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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목 : 약자에 대한 눈뜸 - 잠자와 깬자의 차이    
  글쓴이 : 미선 날 짜 : 16-12-08 11:51 조회(273)
   트랙백 주소 : http://freeview.org/bbs/tb.php/b001/725 





약자에 대한 눈뜸 - 잠자와 깬자의 차이
- 하구보리 상화중생(下求菩堤 上化衆生)의 삶에 대해..



"깨달은 각자(覺者=자각인)는 짐짓 윤회 속으로 뛰어 들어간다!"

......

제가 생각하기로는, 각자가 자신이 할 수 있는 달란트(재능, 시간, 물질, 노력 등)를 통해 자신이 생각하는 사회적 약자들과 함께 연대하는 삶을 추구하는 것, 바로 그것이 핵심이 아닐까 싶습니다.

존재의 실현은 <자타실현>이라는 점에서 자신이 가장 잘할 수 있는 것을 통해 가능한 것부터 찾아서 시작하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물론 어떤 삶의 목표의 그림을 가지면서 가야 할테죠. 다만 참된 깨달음을 얻은 이라면 그의 <자타실현>은 <약자 우선성의 원리>라는 열매를 맺는 쪽으로 맞춰져 있다고 여겨집니다.

이는 사회적 삶을 사는 관계로서의 인간 이해와 연관되어 있습니다.

우선 몸학이 보는 인간 이해에서는 (예전의 글의 경우) <보편적 일반인>, <자각인>, 그리고 약자에 해당하는 <우선적 생명> 이렇게 세 분류로 나눈 바가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는 각각 <잠자>, <깬자>, <약자>로 언급해볼까 합니다.

보편적 일반인은 그냥 줄여서 <일반인>이라고 해도 될 것 같습니다. 이는 불완전한 존재 일반 모두를 일컬으며 우리 모두가 기본적으로 지닌 측면입니다. 일반인은 <생존>과 <생활>을 위해 아득바득 아웅다웅 살아가는 우리 모두의 모습에 해당한다는 점에서 <보편적>이라고 봅니다. 아직 깨어있지 않다고 해서 저는 <잠자>로 칭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이 일반인 중에서도 잠을 깬 <깬자>가 있는데, 이를 <자각인>이라고 표현한 것입니다. 흔히 말하는 <깨달은 자>에 해당합니다. 함석헌은 이를 <씨알>이라고 표현한 적도 있긴 한데 몸학이 보는 관점과도 유사한 점이 있다고 봅니다.

흥미롭게도 본래 <붓다>buddha라는 용어의 뜻도 <뭔가를 잘 아는 사람>One who really knows을 일컫기에 불교적 문맥으로 보면 부처라고 불릴 수도 있으리라 봅니다. 네가 곧 부처다 뭐 이런 말도 있잖아요. 하지만 관념론적 불교관에서 볼 경우 이 용어는 현재 많이 오염된 표현이라고 보여집니다. <부처>라는 본래 용어의 취지에서 벗어나 다양하게 쓰이기도 하죠. 암튼 <뭘 좀 아는 사람>을 의미합니다.

뭘 안다는 것인가? 그 안다는 것의 내용이 깨침 혹은 깨달음이 될 만한 사건 내용입니다. 하지만 여기서 <깨달음>이 무엇이냐에 대해선 따로 말씀드리겠습니다(이것까지 다소 분량이 길어지기에). 그냥 여기선 타자와 조화된 이상과 타자의 현실 고통에 대한 대비적 눈뜸이라고만 간단하게만 언급해두겠습니다.

어쨌든 제가 볼 때 그것이 진정한 깨달음을 지닌 <깬자>라면 각별히 하나의 삶의 습성을 보이는 점이 있는데 그것이 바로 <약자 우선성의 원리>라는 것입니다. <약자 우선성의 원리>는 이미 이곳 밴드에서도 설명드린 바 있습니다.

* <약자 우선성의 원리> 참조
http://band.us/#!/band/9560934/post/424987694


<자각인> 즉, <깬자>일수록 타자적 현실을 자신의 몸삶과 일치시키고 있기 때문에 보다 고통받고 아픈 몸삶을 자신의 삶과 동일시하려는 습성이 있습니다.


