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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목 : 폭력 혹은 성장주의도 <힘의 종교>라는 원죄에서 비롯되고 있는 것!    
  글쓴이 : 미선 날 짜 : 12-11-24 04:47 조회(3170)
   트랙백 주소 : http://freeview.org/bbs/tb.php/f005/307 


 
우주 진화에는 크게 두 가지 흐름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넘치는 힘'에 대한 숭배와 동경>의 흐름과 <힘의 균등한 성장과 발전>을 도모하는 흐름이 그것이다.
간단히 줄여서 표현할 경우,
전자를 <힘의 종교>라고 할 수 있겠고, 후자는 <상생의 종교>라고 볼 수 있겠다.
 
세계 안의 모든 종교든 문화든
결국은 이 두 가지 흐름으로 집약되어진다고 본다.
 
전지전능함에 대한 숭배나 비대한 지기 확장이나 풍요로운 성장주의 그리고 독식주의 등등
이러한 것들은 모두 <힘의 종교>에서 파생된 것들이다.
<힘의 과잉>을 숭배하는 흐름 속에 놓여 있다.
 
한쪽으로 더 많은 힘이 기울어질 경우 또 다른 한 쪽은 그만큼 힘이 결핍되어질 것이다.
이로써 강자와 약자가 있게 된다.
 
부자/빈자, 남성/여성, 일반인/장애인, 이성애자/동성애자, 백인/유색인 등등
이러한 분류들은 모두 강자와 약자에 대한 변주들에 놓여 있다.
 
근원적으로 작동하는 것은 우리 몸 안에 알게 모르게 <힘에 대한 숭배>가 있다는 사실이다.
거의 누구에게나 예외 없이 지니고 있다.
나는 기독교의 원죄도 결국 <힘에 대한 숭배와 동경>에 다름아니라고 본다.
즉, 힘의 종교를 몸화하고 있는 바로 그것이 곧 원죄라는 얘기다.
 
선악과를 먹으면 너희가 정녕 하나님과 같이 되리라 했는데
실상 하나님과 같이 되고 싶어하는 바로 그 욕망은
나의 존재가 더 커져서 극대화되길 바라는 욕망에 다름아니다.
 
또한 선악의 분별은 나와 타자의 분별로도 이어진다.
나는 선이고 타자는 악으로 규정되어지기도 하는 것이다.
따라서 나에게 있어 타자는 지배해야 할 대상 혹은
파괴하거나 배제해야 할 대상으로 전락될 뿐이다.
 
자기지배력을 확장하려는 욕망, 왕이 되고 싶어하는 욕망, 최고가 되고 싶어하려는 욕망..
부자가 되고 싶어하려는 욕망, 교회가 커졌으면 하는 욕망, 자기 회사 상품이 더 많이 팔렸으면 하는 욕망 등등..
이러한 욕망들이 문제가 되는 이유는 그것으로 인해 필연적으로 누군가는 타자적 희생을 치르기 때문이다.
 
모든 존재들은 권력화 하려는 욕망이 있다.
 
그런데 예수의 방법은 거꾸로다. 오히려 낮은자가 높아진다는 것이다.
그는 자신의 생명을 내어줌으로써 폭력에 대한 백신 치료제를 마련하였다.
그런 점에서 예수는 일종의 돌연변이라고 할 만하다. 도저히 일반적인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기에..
 
그는 제자들에게 십자가를 지고 따르라고 말한다.  
적극적으로 죽어주기 희생당해주기를 설파하고 있다.
 
현실은 이미 불평등하기에 <힘의 균등한 발전>을 위해서는 누군가 희생을 치루어야 한다면
그리스도인이 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이 세상 속에서 기독교가 해야 할 빛과 소금의 역할이라고 한다. 
 
그런 의미에서 예수의 유전자는 진정한 의미로서의 보살 유전자에 속한다.
자기를 희생시켜 전체 모두를 이롭게 하는 일..
 
