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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목 : <자유>에 대한 짧은 생각..    
  글쓴이 : 미선 날 짜 : 13-08-24 10:25 조회(654)
   트랙백 주소 : http://freeview.org/bbs/tb.php/b001/692 




 
 
<자유>에 대한 짧은 생각..
 
 
 
제 생각에 모든 존재는 기본적으로 관계적 존재이기에 본질적으로 연결되어 있고, 분리될 수 없다고 봅니다. 생명의 본질적 성격 중의 하나도 <관계성>인 것입니다. 그렇다면 <개인의 자유>란 말도 결국은 환상에 가까운 것입니다. 실제로는 사회와 분리된 <개인>個人이 아니라 오히려 <전인>全人이 있는 것뿐이니까요.
 
<개인의 자유>라는 관념은 서구 근대주의의 산물이기도 하며, 그런 점에서 그들이 말하는 자유와 평등은 언제나 개인이라는 존재에 우선 소급되는데, 이것이 근본적으로 문제가 되는 이유는 그것이 언제나 <이 세계와 분리된 개인>으로서 이해된다는 점에 있습니다.
 
이를테면, <개인은 언제나 주체>가 되고 <타자적 세계는 객체라는 대상>으로 취급되는 것입니다. 서구 근대 이념의 뿌리가 본질적으로 주체와 객체를 분리시켰던 데카르트의 이원론 사상을 아신다면 이는 지극히 자연스러운 서구인들의 이해였던 것이기도 합니다.


그리하여 타자적 세계와 분리된 그 개인은 타자적 세계를 객체라는 대상물로서 취급합니다. 그래서 온갖 경제 개발과 자연에 대한 착취가 가능할 수 있었고, 제3세계 지배와 생태 환경에 대한 오염은 나 개인과는 무관한 관계로 보는 인식이 근대화 과정에서 지극히 자연스럽게 여겨졌던 것입니다. 
 
그래서 서구적 사유에서는 개인이 기준이 될 수밖에 없었고, 사회를 이해할 때도 개체성의 집합으로 이해할 따름입니다. 물론 이것이 꼭 나쁜 결과만 있었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왜냐하면 서구 근대주의가 갖는 개인의 발견으로 인해 우리가 <민주주의>라는 관념에 눈을 뜬 점도 없잖아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민주주의>의 한계는 아시다시피 다수결 원칙의 한계를 넘지 못합니다. 절차적 형식으로서 모두가 합리적으로 합의 가능한 수준 정도일 것입니다. 독일 파시즘의 출현도 당시 민주적 다수로서 나왔던 것입니다. 민주주의란 것도 언제나 그 나라 전체 구성원의 수준을 벗어날 수 없는 한계가 있는 것입니다. 
 
민주주의는 그래서 어렵기도 합니다. 민주주의 역시 과정으로서 현존할 따름이며 완결된 것이 아닙니다.
 
 
반면에 동양적 사유에서는 개인과 타자적 세계(인간과 자연을 모두 포함)가 이미 전일적으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타자를 나와 무관하지 않는 <일체>로서 여깁니다. 그래서 동양사회를 보면 개인이 아닌 가문의 영광과 전체 나라와 천하를 위하는 데에 그 자신의 <삶의 의미>를 두는 경우가 많습니다. 
 
문제가 되는 건 개체 개념이 미약하다보니 동양에서는 민주주의라는 이념에 대한 눈을 뜨질 못했었다는 점입니다. 동양의 민본주의는 서구의 민주주의와는 애초 다른 개념입니다. 어디까지나 군주제를 갖는 가운데서의 민본주의였으니까요. 
 
동양에서 말하는 자유란 가문과 나라 혹은 자연과 일체가 되어 개인의 자유를 헌납한 자유이든가 아니면 아예 세상을 초월한 탈속적 관념으로서 자유 개념인 경우가 많았습니다.
 
제가 볼 땐, 서구 근대주의에도 장단점이 있듯이 이러한 동양의 이해에도 장단점이 있다고 여겨지는데, 동양의 자유는 집단주의적 성향이 반영되어 타자에 함몰되는 자유인 경우가 많다고 여겨집니다. 사실 이는 개인의 자유라기 보다 <집단의 자유>일 것입니다.

 
...........................

 
 
제가 보기로는 기존의 자유, 평등, 인권, 민주주의 등등 이 모든 것들은 서구 근대주의의 산물로서 <개인의 발견>이라는 토대위에서 형성된 것이라고 봅니다. 그때의 개인은 본질적으로 타자와 분리된 개인으로서 분명히 잘못 이해된 개인입니다. 
 
따라서 근본적으로는 서구 근대 패러다임이 아닌 <동서 융합의 새로운 패러다임>의 수혈이 우리에게 다시금 필요하다고 보여집니다. 
 
모든 개체 생명들은 관계적 흐름 속에서의 결절점 같은 것.. 
 
개인이라는 존재 안에는 이미 타자가 내 안에 들어와 있는 것입니다. 단지 의식상에서는 타자와 분리된 개인을 떠올릴 수 있지만, 이는 우리의 <뇌의식>이 만들어내는 교묘한 개념적 착각에 지나지 않습니다. 
 
실제 무의식적 경험을 비롯한 모든 과정의 면면들을 들여다보면, <개인>이란 것도 결국은 타자와의 관계 자체로서 결합된 <과정으로서의 관계결합체>라는 사실입니다. 알고보면 끊임없는 상호작용들만 있을 따름입니다. 즉, 나와 너가 있는 것이 아니라 타자와 자기의 <상호작용 관계들>만 있다고 봅니다. 오늘날 현대 양자물리학에서도 주체와 객체는 본질적으로 나누어질 수 없다고 말하잖아요.
 
