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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목 : 자랑스러운 한신, 새로운 시대의 진보로 다시 태어나기를..    
  글쓴이 : 미선이 날 짜 : 10-04-19 00:31 조회(1425)
   트랙백 주소 : http://freeview.org/bbs/tb.php/b001/491 




(*진보 언론 매체인 [민중의 소리]로부터 갑작스레 부탁받은 원고인데, 일단 이곳에 먼저 올려놓는 바이다.)
 
 
 

자랑스러운 한신, 새로운 시대의 진보로 다시 태어나기를..
 
- 설립자 장공의 정신으로 한신의 진보성에 대한 새로운 좌표 설정이 필요하다!
 
  
 
 
 
1. 시작하며..

나는 한신대학교를 졸업한 것에 대해 매우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사람들 중의 하나다. 원래 매우 보수적인 기독교인이었던 내가 한신대 신학과를 들어갈 수 있었던 것은 한국 신학계의 자랑스런 진보신학이라고 할 수 있는 <민중신학>Minjung Theology을 접하고 나서였다. 당시 한신대학교는 민중신학의 본산이요 젖줄로 알려졌던 곳으로서 나의 자율적 의지로서 선택한 최초의 학교라고 할 수 있겠다. 민중신학은 한신 신학의 사상적 진보성을 대변해주는 여러 성과들 중의 하나다. 이러한 한신대만의 진보성(줄여서 ‘한신성’이라고 표기함)은 비단 기독교 영역에만 해당되지 않는다. 9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한신성>이라고 하면 우리 사회의 일반적인 진보 운동권 진영에도 잘 알려져 있을만큼 그 네임밸류를 인정받기도 했었다.

하지만 현재의 한신은 어떠한가? 이러한 과거의 영광을 되살려 오늘의 한신은 새로운 미래를 여는 진보 세력으로서의 주역이 될 수 있을 것인가? 한신의 진보성은 과연 다시 새롭게 거듭날 수 있는 것인가?

2. 한신대학교의 진보성 태동과 장공 김재준 목사
 
지금까지 한국 기독교 역사 전체를 통틀어 나 자신이 가장 존경하는 신앙의 선배를 꼽으라면 딱 두 사람이 있는데, 두 분 모두 자랑스럽게도 한신의 선배들이다. 그들이 바로 장공 김재준 목사와 늦봄 문익환 목사다. 김재준 목사는 문익환 목사의 스승이기도 하다.

알다시피 김재준 목사는 한신대학교의 태동과도 관련이 있는데, 김재준 목사가 1940년에 출범한 조선신학교가 원래 한신대학교의 뿌리였으며, 나중에 한국신학대학(1951년)으로 명칭되다가 종합대학으로의 변화(1980년)를 꾀하면서 오늘날의 정식 명칭인 한신대학교(1992년)로 불려지게 된 것이다. 이처럼 한신대학교는 원래 기독교 학교로서 출범된 것이었다. 이때 김재준 목사가 한국 기독교 및 우리 사회에 갖는 의미를 다시금 되새겨 볼 필요가 있다고 여겨진다. 나는 장공의 삶과 정신이야말로 결국은 한신대학교를 설립한 그 기초 이념의 토대가 된다고 본다.

장공 김재준 목사가 우리 시대에 갖는 소중한 의미는 누가 뭐래도 <학문의 자유>와 <역사 참여>의 정신일 것이다. 이는 한신대학교가 지금까지 걸어왔던 과거의 주요 발자취와도 맞닿아 있다. 한신대학교는 지금까지도 엄연히 한국기독교장로회 총회의 관할을 받는 대학교인데, 바로 그 한국기독교장로회를 태동시킨 선각자가 다름 아닌 김재준 목사다. 그는 1953년 보수적인 대한예수교장로회 기독교 진영과 갈등을 빚으면서 결국 한국기독교장로회를 이끌고 나왔었다. 당시 그가 주장한 ‘학문의 자유’로서의 성서비평의 도입은 지금도 여전히 교계엔 신선한 충격으로 여겨질 만큼 놀라운 행적으로 남아 있다. 오늘날 한국 기독교의 현실이 아직도 반세기 전에 김재준 목사가 주창한 그 정도의 기독교조차 못되어 있다는 점에서 볼 때 그가 얼마나 앞서 나간 선각자였는지를 알 수 있게 해주는 대목이기도 하다.