여기에 동참하지 않는 한, 아무래도 기독교의 희망은 없을 것으로 본다. 
 
현재의 기독교는 세계 안에 <기독교 제국>을 건설하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다.
그야말로 <힘의 종교>요 <힘의 복음>을 설파하고 있는 것이다.
사실상 본래적 예수에 맞서는 기독교가 되어버렸다.
 
그런 의미에서 이천 년 기독교가 기독교다워질려면
<힘의 종교>에 맞서 세계 안의 평등한 성장과 발전을 위해
약자 우선적인 비폭력적 희생운동을 전개할 수 있어야만 할 것이다.
 
 
숫돌 (12-11-24 07:41)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예수 이전에는 예수처럼 자신의 생명을 내어주는 방식으로 체제에 대항하는 사람은 없었나요?
소크라테스의 죽음도 그런 측면이 있는 것 같기는 한데, 물론 예수처럼 극적이지는 않지만요.
어쨌든 역사에 기록으로 남은 사람 중에 예수와 같은 선택을 한 사람이 또 있는지 궁금하네요.

    
미선 (12-11-24 20:39)
 
당연히 있었다고 봅니다. 이미 성서 안에서도 구약성서의 예언자들이 그러할 것입니다.
그리고 팔레스타인 역사 외에도 언급하신 소크라테스의 경우도 그렇고
예수 이전에 다양한 무명보살들의 희생운동들이 있었을 걸로 봅니다.

그런데 마가복음에 나타난 예수운동만큼 매우 정형화된 모델로서 그리고 매우 극적으로 기록된 경우는
거의 없다고 보고 있습니다. 세계 곳곳의 신화를 연구하는 인류학자인 르네 지라르의 주장에도 나오지만
저 역시 이 부분에 대해서 동의하는 바입니다. 어떤 의미에서 실제 사건으로서의 예수보다
이를 정형화 해놓은 마가복음서가 훨씬 더 중요한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기록은 기억을 지배하니까요.

예수운동을 약자를 위한 적극적인 비폭력적 희생운동으로 보는 입장에서는
이제 인류 역사를 새롭게 읽도록 해주는 눈을 가져다 주기도 합니다.
말그대로 눈 먼 사람이 새로운 눈을 뜨는 경험을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역사와 구원사건이 어떤 맥락에서 어떻게 일어나는지를 알 수 있도록 해줍니다.
그 사건은 이천 년 전 예수운동 이후로도 화산맥처럼 일어났었습니다.
동학의 최제우나 간디, 마틴 루터 킹 등등 이런 사람들의 사건은 그나마 알려져 있긴 하지만
아마도 잘 알려져지 못하고 죽어갔던 생명들도 많을 걸로 봅니다. 제가 볼 땐 예수라는 그 흔한 이름이
이들을 대변해주는 것이라고 봅니다. 예수운동은 바로 이러한 사건들을 집약화 해놓은 것이라는 얘기죠.

게다가 그 사건은 오늘의 역사 부조리한 한복판에서도 충분히 일어날 수 있는 그러한 성격의 것입니다.
하나님의 현현은 바로 그러한 예수운동에서 분명하게 발견할 수 있고,
그러한 사건에 참여할 때 구원 경험을 하게 된다는 것이지요.

        
숫돌 (12-11-25 16:33)
 
그렇군요. 비폭력 희생운동, 참 어려운 일이지요. 좁은길일 수 밖에 없고요. 현실에서 실제 "힘" 또는 "폭력"이 나나 내 가족, 이웃들을 억압하고 들어올 때 비폭력 희생을 통해 저항하기란 실로 어려운 일 같습니다. 저도 말로는 비폭력 희생, 비폭력 저항을 이야기 하기는 하지만, 실제 내가 그럴 수 있을까, 실제 그렇게 하지도 못할 거면서 내가 그런 말을 입에 담는 것은 위선이나 허위의식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위 댓글에서 언급하신 구원에 관한 질문을 하나 더 하고 싶은데요. 미선님에게 "구원"이란 비폭력 희생운동에 참여함으로서만 얻을 수 있는 '어떤 것' 같은데, 그 것이 무엇인지 좀더 구체적으로 말씀해주실 수 있으신지요.

