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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목 : 새로운 기독교 입장에서 모색해보는 사후 세계와 영혼 개념(1)    
  글쓴이 : 정강길 날 짜 : 09-06-28 18:58 조회(30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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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기독교 입장에서 모색해보는 사후 세계와 영혼 개념 (1)
 
 

보수 기독교 : 사람이 죽으면 그 영혼은 천당 아니면 지옥에 간다?
 
기존 기독교인들이 믿는 대부분의 교리적 신념에는 인간이 죽으면 육신은 썩어 없어져 흙으로 돌아가지만 그 영혼은 천당 혹은 지옥에서 영원히 거하게 된다고 믿는 믿음이 쫘악 깔려 있다. 물론 그 기준은 예수를 믿고 안믿고에 달렸다고 보는 것이다. 그리고 그 영혼만큼은 불사적 존재로서 이해되고 있다.
 
익히 알려져 있다시피 오늘날 기독교 사상 속으로 스며든 불사적 존재로서의 영혼 개념은 일찍이 희랍문명권의 <영혼불멸사상>이 기독교 안으로 유입된 것이다. 육신은 영혼의 감옥으로 보았던 소크라테스나 플라톤 같은 철학자들은 모두 영혼불멸 사상을 지니고 있었다. 애초 고대 히브리 사상은 일원론적이라서 영혼이 하늘로 올라간다거나 하는 그러한 개념이 없었다. '영'에 가까운 뜻을 지닌 히브리어 '루아하'라는 개념도 전적으로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생명에너지일 뿐이다. 영혼불멸 사상은 초기 기독교 사상사에 스며들면서 인간의 육신이 죽으면 그 영혼은 하늘로 올라가서 천국행이냐과 지옥행이냐의 심판을 받아 영원히 거하게 되는 것으로 이해된 것이다.
 
 
▲ 미켈란 젤로가 천국과 지옥의 모습을 묘사한 <최후의 심판>
 

오늘날 많은 기독교인들이 예수를 믿고 교회를 다니는 이유들 중의 하나는 자신의 육체가 죽고 나면 자신의 영혼은 그러한 지옥 판정을 피하기 위해서 예수를 믿는다는 사실이다. 이른바 <사후보험> 같은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거의 불변적이고 고정된 믿음으로 신봉되고 있다. 기존 기독교인들이 거리에서 "예수천당 불신지옥"을 외치거나 교회 사람들이 노방전도를 나가는 것이나 혹은 저 오지에까지 선교랍시며 벌이는 활동들은 죄다 모두 기독교쪽으로 <사후보험>에 좀 가입해달라는 얘기다.
 
그런데 기존 기독교가 말하는 그 <사후보험>이 만일 사실이라면 참으로 엄청난 큰일이잖은가. 한 번 죽으면 끝이 아니라 불사적인 영혼이 되는데 자칫 이생에서 예수를 안믿었을 경우 그 영혼은 영원한 처벌을 받는 고통스런 지옥으로 떨어진다니까 말이다. 보수 기독교인들은 이 같은 사실을 매우 철썩 같이 믿고 있다. 혹자는 만일 그것이 사실이 아니어도 그다지 손해보는 건 없다고 생각할 것이기에 차라리 그러한 교리를 믿는 쪽을 택할 거라고도 말한다.

하지만 엄밀하게 따지면 이러한 이해들은 인간을 육체와 영혼으로 분리시켜 이해하는 이원론 사상의 잔제들이다. 이번 세기연 6월 포럼에서는 바로 이러한 이원론 사상의 잔제들을 거부하는 가운데 감리교신학대의 이경호 박사를 초빙하여 대안적인 사상으로서 현실 가능한 영혼 개념과 사후 세계 문제에 대한 논의를 마련한 바 있다(관련자료받기 : 현실 가능한 영혼 개념과 사후 세계 문제 [감신대 이경호 박사] 참조). 즉, 기존 기독교 사상이 오류가 있다고 보기에 비판적으로 보고, 새로운 기독교의 입장에서 좀더 현실 가능하게 소통될 수 있는 논의가 필요하다고 본 것이다.

진보 기독교 진영에서는 그다지 논의하지 않는 주제인 영혼과 사후 세계 문제

반면에 기존의 진보 기독교 진영에서는 이에 대해 그다지 논의하지 않고 있는 실정이다. 워낙 현실 세계의 사회운동을 중요시 하는 터라 이러한 논의들이 자칫 사변적인 놀음으로서 치부되고 있는 것이다. 내가 아는 민중신학자 한 분은 “죽으면 그냥 끝”이라고 보는 <단멸론>을 표방하기도 했다. 어떤 점에서는 매우 유물론적인 이해에 기초되고 있는 점들이 많다.

