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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목 : 민중을 팔아 장사하는 민중신학자들    
  글쓴이 : 미선이 날 짜 : 10-05-11 04:26 조회(1626)
   트랙백 주소 : http://freeview.org/bbs/tb.php/b001/498 




- 마이클 무어 감독의 영화 『자본주의 : 사랑 이야기』中에서
 
 
 
민중을 팔아 장사하는 민중신학자들
 
 

“민중을 팔아 장사하는 것 아니냐?”

우습게도 이 얘긴 나 자신이 뱉어낸 말이 아니다. 오히려 얼마전 기존의 한국민중신학회에서 본인이 들은 얘기다. 민중을 가지고 장사하는 것 아니냐 라는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얘길 내게 한 사람은 놀랍게도 다름아닌 한국민중신학회 라는 간판을 내세운 조직의 최고 지위에 앉은 사람이자 그 역시 자신을 정통 민중신학자로 자처하며 대학교수의 명함과 직위를 누리고 있는 신학자이다.
 
그래서 나로선 “도대체 이 자리에 민중 가지고 장사하지 않는 신학자들이 어디에 있는가?”라고 반문하기도 했었다. 그런 식으로 따지면, 적어도 기존 민중신학자들 대부분은 안정된 대학교수의 봉급으로서 생활하는 데다가 거창하게 <한국민중신학회>라는 큰 간판까지 버젓이 차려놓고 활동하고 있는 것일진대, 그에 비하면 나 같은 불안한 생활고까지 겪고 있는 재야신학자인 내게 그런 얘길한다는 게 참 어이없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참 신기하기도 했다.
 
마치 자기들은 보기 좋게 거대한 대형마트를 차려놓고선 자기 동네 구역에 조그만 구멍 가게 하나 차린 것을 가지고서 왜 가게를 차렸냐며 따지는 꼴인 것이다.
 
나중에 그 자리에 함께 있던 다른 객석분은 당시 한국민중신학회 신학자의 그 말이 자기가 생각해봐도 참 어처구니가 없다면서 연로하신 기존 민중신학자들의 낡은 진보성과 여전히 새로움을 받아들이기 힘들어하는 그 고고한 완고함에 따른 폐쇄성을 우려했었다. 솔직히 말해서 나는 기존 민중신학자들 사이에도 엄연한 헤게모니 다툼의 긴장이 있음을 안다. 즉, 다들 자신의 민중신학이 안병무, 서남동의 민중신학을 잘 이어받고 있다고 여기면서 자신만이 한국 민중신학의 정통성과 명맥을 계승발전시키고 있는 것마냥 연출하는 분위기 말이다.
 
뭐 그 정도야 충분히 그럴 수 있다고도 짐작해줄 수 있다. 기존 민중신학에 대한 나의 입장을 말한다면, 나로선 기존의 민중신학은 적어도 1세대 이후를 제대로 넘어선 적이 단 한 번도 없다고 볼뿐더러, 기존 민중신학의 해체를 통한 새로운 재구성의 입장이라서(본인의 졸저 『화이트헤드와 새로운 민중신학』[한국기독교연구소, 2004] 참조) 당연히 현재의 민중신학자들 역시 이러한 나의 입장을 그다지 좋아하진 않는다는 사실도 이미 잘 알고 있다.
 
흥미로운 것은 한국의 민중신학자들은 정작 사람들이 이제는 더 이상 민중신학에 대한 연구를 많이 하지 않는다고 불평하면서도 우습게도 본인의 <화이트헤드와 새로운 민중신학>에 대해선 그 어떤 언급이나 레퍼런스조차 하나 없는 것이다. 아마도 대학교수들로선 변변찮은 학위 하나 없는 나를 무시할 만하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아니면 별 볼일 없는 사상으로 취급하거나 또는 만일 언급을 하게 될 경우엔 기존 민중신학자들로선 나름대로 껄끄러운 일이 생길지도 모르니 말이다.

민중신학의 대상은 민중이 아니다!

나는 민중신학의 대상이 민중이라고 생각지 않는다. 민중신학이 적어도 신학을 표방하는 한에 있어선 그 대상은 신학을 하는 자들이지 민중이 곧바로 직접적 대상이 된다고는 생각지 않는다. 단지 신학을 하는 사람들 중에는 민중도 얼마든지 포함될 수 있을 것뿐이지, 민중신학의 직접적인 대상은 아니라고 보는 것이다.

따라서 민중신학의 내용을 민중은 못알아듣는다고 문제를 제기하는 것은 사실상 이미 핀트가 어긋난 것이다. 만일 민중신학이 신학이라는 꼬리표까지 떼어낸다면 맞는 얘기겠지만, 적어도 민중신학이 결국 학문을 표방한다면 마냥 신학을 구구단 수준으로서만 계속 진행할 수도 없는 노릇이잖은가. 물론 학문의 영역도 가급적이면 쉬워야 하겠지만 인류 지성사에선 불가피하게 난해함이 허락될 수 밖에 없는 지점 역시 있다( 학문의 세계에서 불가피한 아카데믹함이란 참조).
 