뿐만 아니라 이후의 김재준 목사는 한신대학교의 역사에도 남아 있듯이 반독재 투쟁 및 민주화운동과 통일운동에 수많은 족적을 남긴 바 있다. 물론 김재준 목사에게도 초창기 신사참배 문제 논란 같은 흠도 없잖아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 자신이 김재준 목사를 가장 존경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로는 그 이후에 걸어갔던 길이 이를 상쇄할 만큼이나 한국 기독교 역사와 전체 우리 사회에 많은 족적을 남길 만큼의 엄청난 길을 걸어갔었기 때문이다(KBS 인물현대사-“지상에 천국을 꿈꾸다, 김재준편” 방송 참조). 그의 제자였던 걸출한 문익환 목사의 등장과 안병무와 서남동의 민중신학 태동은 한신대학교의 역사와도 함께 남아 있을만큼 김재준 목사의 산파적 역할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것이었다.

내가 여기서 말하고 싶은 것은 애초 장공 김재준 목사를 통해서 한신대학교의 역사를 봤을 때 그는 지금까지도 보수화되어 있는 한국 기독교와는 좀 더 다른 새로운 대안 기독교의 변모를 꾀한 점이 있어 보인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새로운 기독교의 모습은 적어도 이론적으로는 사상의 자유로운 탐구가 보장되고 또한 실천적으로는 역사 참여 및 사회정의 운동으로 이어지는 특징을 갖는다는 것이다. 이는 오늘날 본인이 추구하는 새로운 대안 기독교의 모습과도 정확히 일치하는 정신이다.

3. 한신대학교의 진보성, 길을 잃다..

한신대만의 강렬하고도 독특한 진보성은 박정희 유신독재 시절부터 서서히 빛났었다. 유신독재가 선포된 직후인 1973년에 박정희의 군사독재정권에 항의하기 위해 학교의 교수와 학생 모두 한마음으로 결연하게 삭발식을 치룬 일화는 매우 유명하다. 이후 1975년에는 결국 정권의 탄압으로 휴교령을 받을 만큼 군사독재정권에 맞서는 전통을 일궈냈을 뿐만 아니라 전두환 독재정권이 시작된 80년대 초반에도 아예 신학과 모집이 2년 간 중단되기도 했었다. 또한 한신대의 교수들이 해직당하는 일도 예사였다. 민중신학자였던 안병무, 문동환 교수는 두 번이나 해직을 당했었다. 당시 5공 독재에 맞선 한신대 학생들의 극렬한 투쟁과 86년 한신대 교수들의 시국선언 역시 우리 사회의 진보를 앞당기는데 많은 기여를 한 바 있다. 내가 알기에 7, 80년대 박정희와 전두환의 독재정권 하에서 아마도 한신대학교만큼 교수와 학생이 혼연일치가 되어 독재체제에 대한 항거를 보여준 학교는 매우 드물지 않을까 싶을 정도다.

우리는 여기서 한신대학교 역사의 진보적 자취들이 이들의 기독교 신앙과도 깊은 관련이 있다는 사실을 인지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이들의 기독교 신앙은 오늘날 대다수 한국 기독교인들의 신앙과는 사뭇 달랐었다는 점 역시 분명하게 주목되어야만 할 것이다. 오히려 보수적인 한국 개신교계는 그동안의 한신대학교를 사탄의 소굴로 여길 정도로 거의 이단시하는 분위기였었기에 그 괴리가 어느 정도인지 짐작할 것으로 본다. 독재정권으로부터 모진 고문과 탄압을 받아도 이에 굴하지 않고 항거한 종교 신앙으로서의 진보성이 우리 사회의 진보성으로도 구현된 그 새로운 의미가 바로 한신대학교만의 진보성 곧 <한신성>이었던 것이다.

