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합검색
아이디    비밀번호
   자동로그인     
  현재 총 36명 접속중입니다. (회원 0 명 / 손님 36 명)     최신게시글    성경검색   
새로운 기독교 운동
월례포럼
기획강좌
연구소 활동


  방문객 접속현황
오늘 180
어제 396
최대 10,145
전체 3,063,168


    제 목 : 학자적 소견을 매도하는 한국교회언론회의 과잉대응 (김덕기 교수)    
  글쓴이 : 관리자 날 짜 : 08-08-14 16:57 조회(2787)
   트랙백 주소 : http://freeview.org/bbs/tb.php/b001/180 




이번에 세기연 월례포럼에 함께 했던 김덕기 교수가
금번 SBS 신의 길 인간의 길 인터뷰로 인해
보수적인 한국교회 단체에서 그 어떤 압박을 행사하고 있나봅니다.
이에 대해 김덕기 교수가 기고한 글을 올립니다.
..........................................................................
 
 
 
 
SBS ‘신의길 인간의 길’에서 논하지 않은 역사, 신화, 신앙의 관계:
 
과잉대응하는 한국교회언론회와 침묵하는 SBS에 토론회 개최를 촉구한다.
 
 
     김덕기 (대전신학대 신약학 교수)
 

 
한국교회언론회가 7월 18일(금요일) 조선일보에 게제한 전면 광고(전문보기)에는 ‘신의길 인간의길’ SBS 방송 1부에 인터뷰한 사람들에 대한 매도성 발언이 다음과 같이 들어 있었다.

“그런가하면 예수 그리스도의 역사성을 부인하기 위하여 인터뷰한 사람들은 대부분 학문 수준을 신뢰할 수 없는 非정통신학자들과 반기독교적인 인사들이다”

이에 대해서 나는 오해를 풀기 위해서 반박하지 않을 수 없을 뿐 아니라 양쪽에서 논하지 않은 역사, 신화, 신앙의 관계를 쟁점으로 제시하면서 예수와 원시기독교에 관한 토론회를 개최할 것을 제안하고자 한다.

위의 평가에 관해서, 나는 우선 그리스도의 역사성을 부인하기 위해서 인터뷰한 사람이 아니라고 반박하고자 한다. 처음부터 나는 SBS가 제안한 다음과 같은 두 가지 기획 의도를 듣고 인터뷰에 응하게 되었다.
 
첫째는 역사적 예수와 원시기독교 형성에 관한 학문적인 성과를 소개하는 것이다. 둘째는 고대인의 예수 이해와 현대인의 예수 이해를 비교하면서 우리들의 신앙관을 반성하는 기회를 갖기 위한 것이라고 들었기 때문에 인터뷰에 응했다.

그러므로 이 인터뷰는 그리스도의 역사성을 부인하기 위한 것도 아니고, 인터뷰 내용에서도 그리스도의 역사성을 부인한 적도 없었다. 더군다나 나는 고대 기독교 형성 과정에 대해서 다양한 토론이 보다 활발하게 일어나기를 바라는 신약학자일 뿐 反기독교적인 인사가 아니다. 

또한 나는 SBS에서 역사적 예수와 원시기독교의 형성과정에 대한 역사적 연구 결과와 최근 동향을 소개하는데 초점이 있었지, 신앙의 문제를 직접 언급하는 자리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한국교회언론회가 이를 신앙의 문제로 전향시켜서 과잉대응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다시 말해서, 나는 나의 연구의 내용과 인터뷰에 응한 내용 자체가 그대로 기독교인의 신앙을 훼손시키는 방식으로 신앙이 역사적 사실에 의존하고 있다는 점을 말한 적이 없다.

신앙과 역사적 연구 결과의 관계에 대한 나의 입장은 신앙은 역사의 연구의 결과들에 의존하지 않지만, 다만 신앙이 성숙하게 만드는 과정에서 이것이 어떤 사람에게는 상당히 영향을 미칠 수도 있다는 점은 인정하는 입장이다. 이것은 불트만(R. Bultmann)이 주장한 “신앙의 근거와 신앙의 대상은 같다”는 주장을 기본적으로 받아들이지만, 계몽주의 이후 현대인들의 역사 이해가 신앙에 진지하게 영향을 주고 있다는 점에서 이 입장을 발전시킨 것이다. 신앙은 역사를 초월하는 것이므로, 신앙의 대상이 역사적 예수가 아니라 그리스도와 하나님과 연관된다.

