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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목 : 위선의 신학, 기만의 목회 (1)    
  글쓴이 : 정강길 날 짜 : 07-05-02 06:40 조회(3208)
   트랙백 주소 : http://freeview.org/bbs/tb.php/b001/109 




 
위선의 신학, 기만의 목회 (1)

-전국의 신학대 교수 및 신학생들 그리고 목회자들에게
 
 정강길 ( minjung21@paran.com )
 
 
예수께서 그들에게 또 비유 하나를 말씀하셨다.
"눈먼 사람이 눈먼 사람을 인도할 수 있느냐? 둘이 다 구덩이에 빠지지 않겠느냐?  -누가 6:39
 

감리교의 위기, 남의 일 아니다 : 개나 소나 아무나 목자
 
원래 이 글은 감리교/감신의 위기를 논하려 했던 글에서 시작되었다. 하지만 쓰다보니 한국 기독교 신학대 현실의 전반적인 정황을 얘기안할 수도 없는지라 결국 논의가 더욱 확대된 글이다.
 
내가 보기에는 현재의 감리교는 정말이지 그냥 위기도 아닌 총체적 위기로 직면한 듯 싶다. 물론 위기에 둔감한 자들은 인정하고 싶진 않을테지만. 어쨌든 기소유예 결정이 내려졌고 결국은 이제 김홍도 같은 사람들도 계속적으로 목사직을 유지하게 되었다. 명백히 현감리교단의 헌법상으로 볼 때도 적절치 않음에도 말이다. 종교지도자에 해당하는 목사라는 직분은 내가 볼 때 일반 사회의 기준보다도 더욱 엄격해야 한다. 그렇지만 감리교단은 분명하게도 이에 대해 역행하고 있는 것이다.
 
록그룹 넥스트(N.E.X.T)의 <예수일병 구하기>에 보면 다음과 같은 가사가 있다.
“…하늘을 향해 높이 솟은 번쩍이는 저 바벨의 탑이여
대량으로 생산되는 개나 소나 아무나 목자여
황금의 소를 따라가는 눈 먼 양이여…”
 
솔직히 목사라는 직업은 매우 엄중하고 무거운 직분 아니었나. 그것은 저 하나만 잘못되는 것이 아니라 목사 한 사람으로 인해 그에 따른 수많은 사람들도 같이 걸려 넘어지기 때문이다. 오늘날 한국 기독교의 현실은 보수측이 대다수 주류를 차지하며, 우리나라 기독교 신자의 양태는 자기 교회 지도자의 신앙컬러에 교인들이 좌지우지되는 원인도 한 몫 작용한다고 본다.
 
즉, 자신이 속한 그 교회 지도자가 얘기하는 기독교가 마치 전부 다 인줄 알고 있기에, 당연히 교회 지도자의 선입견이나 무지 또한 고스란히 그대로 따라가는 것이다. 바로 그래서 주께서는 “소경이 소경을 이끌면 둘 다 구렁텅이에 빠진다”는 말씀을 하셨지 않았는가.
 
결국 목사들의 무지가 곧 그 밑에 있는 개신교 신자들의 무지로 이어지게 되고, 이들 가운데서 다시 또 순진한 사명감으로 목사를 하겠다는 자들이 나오고, 그 목사가 신학교를 나와 다시 또 교회를 세우고 하는 식으로, 궁극적으로는 그 교단 자체를 점점 보수화하는 데에 기여하는 치명적 악순환이 재생산되고 있는 것이다.
 
이번 김홍도 사건은 비단 감리교만의 위기로 봐서는 곤란하다. 늘상 기독교는 심각한 위기였다지만, 이러한 사건들은 기존 기독교의 몰락으로 치닫고 있음을 예고하는 사건이자 동시에 작금의 21세기 기독교가 결국은 전면적으로 다시 새롭게 바뀌어야 함을 예기하고 있는 징후적 사건인 것이다.
 
신학현장과 교회현장의 이원화 문제
 
내가 볼 때 현재 감리교의 가장 큰 문제는 보수적인 목회시스템이 교단 핵심 자리들을 대부분 장악하고 있다고 하지만, 그보다 더 깊고 심각하게 고려되어야 할 점은 너무나도 극명하게 신학현장과 목회현장이 이원화 되어 있다는 점에 있다고 본다. 물론 예전 감신의 신학풍토에 비하면 현재도 많이 보수화되어 있다지만 그래도 그 신학현장 만큼은 어느 정도 숨통을 틔울 수 있는 여지들은 있다고 본다.
 
그러나 이제 신학현장을 나와 목회현장으로 들어가면, 신학교에서 배웠던 것들을 가르치지 않는다. 오히려 자라오면서 그 자신의 교회 시스템에서 익혀 왔던 것들을 뻔히 다시 재생산해대는 것이다.
 