그러다가 80년대 말과 90년 이후로 서서히 한신의 자랑스런 진보성은 그 길을 잃어갔다. 독재와 맞섰던 한신대학교의 찬란한 투쟁의 역사가 당시 한국기독교장로회(이하 줄여서 ‘기장’으로 표기)에 불어닥친 보수화 바람과 맞물리면서 서서히 퇴색해갔던 것이다. 기장 교단이 보수화 바람에 휘둘리다보니 한신대학교 역시 그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없었다. 이른바 기장의 교세 확장을 지향하는 목회자들이 한신대학교의 방향성에도 영향을 미쳤던 것이다. 그러면서 한신대학교에 대해 진보성을 버리라든가 한신대의 분명한 정신적 주춧돌인 장공 김재준 목사에 대해서도 교회성장에 있어선 걸림돌이 된다고 보는 흐름들이 있었다. 이는 한신성을 잠식하려는 보수 성향 기독교 목회자들의 역공 같은 것이었다.

또한 당시엔 한신대학교의 학내 문제도 있었다. 가슴 아프게도 한신대학교는 종합화의 길을 올곧게 가질 못하고 신학과 교수들과 일반 학과 교수들 간에 갈등을 일으키기도 했었는데 그 과정에서 그만 훌륭한 진보 성향의 학자들을 놓치기도 했었다. 이를 테면 1987년 벌어진 학내 민주화를 이루지 못하고 한신대학교를 결국 나가야만 했던 정운영 교수와 김수행 교수는 아마도 대표적인 사례일 것이다. 이는 한신대학교의 뼈아픈 반성으로 다가오는 대목이라고 생각된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한신대학교의 진보성이 길을 잃게 된 가장 큰 요인을 핵심적으로 말한다면, 결국은 애초의 장공 김재준이 보여준 첨예할 정도의 자유로운 학문 탐구 정신과 사회적 약자들을 우선시하는 역사 참여 정신이 기장의 보수화 바람과 맞물리면서 서서히 탈각된 점에 있다고 여겨진다. 90년대 이후로 한신대학교는 그 진보성을 점차로 상실해갔으며 오히려 예전의 한신대를 벤치마킹했던 성공회신학대에서 그 진보성이 꽃피는 분위기를 감지할 정도로 마치 옛날의 한신대가 그쪽으로 이행해버린 듯한 느낌마저 들 정도였다. 오늘날 한신대학교의 현실은 여전히 기존 기독교라는 전통의 그늘에서 크게 벗어나 있지 않다. 그것이 기독교 전통이든 정통이든 한신성이든 간에 제일 중요한 덕목은 뭐니뭐니해도 지금까지의 온갖 오류와 비극에 대한 성찰이다. 현재의 우리가 진리라고 확신하고 있는 그 어떤 것들조차도 오류와 비극에 선행할 수는 없다. 그것에 대한 반성이 온전히 이뤄지지 않는다면 결국 같은 잘못을 계속 되풀이 할 수 있는 위험이 있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단순히 한신대학교가 또 다시 과거로의 회귀와 영광을 기념하는 차원에만 머문다면 그 역시 고답적 행보밖에 되지 않을 것이다. 한신대학교가 우리 사회의 진보 역사에 또다시 뭔가를 공헌할 수 있는 새로운 부활로 일어나려면 지금까지의 오류와 실패에 기반한 새로운 진보성으로서의 반성적 기획이 있어야 한다고 본다. 그것은 뭔가? 그것은 바로 한신대만이 할 수 있는 새로운 대안 진보 기독교로서의 기획이다.
 
4. 한신대학교의 진보성, 장공의 정신으로 다시 새롭게 설정하라!
 
한신대만이 할 수 있다는 얘기는 한신대가 여전히 기독교 학교이기 때문에 그러하다. 일단 현재까지도 분명하게 명시되어 있는 한신대학교 학교 법인의 정관 제1조인 학교의 설립목적을 살펴보자. 거기엔 다음과 같이 나와 있다.

“본 학교법인은 기독정신과 대한민국의 교육이념에 의거하여 한국기독교장로회 총회 관할 하에서 한국기독교 교역자와 기독정신에 입각한 국가사회의 지도자를 양성하기 위하여 고등교육 및 중등교육을 실시함을 목적으로 한다.”