그러나 신앙의 역사적 근거는 역사와 연관시키는 방식이 사람마다 각자가 다르기 때문에, 나는 역사적 지식에 근거해서 신앙의 본질을 구성한다고 생각하고 있지 않지만 역사적 지식은 신앙의 대상이 잘못된 역사적 지식으로 인해서 우상으로 전락되는 것을 막을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므로 역사적 예수 연구의 결과가 우리의 신앙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주는 것은 아니지만 이와 연관된 역사적 진실에 대한 해석학적 태도는 신앙에 상당히 영향을 주게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런 의미에서, 나는, 예수의 죽음과 부활이 오직 신앙의 눈으로만 하나님과 성령의 역사라는 것(‘그리스도 사건’)을 인식할 수 있다는 것과 함께, 이 신앙을 더욱 성숙시키기 위해서는 역사적 예수에 대한 지식의 정도에 비추어서 각자의 지성이 허락하는 해석학적 원칙에 따라 신앙의 체계를 재구성할 수 있어야 한다고 확신한다.

우리의 신앙의 눈은 역사적 예수의 과거의 역사 뿐 아니라, 그리스도가 부활 승천하셔서 하나님 우편에 계셔서 교회를 통해서 우리를 인도하시는 현재와, 하나님의 나라의 도래를 약속하는 미래를 전부 전망한다. 바로 이렇게 신앙의 눈이 역사 전체의 전망과 관련된 해석학적 입장을 결정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우리는 우리에게 낯선 새로운 역사적 지식들과도 대화하면서 기독교 전승을 이 시대정신에 적합하게 새롭게 해석할 수도 있는 것이다.

이런 입장에 근거하면, 적어도 신약학자들은 고등비평적 역사 연구 결과에 대해서조차 과감하게 솔직할 필요가 있을 때만이 현대인에게 그리스도의 신앙의 유산과 역사적 예수에 대한 새로운 연구 결과를 보다 적합하게 제시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나는 인터뷰 내용에서 고대인과 현대인의 사유가 다르다는 것을 중요시하며 고대인의 사유가 신화적 사유라는 점을 부각시키려 하였다.

그렇다면 그리스도 사건은 신화인가? 신화가 실존적 의미로 재해석되어야 한다고 주장한 불트만은 이 사건에 대한 최초의 신앙고백인 케리그마(예수의 죽음과 부활이 구원 사건이라는 선포 내용)가 신화적(초월적인 사건이 실존에 진입하는 표현 방식)이라고 말하였다. 나는 케리그마가 신화적이라고 했을 때 불트만이 그 역사성을 완전히 부정하는 것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그가 신화를 획일적으로 역사적 사실과 상관없이 그 의미에 얽매여 있는 협소한 실존으로 환원시키는 것을 비판한다.

신화는 사실을 왜곡하여 신들의 세계를 이 세상의 세계에 상상적으로 설정하고, 두 세계관의 충돌을 화해하기 위해서 상징을 사용하고, 역사적 사건의 순서를 뒤바꾸어 서사물로 변형되어 나타난다. 하지만 이 신화는 바로 역사를 낳는 그릇이다는 점이 중요하다. 그래서 케리그마는 마가복음의 복합장르를 통해서 역사를 잉태하였던 것이다.

역사와 문학과, 상징성과 신화적 요소들이 전부 포함된 최초의 서사 산물, 마가복음은 이제 갈릴리의 하나님 나라의 사회운동을 예수의 죽음과 부활 사건(케리그마)를 토대로 신화적 껍질로 감싸서 초월적인 역사적 의미를 드러내는 희생양 기제의 폭력에 저항하는 구원사건으로 변형시킨다.

또한 고대인의 역사 이해는 현대인의 역사이해와 달리, 특정한 세대가 역사적 체험의 딜레마를 극복하기 위해서 그 서사 기술 방식에 불가피하게 신화적 사유를 내포할 수 있다는 의미에서, 나는 예수의 죽음과 부활이 신화적 사유를 내포하였을지라도 희생양의 폭력기제와 싸워서 이를 극복하는 방식을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제안하는 ‘혁명적’ 역사로 이해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마가복음 안에서 투영된 그리스도 사건은 예수의 하나님 나라 사회운동을 인정하고, 이를 계속해서 전개시키겠다는 결연한 의지를 반영한다는 의미에서 신앙을 요구하는 거룩한 사건이요, 70년 성전 파멸 사건을 겪은 동시대 인물들이 이 사건을 구원사건으로 이해한 역사적 기록으로 만들었다는 의미에서 하나의 거룩한 역사이다.

