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합검색
아이디    비밀번호
   자동로그인     
  현재 총 119명 접속중입니다. (회원 0 명 / 손님 119 명)     최신게시글    성경검색   
새로운 기독교 운동
월례포럼
기획강좌
연구소 활동


  방문객 접속현황
오늘 697
어제 453
최대 10,145
전체 2,521,815


    제 목 : 죄의식의 종교에서 <이웃과 함께 성찰하는 종교>로    
  글쓴이 : 미선이 날 짜 : 11-02-01 19:51 조회(691)
   트랙백 주소 : http://freeview.org/bbs/tb.php/b001/566 




죄의식의 종교에서 <이웃과 함께 성찰하는 종교>로

- 나와 이웃, 하나님과의 믹힌 담을 허는 것이 진정한 죄사함  
 

<죄>란 무엇인가?

기존의 주류 기독교는 죄를 많이 강조한다. 그래서인지 기독교인은 세상을 살아가면서도 한편으로는 죄의식에 사로잡혀 있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여기서 말하고자 하는 것은 그러한 죄의식을 풀고서 해결하는 방법이 기존 기독교에선 매우 잘못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듯이, ‘죄’란 당연히 하나님과의 관계 단절 혹은 어긋남이다. 물론 이 표현이 틀린 얘기는 아니며, 대략 누구나 찬성할 수 있는, 아주 추상적이고도 일반적인 수준의 언급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그렇다면 도대체 ‘죄’라는 하나님과의 관계 단절이란 게 도대체 뭔지를 좀더 구체적으로 얘기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만에 하나 이를 ‘나와 하나님과의 관계단절’로서만 본다면 그것은 ‘죄’를 잘못 이해한 것이라고 말씀드려야겠다. 무슨 얘긴가?

하나님이 내게 원하시는 것은 곧 하나님의 원하시는 최종 목적인 하나님 나라에서 내가 맡은 역할의 성취일 것이다. 하나님 나라의 구성원으로서 하나님께서 염두에 두시고 예비하셨던 나의 자리는 분명히 있다. 그럴 경우, 죄란 근본적으로 그러한 ‘자기 자리를 벗어남’이요, 일탈일 것이다. 그것은 ‘불순종’이다. 그럼으로써 하나님과의 관계는 어긋나버리게 된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가 알아야 할 사실은 그 죄는 나와 하나님과의 관계만 단절시키는 게 아니라는 사실이다. 그것은 동시에 나와 이웃했던 존재와의 관계도 단절된다는 사실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염두에 두셨던 하나님 나라는 모든 존재들이 조화롭게 상생하는 나라인데, 여기서 나 혼자 일탈을 할 경우, 그 일탈의 연쇄적 반응으로 인해, 필연적으로 다른 이웃 존재들도 당연히 그 피해를 받는다는 것이다.

하나님 나라는 모든 존재의 힘들이 공평하게 운용되는 나라이다(존재 자체가 힘이다). 이 때 누군가가 자기 분수도 모르고 그 힘을 과잉한다면 상대적으로 이웃하는 다른 존재는 그로 인해 당연히 ‘힘의 결핍’을 받을 것이다. 그렇기에 죄를 좀더 구체적으로 말한다면, 그것은 바로 ‘힘의 과잉’이라고 볼 수 있겠다. 대체적으로 볼 때 죄는 타자에 대한 폭력으로서 곧잘 나타나지 않는가. 정신적이든 물리적이든 간에. 따라서 죄는 하나님과의 관계 뿐 아니라 필연적으로 이웃과의 관계에도 영향을 주는 것이다.
 
죄가 있는 곳에는 필연적으로 ‘한’이 존재

오늘날의 기존 기독교는 개인의 죄를 유난히 강조하는데, 사실상 죄가 있다는 것은 그 죄로 인해 누군가 피해를 받은 사람 역시 있다는 사실을 의미한다. 즉, 죄가 있는 곳에는 필연적으로 ‘한(恨, Han)’이 있다. 이러한 피해자의 맺힌 한을 제대로 풀어야 진정한 ‘죄사함’이 이뤄짐에도 불구하고 오늘날의 주류 기독교는 죄를 지은 가해자와 하나님 사이의 관계에만 초점을 맞춤으로써 죄사함이란 것을 개인으로 내면화해버렸다. 진정한 ‘죄사함’이란, 하나님과 나와의 관계뿐 아니라 나의 죄로 인해 피해를 입은 이웃까지의 관계마저 회복될 수 있어야 진정한 죄사함이라고 할 수 있음에도 말이다.
 
