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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목 : 종교운동과 사회운동을 구분 못하는 오류-기존 진보 기독교 비판 (1)    
  글쓴이 : 미선이 날 짜 : 11-10-14 06:56 조회(2314)
   트랙백 주소 : http://freeview.org/bbs/tb.php/b001/598 




종교와 사회운동의 차원을 구분하지 못하는 기존 진보 기독교
 
 
(* 이곳 세기연이 기존의 진보 기독교를 비판하는 이유는
보수 기독교 진영이 비판하는 수준과는 전혀 궤를 달리 하는 것이다.
이론적으로 보면, 기존의 보수 기독교 진영은 이미 진보 기독교 진영에 비할 바가 못된다고 본다.
그러나 오늘날 기존의 진보 기독교 역시 이 시대에 그 소임을 다하지 못하고 있는
낡은 진보에 지나지 않기에 부득이 비판될 수밖에 없다고 하겠다.
 
세기연의 포지션은 기존의 보수 기독교를 비판함과 동시에 기존의 진보 기독교 진영과도 맥을 달리하는
새로운 제3의 위치에 놓여 있다. 이른바 기존의 낡은 기독교 자체를 대체하려는 새로운 기독교 운동의 흐름으로 있는 것이다.)
 
 
 
기독교 자체의 문제보다 사회문제에 더 관심이 많은 기존의 진보 기독교

남한 사회는 현재 내년 총선과 대선을 앞두고 기존의 보수 기독교와 진보 기독교 진영이 각자 들썩이고 있다. 보수 기독교 진영은 기독교정당 창당으로 그리고 기존의 진보 기독교 진영은 생명평화기독교행동을 통해 자신들의 이념에 맞는 정치 후보를 확실하게 지원하겠다는 것이다. 어쨌든 두 진영 모두 어떤 형태로든 정치에 참여하겠다는 표명을 하고 있다.

군사독재정권 시절에는 보수 기독교 진영이 종교와 정치의 분리에 대해 주장했던 터라 어떤 면에서 이제는 격세지감을 느끼는 점도 있다. 이제 보수든 진보든 적어도 종교와 정치의 분리를 완연히 주장하진 않는다. 사실 이 점은 매우 애매한 문제이기도 하다.

나는 여기서 기존 보수 기독교 진영이 아닌 기존 진보 기독교 진영의 사회운동에 대해서 언급하고자 한다. 이는 사실상 필자 역시 오래 전 기존 민중신학 진영에 있을 때부터 줄창 봐왔던 지점에 대한 것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 전에 보수 기독교인들의 사회운동과 진보 기독교인들의 사회운동에 어떠한 차이가 있는지를 좀 짚어볼 필요가 있겠다. 물론 전자는 수구우익적이고 후자는 주로 진보좌파에 속한다는 점은 너무나도 잘 알려져 있기에 굳이 여기서까지 그런 얘길 언급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보수 기독교인들의 사회운동은 그들이 지닌 분명한 종교적 열의에서 나온다. 나는 이들의 수구우익적인 사회적 행태들은 이들이 믿고 있는 종교신앙에서 나온다고 생각한다. 물론 저들의 권력적인 확장욕에서 나온 것일테지만 이를 지속적으로 정당화해주고 재생산 해주는 것이 바로 이들의 보수 기독교 신앙 체계라는 것이다. 이들이 믿는 하나님 신앙과 예수 신앙 그리고 죄와 구원, 천국과 지옥 심판사상 등등 이러한 신앙의 구조는 필연적으로 그 사회의 보수우파적인 이념과 친화성을 띤다는 사실이다.

사회정의 운동을 위해 종교의 외피를 두르다

반면에 진보 기독교인들의 사회운동은 종교적 열의에서 나오는 점도 있긴 하나 어떤 면에서 사회운동자체를 위해 종교를 활용하는 면이 보다 강하다. 나 자신이 이렇게 생각하는 이유로는 이들은 적어도 보수 기독교 자체에 대한 문제의식이 많이 결여되어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물론 보수 기독교 신앙이 문제라는 사실을 익히 알고 있는 진보 기독교인들도 있다. 하지만 정작 내가 제기하는 문제의 핵심은 기존의 진보 기독교인들이 관심하는 사회정의운동만큼 기존의 보수 기독교에 대한 변혁을 의도하고 있느냐를 봤을 때 별로 그렇지 않다는 사실이다.

