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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목 : 유신론-무신론을 넘어서 <탈신론>으로    
  글쓴이 : 미선 날 짜 : 14-05-04 20:22 조회(6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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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학 기독교>로 가는 길 :

유신론-무신론을 넘어서 <탈신론>으로 나아가자



신은 있다 VS 신은 없다, 그 끝없는 지리한 논쟁

인류 역사 이래로 대표적인 논쟁을 하나 꼽는다면 유신론(有神論)과 무신론(無神論)의 논쟁을 꼽을 수 있을 것이다. 특히 서양 지성사에서는 오래도록 "신이 있다"는 주장과 "신은 없다"는 주장이 맞서 왔다. 이는 근대 과학의 발흥 이후로는 더욱 두드러졌으며 종교와 과학 간의 첨예한 대립과 갈등을 빚기도 했었다.

초창기에는 유신론이 거의 다수를 점했었다. 그런 상황에서 오히려 무신론을 주장한다는 건 매우 불온시되고 금기시되었을 것으로 여겨진다. 하지만 과학의 발전과 성취는 차츰 기존의 유신론 진영을 위협하기 시작했으며 오늘날에는 좀 더 이해가능한 과학적 지식의 확장으로 인해 오히려 무신론 진영이 점점 더 증가하는 추세이기도 하다. 여기에는 기존 유신론 진영의 폐해에 대한 반발이 작동되는 지점도 한 몫 할 것으로 본다.

"신이 있다"는 생각과 "신은 없다"는 생각은 여전히 전제로서 작동될 뿐, 증명된 완결된 결론이라고는 볼 수 없다. 생각컨대, 신에 대한 존재 증명은 결코 완결되거나 확증할 수 없는 이론이라고 생각되어진다. 유-무신론 논쟁은 거의 순수 사변에 대한 고찰에 가깝다. 혹자는 이 점에서 <파스칼의 내기>를 언급하기도 한다.

<파스칼의 내기>의 허점

<파스칼의 내기>란 죽어서 신이 있을 경우와 신이 없을 경우를 모두 고려해본다고 했을 때, 신을 믿는다면 다행이지만 만일 신을 믿지 않고 죽는다면 지옥불에 던져질 것이기에 엄청난 손해를 보기 때문에 차라리 신을 믿는 것이 신을 안믿는 것보다는 훨씬 더 이득이 많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파스칼의 내기에도 매우 허술한 약점이 있다. 즉, 신이 있다고 했을 경우 파스칼이 말하는 그 신은 전적으로 유신론자들만을 신 자신의 백성으로 받아들이는 그러한 신이라는 점을 이미 전제로서 깔고 있는 것이다. 파스칼이 애초부터 생각했던 신은 상당히 속 좁은 신이었던 것이다.

다시 말해 신이 정말로 있다고 했을 때 그때의 신 존재는 자신을 믿는 사람들만 받아들이고, 신을 믿지 않는 사람들의 생명은 영원한 지옥행으로 가게 내버려두는 그러한 신만을 염두에 둘 뿐이다. 사실 신이 존재한다고 쳐도 정말 그러한 성격의 신인지는 여전히 확정할 수 없는 문제이다. 오히려 내가 생각하기에 그토록 위대한 신 존재라면 오히려 속 좁은 신은 결코 아닐 것으로 생각되기에 나는 <파스칼의 내기> 자체부터가 허술한 가정 위에 세워진 조크라고 생각한다.

<인체냉동보존술> 투자는 파스칼의 내기 못지 않은 이득을 안겨줄 지도 모를 일

심지어 <파스칼의 내기>에 반하는 상당히 무신론적인 제안의 내기도 가능할 수 있다. 흥미롭게도 이는 얼마전 책에서 접한 내용인데, 최근 <커넥톰>connectome이라는 저작으로도 잘 알려진 세바스찬 승(Sebastian Seung)은 그 자신의 저서에서 천국으로의 승천이라는 '구원'을 <업로딩>up-loading으로 소개하고 있는데, 그는 여기서 앞서 말한 파스칼의 내기에 반해 다음과 같은 내기가 가능할 수 있다는 점을 제안하고 있다. 소위 말하는 <인체냉동보존술>에 대한 것이다.

예컨대, 현재 불치병에 걸려 <냉동인간>을 선택한 현대인들은 나중에 완치가능한 과학 발달의 미래에 다시 깨어나 치유를 받을 수도 있기에 오히려 현재 20만 달러를 쓰는 일이 결코 아깝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이는 현세에서 계속적으로 지속가능한 생명을 보장받는 것이기에 엄청난 이득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만일 그렇다면 이는 파스칼의 내기만큼이나 유용한 투자일 수 있다. 물론 현재의 <인체냉동보존기술>에 대한 얘기들은 과학이라기보다 아직은 종교적 믿음에 가깝다고 보긴 하지만, 어쨌든 <파스칼의 내기>만큼이나 색다른 이득을 줄 수 있는 또 다른 믿음이라는 것이다.