화해와 사랑이 없다면 그 곳에는 하나님 역시 거하시지 않는다. 이러한 구도는 새로운 민중신학에서도 다음과 같이 설명될 수 있다. 밑바닥 민중은 이 세계 안의 고난과 고통 즉 부조리한 모순들을 우선적으로 가장 많이 경험한다. 그래서 나는 이들을 ‘우선적 민중Preferential Minjung’이라고도 부른다. 이들은 이 땅에 억압과 모순의 문제가 해결되는 평등의 그 날까지 항구적으로 현존하는 이들이라 할 수 있겠다.
 
왜냐하면 보편적 일반인의 죄가 있기 때문에 당연히 그 죄로 인해 피해를 당한 밑바닥 민중 또한 현존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들은 보편적 일반인의 죄로 인해 필연적으로 파생한 자들이며, 기존 민중신학에서 말하는 ‘한’의 최대 담지자들이다. 보편적 일반인의 ‘죄’는 언제나 고통받는 우선적 민중의 ‘한’과 불가분적으로 얽혀 있다.
 
진정한 죄사함은 나와 이웃과 하나님이라는 3자적 관계에서 풀어야

현대신학의 죄에 대한 전통적인 교리는 피해자의 고통을 빠뜨렸다고 본다. 한의 문제를 취급함이 없는 죄에 대한 교리는 단지 가해자 중심에만 맞추는 것이기에 한의 문제를 제대로 들춰내야 죄의 문제가 올바로 해결될 수 있다. 주지하다시피 전통신학은 죄의 문제에만 초점이 맞춰져 있다. 그렇게 되면 이것은 가해자의 처지와 입장만이 중심선상에 떠오를 뿐이고 거기에 주요한 관심을 가지도록 만든다. 우리가 매주 다니는 대다수의 교회들은 늘상 우리가 죄인임을 강조하지만, 희한하게도 죄로 인해 고통받는 이웃에 대한 강조는 드물다.
 
이 세계는 죄로 물든 세상인 동시에 한이 서려 있는 공간이다. 한의 발견은 죄에 대한 자각에서 파생한다. 누군가가 죄를 지었다는 것은 동시에 그 죄로 인해 고통받는 이, 곧 한이 발생되었다는 사실을 우리는 결코 잊어서는 안 된다.

우리가 매주 예배시간마다 암송하며 드리는 주기도문도 잘 살펴보면,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같이 우리의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라 했듯이 ‘죄사함’이란 것은 하나님과 나와의 1대1 관계가 아니라 하나님과 나와 관계된 그 이웃까지 포함된 3자적 관계에서의 이루어짐을 알 수 있다. 이는 개인의 죄만 강조되고 있는 현재의 기독교에서 볼 때 절실히 바뀌어야 하는 측면이다.
 
가해자와 피해자의 사건에서 언제나 피해자(약자)편에서 하나님의 구원을 말하는 것이 자각인의 도리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의(義)를 드러내는 것이며, 그것이 의인의 삶인 것이다. 사실상 바울이 말한 칭의론―혹은 의인론―도 이와 같은 맥락에 놓여 있다. 죄인인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죄를 사할 수 있는 방법은 그 자신의 죄가 저질러 놓은 문제를 해결함으로써만이 하나님 앞으로 의롭게 나아갈 수 있다. 진정한 ‘죄사함’이란 나와 이웃과 하나님과의 막힌 담, 곧 한을 풀려는 노력으로 나타난다.
 
 
 
 
  
 