진보 기독교 진영은 기독교 내부 문제보다는 일반 사회 현실에 더 관심이 많다. 그래서 고맙게도 많은 사회정의 운동을 펴기도 한다. 남북관계 개선을 위한 통일운동도 좋고, 각종 평화운동, 노동운동, 생태환경운동에 앞장 서는 것도 좋다. 그런데 적어도 보수 기독교 진영이 지닌 뿌리 깊은 문제와 그 병폐에 대해 앞서 그만큼의 관심과 여력만큼 변혁을 의도하는가 라는 점이다. 결코 그렇지 않았었다.

나는 오래전부터 기존의 진보 기독교 진영이 왜 그러한 지에 대해서 궁금했었다. 그것은 아마도 철학적 성찰에 대한 모호한 정립이나 부재 때문일 것으로 본다. 더 정확히 말하면 존재론적 성찰이 결여된 형이상학에 대한 문제의식을 전혀 못느끼고 있다는 사실이다. 나는 한국 기독교 역사에서 다석 유영모와 함석헌을 제외하면 이 부분을 명확하게 인지하는 자를 발견하질 못했었다.

이에 대한 그 원인을 나는 1차적으로는 나는 군사독재정권을 살아왔던 암울한 시대적 상황에 먼저 돌리고 싶다. 당시에는 종교인으로서 사회운동이 필요한 때도 있었다. 그 옛날 군사정권시절에는 누구하나 입바른 소리를 하는 사람이 없기에 종교인들이 나서지 않을 수도 없었다. 종교의 사회적 힘은 당대의 정치적이고 사회적인 상황의 힘과 맞물려 있다. 그렇기에 나는 솔직히 말씀드려 86항쟁까지의 박형규 목사님 세대까지만 진보 기독교로서 인정한다.

그 이후의 기존 기독교 진보 인사들은 솔직히 말씀드려 관성화된 기독운동에 머물러 있을 뿐이기에 진정한 의미로서의 진보라고 말씀드릴 수가 없다. 왜 그러한가? 사실상 90년대 이후 다양한 시민사회 운동이 전개된 후로는 남한의 기독교 운동은 낡은 기독교 자체를 문제시 하는 <새로운 기독교> 운동으로 나아갔어야 했었다. 하지만 전혀 그러질 못했었고, 여전히 사회운동에 종교라는 색채만 덧붙인 꼴이었다. 따라서 진보 종교인들의 관심사는 여전히 사회였지 기독교 종교 자체는 아니었던 것이다.
 
마르크스주의 진영의 접근과 기존의 진보 기독교와 계속되는 제휴들

흥미롭게도 일선 현장에서 몇몇 진보 개신교인들이 종교 정체성에 대한 혼란을 겪는 것은 사회운동과 종교와의 모호한 경계에서다. 물론 그 자신은 나는 내가 믿는 종교적 신앙으로 사회운동을 한다라고 언급할 것이다. 하지만 정작 이들의 종교적 신앙과 관심은 대체로 계급투쟁을 비롯한 사회운동으로 환원되기가 일쑤였다. 이들이 드리는 예배와 기도 그리고 성경말씀 해석 등등 그 모두가 궁극적으로는 체제 변혁과 민중해방으로 모아지게 되는 것이다.

좌파에 속하는 마르크스주의 진영과 기존의 진보 기독교 진영이 여전히 교감을 나눌 수 있었던 것도 바로 이런 맥락에서다. 그러나 냉정히 말해서 그것은 종교라고 보기엔 힘들다. 다만 종교의 외피를 두른 좌파 성향의 NGO운동일 뿐이다. 그 와중에 기존의 낡은 기독교의 독버섯들은 여전히 활개를 치고 다닌다. 심지어 이제 그 낡은 기독교 진영은 거대해져 정치세력화까지 하기에 이른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기존 교회 문제를 바라보는 원인 분석도 결국은 성장주의, 맘몬주의로 보는 표피적 시각들이 대다수다. 물론 이는 오늘날 신자유주의 같은 자본주의 시스템에 물든 기독교를 비판하는 것일 게다. 하지만 내가 볼 땐 그것 역시 또 다른 원인의 결과적 표출일 뿐이다. 그렇다면 정작 무엇이 문제인가?

