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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목 : 인간 본성에 대한 기존 신학의 문제점.    
  글쓴이 : jojn 날 짜 : 08-03-05 10:31 조회(46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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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본성 가능성에 대한 새로운 이해.

 

1. 인간 본성에 대한 기존 신학의 문제점.

 

가. 칼빈신학이든 웨슬리신학이든 인간의 전적타락에 대해서는 동의하는 듯하다.

(1) 전적타락을 주장하는 설이 근거하는 성경구절은 대략 아래와 같다.

에베소서2:1 너희의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도다

에베소서2:2 그 때에 너희가 그 가운데서 행하여 이 세상 풍속을 쫓고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랐으니 곧 지금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서 역사하는 영이라

에베소서2:3 전에는 우리도 다 그 가운데서 우리 육체의 욕심을 따라 지내며 육체와 마음의 원하는 것을 하여 다른 이들과 같이 본질상 진노의 자녀이었더니

에베소서2:4 긍휼에 풍성하신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그 큰 사랑을 인하여

에베소서2:5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 (너희가 은혜로 구원을 얻은 것이라)

예레미야17:9 만물보다 거짓되고 심히 부패한 것은 마음이라 누가 능히 이를 알리요마는

마가복음7:21 속에서 곧 사람의 마음에서 나오는 것은 악한 생각 곧 음란과 도적질과 살인과

마가복음7:22 간음과 탐욕과 악독과 속임과 음탕과 흘기는 눈과 훼방과 교만과 광패니

마태복음23:27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회칠한 무덤 같으니 겉으로는 아름답게 보이나 그 안에는 죽은 사람의 뼈와 모든 더러운 것이 가득하도다

시편51:5 내가 죄악 중에 출생하였음이여 모친이 죄 중에 나를 잉태하였나이다

롬 3:11-18.

 

(2) 이 주장이 의미하는 바들.

(가) 어떤 인간도 스스로 하나님을 찾을 수 있는 가능성은 하나도 없다.

(나) 본성이 부패하여 우리 스스로는 결코 하나님을 찾으려고 하지 않는다.

(다) 인간이 영적으로 죽어있기 때문에 오직 하늘의 아버지께서 이끌어 주실 때에만 우리가 예수께 나아갈 수 있는 것이다.

 

나. 전적타락 교리와 인간의 본성에 대한 이해.

(1) 칼빈적 인간본성.

이 교리의 논리로 말하면 인간구원은 완전히 하나님의 일이다. 왜냐하면 인간에게는 하나님의 구원을 선택할 능력이 없기 때문이다. 구원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일하심이라는 것이다. 어떠한 인간도 스스로 하나님을 찾을 수 있는 가능성은 하나도 없다. 하나님의 진리는 구원받기 전의 인간은 영적으로 죽은 자란 사실을 명백히 선언하고 있다. 구원받기 전의 인간은 영적으로 죽어 있었다는 뜻이다. 오직 하늘의 아버지께서 이끌어 주실 때에만 인간은 예수께 나아갈 수 있는 것이다. 성경에 비추어 볼 때 인간에게는 자유의지 조차 없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인간은 영적으로 죽은 자로서 하나님께서 인간을 이끌지 않으시면 도저히 구원받을 수 없다. 전적으로 하나님의 역사이다.

인간이 구원을 받게 될 때 예수 그리스도만 절대적으로 의지하고 아무런 행위를 덧붙여서는 안된다. 왜냐하면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구원에 필요한 일을 완전히 성취하셨기 때문이다. 인간이 구원받기 전까지는 인간의 노력으로 천국문에 들어가려고 애를 쓰게 되지만 일단 구원을 받게 된다는 것은 우리의 모든 노력을 그만 두고 모든 일을 이루신 그리스도만을 단순히 믿게 된다는 뜻이다. 인간에게는 자유의지가 없다. 하나님께서 인간을 이끌지 아니하시면 아무도 이 약속에 대하여 반응을 보일 수 없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복음을 듣고 응답한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인간의 귀를 열어 주실 때에만 가능한 일이다. 들을 귀 역시 하나님께서 주셔야만 한다. 하나님께서 구원하시기로 작정한 자만이 듣는 귀를 가지게 된다는 것이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인간에게 자유의지가 있다는 전제아래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영접할 것을 전파하고 있다. 이는 매우 위험스러운 일이다. 인간이 그리스도를 영접하게 되는 것은 하나님께서 그를 인간에게 선물로 주셨을 뿐 아니라 인간의 마음과 의지까지 이끄셨기 때문이다. 곧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구원을 주신 것이다. 따라서 인간은 아무런 노력이나 행위에 관계없이 이 구원의 선물을 받게 된다.