하지만 만일 사람의 존재가 한 번 죽으면 그냥 끝이라고 할 경우, 우리는 히틀러처럼 아무렇게나 살아도 되는 것인지 그리고 억울하게 태어나서 죽어간 수많은 생명들에 대해선 또 어찌해야 한단 말인가 라는 본원적 물음을 지닐 수 있다. 행여 그러한 물음 자체를 그저 사변적으로만 여겨서 달가워하지 않거나 봉쇄시키려 한다면 그 역시 진보 기독교 진영의 한계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지금 여기>Now and Here라는 현실 세계의 1차적 중요성을 우리는 결코 간과하지 않아야 할 것이다. 이 지점은 새로운 기독교 운동과도 출발을 같이 한다. 하지만 존재의 모든 차원들이 관계적으로 엮여 있다면 결국은 죽음과 영혼에 대한 문제 역시 우리 삶의 한 부분으로 자리 잡고 있음을 부인하지 않을 수 없다는 사실이다.

그 문제는 <지금 여기>의 문제들을 우선적으로 중요시함에도 불구하고 결코 해명되지 않는 물음들로서 우리 삶 속에 여실히 드러나고 있는 문제들인 것이다. 앞서 말했듯이 억울하게 죽어갔던 이 땅의 수많은 민중들은 그냥 죽으면 그대로 끝나버리는 것이며, 단지 남아 있는 자들이 그저 다른 사람의 한을 대리적으로만 풀어주는 그러한 정도에 그칠 따름인지? 악인이든 선한 이든 한 번 살고 죽으면 정말로 그 뿐인 건지?

암튼 이런 주제들에 대해선 기존의 진보 기독교 진영조차 여간해서 논의하지 않는 편이지만, 그렇다고 그저 마냥 공백으로만 놔둘 수도 없는 노릇이라 생각된다. 최근에 노무현 사건 때문인지는 몰라도 죽음에 대한 관심도 많이 늘어나고 있는 실정이며, 기독교 단체는 아니지만 한국에 죽음학회까지 생겨나서 많은 종교학자들이 참여할 정도로 점점 활발한 논의가 이어지고 있다.

세계 종교들 간의 사후 세계의 영혼 개념 분류

알다시피 흥미로운 사실 하나는 천국행이냐 지옥행이냐의 심판의 그 기준은 다를 지언정 세계 안의 다른 여러 종교들 가운데서도 영혼불멸사상만큼은 흔히 볼 수 있다는 사실이다. 고정된 실체로서의 자기동일적 존재를 부정하는 <무아설>(無我說:anatman)을 지닌 불교지만 한편으로는 전생과 윤회를 말하고 있다는 점에서 불교 역시 영혼불멸 사상이 그 안에 스며들어 있다. 무아설과 윤회설 간의 충돌 논쟁은 불교계의 오랜 논쟁들 가운데 하나이다.
 
지금까지의 세계 종교들 간의 영혼 개념을 구상해볼 경우 다음과 나눌 수 있다고 본다.

1) 한 번 살고 죽으면 그 뿐이라는 단멸론 (대체로 유물론과 무신론 진영, 소수의 진보 기독교 등등)
2) 한 번 살고 죽어도 그 영혼만큼은 불멸한다는 영혼불멸론
   a 윤회 입장 (불교, 힌두교 등등, 참고로 윤회설을 믿지 않는 불교인도 있다.)
   b 심판 입장 (기존 기독교)
3) 윤회에서의 해탈(소멸)을 지향하는 영혼소멸론 (불교)
3) 한 번 살고 죽으면 어느 정도까지는 존재 가능한 영혼수명론 (유교의 사대봉사)
 
사후 세계의 영혼 존재를 부정하는 단멸론 진영, "한 번 살고 죽으면 끝이며 영혼은 없다!"
 
한 번 살고 죽으면 그 뿐이며 죽은 뒤의 영혼 같은 그런 존재는 없다고 보는 단멸론은 대체로 유물론과 무신론 진영에서 곧잘 볼 수 있다. 물론 소수의 진보 기독교 진영 가운데도 이런 주장을 하는 사람도 있으며, 더러는 불교인들 중에도 아주 극소하지만 이런 주장을 펴기도 한다. 우리들이 이러한 단멸론의 입장을 마냥 무시할 수만은 없는 이유는 적어도 유동하는 현실 세계를 기반으로 하고 해서 살고 있기 때문이다. 인간은 구체적인 감각적 지각에 의존하고 있는 존재이기에 사후 세계의 영혼 개념을 부정하는 것은 오히려 더 큰 설득력을 지닐 수 있다.
 