나는 이 문제가 이천 년 동안 어쩌면 그 이상으로 썩어왔던 길고 장대한 문제라고 보기에 보다 궁극적인 기초부터 새롭게 구축하지 않으면 안되는 문제라고 본다. 근원적으로는 형이상학에 대한 합리적 성찰이 결여된 채 잘못된 철학에 기반되어 있다는 점과 이것이 기독교 역사 상에서는 공식화된 언명으로 드러난 교리라는 문제를 분명하게 제기해야 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실상 이 부분을 제대로 들여다보며 진단하는 기존의 진보 기독교인을 발견하기가 정말로 하늘의 별따기 만큼이나 드물다는 사실이다.

기존의 민중신학이 한편으로 안타까웠던 점도 이 지점을 간과한 채 마냥 사회정의 운동에다 기독교 종교라는 색조만 입히고 만다. 그래서 기존 진보 기독교 진영에서는 <민중해방>이 화두였고 이제와서는 <생명평화>가 시급한 화두로 정착되어 있는 실정인 것이다. 그러나 내가 볼 때 민중해방이나 생명평화도 결국은 열매에 해당될 뿐이다. 우선은 깨달음이라는 존재론적 성찰이 제대로 정립되지 않으면 안된다. 종교 신앙만 올바로 정립되어 있다면 그 삶이야말로 민중해방 혹은 생명평화의 지점으로 드러날 것으로 본다. 이는 이미 함석헌의 주장이기도 하다.

이른바 예수는 이미 그 안에 마르크스를 <지양>한다고 보는 것이다. 예수에게는 이미 마르크스가 극복되어 있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몇몇 마르크스주의자들도 그들의 사회정의 운동을 위해 기독교 신앙에 대해 전략적으로 관심해 한다는 사실이다. 예를 들어, <신을 옹호하다>의 테리 이글턴이나 <성서와 대안좌파>의 로랜드 보어를 들 수 있겠다. 경우에 따라선 <죽은 신을 위하여>의 슬라이보 지젝도 그러한 점이 없잖아 보인다. 마르크스주의 진영이 종교에 관심하는 이유는 딱 하나밖에 없다. 그것이 기독교든 무엇이든 간에 이 땅의 지상천국 건설에 얼마만큼 유효하냐 아니냐인 것이다. 
 
 
 
(*마르크스주의 진영에서 사회적 실천을 위하여 기독교에 대해 우호적으로 접근한 서적들.. )
 
 
안타깝게도 기존의 몇몇 진보 기독교인들은 이러한 것이 진짜 진정한 진보 기독교인냥 꿈뻑 잘 속아넘어가기도 한다. 그러나 저작 이들이 궁극적으로 관심하는 그 실체는 종교가 아닌 사회적 실천이라는 체제 변혁의 운동일 뿐이다. 심지어 이 구분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경우들이 중간 복음주의 진영에서도 발견되기도 할 정도다. 당장 시급하다고 생각되는 시류적인 정치사회운동에 경도되어 있기에 제대로 구분하질 못하는 것이다.
 
종교의 외피를 두른 좌파 사회운동은 결코 종교운동이 아니다!
 
다시 한 번 강조해서 말하고 싶다. 제발 종교를 사회운동에 이용하지 말았으면 한다. 사실 오늘날에 와서는 기존의 보수 기독교나 진보 기독교 진영 모두 종교를 이용한다는 점에서만큼은 크게 다르진 않은 것 같다. 물론 모두가 그렇진 않을 것으로 본다. 하지만 대부분은 상대방의 종교 신앙 자체를 문제 삼기보다는 오히려 이들이 펴고 있는 정치적 입장에 더 민감해하기도 한다.

엄밀히 말해 기독운동은 종교운동이지 사회운동이 아니다. 이 둘을 분명하게 구분하지 못한다면 우리의 기독교는 그저 사회정의 운동을 위한 종교로서 제한될 것이다. 그것은 종교를 가장한 좌파 성향의 NGO일 뿐이다. 신 존재도 기도도 말씀도 결국은 그것들조차 <사회적 실천>(프락시스)를 위해서만 의미가 있을 뿐이다. 그것은 사회운동이지 종교가 결코 못된다.
 
내가 볼 때 오늘날 기존의 낡은 기독교를 넘어서 새로운 기독교 운동을 펴고자 한다면, 그것은 필시 <새로운 종파운동>이 되지 않으면 안된다고 보여진다. 우리는 남한 사회에서 이단 사이비에 속한다는 <신천지 종파>를 잘 알고 있다. 이들은 성경공부로 기존의 보수 기독교인들을 상대로 꼬시고 있다. 내가 보기에 새로운 기독교 운동을 펴게 된다면 그러한 <새로운 종파운동>이 되어야만 할 것으로 본다. 물론 새로운 기독교가 갖고 있는 내용은 사이비 유사 종교인 신천지 종파가 지닌 내용과는 완연히 다르다. 단지 담겨 있는 내용은 다르지만, 적어도 그것이 <종파운동>이라는 점에서 볼 경우 그 패턴은 공통될 수 있다.
 