 

(2) 웨슬리적 인간본성.

웨슬리의 구원론은 모든 인간이 처해 있는 죄인으로서의 상태에 관한 그 자신의 이해와 관련을 맺고 있다. 그가 이해하고 있는 바의 인간의 상태는 세 가지로 설명이 되는데, 첫째는 자연적인 인간의 상태이고, 둘째는 율법 아래에 있는 인간의 상태이고, 셋째는 은총 아래에 있는 인간의 상태가 그것이다. 이 중에서 특별히 자연적인 상태의 인간에 대한 진술은 인상적이다. 웨슬리는 자연적인 상태의 인간은 자신의 속에 하나님의 은총이 역사하고 있음을 알지 못하고 있는 상태의 인간이라고 진술하였다. 자연인은 전적으로 타락한 인간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상태는 다른 말로 원죄 즉 죄의 세력에 사로 잡혀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이 원죄로 인해서 사람은 교만하여 하나님께 돌려야 할 영광을 인간 자신에게 돌리며 인간의 생각이 하나님의 뜻보다 더 우선되어 자신이 원하는 대로 자신이 구원을 이루려고 한다. 자기를 사랑하여 육체의 정욕대로 움직여 세상의 것으로 행복을 추구한다.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 즉 칭찬받고 싶어한다. 또한 우상 숭배(하나님보다 다른 것을 더 존중하고 필요로 하며 영광을 돌림)의 죄를 저지른다. 이로써 인간은 전적으로 타락한 존재이며 죄의 결과로 인간은 심판의 대상인 것이다. 그래서 더 이상 자연 상태의 인간은 하나님을 알 수 없다.

최초 인간 아담은 선택의 자유를 오용하여 창조주의 뜻을 따르기보다 자기 자신의뜻을 행하기를 선택했다(창3:1-7). 그 순간 그는 하나님의 형상 가운데 ‘도덕적’ 형상을 완전히 상실하여 의와 거룩이 전혀 없는 완전한 죄인이 되었다. 그리고 ‘본질적 형상’도 왜곡되어 그 영혼이 하나님으로부터 분리된 상태에서 그의 이해력은 하나님을 알아보지 못하며, 그의 의지는 하나님으로부터 독립되어 자기 뜻을 추구하며, 그의 감정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이 아니라 자기가 기뻐하는 것을 따르게 되었다.

인간의 영혼, 정신, 모든 내적 및 외적 움직임의 원리가 부패했고, 거기서 나오는 모든 기질과 생각과 행동이 악하며, 그의 본성속에는 선과 악이 석여 있는 것이 아니라, 그의 본성은 전적으로 악하다. 이 악한 상태는 가끔 중단되어 선한 상태로 바뀌다가 다시 악해지고 하는 것이 아니라, 지속적으로 동일하게 악하다.

 

(3) 중생전과 중생 후의 인간의 본성자체의 성장 가능성에 대한 문제.

