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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목 : 민중신학 40년.. (20년전 안병무 기사를 보며..)    
  글쓴이 : 미선 날 짜 : 12-12-25 08:06 조회(471)
   트랙백 주소 : http://freeview.org/bbs/tb.php/b001/672 




(* 위의 한겨레신문의 기사 내용은 아래와 같다. 당시 기자가 손석춘씨인 것도 흥미롭다.)
 
 
...............................
 
 
민중신학 40년..
 
(20년전 안병무의 기사를 보며..)
 
 
우연히 안병무에 대한 1992년도 12월9일자  한겨레 신문 기사를 발견했다.
이때만 해도 민중신학 20년이라고 하니 지금은 이제 민중신학 40년이 되는 셈이다.

위의 기사를 찬찬히 읽어보면 현재의 기존 진보 기독교가 이것 이상으로
특히 현재의 국내 민중신학 수준이 위의 내용 이상으로
계승 발전한 게 도대체 뭐가 있는지 의심스럽다.

반만년이라는 조선 한반도 역사에서 나온 모든 철학 종교 사상을 총망라해
해외 학계에 가장 많이 소개되고 가장 많이 논문화되었던 주제가
다름 아닌 <민중신학>Minjung Theology이었던 시절이 있었다.

아마 위의 기사가 나왔던 1992년도 가장 최고조였던 시절이 아닐까 싶다.
나의 경우도 그때 민중신학에 한창 빠졌던 기억이 난다.
그로 인해 한신대 신학과에 들어갈 마음까지 먹었던 것이다.

그러나 당시에도 국내의 경우 민중신학을 연구하는 데는 거의 없었고,
진보 개신교 진영에서만 조금 활발했었을 뿐이었다. 학문적 연구는 오히려
외국 학계가 훨씬 더 활발했었다. 심지어 독일에선 민중신학 뿐만 아니라
민중신학이 아닌 '안병무'라는 신학자를 연구한 박사학위 논문까지 나왔을 정도다.
 
그런데 위의 기사 내용에도 쓰여 있듯이
한편으로 민중의 시대가 끝났다는 얘기들 역시
그때 당시에도 이미 벌써 나돌고 있었는데 그런 점에서 내 생각엔
그때쯤이 최고조에서 이제 서서히 추락하듯 저물어갔던 시기로 보인다.
 
이제 그 화려한 시절은 다 지나갔다. 국내는 물론이고 오늘날 해외에서도
더이상 민중신학을 연구하는 이가 거의 없을 만큼 죽은 신학이 되어버렸다.
아무도 민중신학을 찾지 않는 것이다.

국내의 경우 '한국민중신학회'라는 간판을 걸고
몇몇 소장 학자들 정도만 겨우 그 명맥을 유지하고 있을 정도다.
워낙 죽어 있는 신학이다보니 때론 민중신학에 대한 비판마저 불허할 정도다.
즉, 안그래도 죽어 있는 신학인데 왜 또 분란이냐는 식이다.

그런데 내가 볼 때 민중신학을 죽인 사람은 민중신학을 계승한다고 자임하는
현재의 민중신학자들 자신이다. 그냥 민중신학이라는 브랜드를 통해
건건히 자신들의 지위를 유지하려 할 뿐, 민중신학에 대한 실질적 발전은 찾기 힘들 정도다.

민중신학에 대한 가장 시급하게 처리해야 할 대수술은 크게 두 가지로
첫번째는 민중신학에 보다 튼튼한 형이상학적 구축을 확보해야 한다는 점과
두번째는 기존 민중신학의 핵심 교리이기도 한
민중 역사 주체론 즉, 이러한 민중론에 대한 새로운 재고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한국의 민중신학은 바로 이러한 점들을 다시 재설정하지 않으면
그저 신학으로 밥벌이나 하는 정도의 지적 유희의 언명이 될 뿐이다.

나는 이 점에 대해 이미 <화이트헤드와 새로운 민중신학>을 통해서
누누히 밝혔었지만, 아직 아무런 답변도 없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이런 부분에 대한 고찰이 여전히 결핍된 채로
그저 시류적인 당대의 정치사회적 이슈들을
민중신학적 분석과 전망이라면서 내세울 뿐이다.
제대로된 이론적 체계를 세우기 위해 무엇을 먼저 해야할 지를 잘 모르는 듯 싶다.