특히 현대 자연과학의 세례를 받고 있는 사람들은 웬만해선 사후 세계의 영혼 존재를 인정하지 않고 있다. 이 같은 단멸론의 입장은 보이지 않는 영혼의 존재에 대해 매우 회의적이라서 다소 신중한 자세를 견지하는 측면이 있다. 개인적으로 말해서 나는 잘못된 영혼불멸사상에 빠지는 사람들보다는 차라리 단멸론의 입장이 좀더 낫다고 보고 있다. 왜냐하면 영혼불멸설과 사후보험 강조의 입장들은 자칫 우리 사회에서 아편적 기능을 수행할 위험이 크기 때문이다. 종교가 아편이 되는 것은 이미 그 자체로 위험천만한 타락인 것이다.
 
나 자신은 단멸론 입장에 대해선 나름대로 긍정을 하는 바이며 그것의 장점에 대해서도 익히 공감하고 있다. 하지만 앞서 말했듯이 웬지 그것만으로는 너무나 공허한 부족함을 느낀다. 그렇다고 해서 그 같은 공허함을 메꾸기 위해 곧바로 우리가 영혼의 존재를 마냥 인정해서도 곤란하다. 자,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따라서 나 자신은 영혼 존재의 가능성만큼은 열어놓되 적어도 그것이 곧바로 인정되어서는 곤란하며 철저하게 세계 안의 구체적 현실의 체험들과 분명한 사례들을 보다 정합적으로 보는 그 지점에 현존 가능성의 근거를 두고 있어야 한다고 본다. 그렇지 않을 경우 사후 세계와 영혼에 대한 논의들은 자칫 지리하고도 쓰잘 데 없는 관념적 논쟁으로 젖어들기 십상일 수 있다.
 
영혼의 존재를 인정하는 불교와 유교의 경우

불교와 유교의 사후 세계와 영혼 개념도 각별하다. 여기서 기독교인들에게 불교와 유교에 대해서는 조금 설명이 필요할 것 같다. 불교의 경우는 전생을 얘기하면서 자신이 지은 업에 따라 다음 생에 다시 태어나는 윤회를 말하고 있다. 그런데 한편으로 윤회란 모든 만물이 '무상,고,무아'임을 깨닫지 못한 영혼이 필연적으로 갖고 있는 한계로도 보며, 그러한 윤회는 해탈을 통해 멈출 수 있다고 말한다. ‘소멸’이란 뜻을 지니고 있는 불교의 <열반>Nirvana 상태에 이르면 여기에는 더 이상 윤회도 영혼도 없다. 또한 불교의 과학적 토대를 주장하는 사람들은 윤회설 및 불사적 존재로서의 영혼 개념을 부정하기도 한다.
 

유교의 경우에는 혼백(魂魄)을 말하는데, 이것은 음기(陰氣)와 양기(陽氣)로 일컬어지는 기(氣)의 작용으로 생긴 것이다. 이때 ‘혼’과 ‘백’은 각각 인간을 구성하는 ‘천기’와 ‘지기’로서 죽음이란 건 바로 이 천기와 지기가 깨어지는 사태에 해당되며, 죽음과 함께 각각 혼은 하늘로 올라가고 백은 땅으로 흩어진다고 말한다. 이때 혼의 경우는 천기(신)가 완전히 흩어 지는데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보통 자기동일성을 4대(100년-120년 정도, 1대는 25년-30년 정도)까지는 유지하고 그 뒤로는 그냥 흩어진다고 얘기한다.

유교의 조상 제사가 바로 그래서 사대봉사(四代奉祀)가 되는 것이다. 즉, 사람의 혼이 어느 정도 자기동일성(identity)을 유지하는 때까지 제사를 모시는 것을 4대봉사라 일컫는 것이다. 그래서 사대봉사는 제단에 아버지, 할아버지, 증조부, 고조부 4대의 위패를 모신다. 육신이 죽었다고 해도 이들의 혼은 여전히 자기동일성을 지니고 있다고 보는 것이다. 따라서 적어도 유교의 영혼 개념에는 불멸하는 것이 아니라 다시 기로 순환된다는 의미에서 영혼 역시 한시적인 수명이 있다고 볼 수 있겠다.

이외에도 여러 영혼 개념들이 있을 수 있겠으나 지면상 중요한 점들만 추려서 여기까지만 쓰고자 하며, 분류상에서 좀더 논의할 지점들이 있다고 할 경우 앞으로도 얼마든지 얘기해주길 바라는 바이다. 이제 새로운 대안 기독교의 입장에서 모색할 수 있는 새로운 영혼 개념과 사후 세계 문제에 대해 알아보도록 하자.

 
(계속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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