아니라 세계 19개국에서 구호활동을 펼치고 있고 북한에서의 활동은 활발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러한 기독교적 배경을 가진 단체들의 활동은 현재 교회의 울타리를 벗어나 사회적으로도 인정을 받는 기관들로서 그 의미를 가지고 있다고 하겠다.

        그 외에도 일반적인 사회복지 부분에서 개신교의 참여도 상당히 높다. 주요종교 사회복지법인 및 시설을 비교하면 개신교·천주교·불교 등 3개 종교의 사회복지법인 또는 시설 중에서 개신교가 차지하는 비율은 60~80% 정도로 나타나고 있다. “한국사회복지사 기초실태조사보고서”에 따르면 현재 우리나라의 사회복지사는 약 5만여 명으로 추산하고 있는데 1999년 말까지 사회복지사 자격증 교부자는 35,138명이고 사회복지 현장 종사자는 15,000명으로 추산된다. 이중에서 개신교인 사회복지사는 44.3%로 전체인구에서 개신교인구가 차지하는 비율의 2배 이상이 된다. 이러한 수치들은 우리 개신교가 알려진 바와는 달리 적극적으로 사회봉사에 참여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고 우리 교인들 역시 사회봉사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또 시민사회단체들에도 많은 일들을 감당하고 있다. 민주대 반민주의 패러다임 이후 시민사회가 구성되기 시작한 80년대 후반 생겨난 ‘기독교윤리실천운동(1987)’이나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1989)’은 기독교적 배경에서 생겨나서 일반적 운동으로까지 나아간 성공적 사례이다. 이들은 아직 시민사회가 형성되지 못했던 당시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한 것이고, 그러한 일들이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 사례라고 할 수 있다. 그 당시 이 단체들이 생겨난 데는 개신교회들의 배경과 후원, 그리고 인적자원의 뒷받침이 있었다는 것은 우리가 잘 아는 바이다.

        최근 필자는 시민사회에 대한 연구를 진행하며 일반적인 NGO에서 활동하는 기독인들을 만나 인터뷰를 진행해 보았는데 이들의 증언은 시민사회에 적지 않은 부분들을 기독교인들이 감당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특히 현재 대표적인 시민단체에서 일하는 분과의 인터뷰 과정에서는 흥미로운 이야기를 들었다. 그의 이야기는 그 단체의 자체연구에 의하면 현재 그들을 돕고 있는 회원들의 약 30% 정도가 개신교인이라는 것이다. 그의 설명은 ‘지갑을 열어본 사람만이 돈을 내게 된다’는 것이다.

즉 헌금을 통해서 남에게 돈을 내어본 사람들이 다른 사람들을 위해서 도울 줄 알게 된다는 것이다. 이러한 인터뷰를 통해서 알게 된 것은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해서 고민하고 있고 그러한 고민은 이 사회에서 단순히 경제적인 부와 평안한 삶에의 추구가 아니라 가치 있는 삶에의 헌신으로 나타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한 결과가 결국 이러한 사회적 헌신을 요구하는 시민단체들 속에서 나타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3. 안티기독교에 대한 분석과 질문들


        안티기독교의 역사는 대략 십 여 년으로 볼 수 있을 것 같다. PC 통신이 유행하던 시기에서부터 간헐적으로 나타나기 시작하여서 1999년부터 사이트를 개설하여 사람들을 모으기 시작했고 2001년 후반부터 다음(Daum) 등에서 안티기독교 카페들이 우후죽순으로 나타나기 시작하였다. 이후 2003년 ‘반기독교시민운동연합’이라는 단체가 출범하여 중심적 역할을 하였고 현재는 자체 사무실을 갖추고 ‘우리는 왜 기독교를 반대하는가?’라는 책도 출판하였다.

이들이 이렇게 성장하게 된 배경은 2000년 한 기독교신문에 의해서 이들의 활동이 소개되면서 기독교인들이 안티기독교에 대해서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그 사이트를 방문하여 비난적 글을 다수 게시함으로 오히려 전선(戰線)을 형성한 것이었다. 그리고 두 번째로 계기가 있었는데 2002년에 있었던 월드컵으로 그 당시 기독교가 보였던 여러 가지 비사회적인 행동들이 계기가 된 것으로 보인다. 예를 들어 붉은 악마 반대 캠페인이나 기독교의 배경을 가진 선수들의 부각 등이 그들을 자극하고 대중적 전선을 형성하게 만들었다.

        결국 이러한 배경으로 볼 때 안티기독교의 형성은 많은 부분 개신교가 전선을 만들고 그들에게 호전적 대응을 한 것이 동인이 된 것이다. 특히 2002 월드컵에서 보인 개신교의 태도는 비사회적인 이미지를 심어주어 많은 사람들에게 반감을 사게 만들었고 무엇보다도 당시에 나타났던 참여세대들에게 공격의 빌미를 주었다. 이렇게 개신교가 대응의 실수를 한 것은 분명 개정의 필요가 있다.

