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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목 : 성경 읽을 때 <고백의 언어>를 <사실의 언어>로 혼동하는 오류    
  글쓴이 : 정강길 날 짜 : 09-04-05 11:38 조회(2313)
   트랙백 주소 : http://freeview.org/bbs/tb.php/b001/328 




우리는 사랑하는 사람에게 다음과 같이 말한다.
"당신은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이쁘다"고..
그런데 이 말은 객관적이고 과학적인 사실일까?
 
물론 우리들은 그것이 사실로서 정확무오하다고 할 수 있는
객관적 사실이 아니라는 것을 잘 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들은 그러한 표현을
매우 의미있고 중요한 표현으로서
너무나 소중하고도 기쁘게 받아들이고 있다.
 
성경에 있는 글들도 마찬가지다. 우리들은
우리 자신들에게 의미 있는 소중한 대상에게 대하여
우리가 할 수 있는 온갖 화려한 미사 어구들로 고백을 한다. 
그것은 이미 그 자체로 우리의 진정성과 진심이 담긴 노력인 것이다.
 
그런데 우리가 바로 이러한 점들을 간과하고 성경을 읽을 때
그것은 심각한 병폐와 왜곡을 낳게 된다.
왜냐하면 성경에는 바로 고백의 언어가 깃들어 있기 때문이다.
 
심리학자 칼 융은 말하길, 그것이 동화든 신화든
그러한 것들은 정신의 현상학이라고 언급한 바 있다.
다시 말해, 그것이 동화적 표현이든 신화적으로 쓰여 있든 간에
그것은 고대인들의 체험이 반영된 정신의 고백인 것이다.
 
오늘날 전 세계의 수많은 기독교인들은 성경을 대할 때
<고백의 언어>와 <사실의 언어>를 혼동한다.
이 혼동은 21세기 들어서도 대다수의 기독교인들이
지속적으로 겪고 있는 피곤한 반복적 폐해에 해당한다.
 
니케아 신조(또는 ‘사도신경’을 떠올려도 좋다)를
과학적이고 역사적인 사실로서 이해하거나
진화론과 창조론(그 변종인 지적설계도 포함)의 충돌 사건 같은 것들은
그러한 혼동으로 인해 겪는 대표적 사례일 것이다.
 
나는 이 혼란이 단순히 서구 성서학계가
근대 모더니티를 겪으면서 전개된 바 있는
<성서비평학>의 도입으로만 해결된다고 보진 않는다.
 
그것은 어떤 면에서 저 깊은 바닥에 자리하고 있는
세계를 내다보는 이해의 기초부터가 달라지는 패러다임 전환을 겪어야만
온전히 바뀔 수 있다고 보고 있다. 바로 그 궁극적 지평이
존재론(ontology)과 우주론(cosmology)에 해당되는 형이상학의 차원인 것이다.
 
이러한 기초 관점으로서의 해석학적 존재론이 뒤바뀔 때
비로소 성경에 가하는 온갖 비평적 작업의 맥이 보이게 되고
또한 그러한 성서비평에도 불구하고 하나님말씀이 담긴 이 경전이
내 삶에서 너무나 소중한 경전으로서 다가오게 된다.
 
나는 기독교 경전의 특별한 가치를 발견한 것은 그다지 얼마되지 않는다.
돌이켜보면 <성경과 나의 관계> 그 자체는 계속적으로 진화해왔었다.
성경은 정말 깨닫는만큼만 보여주는 매우 독특한 경전이 아닐수 없다.
 
그러한 성경의 스펙트럼은 심지어 사람을 죽이는 악마의 경전에서 
사람을 살리기도 하는 통찰적 진리가 발견되는 심오한 경전에까지 미친다.
만일 당신이 성경을 보는 눈이 이전과 달리 바뀌었다면
당신에게 그 어떤 존재론적 변화가 있었다고 봐도 좋을 것이다.
 
우리 모두에게 성경을 보는 눈에 계속적인 정진이 있기를 바랄 뿐이다..!
 
 
Joe (09-04-06 05:07)
 
성서에 대한 <고백의 언어>와 <사실의 언어> 비유는 너무나 적절한 표현입니다. 
정말 숭배하고 사랑하는 사람에게는 진정성과 진심은 담겨있으나 그 표현에 얼마나 많은 <과장>,<왜곡>,<억지주장>,<자가합리> 등이 있기 마련입니다.  또 1,500 년이 넘은  <문화의 차이>,<세대의 차이>,<사상의 차이> 등등도 고려 하여야 합니다. 
다행히 인간의 본성은 1,500 년 전과 지금과 크게 다르지 않기 때문에 성서가 지금도 유효하지요. 
저도 <성경과 나와의 관계> 는 지속적으로 변화하였고 진화해 왔습니다. 
성경은 우리각자가 준비한 <깨달음의 그릇> 만큼 진리를 담아 주는 독특한 경전입니다. 
세상을 보는 나의 눈을 <형이상학의 차원>으로 사고 하게 된 것은(생각하기시작) 제가 세기연을 통해서 깨달은 진리입니다. 
세기연에 감사를 드립니다.

인봉 (09-04-08 08:59)
 
근자에 본 참으로 귀한 사람이다.
정강길/ 세기연 기획실장(http://freeview.org)씨이다. 그 분의 신분이 무엇인지도 모르지만 참으로 담대하고 평강하며 자유할 수 있는, 내가 세례받고 성경을 읽은 후, 비록 글로 만났지만, 내가 만난 제대로 된 기독교 인사중에 최초로 진실한 큰 사람이다.
왜 그런 사람이 한국말 쓰는 사람들 중에는 없는 것일까? 나는 그동안 그것을 사람은 대개 비슷하지만 한국사람 특유의 비겁함으로 생각해 봤다. 그런 한 사람이라도 볼 수 있음에 내가 큰 복을 받은 느낌이다. 오늘(Apr 06, 2009) 두번째 그의 글을 둘러보며 역시 복된 만남을 체험했답니다. 그 귀한 분이 날마다 복된 생활을 하시기를 기도한다.

적어도 생각해볼 때 오늘날 대부분의 한국교회도 아래의 다섯 가지 교리는 '무조건 믿어라' 아닌가요?
1. 성서무오설
2. 그리스도의 동정녀 탄생
3. 그리스도의 대속적 죽음
4. 그리스도의 육체적 부활
5. 그리스도의 재림
http://www.newsnjoy.co.kr/news/articleView.html?idxno=21521 에서 오래된 그의 글의 댓글 논쟁에서 속이 다 시원해서 폄.

어제 묵상록을 쓰다가 정강길씨 글을 보고 몇자 남긴 것입니다.
앞으로도 종종 와서 님과의 만남을 즐길 것입니다. 이렇게 진리 가운데 있는다는 것은 상상만 해도 좋은데 그것이 너무 흔해도 좋은 줄을 모르겠지요? 만나서 좋았습니다.

    
정강길 (09-04-08 09:17)
 
인봉님, 반갑습니다.
제 소개는 http://freeview.org/bbs/tb.php/f006/163 에 나와 있습니다.
저에 대한 평가는 아직 과분한 얘기십니다.
다만 <새롭고 건강한 기독교 운동>에 함께 하시기만 바랄 따름입니다.
아직 작고 부족한 세기연인데 이렇게 관심을 가져주셔서 고맙습니다.

화상 (09-04-14 11:50)
 
스퐁의 성경을 해방시켜라라는 책을 참 의미있게 읽었습니다. 많은 보탬이 있엇습니다.

서로사랑 (09-07-04 13:29)
 
진리를 갈구하는 서생으로서 많은 것을 배우고 깨우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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