기본적으로 인간 그 자체로서는 그 본성 자체가 완전히 가능성 없는 완전 무능력의 존재이다. 칼빈은 인간의 본성자체가 완전히 무능력한 자유의지 자체가 있을 수 없는, 하나님을 알고 선택할 수 있는 능력이 전혀 없는 완전히 타락하여 본성자체가 부패하여 버렸다고 이해한다. 웨슬리 역시 선행은총이 없이는 완전히 타락한 존재라고 한다. 선행은총으로 인간의 본성이 어느 정도 회복되어 자유의지를 가질 수 있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선행은총이라는 하나님의 능력을 덧입은 상태에서의 선택 의지라고 한다. 인간의 본성 자체는 선행은총 가운데 있을지라도 여전히 완전타락 완전무능이라는 것으로 이해된다. 마치 옷과 같다고 해야 할 것이다. 옷 그 자체로는 어떤 사람의 모습을 만들어내지 못한다. 옷의 모양은 사람이 입을 때에야, 그 모양이 생긴다. 옷 자체의 본성에는 변함이 없으나 사람이 옷을 입어 줄 때, 피동적으로 그 모양이 만들어진다. 이처럼 인간도 선행은총 가운데 선택할 수 있는 자유의지도 피동된 의지라는 것이다. 인간 그 자체의 실력으로서의 의지 회복이 아니라 하나님의 선행하시는 은혜에 피동된 의지일 뿐이다.

인간에게 악한 상태가 일시적으로 중단되어도 인간 본성은 선한 상태로 바뀔 수가 없다는 것이다. 오로지 하나님의 자신이 은혜로써, 즉 인간 편에서의 무엇 때문에게 아니라 오로지 하나님 자신의 생각과 능력으로써, 원죄상태의 인간에게 일시적으로 선한 상태가 있게 하신다. 그런데 이것은 그 인간의 완전 부패한 본질에서 일어난 어떤 종류의 변화가 아니다. 칭의 전에는 원죄 상태의 인간 본질 자체가 악한 상태에서 선한 상태로 잠시라도 변화되는 일은 없다. 양심자체도 인간 자체 속에 내재하는 어떤 기능의 활동이 아니라, 바로 하나님 자신이 활동하고 계시는 현상이다.

칼빈이나 웨슬리의 신학적 논제들을 모두 살펴보자는 것이 아니라, 다만 그들이 인간의 본성적 가능성에 대하여 어떻게 이해하고 있는지 정리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칼빈이 완전타락으로 인하여 인간이 자유의지를 가진다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다고 하는 것이나, 웨슬리가 말한 선행은총 가운데 있는 자유의지나 모두 말하고자 하는 것은 인간 그 자체는 완전타락 하였다는 것이다. 그래서 완전히 무능하다는 것이다.

중생후에도 인간의 본래적 가능성은 여전히 없는 것인가? 성화되고 성결되는 것이 이신칭의와 같이 거룩함의 전가를 받는 것일 뿐인가? 칼빈은 여전히 그렇다고 대답할 것이다. 그러나 웨슬리 경우에 있어서는 좀 숙고하여야 할 문제이다. 웨슬리가 말한 글들을 보도록 하자.

중생하기 전의 인간은 본성의 전적부패와 전적무능 상태에 있다. 이것은 외적 내적 죄를 모두 이길 수 없는 상태, 오히려 외적 및 내적 죄에 대하여 종처럼 묶여서 섬기는 상태에 있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중생 이후에는 본성의 전적부패와 전적무능의 상태로부터, 즉 원죄로부터 벗어났다고 웨슬리는 본다. 그래서 “그는 바로 칭의 받은 그 순간부터” 즉 중생한 그 순간부터, “외적 죄나 내적 죄를 모두 이길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다”고 웨슬리는 말한다. 즉 외적 죄와 내적 죄의 지배로부터 벗어나서 이길 수 있는 위치에 있게 된 것이다. 그러므로 중생한 자에게 본성의 부패가 여전히 남아 있다고 웨슬리가 말하는 것은 중생한 자가 여전히 원죄라고 하는 본성의 전적부패와 전적무능의 상태에 있는 말이 아님이 분명하다. 중생한 자의 본성은 전적으로 부패한 것이 아니라, 그 부패성이 어느 정도 남아 있는 것이다라고 말한다.

이 글에서 보면 웨슬리는 인간 본성이 변화되고 성장되어 그 자체로서 원죄의 영향력을 이길 수 있다고 말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그의 다른 설교들과 여러 학자들의 웨슬리에 대한 연구서들을 보면 인간 본성의 변화를 말하는 것이 아닌 것 같다.

