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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목 : 종교 신앙의 반지성에 대한 단기적 대안 (1)    
  글쓴이 : 미선 날 짜 : 15-11-24 16:49 조회(607)
   트랙백 주소 : http://freeview.org/bbs/tb.php/b001/710 




(* 조만간 발표하게 될 원고의 일부인데, 혹시라도 코멘트 할 점 있으시면 얼마든지 대환영입니다. )



종교 신앙의 반지성에 대한 단기적 대안


초자연주의와 자연주의에 대한 합의 설정




대안을 논함에 있어서는 크게 단기적 대안과 장기적 대안으로 구분해서 언급해보고자 한다. 단기적 대안에서는 다소 상충되는 이해관계에 대한 조정을 피력하고 있으며, 장기적 대안에서는 새로운 변혁으로서의 종교 신앙의 진화와 연관되어 있다.

우선 단기적 대안을 말한다면, 창조론자와 지적설계론자 뿐만 아니라 유신론적 과학자든 무신론적 과학자든 간에 적어도 <초자연주의>와 <자연주의>에 대한 문제의식과 이 개념에 대한 합의 설정이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과학은 그 학문의 성격상 초자연주의를 결코 받아들일 수 없는 탐구 진영에 해당하며 그런 점에서 초자연주의를 신봉하는 이들과는 분명하게 충돌할 수밖에 없다고 보여진다. 만일 초자연주의를 인정하는 한, 결국 종교와 과학이라는 양 진영 간의 갈등과 충돌은 불가피한 필연적 사태가 될 것이며, 21세기 현대인들에게는 지성적 소통이 아닌 오히려 반지성의 사례로 남게 될 것이다.

과학의 논의에서는 유신론과 무신론을 논할 수 없다. 과학의 논의는 분명 형이상학적 논의와 구별된다. 과학의 탐구 방식이 자연주의를 받아들인다고 해서 이것이 유신론을 마냥 부정하고 무신론을 인정한다고만 생각하는 것도 실은 자연주의에 대한 오도된 이해라고 보여진다. 물론 이 지점에서 보수 개신교인의 입장은 오히려 과학 진영에 깔린 자연주의를 거세하고 초자연주의 세계관을 뿌리내리고자 추진할 수 있다. 그러나 그럴 경우 그것은 이미 종교인 것이지 과학이 아닌 것이다. 게다가 그때의 종교는 <힘의 종교>라는 점에서 더욱 우려스럽다.

초자연주의적 유신론 신앙은 자연세계에 일방적으로 개입하는 신의 활동을 긍정하는 신앙이다. 그런데 이때 말하는 신의 활동이란 자연의 사물이 형성하는 자기조직화된 자율적 결정들과 무관하게 일방적으로 간섭하는 신의 활동을 의미한다. 예를 들어, 성경에서 여호수아가 “태양아 멈춰라! 달아 멈춰라!”고 하면 그 태양과 달은 자연세계의 천문학 법칙조차도 훌쩍 초월해서 멈춰 있도록 만드는 그러한 신의 간섭적 활동인 것이다(여호수아 10장 12-14절).

이러한 유형의 신관에서 채택되는 신 모델은 마치 제왕적인 군주자 모델과 같다. 자연에 대한 신의 일방적 간섭은 자연 스스로의 자율적 결정의 활동과는 배리(背理)되고 있는 것이다. 물론 또 다른 한 쪽 극단에 서 있는 기계적 유물론의 입장에서도 자연의 사물이 지니고 있는 자율적 결정의 사태는 인정하지 않고 있다.

이 지점에서 필자는 <자연 스스로의 활동>이라는 표현을 썼는데, 생물학자들 사이에는 다윈 진화론의 불충분성을 받아들이면서도 자연세계의 <자기조직화>self-organization를 거론하는 학자들도 있음을 함께 말씀드리고 싶다. 내가 볼 때 지적설계론자들이 환원 불가능한 복잡성의 원인을 지적인 설계자로 돌린다면 스튜어트 카우프만(Stuart A. Kauffman) 같은 생물학자는 <복잡계 이론>complexity theory을 통해 이를 자연세계 속에서 찾는 해결을 모색한다는 점에서 서로 갈라진다고 볼 수 있다.