또한 인터뷰에서 Q에는 죽음과 부활이 나타나지 않은 말씀 어록집(44, 55, 66년 편집)일 뿐이라는 것만을 인정했다. 그렇지만 이러한 어록의 성격 때문에 예수의 역사성이 없다는 결론을 도출한 적은 없다. 나는 이에 대해서 Q와 초기 기독교 문서에 나타난 예수의 하나님 나라 사회운동의 사건이 복음서를 매개로 그리스도 사건과 연속성이 있는 한에서 거룩한 역사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입장은 2001년 나의 책에 이미 마가복음 4장을 분석하면서 하나님 나라 사회운동과 그리스도 사건의 역사적 연속성을 포괄적으로 제시하였다. 이런 점에서, 특히 예수의 역사성에 관해서는, 예수의 사건성, Q를 포함한 원시 기독교의 하나님 나라의 사회운동과 이것을 바울의 헬라 기독교가 고백한 케리그마와 연결시킨 마가복음의 역사 형성 방식에 깃든 신앙 고백이 기독교의 신학의 초석을 놓게 되었다고 말하였을 뿐, Q의 성격 때문에 예수의 역사성을 부인한 적은 없다.

마찬가지로, SBS도 방송 편집기술에 의해서 원시기독교 형성과정의 다양한 연구 결과와 해석학적 입장, 및 신학적 고백의 전통을 균형 있게 다루지 못하고 신화론자들의 역사이해를 부각시킨 점은 편집 기획 의도와 달리 확실히 오해를 사게 되었다는 점이 유감이다. 이제, 신앙의 문제를 역사의 문제로 환원하는 SBS와 역사의 문제를 신앙의 문제로 환원하는 한국교회언론회 둘 다 논점을 단순화하기 보다는 역사적 예수에 관한 보다 포괄적인 토론회를 개최하여 사회의 기독교에 대한 인식이나 기독교의 대사회적 인식이 변화되기를 바란다.       
 
- 대전신학대 김덕기 교수 (메일 pdkkim@hanmail.net )
 
 
바비도 (08-08-14 21:18)
 
교회의 이해관계 때문에 신학자의 연구나 발언이 제한되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저도 김덕기 교수님의 말씀처럼
이번 기회에 역사적 예수에 관한 토론회가 개최 되었으면 하는데 교권을 가진 쪽에서 선뜻 응할지가 걱정입니다.

어려운 여건 이지만 김덕기 교수님이 힘내시길 바라며 우리 세기연도 도와 드릴 일이 있으면 김덕기 교수님과
함께 했으면 합니다.

마루치 (08-08-15 01:16)
 
바비도님의 의견에 동의합니다. 설마 했는데 압박이 정말있네요.
저희 세기연에서도 도와드릴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어떤 단체에서 그러는건지 궁금하네요-_-

늘오늘 (08-08-15 13:01)
 
예수의 사건성, Q를 포함한 원시 기독교의 하나님나라 사회운동과,
이것을 바울의 헬라 기독교가 고백한 케리그마와 연결시킨,
마가복음의, 역사 형성 방식에 깃든, 신앙 고백이
기독교의 신학의 초석을 놓게 되었다.

신화는 바로 역사를 낳는 그릇이다는 점이 중요하다.
케리그마는 마가복음을 통해서 (이후의) 역사를 잉태하였던 것이다.

역사와 문학과, 상징성과 신화적 요소들이 전부 포함된 최초의 서사 산물,
마가복음은 이제
갈릴리의 하나님 나라의 사회운동을
예수의 죽음과 부활 사건(케리그마)를 토대로
신화적 껍질로 감싸서
초월적인 역사적 의미를 드러내는
희생양 기제의 폭력에 저항하는 구원사건으로 변형시킨다.