내가 볼 때 이같은 얘긴 종교보다 과학을 신봉하는 무신론자들이 걸만한 내기라고 생각되어진다. 요컨대 내가 말하고자 하는 바는, 결국 유신론에 내기를 걸든 무신론에 내기를 걸든 어쨌든 그것은 결국 우리 스스로의 욕망에 대한 투자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유신론적이든 무신론적이든 우리 안에는 지속적으로 살고자 하는 욕망(비록 사후세계라고 할지라도) 혹은 생명 연장의 꿈이 내포되어 있는 것이다. 현세든 내세든 그것은 욕망의 지속인 것이다. 물론 우리 안의 욕망 자체에 대한 투자가 항상 나쁘다는 건 아니다. 그렇다면 문제는 그것이 어떤 방향과 흐름 속에 놓여 있느냐 하는 것일 게다.

유신론 무신론 증명 집착을 넘어서기

"신이 있다"는 것도 믿음이지만 "신이 없다"는 것도 결국 믿음에 불과한 것이다. 다만 <창발적 새로움의 근원>만큼은 여전히 자연과학으로서는 밝힐 수 없는 한계가 있고, 이는 결국 형이상학의 영역에서 고찰될 수 밖에 없다고 했을 때 이점에서 세계 안에 새로움을 제공하는 근원자로서의 신 존재를 언급해볼 수는 있다고 생각한다. 이 같은 점은 이미 당대 물리학에도 정통했던 화이트헤드의 정교한 형이상학에서도 언급되고 있긴 하지만, 오늘날에도 스튜어트 카우프만(Stuart Kauffman) 같은 현대 자연과학자도 이를 '자연 안의 신적인 요소'로 볼 것을 제안하고 있다.

물론 여기서 말하는 신 혹은 신성은 철저히 자연주의적인 것이지 초자연주의적인 것이 아니다. 초자연주의는 고대인들의 <상징작용>symbolism으로서 이는 사실(fact)이 아닌 의미(meaning)로 전환되어 해석되어질 뿐이다. 사실상 그동안 많은 무신론자들이 반대해왔던 신은 결국 초자연주의적 신을 말한 것이지, 예컨대 범신론 같은 다른 유형의 신론들에까지 이를 극렬하게 반대한 것은 아니었다. 쉽게 말해 리처드 도킨스가 범신론까지 완전 반대를 한 것인지는 불분명하다는 것이다. 그는 그 자신의 저작 <만들어진 신>에서 공격의 타겟을 초자연주의적 신에 한정하겠다고 표명한 바 있다.





따라서 나는 초자연주의적 신은 없다고 볼 수도 있겠으나, 정말로 신이 있는지 없는지는 여전히 확증할 수 없는 문제라고 생각한다. 이점은 아마도 신은 없을 것이라고 말한 도킨스는 자신을 <불가지적 무신론자>라고 표방했었는데 나의 경우는 아마도 신은 있을 것이라고 얘기할 수 있다는 점에서 <불가지적 유신론자>라고 말할 수 있겠다.

여기서 나는 넘어서야 할 점이 바로 <신존재 (있음/없음) 증명 집착>이라고 생각한다. 이는 전적으로 자기 믿음에 대한 확고한 확신을 일반화하겠다는 동기일 것이다. 그런 점에서는 나는 <유무신론>이 아닌 <탈신론>post-theism을 주장하고자 하는 것이다. 신이 있다 없다 자체를 넘어서야 한다는 얘기다.

<탈신론>, '관념적 사변'에서 '구체적 현실'로 내려오기
- 신론에서 몸론으로의 전환

나는 무신론에 대해서도 여전히 근본주의가 있음을 느낀다. 쉽게 말해 '신은 없다'라는 확고한 교리를 전제하고서 종교 자체를 거부하는 <반종교 유형>의 주장들도 분명한 한계가 있다고 보는 것이다. 소위 말하는 안티기독교의 경우도 이러한 무신론적 근본주의 행태를 보인다면 또 다른 의미로서의 <역집착>이 아닐까 생각한다. 나는 그런 점에서 유신론과 무신론을 넘어서는 <탈신론>이 필요하다고 본다.

<탈신론의 원칙>은 다음과 같다. 1) 초자연주의에서 자연주의로의 전환, 그리고 2) 신론에서 몸론으로의 전환이 그것이다. 이 두 가지는 내가 말하고자 하는 새로운 기독교 곧 몸학 기독교에 있어서도 중요한 원칙에 속한다. 이는 오늘날 몸학적으로 읽는 성서해서에 있어서도 필요한 원칙이 아닐까 싶다. 즉, 성서에 나타난 신에 대한 믿음 신앙 역시 우선은 역사화된 몸의 현실과 결부시켜 보는 성서해석에 서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쉽게 말해 성서에서 표현되는 구원하는 신의 계시나 활동은 곧 몸의 해방적 요소에 기여하는 것들로서 볼 수 있어야 한다. 그것은 단순히 신이 있다는 유신론적 믿음에 대한 예증으로서만 보면 곤란하다. 성서를 읽고서 신이 있다는 유신론 믿음에 대한 확고한 믿음을 갖는다는 건 낮은 유형의 인식 처리에 속할 뿐이다. 보다 높은 유형의 참된 인지는 성서가 말하는 신이라는 언명도 결국은 일종의 몸의 사건을 드러내는 상징작용으로서 인식하는 데에 있다.