        또 안티기독교의 형성에 있어서 중요한 점은 무엇보다도 인터넷이라는 매체의 힘이다. PC 통신의 발달과 함께 시작하여 인터넷의 활발한 보급과 함께 나타난 것이 안티기독교라고 할 수 있다. 어떻게 보면 안티기독교는 인터넷이 발전한 지난 10여년의 산물이라고 할 수 있다. 그들은 인터넷을 중심으로 새롭게 형성된 문화의 결과이고 과정이다. 그러나 문제는 그것이 건전한 문화의 결과가 아니라 ‘Junk 문화’로 나타났다는 것이다. 인터넷 문화라는 것이 전체적인 문화에 있어서 한 하위문화(Subculture)를 형성하고 있다고 본다. 그 나름의 독자성과 독특성을 가지고 있고 특별한 규칙과 논리로 하나의 문화를 형성하는 것이다. 이러한 다양한 문화가 있기 때문에 사회가 다양하고 건전해질 수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문제는 그러한 다양성과 독특성이 전체사회의 통합에 도움이 되거나 건전한 방향으로 나아가는데 디딤돌이 되어야하는데 그것이 반사회적이거나 비사회적인 문화를 형성할 수 있는 위험이 있다. 바로 그러한 위험성에 가장 많이 노출되어 있는 것이 인터넷 문화라고 할 수 있다. 이미 알려진 바와 같이 익명성의 가면에 가리어 걸러지지 않은 폭력성이 드러나는 것이나 반문화적인 콘텐츠들의 전달들이 그러한 예라고 할 수 있다. 바로 이러한 것들을 합하여 ‘Junk 문화’라고 할 수 있다.

        안티기독교도 비슷한 양태를 보여주고 있다. 첫째 그들의 호전성이다. 인터넷 각 곳에서 도전적 언사를 사용하며 기독교인들과 전선을 형성하고 있다. 그들의 공격성은 각 처에서 기독교인들을 자극하고 있으며 미천한 언어를 사용하며 Junk 문화를 형성하고 있다. 예를 들어 그들이 자주 사용하는 개독교, 똥경, 먹사 등의 언어는 상당히 자극적이고 기독교인이라면 심한 모욕감을 느낄 수밖에 없는 것들이다. 그러나 이들은 이러한 언어를 아주 자연스럽게 사용하고 있다. 이러한 언어의 사용뿐만 아니라 그들은 기독교 박멸이라는 아주 전투적인 언어를 사용하기도 한다. 예를 들어 반기독교시민운동연합(이하 반기련)의 창립선언문에 보면 기독교 박멸이 그들의 존재이유이고 실천적으로 “이 사회에서 기독교가 더 이상 패악질을 일삼지 못하도록 기독교를 박멸”하겠다는 것을 천명하고 있다. 그들의 사이트를 둘러보면 자주 등장하는 단어가 바로 ‘개독박멸’이다. 이것이 그들의 정체성이라고까지 이야기하고 있다. 과연 이러한 태도들이 이 사회에서 의미 있는 하위문화라고 이야기할 수 있을까 의문이다.

        그들의 이러한 공격성은 단순히 익명성에 의한 언어적 폭력에서 그치지 않는다. 지난 아프가니스탄 피랍사태 때는 인터넷을 통해 알게 된 3명의 네티즌들이 피랍자중 한 사람의 싸이월드 홈페이지에서 내용을 인용하여 그것을 왜곡하여 영문으로 번역하였다. 그리고 그것을 알자지라 방송이나 CNN 등에 보냈고 심지어 탈레반 홈페이지의 운영자에게 메일로 전달하였다. 그들이 보낸 내용은 ‘아프가니스탄 무장단체 탈레반에 납치된 인질은 죄값을 치러야 한다’ (한국일보 2007.8.11)는 것이었다. 이것을 다른 말로 하면 우리가 그들을 잘 아는데 그들은 기독교 선교를 하러 간 것이니까 죽여 달라는 내용과 별반 다르지 않다고 본다.

이것은 반기독교의 문제가 아니라 인륜의 문제이며 인권의 문제이기도 하다. 이러한 글을 전달한 자들은 불구속 입건되었지만 이러한 윤리적 무감각, 어찌 보면 인터넷의 가상현실과 실제를 구분하지 못하는 소영웅주의가 큰 문제라고 본다. 마치 이것은 폭력적 컴퓨터 게임에 물든 아이가 칼을 들고 사람을 찌른 것과 같은 위험한 행동이지 않은가하는 생각이 든다.