            
미선 (12-11-25 20:08)
 
일단 시작은 졸저 <기독교 대전환>에서도 밝혔었지만
예수사건(약자해방사건)에 대한 깨침(깨달음)에서 시작한다고 봅니다.
구원의 시작도 깨침(깨달음)을 통해서 출발하는 것이구요.
제가 보는 구원 개념은 <형성적>이기에 소위 말하는 <성화>의 개념까지도 함께 결부됩니다.

그렇기에 깨침(깨달음)을 지속적으로 발전시킬 수 있도록
이를 몸으로 생활화 혹은 체화하는 훈련(이른바 영성훈련)이 필요할 것으로 봅니다.
불교식으로 표현하자면 이는 <돈오점수>에 더 가깝습니다.

이는 건강한 몸삶의 증진이 핵심입니다. 상생에 맞춰진 전인적 삶의 건강일테죠.
<구원>salvation이란 용어의 본래적 의미도 <건강>이란 뜻과 관련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몸의 훈련은 몸얼의 9단계 과정에 이르는 길에 놓여 있습니다.
물론 각단계마다 병리적인 그림자도 있긴 하지만 고민과 병리의 질적 발달도
함께 일어난다는 점도 중요합니다. 예컨대, 일반인의 삶의 목표와 고민과 그리고
예수의 삶의 목표와 고민이 같은 인간의 삶을 사는 고민이라도 그 질적인 수준이 다르듯이 말입니다.
 
또한 깨어 있지 않을 경우 퇴행하기도 합니다. 즉, 자기삶에 대한 의식적 관찰을 놓치거나 결여할 경우
다시 하위 단계로 퇴행할 가능성이 훨씬 높다고 봐도 좋습니다. 보다 상세한 얘기들은 몸학에서 언급될 것입니다.

그리고 알다시피 비폭력적 희생운동은 단번에 나올수가 없으며, 준비된 자만이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따라서 예수운동도 서른 해를 준비해서 나온 것이며, 광야의 고행을 통한 훈련 없이는 불가능했었다고 봅니다.

비폭력적 희생운동에 대한 참여는 <형성적 참여>와 <결정적 참여>로 나누어 볼 수 있을 것인데,
형성적 참여는 나의 재능, 물질, 직업, 시간 등등 이러한 것들을 헌신하는 것이라면,
결정적 참여는 자신의 목숨까지 바치는 죽어주기의 헌신입니다.
그런데 전자는 몸삶 구원의 참여과정에서 가능합니다만, 후자는 때(카이로스)가 있어야만 가능한 것입니다.
 
비폭력 희생운동에 대한 결정적 참여는 몸학에서 말하는 '웰다잉'과 다르지 않습니다.
암튼 예수의 십자가 죽음처럼 적극적으로 그렇게 희생당해 죽어주기 같은 것입니다.

그런데 이는 그 자신의 깨달은 삶이 준비되어 있어 확고한 결정도 서 있어야 하겠지만,
역사적 상황과도 맞물리는 시대적 요청의 자리도 있어야 한다고 봅니다(그렇기에 단계가 꼭 높아야만 하는 건 아님).
최제우는 동학의 농민현장 자리였고, 전태일은 노동현장의 자리였듯이 말입니다.
이로써 그 자신이 이 땅에 태어나게 된 <존재의 이유>가 완성되는 것이기도 합니다.

몸학의 웰다잉 개념은 제가 가끔 강의 때만 풀어놓고 여기서 언급한 적은 없지만
몸학의 웰다잉은 척박한 이 땅에 뿌려지는 하나님나라의 씨앗이 되는 운동이기도 합니다.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몸의 부활과 영생으로도 이어진다고 보는 것이구요.