게시물수 180건 / 코멘트수 490건 RSS
 
번호 제목 글쓴이 조회 날짜
왜 예수인가 (필독 원함!) (13) 미선 3139 11-04
GIO명상 방법 12단계 (몸기독교가 제안하는 수행 방법 중 하나..) (5) 미선 1269 01-16
교회에 대한 권력비판? 교리비판? 어느 것이 더 유효할까? (4) 미선 1154 12-06
종교운동과 사회운동을 구분 못하는 오류-기존 진보 기독교 비판 (1) (2) 미선이 1162 10-14
몸학과 새로운 기독교 운동 그리고 30년 후의 기독교 미선이 1165 04-11
기존 진보 기독교인들의 <생명평화> 담론에 반대한다! (업그레이드판) (8) 미선이 1268 02-17
성서문자주의 또는 성서무오설 신앙보다 더 뿌리 깊은 고질병은? (9) 미선이 1449 02-02
과정신학에 대한 비판과 민중신학의 신 이해 접맥 미선이 1210 01-13
[예수운동 예배 견본] 새로운 기독교의 <예수운동 예배>를 위하여 미선이 1489 11-28
<새로운 기독교>를 소개하는 전체 안내 링크글 (계속 업데이트 예정) 관리자 3628 11-03
내가 지금 믿고 있는 것은 과연 진리인가 정강길 5021 04-27
"어차피 이러한 기독교로 바뀌게 된다!" (모든 분들에게 고함) (17) 정강길 3532 02-18
새로운 기독교를 위한 조직신학적 성경공부 (신론) (2) 관리자 6230 05-28
새롭고 건강한 21세기 그리스도교 공동체를 위한 신앙선언서 (26) 관리자 5385 05-23
180 21세기 종교 진화의 방향, 몰락이냐? 도약이냐? 미선 1182 06-16
179 "함께 만들어가는 종교와 진리" (2) 미선 1227 06-10
178 기독교에서 얘기하는 병치유 귀신쫓음을 어떻게 볼 것인가? (1) 미선 1345 06-10
177 몸에 모시는 하나님 (탈유무신론의 신앙) 미선 1103 06-09
176 초자연주의>에서 <자연주의>로 가야 기독교가 산다! 미선 1290 06-07
175 과학의 진화론에 대한 기독교의 창조론 입장들 미선 1246 05-30
174 신학이 아닌 몸학에 기반하는 <몸학 기독교>로! 미선 1141 02-10
173 신의 영어 표기 God ----> Gio 로 바뀌어야 미선 1093 02-07
172 약자에 대한 눈뜸 - 잠자와 깬자의 차이 미선 1185 12-08
171 <초자연주의>를 인정하면 나타나는 문제들.. 미선 828 11-04
170 [어떤 진리관] 진리(眞理)와 진리(進步)의 차이 그리고 퇴리(退理) 미선 809 07-05
169 시작이 있는 우주인가? 시작도 끝도 없는 우주인가? 미선 933 06-18
168 <종교 위의 종교>에 대해.. 미선 797 05-04
167 초자연주의와 자연과학 그리고 신비주의 구분 미선 931 04-06
166 지적설계론(창조론)자들과 유물론적 과학자들 간의 공통점 미선 764 12-10
165 종교 신앙의 반지성에 대한 단기적 대안 (1) 미선 836 11-24
164 "몰락이냐 도약이냐" 21세기 종교 진화의 방향 (종교학회 발표) 미선 796 09-10
163 '나(I)는 누구인가?'라는 근원적인 물음에 답하려면.. (1) 미선 767 04-13
162 유신론-무신론을 넘어서 <탈신론>으로 미선 925 05-04
161 <초자연주의>를 버려야 기독교가 산다! 미선 920 02-04
160 몸학 기독교 & 몸학 사회주의 추구 미선 797 12-31
159 <자유>에 대한 짧은 생각.. (2) 미선 903 08-24
158 몸학 기독교에선 기독교 신학이 굳이 필요하지 않은 이유 미선 1031 03-24
157 인간 무의식의 두 가지 상태와 보다 상향적인 의식 발달을 위하여 미선 1029 03-03
156 (1998년 원글) "화이트헤드 철학에서 본 민중신학 비판과 대안적 모색" (2) 미선 1259 02-18
155 종교(宗敎, Religion)에 대한 동서양의 어원적 의미와 전후 혼동 오류 미선 832 02-06
154 기존 기독교와 <몸 기독교>의 분명한 차이들 미선 795 01-21
153 GIO명상 방법 12단계 (몸기독교가 제안하는 수행 방법 중 하나..) (5) 미선 1269 01-16
152 2013년 계획.. 몸 기독교 (4) 미선 1002 01-02
151 민중신학 40년.. (20년전 안병무 기사를 보며..) 미선 785 12-25