즉, 한신대학교는 어디까지나 기독교 학교를 표방하는 종합대학으로서 설립된 것이다. 그런데 지금까지 한신대학교의 자랑스런 역사들을 보면 기독교 신앙과 약자해방의 사회적 실천이 함께 공존해왔었을 뚜렷하게 엿볼 수 있을 것이다. 고 장준하 열사, 광주민중항쟁의 류동운 열사 그리고 통일운동과 민주화운동의 늦봄 문익환 목사의 삶 등등 이외에도 한신의 출신들은 기독교인이면서 동시에 사회운동을 위해 뛰어든 신앙의 선배들이 아주 많았었다. 또한 민중신학도 잘 들여다보면, 그 기독교적 가치를 사회 일반의 약자해방의 실천 담론과 연계시키고 있는 우리 사회의 대표적인 진보 기독교 진영의 신학에 해당되고 있다. 하지만 현재 이러한 모습들도 예전에 비하면 거의 전무하리만큼 한신대학교의 진보적 색조들은 매우 빛바래져 있는 느낌이 있다. 한신대학교의 신학과는 그저 기장 교단의 교세 확장에 복무하는 신학대로 남아 있는 것 마냥 여전히 한국 기독교계를 선도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며, 한신대학교의 다른 일반 학과 역시 여느 다른 대학들과 마찬가지로 취업 준비로 여전히 목메고 있는 모습들 또한 많이 볼 수 있을 걸로 본다. 

혹자는 한신대학교가 이처럼 예전의 한신성을 잃게 된 근본적인 원인을 바뀌게 된 시대적 분위기의 탓으로 돌리는 사람도 있다. 예전에는 사회적 적대 세력이 뚜렷했지만 적어도 지금은 아니라는 것이다. 나는 이러한 얘기조차도 어느 정도는 일리가 있다고 받아들이지만 보다 근본적인 원인으로는 결국 장공의 삶이 표방했던 그 정신을 한신대학교가 더 이상 발전시키지 못한 데에 있다고 본다. 이는 장공을 단순히 기념하는 것과 이를 비판적으로 발전 계승하는 것은 사실상 좀 더 다른 의미임을 말씀드린다. 내가 볼 때 21세기 한신대학교의 새로운 좌표 설정은 참신한 대안을 바라는 우리 시대의 진보적 기획들과도 새롭게 맞닿아 있어야 한다고 보는데, 바로 여기에 나는 한신대학교를 태동시킨 장공 김재준의 정신이 다시금 새롭게 부활하여 한 몫 할 수 있다고 보는 것이다.

내가 볼 때 장공 김재준이 설립한 기장 교단은 새로운 대안 기독교의 형태로 이어졌어야만 했었다. 그는 성서에 대해서도 합리적인 자유로운 탐구를 주장했는데 이는 지금도 전체 한국교계에선 받아들여지지 않고 있는 부분이다(심지어 기장 교단 안에서의 교회조차도). 게다가 한신대학교의 소중한 신학적 유산이기도 한 한국의 민중신학 역시 기존 기독교의 틀에서 나온 학문이 아니었다. 그렇다면 이것이 가능할 수 있는 새로운 대안 기독교로 이어졌어야 했음에도 기장은 그러질 못했었다. 즉, 군사독재정권에 항거할 수 있었던 힘은 내가 볼 땐 기존 기독교와는 전혀 다른 또 다른 기독교 신앙의 힘이었지만, 이것의 실체가 뭔지를 당시로선 아무도 제대로 몰랐을 정도다. 그저 시대의 아픔에 투신할 뿐이었다. 내가 볼 땐 신앙의 선배들은 이 점에선 위대한 일을 했다고 볼 순 있겠으나 적어도 90년대 이후로는 이를 제대로 구현해내는 새로운 대안 기독교로서의 신학적 작업들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했던 것이다. 그것은 심지어 지금까지조차도 올곧게 고찰되지 못한 상태로서 놓여 있다. 본인은 민중신학을 연구하면서 이것이 한신대학교 진보성의 역사와 기장 교단의 역사와도 정확히 같은 맥락의 행보를 보여주었다는 점에 대해 이미 주목한 바 있다(본인의 졸저 『화이트헤드와 새로운 민중신학』참조).

5. 한신대학교의 진보성, 제2의 새로운 기독교 학교로 다시 태어나라!

