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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목 : 새로운 기독교 입장에서 모색해보는 사후 세계와 영혼 개념 (2)    
  글쓴이 : 정강길 날 짜 : 09-07-05 23:29 조회(2499)
   트랙백 주소 : http://freeview.org/bbs/tb.php/b001/377 




 
새로운 기독교 입장에서 모색해보는 사후 세계와 영혼 개념 (2)
 
 
 
<영혼>이란 과연 무엇인가?
 
새로운 기독교의 입장에서는 기존의 영육이원론과 그에 기반한 불사적 존재로서의 영혼 개념들을 거부한다. 왜냐하면 새로운 기독교는 기존 기독교에 정초되어 있는 기초 패러다임부터가 다르기 때문에 <영혼>에 대한 개념도 그 내용이 달라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기존의 영육이원론을 받아들이는 기존 기독교는 알다시피 플라톤의 이원론 사상을 비롯한 헬라문명권의 관념적 이원론이라는 패러다임에 정초되어 있는 지점들이 많다.
 
새로운 기독교는 그와 달리 현실적 관계론이라는 기초 패러다임을 기반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 신을 보는 이해, 인간을 보는 이해, 성서를 보는 이해, 교회를 보는 이해 등등 모든 내용들이 전면적으로 달라진다. 따라서 영혼이라는 개념 역시 마찬가지로 그 뜻이 달라질 수밖에 없다고 본다. 그렇다면 현실적 관계론에서 가능할 수 있는 <영혼>이란 과연 무엇인가?
 
일단 존재론적으로 <육체>와 <영혼>을 나누어선 안된다고 본다. 전인적이고 통전적인 차원의 <몸>Mom의 현실은 존재론적으로 육체와 영혼의 이분화를 결코 허락하지 않는다. 자기 영혼을 집에다 놔두고서 그저 자신의 육체만 밖으로 걸어다니는 그러한 현실 존재를 본 적이 있는가? 결코 그럴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혼>이란 과연 무엇인가?
 
<영혼>이란 개념은 현실적 관계론인 화이트헤드의 과정철학에 따르면 <살아 있는 인격>living person에 해당하는데, 그러한 <영혼> 개념을 오늘날의 언명으로 쉽게 풀이해본다면 그 자신의 모든 현실적 활동들을 핵심적으로 통제하고 있는 중추적인 자아를 의미한다고 볼 수 있겠다. 인간에게 있어서는 그 자신의 지각, 감정, 느낌들을 비롯한 다양한 신체 활동들을 그 안에서 전반적으로 수렴하고 관장하며 조절하고 발산하는 중추 기능으로서의 자아인 것이다.
 
흥미롭게도 이것은 신체의 그 어떤 특정 부위에서 결코 찾을 수 없는 부분이다. 신체를 해부해보라. 마음 혹은 자아에 해당하는 신체적 특정 부위가 있는가? 없다! 물론 오늘날엔 머릿골인 뇌를 떠올릴 수도 있겠으나 뇌 역시 신체의 다른 기관들과 유기적인 관계 맥락에 놓여 있을 때만이 온전한 제 기능을 발휘할 수 있지 뇌만 따로 떼서 분리했을 경우 그러한 뇌는 결코 제 기능을 할 수 없는 죽은 뇌라고 할 수 있겠다.
 
다시 말해서 <뇌>라는 것도 어디까지나 <몸뇌>이지 그냥 <뇌>가 아닌 것이다. 살아 있을 때의 뇌는 분명히 신체의 다른 부위들 및 자연환경들과의 유기적 관계 속에 놓여 있을 때의 뇌인 것이다. 단지 인간의 자아 형성에 뇌가 특별한 역할들을 다른 신체 부위들보다도 좀더 많이 영향을 끼친다는 점만큼은 충분히 인정해줄 수 있다고 하겠다.

