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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목 : <하나님의 계시와 신비 중심주의>라는 탈정치성에 감춰진 정치성    
  글쓴이 : 정강길 날 짜 : 08-11-08 12:39 조회(2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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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계시와 신비 중심주의>라는 탈정치성에 감춰진 정치성
 

스포츠는 과연 정치적인가? 비정치적인가?

우리는 흔히 <스포츠>를 정치적 색깔이 없는 비정치적 영역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그렇기에 남녀노소 누구나가 좋아한다. 정치적 입장이 서로 다르다고 하더라도 우파든 좌파든 좋아하는 스포츠가 똑같을 수 있다. 그래서 스포츠 자체는 때가 묻지 않은 매우 순수한 영역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정말 그럴까?

올림픽을 한 번 생각해보자. 다들 알다시피 올림픽을 말할 때 모든 이념과 인종을 초월한 전세계 평화의 한마당이라고 얘기한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4년마다 열리는 올림픽을 좋아하며 자기 나라 선수들을 응원한다. 하지만 중국의 이번 베이징 올림픽을 한 번 생각해보라.

왜 중국은 악착같이 올림픽을 열고자 했을까? 티베트 민족을 억압하는 무리수까지 두면서 왜 그토록 올림픽 개최에 집착했을까? 그것은 올림픽이 가져다주고 있는 정치적ㆍ경제적 ㆍ문화적 등등 그 실익적 효과가 어마어마하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기를 쓰고라도 중국은 올림픽 개최에 사력을 다한 것이다. 올림픽이든 스포츠든 알고 보면 철저히 정치적인 것이다.

1980년대 한국의 프로야구가 전두환 독재 정권 때 각 지역과 관련해서 창설된 것은 보다 많은 대중들의 주의 집중들을 신나는 야구 스포츠에 집중하도록 하기 위해서 창설된 것이라고 한다. 분명히 말씀드리지만, 현실 세계 안에 모든 의도적인 것들은 모두 정치적이다. 정치적이지 않은 스포츠나 올림픽이란 없다. 왜냐하면 스포츠 자체나 올림픽 자체는 비정치적일진 모르나 그것이 놓여지는 자리와 맥락은 항상 총체적 관계의 맥락 속에 놓여지기 때문이다.

<하나님 계시/신비 중심주의>라는 탈정치적 언급에 깔려 있는 정치성

마찬가지로 우리가 하나님 중심주의가 갖는 탈정치성이 있지만, 실은 그러한 언급이 놓여지는 맥락과 자리에 따라 다양한 정치적 색깔을 가질 따름이다. 일전에 얘기한 바대로 바르트가 당시에 하나님의 계시 중심을 부르짖었을 때 그것이 놓여졌던 맥락은 당시 히틀러 독재자에 대한 저항적 기능으로 나타나기도 했었다. 하지만 하나님의 계시와 신비 중심주의 신앙의 맥락이 죄다 그러하진 않다.

우리에게는 하나님 중심, 계시와 신비 중심, 성령 체험 중심 등등을 표방하는 기독교인들의 언급은 매우 신실한 신앙인의 그것으로도 비춰질 순 있지만, 실은 그러한 주장을 현실 세계 안에서 어떤 의도와 맥락에 따라 토해내고 있느냐를 볼 때 오히려 그것이 세상 돌아가는 일에는 무관심한 비역사적 언급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한국 현대사에서 7, 80년대 당시 하나님을 찾던 보수 기독교인들의 정교분리의 태도는 오히려 우리 사회의 민주화 운동, 통일 운동에 대한 무관심과 반역사적 태도를 띠기도 했었다. 이를 테면 7, 80년대 우리 사회 속에서는 진짜로 피 흘리며 여러 사람들이 죽어갔었는데도 보수 기독교인들은 이에 아랑곳 않고 그저 죽어서 지옥에 갈 영혼들을 구제해야 한다는 ‘영혼구원’ 운동을 펼치기도 했었는데, 사실상 이에 대한 실제적 효과는 전체 사회의 건강으로 나타난 것이 아니라 교회 안에 교인 수만 잔뜩 늘려 놓은 <대형교회화>의 길이 되고 있었던 것이다.
 
▲ 한국교인들에게 하나님의 계시를 선포하는 한국교회 목사들
 

그래서 오늘날에도 많은 목사들은 교회성장을 부르짖으며 <대형교회화>를 지향하고 있다. 사실 한국교회 성장의 이면에는 알게 모르게 목사들의 입지와 자신들의 배만 채우려는 의도가 함께 내포되고 있는 것이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말로 표방되는 것은 <하나님 중심주의>지만 실상은 <교인수 제일주의>로 드러나는 게 작금의 현실인 것이다.