한신의 진보성은 약자해방의 사회적 실천이 가능한 새로운 대안 기독교로의 변모가 필요하다. 이러한 요소와 기존의 전통 보수의 교리적인 기독교 신앙이 서로 양립 가능할 수 있다고 보는 건 어불성설이다. 그렇기에 이점은 오늘날 기장 교단의 온전한 새로운 변혁적 쇄신과도 맞물려 있다. 현재의 기장은 그나마 사회적 실천으로선 다른 기독교 교단에 비하면 낫다고 볼 수 있을는지 모르나 여전히 시대에 뒤쳐져 있는 점들 또한 여전히 많다. 내가 볼 때 장공 김재준이 우리 사회에 특별한 기독교 무리였던 <한국기독교장로회>를 낳았듯이 이제 한신대학교와 기장은 우리 사회의 창조적인 진보성에 다시 기여할 수 있는 <새롭고 건강한 기독교 무리>를 다시금 새롭게 태동시켜야 할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이 지점에서 현재의 한신대학교의 교수들 특히 신학대 교수들 가운데는 바로 이러한 마인드의 참신한 신학자를 거의 찾아볼 수 없다는 점은 본인으로서도 여전히 안타까운 대목이 아닐 수 없는 실정이다. 거의 교단을 대변하는 교단신학자로 전락된 느낌이랄까. 게다가 이제는 민중신학조차도 제대로 연구 계승하는 신학자들도 극소수를 제외하면 거의 없는 실정이다. 쉽게 말해서 한신대학교는 여전히 장공 김재준 이상의 인물을 낳지 못하고 있는 시스템인 것이다.

그렇다면 이 지점에서 기독교인이 아닌 비기독교인이 볼 때 다소 의문을 가질 수 있다. 꼭 기독교여야만 우리 사회의 진보에 공헌할 수 있고 사회적 실천이 가능할 수 있다는 것인가? 물론 당연히 아니다! 꼭 기독교인이 아니더라도 우리 사회의 진보에 대한 공헌과 사회적 실천은 얼마든지 가능하다고 본다. 하지만 지금까지 한신만의 진보성을 역사적으로 고찰해봤을 땐 기존의 낡은 기독교가 아니면서 동시에 또 다른 새로운 기독교 신앙의 가능성과 맥락이 발견된다는 점에서 바로 여기에 한신대학교만의 진보가 추구하는 그 독특한 정체성과 한신대만의 자리매김이 있다는 애기다.

단지 지금 시점에서 한 가지 우려되는 점은 현재 한신대학교의 경우 그동안에 진행된 방만한 종합화로 인해 이러한 점을 다시 구현할 수 있는지, 혹은 근본적인 좌표 재설정을 할 수 있는지는 다소 의문스럽다는 점에 있다. 하지만 그러한 점을 감안하더라도 한신대학교는 장공의 정신으로 다시 새롭게 태어나는 기독교로서 근본적인 좌표 재설정을 해야만 한다고 본다. 나는 한신대학교가 종합대학이라는 점을 감안하기에 한신에 들어오는 모든 사람들이 꼭 기독교인이 되어야 할 필연적인 이유는 없다고 보지만, 지금까지 한신대학교가 지녀온 한신만의 진보성을 다시금 살리고자 한다면 기존의 낡은 기독교를 대체할 만한 새로운 대안으로서의 새로운 기독교 신앙의 모습들, 약자해방의 실천이 가능할 수 있는 통전적인 기독교 시스템을 우리 사회에 다시금 제시해 줄 필요가 있다고 여겨진다.

이를 테면 늦봄 문익환 목사의 삶에서도 보듯이 예수를 믿는 신앙인이면서 민중해방의 좌파적 사회활동이 가능할 수 있다는 점은 본인 역시 이를 경험하고 있는 신앙체험자로서 우리 사회에 새로운 대안 기독교 모색으로 좀 더 널리 알려져도 좋을만한 보다 놀라운 사실이 아닐까 싶다. 이때 결코 오해하지 말아야 할 점은, 한신성이란 게 기독교 신앙을 좌파적 사회운동으로 치환시키고자 하는 성격의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좌파적 사회운동으로 치환되는 기독교 신앙이라면 그것은 오히려 맥을 잘못 짚은 것인데 실제로 한신성을 그러한 것으로 오해한 사람들도 있긴 했었다. 하지만 한신의 진보성을 깊이 들여다보면 오히려 그 반대에 가깝다. 비유적으로 쉽게 말한다면, 곧 예수는 맑스를 <지양>한다는 것이며, 적어도 그 역이 아니라는 것이다. 나는 장공과 늦봄의 삶에서 종교 신앙이 더 이상 인민의 아편이 아니라 오히려 인민의 해방에 기여한다는 점에 더욱 주목하고 싶을 따름이다.