물론 정치 권력에 대한 비판도 중요하다. 하지만 내가 볼 때
민중신학은 그야말로 이천 년 신학의 역사에 정말 중요한 것을 포착하고 있음에도
왜 이를 제대로 이론적 체계화로서 확보하려 하지 않는지를 모르겠다.
능력 부족인가? 설마 그 똑똑하신 분들께서 그리고 박사학위와
교수직을 맡고 계신 여러 분들도 계신데 설마 능력부족이라는 건
정말 믿기지 않는 얘기다. 오히려 일부러 딴 생각을 하는 게 아닌지 의심스럽다.

민중신학의 가치는 민중신학이 지닌 변혁적 운동성
즉, 사회에 기여하는 그 실천적 운동성에도 커다란 가치가 있지만
그 못지 않게 어쩌면 그 이상으로 민중신학의 가치는
민중신학이 지니고 있는 철학적 발견에 있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튼튼한 이론적 구축의 지평은 그 실천적 운동성을
지속적으로 가능하도록 해주는 데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민중신학은 너무나 죽어 있는데 듣자 하니 남미의 해방신학도
다소 그러한 분위기로 기울고 있다고 한다. 다만 아쉬운 답변으로
여전히 진행중이라는 얘기만 나올 뿐.. 별로 진척된 담론은 나와 있지 않다.
종교와 사회과학 담론 사이에서 정처 없이 방황하는 모습만 보이고 있을 뿐..

나는 안병무가 실현하고자 했던 그 이상을 언젠가는 꼭 해내고 싶은 바램이 있다.
이를 위해선 민중신학이 민중신학을 구속하는 현재에 대해서 극복해야 한다고 본다.
민중신학과 안병무는 기념하기 위한 대상이 아니다.
민중신학이라는 브랜드에 목메어서도 안되지만 그렇다고
민중신학의 소중한 자산과 가치를 절하하거나 버려서도 안될 것이다.

특히 서남동 안병무의 1세대 민중신학은 정말로 참조할만한 금은보화가 가득하다.
문제는 이를 어떻게 정리해서 보다 튼튼한 이론적 체계화를 확보해야 하느냐일 것이다.
물론 내가 추구하는 민중신학만 진짜 신학이라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다만 기존 민중신학에 던져진 비판과 대안 모색들을 제대로만 직시하자는 것뿐이다.
그럼에도 바로 이러한 작업조차도 제대로 되어 있지 않은 것이다.

20세기 민중신학은 저물었다. 
나는 감히 말씀드린다. 신학은 이제 종말을 다했다고..
20세기 민중신학 뿐만 아니라
이미 기독교 신학 자체가 종말을 고했다고 본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편으로
이제 우리는 21세기 민중신학을 펼쳐야만 한다.
그렇다면 신학의 종말 시대에서 어떻게 이것이 가능할 수 있을까?
이 지점에서 나는 신학이 아닌 몸학을 제언한 것이지만
그러나 몸학보다 더 나은 길이 있다면 언제든지 나 역시 그러한 길로 찾아갈 것이다.

늘 되새기는 얘기지만
기독교가 진리라기보다 예수사건이 곧 진리며,
그것은 예수사건을 통해 경험되어질 뿐이다.

진리는 확정할 수 있는 그 어떤 명제나 완결된 그 무엇이 아니다.
진리란 그저 인류가 저질러놓은 오류를 찾아가는 과정에 놓여 있을 뿐이다.

마찬가지로 민중신학 역시 철저히 자기오류와 반성에 기인하지 않을 경우
희망적 미래는 찾기 힘들 것으로 보인다. 물론 과거의 화려한 시절을 기억하는
몇몇 분들을 통해 그저 기념사업회 같은 명맥과 사교모임만으로 유지되어질 것이다.

그러나 기존 민중신학이 철저히 자기반성과 오류를 제대로 성찰하기만 한다면
그야말로 다시금 세계 학계에도 파워풀한 튼튼한 학문을 제시해보일 수 있다고 생각한다.
비록 현재로선 실날같은 희망으로 보이긴 하지만
나는 그래도 여전히 거기에 희망을 걸어보고 싶은 사람들 중의 한 명이다.

아듀! 민중신학!
굿럭! 민중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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