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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목 : <종교 위의 종교>에 대해..    
  글쓴이 : 미선 날 짜 : 16-05-04 19:13 조회(42)
   트랙백 주소 : http://freeview.org/bbs/tb.php/b001/713 





종교 위의 종교


<자본교>의 몸삶, 수익을 위해서라면 뭐든....

오늘날에 세계 각국에는 수많은 종교들이 있습니다. 우리의 눈에 곧잘 드러나는 종교들은 그 안에서 자기들끼리 싸우기도 하는 모습도 종종 보여주기도 합니다. 하지만 현재로선 우리의 눈에 잘 보이지는 않지만 세계 곳곳의 여러 종교들보다 훨씬 더 상위에서 작동되는 <종교 위의 종교>도 있습니다.

이러한 <종교 위의 종교>에는 크게 두 종류의 종교를 꼽을 수 있겠는데, 그것은 곧 <자본교>와 <힘의 종교>입니다. 엄밀하게 말하면, <힘의 종교>가 가장 뿌리 깊은 궁극적인 종교이며, <자본교>도 여기에서 파생된 종교에 속합니다.

오늘날의 <자본교>는 여타의 기존 종교들보다 훨씬 더 상위에서 작동하는 종교이며 이미 우리는 그 속에서도 많은 위로과 안식을 얻을 수 있기도 합니다.

여기에는 <기독교적 자본교>도 있고, <불교적 자본교>도 있을 수 있으며, <이슬람교적 자본교>도 있을 수 있고, <힌두교적 자본교>도 있을만큼 다양합니다. 요즘엔 심리 치유 영역도 자본주의 산업사회로 편입되면서 돈을 버는 직업으로서의 <심리 치유 자본교>도 충분히 가능한 것으로 보입니다.

물론 그렇지 않은 분들도 있겠지만, 적어도 이들에게선 세속적 이익과 번영이 훨씬 더 큰 자기 삶의 목적으로 작동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일찍이 발터 벤야민(Walter Benjamin)이라는 철학자는 "자본주의란 세속화된 종교다"라고 명시적으로 언급한 바 있기도 합니다. 저는 그래서 이를 <자본교>라고 명명해 본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의 눈에 들어오는 하나의 종교 안에서도, 어쩌면 크게 둘로 나누어진다고도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즉, 기독교를 예로 들어서 말해본다면, 크게 <교조적 기독교>와 <기독교적 자본교>로 나누어진다고 볼 수 있다는 얘기인 것입니다.

따라서 자기 종교의 신앙 원칙을 고수하는 교조적인 종교도 있긴 합니다. 하지만 종교적 교리나 원칙조차도 때로는 부를 창출하는 이익과 번영 앞에서는 이를 접기도 하는 경우들도 많다는 것입니다.

사실 이런 행태들은 사이비 교주들한테서도 많이 볼 수 있는데, 자기 신도들한테는 자기가 속한 종교의 신앙 원칙들을 지키라고 말하면서도 정작 그 자신은 자기 이익을 내는데에 골몰하곤 합니다.

이러한 자본교의 교리 기준은 명확합니다. 수익창출 비용절감.. 모든 가치들은 이 교리를 벗어나지 않습니다. 그 어떤 가치보다 경제적 이익을 훨씬 더 중시하는 태도들은 오늘날 많은 이들의 몸삶에 당연한 것처럼 배여 있는 습관적 태도인 것입니다. 무엇이든 돈으로 해결해보려는 습성까지도..

자본교 하에서 추구되는 자아들은 대체로 성공 기업가적 유형의 자아입니다. 대부분의 자기계발서들도 이런 유형에 맞춰져 있으며, 많은 사람들이 추구하는 일생의 목적도 결국 성공 기업가 자아를 성취하는 것에 맞춰져 있습니다.

자본교는 이를 위해 요람에서 무덤까지 우리의 인생 경로 속에 학력과 온갖 스펙 쌓기 그리고 힘든 취업의 관문들을 고안해놓았습니다. 오늘날의 현실에서 볼 때 이러한 장치들도 자본교의 제도 안으로 포섭된 인생 사다리인 셈입니다.  