이때 마음, 자아, 의식 등등 이러한 언명으로 불리는 것들은 인간의 그 어떤 특정한 신체 부위에 한정될 수 없는, 실로 그 자신의 몸 전체에 깃들어 있는 것으로 봄이 더 타당할 것이다. 우리는 흔히 "마음이 어디 있느냐?"라고 묻곤 하는데 그것은 살아 있는 유기적 관계들에 기반하는 경험의 고차원적인 위상에서 태동되고 있는 생명 현상인 것이다. 즉, 마음이든 자아든 의식이든 영혼이든 이러한 것들은 신체의 어느 한 특정 부위에 지정될 수 없으며 모든 신체 활동들의 유기적 관련 속에 잘 놓여 있을 때만이 그것이 가능한 것으로 발견될 수 있다는 사실이다.
 
 
 

동물에도 영혼이 있는가?

진화론적으로 보면 그것은 영장류 같은 고등한 존재에서나 발견되는 현상이라는 얘기다. 즉, 무기물, 유기물, 식물, 동물 등등 고등한 존재로 올라갈수록 자기 조절의 중추부를 담당하는 그 무엇이 그 안에 깃들어 있다고 여겨지는 현상들은 충분히 발견되고 있다. 포유류도 특히 침팬지 같은 동물들은 말할 나위 없을 정도로 자신의 감정과 느낌을 자신의 의지대로 표현하고 있음을 우리들은 충분히 목격하고 있다.

낮은 단계에 있는 무기물의 경우는 훨씬 더 많은 민주주의를 누리고 있다. 이를 테면 바위를 볼 때, 바위를 구성하는 각 입자들은 외적으로는 많은 인과적 영향을 받고 있으면서도 내적으로는 훨씬 많은 민주주의를 누리고 있다. 즉, 바위 안에 바위를 구성하는 수많은 입자들을 중추적으로 통제하는 기능 같은 건 찾아볼 수 없다는 얘기다. 식물의 경우는 바위보다는 좀더 중추적인 자기 제어 기능이 (매우 희박하지만) 있는 걸로 보이지만, 그러한 식물도 동물의 경우에 비하면 거의 없다고 볼 만큼 그 역시 미미할 정도다.

동물의 경우를 봤을 때, 동물의 신체를 구성하고 있는 각 기관들과 입자들은 나름대로 저마다의 기능들을 하면서도 이를 전체적으로 지배하고 있는 중추적인 자기 제어 기능의 현상 역시 볼 수 있다. 그것은 결국 낮은 무기물의 단계에서는 찾아보기 힘들지만 고등한 존재로 올라갈수록 점점 더 뚜렷이 발견되고 있는 생명 현상이다. 인간의 경우는 너무나 말할 나위 없잖은가.

그렇다면 "동물도 영혼이 있는가?" 라고 질문했을 때, 우리는 이렇게 답변할 수 있겠다. 동물도 동물 나름대로의 살아 있는 인격은 있지만 이것과 인간 영혼은 차이가 있다. 단지 그 차이에 대한 확연한 경계선을 완전히 구분지을 수 없을 뿐이지, 동물에게서 보이고 있는 중추 자아가 인간의 영혼과 똑같은 것은 아니라고 본다는 것이다. 달리 말해서 몸 전체가 진화를 하는 만큼 그 몸의 영혼 역시 함께 진화하기에 동물의 영혼과 인간의 영혼이 똑같을 수는 없다는 얘기다. 그렇기에 사람의 영혼과 동물의 영혼은 같은 연장선에 있을지언정 서로 동일할 수는 없다고 본다. 나중에 보겠지만 사람의 영혼과 동물의 영혼은 또 다른 지점들이 있다.

단지 진화론적으로 볼 때 살아 있는 인격으로서의 영혼은 고등한 존재에서 볼 수 있는 생명 현상으로서 영혼 역시 진화의 메커니즘에 놓여 있다고 보면 되겠다. 나는 이러한 ‘영혼’이라는 개념을 순우리말로 <몸얼>이라고 칭하고 있다. 그렇다면 이제 성경은 어떠한지를 살펴보자. 즉, 성경 역시 영육이원론을 말하고 있는지를 말이다.

성경의 영혼 개념도 영육이원론에 결코 한정되어 있지 않다.