150 진보정치 교육의 사각지대와 민중 역사 주체론에 대한 반성과 재고찰 미선 736 12-22
149 교회에 대한 권력비판? 교리비판? 어느 것이 더 유효할까? (4) 미선 1154 12-06
148 왜 예수인가 (필독 원함!) (13) 미선 3139 11-04
147 새로운 기독교의 방향과 몸학의 종교관 (2) 미선 784 10-05
146 새로운 기독교의 방향과 몸학의 종교관 (1) 미선 819 08-17
145 기독교 교리의 문제는 기독교만의 문제가 아니다! (3) 미선 900 06-11
144 초대교회와 바울에 대해... 미선 946 04-28
143 '작은 교회'가 정말 대안인가? 핵심은 교리다! 미선 752 04-22
142 진선미의 기원과 예수사건 (1) 미선이 744 02-24
141 중간 복음주의 신학자 알리스터 맥그리스의 <과학신학> 비판 (13) 미선이 750 12-13
140 끔찍한 <몸의 신학>에 속지 마시길! (유사품 주의) (8) 미선이 847 11-15
139 종교운동과 사회운동을 구분 못하는 오류-기존 진보 기독교 비판 (1) (2) 미선이 1162 10-14
138 여전히 예수얼굴에 똥칠하는 개신교 정치세력들 (5) 미선이 798 08-30
137 새로운 기독교 역사의 국내 선구자들 : 유영모, 함석헌, 김재준 미선이 751 06-26
136 조용기 목사의 할 일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미선이 783 05-14
135 몸학과 새로운 기독교 운동 그리고 30년 후의 기독교 미선이 1165 04-11
134 <인간의 자유의지>라는 착각과 환상에 관한 문제 (14) 미선이 1512 03-04
133 기존 진보 기독교인들의 <생명평화> 담론에 반대한다! (업그레이드판) (8) 미선이 1268 02-17
132 기존 진보 기독교계의 ‘생명평화' 담론에 근본적인 의문을 제기한다. 미선이 587 02-10
131 영혼구원의 강조에서 <총체적인 생명구원의 강조>로 (4) 미선이 705 02-05
130 성서문자주의 또는 성서무오설 신앙보다 더 뿌리 깊은 고질병은? (9) 미선이 1449 02-02
129 죄의식의 종교에서 <이웃과 함께 성찰하는 종교>로 미선이 692 02-01
128 수직적 구조의 교회에서 <수평적 구조의 교회>로 (2) 미선이 893 01-21
127 서구식 목회문화가 아닌 <우리식 목회문화>로 미선이 769 01-21
126 과정신학에 대한 비판과 민중신학의 신 이해 접맥 미선이 1210 01-13
125 ★ 예언 (1) 미선이 1107 12-24
124 ♣ 새로운 기독교 신학의 인간론 (4) 미선이 933 12-19
123 ♣ 새로운 기독교 신학의 인간론 (3) (4) 미선이 1047 12-12
122 ♣ 새로운 기독교 신학의 인간론 (2) (10) 미선이 1312 12-05
121 새로운 기독교의 시간관, 태초와 종말로서의 시간관을 거부한다! (4) 미선이 1090 12-01
120 ♣ 새로운 기독교 신학의 인간론 (1) 미선이 1310 11-30
119 [예수운동 예배 견본] 새로운 기독교의 <예수운동 예배>를 위하여 미선이 1489 11-28
118 숭배하는 예배에서 <닮으려는 예배>로 (1) 미선이 1241 11-19
117 거꾸로 흘렀던 감리교 역사, 바로 세우기엔 아직 멀었나 미선이 1096 11-10
116 <새로운 기독교>를 소개하는 전체 안내 링크글 (계속 업데이트 예정) 관리자 3628 11-03
115 [논평] 봉은사 땅밟기 추태, 성경 '문자주의' 그 야만의 역사 넘어서야 (1) 관리자 1228 10-29
114 기존의 진보 기독교와 새로운 기독교 운동 (1) 미선이 1116 10-22
113 1세대 민중신학자 안병무의 미완의 작업과 기존 민중신학의 과제 미선이 1036 10-19
112 [새기운 성명] 4대강 사업 관련, 문정현 신부의 정진석 추기경 비판을 지지한다 관리자 993 10-19
111 스퐁, "스티븐 호킹과 유신론/인격신의 죽음" (작은불꽃님 역) 관리자 1396 10-11
 1  2  3  



Institute for Transformation of World and Christianit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