카우프만의 경우는 여전히 자연주의 기조를 유지하고 있다. 복잡계 이론에서는 자연세계 내의 무작위 활동이라고 해도 그 속에서도 일종의 안정된 패턴 구조가 가능할 수 있음을 보여주고 있으며 이를 통해 <창발>(創發, emergent)과 <자기조직화>self-organizing를 거론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기존 다윈 진화론에서 설명하지 못했던 불충분성을 보완한다. 그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우리는 생물이 설게 원리들과 우연과 필연의 임시 변통식 결합, 즉 기묘한 고안물들을 땜질한 것이라고 믿어 왔다. 나는 이런 관점이 충분치 못하다고 생각한다. 다윈은 자기조직화의 힘을 알지 못했다. 사실 우리는 우리 자신에게 부여하는 것이 무엇인지 거의 알지 못하고 있다. 나는 생명의 기원에서부터 그것의 응집성을 띤 역학에 이르기까지, 그런 자기조직화가 생명의 역사에서, 사실상 모든 생명의 역사에서 본질적인 역할을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다윈도 옳았다. 자연선택은 언제나 작용하고 있다. 따라서 우리는 진화론을 다시 생각해야 한다. 생명의 자연사는 자기조직화와 자연선택의 혼인 형태이다. 우리는 생명을 새롭게 보아야 하며, 그것을 밝혀낼 새로운 법칙들을 파고들어야 한다.” (*밑줄은 필자의 표시).
*출처 Michael P. Murphy and Luke O'Neill [Edited by], What is life? The Next Ffifty Years : Speculations on the future of biology (New York: Cambridge University Press, 1995), p.111. ; [국역판] 스튜어트 카우프만, “슈뢰딩거는 옳았는가?”, 로저 펜로즈ㆍ스티븐 제이 굴드 외 다수 지음, 이한음ㆍ이상헌 옮김, 『생명이란 무엇인가? 그 후 50년』(서울: 지호, 2003), p.132.


이처럼 복잡계 이론에서는 기존의 열역학 제2법칙에도 불구하고 자연세계에서는 국지적으로 엔트로피가 감소하는 경우가 발생할 수 있음도 보여준다. 다시 말해, 굳이 초월적 존재자나 지성적인 설계자를 상정하지 않고도 다윈 진화론의 불충분성까지도 잘 설명해낼 수 있는 이론적 제안들이 있는 것이다.

지금 필자가 말하고자 하는 바는, 여기서 카우프만의 그 같은 입장이 무조건 절대적으로 옳다는 얘기를 하려 함이 아니다. 적어도 자연주의라는 기조를 유지하면서도 얼마든지 기존 과학 이론의 불충분성까지도 설명해내려는 과학자들의 합리적 시도와 노력들이 있다는 점을 말씀드리고자 함이다. 이런 점들을 도외시한 채로 초월자나 설계자로부터 그 궁극적 원인을 설명하는 시도들은 결국 과학의 범주를 이탈하는 것으로 취급될 것이라는 얘기다.

따라서 <종교에 남아있는 초자연주의>와 <과학에서 수행되는 자연주의>라는 상충되는 이해관계에 있어서는 일종의 수정적인 조정이 필요하다고 보여진다. 기존 과학자들 역시 종교인들의 초자연주의 입장을 자꾸 과학의 영역 안으로 들이밀지만 않는다면 ― 예컨대 해당 종교인이 종교적으로 유신론을 주장하든 삼신할머니 신앙을 주장하든 간에 이를 과학으로 여기지만 않는다면야 ― 그리 큰 충돌적인 반감을 가지진 않을 것으로 본다.

일례로 지금도 많은 과학자들은 (설령 무신론 과학자들도 포함시켜 말한다 해도) 생물의 진화과정에 초자연주의적인 신의 개입을 상정하지 않는 유신진화론자에 대해선 그 반감의 크기가 창조론자나 지적설계론자에 비하면 훨씬 덜 한 편이다. 따라서 상충되는 이해관계에 대한 직접적인 조정이 필요한 지점은 종교에 남아 있는 초자연주의와 과학의 자연주의라는 것을 서로 어떻게 볼 것이냐에 따라 달려 있다고도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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