예수의 죽음과 부활이
신화적 사유를 내포하였을지라도
희생양의 폭력기제와 싸워서 이를 극복하는 방식을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제안하는 ‘혁명적’ 역사로 이해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p.s.1 교수님 글의 일부를, 제 나름대로 짜깁기하였습니다. ^^

늘오늘 (08-08-15 15:52)
 
기독교 신앙이 역사적 사실에 뿌리를 두고 있다는 주장을 하는 자들이,
역사학의 성과를 수용하는 사람들의 신앙을
반기독교적이라고 배척하는 이율배반.
(혹은 딜레마 혹은 게으른 위선 혹은 오만한 폭력) ㅋㅋ^^;
산타클로스가 역사적 사실이 아니라고 생각하면,
크리스마스 때 자기 아이들에게 선물을 주지 말아야 한다는? ㅋㅋ^^

사회적 투쟁의 배경을 무시한 채, 하나의 고립된 특정사건으로서의
십자가 처형과 부활의 진위여부에 올인하는 것은,
역사도 아니고, 기독신앙도 아니죠! ^^
비판적인 역사의식이 기독신앙의 핵심 특징이거든요. ^^

sydney (08-08-16 09:58)
 
교회언론협회의 광고 정도는 압박이 아니라고 생각 합니다.
지난해 그 곳 주최로 정실장 님과'안티토론회'에 참석해 보아서 알았습니다만
그 곳도 겨우 유지하는 형편 입니다.
보수기독교계에서 인정도 받지 못하면서 존재확인을 위해서 애쓰는 수준 입니다.
그저 그런 소리도 있다는 것을 이해하는 정도로 생각하면 될 것 같고...
오히려 그렇게 반향을 울려 주어야 더 논쟁의 여지를 가질 수 있다고 생각되어
긍정적으로 봅니다.

우도 (08-08-16 10:14)
 
김교수를 이틀 전 저녁 9시쯤 만나서 심각성이 있음을 들었습니다.  교회언론협회는 한기총의 산하기구라 합니다. 교단 총장들에게 김교수의 문제를 안건으로 제기가 되는 것을 총회에 어떤 분이 잠시 보류를 시켰다 합니다.
교단총장회의에 김교수의 문제가 상정이 되면 김교수는 변론이 없이 퇴출이 된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러한 예도 있었습니다. 김교수가 디펜스를 하기위해 동분 서주 하고 있는 우리의 현실이 안타까울뿐입니다.

정강길 (08-08-16 10:37)
 
이번 사건은 교회언론회를 포함하여 한기총과 함께 한 SBS대책위원회의 처리 과정에서 돌출적으로 나온 것으로 봅니다.
듣자하니 그 SBS대책위원회장이 명성교회 김삼환 목사인데 그는 차기 유력한 한기총 회장이라는 얘기도 있습니다.
교회언론회는 한기총의 산하기구라기보다 한기총과 짝짜꿍이 맞는 대표적인 보수 기독교 단체지요.

이번 사건에서 단지 우려되는 것은 다른 인터뷰 출연자들이야 짤릴 위험도 그다지 없는 사람이지만
김덕기 교수의 경우는 거의 유일하게 보수 기독교 교단 산하의 신학대에 있으니 다소 위험성도 없잖아 있지요.

그런 상황에서 교계의 상층 권력 지도자들끼리는 서로 안면들도 있을 터이고 행여라도 괘씸죄로 여겨질 경우
자칫 힘든 상황으로까지 치달을 위험가능성도 있어 보이기에 걱정되지 않을 수 없는 거지요.

바비도 (08-08-16 14:35)
 
이번 일에 관해서 새로운 정보를 얻으신 분들은 함께 의논하고 행동하기 위해서
세기연 게시판에 소식을 바로 올려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치노 (08-08-18 16:44)
 
인터뷰 출연자들이 짤리면 정말 불행한 사태일 것입니다. 그렇게 안되도록 세기연 모두 힘을 합칩시다.

Poetic (08-09-27 21:23)
 
예 수 그 리 스 도 가 김 교 수 님 과 함 께 하 시 기 를 바 랍 니 다.