중생한 자도 내적 및 외적 죄들에 대하여 자신이 완전히 무능하다는 것을 깨달아 알고 인정하여야 한다. 이 말의 뜻은 두 가지다. 첫째, 중생한 자도 자기 자신으로부터는 선한 의욕과 선한 행동의 능력이 완전히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인정하는 것이 중생한 자의 회개다. 칭의 받기 전과 마찬가지로 지금도 그들 자신으로부터는 선한 생각 하나라도 생각해 낼 수 없고, 선한 의욕 한 가지라도 형성할 수 없고, 선한 말 한 가지라도 말할 수 없으며, 선한 행위 하나라도 행할 수 없다. 둘째, 중생한 자 역시 여전히 의식하고 있는 죄책, 즉 마땅히 받아야 할 처벌로부터 우리 자신을 스스로 건져낼 수 없는 전적무능의 상태에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인정하는 것이 중생한 자의 회개이다.

그래서 중생한 자도 “성령으로써 몸의 행실을 죽일지라도, 그리고 외적 내적 죄를 모두 저항하여 정복할지라도, 그리고 매일같이 우리의 적들을 약화시킬 수 있을지라도, 우리가 그들을 내어 쫓을 수는 없다. 우리 주님이 우리의 마음에 다시 한번 ... ‘깨끗해져라’하고 두 번째 말씀하시를 기뻐하실 때, ... 오로지 그 때에 ... 그 악한 뿌리는, 즉 육적인 마음은 파괴 된다”.

웨슬리가 말하는 중생후의 인간의 본성은 마치 거북이가 독수리의 등에 업혀 공중을 나르는 것과 같다. 마치 인간이 비행기를 타고 공중을 나르는 것과 같다. 거북이가 공중으로 올라가기 위해서는 독수리 등에 업혀야 하고, 인간이 공중을 날라 태평양을 건널 수 있는 것은 비행기를 타야 되듯이 인간이 죄를 이기는 삶은 오직 하나님을 의지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인간이 죄를 이기는 것은 전적으로 인간 안에서 죄를 이기시는 그리스도로 말미암는 것이라는 것이다. 인간의 본성적 가능성은 예수를 믿고 중생하였음에도 여전히 완전타락 완전무능 할 뿐이다. 할 수 있는 일이란 다만 인간이 비행기를 탈 것인지 타지 않을 것인지 그것을 결정할 수 있을 뿐이라고 하는 것과 같다. 성령을 힘입음으로 의존하고자 하는 선택결정을 더 잘 할 수 있을 뿐, 여전히 죄 자체를 상대하여 이기는 능력은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감동이 있을 때에만 그리고 능력을 주실 때에만 그것에 피동적으로 응할 수 있을 뿐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4) 인간 본성에 대한 정리.

전적타락을 전적무능으로 이해하였다. 완전했던 능력과 실력이 완전히 파괴되었다는 것이다. 이것을 회복할 수 있는 길은 본질 자체의 회복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을 의지하여 대리신성으로 인한 능력을 덧입어 회복할 수 있다고 보는 것이다. 가능성 자체가 상실되었다는 것이다. 더 이상 인간에게는 존재 자체로서 희망이 없다. 인간의 가능성을 능력으로 보는 것은 인간 존재 부정이다. 완전존재가 타락하였기 때문에 인간을 부정적인 이미지로 말하여야 한다. 하나님의 뜻을 불순종한 죄에 대한 책임부터 부담하여야 한다. 존재에 대한 소망으로 시작하는 것이 아니라 정죄로부터 시작하게 된다.

이같은 인간 본성에 대한 이해를 가지고는 오직 의존신앙만을 추구하여야 하는 것 밖에 없다. 이것은 우리가 의롭다함을 받는 것이 이신칭의라는 대리 의를 통하여 의롭게 된다고 믿는 신앙이 일반에 팽배하여 자신의 영혼성에 대하여는 관심이 거의 없이 살아가는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죄사함 받고 죄의 형벌을 면함받고 천국가는 것이 전적으로 대리 공로를 의지함으로 된다고 믿기 때문에 자기 자신의 영혼의 성장에 대해서는 관심을 가지지 않게 된 것이다. 결국 뿌리없는 고목나무가 버팀목으로 서있는 꼴이 된다. 참된 가능성은 자신이 자신을 세울 수 있는 힘과 실력을 가지는 것이다. 물론 독립존재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자립존재를 말하는 것이다. 궁극적으로 자립존재는 의존에서 벗어나면서도 관계를 더욱 조화롭게 맺을 수 있는 존재를 의미한다. 자기 짐을 온전히 지면서 나와 너의 관계를 이룰 수 있는 존재를 말한다.