암튼 저도 많은 얘기를 드리고싶긴 하지만 보다 구체적인 얘기들은
아무래도 몸학에서 하게 될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모든 사안들이 전인적이고 통전적인 관점에서
수행되는  것이기에 약소하게 지엽적으로만 얘기하기가 매우 쉽지 않기 때문입니다.
행여 오해도 살 수 있으니까요.

언젠가 때가 차오르면 몸학을 통해서 본격적으로 더욱 많은 분들과 함께 하게 될 날도 오지 않을까 싶습니다.
오류와 비극에 겸허한 몸의 기독교, 몸삶 수행이 기독교가 현실화되어서
이땅에 지배체제의 폭력에 저항하며 서로 상생할 수 있는 몸삶의 문화와 체제를 만들어가는 것!
즉, 예수의 몸삶 그리고 예수문화를 본격적으로 심을 수 있도록 하고자 함이 예수운동이라고 보며
이것이야말로 기독교의 본래적 의미가 현대에서 새롭게 구현되는 것이라고 봅니다.

기독교 역시도 완결된 것이 아닌 여전히 형성과정 중에 있기 때문입니다.
제 인생의 바램도 바로 그런 점을 위해 작은 기여를 하고 싶을 뿐이구요.

이 땅에 지배와 폭력의 문화를 걷어내는 만큼
실질적으로 우리의 몸삶이 정말로 건강해지리라는 점은
너무나도 당연하고 자명한 이치일 것입니다.
예수의 기독교는 바로 이를 위해 마련된 종교라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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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5 일상의 반란 미선이 3890 08-31
84 故 김대중 대통령 빈소에 찾아가 분향하고 왔읍니다. (2) smallway 4310 08-25
83 우로보로스 (1) 미선이 5142 08-03
82 당신의 이름은 몇 개입니까? 미선이 4687 08-03
81 생각대로 움직이는 그림.. 미선이 4001 07-08
80 새로운 진화 (함석헌) 미선이 4312 07-05
79 아름다운 꿈 (18 +) (6) smallway 4653 06-23
78 너무나도 공감되는 스퐁의 어록 하나.. (4) 미선이 4449 06-10
77 신앙과 학문의 통합 (다석 어록) 미선이 5685 05-19
76 내가 정의하는 <위빠사나 수행>이란.. 정강길 4005 05-11
75 자기 안에 천국을 지어라 (스베던보리의 위대한 선물 중에서) 박종렬 4977 04-28
74 눈을 뜨면 보이는 것을.. (2) 정강길 4159 04-20
73 성경, 길트(gilt 금박)의 테두리일까? 길트(guilt, 죄)의 테두리일까? (1) 정강길 5345 04-13
72 장공(長空) 김재준 목사의 10가지 생활 좌우명 미선이 6057 03-27
71 <시> 그리움 Joe 4728 03-13
70 인간적 질환과 해방된 신의 선물, 광기(mania) (4) 생명씨앗 5498 03-12
69 행복 미선이 4168 02-28
68 <시>옛 이야기 (2) Joe 4363 02-17
67 [詩] 너는 약해도 강하다 (신현림) 미선이 4316 02-11
66 지혜로운 삶 (4) 미선이 5697 01-29
65 공부의 본래 뜻 (2) 미선이 8444 01-22
64 새해에는 해방의 물결로 살아가십시오 박종렬 4577 12-31
63 자신의 껍질을 깬다는 것은 죽음을 경험하는 것과 맞먹는 것! (1) 정강길 4667 12-01
62 새로운 생명을 잉태하는 자는 (4) 작은불꽃 4499 09-13
61 생명을 낳으려면 작은불꽃 4223 09-13
60 내겐 매일매일 절대 필요한 3시간 (2) 정강길 5166 07-13
59 창의적 교육을 위하여 미선이 4528 07-01
58 말 잘 하는 사람의 대화 수칙 20가지 미선이 4745 05-18
57 빅뱅 (Big Bang) (2) 정강길 5171 04-30