성서비평? 인문학적 소양? 토착화신학? 종교다원론 문제? 그딴 것들은 교회현장에선 웃기는 얘기다. 그저 『목적이 이끄는 삶』이나 네비게이토 시리즈, 두란노 소그룹 나눔, 예수전도단, 프리셉트 GBS, 옥한흠 제자훈련 등등 그런 성경공부 교재 같지도 않은 교리교재들이 성경공부인 것 마냥 떡 하니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현실 아닌가. 그저 오늘날의 교회들은 주구창창 경배와 찬양으로 시간을 쳐발라서 은혜의 도가니탕에 빠뜨려버리면 그만인 것이다. 
 
이러한 가운데, 작금의 신학현장도 이제는 역공을 받게 되면서 보수적인 목회시스템의 영향과 통제를 받는 심각한 지경으로 나아가고 있다. 이는 참으로 감신신학의 미래에 있어서도 매우 우려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현재 감리교신학대의 교수 연봉은 전국 대학들 가운데서도 매우 높은 최상위급에 속한다고 한다. 아무래도 그 자리를 온전히 보존하고 싶은 게 당연 인지상정 아니겠는가.
 
물론 게 중에는 분명한 자기 목소리를 당당하게 내는 학자님들도 계시겠지만, 내가 알기에 감리교 종교재판의 칼날에 몸을 떠는 교수님들과 목사님들도 없잖아 있지 않을까 싶다. 하지만 이런 분들이 어찌 감리교단에만 있을까. 장로교도에도 있고 진보적이라는 기장에도 있을 것으로 본다. 즉, 나의 이런 얘기는 배운대로 자신의 입장을 솔직하게 표명하질 못하고 가르치질 못하는 신학자와 목회자들 모두를 겨냥해서 하는 얘기다.
 
 
 
신학생들의 목회실습 교육의 문제점
 
신학현장과 목회현장의 이원화 문제는 감리교신학 뿐만 아니라 진보교단이라는 기장(한국기독교장로회)도 내가 알기에 그 이원화 문제가 심각하다. 이 점에 있어서 한 몫 작용하는 게 바로 신학생들의 목회실습 교육이다. 먼저는 이에 대해서 잠깐 얘길 해보겠다.
 
내가 보기에 신학생은 목회실습을 통해 학부시절 때부터 신학현장에서 배운 것을 실습하러 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바로 그 교회의 목회방침에 따른 지침에 적응하러 가는 것이다. 이것이 오늘날 대부분 이뤄지고 있는 기존 목회실습의 허와 실이다. 이것은 목사후보생 시절이라는 신학교 때부터 목회실습이 아닌 기존 목회현장에 대한 체제순응을 오히려 몸에 습득하고 있는 셈이며, 이것은 결국 신학현장과 목회현장의 이분화현상에 대한 악순환을 끊지 못하도록 만드는 치명적 원인 중의 하나가 된다고 하겠다.
 
물론 목회현장의 분위기는 그 자신이 어릴 때부터 자라오면서 체득된 분위기이기에 매우 익숙한 것으로 이미 자기 안에 자리해있기도 하다. 그리고 목회실습이 기존의 목회현장을 배운다는 점에서는 좋을 수 있다. 나이 드신 어른이나 노련한 경험이 많은 선배들의 목회방식에는 분명 배워야할 점이 아주 많다. 그러나 그것은 동전의 양 단면이다.
 
그것은 노숙한 반면에 또 한편으로는 매너리즘화 되어버린 측면도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실질적으로 한국교회를 위한 참신한 개혁의 가능성들은 이미 여기서부터 좌절되고 있는 요소 또한 없잖아 있음을 말하려는 것이다. 게다가 내가 보기에 교회라는 집단도 혈연, 지연, 출신교회 인맥을 상당히 따지는 것으로 보인다. 아무리 기장교인이라고 해도 역시 사람의 정서는 벗어나지 못하는가보다.
 
이렇게 학부시절부터 체제 순응적인 목회실습을 배운 신학생이 목사가 되었다고 한다면 다시 또 반복되는 순환이 될 확률이 높다. 특히 큰 교회일수록 신학생에 대한 사상검증과 열씸검증은 필수적인 항목으로 알고 있다. 왜냐하면 그 교회지도자가 평생―혹은 수십 년―을 애써 세운 큰 교회체제를 택도 아닌 애송이 신학생에 의해 섣불리 뒤흔들릴 위험천만한 신학사상을 들여놓는다는 것 자체가 금물이고 탐탁치 않은 것으로 여겨질 수 있기 때문이다.
 
어떤 때는 과중한 교회업무 때문에 신학생들은 오히려 자기 공부시간을 뺏기기도 한다. 작은 교회 같은 경우는 오히려 신학생들의 능력발휘가 용이할 것이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작은 교회는 그 작은 <교인수> 때문에 주로 보수적인 목회방침을 취할 때가 많다. 한국교회의 현실에서 <교인수>라는 것은 목회자에게 있어서 그 자신의 능력을 판가름 받는 기준에 다름 아니다. <교인수>를 많이 거느린 목회자일수록 능력도 인정받고 사회적 지위와 명예도 인정받는 게 작금의 한국교회 현실이다.
 