그런 면에서 볼 때 내가 말하는 <탈신론>은 성서를 다시금 새롭게 들여다보고자 하는 일종의 방법적 원칙이기도 하다. 그러나 나는 탈신론을 방법론적으로 수용하는 것이지 탈(脫) 자체가 목적은 아니다. 그런 점에서 제3시대그리스도교 연구소의 김진호 류의 <탈신학/반신학> 조류와도 궤를 달리하며 마땅히 구분되어야 할 것이다. 나는 <반(反)신학>을 주장하진 않는다.

또 한 가지 오해해선 안 될 점은, 나는 유신론 무신론 논쟁 자체가 무의미하다기보다는 정확히 얘기하면, 서로 간의 변화 가능성을 열어놓지 않는 유무신론 논쟁 곧 <닫힌 유신론>과 <닫힌 무신론>에 대한 전적인 탈피를 원하고 있는 것이다. 상상적 사변을 재단할 순 없다. 하지만 독단적 사변에 대해선 분명한 비판과 탈피가 필요한 것은 자명하다.

그런 점에서 몸의 현실로 이끌지 못하는 유신론이나 무신론 논쟁들은 그야말로 무용할 수 있다고 생각된다. 몸학에서 강조하는 신앙이 있다면 그것은 오히려 <의심을 장려하는 새로운 믿음 신앙>이 있을 뿐이다.

<신>이라는 사건도 그 어떤 몸의 사건을 언표한 것으로
이제는 종교 신앙 발달의 범주를 새롭게 다시 짜야

탈신론적인 몸학을 통해 내가 말하고자 하는 바는, 적어도 자연주의적 원칙이 유지되는 가운데 그 목적지는 오히려 '신론'이 아닌 <몸론>이며, 신 존재를 언급하더라도 어디까지나 몸의 현실을 통한 신성의 발견이 될 것이다. <신에 대한 신앙>이란 몸의 현실과 연관된 그 어떤 사건을 일컫고 있을 뿐이다. 마찬가지로 <신을 반대하는 믿음>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라고 봐야 한다.

따라서 몸학 신앙 체계에서 볼 경우 누군가 신을 믿느냐 신을 안믿느냐 기준은 별로 중요하지 않은 사소한 기준일 뿐이며, 보다 중요한 사항은 그의 인지 발달이 몸성으로서 성장 과정에 있느냐 아니냐가 더 중요할 것으로 판단된다. 쉽게 말하면 유신론자든 무신론자든 이제 몸학에서볼 땐 달리 봐야 한다는 얘기다.

우리는 우리 스스로의 인지 발달과 함께 신앙 발달의 범주를 새롭게 짜야 한다. 이를 테면 무신론자인 마르크스도 당대의 입장에서 보면 매우 중요한 성찰과 통찰을 그 시대에선 제공하고 있는 것이기에에 몸의 현실과 관련해서 볼 경우 매우 유익한 무신론자로 볼 수 있다.

우리는 우리의 신앙에서 유신론 뿐만 아니라 기존의 무신론 진영에 대해서도 기꺼이 열린 마음으로 다시금 들여다 볼 수 있어야 할 것이다. 다만 경계해야 할 지점은 <유신론적 근본주의>와 <무신론적 근본주의>이다. 나는 그러한 점에서 유신론과 무신론에 대해 논쟁을 하더라도 결국은 <몸의 현실>과 결부시켜 논쟁해주기만이라도 바라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말해서 이제 우리는 신이 있느냐 신이 없느냐의 논쟁을 탈피하고 서로 간의 '신 있음'과 '신 없음'의 신앙과 이해가 도대체 우리 몸의 현실 세계에서 구체적으로 어떤 맥락과 의미로서 자리하고 있는 지를 더욱 들여다봐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한 가운데 서로 간의 반성적 성찰이 진행된다면 그것은 우리의 몸삶에도 상당한 유익을 가져올 것으로 본다.

정당한 합리적 의심을 장려하는 몸학적인 신앙 발달 체계에서는 그 어떤 논의도 두려움이 있을 수 없다. 만일 진리가 있다면 그것은 세계 안의 모든 의심들을 기꺼이 환영할 것이다. 내가 말하는 새로운 신앙으로서의 인지 발달은 기존의 고정화된 관념을 해체하고 새로운 체계를 받아들이면서 몸화되는 가운데 발달하는 것일 따름이다.

나 자신이 굳이 새삼스레 <탈신론>을 표방하는 이유에는, 이제 곧 도래할 <21세기 새로운 종교혁명>을 위해서이기도 하다. 이제 우리는 "신 없이 신과 함께.."라는 의미에도 좀 더 가까이 다가가게 될 것이다.






[펌금지]

P.S - 물론 질의 응답 반론은 얼마든지 환영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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