56 인간은 경쟁한다. 컨설턴트 4476 04-26
55 인문학적 대화 (김영민) 미선이 4486 04-05
54 영성과 몸성 정강길 5633 03-27
53 존재와 생각 미선이 4326 03-20
52 생활 방식 정강길 4299 03-18
51 지혜의 기도문 (1) 정강길 5355 02-12
50 진짜 <후회>라는 것은.. 미선이 7212 01-31
49 니체, 광인의 절규! 정강길 5875 01-21
48 경쟁과 협력 정강길 5430 01-16
47 자유와 구속 정강길 5108 01-16
46 이런 사람이 좋다 미선이 4851 12-03
45 사랑 나무 미선이 4368 11-17
44 신뢰 정강길 4681 10-17
43 고통과 유혹 정강길 4758 10-16
42 '구원'salvation이란 단어의 어원 정강길 6600 09-17
41 '진리는 상대적'이라고 주장하는 사람에게.. (1) 정강길 5500 09-17
40 신앙고백문 정강길 7066 09-02
39 <수신제가치국평천하>와 <평천하치국제가수신> 정강길 7596 07-05
38 여성 → 여자 → 여인 정강길 5045 06-16
37 더 깊고 풍요로운 자아를 위하여 (켄 윌버) 정강길 4781 06-10
36 <나와 다름>과 <나와 충돌하는 다름> 정강길 5213 05-31
35 [詩] 깨달음 미선이 4867 05-25
34 역사란? 미선이 4948 05-17
33 인디언들의 십계명 미선이 5024 05-14
32 합리성과 기적 그리고 믿음 정강길 4915 03-26
31 명상 혹은 심리학이 흔히 갖는 오류 정강길 5034 03-23
30 기도나 명상은 비움이 아니다! 정강길 5252 03-06
29 합리주의와 신비주의 정강길 5929 02-25
28 "이 세계는 내 몸의 몸이다" (2) 정강길 5261 01-26
27 "이 세계는 내 몸의 몸이다" (1) 정강길 5421 01-26
26 행복에 이르는 10가지 습관 (실천하면 건강해져요!) 정강길 5704 01-18
25 행복 정강길 5574 01-18
24 선교 미선이 5189 01-17
23 개혁 사각지대 (한겨레 그림판) 관리자 4536 01-02
22 올 성탄은 누구나 따뜻했으면.. 정강길 4467 12-20
21 '무조건 믿어라'의 기독교 (리얼 패러디) 미선이 5410 12-20
20 절망 (詩) 김수영 4844 12-20
19 그리스도교인들이 결론이랍시고 제시하는 정말 하나마나한 말들 (2) 정강길 5228 12-14
18 새로운 기독교의 이름, 신국교?! 정강길 5325 11-25
17 [만평] 언제까지 몰려다니실 건가요? 관리자 4927 11-15
16 어느 그리스도인의 성적 정체성 (1) 현경 5635 11-14
15 진리를 찾게 해주는 역설의 자세 정강길 4856 11-13
14 강자와 약자 정강길 4923 10-24
13 기복신앙 정강길 7007 10-21
12 이 사람을 누가 이렇게.. 관리자 4308 10-09
11 정체성 정강길 4449 10-09
10 침착 정강길 4690 10-08
9 대한민국 중년 아낙의 명절날 신세타령 시조 정강길 4759 10-04
8 평화를 위한 기도를 모을 때 미선이 4663 09-30
7 삶과 수행 (대승기신론2) 미선이 4713 09-26
6 사바가 열반이요 중생이 여래이다 (대승기신론1) 미선이 4435 09-26
5 순수의 전조 미선이 6591 09-26
4 미선이 4488 09-26
3 청춘과 성인 미선이 4508 09-26
2 나의 삶은.. 미선이 5018 09-26
1 그가 우리에게.. (이곳은 '짧은 글 긴 여운'의 게시판입니다) 관리자 7096 0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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