그래도 기장이 그나마 감리교단 보다 굳이 나은 점이 있다면 교수들이나 목사들이나 사상의 자유만큼은 -물론 내부적으론 갈등이 있을지라도 적어도 드러난 표면상으로는- 철저히 보장해준다는 점을 들 수 있겠다. 적어도 엄한 소리 했다고 이단이니 삼단이니 해서 그거 가지고 모인 적은 한 번도 없다는 점에선 좋다고 본다. 그러나 현재 한신대의 진보 신학도 옛말일 정도로 많은 부분들이 보수화되어 간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즉, 결국 교단정치에 휘말리게 되는 것은 어딜 가나 비슷하게 직면하는 현실인 것이다.
 
전체 일생을 통해서 보는 교회의 지대한 영향력
 
목회를 꿈꾸는 어떤 신학생이 있다고 치자. 그는 적어도 1-20세까지는 자라왔던 가정과 그리고 자신이 속했던 모(母)교회의 분위기와 영향력을 아주 크게 받아왔을 것이다. 그리고 대체로는 젊고 뜨거운 마음에 목회적 소명의식을 가졌을 것이고 신학대의 문을 두드렸을 것으로 본다.
 
20-30대에 이르면 그때까지 속해왔던 교회의 영향에다 20대에 접한 신학대에서 배운 학문적 영향들이 새롭게 개입된다. 그런데 진보 진영의 신학대의 경우일수록 이 괴리가 매우 크다. 한때 내가 다녔던 한신대 신학과의 경우는 80년대뿐만 아니라 9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새롭게 만난 신학교 현장과 그때까지의 교회현장 간의 이 괴리로 인해 심각한 고민을 하던 학우들도 적지 않았다. 그래서 많은 이들이 아예 사회운동을 하는 투사로 돌변하던가 아니면 아예 학교를 그만두고 떠나던가 했을 정도다. 들어가면 <사람을 변하게 만드는 학교>라는 말까지 들을 정도였으니. 
 
특히 성서비평이나 정치 사회 역사에 관심을 갖게 한 민중신학 혹은 우리 전통문화와 종교다원화 시대를 숙고하게 하는 토착화 신학 등등 이러한 성과들을 진중하게 고찰한 사람이라면 이것이 주는 심각한 도전들을 피해가기 힘들었던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목회현장에 들어가면 신학현장에서 배운 대로 제대로 소화해서 나눠주질 않는다. 오히려 그러면 교인들이 교회를 나가버린다고 하는 볼멘소리나 할 줄 알지.
 
그렇기에 30대 이후에는 다시 이전에 받았던 교회의 영향이 다시금 드세게 자리하게 된다. 특히 이즈음에는 현실적으로 먹고 사는 문제에 대한 걱정들, 나 외에도 가족들에 대한 걱정들로 인해 그 진로에 있어서도 현실적인 고민과 선택을 하게 되기 십상이다. 그래서 20대의 불같은 청춘의 신학적 열정도 다시 기존 교단이 요구하는 시스템의 자리에 귀속되기도 한다.
 
이후로는 교회현장의 자리에선 특히 <교인수>로 인한 고민을 하게 된다. 목회적 성공을 위해서는 신학교 시절에 배운 것들을 가르치는 사람은 드물다. 오히려 그것은 나이가 들수록 한때의 방황으로 치부되기 십상이기도 하다. 오늘날 많은 목회자들에게 <교회성장학>이라는 과목은 매우 각광받고 있는 현실인데, 나는 이들에게 기꺼이 냉소를 보내드리는 바이다. 오늘날 목회현장에서 <교인수제일주의>만큼 시험에 빠지게 하는 것도 없잖은가.
 
<교인수제일주의>는 ‘교회제일주의’와 동일하게 여겨지고 마침내 이것은 ‘하나님제일주의’로 둔갑되기에 이른다. 그리고 이러한 교인수제일주의는 오히려 교단에게는 교세확장이라는 선물을, 목회자에게는 자기 가정의 밥줄해결과 능력과시에 대한 명예 그리고 교계안의 상위권력 확보의 용이성이라는 흐뭇한 <종합선물세트>를 안겨주고 있는 실정이다. 하나님께선 의인 열 명이래도 충분하다고 하셨잖은가. 그렇기에 깊숙하고도 끈질긴 이 폐단은 끊을 수도 없을뿐더러 오히려 기독교계 안에 매우 만성적으로 고질화되어 있는 형편이다.
 
여기서 나는 지금 특히 진보진영의 경우들을 더 비판하고 있음을 기억하길 바란다. 따라서 교회의 영향으로 인해 발을 담그게 되면 늙어 죽을 때까지는 결국 먹고살기 위해서라도 목회를 해야 하며, 그럼으로써 또한 교단정치의 이해관계에 이끌려 가야 한다. 그것이 오늘날 한국교회가 처한 대부분의 현실이다.
 
(계속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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