6. 한신대학교의 진보성, 그 새로운 부활을 기다리며..

한신대학교는 여전히 진보를 표방하지만, 현재의 한신대학교는 기로에 서 있다. 단순히 과거의 역사와 영광을 기념하는 것에만 그치고, 한신의 신학대가 기장 교단에 복무하는 신학으로 그리고 다른 일반학과들은 취업 준비 같은 실용적 성과들에만 열을 올린다면 한신대학교는 여느 다른 대학과 무슨 차이가 있을까 싶다. 그럴 경우 한신의 진보성은 희망이 없을 것이며, 한 때 우리 사회의 통일운동과 민주화 운동에 크게 기여했던 한신성은 올곧게 계승되지 못하고 완전히 아예 소멸될 것으로 본다.

앞서 말했듯이 현재의 한신대학교는 장공 김재준의 정신으로 새로운 좌표설정을 가져야만 한다. 일단 한신대학교는 기장 교단 내의 보수적인 목회자들이 학문 현장의 자유로운 탐구들을 제어하지 못하게끔 그 고리를 끊어야 하며, 한신대학교는 보다 뛰어난 역량의 연구교수들을 다시금 재배치시킬 필요가 있다고 여겨진다. 대학의 생명력에는 실력 있는 교수진의 배치 역시 핵심인데 솔직히 말해서 본인이 있을 때보다 점점 교수진들이 더욱 뒤떨어진다고 여겨질만큼 그저 교단을 대변하는 데에 충실한 교단신학자로 전락된 느낌이 있다. 한때 교수와 학생들이 혼연일치가 되어 자유로이 학문을 탐구하고 잘못된 사회 부조리와 체제에 대해 항거했던 그때 그 시절의 한신성을 찾아보긴 힘든 실정이다.

앞으로의 한신대학교는 우리 사회에 장공 김재준 이상의 인물을 낳을 수 있도록 끊임없이 연구 투자해야만 할 것이다. 나는 취업 성과에 목을 메는 한신대학교를 바라지 않는다. 또한 무슨 우수대학교 선정에 목을 메는 한신대학교 역시 바라지 않는다. 물론 그 또한 필요할는지 모르나 적어도 한 인물을 배출하더라도 전체 생애를 <현재의 기독교를 넘어서는 새로운 기독교>를 위해 헌신할 제2의 장공이 나와야 한다고 본다. 기장의 출현이 한국 기독교 역사와 사회에 새로운 의미를 가져다주었듯이 그리고 그 안에서 기라성 같은 민중운동, 통일운동의 일꾼들이 나왔듯이 앞으로의 새로운 기독교 운동 역시 그 자체로 이미 새로운 사회운동이 될 수 있음은 말할 나위 없다.

적어도 우리 사회의 기독교만이라도 제대로 건강해보라. 내가 볼 땐 사회 전체가 업그레이드 될 것이리라. 하지만 현재의 기독교는 이미 우리 사회의 적대 세력으로서 비판되고 있는 실정이다. 사회와 소통되지 않는 그런 기독교라면 차라리 소멸되는 게 더 나을 것이다. 그런데 한신대학교가 지금까지 걸어온 면면들을 꼼꼼히 살펴보면 그러한 낡은 기독교의 길이 아닌 또 다른 새로운 기독교의 길이 가능할 수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는 점에서 우리 사회가 여전히 주목해야할 새로운 의미를 지닌다고 본다. 장공 김재준, 장준하 열사, 류동운 열사, 문익환 목사, 민중신학자 안병무, 허병섭 목사, 김규항 선배 등등 이러한 분들이 지향하는 전혀 또 다른 새로운 대안으로서의 인민해방의 기독교가 가능하다고 볼 경우 이에 대해 진보적 가치를 추구하는 우리 사회가 반대할 이유는 전혀 없으리라고 본다. 한신은 장공 김재준과 같은 어쩌면 그 이상의 그러한 인물을 키워내는 시스템이어야만 한다.