흥미로운 것은 성서를 보더라도 성서의 영혼 개념이 영육이원론 혹은 영혼불멸성에 한정되는 그러한 개념이 아님을 단박에 찾아낼 수 있다. 보통 '혼' 또는 '영혼'으로 번역되는 단어는 히브리어로 ‘네페쉬’(nepesh)이며, 신약의 헬라어에서는 ‘프쉬케’(pshche)를 들 수 있겠다. 히브리 사상은 이원론이 아니라서 그런지 히브리어의 네페쉬 개념 역시 앞서 제시한 본인의 영혼 개념과도 딱 들어맞는다. 이것은 나 자신이 새롭게 지어낸 개념도 아니며 기존의 성경사전에도 나와 있는 해석이다.

“히브리어 ‘네페쉬’는 ‘인간의 내적 존재’, ‘살아있는 존재’(인간과 동물 모두에 대해서 사용됨), ‘인간 그 자체’(종종 인칭대명사로 사용됨), ‘욕망의 자리’, ‘감정의 좌소’ 등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이것은 인간 존재의 한 부분으로서 지칭되는 것이 아니라 전인(全人)이라는 측면에서 지칭되고 있는 말이다. 자아가 갈망이나 욕구를 가졌거나 혹은 감정적인 체험을 했다고 생각했을 때에도 이 용어가 일반적으로 사용되었다(민 21:5; 신 12:15; 24:4; 욥 30:25; 시 86:4; 미 7:1).

또한 전체적인 감정을 표현하기도 하며(출 23:9) 배고픔, 갈증, 탐욕, 만족, 기쁨, 슬픔, 사랑, 증오, 희망, 절망 등을 경험하기도 한다. 그 외에 생명으로 자주 사용되었다. 보통은 죽을 때에 육신을 떠나는 것으로 보았으나(창 35:18), 죽은 자의 영을 가리키는 데에는 한 번도 사용되지 않았다.

구약의 ‘네페쉬’에 해당하는 헬라어는 ‘프쉬케’(pshche)로, 이 단어는 거의 대부분 ‘혼’이라고 번역되나 때로는 ‘영혼’이나 ‘생명’으로도 번역된다. 이것은 한 인간의 무형적 본질의 핵이며 사고, 의지, 감정의 대리자이자 인간 생명의 진수이다. 요한계시록에서 이 단어는 죽음 뒤의 삶을 나타내기 위해 사용되기도 한다(계 6:9). 구약의 ‘네페쉬’와 비교해 볼 때 ‘프쉬케’는 신약에서 비교적 드물게 등장하고 있다.“[출처 : 비전성경사전]

이상에서 볼 경우, 성경의 영혼 개념 역시 죽은 뒤에 내세를 떠돌아다니는 개념보다는 현실에서도 찾아볼 수 있는 전인적인 개념으로서 쓰이고 있음을 알 수 있을 것이다. 물론 묵시문학에 속하는 요한계시록에서도 보듯이 죽은 뒤의 내세로서의 영혼 개념 역시 나와 있긴 하지만 성서 전체를 놓고 전반적으로 볼 때 그런 식의 영혼 개념은 매우 한정된 개념임을 잘 알 수 있으리라고 본다. 죽은 뒤의 내세 가능성에 대해선 나중에 다시 얘기할 것이다.

일단 우리는 여기서 성경에 나타난 영혼 개념 역시 전반적으로 영육이원론에 한정되지 않고 전인적이고 통전적인 영혼 개념으로서 사용되어 있음을 짐작할 수 있겠다. 영혼이 죽은 뒤의 내세 개념으로서 사용된 것은 성경 전체를 놓고 볼 때 상대적으로 많다고 볼 순 없겠고 그 당시에 지배적이었던 헬라사상이 투영된 시대적 배경의 산물임을 알 수 있으리라고 본다.
 