비정치적 성격의 신앙적 언급들도 현실에선 그 어떤 정치적 효과로 드러난다

하나님을 부르짖는 신앙인이라고 해서 순수하다고 보는 것은 어쩌면 매우 순진한 평가일 수 있다. 좀더 극단적으로 얘기한다면, 순수란 없다. 거기에 가까워질 수는 있어도 순도 백퍼센트의 순수란 결코 없다. 왜냐하면 세상의 모든 존재들은 이미 관계적 사태에 놓여 있기에 실은 자기가 의도하든 의도하지 않았든 결국은 그 어떤 정치적ㆍ경제적ㆍ사회적 맥락 속에 놓이게 된다는 사실을 인지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기독교 신앙에 대해서도 얘기할 때 가급적이면 모호하고도 추상적인 언명들은 지양하는 태도가 보다 바람직하다. 물론 “하나님은 사랑이시다” “우리는 하나님의 계시/신비 중심으로 살아야 한다”는 이러한 말 자체는 결코 틀린 말이 아닐지라도 탈정치적 성격으로 여겨지는 그 같은 추상적 언명들도 실상은 구체적인 삶의 자리로 드러났을 때의 그 효과가 갖는 정치적 성격들을 우리는 예리하게 잘 간파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하나님은 사랑이시다”는 명제는 아마도 기독교의 보수건 진보건 누구나 다 동의할 것으로 본다. 그러나 각자의 삶의 위치에서 구체적으로 이를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이 같은 추상적인 언명은 매우 비역사적인 발언이 되기도 하고 혹은 매우 급진적인 래디컬한 발언이 되기도 하는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계시/중심으로 살아야 한다” 누가 뭐래나? 그래서 어쩌자는 것인가? 결국은 이런 추상적 언명들일수록 우리 사는 구체적인 현실에서는 도대체 어떤 현실적 효과로 나타나고 있는지에 대해서도 우리는 깊이 성찰할 필요가 있다고 하겠다.
 
그런 점에서 나는 다비아의 정용섭 목사가 설교나 신학은 정치적이어선 안된다는 얘기에도 반대하는 입장이다. 물론 그것대로의 고유의 자리가 없다고 보진 않지만, 그런 얘기도 신학이 갖는 독특성의 자리를 말한 것이지 그것이 갖는 정치적 효과마저 아예 없다는 얘기가 결코 아닌 것이다. 오히려 설교나 신학은 세계 안의 정치적 사태 분석까지 포함하면서 이를 넘어서는 궁극적 해결도 줄 수 있어야 한다. 즉, 실상 우리가 하나님의 정치를 따른다고 할 경우 그것은 어떤 식으로든 세계 안의 건강한 정치적 흐름과의 관련으로 드러난다는 것이다.
 
따라서 교회에서의 한미 FTA 반대 언급 역시 하나님의 정치로도 충분히 나타날 수 있다고 하겠다. 물론 교회가 NGO는 아니다. 하지만 어떤 면에서 교회는 사회운동 단체인 NGO의 역할까지도 포함될 수 있다. 단지 그 역은 아닌 것이다. 바로 그런 점에서 교회와 NGO는 다른 것이다. 교회는 예배공동체이면서 동시에 우리 사는 사회와 삶을 건강하게 하는 예배공동체라는 점에서 우리네 현실적 삶과 결코 이분화될 수 없다고 하겠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현실적인 삶의 영역에서는 탈정치적이고 비정치적이며 혹은 절대적인 중립적 위치란 세계 안에 없다. 알고 보면 그것은 오히려 <순수>로 포장하고 있는 기만일 수 있는 것이다. 보다 눈을 뜬 전체(GIO관계시스템)에서 보면 세계 안의 모든 사항들은 필연적으로 그 어떤 관계적 사태에 놓여 있을 따름이다.
 
 
sydney (08-11-08 20:48)
 
도대체 민주주의 사회에서 정상적인 상식을 가진 사람이라면 투표 안하고 살 수가 있나?
아나키스트가 아닌 다음에야.
그렇다면 설교가 민주주의 사회에서 가장 중요한 투표를 올바로 하는데 도움이 되지 못한다면 어디다 써 먹을 것인가?

솔직이 나는 정직하게 말해서 FTA를 해야 하는 것인지 말아야 하는 것인지 잘 모르겠다.
왜냐하면 경제학 교수를 하는 큰 아들 이야기를 들으면 해야 하는 것 같고 좌파인 영화감독 후보생인 둘째 아들 이야기를 들으면 하면 안 될 것 같기 때문이다.
그러나 FTA에 관심조차 없는 설교는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왜냐하면 FTA는 우리의 먹고 사는 일에 직접적으로 관계가 있는 사건이기 때문이다.
나는 우리가 처한 상황과 상관이 없는 설교를 들으면 짜증이 난다.
나는 내가 처한 상황에서 올바로 깨닫고 행동하는데 도움이 되지 못하는 설교는 인민의 아편일 뿐이라고 생각한다.

우도 (08-11-09 07:25)
 
저는 뒤늧게 깨달은 것이 있습니다.
그 깨달음은 다른 것이 아니라 인간은 정치를 떠나서는 살 수가 없다는 것을 깨달은 것입니다.
인간이 만나서 대화하고 합의하고 약속하고 파기하고 하는 짓이 정치라는 것을 깨달은 입니다.
그러다 보니 먹고 마시는 것도 정치요 아내와 잠자리를 하는 것도 정치라는 것도 깨달게 되더군요
우리인간은 정치를 떠나서 살 수가 없는데 종교는 정치와 분리해야 한다는 것은 몸과 영혼을 분리시켜야 한다는 이야기와 같은 것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몸과 영혼이 분리되었다는 것은 죽었다는 것인데 정치와 종교가 분리되어야 한다는 것은 세상을 죽이자는 것이 아닌지요.

정관 (08-11-12 13:03)
 
번뜩 정치는 대중의 의식수준 이라는 생각이 드네요. 깨달은 것도 아니고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지만,
대중의 의식이 어떻게 하면 상승하게 되며, 어떻게 해야 깨어있도록 하는가 하는 문제가 뒤 따를것 같아요.

화상 (08-12-05 20:40)
 
제가 아는 어떤 목사님은 교회분란으로 인해 후배목사들의 사임압력을 받고, 일주일 동안 기도했는데 하나님이 3년은 더 있으라는 계시를 받았다며 사임압력을 무마하고 현재 씩씩(?)하게 잘 지내고 있습니다.

    
미선이 (08-12-06 09:27)
 
계시의 폭력성을 여실히 보여주는 사례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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