마침 현재의 한신대학교는 작년 하반기부터 새롭게 부임한 채수일 총장이 맡고 있어 다소 기대를 걸어볼 만하다고 생각도 든다. 하지만 여전히 길은 험하고, 벽은 높으며, 넘어야 할 산들이 산적해 있는 실정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한신인이었음을 여전히 앞으로도 자랑스러워할 것이면서 동시에 한신성을 또다시 새롭게 부활시킬 제2의 장공을 하염없이 기다릴 것이다.

정강길 / 연구소 연구실장
 
관리자 (10-04-20 20:30)
 
아, 벌써 발빠르게 원고를 부탁받은 [민중의 소리]에 이미 올라와 있네요.
http://www.vop.co.kr/A00000291180.html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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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9 기도에 관하여: 함께 기도합시다 <새로운 기독교 운동>을 위하여! (4) 미선이 1456 09-27
108 <무신론을 지지하는 새로운 유신론>을 아는가? 미선이 1539 09-23
107 그런 신은 없다! 하지만 신은 있다! (3) (1) 미선이 1554 09-21
106 왜 <새로운 기독교>인가 미선이 1618 09-11
105 새기운(새로운 기독교 운동연대) 식구들과 함께한 갈매나무 말씀 나누기 (10.08.29) (1) 미선이 1353 09-06
104 ▒ 한국인권뉴스 칼럼 "종교변혁운동, 기독교 제국주의 넘기 시동 걸다" 노동자 1179 06-26
103 왜 <새로운 기독교>인가 : 새로운 종교 시대의 새로운 기독교 신앙 (발표원고) 미선이 1177 06-16
102 도올의 성서연구 열정과 한국교회에 대한 직무 유기의 교단 신학자들 미선이 1677 05-12
101 민중을 팔아 장사하는 민중신학자들 (2) 미선이 1626 05-11
100 2010 새로운 그리스도인 선언 (가안) (8) 미선이 1580 04-26
99 자랑스러운 한신, 새로운 시대의 진보로 다시 태어나기를.. (1) 미선이 1426 04-19
98 왜 이현주 목사는 같은 감리교인 김홍도보다 법륜스님과 더 친할까? (3) 미선이 1737 03-30
97 다양한 진보 신학들을 통합적으로 이해하는 새로운 대안 기독교 신학 미선이 1339 03-21
96 『미래에서 온 기독교』에 대한 웹상의 흩어진 여러 서평들 한데 모음 (2) 미선이 1720 03-07
95 그런 신은 없다! 하지만 신은 있다! (2) (15) 정강길 2038 03-02
94 한국 개신교회에 드리는 권고와 우리 사회에 드리는 사과문 (4) 정강길 1744 02-10
93 그런 신은 없다! 하지만 신은 있다! (7) 정강길 2170 01-29
92 신론 : 기존 민중신학과 새로운 민중신학 그리고 과정신학 정강길 1487 01-25
91 감정과 이성 그리고 대화와 토론 또 그리고 시간... (7) 정강길 1786 01-14
90 왜 우리는 예수를 믿는가? (13) 정강길 2651 12-14
89 나는 MB보다 보수 기독교라는 제국이 더 끔찍하다 (14) 정강길 2231 10-13
88 무기력하신 하나님을 오히려 더 신뢰할 줄 아는 믿음 신앙 (10) 정강길 1970 09-29
87 미국 아틀란타에서의 새로운 기독교 강연과 진보에 대한 성찰 (6) 정강길 1807 09-28
86 미국의 한인교회 예배에 참석하다 (5) 정강길 2028 09-24
85 새로운 기독교 입장에서 모색해보는 사후 세계와 영혼 개념 (3) (4) 정강길 2550 08-23
84 새로운 기독교 입장에서 모색해보는 사후 세계와 영혼 개념 (2) (1) 정강길 2453 07-05
83 오류와 폐해에도 불구하고 세기연이 계속 <기독교>를 붙잡는 이유는? (2) 정강길 2001 07-04