 

<영혼구원>이란 사실상 인간의 중추자아(몸얼)에 대한 해방으로서의 삶의 구원을 의미

따라서 우리는 <영혼구원>이란 개념도 새롭게 고찰해볼 필요가 있겠다. 기존 기독교는 흔히 곧잘 영혼구원을 부르짖는다. 앞글에서도 말했듯이 이들이 말하는 <영혼구원> 운동 혹은 전도나 선교란 것은 예수를 믿는다고 입으로 고백해서 내세 보장의 사후보험에 제발 가입해달라는 것이다. 교회에서 뽑는 전도왕은 사실상 <사후보험 판매왕>이라고도 볼 수 있다. 교회는 사후보험 판매에 대해 주간별 월별 판매실적 및 매년 판매실적에 대해 푸짐하게 시상해주기도 한다.

그런데 이러한 <사후보험> 판매식의 영혼구원 운동은 사실상 잘못된 영혼구원 운동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그것은 성경에 비춰 봐도 그러하다. 앞서 고찰했듯이 성경의 영혼 개념이 전인적이고 통전적인 차원의 영혼 개념이기에 기존 교회에서 곧잘 볼 수 있는 사후 세계의 영혼 구제 운동에 결코 한정될 수 없다는 얘기다.

<영혼>이란 인간의 모든 활동들을 관장하는 중추자아에 해당하며, 이것에 대한 구원이라는 것은 결국 우리의 중추적인 자아가 <불완전한 에고>에서 <그리스도적 자아>로의 뒤바뀜을 의미하는 것이다. 따라서 "영혼이 구원받았다"는 말의 의미는 나의 자아실현이라는 삶의 궁극적 목표가 예수 그리스도를 닮는 삶으로 전향하게 되었다는 얘기다. 그렇기 때문에 그것은 전인적인 전향에 해당한다.
 
이때 <그리스도적 자아>란 것은 내 삶의 목표를 <하나님나라의 구현>을 내 삶의 목표로 삼는 자아를 의미한다. 이것은 자아의 포월적 발달 및 진화로서의 쾌거인 것이다('포월'에 대해선 다음번 글에서 설명될 것임). 그렇기에 결국 기독교가 말하는 영혼구원 개념을 좀더 엄밀하게 얘기한다면 그것은 나의 중추 자아를 하나님나라 운동에 맞추는 것에 다름아니라고 하겠다. 그리스도의 자아 속에는 모두가 상생할 수 있는 삶의 지평인 하나님나라 밖에 없다.

그 어떤 한 사람의 영혼을 구원한다는 것은 그 사람의 전체 인격으로서의 삶의 변화를 의도하고자 하는 것이지, 그 사람이 죽은 뒤의 사후 영혼을 보장한다는 그런 식의 협애한 의미가 결코 아닌 것이다. 성경은 인간의 영혼 이해를 애초부터 그렇게 협애하게 이해하지 않았었다.
 
오늘날 기존 기독교가 설레발치고 있는 영혼구제 운동이라는 것은 결국 플라톤의 영혼불멸설이 초기 기독교 형성 때부터 이미 유입되고 있었고 그리스 철학이 서구 사상 전반에 영향을 끼쳐왔듯이 그럼으로써 기독교인들에게도 결국은 영혼이 그런 식으로 이해됐었고 사후 세계 문제가 중요해지게 되었던 것뿐이었다.

영혼 구원이란 것도 결국은 현실 삶에 대한 구원을 필연적으로 내포하고 있는 것이다. 앞서 말했듯이 나는 영혼도 몸의 진화와 더불어 진화한다고 얘기한 바 있다. 그러한 단계는 크게 보면 9단계로 나눌 수 있다고 본다. 그리고 이러한 영혼의 진화는 새로운 기독교 입장에서 모색하는 사후 세계의 가능성과도 관련한다.
 

(계속 이어집니다..)
 
 
 
[관련 링크] 새로운 기독교 입장에서 모색해보는 사후 세계와 영혼 개념 (1)
 
Joe (09-07-06 05:03)
 
제가 평소에 고민하던 새로운 페러다임에 의한 구원론의 의미가 어느정도 구체적으로 잡히는 내용입니다.
매우 유익한 내용의 글입니다.
감사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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