인간 본질본성의 가능성은 외부 요인에 의존해서는 찾을 수 없다. 아이를 키울 때 얼마나 많은 부모의 보살핌이 필요한가? 그러면 부모의 보살핌이 아이의 생명을 추가하는 것인가? 아이의 키를 크게 해주고 지능을 더해 주는 것인가? 아니다. 부모의 양육은 아이의 생명과 그 내재된 속성들을 잘 키워내는 도움 수고를 하는 것이지 생명을 추가하여 주는 것이 아니다. 이처럼 인간 본질의 완성을 외부요인에 의존하는 한 인간은 완성될 수 없다. 하나님의 모든 도우심과 역사하심도 인간 존재 본질의 가능성을 더해주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의 어떤 역사도 우리 안에 신성을 추가하여 줄 수 없다. 하나님을 아비요 농부라고 말씀한다. 아비와 농부는 키우는 일을 한다. 이미 내재하고 있는 생명을 키워낸다. 하나님도 우리의 영혼의 생명을 키워내신다. 가장 잘 키워내시기 위하여 모든 수고를 다 하시는 것이다. 인간의 참된 가능성은 능력이 아니라, 어떤 성질이 아니라 생명이다.

 

다. 인간 가능성에 대한 새로운 이해.

(1) 하나님의 형상이 파괴되기는 했지만 상실되지는 않았다.

타락한 후에도 인간이 하나님의 형상을 지니고 있다고 보아야 하는지 의심스러울 수도 있다. 그러나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은 홍수 이후에 하나님께서 노아에게 살인자들은 사형에 처하는 권세를 주신 창세기에 잘 나타나 있다 : “무릇 사람의 피를 흘리면 사람이 그 피를 흘릴 것이니 이는 하나님이 자기 형상대로 사람을 지었음이니라”(창9:6). 인간은 아직도 하나님의 형상을 소유하고 있다. 야고보 3:9의 신자들만이 아닌 모든 사람이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았다는 신약의 가르침이 이 사실을 확증한다.

그러나 인간은 범죄를 지은 이후로 그전처럼 온전히 하나님의 형상을 갖지 못하게 되었다. 도덕적 순결을 상실했고, 그의 죄악된 성품은 하나님의 거룩함을 반영하지 못한다. 그의 지성도 거짓과 오해로 타락했고, 그의 언어도 더 이상은 지속적으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지 못하며, 그의 관계도 사랑보다는 이기심의 지배를 받게 되었다. 따라서 인간이 아직 하나님의 형상을 가지고 있기는 하지만, 그 형상의 일부분은 파괴되거나 상실되었다. 아직도 하나님을 닮았고 하나님을 대표한다. 그러나 우리가 가지고 있는 하나님의 형상은 왜곡되었기 때문에 죄가 들어오기 전보다는 덜 온전하게 하나님을 닮았다.

그루뎀은 전적타락을 말하는 설명들보다 상당히 성경적 현실적 이해를 하였다. 하지만 여전히 인간의 가능성을 능력이나 성질에 관한 문제로 이해하고 있다. 이 이해를 가지고는 여전히 의존적 존재를 만들어 낼뿐이다.

(2) 타락이 아니라 마귀에게 포로 되었으며, 억압된 것이며 종노릇 하는 것이다.

