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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목 : 그런 신은 없다! 하지만 신은 있다! (3)    
  글쓴이 : 미선이 날 짜 : 10-09-21 10:18 조회(1572)
   트랙백 주소 : http://freeview.org/bbs/tb.php/b001/516 




 
그런 신은 없다! 하지만 신은 있다! (3)
 
- 기존의 고전 유신론과 현대 무신론마저 넘어서는 새로운 유신론을 위하여
 
 

“하나님도 한 분이십니다.
 그분은 만유의 아버지이시며,
 만유 위에 계시고,
 만유를 통하여 일하시고,
 만유 안에 계십니다.”      - 에베소서4장6절(표준새번역)
 
 
 
 
불가지적 무신론과 불가지적 유신론
 
전투적 무신론자(military atheist)인 리처드 도킨스는 매우 솔직한 학자다. 그의 문장은 매우 힘이 있고 설득력이 있다고 생각된다. 이러한 그의 현재 입장은 “아마도 신은 없을 것”이라고 보는 <불가지적 무신론>의 입장이다. 불가지라고 남겨두는 것은 절대적이고 최종적인 이론은 그 어느 누구도 확정할 수 없기 때문이다. 도킨스의 솔직하고 겸허한 면도 볼 수 있는 지점이다. 사실상 이는 무신론자든 유신론자든 그 어떤 누구이든 마찬가지라고 본다.

그런 점에서 마찬가지로 나 자신은 <불가지적 유신론>의 입장에 해당된다고 하겠다. 즉, “아마도 신은 있을 것”이라는 입장이다. 그리고 이러한 나의 입장은 현대 자연과학의 성과들을 기본 자료로 삼아서 전체 우주를 설명하는 통합적 철학사상인 화이트헤드의 과정 형이상학에 기반한다. 물론 일반인들에겐 너무 어렵다는 점이 한계일테지만, 알고보면 지금까지의 철학 사상 중에서 유일하게 논리적으로 정직하려 했던 <신 존재 증명의 철학>이기도 하다(혹자는 증명 자체의 불필요성을 얘기하기도 하지만 이는 형이상학 자체에 대한 무지로도 이어지기에 나는 이에 동의하지 않는 입장임).

이러한 새로운 신 이해는 기존의 신 존재 이해와는 전혀 다르기에 서구인들로는 이를 이해하기가 퍽이나 힘들었을 걸로 본다. 이는 기독교 사상의 영향을 받은 사람들에게도 마찬가지일 터. 다시 말해서 우리들이 신 존재를 언급할 때 흔히 떠올리게 되는 신 개념은 서구 기독교 사상의 유신론 개념인 것이다. 이슬람교의 신(알라)까지 포함하더래도 결국 그 신이라는 존재는 초자연적인 존재로서의 신이자 절대적이고 전능한 존재로서 창조주라는 점에선 크게 다르지 않다는 사실이다. 그런데 새로운 신 이해는 바로 그러한 신에 대한 고정관념적 이해에서 벗어나있다는 얘기다(이에 대해선 http://freeview.org/bbs/tb.php/b001/21 참조).

그리고 이러한 새로운 유신론자의 입장은 논리적 정합성에 대한 정직함과 사유의 솔직함을 더 근원적으로 내세우기 때문에 “신은 무조건 있다”는 식의 유신론적 근본주의자는 아니라는 점도 첨언되어야 할 것이다. 다시 말하면, 만일 새로운 유신론에도 얼마든지 오류가 있다면 얼마든지 이를 수정 또는 폐기처분할 수 있다는 것이다. 나는 그 지점에까지도 열려 있어야 한다고 본다. 무엇이 진리인가의 문제는 결국 발견한 오류에 대한 문제와 이에 대한 수용여부로서의 태도 문제와도 결부되어 있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마찬가지로 “신은 무조건 없다”는 식의 <무신론적 근본주의> 역시 또 다른 폐해가 될 수 있다고 본다. 즉, 무신론에서도 설명되지 못하는 난점과 부정합성 앞에서조차 여전히 “신은 무조건 없다”는 입장이 옳다는 식으로만 나간다면 그 역시 유신론적 근본주의자들과 똑같은 패턴의 <무신론적 근본주의자들>일 뿐이다. 물론 역사적으로 따지고 보면 유신론적 근본주의자들의 폐해가 훨씬 더 심각했었기에 이 둘만 놓고 본다면 나는 오히려 무신론자들의 입장을 옹호하는 편이다.

하지만 역으로 무신론자들 역시 발견된 논리적 허술함 앞에서 여전히 “신은 없다”라는 것을 맹목적 전제로 삼는다면 적어도 사유의 패턴이 지니는 그 유사성만큼은 유신론적 근본주의자들의 맹목적 신앙과도 다르지 않다고 본다. 무신론자들이 적어도 기존의 보수 근본주의 기독교인들보다는 훨씬 이성적이고 훨씬 더 낫다 라는 사실에는 공감할 지언정, 이들 역시 무신론적 근본주의자들이 되는 것이다.

불가지론은 불가지로 남아 있기 보다는 현실 변혁을 위해 재활용되어야

과학도 일종의 종교가 될 수 있다는 점을 이해하지 못하면 우리는 진정으로 과학에 종속되는 우를 범할 수 있다. 현대인들에겐 과학도 일종의 종교다. 궁극의 기반으로 삼는다는 점에선 보수 기독교인들과 별다르지 않