민중의 언어로서 한다는 것이 늘상 구구단 수준으로만 하겠다는 것도 아닐진대 이런 얘기들이 자꾸만 왕왕거리고 나오는 것은 오히려 민중신학이라는 학문의 성장 자체를 가로막는 곤란함만 양산댈 수도 있다. 어떤 면에서 대중과의 소통 작업은 신학적 교육을 받은 목회자들의 몫이기도 하다. 애초 신학현장과 목회현장부터가 서로 간에 유기적으로 결합되어야 할 것이다. 그러한 가운데 약자인 민중들도 마찬가지로 지속적으로 높은 교육의 혜택 및 고급 정보들의 수혜들을 계속 공급받을 필요 역시 있는 것이다.

민중신학의 진정한 주적은 기독교라는 <제국의 신학>

내가 볼 때 민중신학의 대상은 신학을 하는 자들이지만, 특히 제국의 신학과 대결해야 한다고 본다. 제국의 신학이야말로 민중신학의 주적이라고 할 수 있겠다. 왜냐하면 제국의 신학은 전능왕 초월자인 힘의 하나님, 힘의 복음으로서의 예수를 전파함으로 인해 그것이 세계에선 힘의 논리를 정당화하는 신학을 펴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한 제국의 신학은 무조건 믿어라의 기독교를 표방하는 낡은 기독교의 전파에 힘쓰며 이를 정치세력화하는 데 힘을 쓰고 있다.

글로벌 제국주의는 서구 기독교 안에 내함되어 있던 제국의 신학과 결코 무관하지 않다. 오늘날에도 여전히 제국의 신학은 학교와 교회를 통해 지금도 계속 훈육되고 재생산되고 있으며, 세계 안의 자본주의와 제국주의 논리에 친화적인 습성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내가 볼 때 민중신학의 적은 바로 이들이다.

혹자는 아마도 나 자신이 적(enemy)이라는 표현을 쓴 것에 대해 괜한 반감을 가질 진 모르나 내가 말하고자 하는 적의 의미는 어디까지나 예수와 바리새인들 간의 그어졌던 전선 그 이상의 의미를 넘지 않는다. 그 옛날 유대교 회당 체제를 중심으로 민중을 지배했던 바리새인들에 맞선 예수는 약자해방의 새로운 유대교를 표방하는 하나님나라 운동을 전개했던 것이다.

그리고 예수의 새로운 유대교 운동도 유대교 사회 안에서 일어났듯이 기독교라는 제국의 신학 역시 기독교 밖의 일반 사회에 있는 게 아니라 이미 기독교 안에 내함되어 있다는 사실은 보다 더 중요하다. 민중신학의 주적은 사회 일반으로 눈을 돌릴 것이 아니라 기독교 안에 있는 제국의 신학으로 눈을 돌려야 마땅하다. 기존의 보수 기독교가 지속적으로 지배이데올로기의 기능을 하고 있는 것도 이미 그 안에 힘의 논리에 기반되어 있음도 분명하게 간파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일전에도 분명하게 말했듯이 나는 MB보다 이천 년 기독교라는 제국이 훨씬 더 끔찍스럽다고 본다. MB를 타도한다고 해서 MB나 부시 같은 인물이 더 이상 나오지 말란 법은 없다. 제국의 신학은 지금도 무수히 학교와 교회에서 훈육되고 재생산되고 있다. 이 참담한 비극의 현장을 왜 기존 민중신학자들은 시급한 근원적 현장으로 보지 않는지 참 암담할 따름이다. 각종 보수 기독교 신학교 및 교회들(대형교회든 작은교회든) 등등 그야말로 영혼이 썩어문드러지고 정신이 황폐화되는 비극적 현장인 것이다.
 
민중신학이든 뭐든 이를 팔더라도 제발 이런 참담한 현장부터 제대로 보면서나 팔아야 하지 않겠는가..
 
 ..................
 
 
[또다른 참조글] "제국의 신학에 대항하는 통합적 약자해방 신학" http://freeview.org/bbs/tb.php/g001/133 참조.
 
 
nabi (10-05-16 10:20)
 
님의 그 싸움(?)에 박수를 보냅니다... 오늘 시간이 여유가 있어, 이 글 저 글을 읽어 보고 있는데 흥미롭습니다. 여전히 힘을 잃지 않은 것 같아 반갑고요^^ 자주 찾아와 글을 읽어보겠습니다.

    
미선이 (10-05-18 02:14)
 
아, 올만이시네요. nabi님~^^*
혹시 읽고 코멘트해주실 거 있으시면 언제든지 얘기해주시길 바랍니다.
예전에도 그랬듯이 nabi님 글을 통해서도 많은 배움이 있었던 것을 잘 기억하고 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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