또 다른 사례지만 중국에서 만난 기독교인들을 공안에 신고했다고 당당하게 밝힌 네티즌도 있는데 그들의 신념이 그 사람에게 어떠한 결과를 낳았는지 그들은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다. 과연 대한민국에서 예수 믿는다는 것이 이렇게 생명이 걸린 문제인지 실로 그들의 행동에 대해서 두려움이 인다.

 둘째는 유언비어의 문제이다. 네티즌들의 못된 속성 중에 하나는 단순한 논리들을 가지고 여러 가지 정황들을 짜 맞추어 유언비어를 만들고 하나의 스토리를 만들어 간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최근 문제가 되었던 ‘9·11 테러 자작설’이나 ‘KAL기 사건 조작설’ 등이 있다. 정말 그럴 듯 해 보이는 정황과 얼개 짜기로 이루어지는 그들의 스토리 만들기 유희는 그들 사이의 부풀리기를 통해 사람들의 인식을 그 밑바닥에서부터 흔들어 놓기도 한다.

바로 이러한 쇼킹을 즐기는 이들이 있는 것이 사실이다. 이것은 바로 지난 아프가니스탄 피랍사태 때 극에 달하였다. 이미 이야기한 탈레반 메일 사건에서는 개인의 홈페이지를 도용하여 사용하였다. 거기에는 당사자가 2005년에 아프가니스탄을 다녀오며 실은 여행기가 있었는데 이들은 그것을 당시(2007년) 사건의 일 인양 진실을 호도하였다. 거기서 당사자가 ‘거지뮬라’라는 성인의 이름을 보았다고 했는데 이들은 영어로 거지(Begger) 뮬러를 보았다고 했고 그가 기도했다는 것도 일부러 ‘기독교 식으로’라고 설명을 붙여서 탈레반과 알자지라 방송에 보낸 것이다.

그 외에도 샘물교회 사건에서 있지도 않았던 정부의 경고가 30여 차례 있었다고도 하고 비행기 티켓을 취소시켰다고도 하고 심지어는 전용기를 보내어 돌아오라고 했는데 그들이 거부했다고 거짓을 일삼았다. 이러한 스토리 창조식의 거짓은 이 사회의 상식을 무너뜨리고 가치의 혼돈을 가져오게 될 것이다. 실제적으로 아프가니스탄 피랍사태 당시 이러한 유언비어 때문에 얼마나 많은 혼돈을 가져 왔는지 대한민국 모두가 당사자일 것이다. 또 이러한 유언비어가 당사자들에게 얼마나 큰 해악이 되었는지, 그리고 피랍자들의 무사귀환을 간절히 원했던 가족들에게 얼마나 큰 절망으로 다가 왔는지 모른다.

        셋째는 허황된 공동체의 형성이다. 가상의 현실에서 그들만의 커뮤니티를 형성하여 그들 나름의 주제와 논리를 생산해 내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황우석 전 교수에 대한 지지다. 물론 공식적 지지라고는 할 수 없지만 자연스럽게 형성되어진 그들의 논의들은 황우석 전 교수에 대한 옹호와 지지였고 그를 밀어낸 것의 배후가 기독교라는 제3자의 입장에서 볼 때는 황당하기 그지없는 주장들이 난무한다. 이것이 허황된 공동체의 진실이 아니겠는가.

그들만의 억지스러운 주장들과 그것에 대한 끝없는 찬반들, 그리고 억지스러운 논리와 비약들이 나타나고 있다. 또 그들은 민족의식이나 애국의식을 이야기하는데 그러한 논리가 애국적 과학자 황우석이라는 허황됨으로 연결되기에 믿겨지지 않는 것이고 그들이 믿는 그 공동체는 인터넷 상에서 이루어진 집단주의에 지나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아마 이러한 것에 대해서는 깊이 생각해 보아야할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인터넷 문화 속에서 생각해 볼 때에 안티기독교에 바라는 것은 그들 스스로가 조직되어진 단체이고 그렇기에 사회적 책임을 공유하려고 한다면 Junk 문화의 재생산에 치중하지 말고 건전한 인터넷 문화를 형성하는데 일조해 주기를 바라는 것이다. 그렇게 될 때 한국사회의 민주적 의견수렴의 과정에 한 기둥이 될 수도 있을 것으로 본다.


4. 결론: 민주사회 속의 기독교회


        개인적으로는 안티기독교 속에서 하나님이 선지자들의 시대에 이방민족들을 들어 이스라엘을 치시고 그들의 부끄러움을 드러나게 한 것과 같은 하나님의 섭리를 보게 된다. 기독교가 이 땅에서 부끄러운 모습들을 너무 많이 보였고 타 종교에 대해서 너무 배타적인 일들을 저질렀던 것도 사실이다. 그리고 논리적 빈곤과 비합리적인 삶의 태도들, 그리고 전도한다는 명분 아래 나타났던 무리했던 것들이 있었음을 고백하여야할 것이다.