혹자는 완전타락으로 형상을 완전히 상실하였다는 의미로 인간의 영이 죽었다고 설명하기도 한다. 그러나 영의 기능이 약화된 것은 사실이며 마귀의 의지를 따라 잘못된 작동을 하는 것이지 영 자체가 죽은 것이 아니다. 마귀가 인간의 영혼과 육체의 주체자가 되어 인간 존재 안에서 마귀가 자신의 삶을 사는 존재가 되었으며 마귀의 몸으로 자신을 제공하고 있는 것이다. 영혼이 하나님에 대하는 죽고 마귀에 대하여 살고 있는 것이다. 생각과 육체와 환경과 세상을 완전히 마귀가 지배하는 곧 사망의 세력에 잡힌 삶을 사는 것이다. 현상적으로는 상실이나 부패된 것으로 나타날 수 있으나 진리적으로 말하면, 형상 생명이 억압된 것이다. 그래서 완성되어야 할 영혼이 마귀에게 억압되어 완전히 거의 죽게 된 지경까지 이르른 것이다.

(3) 영혼은 변화되는 것이 아니고 자라는 것이다.

변화라는 개념이 나온 것은 인간창조를 완성창조로 전제하였을 때 발생하는 개념이다. 상실이라는 개념 또한 완전창조라는 전제에 근거한 개념이다. 완전하게 창조된 그 무엇이 파괴되고 망가지고 상실되었다는 것이다. 그러기 때문에 상실된 그 무엇을 변화되어야 한다고 이해하는 것이다. 회복이라는 개념도 동일하다. 완성은 이들 개념들과 같이 행위의 완전에 근거한 작업이 아니다. 아이가 어른 노릇을 해가는 것은 아이가 성장하면서 자연스럽게 그에 맞는 삶을 살아가는 것이다. 영혼은 생명의 문제이며 성장의 문제가 우선이지 변화나 회복의 문제가 우선이 아니다. 영혼은 마귀의 억압에서 해방되고 자유케 되어 성령안에서 하나님의 형상을 형체화시키는 생명의 존재이다. 자신의 영혼안에 내재하는 하나님의 신성을 인격화시키는 존재이다.

부모가 아이를 키울 때, 아이의 어떤 부분을 더하여 주는 것이 아니다. 성격이나 소질이나 특성을 더하여 주는 것이 아니다. 부모가 수고하는 모든 보살핌은 그 아이 자체 생명을 키우고 자라게 하는 것이다. 또한 음식을 먹는 것으로 인간에게 무엇을 더하는 것이 아니다. 인간 안에 내재된 생명을 키워내는 것이며 형체화 시키는 것이다. 생명은 변화시키거나 개조하는 것이 아니다.

(4) 인간의 본질가능성은 생명이다.

인간의 가능성을 기능적 성질로 파악하면 인간의 가능성은 실패할 수 밖에 없다. 무엇을 할 수 있는 능력으로 파악하면 영혼의 참된 완성을 기대하기 어렵다. 비록 타락하여 하나님을 향한 삶을 거의 살지 못한다 하더라도 그것은 생명을 키워야 하는 문제로 접근 되어야지 변화의 문제로 접근 되어서는 안된다. 인간본질은 생명이 먼저요 그 다음이 능력이다. 그러나 인간본질에 대한 대개의 이해는 능력이다. 영혼의 본질은 생명이라는 것이 가장 중요하게 알아야 할 요소이다. 생명과 변화가 공히 중요하나 생명이 자전거의 앞바퀴와 같은 것이다.

(5) 인간을 생명적 존재로 이해하는 것은 존재에 대한 무한한 인정이요 긍정이다.