"<약자>는 <깬자>의 우선적인 실천 대상!"

여기서 <우선적>이라는 수식어를 붙인 이유는 바로 이 세상의 불합리한 모순에 대해 대칭적인 자세, 곧 우선적인 생명들을 더욱 우선시하는 자세로 맞불을 질러서 종국적으로 평형을 유지시켜야 하는 방향으로 나가야한다고 보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때 말씀드리는 <약자>에는 두 가지 경우가 있습니다. <객관적 약자>와 <정황적 약자>가 바로 그것입니다.

<객관적 약자>는 변화하는 세계 속에서 고통과 고난의 정도가 가장 큰 약자로서 이에 속한 이들은 거의 대부분 절명의 상태에 있는 경우일 것입니다. 하지만 세계 안에서 어떤 생명이 가장 큰 시급한 밑바닥 고통에 놓여 있는지를 객관적으로 측정하기란 거의 불가능할 수 있고 기껏해야 짐작 정도로만 접근할 것으로 봅니다.

좀더 실체적으로 접근되는 것은 <정황적 약자>입니다. <정황적 약자>란 깬자의 삶의 정황과 연관된 약자를 말합니다.

만일 이 깬자가 장애인 분야에 종사하고 있다면 그 자신의 삶의 정황과 관련한 약자는 장애인들이 해당할 것입니다. 또 어떤 깬자의 삶이 농업 분야에 종사하고 있다면 그 자신의 삶의 정황과 관련한 약자는 농민들이 우선적인 약자로 다가올 것입니다.

만일 깬자가 학교 선생이라면 교육 체제에 희생된 아이들이 우선적인 약자로 다가올 것입니다. 이처럼 이 <정황적 약자>는 깨어 있는 자각인들이 몸담고 있는 삶의 열매와 연관합니다.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사실은, 이 <약자>는 <깬자>의 눈에만 보인다는 사실입니다. 예컨대 복음서의 부자와 나사로의 비유에서 보면, 그 부자는 자기 집 문앞의 나사로가 자신의 삶에 연관된 <정황적 약자>라는 점을 전혀 알아차림하지 못하죠. 깨달음은 고통받는 타자적 현실에 대한 눈뜸과 사랑이기도 합니다.

▲ 김봉준 作, <해방의 십자가> 그림


어쨌든 대체로 <정황적 약자>는 깨달은 각자가 지닌 삶의 자리와 그리고 각자가 지닌 달란트로서 접근되는 경우가 많다고 봅니다. 즉, 각각의 자각인들이 좀더 잘하는 재능, 시간, 노력, 물질 등 여러 가지들로 함께 하는 거라 하겠습니다.

정황적 약자는 힘의 결핍을 당한 상태이기에 이들과 함께 하는 깬자 곧 자각인은 힘의 과잉을 불러오는 체제나 그러한 강자의 시스템에 대해선 맞서 있는 형태로 나타납니다.

즉, 우선적 약자에 대한 치유는 동시에 그 약자를 억압하는 것들에 대한 <우선적인 저항>과 같은 맥락으로 드러납니다. 자각인들의 이데올로기적 투쟁도 바로 여기서 일어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인류사의 진보는 바로 이 깬자들에 의해 이뤄진다고 생각합니다. 우선적으로 약자들과 함께 하는 이 깬자들이야말로 진정한 역사의 주체라 할 수 있겠습니다.


결론적으로 말씀드리면,

<자타실현>의 삶에 있어 자신이 할 수 있는 달란트를 갖고 자신의 삶의 정황에서 접근가능한 약자들과 함께 하는 삶이 중요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때 자신의 직업희망이나 장래희망을 그러한 쪽에 두도록 하는 것이 중요할 것으로 봅니다. 그리고 이를 위해 실현 가능한 것부터 하나씩 실천하는 삶이 중요하지 않은가 생각합니다.

끝으로 자신의 삶에 맡겨진 <정황적 약자>도 궁극적으로는 <객관적 약자>를 치유하기 위한 접근이기에 항상 이땅에서 가장 많은 고통과 억압에 놓여 있는 약자들에 관심의 끈을 지속적으로 놓질 않는 삶이 가장 중요하다고 여겨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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