그러나 재밌는 사실은 안티기독교를 살펴보면서 개신교회가 저질렀던 적지 아니한 것들이 안티기독교 세력들에 의해서 동일하게 나타나고 있다는 것이다. 아니 어떤 면에서는 그 도가 더하다는 사실도 경험하게 된다. 배타성, 공격성, 비합리성까지 어쩜 그렇게 닮아 가는지 모른다. 더 재밌는 사실은 안티기독교가 지적하는 일들에 대해서 개신교가 일부의 일이라고 하지만 그들이 말이 안 된다고 하는 것처럼 그들의 비윤리적 대응들에 대해서 지적을 하면 안티기독교 역시 그들은 일부의 소행이라고 변명을 한다는 것이다. 

욕을 하면서 닮아간다고 하더니 비슷한 지점에서 서로 만나고 있는 것이 아닌가하는 생각이 든다. 어찌 보면 그들 역시 종교화 되어지고 그들이 신봉하는 안티기독이라는 것들이 교리화되어 있는 것은 아닌지. 그래서 유사종교로서 이제 그들의 공동체에, 그리고 그들의 마음에 자리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궁금하다.

        민주사회에서 현재 한국사회가 겪고 있는 문제는 소통의 어려움이다. 아직 의견을 제시하고 통합하며 수렴해 나가는 과정이 부족하다. 담론이라는 수준 높은 논의까지는 아니더라도 서로의 의견을 존중하고 인정해 가는 일들이 아직 서투른 것이 한국사회의 한계이다. 좀 더 이야기해 보자면 서로의 존재에 대해서 인정하고 배려하는 일들이 부족하다. 사람에 대한 사랑과 최소한의 인간 존엄의 권위들, 모든 사람들이 인간답게 살 수 있는 권리들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것에 인색한 것이 우리들의 문제다.

아프가니스탄 피랍사태가 해결되었을 때 독일교회연합(EKD)의 대표가 성명서를 발표했었다. 그에 따르면 종교의 자유는 인간의 기본권에 속하는 것이고 선교라고 하는 것은 바로 이 종교의 자유에 속하는 것인데 어떻게 국가가 탈레반에게 선교의 포기를 약속해 줄 수 있는 것이냐하는 것이다. 인간의 기본권을 국가가 침해했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이다. 이 성명서를 읽고 필자는 뒷통수를 쿵하고 맞은 느낌이었다. 사람 살아 돌아오는 것만 생각하고 그런 협상을 이끌어준 정부가 정말 감사했지 그런 생각은 해 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아마 이것은 필자만의 어수룩함뿐만 아니라 대한민국이 집단주의의 공리주의에 빠져서 생각해 보지 못한 부분이 아니었는가하는 생각이 든다. 정말 대한민국이 민주국가라고 한다면 적어도 그의 국민 하나하나가 기본권이라도 챙겨가면서 인간답게 살 수 있도록 해 주어야할 것이다.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그리고 시민들의 권리가 살고 그들의 건전한 참여가 전제되는 사회가 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는 나의 신념과 생각을 집요하게 강요하는 집단주의의 망령에서 벗어나야할 것이다. 이것은 종교의 태도에서도 반성할 부분이 있고 반종교적인 태도에서도 반성할 부분이 있다고 본다.

        어느덧 개신교의 문제와 그에 대응되는 문제는 한국사회를 보는 중요한 틀이 되었다. 필자가 경험이 있는 유럽의 경우는 대부분 종교가 그렇게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지 않다. 벌써 오래전부터 세속화에 대한 동의들이 일어나고 있다. 그런데 한국사회는 특이하게, 특히 최근 사회가 발전되었다고 할 수 있는 기간 동안 개신교의 문제가 사회를 이해하는 중요한 틀이 되고 있다. 아마 이것은 세계에서 그 역할을 다한 것으로 여겨지는 이념의 문제가 분단국가에서 특이하게 오늘날 더 첨예화되고 있는 것과 같은 맥락에 서있는 것으로 보이기도 한다.

이것은 어떤 면에서 참여를 중시하는 P(Participation) 세대의 등장과 무관해 보이지 않는다. 세대를 불문하고 나타나고 있는 참여세대들은 그들을 결집시켜줄 테마를 찾아서 움직이고 있다. 때로 그것은 종교의 문제가 될 수 있고, 때로는 이념의 문제가 될 수 있다. 논의가 첨예해지는 곳을 찾아서 그들은 움직이고 결집되어지는 것이다. 이러한 배경으로 대한민국은 아직 종교와 이념의 문제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오히려 깊숙이 그 장(場)으로 빠져들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한국사회가 더 성숙해 지기 위해서 참여는 귀한 것이다. 그러나 더욱 성숙되어지기 위해서 좀 더 건전한 주제의 발굴과 건전한 토론의 문화가 자리 잡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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