게시물수 185건 / 코멘트수 491건 RSS
 
번호 제목 글쓴이 조회 날짜
왜 예수인가 (필독 원함!) (13) 미선 6776 11-04
GIO명상 방법 12단계 (몸기독교가 제안하는 수행 방법 중 하나..) (6) 미선 2974 01-16
교회에 대한 권력비판? 교리비판? 어느 것이 더 유효할까? (4) 미선 2350 12-06
종교운동과 사회운동을 구분 못하는 오류-기존 진보 기독교 비판 (1) (2) 미선이 2315 10-14
몸학과 새로운 기독교 운동 그리고 30년 후의 기독교 미선이 2336 04-11
기존 진보 기독교인들의 <생명평화> 담론에 반대한다! (업그레이드판) (8) 미선이 2532 02-17
성서문자주의 또는 성서무오설 신앙보다 더 뿌리 깊은 고질병은? (9) 미선이 2907 02-02
과정신학에 대한 비판과 민중신학의 신 이해 접맥 미선이 2453 01-13
[예수운동 예배 견본] 새로운 기독교의 <예수운동 예배>를 위하여 미선이 2818 11-28
<새로운 기독교>를 소개하는 전체 안내 링크글 (계속 업데이트 예정) 관리자 8260 11-03
내가 지금 믿고 있는 것은 과연 진리인가 정강길 6501 04-27
"어차피 이러한 기독교로 바뀌게 된다!" (모든 분들에게 고함) (17) 정강길 4831 02-18
새로운 기독교를 위한 조직신학적 성경공부 (신론) (2) 관리자 7648 05-28
새롭고 건강한 21세기 그리스도교 공동체를 위한 신앙선언서 (26) 관리자 7459 05-23
115 [논평] 봉은사 땅밟기 추태, 성경 '문자주의' 그 야만의 역사 넘어서야 (1) 관리자 1675 10-29
114 기존의 진보 기독교와 새로운 기독교 운동 (1) 미선이 1652 10-22
113 1세대 민중신학자 안병무의 미완의 작업과 기존 민중신학의 과제 미선이 1801 10-19
112 [새기운 성명] 4대강 사업 관련, 문정현 신부의 정진석 추기경 비판을 지지한다 관리자 1705 10-19
111 스퐁, "스티븐 호킹과 유신론/인격신의 죽음" (작은불꽃님 역) 관리자 2443 10-11
110 “오직 하나님만 홀로 영광 받으소서”의 실체적 의미 (1) 미선이 1387 10-04
109 기도에 관하여: 함께 기도합시다 <새로운 기독교 운동>을 위하여! (4) 미선이 1471 09-27
108 <무신론을 지지하는 새로운 유신론>을 아는가? 미선이 1556 09-23
107 그런 신은 없다! 하지만 신은 있다! (3) (1) 미선이 1573 09-21
106 왜 <새로운 기독교>인가 미선이 1639 09-11
105 새기운(새로운 기독교 운동연대) 식구들과 함께한 갈매나무 말씀 나누기 (10.08.29) (1) 미선이 1366 09-06
104 ▒ 한국인권뉴스 칼럼 "종교변혁운동, 기독교 제국주의 넘기 시동 걸다" 노동자 1194 06-26
103 왜 <새로운 기독교>인가 : 새로운 종교 시대의 새로운 기독교 신앙 (발표원고) 미선이 1192 06-16
102 도올의 성서연구 열정과 한국교회에 대한 직무 유기의 교단 신학자들 미선이 1691 05-12
101 민중을 팔아 장사하는 민중신학자들 (2) 미선이 1643 05-11
100 2010 새로운 그리스도인 선언 (가안) (8) 미선이 1592 04-26
99 자랑스러운 한신, 새로운 시대의 진보로 다시 태어나기를.. (1) 미선이 1440 04-19
98 왜 이현주 목사는 같은 감리교인 김홍도보다 법륜스님과 더 친할까? (3) 미선이 1749 03-30
97 다양한 진보 신학들을 통합적으로 이해하는 새로운 대안 기독교 신학 미선이 1356 03-21
96 『미래에서 온 기독교』에 대한 웹상의 흩어진 여러 서평들 한데 모음 (2) 미선이 1737 03-07
95 그런 신은 없다! 하지만 신은 있다! (2) (15) 정강길 2057 03-02
94 한국 개신교회에 드리는 권고와 우리 사회에 드리는 사과문 (4) 정강길 1760 02-10
93 그런 신은 없다! 하지만 신은 있다! (7) 정강길 2190 01-29
92 신론 : 기존 민중신학과 새로운 민중신학 그리고 과정신학 정강길 1504 01-25
91 감정과 이성 그리고 대화와 토론 또 그리고 시간... (7) 정강길 1804 01-14
90 왜 우리는 예수를 믿는가? (13) 정강길 2683 12-14
89 나는 MB보다 보수 기독교라는 제국이 더 끔찍하다 (14) 정강길 2252 10-13
88 무기력하신 하나님을 오히려 더 신뢰할 줄 아는 믿음 신앙 (10) 정강길 1981 09-29