인간이 타락을 하였다하더라도 하나님의 형상이라는 존재를 잃어버리는 것이 아니다. 기능적 존재로 이해하는 입장에서는 타락한 인간을 대하여 “너는 ~을 할 수 없는 존재이다”, 또 “너는 변화 받아야 한다”, 또 “너는 하나님의 형상을 잃어 버렸어”, 또 “너는 하나님을 의지해야 돼”등으로 말할 수 있다. 그러나 생명적 존재로 이해하는 입장에서는 “너는 지금도 하나님의 형상이야”, 또 “너는 너의 가능성이 억압되어 있어, 네가 하고자 하면 하나님은 언제든지 도와주셔”, 또 “너의 속에는 하나님의 신성이 거하고 있어, 그것을 하나님과 함께 키우자,” 또 “하나님과 관계를 가져, 하나님은 아버지이셔”등으로 말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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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7    반기독교인이 두 번째로 드리는 말씀 (최신근) (6) 미선이 8510 02-15
396       안티기독교인 최신근씨 글에 대한 반론 미선이 7491 02-15
395 성경말씀은 영의 언어입니다. (6) 이신우 6933 02-12
394 증언을 받아오면 증인 1인당 5천만원 드립니다 (1) 스토킹 피… 5467 02-11
393 [펌]고려대·소망교회 `新 KS인맥`이 뜬다 미선이 5968 02-11
392 대언자와 진리증인에게 관리자 5598 02-11
391 이곳의 새로운 기독교 운동 포지션 : 기존 기독교 및 안티기독교에 대한 입장 관리자 34386 02-10
390 진리란 무엇인가? (1) 이신우 5683 02-09
389 신약성경의 복음서신은 오류가 있어야 정답 김영순 5352 02-09
388 패러다임 쉬프트(paradigm shift) (7) 이신우 8336 02-09
387 한 번쯤은 생각해 보아야 할 과제입니다. (1) 컨설턴트 5314 02-06
386 "민주노동당은 죽었다"(진중권) 정강길 6700 02-05
385 [펌]동성애혐오증 고발 “게이사실 폭로 아웃팅 괴로웠다” 미선이 9244 02-05
384 하나님의 이름을 더럽히는 외계인들 김영순 7096 02-04
383 ['세기연'의 정강길 님에게 드리는 글] (1) 대언자 6716 02-04
382 “전엣 계명이 연약하며 무익하므로” (1) 대언자 5136 02-04
381 [펌] "한반도 대운하, 그 뒤에 숨은 욕망을 보라" 미선이 5473 02-03
380 [제가 올리는 글이 옳다고 생각하여 부담을 느끼지 않습니다] (1) 대언자 4591 02-03
379 [기독교의 경전인 성경을 무시하고 부정하는 신학교수들과 목사들에게 고함] (3) 대언자 6373 02-03
378 전형적인 보수 근본주의자 '대언자'의 게시판 글쓰기 제한을 요구합니다. (3) 컨설턴트 7101 02-02
377    [기독교인이 쓴 참으로 폭력적인 글입니다.] 대언자 4738 02-03
376       저, 기독교인 아니거든요? 적어도 님이 생각하는 그런 기독교인 아니랍니다 ㅠ.ㅠ 컨설턴트 6333 02-05
375 세기연 가입 (2) 좌파기장 5719 02-01
374 [동성애에 대하여] (4) 대언자 6462 01-31
373    [회개하고 돌이켜 지키도록 함이 마땅할 것입니다] (4) 대언자 5984 02-03
372 나사로반열 같은 님들에게 고함 (4) 김영순 5520 01-30
371 [동영상] 교회 앞에서 벌거벗고 예수님을 부르다 "네 이웃의 비정규직을 사랑하라" 미선이 6622 01-29
370 [사진] 탑골공원 대운하반대 서명운동 모습 무신론 4985 01-28
369 [펌] 종추련 이드 사무처장 보름째 연락두절…경찰, 전국수배 조치 (1) 미선이 5893 01-20
368 [돈을 받고 하나님의 축복을 팔아먹는 거짓 목사들] 대언자 5204 01-17
367 대학등록금 20%인하 서명운동에 동참해주십시오. 늘아침처럼 5416 01-17
366 [2/13 저녁 7:30] 황대권 - 생명평화운동과 초록문화 Artizen 4820 01-15
365 ‘자기 실현’에 성공한 사람들의 15가지 심리적 특징들 (매슬로우) 미선이 9053 01-13
364 대운하반대서명운동에 동참합시다!!! 무신론 4384 01-10
363 바보야, 경제 다가 아냐! (1) 장동만 5119 01-03
362 [해외동향] 독일_‘새로운 무신론자’에 관한 논의 미선이 5717 01-03