82 몸학의 <몸얼>의 발달 단계와 다석 유영모의 몸나/제나/얼나 개념 (4) 정강길 1803 07-01
81 새로운 기독교 입장에서 모색해보는 사후 세계와 영혼 개념(1) 정강길 2985 06-28
80 자신의 생각과 충돌하는 새로움을 접하게 된다면.. (4) 정강길 1644 06-10
79 복음주의와 진보 진영에 만연한 성서 우회주의자들 (5) 정강길 3349 06-05
78 [정강길의 종교론] 진화하는 종교의 본질에 대한 새로운 해석 (6) 정강길 2140 04-24
77 낡은 사도신경은 버리고 오늘의 사도신경을 취하라! (4) 정강길 5959 04-15
76 존 쉘비 스퐁의 글을 읽다가.. (5) 정강길 1980 04-12
75 <재복음화>를 제안한다! (이민재) (1) 미선이 2119 04-08
74 성경 읽을 때 <고백의 언어>를 <사실의 언어>로 혼동하는 오류 (5) 정강길 2155 04-05
73 현대 무신론 진영이 설명못하는 난점에 대하여 (3) 정강길 2584 03-24
72 "어차피 이러한 기독교로 바뀌게 된다!" (모든 분들에게 고함) (17) 정강길 4756 02-18
71 신자유주의에 대하여 서로 다른 두 입장의 기독교 (4) 정강길 2575 02-05
70 묵자, 우리들과 너무나 가까이 있었던 동양의 예수 (4) 정강길 2438 02-02
69 실천적 행동주의 신앙과 신학운동으로서의 신앙 (3) 정강길 1994 01-27
68 대안교회를 말한다 (미래에서 온 교회 : 예수가족) (15) 정강길 2398 01-13
67 "나와 아버지는 하나다"에 대한 성경해석 : 그대가 곧 예수이자 하나님이다!! (4) 정강길 3157 11-22
66 <하나님의 계시와 신비 중심주의>라는 탈정치성에 감춰진 정치성 (5) 정강길 2313 11-08
65 <하나님 중심/계시/신비> 중심의 사고에 감추어진 사유의 폭력 (22) 정강길 3519 11-06
64 진보 기독교 진영의 한계 (2) (14) 정강길 3432 09-30
63 진보 개신교 진영의 한계 (1) (3) 정강길 3089 09-16
62 '거지왕초' 김홍술 목사, 한국교회에 단단히 뿔났다 (3) 관리자 2955 09-02
61 학자적 소견을 매도하는 한국교회언론회의 과잉대응 (김덕기 교수) (10) 관리자 2775 08-14
60 촛불집회와 SBS교양프로에 반대하는 거짓 기독교 (4) 정강길 3093 07-07
59 SBS에 나온 역사적 예수 연구에 대한 <다중 예수론>의 주창자, 로버트 M. 프라이스 정강길 3204 07-05
58 허호익 교수의 '예수는 신화다'를 반박한 글에 대한 비판 (6) 정강길 3664 07-05
57 GIO 명상 정강길 3306 06-21
56 개신교, 진보 교단이 없다! (12) 정강길 3230 05-12
55 현재의 한국 기독교의 진보 진영은 더 이상 진보가 아니다. (4) 정강길 5263 04-22
54 정치 무관심과 냉소주의가 불러온 재앙 (투표 안한 자들에게) 정강길 2527 04-09
53 기독당과 가정당은 크게 다르지 않다! 정강길 2507 04-08
52 반성 없는 한국 개신교는 사탄의 개신교일 뿐! 정강길 3039 02-18
51 교회에 십일조 내지 마라! (5) 정강길 4360 02-06
50 예수정신에 똥칠하는 기독교 정치세력들 정강길 3163 01-02
49 기독교의 배타적 선교 문제, 정면으로 다뤄라! 정강길 3632 08-31
48 기존 기독교의 붕괴와 새로운 기독교의 도래 (3) 정강길 3592 08-06
47 기존 기독교의 붕괴와 새로운 기독교의 도래 (2) 정강길 3232 08-02
46 기존 기독교의 붕괴와 새로운 기독교의 도래 (1) 정강길 3526 0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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