87 미국 아틀란타에서의 새로운 기독교 강연과 진보에 대한 성찰 (6) 정강길 1834 09-28
86 미국의 한인교회 예배에 참석하다 (5) 정강길 2049 09-24
85 새로운 기독교 입장에서 모색해보는 사후 세계와 영혼 개념 (3) (4) 정강길 2577 08-23
84 새로운 기독교 입장에서 모색해보는 사후 세계와 영혼 개념 (2) (1) 정강길 2500 07-05
83 오류와 폐해에도 불구하고 세기연이 계속 <기독교>를 붙잡는 이유는? (2) 정강길 2018 07-04
82 몸학의 <몸얼>의 발달 단계와 다석 유영모의 몸나/제나/얼나 개념 (4) 정강길 1815 07-01
81 새로운 기독교 입장에서 모색해보는 사후 세계와 영혼 개념(1) 정강길 3038 06-28
80 자신의 생각과 충돌하는 새로움을 접하게 된다면.. (4) 정강길 1659 06-10
79 복음주의와 진보 진영에 만연한 성서 우회주의자들 (5) 정강길 3367 06-05
78 [정강길의 종교론] 진화하는 종교의 본질에 대한 새로운 해석 (6) 정강길 2156 04-24
77 낡은 사도신경은 버리고 오늘의 사도신경을 취하라! (4) 정강길 6022 04-15
76 존 쉘비 스퐁의 글을 읽다가.. (5) 정강길 1998 04-12
75 <재복음화>를 제안한다! (이민재) (1) 미선이 2131 04-08
74 성경 읽을 때 <고백의 언어>를 <사실의 언어>로 혼동하는 오류 (5) 정강길 2171 04-05
73 현대 무신론 진영이 설명못하는 난점에 대하여 (3) 정강길 2603 03-24
72 "어차피 이러한 기독교로 바뀌게 된다!" (모든 분들에게 고함) (17) 정강길 4831 02-18
71 신자유주의에 대하여 서로 다른 두 입장의 기독교 (4) 정강길 2599 02-05
70 묵자, 우리들과 너무나 가까이 있었던 동양의 예수 (4) 정강길 2453 02-02
69 실천적 행동주의 신앙과 신학운동으로서의 신앙 (3) 정강길 2008 01-27
68 대안교회를 말한다 (미래에서 온 교회 : 예수가족) (15) 정강길 2412 01-13
67 "나와 아버지는 하나다"에 대한 성경해석 : 그대가 곧 예수이자 하나님이다!! (4) 정강길 3191 11-22
66 <하나님의 계시와 신비 중심주의>라는 탈정치성에 감춰진 정치성 (5) 정강길 2330 11-08
65 <하나님 중심/계시/신비> 중심의 사고에 감추어진 사유의 폭력 (22) 정강길 3549 11-06
64 진보 기독교 진영의 한계 (2) (14) 정강길 3445 09-30
63 진보 개신교 진영의 한계 (1) (3) 정강길 3112 09-16
62 '거지왕초' 김홍술 목사, 한국교회에 단단히 뿔났다 (3) 관리자 2973 09-02
61 학자적 소견을 매도하는 한국교회언론회의 과잉대응 (김덕기 교수) (10) 관리자 2788 08-14
60 촛불집회와 SBS교양프로에 반대하는 거짓 기독교 (4) 정강길 3109 07-07
59 SBS에 나온 역사적 예수 연구에 대한 <다중 예수론>의 주창자, 로버트 M. 프라이스 정강길 3233 07-05
58 허호익 교수의 '예수는 신화다'를 반박한 글에 대한 비판 (6) 정강길 3684 07-05
57 GIO 명상 정강길 3333 06-21
56 개신교, 진보 교단이 없다! (12) 정강길 3245 05-12
55 현재의 한국 기독교의 진보 진영은 더 이상 진보가 아니다. (4) 정강길 5291 04-22
54 정치 무관심과 냉소주의가 불러온 재앙 (투표 안한 자들에게) 정강길 2538 04-09
53 기독당과 가정당은 크게 다르지 않다! 정강길 2518 04-08
52 반성 없는 한국 개신교는 사탄의 개신교일 뿐! 정강길 3058 02-18
51 교회에 십일조 내지 마라! (5) 정강길 4371 02-06
50 예수정신에 똥칠하는 기독교 정치세력들 정강길 3180 01-02
49 기독교의 배타적 선교 문제, 정면으로 다뤄라! 정강길 3649 08-31
48 기존 기독교의 붕괴와 새로운 기독교의 도래 (3) 정강길 3611 08-06
47 기존 기독교의 붕괴와 새로운 기독교의 도래 (2) 정강길 3244 08-02
46 기존 기독교의 붕괴와 새로운 기독교의 도래 (1) 정강길 3538 07-30
 1  2  3  



Institute for Transformation of World and Christianit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