361 375번 정강길님의 글에 대한 저의 생각입니다. (2) 조정현 5677 01-02
360 [기독교의 목사들은 선지자 나단과 같은 자들이 되라] 대언자 4816 12-29
359 예수님은 마굿간에서 태어나셨다. 그 이유는 (7) 김영순 9111 12-28
358 정강길 선생님께! (1) 두발로 6636 12-28
357 [조화순 목사님 인터뷰] 하얗게 센 머리, 면류관이었네! 미선이 7433 12-26
356 [쿠키뉴스] 무신론의 발흥에 고심하는 미국기독교계 미선이 12492 12-22
355 시민사회운동의 대안찾기 (박종렬) 미선이 4892 12-13
354 한국인의 4대 한(恨)과 유권자 선택 (3) 김금산 6127 12-02
353 김씨 성의 유래와 유권자 선택 김금산 7104 11-30
352 “마음에 찔려” (1) 대언자 5771 11-28
351 안티기독교에게 당부한다. (3) 정강길 6751 11-28
350 [토론회 발제문] 해외에서 본 안티 운동 - 지성수 목사 (호주 시드니 사랑방) 관리자 7951 11-26
349 [토론회 발제문] 대안기독교 입장에서 보는 안티기독교 - 정강길 관리자 6718 11-25
348 [토론회 발제문] 보수측 입장에서 보는 안티기독교 - 조성돈(실천신학대학원 교수) 관리자 5704 11-25
347 과도기운과 3대운으로 본 미래 예측 김금산 6058 11-23
346 민심과 천심으로 본 미래 예측 김금산 5140 11-21
345 한국무신론자협회가 탄생했습니다 무신론 7630 11-20
344 예수 믿으면 엿 먹는다(?) 미선이 5703 11-16
343 [펌] '가장 악명 높은 무신론자는 어떻게 전향했나' 미선이 8217 11-16
342 “나를 사랑하는 자” 대언자 5319 11-13
341 [펌] 11월 11일에 일어난 폭력 시위에 대해... 세인트 5240 11-12
340    폭력 시위를 바라보는 사람들에 대해... (1) Suns 5722 11-19
339 11월12일(월) 오후2시 <미래에서 온 기독교>책 강좌 있습니다. 관리자 5231 11-10
338 미국 남부 캘리포니아에 있는 진보적인 이민 교회를 찾고 있습니다. (1) 진달래타는… 5797 11-09
337 감신대 종교철학회 추계강좌 - 과정철학의 신 이해 미선이 6291 11-07
336 [펌]"철학 전공? 그럼 점 볼 줄도 알겠네" 치노 4992 11-06
335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대언자 4583 11-05
334 [펌] 목사가 세운 신학대학, 학위 위조 운영 미선이 5747 11-03
333 종교인과 대선 김금산 5347 11-01
332 [펌] 불교의 영성과 심층심리학 특강 미선이 5990 10-30
331 새로운 기독교를 위한 강좌 예고 (1) 김금산 4839 10-23
330 몇권의 책들 소개 합니다^(^ (1) Stephen 5107 10-21
329 “믿는 자마다 멸망치” 대언자 4330 10-17
328 허리 라인 가꾸는 반달 자세 (2) 짱짱맘 5609 10-10
327 신의 부재 증명(논리 게임) (3) 치노 7004 10-07
326 신과 종교, 리처드 도킨스 vs 스캇펙 차이점 미선이 5841 10-07
325 가신님 붙잡지 말고 오시는님 붙잡아두어리 (6) 김영순 5964 10-06
324 “지극히 작은 것에” 대언자 4712 10-05
323 여자의 후손은 누구인가 김영순 6024 10-02
322 신존시대는 처음하늘 처음땅이요, 인존시대는 새하늘 새땅이다 김영순 4637 10-01
321 미얀마 유혈사태…민생불만서 촉발 민주화요구 ‘폭발’ 미선이 5506 09-27
320 여호와의 책을 자세히 읽어보라 하나도 빠진것이 없고 (7) 김영순 5588 09-27
319 자연인(自然人)과 하나님형상의 사람은 다르다(추가했음) (4) 김영순 6329 0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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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stitute for Transformation of World and Christianit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