따라서 내가 말하고자 하는 바는, 이제 <새로운 기독교 종파>가 탄생되는 그러한 운동이 꼭 있어야만 한다는 것이다. 바야흐로 새로운 깨달음 같은 존재론적 성찰에 기반된 새롭고 건강한 기독교 종파가 점차로 늘어간다면 내가 보기엔 그렇게 늘어가는 것 자체가 일종의 건강한 사회변혁 운동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기독교만이라도 제대로 건강할 수 있다면 그야말로 그 자체로 건강사회 운동이 아니고 뭐겠는가. 그리고 바로 그 지점에서 신학은 몸학으로 전환될 것이다.

우리가 예수의 몸삶을 살아가고자 한다면 예수의 신경세포 뉴런과 시냅스에서 일어났던 사건, 곧 존재론적 성찰 및 새로운 눈을 뜨는 세계관이라는 귀한 깨달음과 함께 갖고 가지 않으면 안되는 것을.. 이는 우리의 몸삶이 단순한 예수흉내나 모방이 아니라 지속적으로 예수로 살기 위해서는 필연적인 과정인 것이다.
 
 
 
빛의 영 (11-10-21 16:57)
 
저도 진보 진영에 속합니다만, 정치와 종교를 접목시킨 적이 많았죠. -_-;;

이 부분에 있어서는 다시 한 번 생각해 봐야 할 것 같아요.

    
미선이 (11-10-22 08:04)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제 생각에는, 정치와 종교가 접목되는 것 자체는 별문제가 없다고 봅니다.
왜냐하면 어차피 궁극적으로 종교와 정치는 접목될 수밖에 없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종교라는 것이 인간 삶의 전인적인 면면들을 지배할 만큼 궁극적인 정신의 뿌리에 기초되어 있으니까요.

다만 오늘날 기존의 진보 기독교 진영에서 보여주는 기독운동이란 것이
종교운동이라기보다 일종의 사회과학 운동차원에서 종교를 활용하는 경우와 딱히 차이가 나지 않을 뿐더러
사회운동에 신경을 쓰는 것만큼 기존의 보수 기독교가 갖는 병폐에 대해서는
그다지 첨예한 전선을 형성하진 않는다는 것입니다.
단지 정치 사회학적 지평에서만 서로 맞서는 첨예성을 가질 뿐.. 여튼 분명한 한계가 있는 것이죠.

우리가 그 옛날 팔레스타인에서 예수공동체와 바리새파 간의 첨예했던 전선을 생각해본다면
예수는 유대교 진영에서 바리새파야말로 하나님을 파는 반유대교 세력들로 보고 있음을 잘 알고 있습니다.
예수는 어떤 의미에서 <새로운 유대교 운동>이었습니다. 그것이 나중에 그리스도교로 이어질 뿐이죠.
그러한 예수의 입장에서 보면 바리새파들은 하나님나라 운동의 적대세력이었습니다.

마찬가지로 기존의 주류 보수 기독교 세력들이야말로 사실상 기독교 안의 비기독교 세력들이라고 봅니다.
그렇기에 정치 사회 운동에 신경쓸 것이 아니라(물론 그 이념적 운동에 대해선 충분이 동의하나)
혹은 신경을 쓰더라도 그만큼 그 이상으로 기독교 자체의 문제에 대해 더많은 신경을 써야 한다는 점입니다.

제가 보기엔 오늘날의 진정한 기독운동은
기존의 보수와 진보 기독교 진영마저 넘어서는
제3의 새로운 주체 세력이 필요해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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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 교회에 십일조 내지 마라! (5) 정강길 4371 02-06
50 예수정신에 똥칠하는 기독교 정치세력들 정강길 3180 01-02
49 기독교의 배타적 선교 문제, 정면으로 다뤄라! 정강길 3649 08-31
48 기존 기독교의 붕괴와 새로운 기독교의 도래 (3) 정강길 3611 08-06
47 기존 기독교의 붕괴와 새로운 기독교의 도래 (2) 정강길 3244 08-02
46 기존 기독교의 붕괴와 새로운 기독교의 도래 (1) 정강길 3538 0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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