그만큼 자본교는 <세속화된 종교>라는 점에서 이미 우리의 무의식에까지 침투되어 있는 종교라고 볼 수 있습니다. 결국 자본교는 우리 자신의 몸삶에서 지극히 당연한 것으로 간주되고 있기 때문에 여간해서 첨예한 문제 의식으로 못느낍니다. 그러긴커녕 오히려 삶의 제반적인 관점을 이러한 마인드에서 보도록 이끌 따름입니다.

<종교>(宗敎)라는 말뜻 그대로 자본교는 이미 세계 속의 <으뜸 가르침>으로서 우리 안에 몸화되어 있는 현실입니다. 


힘의 종교, 힘의 복음


그리고 앞서 말한 자본교보다 훨씬 더 깊고 광범위한 상위의 뿌리 깊은 종교가 바로 <힘의 과잉을 숭배하는 종교>입니다. 존재는 어떤 면에서 힘이라고 볼 수 있는데 생물학적 존재들은 아무래도 이 같은 영향을 받지 않는 경우들이 거의 없다고 볼 수 있을 정도로 자연의 본성에 가깝습니다.

그럴 경우, 크게 보면 <힘의 과잉을 숭배하는 종교>와 <힘의 균등한 성장을 도모하는 종교>로도 나누어질 수 있다고 보는데, 지금까지의 종교를 비롯해 인류 삶의 양식들은 거의 전자에 맞춰져 있습니다. <구원하는 폭력>에 대한 신화도 이와 연관되어 있기도 하죠.

이를 테면 전능한 절대자 하나님을 숭배하는 것처럼 힘센 신적 존재나 힘센 영웅(히어로 신화)에 대한 숭배를 뿌리 깊게 지니고 있으며 대체로 이에 대한 동경을 갖고 있기도 합니다.

문제가 되는 건 그 힘이 소수에게만 부과되면서 계급이 발생하고 약자의 고통이 발생된다는 측면일 것입니다. 그래서 때때로는 이에 대한 저항과 대안으로서, 힘의 균등한 성장을 도모하려는 흐름도 몇몇 선각자와 현인들의 지혜들을 통해 나타나기도 하죠.

어떤 면에서 <전능한 힘에 대한 숭배>나 <초자연적인 메시아(히어로) 숭배>는 모든 것을 일순간에 단번에 힘의 제압으로 해결해버리고 싶은 전체주의적 환상과 욕구에 기인한 것이기도 합니다.

약소국 자본주의와 강대국 자본주의도 결국은 <힘의 종교>religion of Force가 좀 더 상위에서 작동하고 있음을 말해주는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힘의 종교>를 벗어나긴 힘들 것으로 보입니다. 철학자 화이트헤드는 <힘의 복음>the Gospel of Force이라는 표현을 쓰기도 했습니다. 이러한 힘의 복음은 사회적 생활과 조화될 수 없다고 보고 있습죠. 하지만 갈릴리 예수에게서는 힘으로 지배하지 않는 사랑의 복음을 엿볼 수 있다고 얘기합니다.

제가 화이트헤드 철학을 통한 <몸학>Mommics을 대안으로서 제안하는 이유에도 결국 기독교나 불교나 이런 것만이 아닌 <자본교>와 <힘의 종교>에 맞설 수 있는 새로운 몸삶의 이론이 필요하다는 판단에서 비롯된 것일 뿐입니다.

우리 안에 근원적으로 깊게 배여 있는 <힘의 과잉에 대한 숭배와 동경>은 우리 스스로의 몸삶들을 기어이 파괴할 것이기에 이를 극복하기 위한 새로운 몸삶의 성장 발달 이론이 필요하다고 여겨졌던 것입니다.

몸을 형성하는 여러 다양한 관계들..
그러한 관계들로 형성된, 몸이 나아가고자 하는 목적과 비전..
그러한 몸삶의 목적에 의해 조명되거나 조정되는 새로운 삶의 관계들..

우리는 과연 어떤 삶을 남겨놓고 가는 것인가?
바로 이 질문에 대한 결정들(decisions)은 언제나 
<지금 현재>here and now에서 일어나고 있습니다.

어떤 선택을 하면 살아가고 있으며,
또한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는 것인가 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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