타자 없는 자기란 있을 수 없습니다. 모든 존재는 <타자를 자기화(appropriation)하는 과정>으로서 존재할 따름입니다. 따지고 보면, 타자 없는 자기란 있을 수 없고, 모든 자유란 근본적으로 <제약된 자유 안에서의 자유>입니다.
 
그러한 가운데 실질적인 존재의 자유란, <새로운 가능성의 창출 능력>이라고 봅니다. 그럴 경우 개념적으로는 가장 자유로울 수 있겠지만, 실제 현실에선 타자적 환경의 영향을 결코 벗어날 수 없습니다. 따라서 타자의 여건에 제약을 받으면서도 타자로부터의 그 필연적 제약과 결과를 피할 수 있는 새로움의 발현에서 자유를 찾을 수 있을 것으로 봅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볼 경우 보통은 타자에 포로되거나 사로잡힌 자기일 경우가 많습니다. 예컨대, 국가와 문화 각종 매체 언론 정보 이슈들에 포로되어 있는 경우 등등.. 따라서 내 안의 타자를 잘 깨닫고 알아차림하는 가운데 진정한 자유의 실현으로 나아갈 수 있다고 보여집니다.
 
그러나 그때의 자기자유 역시 필연적으로 다시 그 어떤 타자속으로 스며드는 자유입니다. 자신의 언행이 또다시 주변 타자에게 영향을 끼치듯이 말이죠. 결국 자유와 책임은 동전의 양면일 수밖에 없는 필연성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책임적 자유로서의 자유>란, 타자를 이롭게 하는 자기형성에서 나올 수 있다고 봅니다. 우리가 가능한 타자를 이롭게 해야만 하는 이유는 궁극적으로 그것이 다시금 그 자신의 자유로 연결되어 돌아오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자유는 결국 그 자신에게로 되돌아오기도 하는 <부메랑적인 자유>입니다. 생각해보면 이것은 <타자와 충돌하지 않는 이기성의 최적화>를 위해서이기도 한 것입니다.
 
그렇다면 <자아실현>(自我實現)이란 건 없습니다. 
모든 <자아실현>은 본질적으로 <자타실현>(自他實現)인 것입니다. 
이미 존재론적으로 그렇게 엮여져 있다는 것입니다.
 
나와 타자는 이미 관계적 연결의 <한몸>인 것이며, 타자(세상과 자연 모두 포함)의 영향은 이미 나를 형성하고 있는 것이며, 나의 실현은 타자속으로 다시 스며들게 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자타실현>만이 있을 뿐입니다. 아마도 이것이 우리에게 요구되어지는 <자유에 관한 윤리>가 아닐까 생각됩니다. 이러한 자유에 관한 윤리 덕목으로 우리는 우리가 속한 사회에 타자를 이롭게 하는 <책임적 자유>를 설파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그리고 이때 타자를 이롭게 한다는 건 궁극적으로 <약자 우선성의 원리>로서 접근해들어가야 할 것입니다. 다시 말해, 타자들 중에서도 가장 고통받고 억압받는 약자를 우선적으로 배려하려는 책임적 자유야말로 궁극적으로 자기를 성장시키고 이롭게 할 수 있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우리 사회 속에서 시행되는 정치 경제 사회 국가 정책들 모두 이러한 기반에 의해 <약자 우선성의 원리>를 적용할 필요가 있다고 보여집니다. 왜냐하면 고통받는 약자를 우선적으로 배려하는 가운데 타자적 환경이 좋아질수록 그에 비례해 자신의 입지적 자유 역시 증대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타자의 현실과 자신의 현실은 이미 근본적으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현실의 모든 사회적 관계들은 <강자와 약자 관계의 변주들>입니다. 지배자와 피지배자, 부자와 가난한자, 자본가와 노동자(농민), 남성(가부장)과 여성, 대기업과 소비자, 이성애자와 동성애자, 일반인과 장애인, 집단과 왕따, 상사와 부하, 강대국과 약소국, 백인과 유색인 등등 이러한 관계들이 계급차별, 성차별, 인종차별, 나이차별, 외모차별 등등 여러 가지 부조리와 모순을 낳고 있는 것.. 
 
그렇다면 세계 안에 고통받는 약자들을 우선적으로 위하는 것이야말로 궁극적인 공평성과 정의를 실현하는 길이자 진정한 자유의 길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약자 우선성의 원리>를 통해 서로의 목적들이 서로 충돌하지 않고 <상생하는 성장 사회>야말로 우리가 합리적으로 확보할 수 있는 <최선의 합의 가능한 자유 사회>이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제약된 현실 자유의 최적화 시스템>이라고 생각됩니다. 
  
우리가 자본주의와 제국주의의 한계를 끊임없이 극복해보고자 하는 것도 실은 전적으로 타자만을 위한 것도 아니며, 전적으로 자기만을 위한 것도 아닙니다. 타자와 자기 모두를 위하는 것이 존재의 자유와 행복의 실현의 길이라고 여겨집니다. <자타실현>인 것입니다.
 
그렇다면 결국 우리에게는 <자유>가 있는 게 아니라 어쩌면 
항상 <자유를 향한 실현의 과정들>만이 있을 뿐이라고 여겨집니다.
 
자유.. 

그것은 정녕 영원한 이상이자 
끊임없이 현실화할 때만이 현존하는 사건이 아닐까 싶습니다.
 
 
 
자유영성 (13-09-13 16:32)
 
와~ 자타실현~~~자아실현의 공허를 채워주는 답변입니다.^^

    
미선 (13-09-15 05:16)
 
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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